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한마음교회, 속죄의 십자가와 더불어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하여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부활의 증인으로 활동하게 하는 놀라운 교회. 그런데 이 교회에서는 이 교회만의 신앙고백이 따로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능자와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주인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대박을 터뜨렸다. 수많은 중독증 환자들이 치유받고 정신적인 약함들에서 벗어나며, 귀신들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는 일들이 쉬지않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이 교회에서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활의 복음이 가진 장점은 무엇이며 혹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1.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을 믿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분을 누리는 분량은 각기 제각각인 것 같다. 그분을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는 그분의 피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그분을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는 자는 인생의 문제들까지 극복할 수 있다. 그분을 아는 만큼 그분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당신은 과연 그분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여기, 지금 우리나라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하나의 교회가 있다. 그곳은 춘천 한마음교회다. 그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누리는 분량이 기존교회와 다르다. 그 크기와 넓이가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사람으로서만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충분히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주에 이어서 춘천한마음교회가 말씀하고 있는 부활의 복음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좀 더 살펴보고, 부활의 복음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그리고 단점에 대해서 각각 살펴보고자 한다.

 

2. 부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부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부활의 복음이란 기존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십자가의 복음'의 반대편에 있는 복음으로서 십자가의 복음과 맞물려 있는 복음을 가리킨다. 그동안 기존교회에서 복음을 설명할 때면 대부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관해 초첨을 맞추서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살짝 언급하고 지나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춘천한마음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십자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누누히 가르친다.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와 효능이 묻혀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부활하기 전까지 제자들은 사실 산헤드린공회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몰래 숨어지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정말 약속대로 성령을 받게 되자,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감옥에 잡혀갔으나 그들은 결코 겁먹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못 배운 사람들이었음에도 그들은 산헤드린 앞에서 논리있게 변론하였으며, 또한 그들 스스로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행하신 확실한 표적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결국 무죄로까지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의 마음 속에 있다는 강한 믿음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안에 들어와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은 메시야나 하나님의 아들 정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무소부재하신 예수님을 만나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자 비로소 예수께서 육체로 계실 때에 했던 말씀들이 다 생각나고 이해가 되어졌기 때문이다(요2:22). 그래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예수님을 더 이상 사람으로 고백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고백하기 시작한 것이다(요20:28). 그렇다면, 그분이 육체로 계실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그들은 대체로 '주님(퀴리오스)', '선생님'(에피스타타 혹은 디다스칼로스), '랍비'(나의 선생님), '메시야'(그리스도)라고 불렀다. 또한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라는 의미로서 '다윗의 자손'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분은 바로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였기 때문이다.

 

3. 부활하신 예수님은 대체 누구인가?

  그렇다면, 부활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대체 어떻게 고백되어지고 있는 것인가? 춘천 한마음교회 식구들은 예수님을 3가지로 언급한다. 하나는 '전능자'요, 또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이며, 마지막 하나는 '주인'이다. 참으로 놀라운 신앙고백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언급하는 첫번째와 두번째 신앙고백은 기존교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신앙고백이다. 마지막 세번째로 사용하는 신앙고백 곧 예수께서 주인이라는 신앙고백은 사영리 등에서도 조금은 나타나 있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부활의 복음에서는 그 개념을 확장해서 사용한다.

  자,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이 과연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이며 주인인지를 살펴보자. 먼저, 첫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과연 전능자인가? 그렇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전능자로 자신을 계시하셨을 뿐만 아니라(출6:2~3, 욥5:17), 사9:6에서 장차 아기이자 아들로 오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족장시대의 사건으로 추정되는 욥기서를 읽어보았는가? 거기에 보면 하나님을 전능자로 표현하는데, 무려 29번이나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여호와'로 표현하는 것(32회)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둘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과연 창조주 하나님이신가? 그렇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 즉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이는 것들이 다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분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요1:2~3,골1:16,계3:14). 그럼 셋째로, 그분은 과연 주님이시며 주인이신가? 그렇다. 그분은 주님이시요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다(롬14:9).

 

4. 초대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신앙고백이란 무엇인가?

