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따라야 할 기도의 모범은 역시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다. 그런데 이 기도에서 첫번째 기도제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케 된다는 뜻은 대체 무엇인가? 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왕국이나 하나님의 뜻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 앞세운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은 분명히 "여호와"인데도 왜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이 이름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아니하는가? 오늘날 우리가 영광스럽게 해야 할 하나님의 이름은 대체 누구인가? 주기도문의 놀라운 비밀이 여기에 들어있다.


2019-09-02(월) 2019년도 9월 특별새벽집회 첫째날 

제목: 주기도문강해(0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https://youtu.be/qnpAaKawK8E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들에게도 세례요한처럼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기도를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이라는 것이다(눅11:1~4). 그런데 주기도문은 유대인들의 “외식적인 기도”와 이방인들의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잘못된 것임을 경계하면서, 제자들에게 진정한 기도의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마6:5~8). 또한 이것은 초대교회로부터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성도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고 암송되고 있는 이상적인 기도의 모델이기도 하다.

주기도문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로는 “기도의 대상”이 나오고(마6:9a), 둘째로는 “기도할 내용”이 나오며(마6:9b~13a), 셋째로는 “송영”이 나온다(마6:13b). 먼저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장차 기도드릴 대상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불러야할 호칭이 “하나님”도 아니었고, “만군의 여호와”도 아니었으며, “주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것도 “하늘들 안에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였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로서 우리가 올리는 기도에 매우 관심이 많으시고 또한 늘 좋은 것들을 채워주시려는 분임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정욕적으로 기도하기보다는 믿음의 공동체의 필요를 간구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분은 하늘들 안에 편재해 계시고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며,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실 수 있는 전능자라는 사실도 배웠다. 그리하여 기도라는 것은 곧 믿는 이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놀라운 경험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제 오늘은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 가운데 첫 번째 기도제목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2. 주기도문의 첫 번째 기도제목은 무엇인가? 

주기도문에는 총 6가지 기도제목(기원)이 나온다. 하나님에 대한 것이 3가지요, 우리 인간에 대한 것이 3가지다. 전반부 3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기원으로서 “당신”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고, 후반부 3가지는 “우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전반부의 기도가 하나님의 필요를 간구하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그런데 이것을 헬라어로 직역해보면, 여기에 한 가지 수식어가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의”라는 수식어다. 고로 이 문장은 “당신의 이름이 [단번에] 거룩하게 되시오며(Hallowed be your name)”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 기도제목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이름”이라는 단어와 “거룩하게 하다”라는 단어인 것을 알 수 있다. 


3.“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무슨 뜻인가? 

이제는 “거룩하게 하다”는 동사부터 살펴보자. 본문의 “거룩하게 되시오며”는 “하기아조”라는 동사의 명령법, 과거, 수동태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단번에 단호하게 거룩해지도록 기도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이미 거룩한 상태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 결코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분의 이름은 처음부터 영광스러웠었는데 어떤 경우에서도 그분의 이름이 추하게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주체도 신적 수동태로서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뜻이다. 


4. 왜 하나님의 이름이 항상 거룩한 상태에 있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은 더럽혀지거나 추하게 되어서는 아니 되며 항상 영광스럽게 되기를 바라시는가?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을 당신의 나라가 오는 것보다 그리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보고 계시다는 것이다. 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이리도 당신의 이름을 이리도 중요하게 보시는가? 그것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생각하셨고 어떻게 그 이름을 사용하셨는지를 살펴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선포한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겔20:8-9 그들(이스라엘백성)이 [애굽땅에 있을 때에] 내게 반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눈을 끄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의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진노를 이루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내가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 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 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매우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의 명예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온 우주와 만물의 창조주이자 주인으로서 피조물로부터 존중을 받으시려면,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에 맞게 행동해야 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존재들(천사와 사람들)을 장차 심판하시려면, 당신은 당신이 하신 말씀대로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하셔놓고 그것을 언제 했느냐면서 먹어버리면 아니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출6:7)” 그렇다. 그분은 그분의 이름을 걸고 어떤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했다면 그분은 꼭 그 일을 이루셔야 당신의 이름의 명예를 지키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셨던 말씀들이 그분의 말씀대로 그대로 성취되어지기를 기도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당신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은 궁극적으로는 애굽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해 내시는 데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사탄마귀에게 포로로 잡혀있는 우리들과 같은 죄인들을 구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인 천국에 데려가는 데에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제 가장 영광을 받으시는지 아는가? 그것은 죄인들이 구출받아 천국에 들어갈 때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죄인이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가장 슬퍼하시며 치욕스럽게 생각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문 제일 첫 번째 기도제목으로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시오며”라는 기도는 겉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기원이지만 실은 우리 인간이 구원받는 것에 관한 기원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가장 영광스럽게 되신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것도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이와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응답해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5. 이제는 언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는가? 

