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2(금) 금요기도회

제목: 회개기도문과 주기도문으로 기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유익(눅11:1~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4OVv0n-MdY  [혹은 https://tv.naver.com/v/29009204 ]

 

1. 들어가며

  예수님 당시 세례요한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과 기도할 내용을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기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기도가 바로 '주기도문' 곧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이다. 사실 기도문이 없이도 기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범적인 기도문이 없다면 우리는 했던 말 또 하게 되고 아니면 중요한 것들을 빼놓고 기도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정형화된 기도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도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기도의 틀이 잡히기까지 매우 커다란 도움이 된다. 기도의 내용의 뼈대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 외에도 우리가 회개할 때 사용하는 기도문이 있어왔다. 이것은 20년 전부터 회개기도를 실천해오신 분들이 회개하면서 그들이 회개했던 내용을 모아모아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회개기도문'과 우리 주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을 비교 분석하면서 이러한 기도문들로 기도했을 때의 유익한 점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2. 왜 우리에게는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할까?

  주기도문에 대해 말씀하기 전에 먼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사용해온 '회개기도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냥 회개기도를 하는 것과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믿는 이들은 자신의 기도에 회개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음욕을 품었다거나 남을 미워했다거나 함부로 맹세를 하지 않은 경우라면 그것으로 자신의 삶은 괜찮은 것이라고 여기고 회개기도를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으로 인하여 자신의 모든 죄들은 다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 회개할 필요성을 못 느끼며 살아간다. 심지어 그때 자신의 미래의 죄들도 다 용서되었다고 믿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만약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요한의 말을 성경에서 지워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미 목욕한 사람이라도 날마다 더럽혀진 발은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요(요13:10), 사도 요한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에라야 비로소 그 죄가 깨끗해진다고 말했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온갖 종류의 죄들의 유혹과 사탄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갈 수 있기에 우리에게 회개기도는 다 필수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거듭날 때 주님께서 입혀준 흰 겉옷이 심판의 날에 더럽혀진 채 남아 있다면 좋으련만, 땅에 발을 밟고 있는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기에 결국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계22:14~15). 

 

3.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한다면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우리나라의 믿음의 선배들이 구체적으로 회개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줄 한 줄 만든 것이 오늘날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회개기도문』이라는 책이다(교회에 문의하기 바람). 우리는 이러한 회개기도문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죄를 범했는지 구체적으로 낱낱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죄의 종류도 크게 2가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우상숭배의 죄요 또 하나는 실생활의 죄라는 것이다. 우상숭배의 죄는 하나님이 아닌 것을 섬기며 살았던 모든 종류의 죄들을 가리키는데, 믿음의 선배들은 그것은 십계명에서 찾았었고 그것을 4가지로 정리했으니, 조상에게 제사 드린 죄, 부처와 불교를 섬긴 죄,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 물어보고 시킨대로 행한 죄, 미신과 잡신을 섬긴 죄가 그것이다. 그리고 실생활 속에서 짓게 되는 죄들도 정리했으니 그것은 총 19가지나 된다. 교만과 음란과 거짓, 혈기와 분노, 우울, 근심과 걱정, 불평과 불만, 시기와 질투, 쾌락과 유흥, 조급, 게으름 그리고 의심과 두려움, 인색과 욕심, 누설과 수다, 미움과 무자비, 알콜과 니코틴과 게임 중독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보다 더 많은 종류의 죄들이 있겠지만 대부분 이 범주 안에 들어간다. 그래서 지난 2년 3개월동안 이것을 가지고 그대로 기도해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함으로 얻는 유익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회개기도를 실제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회개할 때에는 두리뭉실하게 기도를 해왔으며, 지은 죄들을 낱낱이 회개하지도 않고 굵은 죄들을 몇 가지 회개하면 나머지 죄들은 다 용서된 줄 알았다. 그리고 예수 믿기 전에 우상숭배하고 살았던 죄들은 예수믿을 때에 다 용서되었기 때문에 그 죄가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회개는 구체적으로 낱낱이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은 죄로 인하여 우리에게 들어오는 악한 영들은 그 죄로 인하여 들어왔기에 그 죄를 회개할 때에라야 그 영들이 우리에게서 떠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회개기도를 더 구체적으로 낱낱이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예수님을 믿었으나 풀리지 않던 문제들을 해결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매우 큰 회개기도의 위력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산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을 그리스도인들이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님을 믿어도 자주 병에 시달린다. 어떤 이는 중한 병이나 불치병을 앓고 살아가기도 한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열심이 일을 하여도 손에 재물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부자로 살아가지 못하고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어떤 이는 자신은 예수님을 잘 믿었으나 자녀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된다. 왜 그럴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를 고민하고 고민해 보아도 뚜렷히 해결할 방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회개기도를 해 보니 그것은 우리가 지은 죄가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우리 가까이 혹은 우리 몸 속에 침입해 들어와서 여태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우리의 조상들이 우상숭배자였거나 우상숭배의 죄를 많이 지었을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그러한 죄를 짓고 있었을 때에 우리도 그 조상의 허리에 있었다는 것을 간과했다. 고로 우리가 직접적으로 지은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우리의 조상과 함께 간접적으로 죄를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도 대부분 자기의 후손에게 들어가는 것이지 아무에게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회개기도를 하면 이러한 영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체력이 좋아지고 시력이 좋아지고 건강이 회복되고 불치의 병이 낫게 되는 것이다. 회기기도를 하게 되면 재정을 막고 있고 재정을 빼앗아던 악한 영들이 떠나가므로 재정이 회복되고 재정이 새어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믿음을 방해하던 악한 영들이 떠나감으로 자녀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자녀들의 앞길이 열려지는 것이다. 

