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이야기는 창조에서 시작하여 족장들의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런데 창세기의 족장들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어 이삭을 거쳐 야곱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요셉 이야기로 그 끝을 맺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래야 했을까? 대체 "아브라함과 이삭와 야곱의 하나님" 가운데 요셉 이야기는 대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인가? 우리가 만약 요셉 이야기를 제대로 볼 수 없다면, 아름다운 나무를 길렀는데 그 꽃을 보지 못한 것과 같을 것이다. 자, 요셉 이야기가 들려주는 그 위대한 영적 교훈을 이제 들어보자.

2021-08-06(금) 금요기도회

제목: 창세기강해(172)[최종회] 이긴 자였던 요셉의 삶과 죽음이 가르쳐주는 위대한 영적 교훈(창50:15~2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nxygttYZge0 [혹은 https://tv.naver.com/v/21743029 ]

 

 

1. 들어가며

  창세기는 요셉이 애굽에서 입관한 것으로 끝이 난다. 창조로 시작된 창세기 이야기가 요셉의 죽음으로 끝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요셉 이야기가 차지하지 비중에 놀라움을 금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창세기 이외의 성경책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소개하실 때에 꼭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는 하여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며, 요셉의 하나님이라"라고 말하고 있는 데는 단 한 군데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창세기 25장부터 50장까지 이어지는 야곱의 이야기 가운데, 요셉 이야기는 무려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 이야기가 왜 야곱 이야기에 끼어들어갔는지 그리고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요셉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그의 일생을 돌아보고, 창세기가 말하고자 하는 요셉의 삶과 죽음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요셉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2. 요셉 이야기는 인생 성공의 감동 스토리인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요셉 이야기를 마치 성공한 인생의  감동스토리로 들어왔을 것이다. 대체로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요셉 이야기는 "한낱 목동이었던 소년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 노예가 되었고 거기에서 또한 죄수가 되었지만 결국 모든 어려움을 딛고서 성공함으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이야기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요셉 이야기는 인생 성공 스토리인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만을 보았다면 우리는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를 너무나 축소시켜 본 것이다. 왜냐하면 요셉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누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인지를 말해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요셉 이야기는 인생 성공 스토리를 적어놓았다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인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요셉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하나님의 구별하여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 뿐만이 아니라, 애굽인으로 지칭된 이방인에 이르기까지 다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구원받기를 원하셨다면 아마도 창세기 이야기는 유다의 이야기로 끝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창세기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야곱 이야기 속에 요셉 이야기를 끼워서 넣어두었다. 왜냐하면 기근은 가나안 뿐만 아니라 애굽 땅에 동시에 찾아온 기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총리 요셉을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야곱 이야기 속에 끼워넣은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요한계시록에서 이기는 자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고로 우리도 요셉의 이야기를 잘 들어서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이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144,000명에 속하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고 면류관을 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창세기 말씀의 핵심 중의 핵심인 것이다. 

 

3. 요셉은 어떻게 신약의 예수님을 예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하여 성령시대의 사람을 예표하는 야곱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한 송이의 꽃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요셉 이야기야말로 이긴 자의 이긴 자의 표상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한 이긴 자, 곧 영원히 이긴 자이신 예수님을 생각해보지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보내어질 때에는 하나님으로서 가진 권한들을 스스로 제한하시고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사람으로서 살다가 사탄마귀를 이기시고 부활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다. 그분도 40일간 금식으로 기도하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매일 새벽미명에 기도하심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으며, 자기를 따르던 수 만명의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했고, 제자들로부터도 버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십자가에서 받으셨다. 하지만 겟네마네 동산에서 피땀어린 기도로 모든 것을 잘 이겨내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부활승천할 수 있었고, 승천후에는 이긴 자가 되어 아버지의 보좌에 앉는 자가 되었다(계3:21). 그러므로 천국의 하나님의 보좌는 "아버지의 보좌이면서 아들의 보좌"가 된 것이다(계22:1,3). 

