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15) 하나님은 촛대를 과연 누구에게로 옮기신다고 말씀하셨는가?(렘16:1~17:27)_2023-02-23(목)

https://youtu.be/6MtK2zAh5xQ [또는 https://tv.naver.com/v/33750838]

 

1.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12가지 단편 예언 가운데 7번째 예언은 어떤 것인가?

  예레미야서에는 본론부 앞부분에 12가지 단편 예언들이 배치되어 있다(2~25장). 그런데 그것들 중에서 제7예언은 렘16:1~17:27에 나오는 말씀이다. 여기에는 예레미야의 신변과 관련하여 세 가지 금지명령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이 금지명령을 통해서 유다의 심판을 예고하신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3가지 하지 말아야 할 금지명령을 내리셨다. 그런데 이 모든 명령들은 임박한 종말을 앞두고 곧 남유다의 임박한 심판을 앞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편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받았을 때에는 남유다 제18대 여호야김(B.C.609~587)의 말기로서, 바벨론의 3차 침입 시기 직전인 듯 보인다(B.C.597년)

 

2.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신변에 관한 어떤 금지명령을 내려 임박한 심판을 예고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임박한 심판을 앞두고 예레미야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 3가지를 주문하셨다.

  첫째는 결혼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라고 하셨다(렘16:2).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봤자 그들이 곧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이 독한 병이나 칼과 기근으로 인하여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 죽음을 보는 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슬퍼해 줄 사람도 없고 땅에 묻어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칼과 기근에 수많은 사람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다 죽기에, 시체를 치워줄 자는 오직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들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초상집에 가지말고 그곳에서 그들을 위해 애곡하지 말라고 하셨다(렘16:5). 왜냐하면 그들의 슬픔은 이미 예고된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죽게 된 것은 자기들이 지은 죄값으로 인하여 마땅히 죽게 된 것이니 그것을 두고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는 잔치집에 들어가지 말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지 말라고 하셨다(렘16:8). 왜냐하면 지금은 결혼잔치로 인해 기뻐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곧 신랑 신부의 소리가 성읍에서 그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와 같은 3가지 명령을 받아 순종하면서, 남유다에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알게 된다. 

 

3. 하나님께서는 왜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이 큰 재앙이 임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큰 재앙이 임하게 되는 이유를 제7예언 가운데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이 하나님을 이미 떠났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렘16:11, 7:5,13). 그랬다. 남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은 이미 하나님을 저버린 지 오래된 상태였다. 곧 그들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만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렘17:13). 그들은 환난 때에 그들을 도울 수 없는 사람을 의지하고 있었다(렘17:5). 둘째, 그들이 그들의 조상처럼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렘16:11). 그들이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 신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에게 향을 피우며 전제를 드리고 과자를 구워 바치고 있었기 때문이다(렘16:10~13). 셋째,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렘17:27).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위하는 날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면서,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있었으며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남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제1계명과 제2계명 그리고 제4계명에 불순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4.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촛대를 이제 누구에게로 옮기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붙들고 있었던 이스라엘을 뽑아서 버리시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으며,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고, 하나님의 날을 지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뽑아내 버리시고, 다른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리에 심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일까? 그것은 땅끝에서 올 '이방 민족들'이다(렘16:19). 하나님께서는 이제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붙들어서 사용할 백성이 누군지를 말씀해 주셨다. 그들은 놀랍게도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바로 이방인들이었다. 

