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왜 급히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야 했는가? 그리고 편지의 첫시작부터 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해야 했으며,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 강한 저주를 퍼부어야만 했던 것일까? 우리는 성경에서 사도의 큰 2가지 물줄기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할례자의 사도와 이방인의 사도라는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 사이에 있었던 만남을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그것은 바울이 받았고 전했던 복음이 베드로와는 조금 다른 차원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바울, 그는 대체 어떤 사도였는가?

2020-08-05(수) 수요기도회
제목: 갈라디아서강해(02) 참된 복음과 바울의 사도직의 신적 기원(2)(갈1:1~24)
https://youtu.be/ENc1-iRuHOc [혹은 https://tv.naver.com/v/15139556 ]

 

1. 들어가며

  바울은 왜 갈라디아서를 써서 보내야 했을까? 갈라디아서는 누구에게 보낸 서신인가? 왜 바울은 다른 그 어떤 책보다도 강하게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을 책망해야 했던 것인가? 갈라디아서가 언제 쓰였는지에 관하여는 2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남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분은 비교적 바울의 전도사역 초기 때(40년대후반)에 이 편지를 써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북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분은 이 책이 50년대 중후반에 썼다고 한다. 만약 남갈라디아설이 맞다면 이 책은 최초의 바울서신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 어떤 서신들보다도 강한 책망이 나오며, 고린도후서에 더불어 자신의 사도권에 대하여 매우 강한 어조로 변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오늘은 지난주 갈라디아서의 배경설명에 이어서, 갈라디아서 1장의 내용을 살펴볼까 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갈라디아서 1장의 말씀을 통하여, 사도바울이 어떻게 해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지에 관한 사도의 신적 기원을 살펴볼 것이며, 아울러 그가 전했던 복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인한 것이었음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진정 붙들어야 할 참된 믿음이란 대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2. 바울은 갈라디아서는 왜 기록해야만 했는가?

  갈라디아서 교회들은 대체적으로 바울이 1차전도여행을 하면서 세웠던 교회들로 추정이 된다. 그때 세워진 교회로서는 비시디아 안디옥교회, 이고니온교회, 루스드라교회, 더베 교회 등이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왜 갈라디아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써 보내야만 했을까? 그것은 갈1:6~7에 나와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름받아 은혜를 입었던 갈라디아교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속히 떠나서 다른 복음을 좇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칭의를 얻고,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버리고, 예수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칭의도 얻고 성령의 내주도 받고 중생이 일어난다는 거짓 형제들(교사들)의 가르침을 듣고서 그만 급격히 변질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복음을 문제삼았던 율법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에 관해서 함께 문제를 삼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어린양의 12사도들로부터 결코 인준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근본과 시작이 확인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던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짓교사들은 자기들은 근본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린양의 12사도들을 통하여 제대로 된 복음을 듣고 배웠던 자라고 했다. 또한 거짓교사들은 바울의 사도직의 직분이 베드로와 같은 어린양의 사도들로부터 연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로부터 배우거나 받은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바울이 전한 복음도 믿을 수 없으며, 그의 사도직도 믿을 수 없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급격히 그들에게 미혹받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바울은 이내 자신의 사도직의 기원을 밝히고, 자신이 전한 복음이 어디에서 기원하고 있는지도 밝혀주면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도직과 그가 전파했던 복음말씀이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도들로부터 인준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잘 전달하고, 믿음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더 부합하는 것임을 드러내고자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3. 갈라디아서의 중심주제는 무엇인가?

  갈라디아서의 중심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참된 복음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이 의롭다함도 받을 수 있고(갈2:16), 성령도 받으며(갈3:2),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갈3:26)"는 것이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추가하거나 빼거나 하여서 바울이 전했던 복음을 변질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복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어떠했는가? 바울이 전했던 복음을 떠나 금새 다른 복음을 좇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다른"이라는 용어는 "같은 종류의 다른, 또 하나의 다른"의 뜻으로 "알로스"(=another)가 아니라, "종류가 전혀 다른"이라는 뜻의 "헤테로스"(diffrent)가 쓰였다. 고로, 우리는 율법주의은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은 믿음을 통해서만 받는다는 것을 넘어서, 거기에다가 다른 무엇인가를 추가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그것이 바로 "다른 복음"이라는 것이다. 고로 예수님도 믿고 율법도 준수해야 한다는 율법주의적 기독교의 가르침은 바울에게는 "다른(헤테로스) 복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할례도 받아야 하고 절기같은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가르침은 "다른 복음"이라고 실날하게 비판한다. 심지어 그것을 전하는 자는 "저주가 있으라"고까지 비판하였다(갈1:7~8). 

