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예레미야강해(06) 사람과 민족은 언제 하나님께 심판받게 되는가?(렘1:13~1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USHRRiVVCKc [또는 https://tv.naver.com/v/33097041]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는 것인가? 특히 어느 때 민족을 심판하시어 징계를 내리시고 멸망하게 하는가?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에 나온 기사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며, 사람에게 심판을 가져오는 죄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오늘날에 우리는 어떤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는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고 한 민족과 국가를 심판하실 때에는 그들이 몇 가지의 죄를 지었다고 곧바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으로서, 긍휼이 많으시고 인자가 풍부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때에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죄가 가득찼을 때다. 죄가 관영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또한 누군가 그 죄의 값을 치러야 죄는 없어지는(덮어지는) 것이지 결코 누군가 죄값을 받지도 않았는데 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최종적인 하나님의 인내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남유다 왕국의 말기에는 이미 죄가 거의 다 찬 상태였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들에게 임할 재앙이 다가오고 있음을 끓는 가마의 환상을 통해 보여 주셨다(렘1:13~14). 여기서 재앙은 죄의 결과로서 사람과 민족 위에 쏟아질 하나님의 징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3. 죄가 가득 찬 상태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만큼 죄가 가득 찬 상태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예레미야서는 적어도 3가지 죄가 가득 찬 상태임을 말해 준다. 

  첫째, 모든 사람들이 총체적으로 타락했을 때에 심판하신다(렘6:13). 여기서 모든 사람들이라 함은 일반 백성에서도 지도자들 특히 종교지도자들까지 다 타락했을 때를 가리킨다. 예레미야 시대가 그랬다. 일반 백성들은 탐욕에 물들어 있었고 객과 고아와 과부들은 내팽개쳐진 상태에 있었으며(렘7:6), 죄 없는 자를 모함하여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왕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며, 제사장과 선지자들도 거짓을 일삼고 있었다(렘6:13). 특히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거짓 예언을 하고 있었다(렘14:14, 23:16,26). 그리고 모두가 도둑질하고 있었고, 살인하고 있었으며, 간음을 행하고, 거짓 맹세를 하고 있었다(렘7:9). 그래서 예루살렘 성읍 안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단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렘5:1). 다시 말해, 일반 백성에서 종교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썩어서 냄새나는 삶을 살아 더이상 지켜볼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심판의 회초리를 드는 것이다.

  둘째, 사람들이 죄를 지어도 십계명의 1~2계명의 죄를 심각하게 지었을 때에 심판하신다(렘1:16).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북방에 있는 이방 민족을 끌어다가 남유다를 쳐서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1계명을 어기고 제2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섬겨 분향하고 절할 때에 그리고 자기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경배하고 그것들에게 음식을 차려놓는 일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회초리를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남유다 백성들에게 우상의 숫자는 얼마나 되었을까? 예레미야 선지자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들의 수가 그들의 성읍 수처럼 많다고 하였다(렘2:28). 그렇다면 남유다 백성들이 섬기던 신들과 우상에게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은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셋째,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를 끊임없이 보내지만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며, 참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심판하신다(렘7:25~26, 25:4, 29:19, 35:15).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백성들에게 곧바로 재앙을 내리시지 않는다. 그들이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니 먼저 돌이키라고 선지자들을 보내신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들을 오히려 핍박하고 죽일 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다. 

 

4. 예레미야 당시 남유다 백성들은 어떤 신들과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남유다 백성들은 어떤 신들과 어떤 우상들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크게 세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다른 민족들이 섬기던 신들을 받아들여 섬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에는 가나안 민족으로부터 받아들인 바알신(렘11:13, 19:5, 23:27)과 아세라신(렘17:2)이 있었고, 하늘 왕후로서 바벨론에서 받아들인 이쉬타르신(렘7:18, 44:17~19)이 있었으며, 그리고 몰렉신(렘32:35)도 있었다. 남유다 백성들은 이런 신들을 조각하고 새겨서 자기들의 신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러한 신들에게 향을 살라 바쳤고 술잔을 부어 드렸으며, 과자를 만들어 바치고 있었다(렘44:17~19)

  둘째, 그들은 자연 만물인 해와 달과 별들을 신으로 숭배했으며(렘8:2), 돌과 나무도 숭배했다(렘3:9). 그들은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란하듯 그들에게 절하고 음식을 차려놓았으며, 그것을 즐겼다. 

  셋째, 마지막으로 그들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도벳사당을 지어 거기서 인신제사를 행하고 있었다(램7:31~32, 32:34~35). 이때 그들이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그 신은 바로 '몰렉'이라는 신이었다. 

 

5. 왜 남유다 백성들의 궁극적으로 잘못된 판단은 무엇이었는가?