  셋째,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면 더이상 죄를 짓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회개기도문으로 기도를 해서 악한 영들은 떠나보내고 자신의 인격을 변화시켜 왔는데, 또 다시 죄를 지어서 인생을 어렵게 만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아니하는 것이다. 아니 죄를 짓고 살던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 깨끗한 심령과 마음으로 바뀌었는데, 거기에 또다시 죄를 지어 더럽힐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확실히 죄를 덜 짓게 되거나 죄를 거의 안 짓게 된다는 것을 모든 이의 간증이다. 그리고 죄에 대해 더 예민하여져서 심지어 자신의 입술로 거짓말과 같은 것들 즉 둘러내는 말과 같은 죄도 짓지 아니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부차적인 유익들도 있으니, 그것으로는 첫째로는 오래 기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적어도 40분에서 1시간정도는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하루에 네 번만 실천하면 하루에 4시간은 거뜬히 기도할 수 있게 된다. 둘째로는 영적인 은사가 뒤따라 온다는 것이다. 악한 영들이 영적인 은사가 내려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떠나게 되니 영적인 은사가 오는 것이다. 환상이 보이고, 예언과 방언통역이 되어지고, 영안이 열려 천사와 귀신을 보게 되고, 예수님도 보고 천국과 지옥도 볼 수 있으며, 귀신을 쫓아내어 병든 사람을 낫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셋째로는 가족전도가 되어진다는 점이다. 내가 회개를 하여 내게 붙어있는 저주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건강과 재정이 회복되고 인격이 달라지게 되니, 이것을 가족들이 알아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스스로 고백하기 때문이다. 넷째로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훨씬 더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그들이 믿음이 없어나 믿음을 배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다 보면 자신의 모든 죄를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4. 주기도문은 왜 필요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회개기도문은 소극적인 것을 처리하는 기도의 방법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죄들을 처리하는 방법으로서 회개기도문이 용이한 것이지, 회개기도문이 모든 기도를 포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에 적극적으로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는데 그것은 회개기도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극적인 죄들을 처리하는 데에는 회개기도문이 탁월하긴 하지만 우리는 회개기도문만으로 기도를 다 했다고 만족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보다 더 적극ㅈ적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하여 이 땅 위에서 이뤄지기를 기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기도문과 더불어 주기도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기도문은 회개기도를 포함하지만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하는 기도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와 인간의 필요를 위한 기도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어서, 주기도문은 우리에게 매우 좋은 기도문이 되기 때문이다. 

 

5. 주기도문은 왜 풀어서 사용해야 하는가?

  그런데 '주기도문'으로 자꾸 기도를 하다보면 어느새 기도문이 주문이나 암송구절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러면 주기도문이 얼마나 우리에게 유익한 기도인 것을 금새 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주기도문도 어느새 주술처럼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번에 주기도문을 조금 바꾸어보았다. 이 기도문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의도와 목적을 따라, 우리의 피부에 와닿게 고쳐본 것이다. 20년전부터 누군가가 회개기도문을 만들어 회개기도를 실제적으로 할 수 있게 한 것처럼, 주기도문을 풀어써 본 것이다. 다음은 100%는 아니더라도 우리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준 의도와 목적에 따라서 주기도문을 풀어써 본 것이다.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 

구하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우리 아버지께 이 시간도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나를 통하여 주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부정한 입술로 주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나의 몸과 마음과 모든 영역이 주님의 통치 아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영원한 통치자가 되어주셔서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주님, 오늘도 하늘 안에서처럼 이 땅 위에서도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탄 마귀와 귀신들은 매순간 패배하게 하시고, 우리들로 인하여 주님의 자녀들이 계속해서 탄생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하늘의 상속자이자 거룩한 신부로 날마다 준비되게 하시고, 나를 통하여 내 가족과 내 이웃에게 천국복음이 전해지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그들이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들도 이끌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오늘 우리 가족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양식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와 내 나라와 민족에게도 양식을 주시옵소서. 또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떡 반죽그릇과 저의 일터에도 복을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갚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사랑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사오니, 이 시간 주님처럼 나에게 죄지은 자들을 저도 용서합니다. 주님, 심판의 날에 저의 작은 이 실천을 기억하시사 내가 지은 죄들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 제게 너무나 버거운 시험은 감당할 길 없사오니 제 믿음의 분량에 따라 적당한 시험을 허락하시어 저의 믿음이 성장하도록 도와주시고, 다만 악한 자와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저와 제 가족을 지켜주시고 구원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풀어쓴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그래서 풀어쓴 주기도문을 따라 기도를 해 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운 영적인 유익들이 있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드디어 온전하고 균형잡힌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회개기도문이 없었을 때에는 회개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내왔던 우리들이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니 회개기도가 제대로 잡히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항상 뭔가 아쉬움이 늘 있었다. 그것은 회개기도문은 잘못된 것, 죄지은 것을 없애는 기도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를 다스리기를 원하는 것이 회개기도에서는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해보니, 역시 하나님의 통치가 내게 임하여 나와 내 몸과 내 가정과 내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강화되고 풍성해졌다. 그리고 그동안에 내 뜻과 내 고집을 주님께 관철시키는 기도를 해왔다면,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구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뤄져서, 악한 영들은 날마다 패배하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탄생하며 자신이 예수님의 신부로 단장되기를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의 필요만을 주로 간구하게 되는데,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먼저 기도하는 습관이 생기게 된 것도 놀라운 변화다. 