  그렇다면, 왜 갈라디아 성도들은 다른 복음을 좇아가게 되었는가? 그것은 좀 전에도 살펴보았지만, 다른 복음을 가르치며 전해준 자들에 의하여 갈라디아성도들이 미혹을 받앟기 때문이다.  곧 유대율법주의적인 교사들의 미혹으로 인하여 갈라디아성도들이 넘어졌기 때문이다. 그럼, 율법주의적 교사들은 대체 어떤 자들이었는가? 그들은 오직 자기들만이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온 정통의 복음전파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유대의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자기들이 전해주는 복음만이 오리지널 참된 복음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근본도 없고 족보도 없는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갈라디아 성도들은 그들의 말에 그만 깜빡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정말] 이상하게 여기노라(갈1:6)" 

 

4. 바울은 어떻게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였는가?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무너지게 되면 그동안 자신이 수고했던 모든 선교의 열매들이 다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러자 그는 먼저 자신이 어떻게 사도직을 맡아서 그 직분을 수행하고 있는지 단호하게 변호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일컬어 우리는 "바울의 사도직의 변증"이라고 부른다.

  첫째,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사명을 부여받은 사도가 바로 자신이라고 소개한다(갈1:1,15~16).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쓸 때에 서두에 "사람들로부터도 아니요, 사람을 통하여서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던 하나님 아버지를 통하여 사도된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만큼 그의 사도성이 복음전파에 있어서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어린양의 12사도들)로부터 위임을 받아서 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즉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안수를 받아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되었다고 소개한다. 사실 바울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가 에 대해서는 우리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하여, 그가 했던 2차례의 간증을 통해서 어느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부르심받았던 사건은 사도행전 9장에 나온다. 이어 그는 2번의 간증을 한다. 그것은 사도행전 22장과 26장에 등장한다. 사실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이다.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자신의 사명을 듣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3가지 용도로 사용하시려고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택한 그릇이 되었다는 것이다(행9:15). 그러므로 바울은 어린양의 사도들의 대표인 베드로가 할례자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면,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한다(갈2:7~9).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와는 사역의 대상과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 이어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핵심 멤버였던 사도 베드로와 야고보 장로로부터 자신이 공적으로 사도라는 것을 인증받았다고 소개한다(갈1:17~24). 바울이 다메섹도상에서 직접 주님의 방문을 받아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3일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에 임한다. 그러자 다메섹에 경건한 자였던 아나니아가 방문하는 환상을 본 후, 곧이어 아나니아의 방문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안수받을 때에 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겨진다. 영안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 즉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행22:16). 그리고 다메섹 회당에 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신 것을 증언하여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계속 다메섹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아라비아로 간다(갈1:17). 그리고 약 3년간 거기에 머물러지낸다. 그리고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3년간 무엇을 했을까? 추측해 보건데, 첫째, 자신이 그동안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고 멸하고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자기 조상들의 전통을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삶을 청산하고 회개하는 데에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당시 최고의 랍비였던 가말리엘의 수하에서 배웠던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나오는 메시야에 관한 말씀을 예수님에게 적용하는 공부를 새롭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단지 메시야(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부활승천하신 이후에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도 철저히 깨닫고 공부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으로 갔다. 목적은 게바(베드로의 아람어식 이름)을 문안하기 위함이다(갈1:18). 아마도 그것은 자신도 이제 주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받았음을 보고하러 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때 그는 예루살렘 15일동안 머물었는데, 그때 바울은 사도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와 평신도들의 대표였던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장로만을 만나 교제하고는 수리아를 거쳐 길리기아 지방 곧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고향 길리기아의 다소에 있을 때에 안디옥교회의 지도자였던 바나바의 요청으로 안디옥에 가서 사역을 시작한다(행11:25~26). 그렇다면, 왜 바울은 그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후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던 것인가? 그리고 3년 뒤에야 예루살렘에 가긴 갔는데 거기에서 단지 15일동안만 머물렀던 것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바울이 사도로서 부름받은 목적과 방향이 베드로와는 다르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굳이 가서 인준을 받고 사역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대로 보고차원으로 간 것이다. 바울 자신도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인데, 이미 할례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로 쓰임받고 있는 베드로를 만나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둘째, 예루살렘에 가서도 짧은 기간만 머물러 있다가 왔다는 것을 통하여, 그가 전하는 복음은 베드로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는 갈라디아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전해졌던 복음은 사람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이다"(갈1:11~12). 그렇다. 바울이 갈라디아성도들에게 전했던 복음은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받은 것을 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도 부활승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부름을 받아 사도로 파송을 받았기 때문에 굳이 베드로에게 가서 인준을 받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복음사역자로서 바울은 베드로에게 찾아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고 사도로 일하게 하시는지를 베드로에게 설명해 줄 필요는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베드로가 바울을 물리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 이를 통하여 바울의 복음사역도 베드로가 인정해줄 만큼 귀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후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도 정말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전에는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그가 이제는 반대가 되어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갈1:22~24).

