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죄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뭐니뭐니해도 음행의 죄요 간음죄일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사람이 심령 깊숙히 박히는 죄가 되기 때문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왠만해서는 빠져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죄는 자신의 몸 안에 죄를 짓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행죄와 간음죄의 유혹은 미리 차단하는 것이 가장 좋다. 환경을 차단하고 멀리하고 조심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러한 죄에 빠졌다면 그는 사생결단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금식하며 몸부림쳐야 한다. 그리고 단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이 꼭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도둑질 죄다. 그것은 물질만이 아니다. 마음의 도둑질도 있고 시간의 도둑질도 있다. 오늘날 성도들은 예배시간을 빼먹거나 지각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도둑질해서는 아니 된다. 또한 하나님께 바쳐야할 것도 도둑질해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들은 꼭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원함으로 해도 되는 것인가? 율법의 의식법들이 십자가에서 이미 폐지되었는데, 십일조를 꼭 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은 이것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찾아보려고 한다. 주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2019-01-09 수요기도회
제목: 출애굽기강해(19) 제7계명과 제8계명 어떻게 지킬 것인가?(출20:14~15)
https://youtu.be/0YSnqMXTFz8


1. 들어가며

  십계명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규범을 제시한 도덕법들이다. 그중에서도 인간 사이에 지켜야 윤리조항은 총6가지(제5계명~10계명)인데, 이것들은 다 유심히 살펴보면, 제1계명에서 제4계명을 잘 지키기 위한 것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제5계명(부모공경)은 제1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 훈련과정이며, 제7계명(간음금지)는 제2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규범인 것이다. 또한 제8계명(도둑질금지)는 제3계명을 잘 지키기 위한 도덕법에 속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제7계명과 제8계명의 위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제7계명(간음금지)과 더불어서 동성애, 이혼, 재혼에 관해서도 같이 살펴볼 것이며, 제8계명(도둑질금지)과 더불어 십일조에 성경적인 가르침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왜 인간은 간음하지 말아야하며, 왜 인간은 도둑질해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인가?

 

2. 제7계명(간음금지)은 어떤 계명이며, 왜 주셨고,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제7계명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간음금지 명령이다. 그래서 흔히들 "7계"를 범하지 말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여기서 "간음"이라 함은 부부간의 정상적인 성생활을 넘어 다른 존재와 갖는 불법적인 성생활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부부간에 있어서 성생활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결혼한 배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존재(사람이나 짐승 등)와 성생활을 갖는 것은 문제가 된다. 왜 간음죄는 문제가 되는 것이며, 왜 간음죄는 저질러서는 아니 되는 것일까? 사실 간음죄는 부부간의 신뢰관계를 깨뜨리는 가장 큰 죄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간음죄를 저지르게 되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다른 신들을 섬길 수 있게 된다. 곧 두 마음을 품는 것이 간음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간음죄금지 명령을 주신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기로 했다면 죽기까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신뢰하라는 뜻이 들어 있다.

  성경에 보면, 결혼한 사람이 간음죄를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이유들이 나온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 4가지만 든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창조의 법칙 곧 일부일처제의 질서를 깨뜨리는 악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창2:24). 남자는 부모를 떠나 한 아내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명하신 신성한 법칙이다. 그런데 간음은 이런 관계를 깨뜨리는 행위가 된다. 곧 가정이 깨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부가 만나 한 몸을 이루는 가정은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신성한 영역이자 행복의 산실이다. 그런데 간음죄는 이 행복의 처소를 망가뜨리는 것이 된다. 둘째로, 간음은 배우자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레20:10). 결혼은 일종의 부부의 정조와 대의에 관한 쌍방의 약속이다. 하지만 이것을 깨뜨린다는 것은 부부의 신뢰를 깨뜨리는 가장 나쁜 행동이 된다. 셋째로,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간음행위는 성령의 전인 자신의 몸을 현저하게 더럽히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고전6:15,18~19). 사람의 모든 죄는 몸밖에 짓는 죄이지만 음행과 간음의 죄는 사람의 몸 안에 죄를 짓게 된다. 그러므로 죄가 양심까지 온통 더럽힐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으며, 멸하시겠다고까지 말씀하셨다(고전3:16~17). 넷째로, 간음은 당장 돌로 쳐죽일만큼의 큰 범죄가 된다고 했으며(레20:10), 죽어서는 지옥형벌을 면치 못할 죄가 되기 때문이다(고전6:9, 히13:4). 그러므로 혹 자신이 죽어서 지옥형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간음을 해도 된다. 하지만 죽은 후에 지옥형벌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간음하지 말아야 한다.

 

3. 간음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성경에서는 간음죄를 비단 부부이외의 성생활만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음행의 죄로서 간음금지만을 말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간음죄 금지와 더불어, 근신상간 금지(레18장), 매춘 금지(레19:29), 동성애 금지(레18:22,신23:18), 수간 금지(레20:15~16)까지도 다 명하고 있다. 특히 동성애나 수간(짐승과의 성생활)은 가증한 일이라고 규정하시면서 이런 자들은 반드시 돌로 쳐죽이라고 명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서양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동성애와 수간을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추세가 되어버렸다.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의 원주민을 내쫓아내신 줄 아는가? 그들이 동성애와 수간으로 인하여 그 땅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와 수간의 죄를 끊지 못하는 자는 그가 예수님을 믿는 자라 할지라도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천국이 그 사람을 토해낼 것이기 때문이다(레18:22~30).