  둘째,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자신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어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자신에게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통하여 이뤄지기를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하는 영역 곧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하늘 천국의 기쁨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성품과 인격 그리고 신앙이 성숙해지고 성장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이기적인 기도를 해왔는데 풀어쓴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 뜻을 이뤄가는데 자신의 몸이 쓰임받기를 기도하게 되니까, 자신의 인격이 점차 다듬어지고 성숙해지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원래 구약시대에는 지성소에서 분향하는 향을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해서 만들라고 하셨다. 이때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을 일컫는다. 고로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는 사실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기도여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중대한 사실을 잊고 살았던 우리의 마음에 이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하기 시작했으니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도 성숙되고 신앙도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주기도의 위력이다. 

  넷째, 하루를 위탁하는 기도를 잘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매일 아침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데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인지가 막막했다. 그런데 풀어쓴 주기도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하루가 밝고 희망찬 하루가 시작되더라는 것이다. 하루동안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하다 보니, 하루의 시작이 주님과 함께 시작되고 주님을 위한 하루를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족과 공동체와 민족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하루의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다보니, 하루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루를 위탁하는 기도 중에 주기도문만큼 좋은 기도가 사실 없었던 것이다. 

 

7. 나오며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드리더라도 기도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기를 기뻐하신다. 하지만 어떤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 것도 있다. 그것은 자기를 자랑하기 위한 기도와 이방인처럼 하나님을 전능자로 믿지 못해서 하던 말을 또 반복해서 하는 기도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의 '외식하는 기도'와 이방인들의 '중언부언의 기도'를 바로 잡고 우리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인 것이다. 하지만 주기도문은 왠지 딱딱하다. 왜냐하면 너무나 거대한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담겨있는데 그 언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도를 풀어서 사용해 보았다. 예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목적에 따라 기도문을 다시 풀어 써 본 것이다. 그런데 그 효과는 놀라웠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우리의 가슴을 열어 젖혔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균형잡힌 기도와 하나님의 평강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한 주기도는 우리의 성품과 인격을 바꾸기 시작하였고 하루를 위탁하는 기도를 드리는데 매우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주기도문이 이러한 놀라운 능력을 품고 있었는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한편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기 기도할 때에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를 기뻐하신다. 고로 기도할 때에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회개기도를 집어넣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 어떻게 회개할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회개기도문은 가뭄에 단비가 되어주었다. 그것으로 기도했더니 회개기도가 놀랍게도 실제적인 것이 되었고, 예수믿은 후에도 풀리지 않던 문제들을 하나씩 둘씩 해결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자신이 죄를 짓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기에 이르렀고, 그 외에도 많은 부차적인 유익들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풀어쓴 주기도문을 만났으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는가?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실생활에 실천하여 적용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사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회개기도와 주기도를 통해 기도생활에 놀라운 발전을 있기를 기도해 본다.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행하신 우리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022년 09월 02일(금)

정병진목사

2022-08-28 (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영혼육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구해야 할 3가지 기도(마6:11~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x_m5ke0RCEY  [혹은 https://tv.naver.com/v/28858706 ]

 

1. 들어가며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있는 분향단에 향을 사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향은 오직 여호와를 위해서만 만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기도는 원래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하지만 기도의 혜택은 우리 인간들이 누리게 된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곧 예수께서는 기도의 내용을 2가지로 나누어 말씀하셨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것을 구하라고 하셨고 또 하나는 인간의 필요를 위한 것을 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기도도 3가지요, 인간의 필요를 위한 기도도 3가지라고 말씀하셨으니 기도에도 일종의 균형이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을 위한 3가지 기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인간을 위한 3가지 기도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는 인간의 필요를 위한 3가지 기도가 얼마나 질서정연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실제적으로 이러한 기도를 드리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뚜렷하게 배우게 될 것이다. 영혼육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리는 우리 주님으로부터 인간의 필요를 위한 3가지 기도를 드리되 그 기도를 어떻게 드리는지를 잘 배우고 실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기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2. 인간의 기도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가?