 

5. 장차 하나님께서 붙들어 쓰실 이방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땅끝에서 어떤 민족들이 주님께 나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렘16:19).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놀랍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 주님 앞으로 나아와서 쓰임받는 사람들은 이방 민족들로서, 그들은 자기들이 이전까지 섬기고 있었던 신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유일하게 살아 계시고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신약으로 치자면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권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겠다고 하셨다(렘16:21). 다시 말해, 장차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여호와'라는 이름은 '스스로 계신 분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가 구원하러 오셨다', 혹은 '여호와는 구원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 번 사람이나 어떤 민족을 쓰셨다고 해서 끝까지 그를 쓰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쓰시려고 선택하셨지만 인간이 거부하고 불순종한다면 계속해서 그를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사역자를 찾으신다. 그런데 그러한 사역자는 자기들이 섬기고 있던 신은 확실히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오직 여호와와 예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만을 목숨처럼 믿고 따르는 자들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께 끝까지 쓰임받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은 오직 우상이나 가짜 신을 버리고, 오직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또 다른 당신의 사역자로 선택하시어 그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023년 02월 23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14) 마지막 때에 임할 세 재앙과 한 가지 소망은 무엇인가?(렘14:1~15:21)_2023-02-22(수)

https://youtu.be/xaV3SftO2Kk [또는 https://tv.naver.com/v/33750834]

 

1. 예레미야 시대와 종말의 시대는 어떻게 닮았는가?

  예레미야 시대는 남유다 왕국이 종말로 치닫고 있던 마지막 시기였다. 그 시기는 남유다 16대 요시야왕 13년(B.C.627년)부터 17대 여호아하스, 18대 여호야김, 19대 여호야긴, 20대 시드기야왕 11년(B.C.586년)에 이르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이미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이 아주 가까이와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파괴도 역시 매우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선지자로 오신 예수님 시대에도 예루살렘의 파괴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한편 요한계시록에서도,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믿는 도시들이 파괴되며 또한 성전인 교회도 해를 입는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42달 동안의 성전 파괴 예언이다(계11:1~2). 그러므로 우리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외침을 들을 때에 그것이 그 시대를 향한 메시지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메시지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들어야 한다. 

 

2. 남유다를 향한 12가지 예언들 중에서 예레미야 14~15장의 말씀은 어떠한 말씀인가?

  남유다를 향한 12가지 예언들(2~25장) 가운데, 렘14:1~15:21의 말씀은 '제6예언'에 속한다. '제6예언'은 남유다 18대인 여호야김(B.C.609~598)시대에 주어진 예언으로 보인다. 이 예언에는 남유다에 임한 가뭄 재앙과 이에 관련하여 예레미야가 3번에 걸쳐 드린 중보기도(렘14:7~9,13,19~22)가 나온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예레미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통해서 제시되고 있는 남유다 심판에 관한 말씀들이다. 

 

3. 남유다의 심판의 예고로서 주어진 가뭄 재앙을 지켜본 예레미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죄악이 가득 차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남유다의 땅에 가뭄을 내리신다. 그리고 진짜 가뭄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 가뭄은 남유다의 전국 성읍들과 비교적 가뭄 재앙에 잘 견디도록 설계되었다고 알려진 예루살렘 도시도 피해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남유다 전체가 다 가뭄 재앙에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식수로 사용할 물을 구하기가 어려웠으며, 심지어 들판에도 비가 내리지 않음으로, 동물들도 새끼를 낳았지만 그 새끼를 키우지 못함으로 인하여, 들판에 내버리고 있는 형국이 펼쳐지고 있었다(렘14:2~6). 그러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시작한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남유다를 제발 버리지 말아 달라는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죄악을 너무 크다고 지적하시면서 남유다를 위해서 더 이상 중보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기도해도 복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유다의 거민들이 금식하며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할 것이며,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그것을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렘14:11~12). 그리고 심지어 구약의 중보기도자의 대표로 인정받고 있는 모세와 사무엘이 와서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렘15:1). 