 

4. 예수께서는 간음죄의 범위를 어떻게 확대하셨는가?

  더불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 곧 예수께서는 사람의 간음죄를 행위로 나타난 것만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사람이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5:27~28). 그리고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5:29~30). 혹시 누군가를 쳐다보고 음탕한 생각이 지나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음욕의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간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이혼하고 재혼하면 그것이 간음이 되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자기의 배우자와 이혼하고 다시 재혼하면 그것이 간음이 되는가? 그렇다. 그것은 100% 간음이다. 그것은 100% 지옥갈 죄가 된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자신의 배우자로 선택하여 둘이 하나가 되는 것에 관하여는 우리의 의지와 선택을 존중하신다. 하지만 한 번 배우자로서 누군가를  선택했다면 그 배우자는 평생 버리지 말아야 한다. 둘이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마19:4~6).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성격차이라고 이혼하고,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고 하여 이혼한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려고 이혼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음행한 이유 이외에 결코 이혼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마19:9). 그러므로 그러한 이혼은 결코 이혼이 아니다. 별거일 뿐이다. 그러므로 음행한 이유 없이 이혼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결혼하게 되면 그것은 간음이 되는 것이며, 이혼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도 간음이 되는 것이다(눅16:18).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직접 들려주신 말씀이지 결코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다(마5:31~32, 눅16:18, 마19:9). 그러므로 사람이 한 번 결혼했으면 끝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 미우나 고우나 내 짝이며, 영원히 버릴 수 없는 배우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결혼했는데 이혼하고 싶다면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음을 알고 이혼해야 한다. 영원히 죽을 때까지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든지 아니면 다시 전 배우자와 합치든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재혼은 오직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배우자의 죽음 뿐이다(고전7:39~40). 그것도 재혼할 때에는 이혼한 사람과 절대 재혼해서는 아니 되며, 처녀 총각이든지 아니면 사별한 사람과는 재혼할 수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혼하지 말라고 이러한 말씀들을 주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자기의 배우자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마19:4~6). 이것을 넘어서면 곧 간음이 되며 가정이 파괴되어 자녀들에게 큰 상처만을 안겨줄 뿐이다.

 

6. 간음죄를 이기고 털어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이 짓는 죄들 중에서도 가장 털어버리기 쉽지 않은 죄가 바로 간음죄다. 왜냐하면 이 죄는 자기의 몸 속까지 파고드는 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담의 죄성을 물려받은 인간은 죽는 그날까지 죄성에 노출되어 있는데, 한 번 간음을 경험한 자는 양심이 더럽혀져서 다시 간음하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4가지 처방이 도움이 될른지 모르겠다. 앞의 2가지는 소극적인 방법이요, 뒤의 2가지는 적극적인 방법이다. 첫째, 음행을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을 피하라는 것이다(창39:12). 요셉은 그러다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진정어린 마음을 아시고 그를 완전히 높여주신다. 둘째, 내가 이 죄를 저지르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되새기도 또 되새기는 것이다.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지옥에 갔다온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철저히 회개하되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이다(눅2:37). 아예 그 죄성을 도말하기 위해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해야 할른지도 모르겠다. 넷째,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소욕이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갈5:16~17).

 

7. 사람은 왜 제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켜야 하는가?

  도둑질의 죄는 나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나 하나님의 것인데도 그것을 몰래 훔쳐 오는 죄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8번째 계명으로서 허락없이 훔치는 것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시고 있는가? 그것은 사실 그 죄가 바로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요10:10). 예수님께서는 "도둑이 온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요10:10)"이라고 말씀하셨다. 도둑 마귀의 속성이 도둑질이라는 것이다. 마귀는 원래 하늘에서 쫓겨난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다른 천사들의 마음을 훔쳐서 하늘에서 쫓겨났다. 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사들의 1/3의 마음을 훔쳐 자신의 부하로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번역의 깃발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세력들을 하늘에서 내쫓아버렸고 그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을 만드셨다(마25:41). 그러므로 마귀와 귀신들은 지금도 사람의 영혼을 도둑질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요10:10, 13:2, 12:6).

 

8. 사람이 도둑질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사람은 결코 땀흘려 수고하여 정당하게 얻은 것이 아닌 것들을 자기의 것으로 몰래 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도둑질하지 말아야 하는가? 성경은 3가지 정도를 말하고 있다. 첫째,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치지 말아야 한다(삼하15:6).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기 맘대로 이용하는 것이 바로 첫번째 도둑질 죄인 것이다. 압살롬은 자신의 잘 생긴 외모를 사용해 이스라엘의 여인들의 마음을 훔치더니 결국 나라까지 훔치고 말았다(삼하15:6). 하지만 그의 도둑질 죄를 얼마가지 못해 비참하게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다. 도둑질한 것으로 성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남의 시간을 도둑질하지 말아야 한다. 약속시간은 꼭 지켜야 한다. 지각은 상대방의 시간을 도둑질한 것이다. 예배시간에 지각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도둑질한 것이다. 그리고 주일성수를 꼭 실천하라. 사실 일주일의 하루는 주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구약에 예표적으로 안식일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시간을 훔쳐서는 아니 된다. 셋째, 다른 사람의 물질(재물)을 훔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몰래 빼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재물일 수도 있으나 정보가 될 수도 있다. 세금을 떼먹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반드시 드려야할 십일조와 봉헌물이라고 했다(말3:8).

 

9.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가?