  인간이 드리는 기도에는 그 종류가 매우 많은 것 같지만, 나눠서 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보통 3가지다. 그중에 첫 번째의 유형의 기도는 무엇인가를 풍성하게 채워 달라는 기도이다. 이러한 기도에는 지혜를 달라고, 물질을 달라고, 건강을 달라고 비는 기도가 있다. 그런데 이 첫 번째 유형의 기도의 특징은 하나님께 요청만 해서는 안 되고 우리도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일정한 분량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다음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리고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물질을 달라고 기도한 다음에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을 얻기 위해서는 건강을 달라고 기도한 다음에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유형의 기도는 선한 길로 인도해 달라는 기도가 있다. 자기 자녀의 앞길을 인도해 달라는 기도,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직업 선택이나 배우자에 대해서 앞길을 인도해 달라고 비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유형의 기도는 위험한 지경에서 보호해 달라거나 아니면 나쁜 상황에서 건져 달라고 비는 기도가 있다. 이러한 것에는 어떤 질병에서 고쳐 달라고 비는 것이 있고, 위험 속에서 자신을 지켜 주고 건져 달라고 비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3가지 유형의 기도는 주기도문에서 우리 인간의 3가지 필요와 꼭 닮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기도문에서 인간의 3가지 필요의 주제가 '양식'과 '죄 용서'와 '보호'를 위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에서 3가지 인간의 필요는 우리 인간이 드릴 수 있는 모든 기도를 총망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역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신 분이 가르쳐 준 기도는 달라도 뭔가 다른 것이다. 

 

3.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인간을 위한 3가지 기도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주신 인간을 위한 3가지 기도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역시 3가지다.

  첫째는, 이 기도들은 '우리'가 매우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6:11~13의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읽어 보면 '우리'라는 말이 무려 8번이나 나온다. "우리의 양식을"에서 시작하여 "우리를 건지시옵소서"로 끝나기까지 무려 8번이나 '우리'라는 1인칭 복수형이 나온다. 이것은 인간을 위한 기도는 어떤 개인을 위한 기도라기보다는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는 기도가 되어야 함을 말해 준다.

  둘째는, 이 기도들은 영혼육의 필요를 채우도록 균형있게 배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것은 육체의 필요를 채워 달라는 것이고, 두 번째로 자신이 남의 죄들을 용서했듯이 자신의 죄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는 혼의 필요를 채워 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죄는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시험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말게 해 달라는 기도나 악한 자로부터 자신을 건져 달라는 기도는 다 영의 세계 곧 하나님과 천사와 관계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인간필요의 3가지 기도제목은 영혼육의 필요를 채워 달라는 기도였음을 알 수가 있다. 주님은 이 3가지 영역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신 것이다. 

  셋째는, 이 기도들은 현재와 과거의 미래의 필요를 채워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는 현재의 필요를 간구하라는 것이요, 과거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은 과거의 일을 청산해 달라는 기도이며,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앞으로 시험 안으로 자신을 데리고 들어가지 말게 해 달라는 요청이나 장차 악한 자로부터 건져 달라는 기도 역시 다 미래에 있어질 일을 미리 간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 준 인간 필요의 3가지 기도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위한 기도를 하라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4. 현재 육체의 양식을 달라는 기도는 대체 어떠한 기도를 가리키는가?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의 필요를 위한 기도에서 맨 처음에 언급하신 것은 '양식'을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었다(11절). 그렇다. 사람은 육체를 지녔다. 그러므로 먹어야 한다. 천사는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육체를 지녔기에 먹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 필요의 첫 번째 기도는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양식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결코 속된 것이나 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므로 '일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에피우시오스'라는 단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이라는 뜻으로서, '생존에 필요한'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되, '나의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는 어떤 개인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왜 그럼, 주님께서는 어떤 개인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 말씀하지 않고 우리라는 공동체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 하셨을까? 그것은 개인이 강조되면 떡을 소유함이 개인의 배부름과 과시와 축적과 같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을 경고하신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라는 공동체의 기본 단위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광야에 있었을 때에 하늘로부터 비같이 내려 주시던 양식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출16:4). 이때는 가정의 한 사람이 새벽 미명에 광야로 나가서 한 사람당 한 호멜(2리터)씩의 만나를 주워서 식량을 삼아야 했다(출16:16). 만약 한 가정이 4인이라면 그 사람은 8리터의 만나를 주워 와야 했던 것이다. 만약 평소때 만나를 주워 오던 구성원이 아프기라도 하면, 다른 구성원이라도 나가서 그것을 주워 와야 했다. 그리고 그 만나는 하루가 지나면 냄새가 나고 벌레가 먹어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가정의 구성원 중에서 누군가가 매일 그 양식을 주으러 나가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쌓아둘 수 없었기에 이웃과 싸울 일도 없었다. 이것이 만나의 교훈이다. 고로 '우리'라는 공동체의 기본 단위는 '가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마을이나 민족 전체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기 개인만을 위한 양식을 구하지 말고 자기의 가정 구성원 전체를 위한 양식을 구하고 더 나아가서는 마을이나 민족 전체를 위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일을 하지 않고서 양식을 얻는 것은 성경의 법칙에서 어긋나는 일이다. 

