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104) 사명자와 독사(행28:1~15)_2023-02-02(목)

https://youtu.be/uyApafndIHw [또는 https://tv.naver.com/v/32826023]

 

1.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고 있을 때에 바울을 죽이려고 공격했던 두 가지 세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호송되고 있었을 때 바울은 두 번의 위기를 만난다. 둘 다 생명과 직결되는 것들이었다. 하나는 바다에서 유라굴로라고 하는 큰 광풍을 만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 일행은 배 안에서 해와 별도 보지 못한 채 14일 동안 표류하게 된다. 그렇지만 바울은 죽지 않고 멜리데 섬에 도착한다. 또 하나는 멜리데 섬에서 독사에게 물린 것이다. 육지에 도착했는데 젖은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었는데, 나무를 불속에 넣다가 뜨거운 기운에 독사가 나와서 그의 손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바울은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 그런데 이 둘은 겉으로는 바다에서 폭풍을 만난 것이며 육지에서 짐승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공통점은 둘 다 해로운 것으로서 생명에 위협을 주는 것들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을 영의 눈으로 보면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둘 다 영물의 공격으로서, 앞의 것은 귀신들의 공격이라고 할 수 있고, 뒤의 것은 뱀의 공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풍랑을 일으켜 배를 파손시키거나 전복시키려는 바람의 배후에 귀신들이 있었기 때문이요, 독사의 배후에 악한 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2. 바울이 당한 일들을 가리켜 왜 영적으로 공격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바울이 '바다'(지중해)와 '육지'(멜리데 섬)에서 공격당한 것은 사실 영적인 공격들이었다. 그 이유는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도록 악한 영들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악한 영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복음 전파 사명자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귀신으로부터 공격받는 것이며 또 하나는 뱀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것이다. 여기서 '귀신'이란 사람의 몸 밖에 있는 악한 영들을 가리키며, '뱀'은 사람의 몸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가리킨다. 우리 성도들은 이 둘의 공격에 잘 대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자들을 매우 싫어해서 때로는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원래 하늘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들이었으나 범죄하여 하늘에서 쫓겨남으로 귀신들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혹은 뱀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결국 천국에 절대 못 들어가게 될 것인데, 사람들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자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다. 

 

3. 성경에서 뱀과 독사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성경에 등장하는 뱀과 독사는 파충류로서 존재하는 뱀과 독사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물론 파충류로서 뱀과 독사도 있다. 이것들 중에서 독사(헬, 에키드나)는 특별히 독이 있는 뱀(헬, 오피스)을 가리킨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보면, 사람 속에 있는 영물로서 뱀과 독사를 가리킬 때에도 역시 '뱀'과 '독사'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세례 요한(마3:7)과 예수님(마23:33, 눅10:19) 그리고 사도 요한(계12:9)도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 속에 실제로 영물들인 뱀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마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계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4. 바울이 독사에 물리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바울이 불속에 마른 나무를 집어넣다가 독사에게 물린 것은 과연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기에 멜리데 섬 주민들은 그가 바다에서는 구원을 받았으나 육지에 와서는 독사에 물렸으니 분명 죄가 많은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행28:4). 하지만 이것은 다음과 같은 영적인 의미가 있다. 첫째, 영물로서 독사가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복음 전파 사역에 힘쓰고 있는 사명자를 결코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영물인 뱀들(독사 포함)일지라도 죄 없는 사람을 공격할 수는 없다. 특히 하나님의 복음 전파 사역에 힘쓰는 사명자를 건드릴 수 없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사명자를 건드린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가 아무런 해를 입지 못하도록 다 막아 주시는 것이다. 둘째, 눈에 보이는 현상을 통해 사명자가 뱀에 물렸어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복음 전파의 귀한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되어서 멜리데 섬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그것은 사도 바울의 전도 때문이었다. 그러면 멜리데 섬은 어떻게 되어서 복음 전파가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바울이 독사에 물렸으나 죽지 않음으로 인하여 보블리오라는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초대를 받게 되고, 그 집에 들어가 그 사람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안수하여 고침으로 그 병이 나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섬에 있는 다른 환자들도 와서 병고침을 받고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자 그 섬은 순식간에 예수믿는 사람들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 섬은 여전히 기독교 국가(몰타 공화국)로 남아 있는 것이다. 

 

5. 사명자가 받는 축복은 무엇인가?

