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음성듣기(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3가지 경로는 대체 무엇인가?(눅15:11~20)_2023-08-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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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감각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도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채널이 약해진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이도 없었고 그렇게 하는 방법도 모르니 어느새 교회에 출석하여 설교 말씀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조금 더 나아가서는 성경 읽는 것 정도로 만족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하시고 있다. 하나님은 목자로서 양들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게 속한] 양[들]은 음성(소리)을 듣는다"(요10:27)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을 우리가 듣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는지를 잘 몰라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해 오셨는데도 그것을 듣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2.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3가지 경로 중 첫 번째 경로(초급 단계)는 어떤 것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음성(목소리)으로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양떼가 목자 근처에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목자가 자신의 음성으로 양들을 불러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피리를 분다든지, 돌을 두드린다든지, 개를 보낸다든지, 휘파람이나 독특한 소리를 내서 양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첫 번째 경로는 떨어져 있는 양떼를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는 외부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들려지는 보통 외마디다. "돌아오라. 내 품으로 돌아오라" 그런데 양들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주님이 사용하시는 음성(소리)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난이라는 환경을 통해서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에게, 기근으로 인한 배고픔의 고난이 불어닥친 것과 비슷하다. 환경 속에서 모진 어려움을 당할 때 비로소 사람은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에게 불치병이나 암병이 발생하고, 자식이 죽어 나가는 어려움을 당할 때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 살아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찾으신다는 것을 깨닫는 이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초급 단계에 들어온 것이다. 초급 단계도 약간의 등급이 있는데, 간단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 다음 단계는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성경 말씀을 읽을 때, 다른 그리스도인과 만나 대화를 나눌 때에 듣게 된다.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구나 하고 깨닫는 것이다. 그것을 '레마 말씀'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어느 날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완전히 부딪혀 메아리칠 때가 있다. 이것 역시 기록된 로고스 말씀이 내게 주시는 레마 말씀이 된 것이다. 이때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은 '나를 찾으라', '나에게 부르짖으라', '용서하라' 등등의 외마디의 말씀이 내 가슴에 부딪혀 다가온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꼭 귓가에 들려오는 음성만이 아닌 것이다. 

 

3.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3가지 경로 중 두 번째 경로(중급 단계)는 어떤 것인가?

  하나님이 음성이 들려지는 초급 단계를 지나 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중급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때에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성령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내 속에 들어와 계신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단계가 바로 이 단계다. 초급 단계가 '고난'이라는 외부 환경이나 설교나 '성경 말씀' 혹은 타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단계라면, 중급 단계는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내게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단계를 가리킨다. 이때는 성령께서 3가지 형태로 말씀하신다. 첫째는 어떤 것이 불현듯 생각나게 하심으로 즉 감동케 하심으로 말씀하신다. 그리고 둘째는 영의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말씀하신다. 이런 것들이 대표가 바로 '꿈'과 '환상'이다. 주님께서 시각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참고로 환상을 볼 때에 시각적으로만 보일 뿐 그때 대부분 음성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셋째는 영의 귀에 들리는 청각으로 말씀하신다. 그러한 것에는 예언이나 초자연적인 음성을 지나서, 세미한 음성 등으로 주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급 단계에서도 상당히 높은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귀에 들리는 것은 아닌데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을 곧바로 듣게 된다. 그럼 그 말씀대로 실천할 수밖에 없다. 

 

4.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3가지 경로 중 세 번째 경로(고급 단계)는 어떤 것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 번째 경로는 주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고 나도 그 말씀이 내 영의 귀에 들리는 것이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이때는 대부분 예수님을 보게 되며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대부분 대화 나누듯이 교제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직접 영의 눈에 보이면서,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영의 귀에 들리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영안이 열렸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무당이 귀신과 대화하듯이, 이 단계에서는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고급 단계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단계에 들어가 있는 몇몇의 사람들이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느냐 못 듣느냐의 관건은 내가 주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한 마디로 주님과의 친밀도가 음성 듣기의 관건인 것이다. 내가 주님과 친밀하지 않아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내 안이 아니라 내 바깥의 외부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나를 간절히 찾으시는 주님의 음성이 멀리 있지만 아스라이 내게 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도 아무나 듣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자가 듣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때는 고난이라는 환경을 통해서, 설교 말씀을 통해서, 성경을 읽을 때에, 신앙이 좋은 그리스도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내게 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식이 죽어 나가도 자기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냥 사는 사람도 더러 있다. 안타까울 뿐이다. 고로 지금 내게 불어닥친 고난의 환경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라. 물론 거기에는 사탄의 작전과 공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친밀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2023년 08월 01일(화)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음성듣기(1)] 나도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10:1~6,26~27)_2023-07-31(월)

