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88) 초기 교회 성도들은 안식일에 모였는가 주일에 모였는가?(행20:7)_2022-12-27(화)

https://youtu.be/-PhXsRzrhHU [혹은 https://tv.naver.com/v/31930661 ]

1.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 언제 왔는가?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3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그곳을 떠나 수리아의 안디옥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복귀하던 중에, 바울은 잠깐 드로아에 들르게 된다. 그때 바울은 '그 주간의 첫날에' 떡을 떼기 위하여 함께 모이게 된다. 그렇다면, '그 주간의 첫날'은 어느 요일을 가리키는 것일까? 행20:7의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안식일들의 첫[날]에'라고 되어 있다. 안식일은 주간의 일곱째 날로서 지금으로 치자면 토요일이므로, 토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이어지는 두 안식일 가운데, 첫째 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날은 '주일'이라고 할 수 있다. 터툴리안의 제자였던 교부 키프리아누스(Cyprianus, A.D.200~258)는 그의 편지에서 진술하기를 주의 날은 안식일 다음에 온다고 하였다. 즉 “그림자와 예식으로서 앞서 주셨던 성결 의식인 유대의 육체의 할례가 제8일에는 정중히 준수되었으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진리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래서 제8일 즉 안식일 다음인 첫째 날은 주께서 다시 부활하신 날이 되었으며 또한 우리를 일으키시고 우리에게 신령한 할례를 베푸시니, 첫째 날이요 주의 날이니 모형 속에서 앞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형은 진리께서 오심으로써 끝이 난 동시에 신령한 할례가 우리에게 베풀어졌다”라고 했다. 그런데 안식교(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에서는 이 날도 여전히 토요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주장이다. 왜냐하면 첫째,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분명히 두 안식일들의 첫째 날이므로 토요일 다음날인 주일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드로아 성도들은 이방인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에 굳이 안식일에 모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이 날이 당시에는 일하는 일요일로서, 낮에는 일을 해야 했고 밤에는 모여 집회를 했기 때문이다(행20:7~12). 바울이 떡을 떼려고 곧 성찬식을 하고 하려고 드로아에서 그날(주일에) 낮이 아닌 밤에 저녁 집회를 연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하루 종일 일하고 온 유두고라 하는 청년(아마도 '종'이었을 것)이 지쳐서 졸다가 그만 3층 난간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렇다. 그날은 일하는 날로서 당시에 일요일 곧 주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일 저녁에 모인 것이다. 

 

2. 안식교에서는 왜 개신교인들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이단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는 교단이 하나 있는데, 그들은 안식교(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단이다. 그들은 만약 성도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주일을 지키면 사탄의 표시인 666표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우상숭배의 표를 받은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채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일은 태양신의 아들의 탄생일로서, 이 날(주일)을 지키면 태양신교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은 요한계시록 12:17의 말씀에 그것이 나와 있다고 한다.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마지막 때에 용이 구원받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일컬어지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을 핍박하게 될 것인데,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고 있는 자'이자 그리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나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만이 참 성도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정말 그러한 뜻일까?

 

3. 안식교에서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안식교에서는 '하나님의 계명들'이란 곧 십계명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십계명 중에서 제4계명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고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약에 들어와서 모든 의식법은 다 폐지되었지만 도덕법인 십계명만큼은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일법은 계속해서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주장은 옳은 것인가? 이것이 맞는 해석인지에 관하여 우리는 2가지로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는 그것이 옳은 해석인지 성경적으로 풀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실제 초기 교회 성도들도 역시 역사적으로 안식일에 모여 예배드렸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면 답이 나올 것이다. 첫 번째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다룰 것이다. 오늘은 두 번째부터 살펴볼 것이다. 

 

4. 초기 교회 성도들은 과연 안식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는가? 아니면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는가?

  초기 교회 성도들이 언제 예배드렸는지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역시 사도행전인데, 그중에서 오늘 읽었던 사도행전 20:7절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다. 사도행전 20:7의 말씀을 헬라어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행20:7 그런데 안식일들의 첫날 안에서, 우리 자신들이 빵(떡)을 떼기 위하여 모이게 된 채 있을 때에, 바울이 이튿날에 떠나고자 작정하고 있으면서, 그가 그들에게 강론하고 있었다. 또한 그가 한밤중까지 말씀을 연장하고 있었다.