  이상의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는 복음 전파 사명자가 받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명자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복음 전파 사명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광풍 속에서도 지켜 주셨고, 독사의 독으로부터도 지켜 주셨듯이 우리와 같은 사명자들도 지켜 주실 것이다. 우리는 바울에게 일어난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2023년 02월 02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102)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행25:13~26:32)_2023-01-31(화)

https://youtu.be/mWHutGPFj6k [또는 https://tv.naver.com/v/32764123]

 

 

1. 복음을 모르는 두 종류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복음 자체를 아예 모르는 불신자들이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로마 총독으로서 유대에 파견된 베스도와 같은 경우다. 또 하나는 복음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지만 복음을 정확히 모르는 자들이 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그립바 왕이나 그의 여동생 버니게가 여기에 속한다. 왜냐하면 아그립바 왕이나 버니게는 헤롯의 증손으로서 아그립바1세의 아들 딸들이었는데, 이들은 다 하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원자인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복음을 전혀 모르거나 복음을 알되 정확히 알지 못하는 자는 둘 다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 제대로 된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2. 왜 바울은 베스도와 아그립바와 버니게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게 되었는가?

  유대 총독이었던 벨렉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이제 막 집무를 시작했을 때에 문안 인사차 아그립바 왕(아그립바2세)과 버니게가 가이사랴에 온다. 그러자 베스도 총독은 아그립바2세와 그의 동생 버니게에게 바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자문을 요청한다(행25:13~27). 이에 아그립바도 승낙하자 바울의 심문을 위한 청문회가 열리게 된다. 그러자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게 되고(행26:1~13), 청문회 참석자들에게도 신앙을 권고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다 거절한다. 하지만 청문회를 통해서도 그의 죄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청문회를 마치자 한사코 다들 그는 무죄하다고 말한다(행26:14~32)

 

3.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 자리였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및 거기에 배석한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한다. 그것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해 약속된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며, 바로 그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행26:16~18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고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눈이 열려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적인 세계를 볼 줄 아는 영의 눈이 열려지는 것이 그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이다. 

 

4.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영안)이 열리게 되면, 받을 수 있는 4가지 축복은 무엇인가?

  우리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영안이 열리게 되는 자가 받게 될 축복이 4가지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즉 첫째로, 어둠에서 빛으로 돌이키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둠'이란 거짓과 사망을 가리키고, '빛'은 진리와 생명을 가리킨다. 둘째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된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사람은 영의 눈이 감겨지기 시작하였다. 즉 하나님을 보는 눈이 감기게 되고 사탄이 주는 보이는 세계에 대한 눈만 더욱 열리게 된 것이다. 셋째로, 죄들 사함(용서)이 주어진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이미 대제사장으로서 속죄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속죄의 은총이 베풀어지기 때문이다. 넷째로, 예수님을 믿어 거룩하게 된 자들에게 하늘의 기업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바울도 역시 다메섹 도상에서 영안이 열려지기 전까지는 이러한 축복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도 역시 베스도 총독이나 아그립바 왕처럼 그러한 놀라운 하늘의 소식을 듣고도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5. 영안이 열리지 못했던 자들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는가?

  유대인들이나 산헤드린 공회 그리고 이어서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 또한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는 바울로부터 복음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유대인들이나 산헤드린 공회는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때로부터 10년 뒤였던 A.D.70년에 유대 나라는 완전히 망하여 지구상에서 없어지고 말았다(민족만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1948년 5월 14일에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벨릭스 총독은 바울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고 또한 바울로부터 뇌물을 기대하여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있다가, 그만 총독직에서 해임되고 말았다. 베스도 총독은 벨릭스 총독의 후임으로 대신 들어왔으나 역시 무죄한 바울을 석방하지 않음으로 인해 총독으로 부임한 지 2년 만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아그립바2세 왕과 버니게는 헤롯대왕의 증손들이었으나, 그 가문은 자신들을 끝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그렇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는 용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성령을 거부하는 자는 이처럼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성령으로 복음을 전해 주었던 바울의 말을 곧이듣지 아니함으로, 결국 다 파멸의 길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2023년 01월 31일(주일)

정병진목사

2023-01-01(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주님이 함께 하는 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받을 축복은?(수1:1~9)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Q0Ohe6Ggs2g  [혹은 https://tv.naver.com/v/32116362 ]

 