   남유다 백성들은 다른 신들과 우상만을 만들어 섬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에서 본 것과 가나안 땅에서 배운 다신론적 신관을 받아들여서,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신들도 섬기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생각 자체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이미 언약 백성으로서 다 할례를 받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있으니, 하나님으로부터 복받을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잠시 잠깐 외도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그들의 영적인 남편이라고 말씀하셨다(렘3:14).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만 섬긴 것이 아니라, 다른 신들과 우상들도 섬김으로 자신의 남편을 버리고 다른 신들과 영적으로 음행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몹시 슬퍼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분노하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읍이 있고, 또한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성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절대 자기들과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렘7:4). 그러므로 자기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고 성전도 절대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작은 심판을 내려 그들을 경고하실 때에도 그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보면서 자기들의 죄가 쌓여서 심판을 향해 가고 있으며, 하나님이 경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선민사상이 그들 자신을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그리고 평안하다고 생각했으며, 재앙은 자기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렘23:17).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진노의 잔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6. 오늘날 한국 교회는 무엇이 문제인가?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의 잘못된 선민사상만을 나무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선민의식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는 잘못된 구원론에서 기인한 것이며, 둘째는 잘못된 예정사상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장로교인이 정말 많다. 전 세계 장로교인의 50%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한국 장로교회에서 가장 많이 가르치는 것이 바로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는 잘못된 구원론이다. 정말 구원의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옳은 주장이지만 그 사람이 한 번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절대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전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아니 믿는 이의 절대 다수가 회개하지 않아서 지금도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데도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자신의 죄는 과거의 죄나 현재 짓고 있는 죄나 미래의 죄가 다 용서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회개를 등한시 하거나 회개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를 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오히려 바보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대제사장이 대속죄일 제사를 드린 것으로 이해하라. 그래도 우리는 개인 속죄제사를 드려야 한다. 개인 속죄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가, 일 년에 한 번 치른 대속죄일 제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모든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님을 알라. 충분한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충분히 회개해야 예수님의 피가 나에게 적용되어서 내 죄도 용서받고 귀신들도 떠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잘못된 예정사상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예수믿게 된 것은 만세 전에 나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이니만큼, 나의 구원은 절대 흔들림이 없을 것이며, 내가 무슨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은 구원받을 숫자에 관한 예정인 것이니, 개인에 대한 구원 예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어떤 예정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쓰실 것인가 하는 예정 곧 개인 사역 예정인 것이지 개인 구원 예정은 없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장로교인들이 자신은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다 세뇌교육 때문이다.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구원은 죽을 때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야 하는 구원이다. 구원은 이미 예수믿을 때에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인지는 죽은 후에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분명한 것이지만, 아직 경주를 끝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는 믿음을 붙잡고 회개하면서 나가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대인들처럼 잘못된 예정 구원 선민사상에 물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7. 나오며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그 결과는 누군가가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 죄값을 받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 죄값을 예수님께서 처리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기만 하면 다 죄값이 처리된 줄로 알고 있는 분들이 아주 많다. 그건 크게 잘못된 믿음이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좀 다르다.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탕감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짓는 죄는 반드시 자백함으로 용서받아야 한다(요일1:9). 그리고 그때 지었던 죄들 때문에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하려면 이것도 다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의 죄는 아직 내가 짓지도 아니한 죄이기 때문에 그 죄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짓고 있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고 있어도 지금 짓고 있는 죄 때문에 결국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바깥이나 불못으로 던져질 수 있기 때문이다(계21:8, 22:15). 그러면 거기로 쫓겨나서 슬피 울게 될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1~2계명의 어긴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개하면 하늘의 행위책에서 우리의 죄가 지워질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 지었을 때에 우리 안에 들어왔던 귀신들(실제는 뱀들)도 같이 떠나가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다 용서가 되는 것이다. 죄악이 차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도 명심하자. 그런데 죄가 차지 않도록 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 감사하자. 그것이 바로 회개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지었던 죄에 따른 악한 영들도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 몸에서 떠나보낼 수 있는 것이다. 재앙을 비울 수가 있는 것이다. 회개가 정답임을 명심하자. 회개할수록 이미 채워지고 있는 재앙이라도 그것이 비워지게 되고 더이상 차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놀라운 일이다. 회개가 이처럼 영적 세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놀라운 영적 무기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회개에 집중하자.

 

 

2023년 02월 12일(주일)

정병진목사

2023-01-08(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사도 바울도 회개했을까?(행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u691s-kig4  [혹은 https://tv.naver.com/v/32238772]

1. 들어가며

  바울도 과연 회개했을까? 우리는 성경에 바울에 관한 기록들을 갖고 있다. 그의 행적은 사도행전(9~28장)과 13권(로마서~빌레몬서)의 그의 서신서들에 들어 있다. 그런데 성경기록만을 보면 과연 사도 바울이 회개했는지 직접적으로 살펴보기는 어렵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윗왕은 살인교사죄와 간음죄 이후에 과연 죄를 회개했을까? 회개했다. 그가 회개한 사실은 시편 51편과 32편과 6편에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회개를 안 한 것인가? 회개를 했는데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인가? 우리는 회개에 관한 정의를 다시 더듬어보면서 과연 바울이 회개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도 과연 회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도 바울이 회개했는지의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이 진정 회개를 했는지 안 했는지의 여부를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입술로 고백한 것만을 가지고 회개를 했다고 판정하기는 사실 어렵다. 왜냐하면 진정한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마3:8). 세례 요한은 회개를 외쳤던 선지자들 중의 최고의 선지자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자기에게 세례받기 위해 나아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어떻게 책망했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3:7~9)." 그렇다. 그는 자신에게 와서 회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회개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회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회개했는지 안 했는지에 관하여는 과연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그에게서 나타났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3. 회개를 실제로 나누면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회개는 보통 회심으로서의 회개와 자백으로서의 회개로 나뉜다. 회심으로서의 회개란 처음 믿을 때에 행하는 회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을 하나님으로 믿고 섬긴 죄를 회개하고,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데 이를 거부하거나 모른 채 살아온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이때 사람은 과거에 지은 자신의 모든 죄에 대해 탕감을 받는다(임시적인 용서를 받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람은 그때 이후로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자백함을 통해 자신의 죄들을 용서 받아야 한다(요일1:9).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도 과연 회개했는지 안 했는지는 이 두 방면에서 체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회개했다는 기록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으니 그가 맺은 회개의 열매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먼저 첫째로, 그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했던 것인가? 물론 했다. 그 증거가 있는가? 있다. 그것은 사도행전 9장에 나온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을 향해 가고 있을 때에 주님이 직접 그를 만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러고는 다메섹의 아나니아로부터 자신에 대한 주님의 소명을 들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다. 이때 그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때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러자 그때부터 며칠 지난 후 그는 곧바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증거하기 시작한다(행9:20,22). 이는 그가 확실히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했다는 것을 증언해 준다. 

