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 안에는 목사와 전도사, 장로와 권사와 집사 등의 직분의 은사자들이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생존해 있을 때에는 교회 안에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라는 직분의 은사자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 당시 이러한 직분자들이 존재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래서 오늘은 교회 안에 있는 은사의 5가지 직분들 가운데, 전체적인 개념 이해와 더불어 이러한 은사자들의 존재 목적 그리고 사도와 선지자의 은사의 직분이 무엇인지를 집중 조명해 보고자 한다.

2021-08-25(수) 수요기도회
제목: 고린도전서강해(19) 교회 안에 주신 여러 직분의 은사들과 그것을 주신 목적(1)(고전12:28~3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LUq7P-UB604  [혹은 https://tv.naver.com/v/22087797  ]

 

1. 들어가며

  사도 바울이 교회를 개척할 당시에 교회에는 어떤 직분의 은사가 있었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당면한 여러 문제들의 해법을 제시하는 가운데 교회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를 언급하게 되는데, 그것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까지의 말씀이다. 그중에서 고린도전서 12장은 3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는 성령의 9가지 특별 은사를 언급하고 있고, 둘째는 교회의 지체들의 유기적인 통일성과 다양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셋째로, 바울은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를 언급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주신 은사의 직분을 총 8가지로 언급하는데, 그것은 3가지와 5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3가지는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교사들이며, 뒤의 5가지는 능력들, 병 고침들, 도움들, 다스림들, 방언들의 종류들이 있다. 앞의 3가지는 초기 교회 가운데 확실히 굳어진 전문적인 교회의 직분의 은사라고 한다면, 뒤의 5가지는 교회 가운데서 주신 은사들(특별 은사들과 일반 은사들)을 조금 더 많이 활용하는 자들에 대한 소개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주신 전문적인 은사는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 뿐인가? 아니면 더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교회 가운데 이러한 은사를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교회 안에 어떤 직분자를 전문적인 직분의 은사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직분의 은사들과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은사들을 주신 목적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5가지 직분의 은사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어떤 전문적인 직분의 은사를 주셨을까?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서는 3가지 전문적인 직분의 은사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사도, 선지자, 교사'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교회 가운데 주신 전문적인 은사를 2가지 더 언급하였다. 그것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목자)'라는 은사다(엡4:11). 고로 성경에 기록된 직분의 은사는 크게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 등의 5가지로 나눠볼 수가 있다. 참고로, 여기에 등장하는 '복음 전하는 자'란 오늘날에 '선교사'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며, 목사는 '목자(포이멘)'에 대한 대용어이다. 즉 원래는 '목자(포이멘)'라는 은사인데, 이것을 목양과 관련되어 '목사'라는 용어로 바꾼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5가지 직분의 은사를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왜 교회에게 5가지 직분의 은사를 주시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5가지 직분의 은사를 주신 목적을 3가지 언급하고 있다(엡4:11). 그것은 첫째,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는 성도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채비시켜 주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5중직을 주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목사의 가르침과 양육이 없이 성도 혼자서 온전해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둘째, 이는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는 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섬기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섬김을 통해서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되며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 거기에서 받을 상급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또한 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이란 교회를 가리킨다. 즉 교회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로 건축되기 위해서는 5중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교회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5중직의 직분을 가진 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4. 5중직의 직분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 가운데 주신 5가지 은사들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우선 첫째, 이러한 직분이 지금은 없어진 직분인가 아니면 현재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직분인가 하는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는 지금의 시대에는 없어진 직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도 바울이 이 서신서를 쓰고 있을 당시에 쓰여졌던 직분자로서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는 지금의 시대에는 없어진 직분들이라고 하겠다(하지만 '선지자'의 직분과 '복음 전하는 자'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으나 비슷하게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할 뿐더러 지금까지도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직분은 역시 '목사'와 '교사'의 직분이다. 그리고 둘째, 한 곳에 머무르지 않은 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직무를 감당하는 직분의 은사가 있고,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이 죽을 때까지 직무를 감당하는 직분의 은사도 있다. 전자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가 있다면, 후자에는 '목사와 교사'가 있다고 하겠다. 

 

5.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라고 주신 2~3가지 직분의 은사는 무엇인가?