1. 들어가며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또한 그들을 도와주시기를 기뻐하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들과 함께 하여 그들을 붙들어주시고 그들을 도와주시고 그들을 위험과 대적으로부터 건져 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대체 누구와 함께 하시며, 누구를 도와주시는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들의 특징은 대체 무엇이며, 그런 사람들은 어떤 복을 누리는가? 오늘은 새해 첫 주일을 맞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누군지를 알아보고 그러한 사람들이 받을 축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격려하시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셨는가?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격려하시는가? 그것은 여호수아가 살고 있던 그 시기에 하나님께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말씀을 누군가는 완성해야 하는데, 그 일을 수행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는 여호수아였다. 왜 그런가? 이는 모세가 죽었기 때문이다(수1:2). 사실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것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모세가 죽은 것이다. 그런데 그가 늙어서 병들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눈도 흐리지 않은 상태였으나, 징계로 인하여 죽은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그는 40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일은 그들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차지하여 살게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40년간 광야생활을 마친 뒤 모세가 죽은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200만의 출애굽 2세대들과 여호수아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제 여호수아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그가 맡아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3. 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가?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들려주신 말씀은 한 마디로 여호수아 1:5에 요약되어 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1:5)"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때 주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여호수아가 두려워하고 있었고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수1:9). 왜 그런가? 그것은 여호수아 자신이 이전의 영도자였던 모세와 비교해 보았을 때에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3가지 방면에서 그는 모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첫째, 여호수아는 모세에 비하면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모세는 홍해의 물을 핏물이 되게 했다. 그리고 애굽 전역에 10가지 재앙을 내렸던 사람이다. 그가 말하기만 하면, 개구리 떼가 움직였고, 이들과 파리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각종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낮에 해도 빛을 잃었다. 그리고 마지막 10번째 재앙 때에는 처음 난 가축과 모든 장자들이 다 죽었다. 어디 그뿐이었는가?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자, 지팡이 하나로 홍해를 갈라놓았고 백성들로 하여금 마른 땅을 걷게 하였다. 그리고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얻기 어려운 미디안 광야에서, 출애굽한 200만 명의 사람들을 40년간 먹고 마시고 살게 하였다. 그러므로 모세에 비하면 여호수아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둘째, 여호수아는 '영성'도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누군가? 그는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십계명을 받았고, 성막에 수시로 들어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의 얼굴에는 늘 빛이 났다. 그러자 모세는 백성들이 자신의 얼굴을 주목하지 않게 하려고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릴 정도였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모세와 같이 뛰어난 선지자는 없었다(신34:10~12). 셋째, 여호수아는 모세에 비하면 '지도력'도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12지파를 다 이끌 만한 지도력이 모세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제는 모세보다 더 큰 과제가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한 일 곧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눠 줄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차지해야 할 일은 큰 것이었다. 차지할 땅도 어마어마하게 큰 땅이었다. 남쪽으로는 광야와 북쪽으로는 레바논 땅을 그리고 동쪽으로는 유브라데강과 서쪽으로는 대해(지중해)까지의 땅을 정복해야 했다(창13:14~15, 15:18, 수1:4). 

  그런데 어디 가나안 땅 사람들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자신의 땅을 넘겨줄 사람들이었는가? 그 땅에는 기골이 장대한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요새화된 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은 정말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강해져야 할 것과 담대해져야 할 것을 무려 3번씩이나 말씀하신 것이다(수1:6,7,9).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이 일을 하게끔 하나님께서 직접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한 이 말씀은 대체 어떤 뜻인가? 그것은 여호수아에게 부족한 것 있다면 그 부족한 것은 채워주실 것이고, 이전에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이제는 여호수아와 함께 하여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시겠다는 뜻이다. 또한 백성이 모세를 따랐던 것만큼 이제는 여호수아를 잘 따르게 해 주겠다는 뜻이다. 고로 이 말씀은 여호수아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 큰 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4.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다. 성경 66권을 다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총 10번 정도 뿐이다. 구약시대에는 8명 정도가 있었고, 신약시대는 2번 더 그렇게 말씀하셨다.

  구약의 인물로는 '야곱'이 처음이었다(창28:15). 그런데 그때는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할 때였고 정처없이 가나안 땅을 떠나, 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고 있을 때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야곱을 통해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이루실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와도 함께 하시겠다고 했다(출3:12). 이때는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무명으로 40년을 보내고 있었던 때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셋째,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말씀을 나누고 있는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넷째, 사사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함께 하시겠다고 했다(삿6:16). 왜냐하면 그는 므낫세 지파 중에서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미디안으로부터 구출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다섯째는 '다윗왕'이었다(삼하7:9). 그런데 다윗왕은 그에게 어떤 사명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가 하나님을 최고로 높였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위를 계속해서 지켜 주셨고, 그의 아들로 왕국이 이어지게 하셨으며, 살아 생전에 다윗의 나라가 태평성대를 이루게 하셨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이 더 있는데, 그들은 대선지자들이다. 그들은 메시야의 예언을 가장 많이 쏟아낸 '이사야' 선지자이며(사41:10), 또 한 명은 멸망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슬피 울며 다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예언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였다(렘1:8).