  오늘날 성도들은 과연 십일조를 꼭 해야 하는가? 인터넷을 보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꼭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구약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처음에 십일조는 자발적인 감사로 하는 행위였다(창14:17~20, 28:20~22). 하지만 시내산에서 그것이 율법으로 제정됨에 따라 십일조는 의무사항이 되었다(레27:30~33). 그러나 이것을 행하지 않는다고해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바라신 것 같다. 왜냐하면 십일조가 쓰이는 용도가 바로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의식주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에 있어서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원래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에 하나님께 바쳐진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일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이 의무사항이기는 했지만 불이행시 어떤 불이익이 주어지지 않음에 따라 사람들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규정한 십일조는 3가지 종류였다(레27:30~33, 신12:17,14:22,25). 첫번째는 곡식(밀과 보리)의 십일조가 있었고, 두번째는 나무의 열매의 십일조로서 감람나무의 열매로서 감람유와 포도나무에서 나는 포도주가 있었다. 그리고 세번째는 소와 양의 십일조가 있었다. 그것은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는 소와 양 중에서 열번째로 지나가는 것을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바꾸지 말라고 하셨다. 이러한 백성의 십일조는 하나님께 바쳐진 후 레위인들에게 돌려졌고, 레위인들은 백성으로부터 받은 레위인들의 십일조를 다시 하나님께 바친 후 그것은 제사장에게 돌려졌다(민18:21,28).

  그런데 이러한 십일조를 백성들이 드리지 않게 되자,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살기가 막막해지고 말았다. 결국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은 어떤 집의 개인의 제사장으로 취직하여 입에 풀질을 해야 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을 빼돌리거나 돈을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B.C.400년 제사장들의 타락상을 언급하면서,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행위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범죄행위라고 엄하게 꾸짖으셨다(말3:8).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백성들이 저주를 받은 원인이라고 말씀하셨다(말3:9).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십입조를 내는 자가 받을 축복을 말씀해주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늘문들을 열고 복을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 복은 2가지였다. 하나는 메뚜기떼를 금하여 토지소산의 열매를 먹어 치우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이미 받은 복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이다. 또 하나는 밭의 포도나무의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했다. 이는 자기가 앞으로 얻게 될 축복이 하나도 없어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10. 율법이 폐지된 신약시대 이후에 십일조는 의무사항인가 아니면 선택사항인가?

  사실 십일조법은 구약의 율법 가운데서도 의식법에 속하는 법이다. 어떤 행위를 통해서 복을 받는 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다 알다시피, 예수게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의식법들을 완성하심으로 의식법들은 모두 폐지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의식법들을 의무적으로 지킬 필요가 없다. 안식일법, 절기법, 성결법, 음식법, 제사법 등이 다 폐지된 것이다.

  그렇다면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관하여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을까? 만약 예수님께서  특별히 주신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의식법에 속한 십일조이지만 그것에 관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다. 그것은 마23:23에 있다.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정의와 긍휼과 믿음)도 행하고 저것(십일조)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그렇다. 우리의 모든 판단기준은 예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그것을 뛰어 넘어서도 아니되고 부족해서도 아니 된다. 그런데 구약의 모든 의식법들 가운데 십일조에 관한 것만큼은 계속해서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그렇게 말씀하셨까? 그것은 아마도 십일조의 용도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구약시대에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를 통하여 속죄가 이루어졌고, 축복을 받았고, 율법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신약시대 이후에는 목회자들에게 그 직분이 계승되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의식주를 위해서는 아마도 십일조가 교회에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십일조만큼은 계속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이러한 십일조를 했는지에 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뛰어넘어 전 재산을 바치는 일도 있었고, 이방 교회에서는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연보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폐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성도가 십일조를 바치지 않았다고 해서 지옥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십일조가 하나님에게 드려질 때, 교회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적은 교회는 십일조의 양이 작아서 다 목회자들의 의식주를 위해 쓰여질 수도 있겠지만, 큰 교회일수록 풍성하여 주의 종들을 위해 쓰고도 남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목회자가 자기 몫이라고 다 가져가는 종은 없다. 다 당회와 제직회를 거쳐 선교사역을 위해 쓰여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십일조는 더이상 의무사항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주의 종들의 의식주가 해결되며, 선교사역이 풍성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축복의 약속을 담고 있다. 1/10을 드림으로 나머지 9/10가 보호받게 되며, 받을 복이 없어지지도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급적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좋다. 또한 우리가 드린 만큼 천국에서도 다시 돌려받게 될테니 말이다.

 

11. 도둑질의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부지런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담의 타락이후 사람은 밭의 소산을 먹기 위해서 땀흘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악하고 게으른 것은 주님께 책망의 대상이 될 뿐임을 알아야 한다. 사도바울도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부지런해지라. 둘째, 가진 것에 대해 자족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고 있는 것을 더 섬기고 드리고 구제하기를 힘써야 한다. 셋째, 마지막으로 기왕이면 소비를 줄이고 절약하며 저축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빈궁해지 않기 때문이요. 그러면 도둑질할 일이 필요없게 되기 때문이다.