  그렇다면 이긴 자였던 요셉은 어떤 측면에서 예수님처럼 이긴 자의 표상이 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긴 자이신 예표로서 이기는 삶을 살았던 요셉과 예수님의 삶을 서로 비교하고 검토해 보고자 한다. 요셉은 크게 다음과 같은 6가지 면에서 예수님의 예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요셉이 비록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기는 했지만 형제들로부터는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 미움의 대상이 되어서 죄수로 넘겨진 것처럼 예수께서도 역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는 한량없는 사랑을 받았지만 유대 형제들로부터는 모함을 받아 죄수로 넘겨졌기 때문이다(마27:25, 39~43). 둘째, 요셉이 형제들에게 의해 은20냥에 팔린 것처럼 예수께서는 가룟유다에게 은30냥에 팔리게 되었기 때문이다(마27:3). 셋째, 요셉이 죄수로 있을 때에 두 명의 죄수들 중에 한 명(숱맡은 관원장)은 죄용서받고 살아남지만 다른 한 명(떡굽는 관원장)은 죽임당했던 것처럼, 예수께서 죄수가 되어 십자가에 매달릴 때에, 두 명의 죄수들 중에 한 명은 회개하여 구원을 받고 낙원에 들어갔지면, 다른 한 명은 그냥 죽임을 당하여 음부에 떨어졌기 때문이다(눅23:39~43). 넷째, 요셉이 죄도 없었는데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혔지만 어느날 감옥에서 풀려나오게 되었듯이, 예수께서도 죄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죄수가 되어 십자가에 목박혀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죽임당한 후 3일만에 무덤에서 무덤문을 열고 죽음을 극복한 채 걸어나오셨기 때문이다(고전15:3~4, 엡4:8~9). 다섯째, 요셉의 총리로서의 삶이 30세에 시작되었듯이, 예수께서도 사생애를 끝내고 공생애를 시작한 것이 당신의 나이가 30세때였다(눅3:23). 여섯째, 요셉의 자기에게 죄지은 형제들을 용서해준 것처럼, 그리고 예수께서도 당신 자신을 거역하고 침을 뱉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용서해주었기 때문이다(눅23:34).   

 

4. 요셉의 삶과 죽음이 주는 6가지 교훈은 무엇인가?

  요셉은 야곱이 90세 때에 밧단아람에서 라헬의 소생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17세에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다. 그리고 애굽의 경호대장이었던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은 거기에서 13년을 보내는데, 노예로 10년을 보냈으며 또한 보디발의 처의 모함으로 인하여 다시 감옥에서 최소 3년을 보냈다. 그리고 요셉은 그 감옥에 있으면서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준 것을 계기로 훗날 바로가 꿈을 꾸었을 때에 그것을 해석해줄 자로서 천거함를 받아, 요셉은 일약 30세의 나이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다. 그리고 7년 풍년후 기근 2년차가 되었을 때에 곡식을 사러온 형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어 그의 나이 40세에 아버지와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17년이 지나 그의 나이 57세에 부친 야곱의 눈을 감겨드린다. 그리고 자신도 그때로부터 53년후인 해 곧 그의 나이 110세 때에 애굽에서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의 삶과 그리고 그의 죽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들려주는 것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이 7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요셉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에 관한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며, 그러한 계획을 하나님께서 당신 뜻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구원은 단지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작정하며 보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요셉은 이 세상에 보내어질 때에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졌다. 그는 단지 기근에서 자기의 가족들을 구출하라고 이땅에 보내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애굽의 고센 땅에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시키도록 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자였으며, 더욱이 애굽사람들을 지칭하는 모든 이방인에게 이르기까지 영적인 기근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하라고 이 땅에 예표로서 보냄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이렇듯 특별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충성(성실함, 순수함, 순종함)하고 인내함으로 하나님을 뜻을 이뤄야 하는 것도 마땅한 일이라고 하겠다. 

  셋째, 이 땅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충성한 자에게는 하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이긴 자들 중의 이긴 자의 대표적인 모형이 되었는데, 그는 천국에서 24장로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를 위하여 제1번의 보좌자리와 많은 면류관과 멋진 천국집이 예비되어 있다. 