  그런데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주신 5중직 가운데서 2~3가지는 교회를 세우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직분의 은사라고 언급하였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기초)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엡2:20)"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들 중에서 필수적인 것은 '사도'와 '선지자'이며, 덧붙여 한 가지 추가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 전하는 자'다. 이러한 직분자는 교회를 세우는데 반드시 필요한 직분의 은사에 해당한다. 사실 교회라는 개념이 구약시대에는 아직 없었다. 오순절 성령을 받은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는 교회라는 개념이 없을 때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교회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정의되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직 이 땅에 '교회'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기에 12사도들은 '교회란 이런 것이다'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생겨난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던" 것이다(행2:42).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와 그리고 안디옥 교회에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교회의 원형의 모습을 잊지 않을 수 있고,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6. 사도 바울은 어떤 직분의 은사를 받았는가?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대체 어떤 직분의 은사를 받았을까? 사도 바울은 에배소서 4:11에서 언급한 5가지 직분의 은사를 다 받은 사역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그는 사도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에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딤전1:1). 뿐만 아니라 그는 디모데후서에서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복음 전하는 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ㄷ딤후1:11)"라고 말했다. 그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복음 전하는 자와 교사로도 세우심을 입은 것이다. "이를 위하여 내가 [복음을]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교사)이 되었노라(딤전2:7)"고 말함으로써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 전파자'요 '사도'요 '교사'로 부름 받았음을 분명히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선지자'였다(행13:1). 그는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였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13:1)" 그렇다. 그는 최초의 이방인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의 교사이자 선지자였던 것이다. 더욱이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여 거기에서 1년 6개월 동안 목회를 하였다(행18:11). 그리고 에베소 교회에서는 3년 동안 목양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여러분(에베소 장로들)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1)" 이는 그가 목사(목자)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로 사도 바울은 사도와 선지자이자, 복음 전하는 자이면서 목사였고 교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 사도는 어떤 직분의 은사이며 그 종류는 어떠한가?

  '사도'란 어떤 직분의 은사인가? '사도'란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를 가리킨다. 베드로를 비롯한 어린 양의 12사도는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아서 사도가 된 자들이며(눅6:13,9:1, 마10:1~2), 사도 바울을 비롯한 바나바 등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분으로부터 직접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아서 사도가 된 자들이다(행14:14). 그러므로 베드로는 할례자들의 사도가 되었고,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갈2:7~9). 그런데 사실 사도는 자기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야" 사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전1:1). 그렇다면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서신서 등을 통하여 어떤 사람이 사도가 되었고 그래서 쓰임을 받았는가? 첫째, 주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직접적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라야 했다(고전9:1). 둘째, 복음을 위해서라면 고난과 죽음도 참고 인내하는 자라야 했고, 셋째,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통하여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증거가 있어야 했다(고후12:12). 사도 바울은 정말 부름받은 사도였기에 독사에 물렸어도 죽지 않을 수 있었고, 기사도 많이 나타났으니 죽은 청년인 유두고를 살려 내었으며, 점치는 귀신을 쫓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사람 위에 놓아도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것이 치료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과연 '사도'라는 직분이 존재하는가? 한 마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사도와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것이 없었을 때,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정의했던 사람들이 바로 '사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어떤 곳인지,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기초를 닦은 이들이 바로 사도였던 것이다. 사실 이들에 의해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온전케 되었다. 그러므로 이들이 걸어간 발자취와 그들의 말과 그들이 구약을 해석한 것이 기록되어서 신약성경의 책이 되었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의 말이 성령의 계시에 따른 것이어서 그것이 고스란히 성경책이 될 수 있다면 그는 '사도'라고 불리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그러한 사람은 더 이상 없다고 보여진다. 성경책에 나온 사람 이외에 사도직의 은사를 받은 자는 없는 것이다. 다만 오늘날에도 사도적인 권능과 가르침을 행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도 한다.

 

8. 선지자는 어떤 직분의 은사이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선지자가 있는가? 사실 선지자는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 하나였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는 주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하였으며,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여전히 선지자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2:28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준의 선지자는 더이상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러한 수준의 선지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음성을 직접 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행13:2, 11:28), 성령의 계시를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엡3:4~5). 그리고 새로 들어온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를 폭로하여 죄를 회개하고 책망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고전13:24~25). 더욱이 선지자는 개인과 교회와 국가에 대해서 미래의 일을 예언할 수도 있어야 한다(행22:29, 21:11).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이 수반되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선지자라고 하면서 활동하면 아니된다. 특히 선지자의 은사를 조금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서 자신이 마치 선지자인량 행동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선지자에는 누가 있었을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에 신약성경에 선지자들이 몇 명 나온다. 첫째로, 유대인이었던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있었다. 그는 예언하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내려와서 바울을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하였다(행21:11). 그리고 둘째,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에 파송한 선지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A.D.49년경에 예루살렘 공의회가 끝난 후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에 파송되었다. 그들은 바로 '유다'와 '실라'라는 선지자다(행15:32). 이들은 당시 선지자로서 성령의 음성을 직접 들었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말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셋째, 안디옥 교회에도 역시 선지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바나바와 바울도 들어 있었다(행13:1). 