  

4. 하나님께서는 왜 남유다에 대한 심판을 돌이키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일까? 그 이유를 제6예언(14:1~15:21)의 말씀만을 가지고 살펴보면,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남유다가 어그러진 길을 가고 있는데 그 가던 길을 도무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렘14:10). 계속된 타락의 길에서 그들은 멈추지 않고 죄를 향해 직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나 백성들에게 거짓 예언을 계속하는데도, 백성들 역시 그 거짓 예언을 좋아하며 그것을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렘14:13~14). 셋째, 남유다 14대 므낫세왕(B.C.697~642)의 우상숭배의 죄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렘15:4). 다시 말해, 계속해서 차고 있던 남유다의 죄악이 남유다 14대 므낫세왕 때에 이미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은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내려지지 않는 한 그들의 죄악을 없앨 다른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5. 하나님께서 당시 남유다에게 내리실 3가지 재앙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한 가지 소망은 대체 무엇인가?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에게 3가지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했다. 그것은 칼(전쟁)과 기근(굶주림)과 전염병이었다(렘14:12,15,16,18, 15:2~3,9). 즉 젊은이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죽고, 남아 있는 백성들은 기근과 굶주림으로 죽고, 또한 전염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지 그 시체를 치울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므로, 공중의 새와 짐승들이 와서 죽은 사람의 사체를 뜯어먹을 것이라고 했다(렘15:2~3).

  그러나 한 가지 소망이 있는 것은 그 어간에도 예레미야의 외침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죽을 사람이라도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살아날 사람은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요한계시록 6장에도 나온다. 예레미야 시대의 모습이 말세에 있을 종말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한 것이다. 왜냐하면 종말에 일어날 일들로서 감추어져 있는 두루마리의 기록을 어린양께서 열어 보이시자, 총 6가지 장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중에 앞의 4가지 모습이 예레미야 때와 거의 똑같다. 즉 예레미야의 간절한 회개의 외침과 더불어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이 남유다에 내려졌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는 4마리의 말이 함께 달릴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흰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의 출현이다. 그런데 이 말들 위에는 다 어떤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탄 자의 모습을 보면, 흰말은 '복음 전파'를 보여 주는 것 같고, 붉은 말은 '전쟁'을, 검은 말은 '기근(굶주림)'을 그리고 청황색 말은 '전염병'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천국복음 전파 내지는 회개의 전파를 상징하는 흰말 탄 자의 활동과 더불어 거짓선지자들의 활동이 아주 난무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가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지도 아니했는데 거짓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기근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평강을 줄 것이라고 했었다(렘14:13).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들이 아니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가 예언자임을 자처하여, 백성들에게 거짓 계시와 점술 그리고 헛된 꿈과 거짓 예언으로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뭐니 뭐니 해도 시대에 주어진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더욱 더 심해질 것을 예상하고, 참된 진리의 말씀을 듣고 경청하는 모습이 정말 필요하다고 하겠다(암8:11~12).

암8:11~1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2023년 02월 22일(수)

정병진목사

2023-02-1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예레미야강해(06) 사람과 민족은 언제 하나님께 심판받게 되는가?(렘1:13~1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USHRRiVVCKc [또는 https://tv.naver.com/v/33097041]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는 것인가? 특히 어느 때 민족을 심판하시어 징계를 내리시고 멸망하게 하는가?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에 나온 기사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며, 사람에게 심판을 가져오는 죄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오늘날에 우리는 어떤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는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고 한 민족과 국가를 심판하실 때에는 그들이 몇 가지의 죄를 지었다고 곧바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으로서, 긍휼이 많으시고 인자가 풍부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때에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죄가 가득찼을 때다. 죄가 관영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또한 누군가 그 죄의 값을 치러야 죄는 없어지는(덮어지는) 것이지 결코 누군가 죄값을 받지도 않았는데 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최종적인 하나님의 인내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남유다 왕국의 말기에는 이미 죄가 거의 다 찬 상태였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들에게 임할 재앙이 다가오고 있음을 끓는 가마의 환상을 통해 보여 주셨다(렘1:13~14). 여기서 재앙은 죄의 결과로서 사람과 민족 위에 쏟아질 하나님의 징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3. 죄가 가득 찬 상태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만큼 죄가 가득 찬 상태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예레미야서는 적어도 3가지 죄가 가득 찬 상태임을 말해 준다. 