  둘째로, 그는 자백함의 회개를 했는가? 그렇다. 이것도 역시 그가 지은 죄들에 대해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봄으로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 바울은 어떤 죄를 지었는가?

  바울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들을 지었는지는 우리가 다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십계명을 어긴 것만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레마(말씀)을 거부하한 것도 역시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으로만 짓는 것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입술로 짓는 것도 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떤 죄를 지었는가? 우리는 사도행전으 기록과 그가 남긴 서신서들을 중심으로 그가 최소한 3가지의 죄는 지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그는 살인과 폭력의 죄를 지었다(행22:4, 19~20, 26:10~11).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믿기 직전에 지은 죄였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깨닫지 못해 지은 죄였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을 몰랐기에 지은 죄였다. 그 죄는 바로 주님의 충성스러운 평신도였던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스데반을 죽이는데 직접 참여는 하지 않고, 다만 증인들의 겉옷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스데반 집사를 죽였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내가 이 도를 박해아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행22:4)" 그랬다. 그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때렸으며(행22:19), 감옥에 가두었으며, 회당에서 처벌하기도 하였고, 강제로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기도 하였다(행26:10~11). 그리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찬성투표를 하였으며, 그를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키기도 했다. 그리고 직접 가담했다(행22:20). 

  둘째, 그는 혈기 분노의 죄를 지었다(행15:39). 그가 혈기 분노의 죄를 지은 것은 그가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에서 복귀했다가 다시 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2차 전도여행을 떠나는데 수행자로서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를 놓고 동역자인 바나바와 피차 다투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은 갈라섰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울에게는 혈기 분노의 영이 아주 많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가 다메섹의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을 때에는 살인과 폭력의 영이 떠나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 사울의 눈에서 어떤 뱀 비늘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에게는 여전히 혈기와 분노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싸웠다. 그러므로 그때 그는 혈기 분노의 영을 더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셋째, 그는 교만의 죄를 지었다. 그는 교만했는지를 그의 속에 들어가보지 못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고린도후서의 편지에서 교만의 문제를 언급했다. 그 상황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후12:7~9). 

고후12:7~9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랬다. 그는 다른 사도들과는 좀 달랐다. 비록 육체로 계셨던 주님의 사도는 아니었더라도,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에 대한 거의 모든 계시를 다 받은 자였다(갈1:11~12). 그러므로 그에게는 교만한 마음도 역시 마음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자신의 몸 속에 있는 사탄의 천사 곧 귀신을 제거해달라고 세 번 기도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귀신을 자신의 교만함에 대한 표출의 잣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교만했었을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베드로를 책망하고 바나바를 책망하면서 더 교만한 마음을 가졌을른지도 모른다(갈2:11~16). 
 

5. 바울은 회개했는가?

  바울이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했는지는 명시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는가를 통해 그가 회개했는지를 역추적할 수는 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는 회개해서 완전히 죄용서를 받은 것도 있었지만 회개하는 과정에 있는 죄도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첫째로, 살인 폭력의 죄는 확실히 회개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살인 폭력에 가담한 것이 분명한데,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자신이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았으면 받았지 남을 핍박하고 고난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은 복음 전하다가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예수믿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을 채찍질하고 감옥에 가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을 전하다가 죽음에까지 이르렀지만 그는 다른 사람을 죽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회개의 열매를 통해서 그가 살인 폭력의 죄에 대해 회개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둘째로, 혈기 분노의 죄도 회개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2차 전도여행 이후를 보면 그가 혈기 분노를 낼 수 있는 형편에 처하는 상황 가운데서도 한 번도 혈기 분노를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본문처럼 그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갔는데, 거기어 자신을 모함하는 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죄인으로 붙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를 고소한 죄목에는 성전을 더렵혔다는 것이 들어 있었다. 그가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고 고소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일에 자신이 죄인 취급 받게 되었을 때에 그들을 향해 혈기 분노를 쏟아낼 수 있었다. 왜 거짓으로 나를 모함하고 고소하느냐고 오히려 역정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이 손으로 때리고 옷을 잡아당기는 일을 했지만 한 번도 반항하거나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이는 그가 혈기 분노의 죄를 회개하여, 혈기 분노의 영을 내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교만의 죄는 그가 회개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교만해서 자기 안에 들어온 사탄의 천사들 곧 악한 영을 내보내 달라고 주님께 간구했지만 주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에게 작더라도 교만함의 영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실 그는 자신의 사도권 방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가? 그것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 적나라하게 나온다. 그는 자신이 사도인 것을 알 수 있도록 얼마나 그 사실을 편지에 써서 말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은 이런 자인데 왜 너희들은 그것을 몰라보느냐?"는 그의 교만함의 표출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그는 점차로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십자가만 자랑한다. 그리고 자신의 학식보다는 예수님을 더 드러낸다. 이는 그가 계속해서 교만한 죄를 회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교만의 죄와 음란의 죄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줄어들고 약해질 뿐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교만의 죄에 부분에 대해서는 일평생 회개를 통해서 자복하고 눈물 흘리며 회개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천국에서 24장로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지위를 가진 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회개하라고 하니 어떤 사람은 회개기도문을 수백 번 읽은 것을 가지고 자신은 회개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바울이 비록 말로 자백함으로 회개했다는 대목이 성경에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그가 회개하는 자였고 또한 회개를 하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지금 천국에서 갖고 있는 지위를 통해서도 그는 회개한 자였음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렇다. 그는 회개하는 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말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이제 회개할 때에는 자신의 회개한 죄목에서 자신이 진정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열매와 결과가 나타나고 있을 때에 진정한 회개에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일평생에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회개를 통해 과거에 지은 죄를 씻어내야 한다. 그리고 범죄의 숫자를 줄여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죄를 안 짓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선한 일에 부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는 깨끗한 그릇으로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회개에 집중하고 열매맺는 회개를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3년 01월 08일(주일)