  넷째, 하나님은 선택받은 혹은 예정된 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자를 통하여 모든 이방인까지 다 구원받아 복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야곱에게 있어서 장자는 두 명이었다. 하나는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영적인 장자로서 '유다'가 있었고, 또 하나는 장자의 명분을 가진 자로서 기업을 두 배로 차지하게 된 '요셉'이 있었다. 그런데 유다는 오직 메시야를 낳는 일에 충성하였고, 요셉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구원 곧 하나님의 구원은 이방인을 포함하는 구원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신약시대의 사도로 비유하자만, '유다'는 할례자의 사도였던 베드로와 같은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고,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과 임금들과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과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의 안배 즉 하나님의 사명을 깨달은 자는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고 그 사명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 자는 끝까지 인내하여 자신의 소임을 잘 감당해 낸다는 것이다. 요셉은 이러한 사실을 그의 나이 17세 때에 꾼 2가지 계시적인 꿈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곧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창37:7)과 해와 달과 11개의 별들이 절하는 꿈(창37:9)의 꿈을 통하여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깨달았던 요셉에게 있어서 고난은 더 이상 원망과 불평의 원인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장차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되었다. 사실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이다. 

  여섯째,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는 자에게 있어서 고난은 필수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거의 다 그랬다. 아벨도, 노아도, 야곱도, 요셉도 다 그랬다. 그리고 요셉의 뒤를 잇는 모세도 40년을 인내해야 했고, 다윗은 15년을, 사도바울도 10년 이상을 인내하며 고난을 통과해야 했던 것이다. 

  일곱째,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서 형통하는 축복을 받는 것은 자기만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자기의 조상들의 수고와 노력이 내려와서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가문이 복을 받게 된 것은 그의 증조부 아브라함은 저주를 끝냈기 때문이며, 이삭은 자신의 송두리째 내어바쳐 헌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양보하고 내주었으며, 야곱은 자기에게 주어진 11명의 아들들이 계속해서 축복의 대상이 되도록 철야기도함으로 그것을 지켜내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땅에서 어떻게 축복을 받게 되느냐 하는 것의 핵심은 저주를 없애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만약 아브라함이 우상숭배로 인한 그의 가문의 저주를 끝내지 못했더라면, 그 뒤에 태어나는 후손들에게 형통함의 축복은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저주를 끝내놓으니까, 이삭이 농사하면 100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고, 파는 장소마다 우물이 터져나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야곱이 양떼에 손을 대면 양떼가 불어나게 되었으니, 자기 외삼촌의 양떼가 그랬고 자신의 양떼도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 요셉이 가는 곳마다 형통함이 축복이 뒤따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요셉이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서 일하니 보디발의 집과 밭과 소유에 복을 받을 수 있었고, 감옥에 들어가서 일하니 간수장이가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기었으며, 요셉이 애굽의 왕궁에 들어가니, 애굽 나라 전체가 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의 조상들이 해놓은 일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5. 나오며

  지난 약 7개월 동안 우리는 창세기를 172번에 걸쳐 배울 수 있었다(2021.01.25~08.06).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회개와 천국복음"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창세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오직 한 분이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우리는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창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늘 설화 내지는 꾸며낸 이야기로만 들어왔던 것을 역사적인 사실이며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으며,  창조의 이야기는 곧 하나님의 누군지를 소개해주는 이야기라는 것을 배웠다. 그분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요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아의 홍수사건을 접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며, 그것을 통하여 인류가 어떻게 되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는지를 쭈욱 살펴보았다. 그리고 창세기 12장부터 우리는 4명의 족장들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었다. 어떻게 되어서 과연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정말 축복받는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장자의 축복을 계승하려는 야곱의 눈물겨운 사투도 지켜보았고, 하나님의 안배로 이 땅에 보내어진 요셉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은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든 민족을 다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천국은 이긴 자가 들어가는 곳이며, 충성하여 인내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는 자에게는 하늘에 놀라운 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이번에 창세기를 통해 베풀어주신 은혜를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또 듣고 또 들어서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에 주님으로부터 직접 "너는 나의 기쁨이었고 나의 자랑이었다. 내가 너 때문에 타락한 이 세상을 보면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었다"는 놀라운 말씀을 들어서, 천국에서 면류관 얻는 위대한 하늘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43) 요셉의 꿈과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는 누구인가?(창37:6~10)_2021-07-07(수) 

https://youtu.be/CPLvmN6T_W8  [혹은 https://tv.naver.com/v/21205961  ]

 

1. 요셉의 첫번째 꿈은 무슨 꿈인가요?