  그렇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예배드렸다는 것은 사도행전의 기록 뿐인가? 아니다. 이 외에도 초기 교회 교부들이 남긴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첫째,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감독(A.D.35~107)은 "안식일은 이제 성수되지 아니하고, 대신 저들은 이제 주의 날에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한다"고 하였다. 둘째, 디다케(A.D.100년경)에서는 제3부 14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성찬)을 나누고 감사드리십시오.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예배)가 깨끗하게 되도록 하십시오". 이는 안식일의 다음날인 일요일 곧 주님이 부활하신 날에 성도들이 떡을 나누고(성찬식) 제사(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이다. 셋째, 저스틴(A.D.100~163)은 제1변증서에서 "주일이라고 불리는 날에 도시나 시골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곳에 함께 모여 시간이 허락되는 만큼 사도들의 기록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낭독자가 낭독을 마치면 사회자가 가르치며 이러한 말씀을 본받아 살기를 권한다. 그리고 사회자가 같은 방법으로 자기 능력에 따라 기도와 감사를 드리고 회중들은 아멘으로 화답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넷째, 바나바의 서신(A.D.130년경) 제13장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8일째 되는 날 즉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고,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인 뒤에 하늘로 올라간 그날을 기꺼이 지키는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5. 안식교의 구원론은 정말 올바른 것인가?

  그렇다면 안식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도 믿고 십계명도 지켜야 하는가? 즉 예수님도 믿으면서 안식일도 지켜야 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 구원받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결국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2가지 것을 만족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죄가 있는 상태에서 천국에 못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천국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녀들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와서 내주하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에 지었던 죄들은 예수님의 피로 탕감받게 되며, 그때 이후에 짓는 죄들은 자백하여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는 문제는 죄사함과 생명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가 십계명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십계명의 준수가 우리에게 죄사함을 가져다 주지도 아니하며, 생명을 주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믿고 십계명도 지켜야 한다는 안식교의 구원론은 잘못된 것이다. 다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범죄는 여전히 십계명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 생기는 것이므로,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더 이상 죄짓지 않기 위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성령께서 우리가 십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고로 안식교의 구원론은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22년 12월 27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27) 안식일법은 지금도 유효한가 아니면 폐지되었는가?(창2: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oTMqq0r9kxM  [혹은 https://tv.naver.com/v/18671193  ]

 

1.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안식일법을 제정하셨나요?

  하나님께서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안식하셨습니다. 여기서 안식하셨다는 그날 쉬셨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엿새동안의 창조사역을 그치셨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원문에 가까운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마치시고...안식하셨다"고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원문에는 동사가 2개가 아니고 한 개입니다. 그러니 일곱째날에 하나님께서 그분이 만드신 일을 그치셨다고 해야 바른 해석입니다. 하지만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날에 안식하셨다고 번역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도 마치 쉼이 필요한 것처럼 해석해놓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안식일법은 언제 제정되었나요?

  그렇다면, 안식일법은 언제 제정되었습니까? 그것은 천지창조직후에 제정된 것이 아니라, 이때로부터 약 2,500년이 지난 시점, 곧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신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에 제정된 것입니다(B.C.1446년). 

 

3. 하나님께서 안식일법을 제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안식일법을 제정하신 것은 일주일 중에 하루는 세상에서의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출20:8~11).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들어가 살았으나 세상일을 그치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다보니, 거의가 다 불신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하여 애굽에서 구출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또다시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엿새동안에는 힘써 자기의 일을 행할 것이지만, 일곱째날에는 하나님께서 천지창조사역을 그치시고 그날을 되돌아보았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날에는 일하지 말고 쉬라고 하신 것입니다. 

 

4. 안식일법은 지금도 유효한가요 폐지된 것인가요?

  안식일법은 사실 임시법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루를 쉬어서 그날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의 사건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임시로 주어진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와 모형이자 그림자로 주어진 안식일법은 폐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진짜 안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거로 사도바울도 율법은 약속하신 씨였던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만 있을 법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갈3:19). 결국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가운데 도덕법(십계명법)을 제외한 의식법들 곧 안식일을 비롯한 절기법, 음식법, 정결법, 제사법은 다 폐지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의식법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가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미리 알려준 모형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그렇습니다. 구약의 "먹고 마시는 법"인 "음식법"이나다. "절기(유월절,무교절,초실절,칠칠절,나팔절,속죄일,초막절)나 초하루(월삭)이나 안식일 등은 장래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이기 때문에 이것을 안 지킨다고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기자도 말하기를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히10:1)"고 말했던 것입니다. 고로 제사법도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인하여 다 폐지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고 예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5. 십계명은 지금도 지켜야 하나요?