  그리고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함께 하시겠다고 두 번 더 말씀하셨다. 한 번은 그분이 승천하기 직전 11명의 제자들에게 그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파하여 이 땅에 교회를 세워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표는 바로 '베드로' 사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예수께서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있을 때였다. 유대인들 때문에 힘들어서 고린도를 떠나려고 할 때에 주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니라(행18:9~10)." 그렇다. 바울에게도 이 땅에 구원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수행하고 있는 바울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5.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했던 사람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이들 대부분이 당시에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모두는 다 백성과 민족과 공동체의 지도자들로서 그 일을 수행하였다. 특히 여기에 들어 있는 '야곱, 모세, 여호수아, 다윗, 이사야, 베드로, 바울'은 천국에서 24장로들에 속한 자들이며, 나머지도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해당한다. 둘째, 이들은 다 자신이 살던 시대에 어떤 사명을 부여받은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해야 할 일을 갖고 계셨는데, 이때 그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 직무를 위해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그들을 태어나게 하시고 그들을 부르신 것이다. 그런데 여호수아 시대에는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살고 있었다. 그는 이전에 열 명의 가나안 정탐꾼으로 발탁된 자였고, 정탐하고 돌아와서도 긍정적인 보고를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사람으로 일찍이 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일찍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군대의 지도자로 선발되어 전쟁을 수행해 왔던 자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제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맡겨 주신 것이다. 

 

6.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자들은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자들은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가? 우리는 여호수아의 사례와 다른 이들의 사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가 받게 될 축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가 있다. 그것은 총 3가지다. 

  첫째,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셨다는 것이다(수1:9). 즉 하나님께서 그 사명의 사람과 동행하시어 그의 부족한 부분은 채워 주시고 없는 것은 있게 하셔서 그 임무를 완성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에게 능력이 부족하니, 주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첫 성 여리고에 당신의 군대장관을 보내어 그 성을 초자연적으로 무너뜨려 주셨다. 또한 이사야에게는 이렇게 약속하시고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그렇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 '지도력'이 없으면 지도력을 주시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기드온에게는 이 방면에서 더욱 그랬다. 또한 '지혜'가 없으면 지혜를 주셨다. 특히 '솔로몬'에게 그랬다. 그리고 '말하는 언변이나 학문'이 부족하면 채워 주셨다. 그것은 '모세'가 그랬고, 어부였던 '베드로'가 더욱 그랬다. 

  둘째, 그의 사명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그를 지켜 주시고 대적들로부터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다(수1:5).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사는 날 동안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수1:5). 그리고 사도 바울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행18:10)"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자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그를 도와주신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방해하는 세력들로부터 그를 건져 주시고 그로 하여금 그 직무를 수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은 사명자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사명자가 그 일을 잘 감당했을 때에는 그의 이름을 높여 주신다는 것이다(수3:7).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했던 사람이라도 처음부터 유명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고 그 일에 충성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하늘에서도 그 이름을 높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수3:7)" 그리고 다윗에게도 역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대상17:8)" 그렇다. 그래서 이들은 천국에 들어가서도 대부분 24장로급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그들에게 맡겨준 일에 그들이 충성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이 땅에서도 복을 누리게 하실 뿐만 아니라 저 천국에서 들어가서도 복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7. 나오며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그러한 직무를 수행할 사람을 찾으시고 그에게 그 일을 맡기신다. 그리고 다름 아닌 바로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시대적 사명을 맡은 사람들과 교회는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해져야 한다. 능력이 부족하고 영성이 떨어지고 지도력이 부족하다고 주눅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에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은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이 시대에 어떤 사람들을 쓰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사람들이다. 아니 그렇게 쓰시려고 이 땅에 그러한 사람들을 보내시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명자와 함께 하는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들어쓰신다. 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회개와 천국복음을 알게 하셨는가? 그것은 이 시대가 마지막 시대로서 천국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마지막 그 시점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마24:14).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우리와 우리 교회를 준비케 하셨다. 우리 교회는 크지 않다. 그렇다고 결코 작은 교회인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사역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계묘년의 새해가 밝았다. 이제 시작이다. 우리가 맡은 사명을 위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 맡겨 주신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는 주님의 일이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니까. 이 직무를 마칠 때까지.

 

 

2023년 01월 01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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