  그렇다면, 왜 신약시대가 되었음에 불구하고 '선지자'의 직분의 은사가 필요했던 것인가? 그것은 교회를 건축하는 데에 사도의 직분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성경을 기술할 때에 선지자의 직분을 가진 자들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지금도 선지자의 직분이 필요한가? 사실 구약시대의 선지자의 직무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에,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도 다시 오실 메시야에 관하여 선포하고, 성도들의 죄를 책망하여, 회개시키는 사역자로서 선지자는 지금도 필요하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수준의 선지자는 아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짜 마지막 시기가 되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거짓 표적과 기사를 행할 것이며, 택하신 자들이라고 미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할 것이다(마24:24).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에서도 여전히 선지자의 직무는 요청된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여전히 거짓된 선지자들이 게속해서 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만 해도 버가모 교회에서는 발람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고, 두아디라 교회에서는 이세벨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9. 나오며

  오늘은 부활 승천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서 이 세상에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를 파송하셨고, 또한 목사와 교사를 임명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렇다. 교회의 성도들이 온전해지고, 봉사의 일을 행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교회 위에 세우신 직분의 은사자들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이들 중에서 교회를 세우기(건축하기) 위해서는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로서의 직분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교회의 성도들을 목양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찰 때까지 인도하려면 '목사'와 '교사'의 직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러한 5중직 중에서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교회 가운데에 내려 주신 직분들 곧 5중직을 살펴보았고 예수께서는 왜 그러한 직분의 은사를 교회에 허락하셨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성경 각 권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5중직을 체계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사도와 선지자가 대체 누군지를 공부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다음 이 시간에는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의 직분에 대해 살펴보기를 원한다. 

 

2021년 08월 25일(수)

정병진목사

 

 

구약시대에도 여전히 성령께서 활동하셨다. 그리고 주의 종들에게 은사를 주셨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은사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교회에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 은사는 어떤 은사인가? 참고로 그것은 2가지 은사다. 그리고 이 땅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을 때, 음부가 해하지 못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직분자로 세우셨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누구였으며 어떤 직무를 수행한 것인가? 특히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의 차이점은 대체 무엇인가? 2021-08-04(수) 수요기도회 제목: 고린도전서강해(18)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3)(고전12:8~3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Ug9nC3t86zM [혹은 https://tv.naver.com/v/21702178 ]

 

1. 들어가며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고린도교회에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답변을 제시하였다. 그중에서 고린도전서 12~14장은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질문한 것을 답변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 '성령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첫 시간에는 왜 성령의 은사가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는지를 살펴보았고, 두 번째 시간에는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 가운데, 처음 7가지 은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오늘은 이제 성령의 9가지 은사 중 나머지 2가지 곧 방언과 방언통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살펴볼 것이고 아울러 한 몸에 붙어 있는 다양한 지체들간의 유기적인 연합과 통일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성령의 은사 중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에 대해서 개론적인 설명과 아울러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의 직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성령의 은사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우리는 지난 주에 성령의 은사들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은 어떤 은사인지에 관해 살펴보았다. 먼저, 성령의 은사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으니, '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 그리고 '직분의 은사'가 있다. '일반 은사'에는 믿지 않는 자들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은사로서 거기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기도 하다. 이러한 일반 은사는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보다 더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일반 은사에는 일반적인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 구제, 다스리는 일, 긍휼 등의 은사가 있다(롬12:6~8). 그리고 '특별 은사'가 있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믿는 이들에게만 선물로 주시는 초자연적인 은사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이 은사를 총 9가지로 소개하였다. 물론 성령의 특별 은사에는 9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직분의 은사에 대해서도 소개하였다. 그러한 은사에는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교사'를 비롯하여 추가로 2가지 은사가 있기에, 직분의 은사에는 총 5가지가 있는 것이다(고전12:28). 

 

3. 은사와 직분과 사역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있어서 '은사'와 '직분'과 '사역'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세 가지는 각각 삼위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로 나타나는 것들로서, 은사의 분배는 같은(동일한) 성령께서 하시고, 직분의 수여는 같은 예수님께서 하시고, 사역은 성부 하나님께서 맡기는 일이라고 하였다(고전12:4~6). 참고로 이 세 가지의 차이점은 이렇다. 직분은 주 예수께서 주시는 은사인데, 직분의 은사는 전시간 사역자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은사는 전시간 사역자가 아니더라도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으로서 그 은사를 가진 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전시간을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성령의 특별 은사에 "예언"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직분의 은사에는 "선지자(예언자)"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둘의 은사는 다르다. 성령의 은사로서 "예언"은 성도가 선물로서 받은 것으로서 사용할 시간이 따로 있겠지만, "직분"은 전시간 동안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신도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사역'은 직분은 맡지 않았어도 어떤 일을 도맡아 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의 청소를 담당한다든지, 안내를 담당한다든지, 예배위원을 담당한다든지 하는 것은 사역을 맡은 것에 해당한다. 