정병진목사

 

2023-01-06(금) 금요기도회

제목: 쓴뿌리 제거(07) 게으름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잠6:9~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Wh7uzx8zjwk [혹은 https://tv.naver.com/v/32238598]

1. 들어가며

  게으름도 죄일까? 간음을 저지르고 도둑질을 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죄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다 십계명의 조항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어기면 죄가 되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더 이상 율법 중 의식법을 어긴다고 해도 죄가 되지는 않는다. 의식법은 예수님께서 완성하심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덕법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오늘날에도 도덕법인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 역시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게으름'도 죄가 되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게으름의 쓴 뿌리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과연 게으름도 죄가 되는지 그리고 게으름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게으름의 쓴 뿌리는 어떤 영에서 오는 것인지 그리고 게으름의 결과는 어떠하며, 게으름의 영들은 주로 우리 몸 어디에 붙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게으름을 제거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게으름'도 죄가 되는가?

  '게으름'이란 사전적으로는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을 가리킨다. 그중에서 성경이 말하는 '게으름'이란 일하기는 정말 싫어하는데, 놀고 먹고 유흥을 즐기는 것을 즐겨하는 것을 가리킨다. 해야 할 일은 안하고, 먹기를 탐하고 수다떨기를 좋아하며 세상의 즐거움에는 아낌없이 시간을 쓰는 것을 '게으름'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게으름도 죄라고 할 수 있는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조항들 중, 좁은 의미의 율법 곧 도덕법의 조항만으로 보았을 때에는 게으름을 죄라고 말하기는 좀 곤란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게으름에 대한 조항이 십계명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을 좀 크게 보면 그것은 다르다. 구약성경 전체를 율법으로 본다면 게으름도 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사무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삼상12:23).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게으름의 죄에는 기도하지 않는 죄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무엘의 눈에는 적극적으로 기도하지 않고 살아 가는 모든 것이 죄라고 보였던 것이다. 둘째로, 잠언서에 보면 엄청나게 많은 말씀들이 게으름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결과들이 가르쳐 주는 것은 결국 게으름도 죄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잠6:6,7, 10:4,26, 12:24,27, 13:4, 15:19, 19:15,24, 20:4, 21:25, 22:13, 24:30, 26:13,14,15,16). 

  그렇다면 게으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으며, 신약의 사도 바울은 어떻게 말했을까를 살펴보자. 먼저, 예수께서는 게으름에 대해서 아주 책망하셨다. 그리고 그 결과를 심각하게 말씀하셨다. 주님은 한 달란트 받았던 자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하셨다(마25:26). 또한 그 종에게 최종적으로 판결을 내리셨는데, 그것은 그가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천국은 누가 못 들어가는가? 죄 문제와 생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 그중에서 기본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게으름도 역시 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도 바울도 일하기를 싫어하는 자들에 관하여 엄청나게 책망했다. '일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살후3:10~12). 사람은 먹지 않으면 죽게 되는데, 그 정도로 게으름을 책망한 것이다. 고로 우리는 게으름도 일종의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게으름의 죄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그렇다면 게으름의 죄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그것은 크게 두 종류의 게으름의 죄가 있다. 하나는 육적인 게으름의 죄가 있고 또 하나는 영적인 게으름의 죄가 있다. 먼저, 육적인 게으름의 죄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자신의 육체로 일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께서는 땀흘려 수고해야 먹을 것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창3:19). 그러므로 노동하지 않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일하는 것은 생존이 달려 있다. 그런데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와 관계된 다른 사람이 내 대신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이 땅에 살 때에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그런데 일은 하지 않으면서 먹고 놀고 즐기는 것에 열심을 내는 것은 곧 게으름의 죄인 것이다.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늘 잠만 자는 것 역시 죄다(잠26:14).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것 역시 죄가 되는 것이요, 벌지는 않으면서 쓰는 데는 열심히 써서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것 역시 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좀 적극적으로 보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데, 사람들과 모여 수다떠는 일에는 열중하고 먹고 놀고 여행하는 것을 늘 연구하며 기뻐하는 것도 역시 죄가 되는 것이다. 수다떨 때에 게으름의 영이 엉덩이에 붙게 되고, 누워서 잠만 잘 때에는 등에도 악한 영이 달라붙게 된다. 