 

12. 나오며

  성도들이 정말 조심해야 할 것들이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음행의 죄 및 간음죄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가정을 깨뜨리고 부부간의 정조와 대의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어서는 지옥형벌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간음죄는 하나님의 성전인 자기의 몸 안에 죄를 범하는 심각한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간음죄를 짓는 사람이 간음죄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쉽지 않다. 하지만 회개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길이 있다. 용서가 있다. 그리고 죽어서 천국에도 갈 수 있다. 곧 간음죄는 회개만이 살 길이다. 그것을 끊는 것만이 살 길이다. 만약 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빨리 그러한 환경을 박차고 벗어나라. 그래야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도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재물을 훔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하나님의 것도 훔치지 말아야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예배시간이요 십일조와 헌금 같은 것이다. 예배시간에 지각하지 말고 예배시간을 빠지지 말아야 한다. 원래 주일의 예표인 안식일은 여호와의 날이었지 우리의 시간이 아니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드려야 마땅하다고 말씀한 것들 곧 십일조나 헌금에 대해서도 우리는 율법이 폐해진 신약시대에 살고 있기에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만 치부해서는 아니 된다. 비록 모든 구약의 의식법들이 다 폐해지긴 했지만, 십일조만큼은 예수님께서도 계속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3:23). 그것은 아마도 구약시대 때부터 그것이 쓰여지는 대상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려하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시대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그러므로 십일조에 헌금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교회와 주의 종들을 사랑하고, 교회의 선교사역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물질을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01월 09일(수)

정병진목사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성도인데도 왜 질병과 저주 가운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예수님을 믿으면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받았다고 하는데 왜 우리 자식들 중에 장애인이 있고 집안에 자살하는 사람까지 발생하는가? 그것은 십계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왜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제3계명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4계명인 안식일준수 문제는 오늘날까지 매우 혼돈된 상태에 있다. 안식교와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에서는 지금도 토요일 안식일준수를 외치고 있다. 안식교에서는 토요일예배를 드리지 않고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을 두고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천주교와 개신교인들이 십계명의 하나인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어 지키고 있는 것은 사탄의 작품이라고 하는 안식교인들에게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해 줄 수 있는가? 오늘날 주일예배는 정말 짐승의 표가 맞는 것인가? 안식교의 안식일 준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오늘 우리들이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왜 합당한가?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 계명 준수과 안식일준수 계명의 본 뜻과 실천방법까지 진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2018-12-26 수요기도회
제목: 출애굽기강해(17) 십계명강해(2) 제3계명과 제4계명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출20:7~11)
https://youtu.be/mpzCObRHPzY


1. 들어가며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에 관하여 지켜야 할 도덕계명으로서 1~4계명이 있으며, 또 하나는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도덕계명으로서 5~10계명이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계명은 인간이 하나님에 관하여 지켜야 할 도덕계명 중 제3계명과 4계명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지 말라는 계명이며(출20:7),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라(그것을 거룩히 지키기 위하여)는 계명이다(출20:8).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는 계명은 제4계명이다.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명령은 대체 어떤 명령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한 이후인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오늘날 기독교회는 대부분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에서는 주일에 예배드리는 개신교인들더러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라고 정죄하며, 그런 자는 반드시 유황 불못에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들의 주장은 올바른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 계명와 안식일 계명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축복받는 성도들이 되려면 어덯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십계명은 꼭 지켜야 하는가?

  십계명(출20:1~17)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인가? 오늘날에 들어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만 믿으면 되었지 무슨 십계명타령이냐 하면서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말 예수님만 믿고 있으면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과 멸망)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우리가 복(과 저주)을 받는 데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일까? 우리가 무엇인가의 옳고 그름을 살필 때에는 최종적으로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모든 성경의 기록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기록한 말씀은 다 육신을 입고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충하는 것들이지, 그것으 예수님의 말씀보다 우선시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판단기준은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로,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는 데에 지장이 없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구원받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위가 구원의 요소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 십계명을 준수하지 않는 자가 구원받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한 젊은 부자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는지를 질문했다(마19:16~22). 그때 예수께서는 십계명 중에서 제5~9계명을 지키고 있는지를 물어보셨다. 그러자 그는 그것은 어려서부터 지켜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마지막 10번째 계명(탐심금지)의 준수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준 후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 부자청년은 재물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단적으로 십계명 중에서 인간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기가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제1~4계명에 나오는 하나님에 관한 계명을 준수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부활승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께서는 장차 누가 불못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말씀해주셨는데,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을 섬기고 있거나,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자는 다 불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하셨다(계21:8). 고로,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구원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용서받게 된다면 그도 구원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천국은 믿음과 회개로 들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마4:17, 막1:15). 여러분은 생각해보았는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신(우상)을 섬기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어도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의 죄를 빨리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슨 죄를 자복하고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십계명을 어기고 불순종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