  사실 우리가 교회의 역사를 공부해보면,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은 어떠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바로 예수께서 주님이라는 신앙고백이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해야 세례를 주었고 성만찬예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신앙은 신약성경에서도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그 대펴적인 구절들이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골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렇다면, 춘천 한마음교회에서는 왜 주님을 주님이라고 사용하는 것보다 '주인'이라는 표현을 더 즐겨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 교회의 나름대로의 신앙고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성경에 등장하는 '주님'이라는 단어는 거의 대부분이 구약에서 '여호와'를 대신하는 용어였지, 그것이 '주인'이라는 뜻으로 거의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구약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했다. 십계명에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는 말씀에 주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와'를 부르거나 지칭할 때에는 대부분 '주님(아돈)' 혹은 '아도나이(나의 주님)'이라고 사용하였는데, 그 횟수가 무려 6천번이 훨씬 넘는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구약성경말씀을 인용하려 할 때,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의 '여호와'라는 이름을 전부 다 '주님'이라고 바꾸어서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롬10:13, 요12:13). 그렇다. '주님'이라는 용어는 대부분 '여호와'라는 단어의 대체용어로 쓰인 것이다. 하지만 춘천 한마음교회에서는 '주님'에 해당하는 단어의 의미를 좀 더 확장해서 사용하였다. 그것은 '주인'이라는 개념이었다. 사실 '주님(헬, 퀴리오스)'이라는 단어는 '여호와'를 대신하는 대체용서 이외에도 4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첫번째로는 '주인, 소유주'라는 개념이다(삿19:22~23, 눅20:13). 이것은 포도원 주인의 비유에 나온다. 이것은 농부들의 주인 즉 농부들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다스리는 자, 통치자, 왕'이라는 뜻도 있다(계11:15).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예수님에 대한 호칭으로 '만유의 주와 만왕의 왕"이 쓰인다(계17:14,19:16). 그리고 세번째로는 '제정하신 이, 만드신 이, 창조자'라는 뜻도 있다(마12:8). 이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마지막 네번째로는 '구원하는 자'라는 뜻이 있다(마9:26). 이것은 제자들이 풍랑속에서 죽음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들이 주님을 부르는 칭호에 담겨있는 표현이다. 그렇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하지만 그 뜻의 용례는 좀 다르다. 춘천 한마음교회에서는 이러한 개념들 중에서 첫번째의 개념 즉 '주인'이라는 개념을 확대해서 사용한 것이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들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비록 '주님(퀴리오스)'에 대한 개념 중 '주인'이라는 개념이 미약하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신앙고백을 만들어내되, 그 주인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가르침으로 춘천 한마음교회는 한 마디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주인이 바로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5. 춘천한마음교회가 선포하는 핵심적인 진술들

  이제는 춘천 한마음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도지를 통해서 그들의 주장을 좀 더 정리해보도록 하자. 특히 오늘은 죄에 대한 회개의 개념과 구원의 개념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춘천 한마음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진술은 총 7가지다. 그 진술들을 통해서 우리는 춘천 한마음교회이 외치는 부활의 중요성과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죄 그리고 회개의 의미 및 구원의 의미를 정리해보자.

  첫째, 부활의 중요성을 살펴보자. 그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다(행17:30~31)" 이것은 사실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인용된 성경구절은 잘못 적용한 해석인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이며, '주인'이라고 고백한다(요20:28, 롬14:9).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셨다가 가셨다고 말하지 않고, '전능자가 이 땅에 오셨다 가셨다'고 진술한다.