그런데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신약성경에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이름 곧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로서, “여호와께서 구원하러 오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린 지상최대의 명령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예수”라는 이름 안에 다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이요(요14:26), 또한 사도행전에 제자들이 전부 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며(마18:20), 예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을지라도 끝까지 견디게 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마10:22,24:9, 막13:13, 눅21:17~18). 또한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님께서 시행하신다고 하셨으며(요14:14, 16:23~24),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다 받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15:16).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위해 이 세상의 것을 내려놓는 자는 이 땅에서도 여러 배를 받을 뿐더러 다음 세계에서 영생을 상속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마19:29).

고로 우리는 오늘날 어떤 일에서든지 또는 어떤 고난의 현장에서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끝까지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계2:13, 3:8). 왜냐하면 그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을 위해 고난받는다면 오히려 기뻐하는 성도가 되자.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 우리의 것을 아낌없이 드리자. 그때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아멘. 


2019년 9월 2일(월) 

정병진목사 

우리는 기도할 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호칭해야 하는가? 기도할 때에 우리는 나의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에 대해서 어떤 믿음으로 가진 채 불러야 하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에 의하면, 그것은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였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단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호칭이었다. 이것은 아들로 오신 예수님만이 사용하던 칭호였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제자들도 사용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라는 이 호칭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칭호를 통해서 우리 주 예수께서는 기도를 무엇이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놀라운 기도의 계시 안으로 이제 들어가보자.

2019-09-01(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주기도문강해(01) 하늘에 계신 아버지(마6:9)
https://youtu.be/GQxhrV1wSK4


1. 들어가며

  모든 성도는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성도들치고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처럼 기도를 많이 하는 민족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불교가 전래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조상신 숭배가 시작되면서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기도하는 민족이 되었다. 다만 기도하는 대상이 이리저리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구한말, 우리나라에 서양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들어왔다. 그들은 우리들이 기도해야 대상은 삼신도 아니고, 산신령도 아니며, 천지신명도 아니고, 석가도 아니라고 했다. 참신이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해방전후만해도 기독교인구가 4%에 불과했지만 뜨거운 기도의 열기는 교회마다 가득 채웠고, 1950년 6.25전쟁이후 새벽기도로 인해 교회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잘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되었으며, 개발도상국 중에 가장 빨리 성장하고 부강한 국가가 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대상이다. 우리가 기도를 드는 대상은 대체 누구인가?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누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2. 예수께서는 어떻게 되어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가?

  누가복음 11장에 의하면,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께 여쭙는다. "주여,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준 것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기도문"이라고 알려진 그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 중에 잘못된 기도의 2가지 형태를 말씀하신 후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올바른 기도를 가르쳐주셨다고 나온다. 과연 어떤 것이 먼저였을까?

  그리고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눅11:2~4)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마6:9~13)에 비해 좀 짧은 것인데 어떤 것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였을까? 그것은 우리가 그 때로 돌아가봐야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 알 수 있는 것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은 마태가 편집했던 복음서의 산상수훈에 나온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는 주제별로 묶어서 성경을 냈다. 다시 말해, 산상수훈은 천국백성의 윤리에 관한 말씀을 묶어서 5장, 6장, 7장으로 편집한 것이고, 마8~9장은 예수께서 일으키신 기적만을 따로 묶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마13장은 천국에 관한 비유만을 묶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것을 가정해볼 수 있다. 주기도는 누가복음에 나와있는 것처럼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청원에 따라, 그리고 마태복음에 나와있는 것처럼 잘못된 2가지 유형의 기도를 말씀하신 뒤에 올바른 기도를 가르쳐주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3. 주님께서 지적해주신 잘못된 기도란 대체 어떤 것인가?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른 기도를 가르쳐주기 전에 2가지 잘못된 기도를 먼저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첫째, 유대인들의 외식하는 기도였고, 둘째, 이방인들의 중언부언하는 기도였다. 먼저,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대 종교지도자들처럼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외식하면서 자신의 경건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드리는 기도, 그것도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게 기도하는 그러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오히려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드리는 골방기도를 더 기뻐하신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방인들의 기도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기도하는 대상이 누군지를 잘 모르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섬기는 신의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데, 그중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면, 자기들의 신이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구하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 아시고 있기 때문에, 중언부언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는가?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드려야 할 바른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주기도문"이라는 기도다.

