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1(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지금 이 시대에 전해주어야 할 성탄의 기쁜 소식은?(마1:18~2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fsnvA-24WQo  [혹은 https://tv.naver.com/v/31817830 ]

1. 들어가며

  과거에는 성탄절이 되면 "성탄 축하의 밤"이라고 하는 행사를 대부분 가졌다. 교회에서 칸타타를 비롯하여 연극, 선물 교환, 새벽송 등의 여러가지 순서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때 가장 많이 불렀던 찬송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찬109장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찬송을 보면, 후렴 부분이 "왕이 나셨도다 왕이 나셨도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새찬송가로 바뀌면서 "구주 나셨도다 구주 나셨도다"라고 전환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성탄은 왕이 나신 것인가 구주가 나신 것인가? 마태복음을 읽어 보면 왕이 나셨다는 관점으로 쓰여 있다(마2:2). 그런데 누가복음을 읽어 보면 구주가 나셨다고 전한다(눅2:11). 그런데 오늘 마태복음 1:18~23에 따르면, 성탄의 밤에 누가 나셨는지에 관하여 3가지로 말씀하고 있음을 본다. 첫째는 그리스도요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셋째는 하나님 자신이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의 탄생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들이 전해야 할 성탄의 기쁜 소식은 누구의 탄생에 관한 기사인가? 그래서 오늘은 사도들의 복음 전파 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용어들의 차이점을 한번 살펴보고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전해야 할 성탄의 기쁜 소식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2.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왜 소동하였을까?

  예수께서 탄생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온다. 큰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이 탄생한 것을 알아차린 박사들이 아기를 경배하러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근방에서 별이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그들은 헤롯왕궁으로 찾아가서 아기 예수의 행방을 물어본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그러자 헤롯대왕은 깜짝 놀란다. 자기의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어야 하는데, 자신의 아들이 아닌 다른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비수를 숨긴 헤롯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나겠는지 묻는다. 동방박사들의 질문은 동시에 온 예루살렘 사람들을 소동케 한다. 왜냐하면 유대인들도 수백 년 동안 메시야의 탄생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왕으로 오신다는 사상이 당시에 팽배해 있었음을 증명해 준다. 다시 말해, 헤롯대왕을 비롯하여 온 유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왕으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로 예수께서 탄생할 즈음에 유대인들은 왕이신 그리스도 곧 다윗의 후손으로서 오실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초대 교회와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해 주었는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시자 성령을 받은 성도들과 사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때 그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그분이 사실 그리스도였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오셨는데 그것을 몰라보았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전에 있을 때나 집에 있을 때나 언제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였다(행2:36, 5:42).

  그렇다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선택을 받아서 복음을 전파했던 사도 바울은 무엇을 전했는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는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때 유대인들에게 전했던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가? 그것은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러한 증언함은 데살로니가 회당에서나 고린도 회당에서나 다 마찬가지였다(행17:1~3, 18:5). 

 

4. 왜 초대 교회와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하지 않고 그리스도라고 전했을까?

  그렇다면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바울은 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하지 않고, '그리스도'라고 전한 것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던 약속된 메시야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약 600년 이상 메시야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곧 왕이 오실 때에는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는 장차 보내주실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베들레헴에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삼하7:13~14, 미5:2). 둘째, 만약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하면 신성 모독죄에 걸려들어 돌에 맞아 죽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에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재판에 넘겨 죽게 한 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과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요19:7). 그런데 만약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했더라면, 그들은 그러한 행위를 신성 모독죄로 알고 베드로와 바울을 돌로 쳐죽였을 것이다(레24:16).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결코 그들에게 하나님은 두 분이 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신6:4, 출20:3, 사43:10).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항상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했던 것이다. 

 

5. 바울과 사도 요한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을 과연 누구라고 전해 주었을까?

  복음 전파 초기 단계에서 사도들은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그때 전해 준 복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점차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해지게 된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어떻게 전해 주었던 것일까?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증언했을까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한 것일까? 성경 기록을 살펴보니,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줄 때 그들에게 소개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탄생했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그리 기쁜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윗과 같은 왕적인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아들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구원하신다고 전해 준 것이다. 사실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소개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는 것이 훨씬 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전도여행 가운데 2차 전도여행을 보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줄 때에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살전1:9~10) 그리고 고린도에서(고후1:19) 전부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A.D.55년경에 쓴 로마서에서도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롬1:4). 왜냐하면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야 훨씬 더 잘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시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다 구원하신다고 전했을 때에 이방인들이 훨씬 더 복음을 잘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6. 오늘의 시대에는 과연 예수님은 누구라고 전해 주어야 하는가?

  문제는 지금 이 시대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전해 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을 전해 주어야 하는가? 사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확실히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전했을 때에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줄 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인류를 구원하셨다고 전할 때에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운 이 마지막 시대에는 어떻게 예수님을 전해 주어야 하는가? 그것은 모든 민족이 예수님을 다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전한다면 유대인들은 끝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 결코 두 분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는 이방인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해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을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임마누엘 하나님이라고 전해 주는 것이다(마1:23). 왜냐하면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로 오셨다고 하면, 유대인들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이방인에게만 복음을 전해줘야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만 전하면 유대인들은 영영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고로 우리는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전하는 것이다. 