  셋째, 죄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대로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근원적인 죄라고 명명하고, 일반적인 죄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고, '자기가 주인된' 죄라며 명명한다. 그런데 김성로목사님께서 이러한 죄에 대한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16:9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는가하면, 사람의 죄란 "예수님을 자기 주인으로 믿지 않는 죄"라고 한다. 하지만 요16:9은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믿지 않는 죄를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다. 예수님을 그들이 믿지 않는 죄인데, 그들은 바로 유대인들로서 유대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있었으나, 그들의 자리를 침투해 들어오는 예수님을 질투한 나머지 예수님을 배척하고 만다. 그분이 구약성경에서 무려 350가지 이상 예언된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거부해버린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듣고도 예수님을 배척해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죄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성로목사는 항상 부활과 주인이라는 단어에 초첨을 맞추다보니, 죄도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믿지 않는 죄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조금은 아쉬운 데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진술이 틀린 것은 아니다. 참으로 죄는 예수님을 자기 주인으로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회개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부활의 복음을 외치는 춘천한마음교회에서는 '회개'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라고 회개하는 것이라고 진술한다(막1:15, 행2:38). 하지만 인용하고 있는 성경구절에서 말하는 회개(메타노이아)라는 단어의 뜻은 대체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 내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은 자범죄들을 깨닫고 뉘우치고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죄(헬, 하마르티아)'라는 의미가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듯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서 벗어난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전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죄란 자범죄 외에도 자신이 죄인인 것 자체를 시인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눅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세리의 기도를 보라. 거기에 보면 그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18:13)."라고 자신의 죄인됨을 시인하며 통곡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구원이란 예수님을 자기의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롬10:9). 하지만 이러한 진술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경 전체가 말하고 있는 바른 구원관하고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인생의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키는데, 구원은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는 믿음과 더불어 일평생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마4:17, 막1;15).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이러한 진술을 그대로 적용해보았더니 놀라운 결과들이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그랬더니 신앙의 얽인 문제들이 풀려지고, 인간관계가 새롭게 되어지며, 마음의 병과 중독에서 벗어나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이 교회를 눈여겨보게하는 훌륭한 사례가 아니겠는가 싶다. 그렇다. 이상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춘천한마음교회는 자기나름대로의 새로운 신앙고백을 만들었고, 그것을 실제적으로 적용하여 많은 열매들을 거둬들인 특이한 사례에 해당한다.

 

6. 춘천한마음교회가 외치는 '부활의 복음'의 장점과 단점

  이제는 마지막으로 부활의 복음의 장점과 단점을 정리하면서 마무리해보자.

  첫째, 부활의 복음의 장점은 무엇인가? 3~4개 정도가 된다. 첫째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층 더 끌어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춘천한마음교회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신앙고백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이요,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인생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셔들임으로 수많은 중독과 정신적인 억압과 스트레스,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귀신으로부터 해방을 받고 있다. 셋째, 죄를 이기는 데에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죄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용된 것은 사후약방 처방전이었다. 즉 죄의 결과들에 대해 회개함으로 용서받는 방법을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마음교회에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사전에 막아버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살도록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이것은 보조적인 장점으로서, 믿는 자들 안에 들어오시는 이가 부활하신예수님인 것을 끝까지 붙들도록 함에 따라 성령을 가장하는 귀신의 장난에 속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 기존교회에서는 영접할 때만 예수님을 영접할 뿐 그 다음부터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성령께서 보이지 않고 성령이 오실 때에는 은사(선물)를 주신다고 하니까, 귀신들이 성령을 가장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신사도와 빈야드의 상당부분은 여기에 속한다고 하겠다. 하지만 춘천한마음교회에서는 이 부분의 위험성을 제거해주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이가 예수님일 뿐만 아니라 그분을 일평생에 자기 주인으로 모시며 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귀신이 성령으로 사칭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천한마음교회에서 외치는 부활의 복음에도 단점은 있다. 이것도 서너가지 된다. 첫째, 부활의 복음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만 집중이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부활의 복음을 적용한 결과,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인생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주 쓰이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 그러다보니 사람의 영혼을 구원받게 하는 데 즉 궁극적인 구원에 대해 소원해진다는 것이다. 인생의 성공은 인생의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죽어서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데, 아무래도 인생문제의 해결에 집중하다보니 이 부분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너무나 '부활'이나 '주인'에 대해 강조하다보니, 자신의 문제가 실제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거기에 만족해버린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암병같은 불치병에 걸렸어도 부활의 복음을 깨닫고 자기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있으니 죽어도 아무런 상관없다는 마음이 생겨나서 불치병을 이겨내는 집중력이 약화되어 불치병에서 낫는 사례가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부활의 복음을 들었음에도 실제적으로 물질에 축복이 더해지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부활의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마취상태 혹은 세뇌상태에 머물게 된다는 점이다. 넷째, 죄에대한 정의를 치우치다보니,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도 않으면서도 자신의 인생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정하고 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은 역시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내 인생의 주인을 주님으로 바꾸었다고 하더라도 또 넘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기보다는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 죄만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폐해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임하는 것이다. 예를 들ㅇ러보자. 우상숭배의 죄를 지으면 그 저주가 3~4까지 이르게 된다(출20:5). 물론 내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나는 그 저주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내 자식이 믿지 않을 경우 한 대를 뛰어넘어 자식에게로 간다. 그러므로 부모인 나 자신도 그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할 뿐더러, 자식에게도 우상숭배의 죄의 심각성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대물림되는 우상숭배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의 주인을 예수님을 바꾸는 것에만 초첨을 맞추다보면 온갖 저주를 자기나 자기의 자식이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감사해버리는 상황으로 갈 뿐 그것을 끝내는 방향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7. 나오며

