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우리는 어떤 결산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죽기 전에 그 결산이 어떻게 될지를 평가받은 사람이 한 사람 있다. 그는 세례요한이다. 그는 선지자보다 뛰어난 자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그는 주님으로부터 만약 자신이 천국에 들어간다면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 평가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대체 그는 마지막에 가서 어떤 실수를 저지른 것인가? 2019년 한 해를 보내면서 이 말씀은 자신의 신앙에 대한 엄청난 각오와 결단을 가져다줄 것이다.

2019-12-29(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주님 앞에 결산은 어떻게 이뤄지는가?(마11:11~15)
https://youtu.be/BRBmKRWEfaQ


1. 들어가며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큰 칭찬을 들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세례요한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주님의 평가를 보니, 그는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였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보다 더 큰 이가 일어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례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그의 과거에 대한 것이었고 당시 그에 평가는 전혀 달랐다. 만약 그 순간에 그가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그보다는 더 큰 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그렇다면 대체 중간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최고의 칭찬으로부터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께서 행하신 세례요한의 평가를 주의깊게 살펴본다면 지금 나의 현주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도 떠오르게 될 것이다.

 

2. 세례요한 그는 누구였는가?

 세례요한은 예수님과 동시대의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다. 그는 아비야반열의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30세쯤 되었을 때 그는 선지자로서 부르심을 받고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성령의 지시를 받아 사람들을 향하여 "회개하. 천국이 가까이왔느니라"고 선포하면서, 사람들에게 물로서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내신 이유는 그로 하여금 세례를 주게 함이 아니었다. 진짜 이유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인 것을 이스라엘에게 드러내기 위함이었다(요12:31). 사실 예수님은 세례요한보다 6개월 뒤에 태어난 사람이었지만,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할 때, 그분은 자기보다 앞선 자라고 말했고, 자신을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했으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이신 것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였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3. 세례요한은 어떻게 되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인 자가 될 수 있었는가?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어떻게 되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라 평가를 주님으로부터 받았는가? 우리는 세례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2가지 평가에 주목해보아야 한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그를 선지자들보다 더 나은(뛰어난) 자라고 하셨다(마11:9). 그는 구약 경륜 안에 있는 마지막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든 선지자와 율법은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를 선지자 이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제사장의 직분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그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더 큰 이가 없다고 하셨다. 이는 그가 모든 인류 가운데 가장 큰 자라는 의미다. 그것은 그가 선지자 이상으로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일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인류의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전가하여 그에게 넘긴 자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면서 일어났다. 예수께서는 죄가 없는 분이시므로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행할 것을 요구하셨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하라고 하셨다. 이는 제사장이자 선지자였던 세례요한을 통해 인류의 죄를 전가받으려고 하신 것이다. 그러니 세례를 받으시고 난 이튿날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그러므로 그는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이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던 것이다.

 

4. 왜 천국에서는 세례요한은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

  그럼에도 세례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너무나 충격적인 평가를 더 듣게 된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마11:11b)"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왜 그토록 극찬을 받았던 세례요한이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는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무엇 때문에 부름을 받았는가? 그는 메시야를 세상에 소개할 자로서 소명을 받은 자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의로운 행동 때문에 헤롯안디바에 의해 감옥에 갇힌 바 되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자신을 구해주지 아니한 것에 대한 섭섭함 때문에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오실 그이를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11:3)" 이런 말을 과연 그가 할 수 있는 소리며 또한 해야 할 소리인가? 그가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것을 소개했고, 자신은 그분의 신발끈도 풀기도 감당지 못할 자라고 했으며,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자신을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가 자신이 감옥에 갇혀있는데 돌아보지 않는다고 할 소리 안할 소리 구분조차 하지 못한 채 주님께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서야 되겠는가! 그가 감옥에 갇히자 그만 그는 자신의 사명에 흔들렸던 것이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세례요한 만큼은 그렇게 말해서는 아니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 그는 자신을 감옥에서 구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제자를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리오니이까?"라고 물은 것은 그가 예수님이 누군지를 진정 몰라서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소개하는 일은 그의 존재목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는 것은 자신을 감옥에서 구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예수님은 그가 실족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1:16). 그리고 그가 만약 지금 천국에 들어간다면, 그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날 바로 죽지 않아서 감사한 일이지 만약 그가 그때 죽었다고 한다면 그는 그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되었을 것이다.

 