 

5. 과거의 죄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용서는 어떻게 간구해야 하는가?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의 필요를 위한 두 번째 기도제목으로서 과거의 죄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용서를 구하라고 하셨다(12절). 이 기도는 인간의 영혼육 중에서 혼의 필요를 간구하라는 것이며, 과거에 관련되어 있는 어떤 문제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치고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러한 죄가 나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 곧 타인과 연관지어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럼,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데 만약 그렇게 해서 죄를 짓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단번에 무조건적으로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단번에 무조건적으로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용서하는 그 모습을 따라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우리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제자들도 알 수 있도록 이미 구약의 율법에 있는 말씀을 언급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면제년'과 '희년'제도다. '면제년'이란 매 7년마다 자기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무조건적으로 탕감해 주라는 제도이다(신15:1~2). 그리고 면제년이 일곱 번 지나고 난 이듬해 곧 50년째 되는 해는 희년으로서 지키라고 하셨는데, 이는 희년이 돌아오면 돈을 빌려 미처 갚지 못해 노예로 팔려 나간 동족들을 해방시켜 주고, 돈이 없어 토지를 팔아야 했고 집을 팔아야 했던 자들에게 다시 토지를 돌려주고 집을 돌려주라는 것이었다(레25:10).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실천하고 있어야 할 면제년과 희년제도처럼, 자기에게 빚진 자들을 탕감해 주고, 자기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이것을 실천하고 있는 자라야 진정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에서 비유적으로 빚을 탕감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주기도문에 이어지는 부분(마6:14~15)에서는 이것이 곧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6. 장차 하나님의 '시험'과 악한 자로부터의 '구원'을 위한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어서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데리고 들어가시는 시험에서 빼내어 달라는 기도와 더불어 악한 자로부터 구원받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장차 있어질 미래의 일들을 위해 미리 기도하라는 말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성도들은 시험을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는가? 사탄이 우리를 시험해서인가? 아니다. 여기서의 시험은 사탄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유혹으로서의 시험'이 아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시험으로 데리고 들어가시는 분은 사탄이 아니라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당신은 시험 안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지 마시고, 오히려 악한 자들로부터 우리를 건지시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시험하시는가? 이는 자녀들로부터 하여금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함이요, 그것을 통과함으로 하늘에서 상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탄 마귀처럼 우리를 죄짓도록 유혹하거나 그 시험을 통해 우리가 망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훈련과 연단을 위해 그렇게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하나님은 악한 자처럼 시험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약1:13~14).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그에게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창22:1).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죄로 유혹하는 시험을 하지 않으시지만 사람을 테스트하고 평가하기 위해 시험하실 때가 있으시다. 그리고 욥의 경우처럼 시련으로서의 시험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 그것은 그의 믿음을 성장시키며 인격을 성숙시키고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 약할 때에는 이러한 것들이 버거울 수 있다.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다. "주님, 이번 시험이 너무나 버겁고 힘이 듧니다. 그래서 도무지 감당할 길 없사오니, 이번 시험만큼은 저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시며, 저의 믿음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 시험을 허락하옵소서"라며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얼마나 긍휼히 풍성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인가? 그러나 악한 자로부터 유혹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꼭 건져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악한 자의 유혹은 결국 죄를 짓게 만들고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아직은 공격하지 않고 있으나 언젠가는 공격해 들어올 악한 자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 주시고 그들이 공격했을 때에는 그 공격으로부터 건져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7. 나오며

  그렇다. 우리 인간은 육체적인 필요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육체적인 필요는 이 땅에서만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되어서도 아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나 혼의 필요는 조금 다르다. 사람은 자신의 혼이 죄를 짓는데 이러한 죄는 천국 입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혼이 지은 죄를 용서받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죄지은 자의 죄를 용서해 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훗날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시험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시는 아버지의 시험 앞에서 늘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때로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 안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겸손히 아버지께 간구해야 한다. 이번 시험만큼은 지나가게 해 달라고 말이다. 그러면 긍휼히 많으신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시험을 뒤로 연기하시거나 거둬 가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시험은 테스트로서의 시험이자 시련으로서의 시험이기 때문에 통과할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는 매우 유익한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악한 자들은 언제나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오늘도 죄로 우리를 유혹하기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한 자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공격받는 상황이라면 그러한 공격에서 자신을 지켜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악한 자는 우리의 능력보다 훨씬 큰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을 지배하고 다스리시는 이가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자의 공격을 이기게 해 달라고 아버지에게 부탁해야 한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인간 필요에 관한 기도의 한 예를 함께 나눔으로서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우리 가족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양식을 우리 가정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떡 반죽 그릇과 저의 일터에도 복을 주시옵소서. 또한 갚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사랑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사오니, 이 시간 나에게 죄지은 자들을 저도 주님처럼 용서합니다. 저의 죄에도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 심판의 날에 저의 작은 이 실천을 기억해 주시어 내가 지은 죄들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님, 제게 너무나 벅찬 시험은 감당할 길 없사오니 제 믿음의 분량에 따라 적당한 시험을 허락하시어 저의 믿음이 성장하도록 도와주시고, 다만 악한 자와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저와 제 가정과 제 자식을 지켜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2년 08월 28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08-21(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올바른 기도방법은 어떠한 것인가?(마6:9~1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cer8OkQV-PI  [혹은 https://tv.naver.com/v/28776794]

 

1. 들어가며

  기도란 무엇인가?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를 했을 때 과연 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가 되었는지도 늘 기도생활의 관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더불어 과연 내가 드린 기도가 하나님께 기뻐하시고 열납하시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역시 기도생활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몇 주간 동안 기도의 원형이자 원리인 성막의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법과 향을 제조하는 법을 깊이 살펴보았다. 그래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기도의 원리들을 살펴볼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오늘은 구약시대 분향의 원리와 더불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올바른 방법과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지난 주에는 분향단에서 다른 향을 살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기도할 때에는 왜 하나님을 위해서 향을 사르라고 했는지를 주기도문과 관련하여 살펴볼 것이다.  