  첫째, 모든 사람들이 총체적으로 타락했을 때에 심판하신다(렘6:13). 여기서 모든 사람들이라 함은 일반 백성에서도 지도자들 특히 종교지도자들까지 다 타락했을 때를 가리킨다. 예레미야 시대가 그랬다. 일반 백성들은 탐욕에 물들어 있었고 객과 고아와 과부들은 내팽개쳐진 상태에 있었으며(렘7:6), 죄 없는 자를 모함하여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왕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며, 제사장과 선지자들도 거짓을 일삼고 있었다(렘6:13). 특히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거짓 예언을 하고 있었다(렘14:14, 23:16,26). 그리고 모두가 도둑질하고 있었고, 살인하고 있었으며, 간음을 행하고, 거짓 맹세를 하고 있었다(렘7:9). 그래서 예루살렘 성읍 안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단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렘5:1). 다시 말해, 일반 백성에서 종교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썩어서 냄새나는 삶을 살아 더이상 지켜볼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심판의 회초리를 드는 것이다.

  둘째, 사람들이 죄를 지어도 십계명의 1~2계명의 죄를 심각하게 지었을 때에 심판하신다(렘1:16).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북방에 있는 이방 민족을 끌어다가 남유다를 쳐서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1계명을 어기고 제2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섬겨 분향하고 절할 때에 그리고 자기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경배하고 그것들에게 음식을 차려놓는 일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회초리를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남유다 백성들에게 우상의 숫자는 얼마나 되었을까? 예레미야 선지자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들의 수가 그들의 성읍 수처럼 많다고 하였다(렘2:28). 그렇다면 남유다 백성들이 섬기던 신들과 우상에게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은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셋째,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를 끊임없이 보내지만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며, 참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심판하신다(렘7:25~26, 25:4, 29:19, 35:15).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백성들에게 곧바로 재앙을 내리시지 않는다. 그들이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니 먼저 돌이키라고 선지자들을 보내신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들을 오히려 핍박하고 죽일 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다. 

 

4. 예레미야 당시 남유다 백성들은 어떤 신들과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남유다 백성들은 어떤 신들과 어떤 우상들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크게 세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다른 민족들이 섬기던 신들을 받아들여 섬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에는 가나안 민족으로부터 받아들인 바알신(렘11:13, 19:5, 23:27)과 아세라신(렘17:2)이 있었고, 하늘 왕후로서 바벨론에서 받아들인 이쉬타르신(렘7:18, 44:17~19)이 있었으며, 그리고 몰렉신(렘32:35)도 있었다. 남유다 백성들은 이런 신들을 조각하고 새겨서 자기들의 신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러한 신들에게 향을 살라 바쳤고 술잔을 부어 드렸으며, 과자를 만들어 바치고 있었다(렘44:17~19)

  둘째, 그들은 자연 만물인 해와 달과 별들을 신으로 숭배했으며(렘8:2), 돌과 나무도 숭배했다(렘3:9). 그들은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란하듯 그들에게 절하고 음식을 차려놓았으며, 그것을 즐겼다. 

  셋째, 마지막으로 그들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도벳사당을 지어 거기서 인신제사를 행하고 있었다(램7:31~32, 32:34~35). 이때 그들이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그 신은 바로 '몰렉'이라는 신이었다. 

 

5. 왜 남유다 백성들의 궁극적으로 잘못된 판단은 무엇이었는가?