  둘째로,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복을 받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사실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되느냐 하는 문제는 사람이 죽어서 자신의 영혼이 받는 복의 문제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복이란 그런 복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받게 될 복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십계명을 지키지 않았는데도 과연 성도는 이 땅에서 복(물질의 복, 건강의 복, 땅의 복, 자녀의 복, 기업의 복 등등)을 받게 되며 그것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복을 받기는커녕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십계명 중 제2계명 우상숭배 금지 명령의 경우를 보자. 이것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우상숭배의 저주가 자손 3~4대까지 이를 것이라고 하셨다(출20:5). 더욱이 계2장에 나오는 두아디라교회의 경우, 질병과 환난과 살해당함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계2:21~23). 한편 십계명 중 제5계명 부모공경의 명령을 보자. 이 계명에 순종하는 자는 땅에서 장수의 축복이 주어진다고 했다(출20:12). 그렇다면 반대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그럼, 이 땅에서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을 받거나 복을 받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제3계명 즉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제 셋째 계명을 들려준다. 그것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녕되이(헛되이, 쓸모없게)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출20:7a).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명령을 준행하지 않는 자는 죄가 없다고 간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출20:7b). 그렇다면 어떤 처벌을 내리시는가? 레24장에 보면, 그런 자는 돌로 쳐죽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레24:11,16). 그러므로 성도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함부로 맹세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레19:12). 충분히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자랑스럽게 간증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음담패설 등을 함부로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알려지게 되면, 하나님의 명예에 심각한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도나 목회자 중에 일찍 죽는 자들이 왜 나오는지 아는가? 그것은 추도예배나 장례예배 같은 우상숭배를 해서 그렇다. 하지만, 실은 많은 부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말해서 그런 경우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알려진 이가 더럽고 추한 행동이나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선에 이르지 못하는 행동을 하면 틀림없이 징계가 뒤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에, 제일 처음으로 해야 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은 존중히 여겨져야 하며, 흠숭을 받아야 하며, 찬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데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제4계명, 안식일 준수 계명은 왜 주셨는가?

  그런데 십계명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계명은 역시 제4계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4계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너는 안식일을 반드시 기억하라. 네가 그것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라는 명령이다. 그러므로 이 명령에 의하면, 성도가 그날을 지켜야 한다는 개념보다는 그날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지키고 기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셨다. 그것은 2가지다. 첫째, 육일동안은 힘써 자기의 모든 일을 행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기 원하는 자는 육일동안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면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둘째, 일곱째날에는 가족과 종 그리고 가축과 나그네에 이르기까지 절대 일을 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셨을까? 그것은 출20:11에 나온다. "[왜냐하면]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기 때문이라(출20:11)"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일곱째날에 "쉬셨다"라는 개념이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과연 쉬셔야 했을까? 하나님은 영이므로 피곤하지 않는 존재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일곱째날에 쉬셨던 것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창2장으로 가보아야 한다. 창2:1~3의 말씀을 우선 살펴보자.

창2: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놀라지 말 것은 창2:2~3의 말씀의 번역이 좀 잘못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식하시니라" 혹은 "안식하셨음이니라"는 동사의 본래 의미가 "쉬다. 안식하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동사는 "샤바트"라는 동사인데, 이 단어의 뜻은 "그만두다. 그치다. 중지하다."가 원래의 뜻이며, 파생적인 뜻으로 "쉬다, 안식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창2:1~3에 나오는 "샤바트"는 원래의 뜻에 따라 "그치다. 그만두다"라는 뜻으로 번역했어야 더 옳은 번역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창2:1~3의 말씀을 직역해보도록 하자.

창2:1~3[직역] 하늘들과 땅과 모든 군대가 완성되었다. 2 하나님이 그가 만드시던 일을 일곱째날에 완성하셨다. 그리고 그가 하시던 모든 일로부터 일곱째 날에 그치셨다.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주사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으니 왜냐하면 하나님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로부터 그날에 그치셨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일하다가 피곤하시어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여섯째 날까지 창조사역을 다 마치셨기 때문에 일곱째 날에 일을 그치셨던 것이다. 왜나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자 했던 모든 일들이 여섯째 날까지 다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는 빛을 창조하시고 이어서 식물과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각종 동물들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으로 당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누리도록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러자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하시던 일을 그치신 것이다. 본래의 창조목적대로 창조가 다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5.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명령의 본래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의 본래적인 의미는 그날에 쉬고 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그날에 모든 일을 중지한 채 하나님께서 모든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다 인간에게 누리도록 주셨으니, 그 모든 일을 행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감사하라는 뜻이다. 만약 그날이 되었는데도 일을 그치지 않고 계속 행한다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며, 나중에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비가 내리도록 엉뚱하게 해와 달과 별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고 다른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길 수 있기 때문에, 그날에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을 오늘에 맞게 조명하여 해석해보자. 안식일준수명령을 종합해서 정리해보면, 하나님께서 왜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하셨는지 파악할 수가 있다. 그 이유는 대략 4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그날에는 일을 그치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라는 뜻이다(레23:3, 출20:10).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날은 그분께 촛점을 맞추라는 뜻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일하러 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날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출16:25).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그날에 일하는 자가 있다면 죽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출31:15,35:2, 민15:32). 그리고  그날에는 물건을 사고 팔지도 말아야 하며(느13:15~18), 오락도 하지 말고 사사로운 말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사58:13).

  둘째, 그날에는 육체도 쉬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시간을 드리라는 뜻이다(신5:14). 자기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여 그분만을 붙들라는 것이다.

  셋째, 그날에는 제사장이 떡을 진설하게 함으로서, 생명의 양식을 먹는 날이 되게 하라는 뜻이다(레24:8, 대상9:32) 그날에는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그날에는 아침저녁에 상번제를 드림으로, 예배하는 날이 되게 하라는 뜻이다(대상23:31, 대하2:4, 8:13, 사66:23, 겔46:4). 그날에는 다른 것보다는 예배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날은 오직 하나님에게 집중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이 하신 일을 찬양함으로 자신의 육체가 아닌 영혼을 위해 사는 날이 되게 해야 한다. 그날에는 다른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자신의 영혼을 위한 생명의 양식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여 영혼이 강건해지게 하는날이 되게 해야 한다.