 

 2.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에 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먼저 하라고 하셨을까?

  구약시대의 성막의 분향단을 공부해 보니 그것은 우리가 과연 어떤 기도를 드려야 올바른 기도를 올리는 것인가에 그 촛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구약의 분향단이 주기도를 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기도문은 그것의 구조가 구약의 향제조법과 매우 닮아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기도는 인간의 필요를 중심으로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은 외식하는 기도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방인들은 중언부언하는 기도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회당이나 큰 거리 어귀에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이 되어서 이미 자기의 보상을 받은 채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이 말을 많이 해야 들을 줄을 생각하고는 같은 말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된 제자들은 그렇게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기도할 것을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는 잘못된 기도의 방식들과 내용드을 바로잡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였던 것이다.

 

3. 주기도문의 3대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를 대할 때에는 보통 그 기도가 예수께서 말씀해주신 기도의 완전한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주기도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주기도문의 구조가 구약의 십계명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구약의 십계명이 주기도처럼 하나님을 위한 것과 인간을 위한 것으로 나누어 있기 때문이다. 즉 1계명에서 4계명이 하나님을 위한 계명이듯이 주기도의 앞의 3가지 기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5계명에서 10계명이 인간을 위한 계명이듯이 주기도의 뒤의 3가지 기도도 역시 인간의 필요를 간구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십계명의 앞의 4가지 기도가 주기도문의 처음 순서와 그대로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십계명의 1~2계명 곧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우상을 만들거나 절하거나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계명은 주기도문에서 기도의 대상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기도에서는 오직 하늘들 안에 계신 이이신 아버지에게만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는 계명인데, 주기도의 앞의 첫번째 기도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인데, 주기도의 앞의 두번째와 세번째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하라는 것으로서, 안식일을 지켜 행할 때에 안식과 질서가 바로 잡히는데, 주기도의 두번째와 세번째의 기도가 이뤄지면 이 우주에 안식과 질서로 바로 잡히기 때문이다.

  둘째, 주기도의 앞의 3가지 기도가 수동태 능동태 수동태 구문인데,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기도하는 과정과 이와 똑같다는 것이다. 그렇다. 주기도의 앞의 세 가지 기도 중에 첫 번째 기도는 사실 수동태 구문으로 시작한다. 즉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간구하라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에는 어떤 다른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리고 두 번째 기도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능동태 구문이다. 이것은 어떠한 다른 어떤 요인일지라도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하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버지의 능동적인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기도는 다시 수동태 구문이다. 이는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게 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는 이 기도가 어떤 다른 요인에 의해 방해받을 수도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일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데에는 아버지의 의지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기쁜 순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가 둘 다 수동태 구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유의지를 가진 천사와 인간의 자발적인 순종이 있어야 함을 매우 강하게 암시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와 인간 중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일에 대해 거역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와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과 뜻을 거역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능동적으로 그 일에 간섭하여 강제로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가 영락없이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기도의 구조와 똑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도의 응답이 역시 수동태, 능동태, 수동태 구문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나 문을 두드렸을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가 같이 반영되는 것이어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받는다거나 문이 열려지게 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닐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서 발견하는 문제는 능동태 구문인다면 전적으로 우리 책임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우리가 무엇인가를 요청했다면 찾는 것은 우리가 오롯이 해야 할 몫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문이 열려지는 것은 역시 우리 힘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다는 것이다. 

  셋째, 주기도의 도입과 본론이 구약의 성막법의 분향단 및 항제조법의 주의사항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분향단법에서 주의사항이 분향단에서는 절대 다른 향을 사르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 주님께서도 기도할 때에는 이방인처럼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약의 향제조법에서는 대제사장 자신이 냄새를 맡기 위해서 절대 향을 만들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올려드리기 위해서 향을 만들라고 하셨는데, 주기도 역시 자기자랑을 위해서 결코 기도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실제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사역할 때에 향을 사르게 되면 지성소의 피비린내가 사라지고 머리가 상쾌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지만 실제 은혜는 우리 인간이 받기 때문이다.

 