 

4.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령의 특별 은사 중에서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를 제외한 나머지 7가지 은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것에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함, 영들분별함"이 있었다. 이것들 중에서 '앎'에 관한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들 분별함'의 은사이다. 그리고 '행함'에 관한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의 은사가 있다. 그리고 '말'에 관한 은사가 있아면 그것에는 '예언, 방언, 방언통역'이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루게 될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는 일종의 '말'의 은사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방언의 은사란 대체 어떤 것인가? 방언이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이 말하는 언어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은 영이 주님께 말하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언어가 아니라.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영의 언어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방언은 '헛소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고로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의 말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그것을 알아들으신다. 그런데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영의 언어를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석해주는 은사가 있다. 즉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를 알아 듣게 하는 것이 바로 '방언통역'인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방언통역의 은사와 쌍을 이룬다. 

  그렇다면, 방언 통역의 은사는 무엇이며, 방언을 통역해보면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 것일까? 방언통역의 은사는 남이 하는 방언이 무슨 뜻인지를 자신이 알아듣는 은사를 가리키는데, 그때 들려오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나라의 말로 들려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방언을 들을 때 그 방언의 전체적인 내용이 그냥 깨달아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방언통역"의 은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언을 통역했을 때에는 거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가? 그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다. 하나는 영이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가 담겨 있으며, 또 하나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어있다.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는 때로는 책망이나 꾸지람의 말이 들어있기도 하고, 위로와 권면의 말씀도 들어있으며, 때로는 주님께서 우리를 앞으로 어떻게 쓰시겠다고 하는 미래의 비전에 관한 말씀도 들어 있다. 그러므로 방언을 통역하면 일종의 예언의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방언과 방언 통역에 관하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 따로 다루고 있으니 그때 가서 보다 더 자세히 다를 것이이다. 

  오늘은 다만 왜 거듭난 사람이 되면 방언을 말할 수 있게 되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는 구약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은 성령의 선물이다. 성령의 특별 은사들 가운데, 방언과 방언 통역을 제외한 나머지 7가지 은사는 구약시대에도 있기는 있었다. 다만 그 강도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살던 성도들 중에는 단 한 사람도 방언으로 말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신약시대에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가 덧붙혀진 것인가? 그것은 사람의 거듭남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약시대에 성도는 전부가 다 하나님의 백성 혹은 하나님의 종에 불과했다. 한 사람도 거듭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 사람이 거듭날 때에 아주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성령이 들어오신다고 예수께서 약속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시어 하늘에 가신 후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실 수 있게 되었다. 그때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요 죽지 아니하는 생명이요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사람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속에 성령이 들어오시면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거듭나게 된다(요3:5). 그때 기존에 사람이 갖고 있는 생명에다가 하나님의 생명이 더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가 잡히는데, 그것의 하나가 바로 '방언'이라는 것이다. 즉 방언이란 죽은 상태에 있었던 우리의 영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심으로 그 충격파가 생겨 영이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든 거듭난 이는 자기 영 속에 성령을 모시고 있으므로 누구든지 방언으로 말할 수가 있다. 하지만 모든 태어난 사람이 다 방언을 말하지는 않는다(고전12:30). 어떤 사람은 방언의 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의적으로 거절하기 때문에 방언을 하지 못할 수 있으며, 영적인 세계를 터부시할 때에도 방언의 은사는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거듭남과 동시에 영의 터치가 일어나는데, 그때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다(행2:4).

  그러므로 방언은 자신의 영이 거듭났다고 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이 거듭난 사람이라도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받은 자는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아무래도 천국에 들어갈 확률은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반대로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하는 것도 옳은 것이 아니다. 방언을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회개하고 믿음을 지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5.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이 모여있는데 어떻게 해서 한 몸이라고 하는가?