   남유다 백성들은 다른 신들과 우상만을 만들어 섬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에서 본 것과 가나안 땅에서 배운 다신론적 신관을 받아들여서,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신들도 섬기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생각 자체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이미 언약 백성으로서 다 할례를 받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있으니, 하나님으로부터 복받을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잠시 잠깐 외도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그들의 영적인 남편이라고 말씀하셨다(렘3:14).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만 섬긴 것이 아니라, 다른 신들과 우상들도 섬김으로 자신의 남편을 버리고 다른 신들과 영적으로 음행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몹시 슬퍼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분노하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읍이 있고, 또한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성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절대 자기들과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렘7:4). 그러므로 자기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고 성전도 절대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작은 심판을 내려 그들을 경고하실 때에도 그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보면서 자기들의 죄가 쌓여서 심판을 향해 가고 있으며, 하나님이 경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선민사상이 그들 자신을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그리고 평안하다고 생각했으며, 재앙은 자기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렘23:17).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진노의 잔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6. 오늘날 한국 교회는 무엇이 문제인가?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의 잘못된 선민사상만을 나무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선민의식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는 잘못된 구원론에서 기인한 것이며, 둘째는 잘못된 예정사상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장로교인이 정말 많다. 전 세계 장로교인의 50%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한국 장로교회에서 가장 많이 가르치는 것이 바로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는 잘못된 구원론이다. 정말 구원의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옳은 주장이지만 그 사람이 한 번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절대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전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아니 믿는 이의 절대 다수가 회개하지 않아서 지금도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데도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자신의 죄는 과거의 죄나 현재 짓고 있는 죄나 미래의 죄가 다 용서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회개를 등한시 하거나 회개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를 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오히려 바보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대제사장이 대속죄일 제사를 드린 것으로 이해하라. 그래도 우리는 개인 속죄제사를 드려야 한다. 개인 속죄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가, 일 년에 한 번 치른 대속죄일 제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모든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님을 알라. 충분한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충분히 회개해야 예수님의 피가 나에게 적용되어서 내 죄도 용서받고 귀신들도 떠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잘못된 예정사상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예수믿게 된 것은 만세 전에 나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이니만큼, 나의 구원은 절대 흔들림이 없을 것이며, 내가 무슨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은 구원받을 숫자에 관한 예정인 것이니, 개인에 대한 구원 예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어떤 예정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쓰실 것인가 하는 예정 곧 개인 사역 예정인 것이지 개인 구원 예정은 없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장로교인들이 자신은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다 세뇌교육 때문이다.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구원은 죽을 때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야 하는 구원이다. 구원은 이미 예수믿을 때에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인지는 죽은 후에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분명한 것이지만, 아직 경주를 끝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는 믿음을 붙잡고 회개하면서 나가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대인들처럼 잘못된 예정 구원 선민사상에 물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7. 나오며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그 결과는 누군가가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 죄값을 받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 죄값을 예수님께서 처리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기만 하면 다 죄값이 처리된 줄로 알고 있는 분들이 아주 많다. 그건 크게 잘못된 믿음이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좀 다르다.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탕감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짓는 죄는 반드시 자백함으로 용서받아야 한다(요일1:9). 그리고 그때 지었던 죄들 때문에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하려면 이것도 다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의 죄는 아직 내가 짓지도 아니한 죄이기 때문에 그 죄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짓고 있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고 있어도 지금 짓고 있는 죄 때문에 결국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바깥이나 불못으로 던져질 수 있기 때문이다(계21:8, 22:15). 그러면 거기로 쫓겨나서 슬피 울게 될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1~2계명의 어긴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개하면 하늘의 행위책에서 우리의 죄가 지워질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 지었을 때에 우리 안에 들어왔던 귀신들(실제는 뱀들)도 같이 떠나가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다 용서가 되는 것이다. 죄악이 차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도 명심하자. 그런데 죄가 차지 않도록 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 감사하자. 그것이 바로 회개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지었던 죄에 따른 악한 영들도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 몸에서 떠나보낼 수 있는 것이다. 재앙을 비울 수가 있는 것이다. 회개가 정답임을 명심하자. 회개할수록 이미 채워지고 있는 재앙이라도 그것이 비워지게 되고 더이상 차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놀라운 일이다. 회개가 이처럼 영적 세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놀라운 영적 무기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회개에 집중하자.