  그렇다. 우리 동탄명성교회는 춘천한마음교회처럼 3년6개월동안 회개와 천국복음에 집중해왔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바른 구원론을 회복할 수 있었고, 바른 신앙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에 따른 감사와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보다 더 적극적으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데에는 부활의 복음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이자 주인으로 아는 데서만 그치지 말고, 춘천한마음교회처럼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한다면 금상첨화의 신앙생활이 될 것 같다. 회개와 천국복음의 핵심이 사람의 영혼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데 기존교회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오류들을 바로잡아 주고 바른 길을 안내해 주고 있어, 춘천한마음교회의 부활의 복음가 하나될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동탄명성교회 홈페이지나 앱, 유튜브를 통해서, 약 1,300개 이상의 바른 구원론에 관한 '회개와 천국복음' 설교를 누구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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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 믿는다고 고백하면 구원받는 것일까? 한 번 고백으로 그것은 영원히 유효한 것인가? 그럼,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상을 숭배해도 괜찮은 것인가? 구원받는 믿음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그리고 믿는 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면 이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오늘은 구원을 받는 믿음에 관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다뤄보자.

2016-09-03 2016년 9월특별새벽집회 마지막날
제목: 구원얻는 믿음 지키는 믿음(계14:12과21:8)
https://youtu.be/PQiqSamxzQQ


1. 들어가며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일은 첫째,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후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다스리며 살라고 하신 것이다(1:27~28). 그런데 그때 단 한 가지만 하지 말라 하셨다. 선악과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다(2:17). 하지만 인간은 수 만 가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한 가지 하지 말라고 하는 명령을 범하고 말았다. 인간은 결국 그 범죄의 댓가로서 지옥형벌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3:23, 6:23, 5:1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의 일을 하셔야 했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는 것이었다(1:5, 9:22).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 하시는 일도 있다. 그것은 창조하신 만물을 붙드는 일이고(1:3), 오늘도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일(8:3~5)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다 구원하지 않으시는 것일까? 인간으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믿으며 또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일까?(딤전2:4, 벧후3:9) 그것은 딱 2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만이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가운데서 자신을 위하여 생명과 복을 택하라고 하셨다. 또한 말을 할 때에도 창조적인 말을 사용할 것인지 파괴적인 말을 사용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라 하셨다. 둘째, 그것은 온 우주를 당신의 공의로 통치하시기 위함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아무 조건없이 구원해버리신다면 마귀는 반드시 참소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시지만, 우리가 주님께 간구하기를 기다리시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다리신다. 만약 우리가 아무 것도 행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버린다면, 하나님은 영원한 우주의 범죄자인 사탄마귀와 귀신들을 처벌하실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반드시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분께 구해야 한다. 그래서 믿음과 회개를 통해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신 기도해주실 수가 없고, 우리 대신 회개하실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대신 믿어줄 수도 없다. 그것은 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2.  구원얻는 믿음의 조건 2가지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구원얻기 위한 믿음은 어떤 것일까?사람이 구원얻기 위한 믿음 곧 신앙고백은 사실 2가지(17:3, 14:12). 한 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고, 또 한 가지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하나는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요, 또 하나는 사도요한이 승천하신 예수님을 천국에 뵌 후에 천사로부터 들은 메시지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이것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약 60년이 지났다. 이 때에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나님을 만나 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뵈었던 하나님은 그분이 이 세상에 있었을 때에 자기가 형님처럼 따라던 예수님이었다(1:9~20). 죽고 난 후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셨다(7:15~17). 예수님이 바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우리 주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이 필요한데 그것은 2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그것이다.