 

4. 우리 성도들은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크게 세 분으로 되어있다. 첫째는 기도의 대상을 부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6가지의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하늘의 필요 3가지와 땅의 필요 3가지다. 그리고 셋째, 송영으로 끝맺는다. 그중에서 오늘은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대상에 관한 말씀을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딱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이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들여다보면, 이 문장은 3개의 구성된 문장이다. "파테르 헤몬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로서, 하나하나 직역한다면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 "하늘들 안에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쳐준 바로 그분에게 기도해야 한다.

  첫째,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할 때에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파격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도들 가운데 단 한 명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했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늘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지, 결코 친근하고 가까운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통틀어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버지라고 소개하신 경우도 있고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진짜 아들이 있었고 그 아들이 기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은 창조주라는 의미로 쓰이거나(사64:8), 둘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신 분이라는 의미에서 쓰였다(신32:6). 그리고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주요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쓰인 것이다(말1:6). 고로, 하나님께서 정식으로 당신의 자녀를 낳았기에 그 자녀더러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라는 가르침은 없었다.

  다만,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아들로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최초의 아들이자 독생자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이라고 기도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혹은 "내 아버지"라고 기도하시기를 기뻐하셨다(마26:39, 요11:41). 왜냐하면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는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의 아버지이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에는 놀라운 선언을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기도하라. 하늘들 안에 있는 우리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아버지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아버지도 되실 것이라는 의미이면서, 그때가 되면 이전에 기도하던 방식과는 달리 하나님을 부를 때에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임을 말해준다. 그 전에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있는 위엄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가까이 계시는 친밀한 대상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앞으로 제자들이 기도할 때면 하나님께서는 이제 더이상 위엄과 두려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친밀하고 가까운 분으로서, 나의 가장 가까이서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 즉시즉시 반응해주시는 분에게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둘째, 예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나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 전에 드린 기도가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을 따라 기도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공동체 모두의 유익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을 말해준다. 특별히 그들이 유대인인만큼 유대민족만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민족을 다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내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공동체의 유익 곧 내 주변과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 모두가 다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기도의 대상 앞에 수식어를 하나 붙일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하늘들 안에 계시는"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기도하라r고 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이 수식어를 통해 알려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것은 "하늘들 안에 계신는 분"이라고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하늘들"을 단수를 사용하지 않고 복수로 사용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신 하늘은 세 개로서,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sky)과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의 하들(space)와 하나님과 천사들이 있는 셋째하늘(heaven)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셋째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와 우주와 셋째하늘 모든 장소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그분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어디서 기도하든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장소가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우리들이 비는 기도를 들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늘들에 계시는"말을 붙혀서 기도하라는 것은 그분이야말로 전능자이요 절대자이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심을 인식하면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우리 이방인에게는 한 마디로 "하나님(신적 존재)"으로 알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입이 있으나 말도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는 우상과 다르며, 아무리 해주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 해 줄 수 없는 우리 육신의 부모와는 차원이 다른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들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115:3)" 그분은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 그분의 눈이 우리를 살펴보고 계시기 때문이다(시139:1~4).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응답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이인 것이다.

 

5.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올바른 기도에 따르면, 기도란 어떤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렇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기도란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라는 것을 확인하고 경험하는 절차의 한 가지라는 사실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사실 거듭남의 과정을 우리의 눈으로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명하신 것이다. 그분이 진정 내 아버지인가 하는 것은 기도를 드려서 기도응답을 통해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사실 모든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과연 나의 아버지이신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기도도 하나님께 나의 아버지인 것을 확인하는 방법의 하나요, 구원도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신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오늘은 우리가 늘 기도하는 대상인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예수께서는 놀랍게도 우리가 기도드릴 대상을 일컬어 "하나님"이나 "주님"이나 "만군의 여호와"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이것은 놀라운 계시의 발전이요, 기도응답의 확실성을 더욱 보장해주는 선언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인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분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어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오늘부터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고 불러 보라. 특별히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바꾼 "하나님"이라 말과 함께 사용해보라. "하나님 아버지, 저 누구누가 지금 기도하러 왔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 아들을 굽어보시옵소서. 다른 모든 사람은 다 나를 몰라준다 해도 저는 하나님 아버지만 있으면 됩니다. 이 시간 내가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옵소서. 저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너무나 좋습니다. 하늘 아버지시여, 다시 한 번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라고 기도를 시작해보라. 기도가 확연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2019년 9월 1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보이지 않는 사탄의 왕국의 실체와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마12:22~29)_2019-02-12(화)

https://youtu.be/IYyz5TC3684

 


1. 이 땅과 우주 가운데에는 2가지 왕국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요?(마12:26,28)

 