 

5. 바울이 받아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전해주었던 복음은 대체 어떤 복음이었는가?

  그렇다면,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의 성도들에게 전해주었던 복음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복음"(갈1:7)이었다.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도달하는 복음 곧 인류에게 미치는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고, 성령도 받고, 하나님의 아들도 된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계시 중에 그 어떤 것도 어느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계시를 통하여 알게 된 것이었다(갈1:12). 그러니 그가 받은 계시는 실로 놀라운 것이라고 아니 말할 수가 없다. 특히 그가 교회와 개인에게 쓴 편지 중에서 오늘날까지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13권이나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받은 계시가 실로 성령의 계시이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였음을 강하게 증명해준다. 특별히 우리는 사도바울의 다른 여러 서신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며 교회는 그의 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의 비밀이 곧 교회라는 사실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의 경우처럼, 율법과 복음의 차이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울이 비로소 성경해석에 사용했던 예표론적 성경해석 방법이야말로 오늘날까지 가장 확실하고도 안전한 성경해석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6. 나오며

  바울은 인류 역사 가운데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는 어느날 하나님께서 보시고 쓸만해서 쓰셨던 그러한 인물이 아니었다. 는 이미 만세전부터 그를 사용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준비한 특별한 그릇이었다(행9:1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태로부터 그를 따로 구별하셨다(갈1:15). 그리고 때가 되자 은혜를 그를 부르셨다. 물론 그가 그렇게 쓰임받기까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순종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또한 그를 위한 기도도 필요했다. 하지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그는 캄캄한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밝은 빛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온전하게 볼 수 있게 된다. 그 중에도 율법도 마찬가지다. 그때까지 사실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방법이라고 여겨졌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때 바울은 성령의 계시를 통하여 율법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 그것을 전해주었다. 그러니 그가 약 10년 정도 복음을 전파하면서 써보냈던 편지가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의 경전이 될 수 있었다. 사도바울이야말로 주 예수님의 숨겨둔 진정한 사도였으며, 그가 받은 계시야말로 예수님이 누구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가장 완벽하게 설명하는 놀라운 계시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전파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은 결코 복음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가 전한 복음을 우리도 전해주어야 한다. 

 

2020년 08월 05일(수)

정병진목사

바울이 개척했던 "갈라디아 교회", 그러나 갈라디아교회가 사도행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갈라디아교회는 어느 교회를 지칭하는 말인가? 그리고 바울은 왜 이 교회에게 편지를 써 보내야만 했는가? 이신칭의에 대한 "기독교의 참된 복음"과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불리는 갈라디아서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는가? 오늘은 그 첫째 시간으로서 갈라디아서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만 알아도 갈라디아서가 눈에 쏘옥 들어올 것이다.

2020-07-29(수) 수요기도회
제목: 갈라디아서강해(01) 참된 복음과 바울의 사도직의 신적 기원( 01)(갈1:1~24 )
https://youtu.be/Yk_05pJyqCc [혹은 https://tv.naver.com/v/15033594 ]

 

 

 

1. 들어가며

  갈라디아서는 누가 누구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록한 서신인가?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그의 동료형제들과 함께 자신이 개척한 바 있는 갈라디아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 편지를 써 보내야 했던 것일까? 그것만 제대로 파악하고 읽어도 갈라디아서가 한 눈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갈라디아서 강해 첫 시간으로서 갈라디아서의 배경을 살펴볼 것인데, 갈라디아서의 발신자와 수신자과 저술목적 그리고 갈라디아서는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갈라디아서는 누가 누구에게 언제 보낸 편지인가?

  갈라디아서는 사도바울이 쓴 서신서 중에 하나다. 사도바울이 함께 있는 형제들과 함께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써 보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교회들은 대체 어느 어느 교회를 지칭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사도행전을 한 번쯤은 읽어 보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사도바울이 무려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했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교회들은 1차에서 2차, 3차 전도여행 가운데 그 이름이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거기에는 "갈라디아 교회"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갈라디아"라는 명칭이 로마의 행정구역상 상당히 큰 지역을 포함하는 명칭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갈라디아"라는 말은 고울 족들이 사는 지방들을 일컫는 명칭으로서, 오늘날 터키의 중부지역 가운데 북부와 남부에 걸쳐져 있는 상당히 큰 지역을 가리킨다(지도 참조).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지역 중에서 주로 어디를 다녀간 것일까? 그것은 주로 남부에 위치해 있는 갈라디아지역들이다(행13:13~14:28).