  그리고 다음으로 '영적인 게으름'의 죄가 있다. 영적인 게으름이란 육체가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데에는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쓰면서 영적인 일에는 도무지 신경쓰지 않고 사는 것이 바로 '영적인 게으름'의 죄이다. 사실 사람은 겉사람(육신의 사람)과 속사람(영의 사람)이 같이 한 몸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사람은 육체만 성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영(속사람)도 성장해야 한다. 속사람은 오직 이 세상에서만 성장시킬 수가 있는데, 만약 이 땅에서 속사람의 나이가 성장하지 못한 채 죽는다면 그는 다음 세계에서 영원토록 그 나이로 살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필연적으로 이 땅에서 자신의 속사람의 나이를 성장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기도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말씀을 먹는 일이다. 그러므로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무엘은 그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먹지 않으면 역시 영이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배 드리기를 싫어하고, 예배에 빠지며, 예배 시간에 지각하고, 예배 시간에 잡생각을 하고, 예배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일평생에 영의 나이가 1~2살도 못 먹고 죽게 된다. 사람의 영은 보통 3~4살 혹은 5~6살의 나이로 이 땅에 보내어지고, 10년에 1살 정도 영의 나이를 먹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땅에서 영의 나이가 10살 이상을 먹지 못한다. 그런데 영을 성장시키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는 게으른 자인 것이다. 이렇듯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더불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일들을 통해 자신의 영의 나이를 성장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4. 사람이 게으르게 되는 것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게으른 것이 가족력이라든지 아니면 천성적으로 그렇다든지 하는 말을 하곤 한다. 특히 속담처럼 충청도 사람은 게으르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 말이 조금 느린 것 뿐 충청도 사람이라고 해서 게으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게으르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자기 조상으로부터 게으름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상들 중에 어떤 우상숭배의 죄를 저지르게 되면 게으름의 영이 후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대부분 할아버지에게서 손자에게로 넘어간다.

  그렇다면 어떤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되면 게으름이 영이 사람에게 역사하고, 그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영이 후손에게로 내려가는 것인가? 그것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대부분은 부처 불교의 우상숭배를 했을 게으름의 영들이 들어오고 후손에게 내려간다. 그리고 다음으로 제사를 드리거나 미신 잡신을 섬길 때에도 조금은 게으름의 영이 치고 들어온다. 왜 그런가? 먼저, 부처 불교쪽부터 살펴보자. 사람이 부처와 불교를 섬길 때에는 모든 것을 머리에서 비우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삼라만상의 생각들이 죄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념무상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머리가 완전히 비워질 수 있는가? 그러다 보니 부처와 불교를 섬기는 자는 헛된 망상에 자꾸 빠지게 된다. 그리고 엉덩이를 붙이고 좌선을 하다 보니 엉덩이에 게으름의 영이 달라붙는다. 의미없는 염불을 외우다 보니 비우려고 하는 머리 속에 악한 영들이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하면 뇌가 썩고 판단력은 흐려진다. 그러니 자신의 식구들을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것이 부처와 불교의 영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손과 발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머리 속으로 상상만 할 뿐 움직이지 않으려 하므로 게으름의 영이 사람을 사로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조상들 중에 부처와 불교의 종사자가 있다면 틀림없이 그 후손들은 가난하게 살며, 물질이 모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고, 헛된 망상에 빠져 지낸다. 그러므로 게으름의 쓴 뿌리를 제거하려면 반드시 부처와 불교 쪽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둘째로, 제사를 지낼 때에 게으름의 영이 들어오고, 미신과 잡신을 섬길 때에도 게으름의 영이 약간은 들어온다. 왜냐하면, 먼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조상들은 대부분 양반 집안이다. 그런데 양반은 약 300~500년 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 일은 상놈이나 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사를 많이 지내는 사람은 게을러진다. 일을 안 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를 지낼 때에도 게으름의 영이 후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이때는 주로 머리 속에 들어간다. 그리고 미신 잡신의 죄를 지을 때에 역시 게으름이 영이 달라붙는다. 이때는 주로 손과 발에 달라붙는다. 왜냐하면 사람이 미신 잡신을 섬긴다는 것은 삼라만상에 다 신이 있다고 믿고 그것을 신성시하는데, 그것은 실은 다 악한 영들이다. 그러므로 가는 곳마다 그 악한 영들이 손과 발을 잡아버린다. 그러므로 미신 잡신을 많이 섬겼던 사람의 손과 발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영들이 달라붙어 있는데 그 영들 중에는 게으름의 영과 가난의 영이 있다. 고로 자신의 손과 발에 게으름과 가난의 영이 달라붙어 있는 사람에게는 물질이 잘 들어오지 못한다. 그리고 있는 물질도 빼앗겨버린다. 이때는 미신 잡신을 섬긴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된다. 

 

5. 게으름의 결과는 어떠한가?

  그렇다면 사람이 일하지 않고 게으르게 살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그것은 2가지 측면에서 보면, 먼저 육적인 측면에서 보면 게으르게 되면 가난하게 되는 것이다. 잠언 기자는 말했다. 게으른 자에게는 빈궁이 강도같이 찾아오고, 곤핍이 군사같이 들이닥친다고 하였다(잠6:11).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을 갈지 않는 자다(잠20:4). 게으른 자는 그릇에 자신의 손을 넣고도 그것을 입으로 들어올리기를 괴로워하는 자다(잠26:15). 그러므로 게으른 자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손과 발이 부지런해야 먹을 것을 먹고 부자가 되며 베풀며 살 수 있는데, 그것을 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으른 자는 이 땅에서 넉넉하게 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인색할 수밖에 없고, 몸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으니 봉사하는 일에도 열심을 내지 못한다. 