  교회에는 다양한 지체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체들 중에는 더 연약한 지체들도 있고, 덜 귀히 여기는 지체들도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름답지 못한 지체들도 있을 수 있다(고전12:23~24).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지체들이 유기적으로 모여있는 연합체인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많은 지체들이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지만 그 몸 안에 많은 지체가 있다고 했다(고전12:12, 20, 27).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구별이 없으며, 종이나 자유인이나 구별 없이 다 하나의 지체인 것이다(고전12:13). 그러므로 한 지체가 다른 지체더러 필요 없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지체들이 모여 완전한 하나의 몸을 이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여름에 덥고 배가 고파서 냉장고에서 시원한 우유 한 잔을 꺼내서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하자. 그러면 눈만 있어서는 그 우유를 먹을 수가 없다. 발이 냉장고 앞으로 가야 하고, 손이 냉장고의 문을 열고 그것을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이 벌려서 그 우유를 마시게 될 때 비로소 몸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눈이 가장 소중하게 보이고, 냄새 나는 발은 덜 귀히 보이겠지만, 내 몸이 우유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모든 지체들이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 몸에 아름답지 못한 지체에 존귀함을 더하여 몸 가운데 분쟁이 없게 하고 오히려 서로 지체가 서로를 돌보게 한다고 하셨다(고전12:24~25). 우리 몸에 있는 각 지체가 다 중요하지만 한 가지의 지체만으로는 자신의 온 몸을 건강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몸의 한 지체가 고통을 받거나 반대로 우리 몸의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온 몸이 함께 고통을 받게 되고 함께 영광을 받게 된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협력함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몸인 것이다(고전12:26~27). 

 

6. 직분의 은사는 과연 누가 주는 것이며, 그러한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어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에 관하여 언급하였다(고전12:28).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교회에게 주어진 직분의 은사를 크게 8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다시 셋과 다섯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앞의 셋은 "사도들, 선지자들, 교사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뒤의 다섯은 "능력들, 병고침의 은사들, 도움들, 다스림들, 방언들의 종류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뒤의 다섯 가지 것들은 사실 직분의 은사라기보다는 특별 은사라고 보아도 무방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사실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고유한 직분의 은사에는 앞의 세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편지보다 조금 뒤에 썼던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에게 주어진 직분의 은사를 더 언급한다. 2가지를 더 추가한 것이다. 이제 그 다섯 가지 직분의 은사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전하는 자들, 목사들, 교사들"이 그것이다(엡4:11). 그러니까 A.D.55년경에 기록했던 고린도 교회 안에는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만 있었다면, A.D.61~63년에 기록했던 에베소 교회에는 앞의 세 가지의 직분에다가 "복음전하는 자"와 "목사(목자)"가 더 추가된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로, 누가 교회 안에 이러한 직분자를 세우시는 것인가가? 에베소서 4장에 따르면, 그분은 죽어서 음부에 내려가셨으나 오히려 하늘로 올라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엡4:8~10). 이것은 고린도전서 12:5의 말씀과 정확히 일치한다. 교회에게 어떤 직분을 주시는 이는 "주님"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께서는 왜 직분을 주시는가? 그것은 3가지로 그 목적이 나와 있다. 그것은 첫째,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며, 셋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엡4:11).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로, 교회 안에는 어떤 직분이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다섯 가지 직분이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직분은 전시간 봉사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자를 가리켜 직분자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시 말해, 이 다섯 가지 직분은 교회 안에 있는 전시간 봉사자들로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는 일종의 직업과도 같은 것이다. 

 

7. '사도'의 직분과 '복음전하는 자'의 직분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바울은 교회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직분을 주셨는데, 그중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있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 두 가지 직책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직책이라고 하였다(엡2:20). 이 땅에 있는 교회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정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혀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직분자로서 "복음전하는 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복음전도자"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사도들"과 "복음전하는 자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먼저, "사도"가 어떤 사람들인지부터 살펴보자. '사도'란 헬라어로 "보내심을 받은 자(아포스톨로스)"라는 뜻이다. 그런데 보내심을 받았어도 보냄을 받은 자들 모두를 '사도'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이때 사도들을 보낸 분은 반드시 "주 예수님"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도들을 보내는 목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기 위함"이어야 한다(행1:21~22). 그리고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신약성경에는 사도라는 직분을 가진 자가 참 많이 나온다. 세어보면 총 23명이나 나온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12제자들만을 사도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주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가 선택받았다면 그는 '사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도 않은 사람을 가리켜, 그를 사도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바울에 대해서 논쟁이 많았다. 왜냐하면 바울은 친히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바울은 '사도'라고 부른다. 아예 이름을 부를 때에도 이름 앞에 직책을 넣어서 "사도 바울"이라고 쓰거나 또한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바울이 살아있을 당시만 해도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한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아예 성경 한 권을 저술하였으니, 그 책이 바로 '고린도후서'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군가가 그가 사도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려면 '고린도후서'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동일한 예수님에게서 파송을 받은 자다. 다만 그는 육신을 입으신 주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직접 파송을 받은 차이가 있다. 그러한 장면은 사도행전 9장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도 '사도'라고 칭한다. 이러한 사도에 관한 말씀은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둘째, '복음전하는 자'는 사도와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먼저 둘이 같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두 둘이 다 직분의 은사로서, 전시간 봉사자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도란 사도적인 직무에 전무하는 자요, 복음전하는 자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무하는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도는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심을 받아서 주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에 전무하는 자를 가리키고, 복음전하는 자는 주 예수님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시간 봉사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도에는 어린양의 12사도인 '베드로'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파송받은 '바울'이 있다.