  요셉이 꾸었던 첫번째 꿈은 곡식단에 관한 꿈이었습니다(창37:7) 형들의 곡식단이 일어서더니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꾸었던 이 꿈은 계시적인 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꿈은 장차 요셉과 그의 형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보여주는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꿈 중에는 이러한 계시적인 꿈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러한 계시적인 꿈을 일컬어 우리는 "환상"이라고 부릅니다. 

 

2. 창세기의 요셉은 왕노릇할 자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창세기에서 요셉은 왕노릇할 자를 예표합니다. 그의 첫번째 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의 첫번째 꿈을 들어보고는 그것은 요셉이 그들 위에서 왕노릇하는 것이며, 그들을 다스리게 될 꿈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창42:6). 그러므로 야곱 이야기 가운데 등장하는 요셉 이야기는 누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것인가를 말해준다고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 예수님도 말씀해주셨고 사도들도 증언하고 있으며 요한계시록에서 확실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께서도 천국에 들어가면 왕노릇할(다스릴) 자가 있고, 섬기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날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주의 왕국에서 예수님의 좌우편으로부터 앉게 해 달라고 했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럴려면 고난의 잔과 죽음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신 뒤에 천국에서 누가 큰 자인지를 말씀해주셨는데, 그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5-27)" 그렇습니다. 천국에서도 다스리는 자가 있고 섬기는 자가 각각 따로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누가 천국에서 보좌에 앉아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나요? 그것은 첫째,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0:25~27). 둘째,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9:27~28). 그러면 그들이 12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심판할(분할통치할, 결정할, 판단할,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셋째, 모든 시험들 중에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항상 주님께 함께 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22:28~28). 그러면 그런 자들은 주님의 왕국에서 주님의 식탁 위에서 먹고 마실 것이며 또한 보좌 위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사도들에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를 어떻게 말씀했나요?

 그렇다면 사도들은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는 어떤 자들이라고 말씀했나요? 첫째, 사도 베드로는 어둠에 속해 있는 자들을 주님의 놀라운 빛 안으로 들어오게 하며, 주님의 아름다운 미덕들을 널리 알리는 자가 왕같은 제사장들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둘째, 사도 바울은 주님과 함께 죽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잘 참고 인내하는 자가 주님과 더불어 왕노릇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딤후2:11~12).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딤후2:11-12)" 

 

4. 요한계시록에서는 왕노릇할 자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천국에서 왕으로 다스릴 자가 있고 다스림을 받을 자가 있음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요한계시록에서 왕으로 다스릴 자는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으며(계5:10, 20:4~6, 22:5), 반대로 어떤 이는 만국백성이 되어서 왕의 다스림을 받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계2:27, 21:24). 먼저, 사도요한이 보았던 왕이요 제사장이란 어떤 사람들일까요? 첫째로, 그들은 천국에서 제사장으로서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것이며, 그들은 천국에 있는 땅 위에서 왕노릇할 것이라고 했습니다(계5:10). 둘째, 그들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는 자들이며 우상경배를 거부하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로서, 죽은 죽시 천국에 올라가 주님이 재림하는 때까지 천년동안(주님의 부활승천이후 재림 때까지의 기간) 그곳에서 왕노릇할 것이라고 했습니다(계20:4~6). 셋째, 천국에서 왕이요 제사장은 재림전까지만 왕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재림이후에는 세세무궁토록 왕노릇할 것이라고 했습니다(계20:5).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자로 만족하지 말고, 천국에 들어가서도 제사장으로 일하고, 뿐만 아니라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더욱더 힘써야 하겠습니다. 

 

5. 요셉의 첫번째 꿈은 요한계시록에서 어떻게 완성되나요?