  다음으로, 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게으른 자는 주님께 책망을 듣고 있는 것도 빼앗기게 되고 나중에는 새 예루살렘 성밖의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마25:30). 한 마디로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다. 게으름의 죄는 이처럼 무겁다. 그 결과가 완전한 지옥 곧 불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6. 게으름의 영들은 주로 어디에 붙어 있는가?

  그렇다면 게으름의 영들은 주로 사람 몸의 어디에 붙어 있는가? 첫째, 가장 많이 붙어 있는 장소는 엉덩이다. 그리고 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게으름의 영들은 그 성질이 진득진득하다는 것이다. 달라붙는 성질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들은 부처와 불교를 섬기는 자들에게 아주 많다. 한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으면 일어날 줄을 모르는 것이다. 특히 일하기는 싫어하지만 망상을 즐기기를 좋아하고 수다를 떨기를 좋아하는 자의 엉덩이에는 이러한 영들이 가득 붙어 있다. 그리고 등에도 많이 붙어 있다. 왜냐하면 일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늘 드러눕기를 좋아하게 되는데, 그런 자의 등을 보게 되면 게으름의 영이 덕지덕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 다음으로 많이 붙어 있는 곳이 손과 발이다. 손과 발은 미신 잡신을 섬길 때에 많이 달라붙는다. 그리고 셋째, 마지막으로 머리 속 뇌에도 달라붙어 있다. 이는 주로 제사를 많이 지내는 양반 가문의 후손들에게 많이 있다. 그러므로 게으름의 영의 쓴 뿌리를 제거하려면, 부처와 불교를 섬긴 죄를 회개해야 하고, 이어서 미신 잡신의 죄와 제사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7. 게으름의 쓴 뿌리를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조상적부터 내려와 우리의 엉덩이와 등, 손과 발과 뇌 속에 붙어 있는 게으름의 영들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2가지다. 첫째는 자신이 게으르게 살아온 것과 자신의 조상들로부터 게으름의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십자가 세우기를 해야 한다. 십자가 세우기를 통하여 회개된 죄에 따른 게으름의 영들을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집안이 게으른 사람은 십자가 세우기를 할 때도 100번 200번을 십자가 세우기를 하라. 둘째는 부지런히 살아가며 영적인 일에도 열심을 내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그렇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열심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가난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영적인 것에도 열심을 내야 한다. 기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그리고 봉사하고 섬기는 일에도 뒤쳐지지 말라. 열심을 내라. 언젠가 때가 되면 자신이 주님을 위해 수고한 모든 일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다(고전15:58).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8. 나오며

  게으름은 얼핏 보기에는 그것이 죄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것은 확실히 죄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불못에 떨어지게 하는 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못 들어가게 하는 죄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게으름의 죄를 짓게 되면, 그는 성 바깥에 거주하되 성 바깥의 더 바깥쪽 곧 지옥에 더 가까운 쪽에서 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게으름의 죄를 결코 그냥 쉽게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죽은 후에 우리가 들어 가는 바로 그 장소에서 우리는 영원세계를 영원히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2023년 새해가 밝았다.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계획하고 그것을 살아내야 한다. 그중에서 올해는 한편으로는 회개함으로 게으름의 죄를 떨쳐버리고, 또 한편으로는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복된 한 해가 되어, 한 해가 가슴 뿌듯한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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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게으름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게으르고 나태하고 늘 놀려고만 한 죄