  그렇다면, 의식법(절기법, 음식법, 정결법, 제사법)로서 아니라닌 도덕법으로서 주어진 십계명은 지금도 지켜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십계명 법은 폐지되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산상수훈을 보면 예수께서 오셔서 십계명법을 한층 더 강화시키셨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해줍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마음으로 음란한 생각만 가졌어도 그것은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십계명 중의 제4계명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법은 레위기 23장에 읽어보면, 절기법에 속한 조항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레23:2-3). 그렇습니다. 레위기 23장에 보면, 안식일법은 절기법에 속한 의식법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의 제4계명에 보면, 거기에도 나오기 때문에, 안식일법은 절기법에 속한 법이면서도 동시에 도덕법에도 속한 아주 특별한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출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그런데 의식법으로서 절기법의 하나인 안식일법은 이미 폐지되었다는 것입니다(호2:11, 갈4:9~11, 골2:16~17). 그러므로 최초 교회 회의였던 예루살렘공회(A.D.49~50)에서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준수했으면 하고 결의한 사항 중에서도 안식일법은 언급되지 않았던 것입니다(행15:19,28).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참된 안식을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마11:28~30). 고로 우리는 의식법으로서 "날과 달과 해"를 지키는 안식일법은 이미 폐지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하루는 세상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한다고 십계명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믿는 자라도 애굽에 들어간 뒤 불신자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처럼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개신교인들은 우리자신에게 참된 안식을 가져다 준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그날에 세상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와 구속의 은총에 감사드리고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믿고 안식일도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의식법들은 이미 예수 안에서 완성된 상태에 기 때무입니다. 그런데 왜 의식법으로서 안식일을 지키여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것을 통해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를 원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아무런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고로 사도바울은 각자가 예배드리기에 좋은 날을 선택하여 그날 예배드리면 된다고 했습니다(롬14:5~6). 그런데 아무래도 그날이 쉬는 날이면 모두가 훨씬 더 잘 모일 수 있기에, 개신교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자 쉬는 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혹 시대가 변하여, 지금의 일요일이 아니라 다른 날에 훨씬 잘 모일 수 있다면 교회는 그날을 새로 정하여 그날에 모여 예배하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세상일을 그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1년 02월 25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29)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10) 쾌락과 유흥의 죄(시편90:3~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M7PxEmQYm3A  [혹은 https://tv.naver.com/v/17446228  ]

 

 

1. 쾌락의 유흥의 죄란 어떤 죄인가요?

  쾌락과 유흥의 죄란 육체를 위하여 온갖 종류의 쾌락과 유흥을 즐기며 사는 죄로서, 자신을 육체를 위하여 먹고 놀고 즐기는 것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쓰지만, 자신을 영혼을 위해서는 아까워하는 죄를 가리킵니다. 즉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는 것에는 우선적으로 시간과 물질을 배정하지만 자신의 영혼을 위한 활동이나 준비에는 소홀히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2. 쾌락과 유흥의 죄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쾌락과 유흥의 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맨날 먹으러 다니는 것들이 있습니다. 돈이 생기고 시간나면, 맛집을 서핑하러 돌아다니는데 멀어도 마다하지 않고 돈도 아까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놀고 즐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관광하고, 노름하고, 도박하고, 화투치고, 게임을 즐기고, 춤추러 다니고, 친구들과 여행다니고, 술먹고  왠종일 TV시청하고, 오락을 즐기며 섹스나 음주가무 등을 즐기는 데에 시간과 물질을 쓰는 것입니다. 셋째로 취미생활도 있습니다. 취미생활을 일상생활과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과다하게 사용하고 그리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포츠(축구, 경마, 야구, 농구 등), 낚시, 바둑, 만화, 게임, 음악감상, 영화감상, 연예인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쾌락과 유흥의 영이 자기 몸 안에 치고 들어옵니다. 만약 자신이 낚시를 하다 주일예배시간을 빠뜨리고 있다면 그는 자신이 쾌락과 유흥의 영에 빠져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3. 쾌락과 유흥을 좇아가는 것은 어떤 문제들을 야기시키나요?