3.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얻기 위해서는 계명들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의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계명들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계명들을 모른 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들 속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계명들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십계명 중에서 1계명과 2계명에 있는데, 하나님 한 분 이외에 다른 그 어떤 다른 신도 없다는 것이며, 그 외에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은 다 우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갖거나,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자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혹 자기가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런 자는 결코 구원받을 없다. 어찌 하나님과 다른 신을 동시에 섬기는 자가 하나님만 계시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놀랍게도 오늘날의 신앙고백에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가 빠져 있다(20:3~6).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창조주시요 그분만이 전능하신 분이다. 그분만이 신이시며, 그 외의 모든 신들은 다 귀신들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들은 신들이 아니라 다 우상인 것이다. 부어서 만든 것이든지 아니면 깎아서 만든 것이든지 다 우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믿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21:8).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4. 예수님에 대한 2가지 신앙고백


1)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신앙고백

이제 두 번째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살펴보자. 어느 새부턴가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 곧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16:16)”이라는 고백을 하기만 하면 모두가 다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니다. 그것만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것은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를 강조하던 빗나간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고백일 뿐이다. 16:16에 나오는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은 단순히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신앙고백(Person)일 뿐이다. 그것도 육체를 입고 계셨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일 뿐이다. 구원을 얻으려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와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둘 다를 믿어야 한다. 그러나 베드로의 신앙고백에는 그분이 승천하시어 원래의 하나님으로 되돌아가셨을 때의 신앙고백이 빠져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에다가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합쳐질 때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온전한 신앙고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12제자 중에 하나였던 도마가 했다(20:28).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나의 () 주님이시요 나의 () 하나님이시니이다

유대인이었던 도마의 이러한 신앙고백은 그분이야말로 나의 아도나이(Lord)’시며 나의 엘로힘(God)’이라는 신앙고백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구약의 나타난 바로 그 하나님 곧 한 분 하나님 여호와이시며, 주님이라는 신앙고백이다. 참으로 놀랍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 성도들이여, 이제 우리의 신앙고백을 제대로 바르게 해보자.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베드로의 신앙고백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아니 된다. 부활하신 후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같이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의 한 분 하나님이요 여호와이시며 주님이시며, 구약시대에 보내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2)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신앙고백 

아울러 우리가 구원얻으려면 예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Work)에 대한 신앙고백이 또한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고(9:6)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다는 믿음이다. 이때 우리 주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다(19:30). 이는 구원을 위해 더 이상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이 남아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곧 아들로 오시어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그분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최후통첩과 같기 때문이다. 그분이 바로 처음이요 그분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14:6, 4:12).


5. 구원얻는 믿음 그리고 지켜야 할 믿음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구원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고백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딤후4:7). 성도들이 구원얻으려면 사실 한 번의 신앙고백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5:24에 의하면, 주님을 믿어도 계속해서 믿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믿음은 갖는 것보다는 그것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 번 믿음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그 믿음을 지키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환난이나 핍박을 만났을 때 주님을 부인해버린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 다니엘이나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사자굴이나 불 속에 던져진다 해도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 구원은 믿음을 가질 때에 시작되지만, 끝까지 그 믿음을 간직하고 그 믿음을 지킬 때에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얻는 믿음이요, 우리가 지켜야 할 믿음이다.