  한편 대표적인 '복음전하는 자'로서는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였던 '빌립'이 있다. 그를 가리켜 사도행전의 저자는 '복음전하는 자(유앙겔리테스)'라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행21:8). 그럼, '빌립'은 어떻게 되어서 집사에서 복음전도자가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닥친 핍박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12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성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일곱 집사도 흩어지는 가운데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한다(행8:4~5). 그러자 그 동네에서 빌립의 전도를 받아 믿음을 갖게 된 자들이 빌립에게서 세례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당시 빌립은 어떻게 전도자가 되어 사마리아성에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었는가?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치유와 능력행함의 은사가 있었다. 그래서 병든 자를 고칠 수 있었고, 귀신을 내어쫓아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사도'나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고, 그를 '복음전하는 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8. 나오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없애고 은사들의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들과 직분의 은사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교회에는 어떤 직분이 필요하며 또한 교회에게 왜 직분자가 생기게 되었으며 그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특히 교회가 온전케 되기 위해서는 은사로서는 부족하고 직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양의 12사도들과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도로 부름받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교회가 어떻게 기틀을 잡고 또한 세워졌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직분자로서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가 누군지에 대해 조금 살펴 보았다. 다음 주에는 주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직분자의 자격과 역할 및 그 기능과 목적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우리에게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의 직분에 관하여 조금이나마 더 깨닫게 하시고 기도케 하시며 사모하게 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린다. 

 

2021년 08월 04일(수)

정병진목사

 

이 세상에 있는 직분 가운데 가장 어렵고 두려운 직분이 있다면 그것은 "목사직"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고로 주께서는 이 직책을 잘못 감당하는 자에 대해서는 엄한 신판을 예고하신 바 있다(마18:6). 그렇다면, 목사직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며,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에 맞물려 성도들은 목회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협력해야 할 것인가? 그 비밀이 오늘 말씀 속에 들어있다. 2020-07-17(금) 금요기도회 제목: 성령의 은사(25) 목사의 은사와 그 역할은 무엇인가?(엡4:8~12) https://youtu.be/Gb-N5gD6nMw [ 혹은 https://tv.naver.com/v/14846697 ]

 

 

1. 들어가며

  성령의 은사에는 크게 일반은사와 특별은사가 있다. 그중에서 초자연적인 특별은사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들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총9가지 은사들인데,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들치료함의 은사, 능력행함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들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은사들 말고도 직분으로 주어지는 은사들도 있으니, 그것은 고전12:28~30에 따르면, "사도"의 은사, "선지자"의 은사, "교사"의 은사가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에베소서 4:11에 의하면, 직분의 은사는 방금 전에 말씀드린 3가지 것 외에도는 2가지가 더 있음을 소해하고 있는데, 그것은 "복음 전하는 자"의 "목사"의 은사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것들 중에서 '목사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목사의 은사"란 대체 어떤 은사이며, 목사직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자이며, 성도들을 어떻게 목사와 협력할 것인지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목사의 은사는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가?

  목사의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오중직의 직분은사들 중에서 교사와 함께 등장하고 있는 은사다(엡4:11). 이것이 한글말으로는 "목사와 교사"의 은사로서, 두 가지 직분을 가진 다른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만 실은, 정관사 하나만 붙어 있는 것이기에, 목사이면서 교사의 은사라고 했던 것이다. 고로 목사직의 은사를 받은 자는 필수적으로 교사직의 은사도 동시에 받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사의 은사는 한 교회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직분을 수행하는 은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나머지,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교사의 은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는 직분의 은사들에 해당한다. 그런데 "목사의 은사"는 교사의 은사를 동시에 수행하는 직분의 은사인데, 그것은 한 곳에 머물러서 그 직분을 수행하는 은사인 것을 알 수 있다. 

 