  지나치게 쾌락과 유흥을 좇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적으로는 경제적인 손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녀와 가정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 성장에는 뒷전이기 때문에 영혼은 거의 빈사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오직 먹고 노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나중에는 중독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알콜중독, 게임중독, 도박중독, 마약중독 등에 빠져서, 정말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이러한 사람들은 쾌락과 유흥의 영들에게 거의 사로잡혀버린 상태입니다. 내가 만약 게임이나 도박을 멈출 수 없고 끊을 수 없다면, 나도 그러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의 기저에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은 것에 대한 허전함이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하나님이 거주해야만이 만족함이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로 하나님을 떠나있는 인생을 항상 허전하고 목말라 있어서 그곳에 무엇인가를 채워야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인 줄을 모르니, 세상 것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4. 쾌락과 유흥을 절제하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장치는 무엇인가요?

  사람이 쾌락과 유흥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을 절제하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마련해주신 장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주일에 하루를 자신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만물의 창조주이시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시대에 그것은 계명이었습니다. "안식일준수"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 안식일계명은 주일성수로 바뀌었지만 그 정신과 원리는 여전히 인간에게 유효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왜 출애굽하여 자유자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준수하라고 명령하셨겠습니까? 그것은 만약 일주일의 하루를 자신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돌리는 일에 사용하지 않으면, 인간은 필연코 타락한 본성을 지닌 육체를 위해 살게 되며, 그러다가 멸망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을 꼬옥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창조주이며(출20;11) 또한 구원자되심(신5:15)을 꼬옥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우리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반드시 일주일에 하루는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이었고 지금은 주일입니다. 어떤 분은 주일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말씀은 모형이고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히10;1). 따라서 실체가 움직이면 그림자도 움직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실체가 움직였는데도 그림자를 고정시켜 놓으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림자가 실체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주인되신 예수께서 그림자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5. 쾌락과 유흥의 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쾌락과 유흥이 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죄악에 빠져있는 인생이 먹고 놀기에는 너무나 허무하고 짧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사40:8~9). 영적인 것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산 것만이 영원히 내 것이요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육신의 기간은 자신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영원한 것을 준비하라고 주어진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육신이 먹고 놀고 즐기는 것에만 시간과 물질을 드려서는 아니 됩니다. 자신의 영혼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시간과 물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 모세와 신약의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90:4-6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약4:13-14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둘째, 하나님의 정해주신 인생이 규칙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출20:8,신5:12). 일주일에 하루는 자신의 영혼과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우선적으로 배려해두어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영혼은 곧이어 망가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절제가 필요합니다(갈5:23). 모든 여행이나 취미생활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돈생기고 시간이 나면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온통 노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절제가 필요합니다. 이는 봄과 가을에 자연관광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넷째, 내 영혼이 들어갈 천국에서 받을 상과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고전15:58). 이땅에서의 삶은 잠시 잠깐뿐입니다. 너무나 짧은 인생에 영원히 살 천국을 위해 준비하는 것만큼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육체는 우리 죽으면 썩어지고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죽은 후에 새로운 생이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곳에서의 삶을 지금 잘 준비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 

 

2020년 12월 24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율법의 3가지 종류는 무엇이며 예수믿는 자들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계14:6~12)_2019-07-19(금) 

https://youtu.be/sedG8SiU-JU

 


1. 예수믿는 자들은 우상숭배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종교개혁이후에 태어난 믿음의 세대들 가운데에는 예수님만 믿으면 혹시 죄를 지어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나하면 자신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공고로 구원받는 것이며, 예수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며, 그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과대해석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결코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던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끝이 없으며, 그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하심도 심판 직전까지 유효한 것일 뿐일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심판의 하나님의 오시기 때문에 그날 긍휼을 입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회개해온 자에게 긍휼함이 주어지는 것이지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판 때에 자비를 베풀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우상을 숭배하면 그 죄 때문에 천국에 못 들거가게 됩니다. 우상숭배한 죄를 끊든지 아니면 우상숭배한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마지막 때에 전하는 세 천사의 기별은 대체 무엇입니까?(계14:6~12)

  천사가 불게 될 일곱개의 나팔들 가운데 마지막 일곱번째 나팔이 울려퍼지게 되면, 하나님의 구속의 시간표는 막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계11:15~18). 그러므로 그때가 되기 전에 믿는 자들이 주의해야 할 3가지 것들을 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면서 큰 음성으로 외쳤습니다. 첫째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만 경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계14:6~7). 둘째, 배교한 큰 성 바벨론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니, 결코 음녀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계14:8). 오직 일편단심 예수님만 구원자로 믿고 따라가는 정결한 처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결코 사탄과 그의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탄마귀와 그의 우상들 그리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세세토록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고난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 천사의 기별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첫째, 너는 하나님만 섬기라. 둘째, 예수만 구원자임을 믿고 그분만을 따라가라. 셋째. 결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입니다.