 

 

2023년 02월 12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45) 천국에 있는 4생물과 24장로의 정체와 그들이 하는 일은?(계4:4~11)_2022-04-13(수)
https://youtu.be/Bu-7gwRt8Rw  [혹은 https://tv.naver.com/v/26214869 ]

 

1. 사도 요한이 천국에 올라가서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사도 요한이 천국에 올라가서 처음으로 본 것은 하나님의 보좌였다. 거기에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앉아 계셨다. 그리고 그 주위에 네 생물이 있었고, 그 바깥쪽에는 하나님의 보좌 좌우편에서부터 24보좌들이 반타원형으로 놓여 있었다(그러므로 정면쪽으로는 뚫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24장로들이 금으로 된 승리관을 쓰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앞쪽에는 켜진 일곱 등불이 있었다. 그때에 네 생물들이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에, 24장로들도 역시 자기들의 승리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드리면서 하나님을 경배하였다(계4장).

2.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사도 요한은 사실 보좌 위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벽옥과 홍보석같이 보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딤전6:15~16). 그렇다면 왜 사도 요한의 눈에 하나님은 수많은 보석들 중에 왜 '벽옥'과 '홍보석'과 같은 모습으로 보인 것일까? 그것은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을 때에 파악하기 쉽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과 묵시적인 계시들의 완성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언급된 보석 하나 하나에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 구약시대에 이미 쓰여 있는 어떤 말씀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어떤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모습을 보석으로 표현한 것 자체가 보석과 보석의 색깔로 인하여 그분이 얼마나 존귀한 분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습을 빗댄 보석도 '벽옥'(ocenn jasper)과 '홍보석'(ruby)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가슴에 있는 판결 흉패에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12개를 물린 것과 상관이 있다. 왜냐하면 판결흉패의 첫 보석과 마지막 보석이 여기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결흉패의 보석은 3개씩 4줄로 물리게 되어 있었는데, 첫째 줄의 첫 번째 보석이 '홍보석'이었고, 넷째 줄의 마지막 번째 보석이 '벽옥'이었다(출28:17~21). 그런데 천상에서 사도 요한은 대제사장의 판결 흉패에 물리는 마지막 번째와 첫 번째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여기서 '벽옥'의 빛이 파란 색인 것은 하늘 색으로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홍보석'이 붉은 색인 것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벽옥을 통하여 그분이 초월해 계시는 전능자인 것을 인식할 수 있으며, 홍보석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이제 친근해진 상태에 있게 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빛깔이 첫 보석과 마지막 보석인 것은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의 말씀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알파(처음)와 오메가(마지막)이시기 때문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사41:4, 44:6, 48:12, 계1:17, 2:8, 21:6, 22:13).

3.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불타고 있는 일곱 등불은 어디에서 가져온 이미지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불타고 있는 '일곱 등불'이란 또 또 어디에서 가져온 이미지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일곱 등불이 곧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서 곧 성령을 지칭한다고 배웠다. 또한 '7'(3+4=7)이라는 의미가 하나님(3)과 인간(4)의 연합이라는 것도 배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완전수 '3'으로 표현된다면, 인간은 피조물의 수인 '4'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12'(3*4=12)라는 숫자가 하늘나라에서의 완전한 연합으로서 하늘나라의 완전수를 가리킨다면, '7'은 이 땅에서의 완전한 연합인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땅에 오셔서 믿는 자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성령은 순전히 이 땅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일곱 등불이나 일곱 영은 어디에서 가져온 개념인가? 그것은 스가랴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스가랴 선지자가 보았던 하늘나라의 일곱 등잔의 이미지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스가랴는 금으로 된 등잔대를 보게 된다. 그런데 그 등잔대 위에는 일곱 등잔이 있었다. 그리고 그 등잔은 등잔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두 감람나무에서부터 일곱 개의 관을 통해 기름이 보충되고 있었다(슥4:2~3). 그리고 일곱 등잔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일곱 눈이라고 하였다(슥4:10).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일곱 등불은 바로 스가랴서에 나온 표현을 빌려온 것인데, 그것은 성령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스가랴가 보았던 성령을 사도 요한이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등불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자(계4:5), 어린양의 일곱 눈이라고 한 것이다(계5:6).