 

6. 오늘날에도 안식일 준수 계명은 계속해서 유효한가?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안식일을 준수해야 하는가? 신약의 성도들도 주간의 안식일인 토요일에 일을 중단하고, 그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아니면 오늘날처럼 주일에 예배드려도 되는 것인가?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일을 지키라고 명령을 바꾼 적이 없으니, 안식일을 준수해야 하며, 예배도 안식일에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부분 안식일계열의 이단들이다.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일교)와 안상홍증인회 등은 그래서 지금도 안식일인 토요일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그렇다면 성경과 초기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첫째, 성경은 안식일준수에 관하여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사실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 문제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큰 문제거리였다. 그래서 모인 최초의 예루살렘공의회에서는 주께로 돌아온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의 멍에를 씌우지 말라고 결정하였다(행15:10~11,19~20).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율법의 멍에란 율법 중에서도 의식법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도 받아야하고, 안식일도 지켜야 하며, 음식을 가려먹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이다(행15:1). 여기서, 어떤 의식과 절차를 통해서 사람이 거룩해지고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다고 하는 율법조항들이 바로 의식법들인데, 예수께서 오셔서 이러한 의식법들은 그것을 주셨던 본 뜻을 성취하심으로 인하여 사실 공식적으로 폐지하셨다. 예를 들어 보자. 행10장에 보면, 베드로가 보았던 보자기 환상을 통해 음식법은 이미 폐지되었음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행10장과 갈2장에 보면, 접촉으로 인한 정 부정(깨끗하고 더럽고 하는 판단)법도 이미 폐지가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마12장에 나오는 "안식일논쟁"을 통해서는,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이 안식일준수의 기본 취지가 아니라, 그날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통해 사람이 생명을 얻고 악한 영으로부터 자유와 해방과 안식을 누리는 것이라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다(마12:5~8). 또한 안식일논쟁을 통해서 결론적으로 우리 주 예수께서는 "내가 안식일의 주(퀴리오스=구약의 여호와)"이라고 말씀하심으로서(막2:28), 구약시대에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을 주셨던 분이 예수님 자신이심을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 그날 우리에게 안식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막2:27). 예수께서는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도 잘 아는 이야기를 통해서 안식일에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지적하셨다. 즉 안식일에 사람이나 짐승(소나 나귀 등)이 구덩이에 빠졌으면 그것을 건져내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14:5). 그리고 안식일에도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하셨다(눅13:15). 그러므로 사람에게 죄사함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사드리는 제사장들은 안식일일지라도 성전에서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제사장더러 안식일을 어긴 것이 말하는 자가 없었다(마12:5). 더욱이 할례법과 안식일법이 충돌할 때에는 안식일법보다도 할례법을 먼저 적용하여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고 있어, 안식일법보다도 더 우선하는 법이 있다는 것도 말씀해주셨다(요7:22~23). 그러므로 어떤 규정을 들이대면서 그것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하면서 천편일률적으로 안식일법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제사드리며, 절기를 지키고 있었지만 실은 형식만 취하고 있었을 뿐, 마음은 이미 떠나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당신 앞으로 헛된 제물을 가지고 오지도 말라고 하셨다. 그들이 드리는 월삭이나 안식일 그리고 절기 등에 싫증이 난다고까지 말씀하셨다(사1:11~14). 급기야 나중에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호2:11)"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으로 치우쳐버린 안식일법과 같은 의식법들은 곧 폐지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오셔서 의식법들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받게 될 모든 율법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더이상 의식법을 준행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 주셨다(갈3:13).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그림자인 불과한 의식법들을 더이상 따라가지 말라고 했다(골2:16~17). 즉 의문에 속한 율법들 즉 의식법들은 예수께서 오심으로 다 완성되었으니 더이상 그것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처럼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자는 약하고 천박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치른 경륜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분명하게 말했다(갈4:9~11, 엡2:15~16).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자는 일주일 중에 어떤 날을 귀중하게 여겨 그날에 예배를 드리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게 된 것이다(롬14:5~6).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는 자는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고, 저 날을 이 날보다 낫게 여기는 자는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고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은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며 영원한 불못에 들어갈 것이라는 안식교의 주장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오셔서 율법중에서 어떤 율법을 한층 강화시키고, 어떤 율법은 폐지하셨는지를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한다. 첫째, 산상수훈이라고 일컬어지는 신약의 성도들의 규범들을 살펴보면, 십계명으로 분류되는 도덕법은 한층 더 강화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십계명에서는 직접 행동으로 간음해야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마음으로 간음해도 간음한 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하셨고, 십계명에 의하면 사람을 직접 살해해야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마음으로 미워하고 욕해도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둘째, 예수께서는 의식법들은 다 폐지하심으로 더이상 의식과 절차를 지키지 않아도 됨을 가르쳐주셨다. 이러한 의식법에는 안식일법, 절기법, 제사법, 정부정법, 음식법 등이 포함된다. 이런 것들은 실체인 예수께서 오심으로 다 성취되었기에 더이상 지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안식을 얻는 것이라고 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께로 가서 그분의 은혜를 얻는 것이 안식을 얻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안식하게) 하리라(마11:28)"이라고 말씀으로,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로 가면 안식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참으로 독특한 것은 안식일 규정은 십계명인 도덕법에도 나오고(출20:1~17)과 그리고 의식법인 절기법(레23:1~3)에도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도덕법으로서 안식일법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지만, 의식법으로서 안식법은 폐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은 일주일의 하루는 반드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그날 하루만큼은 하나님에게 집중하여 그분께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바른 일이다. 하지만 그날을 토요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의식법은 이미 폐지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초기기독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렇다면 초기 기독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는가? 놀랍게도 초기 기독교회의 역사는 유대인이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된 기독교인들과 이방인이었다고 예수님을 믿게 된 기독교인들이 어떤 날에 모여 예배를 드렸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정리하면, 한 마디로 유대인이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된 자는 안식일에 모여 예배를 드린 자도 있었고, 주일에 모여(당시 이 날은 쉬는 날이 아니었기에 출근하기 전인 아침과 출근 후인 저녁시간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린 자들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A.D.70년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고(120면명이 죽고, 10만명이 포로로 잡혀감)과 A.D.132~135년 바르코크바의 반란이후 유대인이었다가 기독교인들이 된 자들은 더이상 안식일예배를 버리고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처음부터 굳이 안식일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A.D.107년에 사도요한과 사도베드로의 후계자라고고 불렸던 안디옥교회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보낸 7개의 편지들을 보면,  유대인들이라도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 편지를 직접 옮겨 보면 이렇다.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제3장 이상한 꾀임에 속지 마라. 이상한 교리에 속지 마십시오. 유익하지 않은 낡은 우화들에도 속지 마십시오. 우리가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라 계속해서 산다면, 그것은 우리가 은총을 받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가장 거룩한 예언자들마저도 예수 그리스도에 따라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에서 자란 사람이 새로운 희망을 받아들이겠다면 그는 안식일을 버리고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주일에는 그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이 솟아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초기부터 주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은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디다케, 바나바의 서신 등 많은 초기교부의 서신과 책에도 주일에 예배드렸다는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다가 A.D.313년 로마의 콘스탄틴황제가 밀라노칙령을 통해서 기독교를 공적인 종교로 승인해주었고, A.D.321년 3월 7일부터는 일요일에 모든 사람들이 쉬게 함으로, 자연스럽게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에 모여 예배드리게 되었고, 그것이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기독교인들은 어느날에 모여 예배드리든지 상관이 없게 되었다. 안식일에 예배드려도 상관없으며, 주일에 모여 예배드려도 상관이 없다. 어느날이든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도덕법으로서의 안식일의 기본정신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쉬는 날이가 함께 모이기가 좋다면 그날에 예배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초기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은 유대교인들과는 달리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날에 모여 아침저녁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일요일 휴일이 발표된 이후에는 낮시간에 자연스럽게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7. 나오며