  요셉의 첫번째 꿈은 요한계시록에 가서 완성단계에 이릅니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꿈이야기는 요한계시록에 가서 비로소 완성돤계에 이르는데, 그것들을 주의깊에 살펴보면, 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꿈과 환상들의 종합체요 완성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요셉으로 시작되는 꿈이야기가, 다니엘서로 넘어가 꽃을 피우며, 에스겔의 성전환상을 통해 새 예루살렘성전이 계시되고, 스가랴서를 통해 완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셉의 꿈, 다니엘의 환상, 에스겔의 성전환상, 스가랴의 환상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을 공부하지 않으면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꿈과 환상의 시작이 바로 요셉의 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놀랍기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창세기에서 요셉 이야기는 성령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기는 자들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비밀입니다. 고로 요셉 이야기가 요한계시록의 씨앗에 해당하므로 우리는 창세기를 공부하면서부터 요셉 이야기에 주목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고로, 요한계시록강해, 다니엘강해, 에스겔강해, 스가랴강해를 듣기 원하시는 분은 본 교회 홈페이지의 "수요강해설교(https://dongtanms.kr/board_MSkM52)"에 이미 수록해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1년 07월 07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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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요셉의 꿈과 하늘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누군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성경에 나타난 <꿈과 환상의 성경강해 씨리즈>설교입니다. 

 1. 정병진목사의 다니엘강해(20강) https://dongtanms.kr/board_YEeT26

 2. 정병진목사의 에스겔강해(22강) https://dongtanms.kr/board_UzhG31

 3. 정병진목사의 스가랴강해(12강) https://dongtanms.kr/board_tgox25

 4. 정병진목사의 요한계시록강해(52강) https://dongtanms.kr/board_qHUM98

 

동탄명성교회 - 66.요한계시록강해(5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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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42) 요셉의 꿈과 천국에서 이기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창37:6~10)_2021-07-06(화)

https://youtu.be/6SvlAfCQpFQ  [혹은 https://tv.naver.com/v/21168034  ]

 

1. 경륜적으로 볼 때 야곱과 요셉은 어떤 관계인가요?

  경륜적으로 볼 때 야곱과 요셉은 성령시대의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예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마8:11, 22:32). 그러므로 우리는 야곱의 생애가 곧 성령시대의 삶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벧엘에서 돌(반석)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집을 세우겠다고 한 것은 곧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성령시대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창세기는 성령시대의 사람인 야곱 이야기로 끝나지 아니하고 요셉 이야기로 끝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야곱으로 인하여 세워진 12개의 교회들 중에서 이기는 자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도 지상의 7개 교회 성도들 가운데에 이기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계2~3장). 고로 우리는 요셉 이야기야말로 성령시대의 교회성도들 가운데 장차 이기는 자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이며 이기는 자가 받을 상급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예표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경륜적으로 볼 때, 요셉의 꿈은 무엇을 말해주는 꿈인가요?

  고로 경륜적으로 볼 때 요셉의 꿈은 단순히 지나가는 하나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창세기 37장에 기록된 요셉의 꿈들은 의미있고 매우 상징적이며 계시적인 꿈이었던 것입니다. 그 꿈은 요한계시록에 고스란히 그 열매들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계3:21, 12:1). 왜냐하면 그것은 이기는 자가 어떤 자를 가리키는지를 알려주는 계시적인 꿈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셉의 별명은 "꿈꾸는 자(꿈쟁이)"였습니다. 얼마나 꿈을 많이 꾸었으면 그의 별명이 "꿈쟁이"였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이 그렇게 많이 꿈을 꾸었도, 성경에는 딱 2가지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 꿈이 요셉의 삶 곧 이기는 자의 삶과 아주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딱 2가지의 꿈은 어떤 것인가요? 그것의 하나는 요셉에 있는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해와 달과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셉의 형들과 아버지가 정확하게 해석을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요셉이 늘 자신의 꾼 꿈을 형들과 아버지에게 말을 했고, 또한 그 꿈을 해석해 주었기 때문에 언제부턴가는 요셉의 형들도 아버지도 꿈 해몽을 잘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꿈을 형들과 아버지는 어떻게 해석했던 것일까요? 먼저, 곡식단의 꿈에 대해 요셉의 형들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창37:8)" 그렇습니다. 곡식단이 절하는 꿈은 요셉이 다른 형제들을 위에서 다스리는 왕이 된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아버지도 해와 달과 별들이 절하는 꿈에 대해서 해석을 했습니다.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창37:10)" 그렇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절하는 꿈도 역시 요셉이 해와 달과 별들을 다스리는 왕이 된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의 꿈을 통하여, 장차 이기는 자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3. 천국에서 "이기는 자"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나요?