“하나님, 제가 게으르고 나태하고 해야 할 일을 늘 미루고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 저는 게을러서 일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심어야만 거둘 수 있는데도 심는 것을 게을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는데, 저는 먹기는 좋아하고 일하는 것은 싫어했습니다. 조금만 일해도 피곤하다고 하면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잠자는 것은 좋아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늦잠을 자기 일쑤였으며 가족이 깨워도 제 시간에 일어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인데도 그저 남에게 넘기기에 바빴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이 있었지만 내가 일하지 않아도 식구들이 다들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할 일이 있어도 차일피일 뒤로 미루었습니다. 마감시간이 닥쳐와야 조금이나마 일을 했지만, 그것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중에도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기나 하느냐면서 넋두리만 늘어놓았습니다. 일은 쥐꼬리만하게 하면서도 생색은 있는 대로 다 냈습니다. 그럴수록 가난의 영도 내게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주님, 저는 먹고 놀고, 수다떨고, 여행하는 것은 좋아했습니다. 저는 먹고 노는 것은 탐했습니다. 어떤 음식이 맛있을까를 늘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놀 수 있는 건수가 없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럴수록 더 내 몸이 게을러진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 저는 육적 일에만 게으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적인 일에도 게을렀습니다. 먹고 노는 일과 수다떠는 일에는 아낌없이 시간을 썼지만 영적인 일에는 시간을 내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한가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처럼 바쁜 사람은 기도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드릴 때도 채 5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바쁠수록 더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아니 기도를 쉴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회개가 살 길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회개하는 데 시간을 내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 알려 주었지만 기도를 쉴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졸 때가 많았습니다. 기도할 때면 잡생각을 이기지 못해서 온전히 기도에 몰입하지도 못했습니다. 이 시간 나의 이 게으름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저는 내 영혼을 성장시키는 일에 게을렀음을 회개합니다. 예배 시간을 지루하게 생각했습니다. 예배 시간은 내 영혼을 성장시키는 가장 귀한 시간인데도 주님과 만나는 시간을 지루하게 여겼습니다. 예배드릴 때에도 딴 생각을 하였습니다. 주보를 뒤적거리면서 설교 시간이 길다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도 아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배 시간에 지각하는 것을 용납하고 살았습니다. 더욱이 성경보는 일이나 전도하는 일에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은 오래했지만 내 속사람이 영적인 유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게으름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게으르고 나태하고 일을 뒤로 미뤄 불러들인, 게으름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 부처 불교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부처와 불교를 섬겨 게으르고 나태하고 놀기는 좋아하는 영을 받아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 일을 안하고 빈둥빈둥 놀았습니다. 그것은 내 천성이라고 생각했지 조상적부터 부처 불교를 섬김으로 게으름의 영이 나에게 내려온 것인지를 정말 몰랐습니다. 부처를 섬기면 헛된 망상에 빠지게 되고, 현실감이 떨어져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부처와 불교를 많이 섬기면 나태하게 되고 열정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늘 의미없는 염불을 외우기 때문에 머리 속은 텅 비어버리고 그 속으로 악한 영들이 치고 들어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뇌가 썩고 있었고 판단력은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이 갖다 주는 것을 먹고 살아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게으름의 영이 늘 혼란스럽게 하여 늘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저것 기웃거리기만 하고 떠돌아다니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책임감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늘 가족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현실 감각이 없는 맹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악한 영이 내 뇌 속에서 나를 붙잡아서 그렇게 되는 줄을 몰랐습니다. 손과 발을 부지런히 사용해야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데, 가정일에 힘쓰지 않았습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기력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열매맺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선조 때부터 일하기는 싫어하고, 술 먹기를 좋아하며, 기생을 좋아하고, 일하지 않게 만드는 악한 영들이 나에게까지 내려온 것인 줄을 몰랐습니다. 나와 내 조상들이 부처와 불교를 섬겨 게으름의 영을 받아들이고 살아온 지난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부처와 불교를 섬겨 불러들인, 게으름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3) 제사와 미신 잡신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제사를 드리고 미신 잡신을 섬김으로 게으름의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귀신에게 절하는 것이므로 그럴수록 뇌 속에 악한 영이 치고 들어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되면 무능해지고 무기력해지고 무책임하게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나 자신이 양반이라고 늘 자랑은 했지만, 할 일이 많은데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음을 회개합니다. 먹고 노는 것만 좋아했음을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미신 잡신을 섬겨 게으름의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미신 잡신을 섬기면 집이든지 땅이든지 귀신들이 다 잡아버리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손과 발을 붙잡고 있는 게으름의 영 때문에 물질이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일하지 않고 조상들에게 열심히 제사드리고 미신 잡신을 지극 정성으로 섬긴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여, 이제는 경쟁사회에서 뒤떨어지지 않도록 경제생활을 열심히 하는 자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열심히 일해서 열매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육적인 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일에도 더욱 열심을 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사와 미신 잡신을 섬겨 불러들인, 게으름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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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6 게으름의 영 쓴 뿌리 제거 회개기도문.pptx

2023-01-06 게으름의 영 쓴 뿌리 제거 회개기도문.pdf

 

예수믿는 사람들은 정말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갈3:13의 말씀에 따라, 자신은 이미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기에,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이 정말 맞는가? 만약 그게 옳다면, 왜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십계명을 한층더 강화시켜, 마음에 음욕만 품어도 간음한 것이고,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보면, 십계명을 어긴 자들은 왜 불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는가? 고로 우리는 무엇이 죄이며,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를 빨리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더이상 나와 내가족과 자녀들이 저주를 받지 않을 것이며, 죽어서도 불못에 던져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십계명 중에서 어떤 계명에 걸려 있을까?

2019-07-26(금) 금요기도회
제목: 우리는 진정 무엇을 회개했어야 했는가?(롬5:12~14)
https://youtu.be/DYB6G6qyNG4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게 되면 모든 저주에서 벗어나며 심판을 받지 아니하며 결국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땀흘려 수고해보지만 결국 수고만 할 뿐 내 것이 되지 못하고 그것이 또한 쌓이지도 않는다. 자녀의 문제는 여전하고 오히려 애태우는 일만 생긴다. 왜 그럴까? 사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결과를 보면 무엇인가 분명히 문제가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진정 놓쳐버린 구원의 요소이자 축복의 열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죄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죄의 종류 2가지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회개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2. 무엇이 죄인지를 알게 해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말씀을 주신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신11:28과 갈3:13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저주를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롬6:23에 의하면, "죄의 삯(품삯)은 사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롬5:12에 의하면, 사망은 다름아닌 "죄의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저주를 받고 사망에 이르는 것은 그가 다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로 사람이 저주를 받지 않고 사망을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죄용서를 받아야, 저주도 받지 아니하고 죽음(둘째죽음)도 맛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죄를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그런데 사실 그것을 아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했든지 그 결과를 지켜보면 된다. 자신의 저지른 어떤 결과가 저주(질병과 재앙 같은 것)로 나타나고, 결국에 파멸(죽음)이 라는 것이 뒤따라오는 것이면 그것은 죄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하여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자신이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어떤 죄를 짓게 되었을 때에는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말씀으로 미리 알려주셨다. 그것이 바로 "율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내가 "이러이러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면, 이러이러한 결과를 받게 되리라"고 미리 알려주는 말씀이 바로 율법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말씀이란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고마운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떤 법을 만들어놓고는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을 "죄"라고 명명하시기 위해 율법을 만드신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장차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장차 이렇게 살게 되면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미리 아시고 그것을 알려주신 것이 율법말씀이기 때문이다.