4. 주기도문의 앞의 3가지 기도는 과연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하라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주기도문의 앞의 3가지 기도를 하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첫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라는 말은 아버지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기를 기도하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동안에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에 의해서 그리고 그분이 선택했던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더럽혀져 왔기 때문이다. 먼저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이 하나님이 맨 처음에 창조하신 영물인 일부 천사들에 의해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이는 타락한 천사들인 귀신들 때문이다. 이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뜻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을 버젓히 행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뿐더러 인간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 곧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은 욕되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애굽에서 구원받고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신들과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기고,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는 저는 것과 병든 것과 눈 먼 것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려 이방민족에게 포로로 끌려가게 했으니 그들이 이방나라의 피지배 민족이 되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겔20:30). 특히 하나님의 이름을 업신여기는 일은 일반 백성들보다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더 하였으니, 제사장들의 파렴치한 모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말1: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제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제자들은 이전의 천사들이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이름이 하나님의 자녀들로 인하여 더럽혀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들의 말과 행동으로 인하여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아버지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왕국)가 오게 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그분의 통치가 이 땅 위에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몸과 마음에도 임하기를 기도하라는 뜻이다. 사실 하나님의 왕국과 그리고 천국은 그 개념이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이 상태적인 개념이 강한 용어라면 천국은 장소적인 개념이 강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주기도문에서 말씀하신 것은 상태적인 개념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을 사용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기도하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 땅 위에는 여전히 사탄의 왕국이 존재하며 그들이 통치하고 있는 영역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가 악한 영들의 통치를 받지 않도록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인 사탄과 싸워서 3대0 판정승으로 승리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귀신쫓는 권세와 능력을 주시고 이제는 믿는 자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귀신을 쫓아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것이 좋다. "아버지, 저에게도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내 몸이 이제 주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주님께서 나타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내 몸과 마음이 온전히 주님의 통치 아래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이 주님의 통치 이외에 그 어떤 세력도 통치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주님만이 나의 왕이요 주인이라는 것을 드러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셋째, 아버지의 뜻이 하늘들 안에서 나타나게 되고 있듯이 이 땅 위에서도 나타나게 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은 천국에서 이미 악한 영들이 쫓겨나서 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쫓겨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서 하늘의 상속자로 입성하고 있듯이 이 땅 위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탄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생활의 하나님의 뜻이나 단순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뜻이 하늘 안에서처럼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즉 이 땅에서 필요하거나 이 땅 위에서 있게 되어야 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늘에서 필요하거나 하늘 위에서 있어야 할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리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살전5:16~18)이나 '선을 행함으로 인하여 고난받는 것'(벧전3:17),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역자가 되는 것'(고전1:1), '거룩함'(살전4:3~4)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하늘에서는 더이상 필요없건 이미 이루어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주기도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있다. 다시 말해 하늘 안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거나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이 여기서의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크게 2가지다. 한 가지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창조된 천사들은 언제나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천국에서 쫓겨나 불못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회개하고 충성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상속자들이 되어 천국에 입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만세 전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엡1:4~5,3:6). 

 

5. 나오며

  오늘날의 하나님의 자녀들치고 기도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도를 잘 하지 않는다. 어느새부턴가 기도해도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둘 중의 하나의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하는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방인처럼 중언부언의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과는 달라서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에게 어떤 필요가 있는지를 다 아시고 있다는 것이다(마6:8).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이방인처럼 기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럼, 이방인들은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 그들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만 쭉 주섬주섬 되뇌이다가 그만 기도를 끝내버린다. 때론 정성을 다해 많이 기도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신의 기쁘시고 온전한 뜻이 자기를 통해 이뤄지기를 기도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의 뜻이 성취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너희들은 그렇게 기도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어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오게 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되 하늘 안에서처럼 이 땅 위에서도 이뤄지기를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자기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하는 기도를 드린다고 치자. 그때에는 어떻게 기도하면 좋겠는가? 여기, 그 예를 하나 들므로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제가 악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악한 영에 시달려서 주 예수님을 믿는 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지 않게 행동한 악한 영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패배하게 하여주시고, 그 악한 영들이 떠나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아닌 그 어떤 영들에게도 내가 휘둘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주님만이 나의 주인이시며 나를 다스리는 왕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 주님, 이제는 주님만이 나를 다스려 주옵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악한 영들은 패배하게 하시고, 내가 주님의 자녀인 것이 드러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제가 건강을 되찾게 됨으로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온전히 주님의 이름만 높여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2년 08월 21일(주일)

정병진목사

 

하나님께 죄용서를 구할 때에 우리가 반드시 실천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회개하면 다 용서받는 것인가? 왜 예수께서는 죄용서에 대한 기도를 빚진 것을 탕감받은 것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을까? 또한 죄지은 자들에 대한 용서가 먼저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준 것이 먼저인가? 그리고 한 번 죄용서를 받은 자는 죄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골고다 언덕의 예수의 피로 이미 다 용서된 것인가? 주기도문 가운데 죄용서에 관하여 유대인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부록이 달려있는 놀라운 죄용서의 말씀이 여기에 있다.

2019-09-06(금) 2019년도 9월 특별새벽집회 다섯째날
제목: 주기도문강해(06)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마6:12)
https://youtu.be/Rynf_L20wy0


1. 들어가며

오늘은 주기도문 가운데 인간의 필요에 관한 두 번째 간구에 대해서 배우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꼭 용서받아야 할 죄들 사함에 관한 말씀이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의 필요에 있어서 죄들 사함을 위한 기도를 절대 빠뜨리지 않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죄들에 관한 용서를 위한 기도를 빠뜨리지 않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죄들의 용서를 구할 때에 우리가 꼭 실천하고 있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께서는 죄사함을 비는 기도를 왜 빚진 것을 탕감받는 것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인가? 그리고 사람이 예수님을 한 번 믿게 되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에 대해서 이미 다 용서받았으므로 죄용서를 위해 비는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오늘은 주기도문 가운데 인간의 필요에 관한 두 번째 간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2. 인간의 필요를 위한 두 번째 간구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인간을 위한 필요 가운데, “일용할 양식곧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구할 것을 말씀하신 후에,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이때 어떻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가? 우리말성경의 번역을 보면 이 문장에 있어서만큼은 의역을 시도했다. 왜냐하면 이 문장에는 ”(하마르티아,sin)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직 ”(오페일레마,debt)이라는 단어만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장을 헬라어 원문에 따라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우리도 역시 우리에게 빚진(죄지은) 자들을 탕감(용서)해 주었던 것처럼, [당신은] 우리의 빚들(죄들)[단번에] 탕감(용서)하여 주옵소서