  예수님은 아들이신가 하나님이신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님은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참다운 신앙고백은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자신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사람들 중에도 어떤 분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만 보려는 자가 있으며, 또 어떤 이는 그 반대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만 보려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잘못된 것이다. 왜 그럴까? 이제 그 이유를 하나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첫번째로, 예수님을 아들이라고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예수님을 아들이라고만 해서는 아니 되는 이유는 만일 그렇게 잘못 고백했다가는 하나님을 두 분 내지는 세 분으로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신론자 내지는삼신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만 보게 된다면 그는 이신론자 혹은 삼신론자가 될 위험성이 아주 커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첫째, 하나님을 한 분으로만 믿고 있는 유대인들은 영영 구원받을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고 있는데 또 다른 아들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결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 아들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육체를 입으시고 33년반동안 이 세상에 사셨다. 그때에는 분명 하늘에는 아버지가 계셨고 땅에는 아들이 계셨다. 두 분은 확실히 구별되셨다. 이를 테면,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아버지 하나님은 하늘에 계셨고, 음성으로 그 아들을 축하해주었다(마3:16~17). 왜냐하면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아 아들이신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기 때문이다(요1:29).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분명 아버지는 하늘에 계셨고 아들은 땅에 계셨다. 그런데 이것을 좀 삐딱하게 보면, 하나님은 결국 두 분 하나님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보혜사 성령이 오셨으므로, 그때부터 하나님은 세 분 하나님이 되고 만다. 그러면 어찌 되겠는가? 하나님을 두 분 내지는 세 분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이 구원받을 가능성이 영영 사라지고 만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오직 한 분으로만 믿고 있기 때문이다(신6:4).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자신을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잘못 삐딱하게 보면 그것이 곧 신성모독죄에 해당하는 것이다(요10:33,36). 어찌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아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인지, 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그들에게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구약시대에 그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은 결코 두 분 하나님이 아니셨다. 그들에 계시된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 하나님이셨을 뿐, 결코 아버지도 계시고 그 옆에 아들도 계시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셨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은 오로지 한 분이셨던 것이다(사37:16). 그들에게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이지(사44:24), 결코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요1:1~3, 골1:15~16). 그렇다. 구약성경을 다 뒤져보라. 여호와께서도 분명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그 하나님 한 분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셨다(사44:6).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이라는 것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사43:10~11).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들 하나님이 계시다는 기독교인의 믿음을 그들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자신이 바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매우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그들에게 있어서 신성모독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상상한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죄를 속할 방법이 전혀 없는데 어찌하랴! 어찌되었든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두 분 내지는 세 분으로 보는 기독교인들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회당에서 예배드릴 때에 우리 기독교인들을 저주하는 기도문을 낭독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아버지 하나님도 계시다고 하고, 아들 하나님도 계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두 분(이신)이나 세 분(삼신)으로 믿어서 아니되는 이유이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만 보아서는 아니 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처럼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믿어서는 절대 아니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만 믿어서는 아니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만 믿게 되면,  여러 하나님이 있다는 이단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나님도 계시고 아들 하나님도 계시면,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주장할 것이 예상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같은 곳에서는 어머니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사람이 바로 장길자라는 여인이다. 그리고 통일교에서는 한학자요, 신천지에서는 김남희같은 여인이다. 또한 하나님을 두 분 내지는 세 분으로 보기 시작하면, 자신이 보혜사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나타나게 된다. 즉 하늘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땅에는 육신을 입은 아들 하나님이 계시는데, 성경강림 이후의 시대에는 보혜사 성령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없겠는가? 그래서 오늘날 많은 교주들은 보혜사 성령이 자기의 몸속에 들어와 영으로 계신다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만희나 안산홍이나 박태선 같은 경우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거짓된 이단교주를 따라가는 자들에게는 한 가지 처방전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셔,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야. 그런데 그 예수님이 어찌 이만희가 될 수 있으며, 어찌 안산홍이 될 수 있어, 말이 안 되는 소리지"하면 그들은 아무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만 믿어서는 아니 되고 하나님으로도 믿어야 된다. 그래서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과 같다고 하면, 유대인들도 "역시 하나님은 한 분이었구나!" 하면서 그들도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들도 예수님이야말로 자신들이 믿고 있던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들도 예수님을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으로 믿어 구원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 유대인에게는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씀하고 있는 요한복음 8장이 더욱 필요하다. 