3. 목사의 은사는 어떤 은사를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목사"의 은사는 어떤 은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목사"의 은사란 목사의 직분을 수행하는 은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목사직의 직분은 사실 "목자"의 직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헬라어원문을 통해서 볼 때, 엡4:11에는 "목사"라는 신분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글성령으로 본다면, "목사"라는 단어는 오직 엡4:11에서만 단 한 번 등장하고 있긴느 하지만, 헬라어로 볼 때에는 이 단어는 "목사(사목)"가 아니라, 양떼를 돌보는 "목자"(shepherd)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의 직분은 목자라는 직분에서 흘러나와서 더욱 발전된 과정을 거친 직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4. 목사의 원래 직분인 "목자"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우리는 지금의 목사라는 직책이 곧 목자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목자"라는 직책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호칭에서 나온 것이다. 다윗의 시로 추정되는 시편100편에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표현함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편23편의 다윗의 시에서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시23:1~4).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육신을 입고오신 예수께서도 당신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비유할 때에, 당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였으며, 우리 인간을 일컬어 "양"이라고 비유하였다(요10:11~15)."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요10:14~15a)". 고로 오늘날 "목사"의 직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도를 목양하는 직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조금 뒤에 살펴보겠지만, 부활후 갈릴리바닷가에서 예수께서는 어린양의 12제자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심으로, 목자로서의 직분을 사도들에게 위임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기자는 예수님을 일컬어 "양들의 큰 목자(히13:20)"이라고 언급하였고, 베드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벧전2:25)"이라고 언급한 한편, "목자장(벧전5:4)"이라고 말했다. 

 

5. 목자인 목사는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자인가?

  그렇다면, "목자"라는 직분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자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도들을 목양하는 직분을 가리킨다. 고로, "목자"라는 직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주변에 다른 양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떼가 없는 목자는 더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로, 목자로서 오늘날 목사는 양으로서 성도들과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상대적인 은사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목자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자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바다에서 나타나셨을 때에 베드로에게 부탁하신 말씀 속에 잘 나와 있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제 베드로에게 목자라는 직분을 수여하셨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 "내 양을 치라(요21:16)", "내 양을 먹이라(요21:17)"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먹이라(헬, 보스코)"는 단어와 "치라(헬, 포이마이노)"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두 단어의 뜻은 실은 정반대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먹이라(보스코)"는 단어는 "풀을 뜯게하라" 혹은 "양으로 하여금 음식을 먹게 하라"는 뜻인 것에 비해, "치라(포이마이노)"는 단어는 "지키다. 돌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땅에 세워진 교회에서 목양하고 있는 자가 반드시 해야 할 2가지 직무가 있으니, 그것은 양을 먹이는 일이요, 양떼를 지키고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목자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먹이는 직책이라는 것이다(요21:15,17). 성도는 제때에 필요한 말씀으로 공급하지 못하는 분은 목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목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에 능통한 자라야 하며, 그 말씀을 잘 먹일 수 있는 은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의 목동이었던 다윗은 하나님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노래했으며(시23:1), 목자가 해야 할 일로는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언급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어떤 위험한 상황에 도달한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지키고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여 그들을 튼튼하게 성장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하겠다. 

  둘째, 목자는 양떼를 해치려는 세력들(곰, 사자, 이리 등)로부터 양떼를 지키고 보호하는 직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23편의 기자인 다윗은 목자이신 여호와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그림자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악, 악한 자)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당신)의 지팡이와 [당신의] 막대기가 나를 안위(위로)하시나이다(시23:4)" 그렇다. 여기서 등장하는 두 가지 도구는 그것의 말해주는 의미가 대단하다. 왜냐하면 "막대기"를 양을 해치려 오는 동물들을 후려치는 역할을 하는 도구라며, "지팡이"는 양떼들을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떼를 해치려는 자들을 파악하여 그것을 가려내어 제거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6. 목자로서 목사는 무엇에 유의해야 하는가?

  목자이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도를 양육하고 돌보아야 할 목사는 양떼인 성도들을 어떻게 목양해야 하는 것인가? 성도를 위한 목자로서 위임받았던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벧전5:1-4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그렇다. 양무리를 목양하는 목자로서 목사는 자신의 직분을 억지로 감당해서는 아니 된다. 자발적으로 해야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기 말고 오히려 기쁨으로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맡은 자들에게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식으로 목양하지 말고, 양무리의 모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장차 재림하시는 목자장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영광의 승리관을 받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7. 목자인 목사를 돕는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목자인 목사로부터 목양을 받는 성도들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목자를 따라야 하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목자에 대한 양의 자세를 이렇게 말하였다. 

히13:17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신약성경 가운데 베드로와 히브리서기자는 예수님을 목자로 비유하였는데, 그중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목자로부터 목양을 받는 성도가 취해야 할 행동과 자세를 제시하는데, 이때 목자들은 어떻게 성도들을 목양하는 자인가를 소개해주고 있다. 그들은 성도의 영혼을 위하여 깨어있기를 심판 때에 꼭 자기가 계산(회계)할 자인 것처럼 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목사(목자, 목회자)는 다 그렇게 살고 있는 신분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목자로서의 일을 감당하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근심으로 하게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기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8. 나오며