3. 왜 예수께서는 죄들에 대한 용서를 빚들에 대한 탕감으로 말씀하셨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왜 인간을 위한 두 번째 간구가 우리들 자신이 지은 죄들에 대한 용서라고 알고 있는가? 그리고 한글번역본에서도 그렇게 번역해 놓았는가? 그것은 이 본문을 누가복음의 그것과 비교해보았을 때에 에 대한 의미가 곧 를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1:4). 이제 이 기도에 대한 누가복음의 것을 우리말로 직역해보자. “그리고 왜냐하면 우리도 역시 우리에게 빚진 모든 자들을 용서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우리의 죄들을 우리에게 [단번에] 용서하여 주옵소서그렇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에 대한 탕감은 곧 죄에 대한 용서를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토라(율법)을 배우고 자랐는데, 그때 이미 면제년”(15:1~3)희년”(25:10)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죄용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두 가지 율법규정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유대인들은 면제년(7)이 되면, 아무런 조건이 없이 채권자는 자기의 이웃과 형제가 진 빚들을 전부 면제(탕감)해주어야 했다(15:1~3). 그리고 심지어 희년(50)이 되었을 때에는 팔렸던 사람이나 팔렸던 토지까지도 다 되돌려주어야 했다(25:10)(그러나 실제로 시행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유대인이라면 이 토라를 안식일에 회당에서 낭독했고 또한 어려서부터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죄사함은 면제년과 희년에서 말하고 있는 탕감같은 것이라고 들려주었을 때 그들은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조건없는 죄들의 용서.

4. 자기가 지은 죄들을 용서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었던 12명의 제자들에게 인간의 필요에 관한 두 번째 간구를 통해, 자신이 지은 빚들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하나의 조건이 달려있었다. 그것은 우리도 역시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주었던 같이라는 조건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우리가 만약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인가?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본문을 문장 그대로 해석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죄용서를 받는 것에 있어서 어떤 조건이 달려있다는 이 문장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와는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그러한가? 그래서 어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를 다 용서받았는데, 무슨 죄용서를 위해 간구해야 하느냐면서 이 문장을 빼야 한다는 자들이 있었다(물론 이들은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그리고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들도 있었다. “주님이신 예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용서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러한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은 분명 우리도 역시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주었던 것처럼,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는 간구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은 바꾸어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빚진 자에 대한 탕감의 비유(18:23~35)”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보면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다. 하지만 갚을 것도 없었고 갚을 능력도 없었다. 그러자 그는 엎드려 절하며 간청했다.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그러자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를 놓아 보내면서 그 빚을 다 탕감하여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는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 하나의 목을 잡고는 빚을 갚을 것을 독촉하였는데, 그도 엎드려 내게 참아주소서, 갚으리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를 허락하지 아니하고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그를 가두어버렸다. 그러자 그것을 지켜본 동료들이 그 사실을 주인에게 보고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이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하고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에 넘겼다는 것이 이 비유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들을 다 용서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지 않고 있다면, 장차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이 비유가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누가 하나님께 청원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남들이 내게 지은 죄들을 용서하고 있는 자들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이미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회개하여 이미 다 용서받았다. 그러나 죽는 날까지 우리는 또한 죄를 지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매일 회개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회개를 하고 있는 자라도 지금 자신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지 않는 자라면, 그 사람은 배은망덕한 자로서 마지막 심판의 때에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인간에 필요한 두 번째 간구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을까봐 주기도문 후에 부록으로 한 말씀을 더 하셨다. 그것이 바로 마6:14~15의 말씀이다.

6:14~15[직역] 왜냐하면 만일 너희가 그들의 잘못들을 사람들에게 용서한다면, 역시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장차 용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너희가 사람들에게 용서하지 않는다면,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들을 장차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미 무조건적으로 자신이 지었던 죄를 용서받은 자라도 이제는 다른 사람의 죄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해주지 않는 삶을 그가 살고 있다면, 그는 종말의 심판대에 가서는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지옥에 떨어질 큰 죄들을 용서받은 자답게 다른 사람들의 잘못도 용서해줄 줄 알아야 한다. 즉 이미 용서받은 자로서의 실제가 없이 살아가는 자는 자신의 죄를 결국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사실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것을 기대할 수도 없는 자들이다. 자신의 몰인정부터 먼저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간의 사이에 있는 죄에 대해 용서를 실천하지 못한 자는 결국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양식) 없으면 육체의 생존이 불가능하듯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해주지 않는 자는 장차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왜 오늘날에 예수를 믿고 있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저주와 질병, 환난과 자녀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가? 그것은 지금 자신의 지은 죄들이 용서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는 회개한다고 말하지만 용서받은 자로서 오히려 남들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인간의 필요를 위한 두 번째 간구는 우리의 마음이 천국에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간구임에 틀림없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자는 긍휼없는 심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여기서도 지옥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며, 죽어서도 그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9년 9월 6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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