  그렇다면 천국에서 "이기는 자"란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나요? 그것은 요셉의 꿈에 대한 형들과 아버지의 해석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지만, 천국에서 "이기는 자"는 곧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 천국에서 다스리고 통치하는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보면,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는 다 천국에서 자신의 통치 보좌에 앉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마8:11, 19:28, 눅22:30, 계3:21). 고로 누구든지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이기는 자가 될 수만 있다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그가 보좌에 앉아서 다스리는 자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마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눅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4. "이기다"라는 단어는 무슨 뜻인가요?

  그렇다면, "이긴다"는 뜻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구약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가 일종의 감성적인 언어라고 한다면,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는 일종의 논리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왕노릇하는 자 곧 "이기는 자"라고 단어("니카오")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것은 크게 2가지 뜻입니다. 첫째, 이기다, 승리하다, 패배시키다는 뜻이 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win, be victorious, conqure 등입니다. 이는 어떤 대상과 전투하여 승리한 그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이 땅에서 전투할 대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본적으로는 악한 영들(귀신들)이며 또한 자기자신(혼, 내적인 본성)일 것입니다. 둘째, "이긴다"는 말은 우세하다. 능가하다. 더 강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overcome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기는 자라 말은 "더 강한 자", "더 우세한 자"라는 뜻입니다. 야곱 중에서 더 강한 부분이라는 이기는 자인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더 강한 자, 더 우세한 자가 바로 "이기는 자"인 것입니다. 

 

5. 신약시대에 들어와 처음으로 "이긴 자"는 누구이며, 이긴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사탄마귀와 귀신들 그리고 자기자신의 본성과도  싸워 이긴 자는 누구입니까?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기 처음이십니다. 왜냐하면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사도요한을 통해 그것을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이겼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3:21)" 이 말씀은 예수께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나오는데, A.D.95년경 예수께서는 이미 이기신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공생의 시작에 광야의 시험에서 마귀를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생애의 마지막에 가서는 겟네마네동산에서 자기자신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는 죄와 사탄마귀와 귀신도 모두 다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죽은지 3일만에는 죽음(사망)까지도 이기셨습니다. 고로 그분은 최초의 이긴 자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힘입어 교회마다 더 강한 자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이기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천국에 들어갈 때에 바로 천국의 보좌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가 한 개에서 24개로 늘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예수께서 이기셨고 그래서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이 땅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 올라오면 앉으신 보좌를 예수님께서 더 마련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기는 성도만이 천국에 들어갈 때에 주님처럼 왕노릇하는 보좌를 앉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보좌들의 대표가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그 보좌가 바로 24보좌들입니다. 거기에 24장로들이 앉아 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보좌에 앉을 자들 24명의 장로들 뿐일까요? 아닙니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기는 자가 되어 보좌에 앉게 될 것입니다(계3:21).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이 야곱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 강한 자요 이긴 자였던 요셉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세상에서 이기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며,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은 또 얼마나 되는지는 다음 이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07월 06일(화)

정병진목사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보좌 좌우쪽과 뒷쪽으로 24개의 보좌가 있다. 이 보좌는 심판의 보좌이며 왕노릇하는 통치의 보좌다. 그렇다면 이 보좌는 대체 누가 차지하게 되는 것일까? 예수께서는 당신의 12제자들 중에 가룟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가 그 보좌에 앉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13개의 보좌에는 누가 앉게 되는 것일까?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다. 2017년도에는 이 보좌를 향해 달려가보지 않겠는가?


1. 들어가며

  천국에는 과연 누가 들어가며 누가 보좌에 앉아 왕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일까? 천국에 누가 들어가는 것인가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과 일치한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죽어서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 중에서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24보좌에 앉아 왕노릇하는 것일까? 그 자리에 앉을 자는 이미 만세전부터 예정된 것인가 아니면 누구라도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인가? 오늘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 중에 누가 보좌에 앉아 왕노릇하게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천국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먼저, 천국에는 누가 들어가게 되는지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성도는 어떤 모습을 취하게 되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천국에 누가 들어가는지부터 살펴보자. 천국은 회개하고 믿음을 가진 자가 들어간다(막1:15). 그렇다. 천국은 믿음만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하는 자가 들어가게 된다. 회개없이 천국에는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구원론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믿음만 있으면 다 천국에 들어가는 줄로 안다. 아니다. 믿음으로 구원은 얻을 수 있겠지만 믿음만 가지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것은 죄 때문이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성(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사람은 없다. 즉 하나님 앞에 스스로 의인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회개를 통해 자신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깨끗히 씻음을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없이 천국에는 못 들어가는 것을 확실히 알고 실천해야 한다.