  오늘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로서 "목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목사는 원래 "목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양떼인 성도들을 목양하는 목자에서 나온 것임을 살펴보았으며, 그것은 인간을 양으로 비유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명칭에서 온 것임도 살펴보았다. 결국 목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도를 목양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누가 함부로 그 직분을 맡을 수 있겠으며, 함부로 이 직책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만세전의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에 따라 목사도 나오는 것이다(렘1:5,갈1:15,딤후1:9). 예수께서는 만약 양떼의 작은 자 중 한 명이라고 실족하게 한다면, 차리라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실만큼 목사직을 수행하는 자를 엄하게 심판하실 것임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마18:6).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직분이 있다면 그것은 목사직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천국에 들어가는 목사들은 성도들에 비해 거의 배 정도 적은 수가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양떼들을 잘못 인도하고 잘못 가르친 댓가는 실로 크다고 아니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땅에 목사들은 그만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살아가는 자이며, 또한 두렵고 떨림으로 그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목회자를 존중하고 목자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로 협력하고 함께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0년 07월 17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24) 복음 전하는 자(전도자)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엡4:8~12)_2020-07-17(금)

https://youtu.be/YCja0c8VYGs  [혹은 https://tv.naver.com/v/14827295  ]


 

1. 사도바울은 교회 가운데 있는 직분으로서의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말했나요?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 가운데 하나님께서 성도를 온전케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5가지 직분의 은사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은사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가 있습니다. 

 

2. "복음 전하는 자"라는 어떤 직분의 은사인가요?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2:28~30에서, 직분으로서의 은사를 3가지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곧 "사도, 선지자, 교사"라는 은사입니다. 그런데 엡4:11에서 사도바울은 그것에다가 추가하여 2가지 직분의 은사가 더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복음 전하는 자"(유앙겔리테스)와 "목사"(포이멘)입니다. 이중에서 "복음 전하는 자"란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에 주셨던 오중직의 하나로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행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3. 성경에서는 누구를 "복음 전하는 자"(유앙겔리테스)"라고 소개하고 있나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의 행적들을 살펴보건데,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서 명칭상 구분이 명확히 구별되어 전도자로 불린 사람은 약 세 사람 정도입니다. 첫째는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아시아와 유럽에 최손 3차례 이상 복음을 전했던 자였기 때문입니다(딤후1:11, 갈1:6~9). 사실 사도바울은 "복음 전하는 자"였을 뿐만 아니라 "사도"이자, "교사"였습니다(딤후1:11).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해 강하게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것을 그것에 더하여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는 가짜복음이며 그렇게 전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갈1:6~9). 여기에서 "다른 것"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도 안식일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고, 절기를 지키는 것 등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의식법으로서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이미 완성하심으로 폐지하신 것들입니다. 둘째는 디모데가 바로 "복음 전하는 자"였습니다(딤후4:5). 사도바울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파하도록 힘쓰라고 당부하면서, 그에게 모든 일을 신중하게 행하되 전도자의 책무를 잘 감당하라고 권면하였기 때문입니다(딤후4:5). 그리고 셋째는 빌립[집사]의 경우입니다(행21:8). 예루살렘교회의 일곱집사들 중에 한 사람이었던 빌립은 예루살렘에 불어닥친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져서 복음을 전파했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는데, 그는 혼혈인이 살고 있는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마리아에 개척교회를 세웠습니다. 

 

4. "복음 전하는 자"와 "사도, 선지자, 교사, 목사"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요?

  "복음 전하는 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이지만 그것을 생업처럼 행하고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는 어떤 한 장소나 한 교회에 머물러 있는 그러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자는 일명 "순회전도자"라고도 불리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순회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직분을 감당하는 자들로서 이러한 은사자에게는 "사도, 선지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며서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는 교회의 직분자가 있으니, 그들의 직분은"목사, 교사"라는 직분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8장에 보니, 빌립은 전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는 수많은 표적과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여러가지 놀라운 표적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요, 많은 사람들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많은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으며, 못 걷는 사람도 걷게 되는 기적과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어떤 것이 너희 위에 내려오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라와 땅끝까지 이르러 [장차] 내 증인 될 것이다(행1:8)"의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의 완전한 성취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복음만 들고 세상으로 나갈 것이 아니라 능력도 꼭 함께 가져가야 하는 것입니다. 

 

5. 복음 전하는 자가 능력이 없이 전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복음을 전하는 자가 능력없이 말로만 전도했을 때에는 전도 받은 자의 구원문제에 있어서 상당한 복잡한 것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능력을 통해서 비로서 불신자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게 되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능력 없이 전도를 한다면, 그러한 전도는 잘못된 말장난으로 끝날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사실 말로만 하는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 사실 여러 간증에 따르면, 거의 10%도 채 되지 못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로, 자신이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로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소명을 받은 자가 있다면, 그분은 적어도 빌립[집사]처럼 꼭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한 후에 복음을 전파하실 소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초신자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러면 정말 더욱 더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0년 07월 17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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