 

3.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첫째로, 어떤 죄를 짓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기록된 율법말씀을 살펴보는 것이다. 둘째, 혹 율법말씀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결과를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에게서 저주와 파멸이 나타나게 되면, 그것은 죄라고 판단하면 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죄를 처리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죄를 처리해 주어야 저주도 사라지고 폐망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는 어떻게 처리될 수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 대신 피흘려 죽는 예수님의 대속의 방법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고전15:3~4, 마20:28). 사실 하나님께서 일찌감치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것을 다 아시고 있었다. 그래서 장차 아담이 범죄하게 되면 어떤 대속의 방법을 쓸 것인지도 다 계획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아담이 범죄하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흠없는 속죄제물을 통한 대속의 방법을 사용하셨으니, 이는 대신 피흘려 죽으심으로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죽을 수 없고, 사탄에 시험을 받지도 않지만, 사람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죽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것이다. 다시 말해, 죽을 수 없는 하나님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고로 죄를 지었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죄를 용서받으려면 3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첫째, 죄를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죄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이 때에는 구약의 율법말씀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둘째, 죄를 시인해야 한다.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에게 아뢰는 것이다. 셋째, 죄를 용서달라고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무슨 죄를 지었으니, 예수님의 피로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사실 가룟유다는 죄를 인식하고 죄를 시인했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예수님께 아뢰고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룟유다는 자신의 죄값으로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넷째, 죄를 멀리해야 한다. 예수님께 죄를 아뢰어 용서를 받았는데, 다시 죄를 짓게 되면 되겠는가? 그러면 떠나간 귀신도 다시 돌아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나 자신이 죄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그는 두 번 다시 동일한 죄를 반복해서 짓지 아니해야 하는 것이다. 죄를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4. 죄의 2가지 종류는 무엇인가?

  죄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의 결과가 반드시 저주와 파멸(죽음)을 가져오는 것을 가리킨다. 신구약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사람이 짓는 죄에는 2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요(요16:8~9) 또 하나는 사실상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다(계21:8).

  그렇다면, 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인가? 그것은 만약 누군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롬5:12~14, 롬6:23에 의하면,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있었으며,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율법 때문에 죄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지켜야 할 율법에는 "의식법"과 "도덕법"이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사법을 비롯한 의식법을 성취하러 오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완성하셨다. 그리하여 율법 중 "의식법"은 폐지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의식법 중에 제사법의 규정에 따라 속죄제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대제사장이 되시어 골고다 언덕에서 최종적으로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모든 인류의 죄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의 속죄제사의 효력을 받아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다 용서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공생애의 마지막 무렵에 당신을 대신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해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께서는 성령께서 오시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책망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16:8~9).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성령이 오셔서 하는 일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책망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처리하지 않으면 죄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지 않으면 사실 백약이 무효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분이 하신 일을 믿는다면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둘째로, 무엇인 죄인가? 그것은 구약의 율법 중에서 "도덕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죄다.  여기서 도덕법이란 "십계명"을 가리킨다. 율법 중에서 의식법은 예수께서 완성하심으로 폐지되고 말았으니, 오늘날 우리가 의식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죄가 되는 것은 율법 중에서 도덕법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셨어도 도덕법인 십계명은 한 가지도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첫째, 예수께서 오셔서 십계명은 한층 더 강화시켰기 때문이다(마5~7장). 그리고 둘째,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장차 심판의 잣대로서 십계명을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7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에 의하면, 무엇이 죄인가가 나오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핍박과 환난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 죄이며,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라라고 나온다. 십계명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에베소교회는 제5계명(영적 부모를 공경하지 않음)을 어기고 있었고, 버가모교회와 두아디라교회는 우상에게 경배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죄(제2계명)과 음행(제5계명)의 죄를 범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데교회는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여 흰옷을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는 세상적으로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는 교회였지만 영적으로는 가사상태에 있었다. 이것은 제4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세상의 육적인 모든 일을 쉬고 자신의 영을 위하여 힘써야 했지만 그들은 영적인 일에는 완전히 게을렀고 오직 돈 버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님께서는 짐승과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는 자들(제2계명)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세세토록 고문(원문참조)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계14:9~11). 그리고 계속해서 인류의 속죄자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부인하는 죄와 십계명을 어기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말씀하셨다(계21:8). 고로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 나오며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삶속에서 수많은 저주와 재앙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그것이 죄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을 잘 안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갈3:13에서 예수께서 자신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예수께서 속량하신 죄는 의식법의 죄와 도덕법의 죄다. 그런데 의식법의 죄는 예수께서 완성하심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저주받을 리가 없다. 다만 우리가 주의해야할 죄는 도덕법을 어긴 죄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여전히 죄가 되는 것이요, 그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어도 이 땅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고(계2:22~23), 죽은 다음에는 저 세상에서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14:9~10, 21:8). 한 번 생각해보라. 예수님도 믿고 점치러도 다니는데 그 사람이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십계명을 주의하여 보고, 나 자신이 어떤 계명에 걸려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1~2계명에 걸려 있다면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 자기자식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 그리고 죽어서 지옥형벌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십계명을 범하지 말라. 혹시 범한 죄가 있다면 즉시 회개하라. 회개하면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죄용서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단, 자살한 죄는 용서가 안 된다).

 

2019년 7월 26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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