 

7. 가장 늦게 기록된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과연 누구라고 증언하였는가?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된 성경이 있다면 그것은 사도 요한이 쓴 성경책들이다. 복음서로서는 요한복음이 있고, 서신서로는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가 있다. 그리고 계시록으로는 요한계시록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A.D.90~95년 사이에 쓰여진 책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책들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묘사되어 있을까? 놀라지 말라. 요한의 문서들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께서 스스로 계신 한 분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도 예수님은 자신을 "스스로 계신 자"(요8:24)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도 예수께서 자신을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라고 계시를 하셨다는 말이다(출3:14). 다만 그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그분은 원래 홀로 스스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아예 참 하나님이자 영생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한다(요일5:20). 무엇보다 사도 요한이 A.D.95년경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하늘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본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지 않았다.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셨으며, 거기에 앉아서 심판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셨다(계22:13). 그런데 구약성경 이사야서를 보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분은 여호와이시다(사41:4, 44:6, 48:12). 다시 말해,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와 마지막'이라고 소개하시는 분은 주 하나님이셨던 것이다(계1:8).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홀로 한 분이신 주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 사도 바울은 그의 복음 전파 후기에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였는가?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책에도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A.D.55년경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써 보낸 편지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을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롬9:5). 그리고 그가 3차 전도여행 때에는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독자로 삼아주셨으니 조심하여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되,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잘 돌보라고 하였다(행20:28). 그런데 하나님은 사실 피를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시다. 피를 가지신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피흘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사도 바울이 죽기 직전에 썼던 디모데전서에 따르면, 바울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딤전3:16). 그렇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자신의 서신서 곳곳에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모든 인류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9. 나오며

  지금은 마지막 때다. 이제는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아야 할 마지막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때 가장 예수님을 안 믿는 민족은 누구인가? 그중에는 유대인들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 이렇게 두 분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대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아들'로 전할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전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유대인들도 한 분이신 하나님 곧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냈다고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직접 사람이 되셨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가 있다. 고로 성탄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낸 것이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라고 할 때 더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20~30년 전만 해도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전하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거의 다 찼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전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기쁜 소식이 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게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마지막 사명이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11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이름과 예언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오심인가 아들의 오심인가?(마1:18~25)

https://youtu.be/d-wBf-3tXoE

 


1. 예수님의 탄생은 아들의 탄생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오심인가요?

 

2.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을 아들의 탄생이자 하나님의 오심이라고 둘 다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1:21)"는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아들의 탄생임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하지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장막을 치시매)(요1:14)"라는 말씀과 "그(하나님)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딤전3:16)"라는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오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수십차례에 걸쳐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서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될 때에 처음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각(계획) 속에 있는 아들이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 성육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다고만 이야기할 뿐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고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슨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까?

 

3.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고는 참 많이 이야기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는 것은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한 분이 아니라 세 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신경만 보더라도 이러한 왜곡은 심각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는데(침례교만 제외하고), 사도신경에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선언도 없으며,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선언도 없습니다. 사도신경에는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더욱 더 안타까운 사실은 [새]사도신경에는 예수께서 승천하시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고백(물론 상징적인 표현임)"을 바꾸어서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고침으로서, 하늘에는 아버지 하나님 보좌가 있고 그의 오른편에 아들의 보좌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성경에는 단 한 번도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혹은 "아버지 하나님 보좌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아버지의 보좌에는 아들이 앉으셨습니다(계3:21, 7:15~17). 곧 하나님의 보좌에 예수님이 앉으신 것입니다(계20:5~6,22:13). 그러니 요한계시록 끝에가면 하나님의 보좌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단수)"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계22:1,3). 요한계시록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는 곧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주의 천사가 일러준 예수님의 탄생소식은 아들의 탄생소식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오심의 소식인가요?

 

4. 주의 천사가 나타나 요셉의 꿈을 통해 알려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태어날 아기에 관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예수"라는 이름이었고(마1:21) 또 하나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마1:23). 먼저, 주의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날 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명명할 것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1:21에 나와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헬라어로 직역해보게 되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장차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자기의 백성"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곧 태어나실 분은 자기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자로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분은 누구였습니까?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셨습니다. 출애굽 무렵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보낼 때에 얼마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러므로 마1:21에 나오는 "그분 자신"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대명사인 것입니다. 곧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시려고 아들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고로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자기백성을 구원하러 오셨다"인 것입니다. 사실 "예수"라는 글자는 구약시대에는 "여호수아" 내지는 "예수아"라는 이름인데, 그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내지는 "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예언에는 그분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마1:23, 사7:14)

 

5. 구약시대 이사야선지자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을 장차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분명히 예언했습니다(사7:14). 장차 태어날 아들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어로 "임마누엘"이라는 글자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임=함께(with)", "마누=우리와(us)", "엘=하나님(God)"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일러준 "예수"라는 그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들로 태어나긴 했지만 그분은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인 그분의 백성과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말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라는 표현과 더불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들로 오셨다"라는 표현도 동시에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아들이자 아기로 오실 분이 곧 기묘자인 모사(보혜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분명하게 예언했던 것입니다(사9:6). 우리를 위해 기꺼이 낮고 천한 피조물로 오신 하나님을 이 시간 높이 높이 찬양드립니다.

 

2018년 12월 24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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