3. 천국에 들어가는 자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모습을 취하는 것일까? 천국에 들어갈 때 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죽는 순간 홀연히 변화되어 부활체를 입고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부활체를 입자마자 그에게 희고 깨끗한 세마포옷이 입혀지게 된다(계3:5, 7:9,13~14, 19:14). 그런데 이때 어떤 이에게는 승리의 관(스테파노스)까지 씌여지는 자들도 있다. 조금 있다가 살펴보겠지만, 이들은 천국에 있는 24보좌에 앉아서 영원토록 왕노릇할 자들이다.

  한편,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크게 2가지 일을 한다. 하나는 제사장의 일을 한다(계1:6, 5:8). 하지만 천국은 죄가 없는 곳이기에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제사장으로서 다른 일을 하는데, 첫째로는 이 땅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한다(계5:8, 8:3~5). 그리고 둘째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일을 한다.


4. 천국에서 금으로 된 승리관을 쓰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렇다면 대체 어떤 자가 천국에 들어가서 이런 승리관(스테파노스)을 쓰는 것일까?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사도요한은 어느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의 열린 문을 통과하여 그의 영이 천국으로 올아가게 된다. 이때 사도요한은 영혼의 상태로 올라간다. 이때 그는 부활체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그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사도요한은 곧장 천국의 한 중앙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성 안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게 된다. 그때 사도요한 앞에는 높이 들린 보좌가 하나 있었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앉아계셨다. 또한 그 보좌 주위에는 피조물을 대표하는 4가지의 생명체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의 좌우로 12개의 보좌가 하나님의 보좌 뒤쪽에까지 둥그렇게 놓여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24장로가 앉아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가 다 흰 세마포옷을 입고 있었다(계4:4). 그런데 이들의 머리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승리관(스테파노스)이 씌여 있었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보았다.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절하고 찬양하는 것을 말이다(계4:10~11). 


5. 천국의 24보좌에 앉아 있는 24장로의 정체는 무엇인가?

  자, 그렇다면 천국에서 금관을 쓴 채 흰 세마포옷을 입고 있는 존재는 대체 누구인가? 24보좌에 앉는 이들의 정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선 흰 옷은 누가 입는지부터 살펴보자. 우선 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흰 세마포옷을 입고 계신다(단7:9, 계1:13~14). 그리고 천사들이 흰 세마포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원받아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온 사람들이 흰 세마포옷을 입는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좌 옆과 뒤로 둥그렇게 24개의 보좌가 놓여 있고 거기에 앉아있는 자들도 다 흰 옷을 입고 있다. 이들은 24장로라고 불리웠다(계4:4). 그렇다면 24장로들은 대체 누구인가? 흰 옷을 입고 있다는 측면에서 천사들일 수도 있고, 구원받은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24장로들이 하나같이 전부다 금으로 된 승리관(스테파노스)를 쓰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들은 천사는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하나님의 종의 신분이므로 결코 승리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들은 분명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람들로서 이기는 자가 되어 승리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결국 24장로들은 이 세상에서 죄와 죽음과 음부와 사탄을 이기고 승리한 자들을 가리킨다. 24장로들은 이러한 이기는 자들 중에서도 24보좌에 앉아 왕노릇할 자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는 대체 누구일까? 첫째는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이시요(계11:15~17), 둘째는 이기는 자들 중에서 금으로 된 승리관을 쓰고 있는 자들이다(계5:9~10). 이들은 천국에서 새 예루살렘 성밖에 있는 넓은 땅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던 자들이다(계21:24,22:5).