  십계명은 참으로  특별하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계명 중에는 도덕법으로 나오면서도, 의식법의 하나로서 동시에 등장하는 계명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안식일법"이다. 안식일법은 십계명의 제4계명에도 나오지만(출20:7~11), 의식법으로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절기법의 제일 첫번째 의식법에도 나온다(레23:1~3). 그런데 신약경륜으로 볼 때, 도덕법은 한층 더 강화되었지만 의식법은 폐지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모여 예배를 드려야만 하나님이 받으시고 주일에 드리는 것은 우상숭배 행위라고 하는 안식교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 당시 할례파요 율법주의자들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어도 어떤 의식적인 절차를 거쳐야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현대판 외식주의자들이 될 가능성일 가장 많이 가진 단체가 바로 안식교인 것이다. 속지 말라. 예수 이외에 다른 것으로 우리는 거룩함을 입지 않으며, 예수 이외에 다른 것으로 우리는 결코 구원을 얻지 못한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을 자격을 확보하며, 회개하여 자기의 죄를 용서받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의식적인 절차 곧 할례를 행하거나 안식일을 지키거나, 음식을 가려먹는다는 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거나 구원받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건투를 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해주셨다. 과연 그래도 되는가? 혹시 예수께서도 안식일을 어긴 것은 아닐까?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주일에 일찍부터 나와서 봉사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왜 주일에 쉬지 않고 일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손해보고 있다거나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오늘은 주일성수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에 대해 들어보자.

2016-10-09 주일낮예배
제목: 안식일인데도 일하시는 하나님(요5:1~18)
https://youtu.be/k8XUS2Wer5o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에 두번째 맞이하는 유월절에도 어김없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베데스다 못가의 누워있던 한 중풍병자를 보시고는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사람의 병을 고쳐주시는 것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고치는 것은 안식일규례를 어긴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안식일임에도 그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요5: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친 아버지라 말한다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날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어긴 것이 맞는 것일까요?


2.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되는가?

  먼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에 대한 당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에 대해 알아봅시다. 그것은 당시 어느 회당장의 말 속에도 들어 있습니다.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하거늘"(눅13:14).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의 생각 속에 예수님은 안식일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렇게 판단했던 근거는 대체 무엇일까요? 그러한 규례가 성경에 나오 있는 것일까요?


3. 예수께서 안식일에 치유사역을 행하신 것은 과연 안식일을 어긴 것인가?

  우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예수께서는 그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사실이 증거해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병자를 치유했던 것이 안식일을 어긴 것이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죄인입니다. 그러면 그 범죄한 것 때문에 예수께서 대속제물로서의 죽으신 것은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없는 사람만이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었다가 3일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은 그날 예수께서 범죄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해줍니다. 예수께서는 그날 죄를 짓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신 것입니다.