  다시 말해, 바울이 교회를 세웠던 남부 갈라디아는 밤빌리아 버가를 지나 위치해 있는 윗지방들로써, 거기에는 비시디아와 루가오니아와 부르기아 그리고 이사우리아가 위치해 있다. 이 지역에는 비시디아의 안디옥과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 같은 도시가 위치해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편지를 써보낸 갈라디아 교회들은 바로 이 지역에 위치한 교회들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렇다. 바울은 1차전도여행 때에 남부 갈라디아의 도시들을 다니며 전도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서 바울은 갈4장에서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이 갈라디아 교회들이었음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갈4:13~15). "내가 처음에(1차전도여행 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너희가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너희는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갈4:13~15)" 

  고로 이 편지는 적어도 바울이 1차전도 여행을 마친 후에 기록하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보통 학자들은 바울이 3차전도여행 중에 마케도냐에서 A.D.55~56년경에 기록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20200729_갈라디아지역(흑백).jpg

 

20200729_갈라디아지역(영어).jpg

 

3. 갈라디아서는 무슨 목적으로 보낸 편지인가?

  그렇다면, 바울은 왜 갈라디아에 위치한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써보내야 했던 것일까? 만약 우리가 그 이유와 목적을 먼저 파악하고 갈라디아서를 본다면, 갈라디아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들이 갈라디아서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갈라디아서의 주제를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말로 요약해보면, 아마도 "다른 복음은 없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주장은 상당히 일리있는 주장이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쓴 것은 다른 복음에 미혹받아 흔들리고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이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자들이 갈라디아교회를 소란하게 하고 미혹하여,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부터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아가게 유도한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구원받으려면 할례도 받고 절기를 지키며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거짓 형제들 때문이었다(갈2:3~4). 이들은 예수님을 믿어 이미 자유를 누리고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갈라디아 성도들로부터 자유를 빼앗아서 자기들의 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자기들은 예루살렘에 온 기독교의 원조라고 강조하면서, 바울의 사도직은 정통이 아니며 바울이 전한 복음도 온전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었더라도 반드시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변질케하고 있는 이들을 일컬어 사도바울은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갈3:10)", 혹은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교으로 돌아가도록 종용하는 자들(갈4:9)"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무릇 육체에 모양을 내려하는 자들로서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갈5:11~12)이자,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갈4:10)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이들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었더라도 할례를 받아야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갈4:21)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되는 것이지 결코 율법을 지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하였다(갈2: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한다면 그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인 것을 알라고 하였으며(갈3:11~13),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라 맞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고까지 말하였다(갈2:21).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편지를 통하여 사람을 의롭게 만들어주며, 율법의 저주에 벗어나게 하고,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주려고 이 편지를 쓴 것이다. 

 

4. 갈라디아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갈라디아서 6장의 내용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우선 갈라디아서는 편지의 형식을 빌어 쓴 것이기에, 인삿말(1:1~5)과 끝맺는 말(6:11~18)이 앞 뒤에 배치되어 있고, 핵심내용은 그 중간(1:6~6:10)에 위치시켜 놓았다. 그리고 또 다시 핵심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전반부(1:6~4장)에 교리부분을 기록하고 있고, 후반부(5장~6:10)에 실천편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전반부(1:6~4장)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1:6~2:21)에서는 바울의 사도직 변호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고, 뒷부분(3~4장)은 이신득의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이 시간은 갈라디아서의 전반적인 이해를 위한 배경을 살펴보고 있으며, 맨 첫부분인 인삿말(1:1~5)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5. 바울은 인삿말에서 무엇을 말했는가?

  바울은 인삿말(1:1~5)에서 다른 서신들처럼 발신자와 수신자를 언급하였고 수신자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독특한 것이 앞 부분과 뒷부분에 붙어 있다. 먼저, 인삿말 앞부분에는 그가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갈1:1). 한 마디로 그는 자신 사도직을 변호하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주의적인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무너뜨리고 시도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되어서 사도직이 되었는지를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 설명하면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갈1:11~17에서는, 자신이 갈라디아 지역의 사람들에게 전했던 복음도 역시, 사도들로부터 전수받은 것도 아니며 배운 것도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마암이 받아서 전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바울은 인삿말 끝부분(갈1:4~5)에서 다시 그가 전했던 복음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송영 부분을 집어넣는다. 그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여 찬양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갈1:4-5)"

 

6. 나오며

  바울은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몇 년이 지나서 비로소 부름을 받았기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고전15:8). 또한 그는 교회를 잔혹하여 핍박하였기에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소개하였다(딤전1:15). 하지만 우리는 그를 가장 늦은 자 내지는 못난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아주 특별한 주의 종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 이 땅에 살았던 자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을까? 거의 없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파송한 보혜사 성령을 만나고 체험할 뿐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울이 전했던 복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거나 어린양의 12사도들에게 배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직접 계시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복음은 최종적인 형태를 띠고 있고 가장 완벽한 복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제 오늘부터 갈라디아서 강해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전개될 갈라디아서강해를 통해 복음의 진수와 그것으로 나오는 진정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2020년 07월 29일(수)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