https://youtu.be/Jx3MT7N7-4Q [또는 https://tv.naver.com/v/40837280]

1.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정상이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목자로 표현하시고(시편23편, 시103:3), 신약에 들어와서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양떼들은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요10:27 내[게 속한] 양[들]은 내 음성(소리)을 들으며 나는 [역시] 그[것]들을 알며 그[것]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서 자기 자신이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요10:26). 즉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람 속에 성령이 거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감각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다. 양이 목자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사실 양에게 목자의 음성은 들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목자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고 열심히 자기 일만 하고 있어도 역시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3. 사람이 목자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양은 응당 목자의 음성(소리)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된 데에는 어떤 요인들이 있었을까?

  첫째, 오해 때문이다. 목자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오는 음성(목소리)으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음성으로 말씀하지 않는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셋째, 분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듣는 것이 내 생각인지, 사탄의 음성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예 하나님의 음성듣는 것을 포기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넷째, 방해하는 귀신 때문이다. 귀신들이 너무 많아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방해하고 있어서 듣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다섯째, 훈련을 받지 못해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의 음성은 과연 우리에게 어떻게 들리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하나님의 음성을 꼭 목소리(음성)로만 들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요10:27에 나오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라는 말씀에서, '음성'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포네'이다. '포네'라는 단어는 목소리(voice)가 아니라 소리(sound)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어떤 소리의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 꼭 사람의 음성(목소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목소리로만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양떼를 불러 모으는 목자의 소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목자가 양떼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거나, 우리에 있는 양떼를 불러낼 때에는 어떻게 하는지 아는가? 단지 목소리로만 부르는가? 아니다. 양들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다른 집의 양떼들과 섞여 있을 때에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자기의 양떼들을 불러낸다. 그와 같은 방법으로는 휘파람을 불거나 피리를 불기도 한다. 그리고 막대기 부딪히는 소리와 돌 부딪히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정 안될 때에는 개를 보내서 양떼를 몰아오게 한다. 그렇다. 목자가 양떼를 부르거나 모을 때에는 단지 목자의 음성으로만 양떼를 인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단지 귀로 듣는 목소리로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하나의 민족을 부르실 때에는 그들을 칼(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치신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아,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는 주의 음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의 경우에는 가난과 질병과 자식의 죽음 등으로 부르신다. 즉 환경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마음에 부딪히게 함으로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주일에 설교 말씀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기도 하신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기도하고 있을 때에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기도 하시는 것이다. 또 어떤 경우는 꿈과 환상으로 말씀하시고, 예언과 방언 통역으로도 말씀하기도 하신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경우 모세나 사무엘과 같은 경우에는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시기도 하셨다. 

 

5.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시는가?

 어떤 교회나 지도자들은 성경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이후 더이상 꿈이나 환상 그리고 예언은 사라졌다고 가르친다. 물론 방언도 사라졌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 말씀을 잘못 전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순절 날 성령강림 때에 방언을 듣고 몰려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베드로가 어떻게 설교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기야말로 마지막 때로서 하나님께서 말세에는 남자와 여자에 상관없이, 주인이든 종이든 상관없이, 성령을 모든 사람들 위에 부어 주실 터인데, 그러면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라고 한 것이 바로 지금 성취되었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꿈이나 환상 그리고 예언이 더 많아지고 강해질 것이라고 한 것이다(행1:16~2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 말씀으로 다 말씀하셨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는다고 가르쳐서는 아니 된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성경 말씀으로 그리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귀한 설교 말씀으로도 말씀하신다. 하지만 그것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는 통로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관한 오해와 잘못된 가르침 등은 지금 이 시간부터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23년 07월 31일(월)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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