3.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에서는 세 천사의 기별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습니까?

  그렇지만 안식교에서는 세 천사의 기별을 이용하여 안식일준수를 목숨처럼 외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 천사의 기별 끝에 나오는 계14:12의 말씀을 왜곡하여 주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라고 되어 있습닏.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계명"이 바로 안식일을 준수라고 해석합입니다. 그리고 이 규정을 콘스탄틴 대제가 바꾸어버렸기 때문에(안식일을 폐지하고 주일을 지키라고 했다고 하면서) 그가 666표를 받은 자이며, 오늘날에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주일을 지키는 모든 자들은 다 666표를 받은 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대에 안식일을 지키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란 결국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서, 오직 안식교인들만 있을 것이라고 외칩니다(계12:17). 그러나 이것은 크게 왜곡된 성경해석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계14:12에 나오는 "하나님의 계명"은 복수형태로서 "하나님의 계명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오늘날 지켜야 할 것은 안식일계명만이 아니라 열가지의 모든 계명을 다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우상숭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세 천사의 기별에서처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던져져서 거기서 세세토록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조건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막1:15).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계명인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예수믿는 자라도 그에게는 복이 오지 않을 것이며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신11:26~28). 그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바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저주의 시작은 비록 질병과 재앙이겠지만, 저주의 끝은 파멸 곧 사망이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4. 예수믿는 자들에게 십계명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십계명은 예수믿는 자들에게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일까요? 십계명은 영원한 법으로서 예수께서 오셔셨지만 결코 폐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층 더 강화시켰습니다. 음욕의 눈을 가지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며, 형제에 대해 욕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계명은 믿는 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우선 그것이 구원의 기준은 아닙니다. 구원의 기준은 믿음과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십계명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십계명은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십계명은 장차 모든 사람들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때에 이것으로 죄인인지 죄인이 아닌지를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계21:8). 이때 심판의 기준은 믿음이 아니라 확실히 행위입니다. 둘째, 십계명준수는 자신이 지금 진짜 예수님을 믿고있고 회개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척도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은지 오래 되었어도, 자신이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주일을 범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열매없는 신앙인입니다. 그런 자는 결국 심판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셋째, 십계명준수는 만약 그를 구원받은 자라고 가정해본다면 그것은 천국에서 상급이 될 것입니다. 고로 예수믿는 자라도 이런 이유 때문에 십계명을 준수하는 일에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지켜서 천국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이 땅에서 살 때에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을 것이고, 이러한 죄를 끝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천국에 못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5. 구약의 율법에서 십계명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으며, 그것 중에서 안식일준수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까?

  구약의 율법은 크게 3가지입니다. 율법에는 도덕법과 의식법과 재판법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도덕법"은 십계명을 가리키며 이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유효한 법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의식법"이 있는데, 이것으로는 제사법, 절기법, 정결법, 음식법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법은 예수님이 누군지 알려주는 예표들로서, 예수께서 오셔서 성취하심으로 다 폐지된 것들입니다. 고로, 우리는 더이상 구약시대처럼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할례를 받지 않아도, 유월절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예수께서 오셔서 이 모든 것을 성취하심으로 완성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판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재판해주는 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안식일준수법"입니다. 안식을 규정은 절기법 속에도 들어있으면서(레23장), 동시에 도덕법인 십계명에 들어있습니다(출10장,신5장). 결론적으로 볼 때, 오늘날 안식일규정은 의식법으로서는 이미 폐지되었습니다(갈4:9~11,골2:16, 엡2:15). 하지만 도덕법으로서 안식일 규정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계12:17, 4:12). 그러므로 일주일 중에서 하루는 세상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 나아와 영적인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특히 예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으니 그날만이라도 주님께 나와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영혼을 위해 영적인 양식을 먹고,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날에 영적인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 회개하는 삶을 살지 못할 것이며, 영혼의 생명은 점점 더 약화되어가다가, 마침내 신앙마저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주일은 목숨처럼 성수할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2019년 7월 19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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