4. 예수께서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셨다는 증거들(1)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근거로 예수께서 그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셨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3가지 증거들 때문입니다. 첫째, 예수께서는 그날 병자를 치유해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안식일을 주신 근본목적을 성실하게 준행하셨기 때문입니다(출20:8~11, 신5:12~15). 예수님은 단지 유대인들이 만들어놓은 규례 곧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 39가지 중에 하나를 지키지 않은 것 뿐입니다. 사실 그날 예수께서 38년된 중풍병자에게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 금지조항 39가지 중에서 39번째 조항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어떤 물건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혹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옮겨서는 아니된다고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그러한 조항을 말씀해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율법학자들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일준수의 근본목적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그날 병자를 치유하신 것이 안식일규례를 철저히 지키셨다는 근거는 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십계명 중 제4계명인 안식일법에 그렇게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법의 규례는 이렇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8-11)" 이 말씀에 의하면, 안식일규례는 2가지입니다. 그것은 첫째, 그날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출20:8을 원문에 따라 직역해보면, 주님께서는 "일곱째날을 반드시 기억하라. 그것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일곱째날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일곱째날을 기억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보조조항으로서 그날 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규례의 핵심은 그날 일하지 않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그날 안식일을 기억하는 것에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서 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인지를 기억하는 것에 초점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처럼 "당신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조상들이 정했던 어떠한 조항에 저촉되었으니 당신은 안식일을 어긴 것입니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래 안식일을 주신 근본의도와 목적에서 빗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6.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는 첫번째 이유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날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출20:11에 나와 있습니다. 직역합니다. "왜냐하면 육일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가운데 모든 것들을 만들고 일곱째날에 쉬었기 때문이라." 여기에는 일곱째날에 쉬어야만 하는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에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6일동안 만물을 창조하셔서 그것을 사람에게 누리도록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첫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 창조한 모든 것들은 누구를 위해 준비된 것입니까?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여섯째날 해질무렵에 맨 마지막으로 창조하셨던 인간들을 위해서입니까? 예, 그것은 인간들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시고,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 하여금 먹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일주일에 하루쯤은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어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누리도록 하신 것을 잊지 말고 그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계명을 주신 근본목적은 내팽개쳐버린 채, 오직 그날 일을 했느냐 안했느냐로서 안식일준수여부를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 때문에 더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시간이 지나면서 39가지 안식일 금지조항이 생겨나자 그들은 안식일에 더 힘든 삶을 보내야 했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을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찬송하고 기뻐하며 노래하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자신이 금지조항에 걸리지 않도록 몸을 사리는 삶을 살아야했고, 혹시나 남들이 어기면 사람을 정죄하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안식일을 사람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근본목적에서 빗나간 것입니다.


7.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

  특별히 한 가지 더 살펴봐야 하는 것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입성을 앞두고 있는 출애굽2세대들에게 주신 안식일준수입니다. 그것은 출애굽 1세대들에게 주신 이유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부터 너를 인도하여 내었다는 것을(신5:15)" 여기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도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구출해 내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한 것에 있지 아니하고, 그날 하나님께 인간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세상의 일을 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신 일 곧 창조사역과 구속사역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주신 근본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철저히 안식일을 지키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날 예수께서 38년된 중풍병자에게 안식일을 주신 근본목적에 따라 그에게 참된 안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이스라엘민족의 최대의 명절이었지만, 질병의 노예가 되어 있던 38년 중풍병자는 한 번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날 자신을 치료해주심으로 그는 걷고 뛰어다니면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그날 최초로 자유와 해방과 기쁨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날 그는 참된 안식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그는 질병의 노예에서 영영 헤어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일부러 그 병자를 치유해 주셨던 것입니다.


8. 예수께서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셨다는 증거들(2)

  또한 예수께서 그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셨다는 다른 이유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께서는 그날에 쉬지 않고 일하고 계셨지만 그것은 예수께서 인류의 대제사장으로서 그 직무를 수행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마12:5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마12:5)" 그렇습니다.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당시 안식일이 되었지만 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은 그날 제사를 드려야했고 성전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날도 번제를 드려야 했고 속죄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등대에 불을 밝혀야 했고, 떡상에 떡을 진설해야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안식일에 되었어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그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그분은 메시야로서 오신 분입니다. 메시야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서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영원히 존재하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야 곧 제사장으로서 그날 일을 한 것은 결코 안식일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안식일을 성실히 준수한 것이 됩니다. 그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메시야로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9. 예수께서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셨다는 증거들(3)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키셨다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할례법이 안식일법보다도 더 우선하듯,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 안식일규례를 지키는 것보다 더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할례를 줄곧 시행해 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난지 8일만에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묘하게고 그날이 안식일과 겹치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렇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날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법과 안식일법이 충돌되면, 그들은 할례법을 안식일보다 더 우선적으로 적용했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근본적인 목적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인류를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질병과 저주와 가난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안식일법보다 우선하는 것이었으므로, 예수께서는 그날 안식일을 어긴 것이 아닌 것입니다.


10. 나오며

  그러므로 예수께서 비록 안식일에 혹 일을 하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제사장으로서 안식일을 철저히 준수한 것이 되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철저히 수행하신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혹 우리 성도들 중에 주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쉬지도 못하고 이른 아침부터 교회에서 봉사하는 자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지금 왕같은 제사장으로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일은 원래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요, 아들이 행하실 일이었는데, 그것을 그분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하늘에서 상급이 매우 클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인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일찍부터 나와서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그 사람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늘도 안식을 허락하시고 남들도 안식할 수 있도록 왕같은 제사장으로 일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오늘도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일에만 푹 빠져 있는 자들에게 안식을 전합시다. 그래서 그들도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 구원얻도록 도와줍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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