2. 이 땅과 우주 가운데에는 사탄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이 있습니다. 사탄의 왕국이 세워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이 직전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계12:1~12). 예수께서 태어나기 직전에 큰 붉은 용(사탄,마귀)이 하늘의 별들(천사들) 1/3을 자신의 꼬리로 끌어다가 이 세상으로 던졌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계12:3~4). 그런데 이때 탄생된 사탄의 왕국은 귀신들로 구성된 왕국인데, 사탄마귀인 루시퍼를 자기들의 왕(최고통치자,두목)으로 하는 나라입니다(계12:9, 마12:24).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귀신"이라는 용어도 나오지 않으며(몇 번 나오는 것은 귀신들을 뜻하는 용어가 아님), 귀신들의 활약도 거의 없습니다. 물론 그때에도 개인적으로 타락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들이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사탄마귀를 대장으로 집단적으로 거역한 사건은 예수님의 탄생 직전에 있었으며, 그때 하나님께서는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을 시켜 하늘에서 용(사탄마귀)과 그의 천사들을 내쫓아버리게 했습니다(계12:9). 그리하여 하나님의 통제을 벗어나 이 지구의 땅속인 음부에서 사탄을 왕으로 섬기는 세력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것을 "사탄의 왕국"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왕국은 사탄이 총두목이며, 그 밑에 정사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 등 높은 계급 귀신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래에는 졸병귀신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탄의 왕국에 속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탄의 왕국인 이 세상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바꾸기 위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받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탄의 왕국이 되었지만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움으로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을 장차 천국으로 이주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이것이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드리라고 했던 것인가요?(마6:9~13)

 

3. 예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에게 소위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간구들(마6:9~10)와 인간을 위한 간구들(마6:11~13)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위한 간구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탄의 왕국이 파쇄되고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하기를 바라시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들 안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당신의 나라(왕국)이 오게 하시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늘에서 사탄과 그의 천사들의 반역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곳에서 쫓아내어 이 땅에 내던진 것처럼, 이 땅에서 활동하는 귀신들도 무저갱으로 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요, 그래야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해놓은 일은 무엇입니까?

 

4.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강한 자인 사탄을 결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계에서는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벧후2:19). 그래서 주님께서도 "만일 사람이 먼저 힘센 놈을 결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힘센 놈의 집 안으로 들어가 그 세간들을 빼앗겠느냐? 그때에라야 그의 집을 장차 강탈할 것이다(마12:29)"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미 강한 자인 귀신들의 왕 사탄마귀를 결박한 채 있음을 언급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눈  멀고 말 못하는 귀신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귀신을 내쫓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언제 사탄마귀를 결박한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였습니다(마4:1~11).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사탄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는데, 이때 예수께서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사용하여 마귀를 3대0으로 이기셨습니다. 결국 마귀는 잠시동안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싸움에서 졌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사탄마귀의 부하들인 귀신들을 내어쫓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공생애의 1/3이 귀신을 쫓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눅13:32~33). 그것이야말로 사탄의 왕국인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오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사탄마귀를 완전히 결박하여 음부(무저갱)에 일단 가둬버렸습니다(계20:1~3). 왜냐하면 마귀가 사람들을 꼬드겨 아무런 죄없는 예수님을 십자가게 죽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불법을 저지른 마귀를 음부에 가둬버리시고 그에게서 사망권세를 빼앗아 예수님에게 주신 것입니다(골2:13~15, 계1:17~18). 하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음부에 결박되어 있던 사탄마귀를 잠깐 놓아줄 것입니다(계20:7~10). 그리고 마지막 배도와 반란을 허락하신 직후에 곧 재림하시어 사탄마귀와 귀신들을 불못에 쳐넣으시므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5. 현재 예수믿는 자들은 한 마디로 자기자신을 사탄의 왕국으로 하나님의 왕국으로 옮긴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사탄의 왕국 안에 처해 있었으나 하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들임으로 아들의 왕국으로 옮겨진 자들입니다. 그렇지만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기 때문에(요일3:8), 우리 예수믿는 자들은 죄를 지은 즉시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를 빌미로 하여, 귀신들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행여나 우리가 귀신을 섬기는 의식들을 행하게 된다면, 귀신들이 역시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 것에는 점치는 일도 있고, 우상 앞에 절하고 향을 피우고 꽃을 바치는 등의 우상숭배 행위들이 있으며, 사탄마귀와 관련된 부적이나 물건 그리고 그림 등을 소지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혹시 자신의 집안에, 장롱속에 있고, 벽에 붙어있거나 몸에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면 즉시 없애버려야 합니다. 귀신들이 타고 들어올 수 있는 루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완전히 차단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회개시키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귀신들과 주종관계를 맺는 의식들을 끊어버리며, 소장품을 다 깨끗히 치워버리면 귀신들은 결코 우리 속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날마다 자신의 몸을 성령의 전이 될 수 있도록, 늘 회개하여 청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채워서 더이상 귀신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힘써야 할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9년 2월 12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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