6. 24보좌에 앉은 24장로들 중에 신약에 나오는 12명의 장로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24장로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들은 대체 어떻게 되어서 하나님 보좌 가까이에 있는 24개의 보좌에 앉아있게 된 것인가? 우선 살펴본 것은 이들은 구원얻는 사람들 가운데 있으며, 금으로된 승리관을 쓰고 있는 땅의 왕들이다. 그런데 천국에서 보좌에 앉아있다는 것은 사실 2가지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누군가를 심판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마19:28). 그리고 또 하나는 누군가 위에서 왕노릇한다(다스린다)는 뜻이다(눅22:28~30). 결국 천국에 있는 24장로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천국에 들어오는 자들을 심판하는 자이자,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24보좌에 앉아서 심판하기도 하고 왕노릇하기도 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이미 자신의 12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음 두 구절을 보라.

마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눅22:28-30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그렇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천국에 있는 24개의 보좌 가운데 12개의 보좌에 앉는다. 그들은 거기서 먼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천국에서 주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며 12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 위에서 왕노릇할 자들이다. 이들은 승리관을 쓴 왕들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 가룟유다가 그만 그 위치에서 탈락하고 만다. 예수님을 판 죄를 지었는데,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곳 곧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행1:25). 그래서 한 자리가 비었다. 그렇다면 그 빈 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추측컨데 사도바울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조금 있다가 배우겠지만 그가 그 자리에 앉을 만한 조건을 총족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죽을 무렵이 되었을 때 자신은 천국에 들어가서 승리관을 쓸 것이라고 이미 기록해놓았기 때문이다(딤후4:6~8).


7. 24보좌들 중에 나머지 12개의 보좌들에는 누가 앉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제 나머지 12보좌에는 누가 앉게 되는 것일까? 어떤 이는 24보좌는 신약의 12사도들과 구약의 12지파사람들이 앉을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24보좌는 신약의 구원얻은 대표들인 12제자들이 들어가게 되었으니, 구약의 구원얻은 대표들인 12지파의 대표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앞의 말은 예수님께서도 직접 언급하셨기에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뒤의 주장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12지파의 제일 큰 형인 르우벤은 음행의 죄로 인하여 장자권을 상실했다(히12:16~17, 창35:22, 대상5:1~2). 그런데 구약에서 장자권을 상실했다는 것은 대부분 지옥에 들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12지파의 족장들이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심판하고 다스린다고 하니, 꼭 구약백성의 대표자들만이 그 자리를 들어간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신약에 들어와서 예수께서 천국(하늘의 왕국)에 앉을 자들로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언급하신 적이 있다(마8:11~12). 그러므로 24보좌 중에서 나머지 12보좌 가운데 3개의 보좌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나머지 9개의 보좌는 누가 앉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막10장에 나오는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속에 암시되어 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제 곧 출현하게 될 메시야의 왕국을 고대하면서, 자기를 그 왕국에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때 예수께서는 당신의 좌우편에 앉게 될 자가 누구인지 그 조건으로 2가지를 말씀하셨다. 하나는 고난의 잔과 죽음의 세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막10:38). 그리고 또 하나는 첫번째 조건을 충족한 자들 중에 누구를 위해 그 자리가 준비되었는지 상관없이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막10:39~40). 이는 24보좌에 앉아 왕노릇할 자는 만세전부터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최소한 주님을 위해 핍박이나 죽음까지도 불사할 수 있는 자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섬김을 받으려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서 종된 삶을 사는 자라야 할 것이다(막10:43~44). 그리고 모든 역경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 곁에 머무를 수 있는 자라야 할 것이다(눅22:28). 그리고 주님을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항상 따라가는 자라야 할 것이다(마19:28). 과연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8. 나오며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도 해 본다. 그 자리에 들어갈 자가 과거에 그 자리에 앉아있던 자보다도 지금있는 자가 더 합당한 조건을 갖춘 자라면 교체될 수도 있지 않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한 번 차지하면 천년만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교대로 앉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우리가 알 수 있다. 거기까지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를 통해서 우리는 누구든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만으로 고군분투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어차지 짦은 인생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 것인가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고난과 핍박을 받고 죽음을 불사하며 복음을 전파한다면, 처음 12제자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충성하자. 그리고 순교를 각오하면서 복음전파와 주의 일에 힘쓰자. 천국에서 24보좌의 한 자리가 우리를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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