그들에게 신약성경 전체를 다 안 읽히지 않아도 꼭 요한복음 8장만큼은 읽도록 해 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예수께서 구약에 모세에게 나타났던 바로 그 여호와가 바로 예수님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구약에 아브라함에 나타나셨던 바로 그 여호와가 예수님 자신이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 놀랍지 아니한가?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진짜 신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두번째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만 주장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될 일이다. 왜야하면 첫째, 그렇게 되면 인류의 속죄는 물건너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요. 그리고 둘째,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고 고난받으신 것은 다 자기가 자기에게 행한 것이 됨으로 원맨쇼가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인간의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예수께서는 영원히 신으로만 존재하게 되므로(가현설), 그러면 우리 죄를 위해 죽어줄 속죄양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인류의 구원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성을 입으신 분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지금으부터부터 2천년전 분명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으로 들어오셨다. 그분은 결코 영(신성)만 가진 존재가 아니셨다. 그분은 분명 100% 인간의 몸을 취하신 사람이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아들로서 부득이하게 인성을 입으셔야 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오로지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취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 성육신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는 영만 지닌 하나님은 절대 안 되며, 오직 피흘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레17:11, 히9:22, 10:4~5). 그런데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사람치고 죄의 본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세상 죄를 지고갈 수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은 반드시 그가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출12:5, 고전5:7~8).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메시야로서 이 세상에 오시되,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원래는 하나님이셨지만 아들이신 사람이심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이 인성을 취하신 다음부터는 아들의 위치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잘 섬기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분은 새벽마다 한적한 곳으로 가시어 아버지께 하루의 일정을 기도로 물으셨고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셨다(막1:35). 그리고 어떤 때에는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으며(눅6:12), 마지막으로 겟네마네동산에게 기도하실 때에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눅22:42~44). 이는 그가 진정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을 공경하고 충성된 마음으로 섬겼음을 말해준다. 만약 예수님이 사람의 인성을 취하신 아들이 아니었고 가현하신 분이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아버지와 똑같은 존재이므로, 예수께서 기도하신 것도 다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또한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으신 것도다 거뜬히 겪으실 수 있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이 보여주신 기도생활과 고난을 견디어낸 인내도 다 쇼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건 결코 아니다. 그분은 진짜 사람의 위치에 서서 기도하셨고, 사람으로서 채찍에 맞으시고 피흘리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느낀 고통과 아픔은 다 우리가 느끼는 것과 똑같은 종류였던 것이지, 결코 하나님으로서 능히 견디어낼만한 고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분명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들로 계실 때에 아버지와는 다른 위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히5:7~9).

히5:7-9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자신이야말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이심을 말씀해 주셨다. 이것은 순전히 한 분 하나님만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여 구원받게 하시려는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요8:24,28,40,56,58). 그래서 오늘날에 와서도 유대인들이나 메시야닉 쥬들(이방인이지만 유대인처럼 사는 사람들)도 기독교인들이 전해준 신약성경 중에서 요한복음 8장을 읽어보고 주께 돌아오는 이가 늘고 있다. 더불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 이사야 9장 6절 말씀을 통해서도, 예수님이 구약에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고는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이가 많아졌다. 반가운 일이며 바람직한 일이다. 만약 예수께서 그때 당시 자신이 만세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해주시지 않으셨더라면,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으며, 기독교인들을 배척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구원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다.

요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I am)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8: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I am)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8: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8: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I am)) 하시니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렇다. 예수께서 원래 창조주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지만 우리 죄인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것에 대해 정말로 정말로 감사드린다. 그분은 원래는 하나님이셨지만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뿐만 아니라 할례받은 유대인들도 구원하시기 위해 완전한 사람(아들)으로서 사람으로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흠없는 속죄양이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 그분은 태초부터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사9:6). 하지만 그분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아들이 되어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그분 이외에는 구원자가 없음을 고백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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