4. 사도 요한이 보았던 '네 생물'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그날 천상에서 보았던 '네 생물(four living creatures)'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보좌 한 가운데와 보좌 주위의 공중에 떠 있었다. 그리고 이 네 생물은 자기의 몸에 눈들이 가득히 있었다. 그리고 3쌍의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양은 네 생물이 다 달랐는데, 첫째는 사자같이 생겼고, 둘째는 송아지같이 생겼으며, 셋째는 얼굴이 사람같이 생겼고, 넷째는 날아가는 독수리같이 생겼었다(계4:7). 사실 이 온 우주 가운데 영적인 피조물은 오직 천사와 사람, 딱 이 두 종류 뿐이다. 그러므로 네 생물은 일단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천사인가?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람처럼 생긴 것은 아니고 날개가 있는 영적 피조물이니까 천사의 종류로 보아야 한다. 생각하기에는 모든 피조물의 원형을 간직한 채 있는 천사의 종류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들이 확실히 천사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 주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에스겔서와 이사야서의 말씀이다. 첫째, 에스겔서는 그룹 천사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데, 에스겔이 본 그룹(케루빔) 천사는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었고, 총 네 명이었다. 이 그룹 천사들은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 각자가 사면에 가진 얼굴의 모양은 사람과 사자, 소와 독수리의 얼굴 모습이었다고 소개되어 있다(겔1:10). 또한 이 그룹 천사는 자기 아래에 바퀴를 가지고 있으며, 그 바퀴 안에 눈들이 가득했다(겔1:18). 그리고 이 그룹 천사의 영은 그 바퀴들 안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 4명의 그룹 천사들 위에 수정같이 맑은 궁창이 있었고, 궁창 위에 하나님의 보좌의 형상이 있었으며, 거기에 사람의 모습을 한 어떤 형상(하나님의 형상)이 앉아 있었다고 했다.(겔1:15,18,20,22,26).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요한계시록의 네 생물은 그룹 천사와 비슷한 천사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네 생물은 이와는 약간 달랐다. 첫째로 이 생물은 세 쌍의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둘째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찬양을 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서는, 이 생물은 이사야서 6장에 나오는 '스랍(스라핌)' 천사와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스랍 천사도 역시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찬양을 드리기 때문이다(사6:3).
  특히 이 생물이 세 명도 아니고 일곱 명도 아닌 딱 '네 명'이라고 한 것은 이것들이 피조물에 해당되며, 특히 이들은 피조물의 대표이자 우두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들 중에 '사자'는 들짐승의 우두머리요, '소'는 집짐승에서 가장 뛰어난 짐승이요, '사람'은 모든 지구 생명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요, '독수리'는 날아다니는 새들 가운데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스겔 10장의 경우처럼 '소'를 '그룹'이라고 본다면, 소처럼 생긴 그룹은 모든 천사들의 대표와 우두머리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사자, 사람, 소, 독수리가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배열과 일치하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은 '왕(사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요, 마가복음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복음은 '종(소 혹은 그룹)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독수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사도 요한이 보았던 네 생물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네 생물이 하는 역할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딱 2가지다. 첫째는 이들은 하나님의 가장 가까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계4:8). 역시 이들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 생물들은 수많은 눈들을 가지고 있어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감찰하여 어떤 저장장치(칩)에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천국에 가 보면 이 생물의 크기는 집채만 한 크기이며, 이 생물의 몸 모든 곳에 눈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볼 것이다. 이들은 한 생물마다 80억 개 정도의 눈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한의 일부를 부여받은 것으로서, 장차 모든 인류와 천사를 심판할 때 그 근거 자료로서 동영상을 저장하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의 모든 일들을 다 녹화하고 있는 이 네 생물이라지라도, 우리가 지은 죄들이 심판날에 화면에 나오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죄라 할지라도 우리가 회개한 죄는 영상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땅에 살았을 때에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죄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엡4:26). 왜냐하면 해가 넘어갈 무렵에 천사가 하늘로 올라가 우리의 행위를 보고 하는데, 이미 회개한 죄는 기록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루를 넘겼다고 해서 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언제라도 회개하면 그 장면은 화면에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 04월 13일(수)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