5. 천국에서의 평가원리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기서 알아야 한다. 어떤 말 한 마디는 우리가 일구어놓았던 모든 공력을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사실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가? 인류의 죄를 예수님에게 넘겼을 뿐만 아니라, 선지자의 마지막 주자로서 메시야를 직접 보았고, 그 메시야를 세상에 드러난 인물이 아니었던가! 또한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회개할 것을 외침으로서, 천국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바로 "회개"인 것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니이까?"라고 질문을 던짐으로서 그는, 자신이 쌓아두었던 모든 하늘의 상을 하루 아침에 다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만약 감옥에 갇힌 자신을 구해주지 않아 섭섭한 마음이 들더라고 그는 그렇게 말해서는 아니되었다. 사람은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은 끝까지 예수님이 메시야심을 드러내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사도바울은 어떻게 살았는가?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사도바울은 자신이 1차 2차 3차 전도여행 때에 세운 교회 중에 한 곳에 머물면서 안락한 노후를 맞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방인들에게 보냄을 받은 사도로 부름을 받은 자였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죽음도 무릎쓰고 또 다른 선교여행을 시작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어떠했는가? 지금 형편이 조금 힘들다고 그만 자신이 전에 했던 말을 뒤집어버리는 행동을 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되겠는가? 왜 그는 지금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가 전에 헤롯 안디바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그것은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음하는 행위이니 회개하라고 말한 것이다. 그랬으면 잘 했다. 그것은 자신의 사명에 충실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감옥에 갇혔다면 그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는 감옥에서 그만 실족해버렸다. 자신이 주님을 세상에 드러나도록 소개한 장본인이었는데, 그만 자신을 찾아서 심방하지 않는다고, 주님이 진정 메시야인 것은 맞는 것이냐며 불평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정 주님이 찾아오지 않을지라도, 그는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했다. 만약 그가 예수님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그때 감옥에서 목이 잘려 죽지도 않았을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 자신의 입술을 함부로 놀리는 바람에 그는 자신이 그간 쌓아두었던 모든 상을 다 잃어버렸으며, 자신의 목숨까지도 그때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마지막 순간에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다. 마지막은 인내로 결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눅8:15). 우리의 인내로 우리의 영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눅21:19).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히10:36). 인내를 이룰 때에 온전하고 구비되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약1:4). 그러나 세례요한은 그 순간을 인내하지 못했다. 그것을 참지 못했다. 서운함을 그만 토해내버린 것이다.  

 

5. 나오며

  살다 보면 자신이 바라던 기대와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는 불평을 쏟아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때가 바로 우리의 인내가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때에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그만 너무 빨리 자신의 섭섭한 마음을 표출하고 말았다. 그는 그때야말로 자신이 인내해야 할 가장 중요한 때인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그것이 천국에서 받을 상급을 마지막으로 인치는 순간인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뭐든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인쳐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밥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밥을 할 때 밥맛이 드는 순간은 뜨거운 불이 활활 타오르는 순간이 아니다. 이제 불이 서서히 잦아든 후 약 5분 정도의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밥맛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뚜껑을 열어버리면 밥맛은 사라지고 만다. 그냥 죽같은 쌀밥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곧 있으면 2020년도가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올 한 해 수고했던 것을 완전히 뒤집어엎어버린 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쌓아놓았던 공력에 또 다른 상을 쌓아갈 것인가는 우리의 입술에 달려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무릇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였는데, 우리의 마음과 입술을 지켜야 할 시간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12월 29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메시야가 출현하기 직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은 무엇인가?(눅1:5~23)_2019-12-19(목)

https://youtu.be/PD6jolnjIYY

 

1. 성경에는 메시야의 탄생에 관한 어떤 예언들이 있나요?

  구약성경에는 메시야의 탄생에 관한 여러가지 예언들이 있습니다. 첫째, 그분의 혈통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다. 그분은 "유다지파"(창49:10)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창22:17~18, 마1:1)이자 "다윗의 후손(삼하7:12~16, 롬1:3)"으로 태어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진짜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은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눅1:32). 둘째, 그분의 탄생 장소에 관한 예언입니다. 그분은 "베들레헴(미5:2)"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정말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떡집)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셋째, 그분의 출생방법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여자의 후손(창3:15)"이자, "처녀의 몸(사7:14)"에서 출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아기"이자 "아들"로 태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사9:6).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으로부터( 성령으로 잉태되어(사11:2, 눅1:35) "아기(눅2:12)"이자 "사내아들(눅1:31, 계12:4~5)"로 태어나셨습니다. 넷째, 그분의 신분에 관한 예언입니다. 그분은 "왕(사9:7)"이자, "선지자(신18:15)"요, "제사장(시110:4)"의 신분을 가지신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그분은 "왕"으로(마2:2), "선지자"로(마11:9,14, 요4:19), "제사장"으로(히5:6~10) 오셨습니다.

 

2. 메시야의 출현 전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구약성경의 제일 마지막은 "말라기"서입니다. 말라기는 예언서의 마지막이요 구약성경의 마지막입니다. 거기에는 메시야(그리스도)보다 먼저 와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해 주는 선구자가 출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말3:1, 4:5~6). 이 예언을 따라 예수님 탄생 6개월 전에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할 자로서 세례요한이 탄생하게 됩니다(눅1:13~17).

 

3. 유대왕 헤롯왕 때에 살았던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부인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는데 왜 자식을 낳지 못했나요?(눅1:5~6,18)

  제사장 사가랴는 유대왕 헤롯왕 때에 아비야 반열(제사장의 24반차 중 8번째 반차)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그의 부인은 아론의 자손으로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행하여 흠이 없던 의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아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사무엘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사람 곧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하나님께 바쳐져서 쓰임받을 사람이 필요했지만, 사가랴 부부가 정상적으로 아들을 낳았더라면 하나님께서 자기자식을 바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섭리 가운데 아기를 갖지 못한 상태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그들 부부에게 아들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는 나실인처럼 바쳐져서 쓰임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눅1:15). 그러자 이 천사의 고지대로 사가랴 부부는 아기를 낳았으며, 그 아기를 기꺼이 나실인처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4. 왜 하나님께서는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선지자이면서 제사장이었던 세례요한을 선택하신 것인가요?

  그 이유는 첫째, 말라기선지자(말3:1,4:5~6)와 이사야선지자(사40:3~5)의 예언의 말씀을 따라,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해주는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말4:5~6,눅1:,마11:14). 여기서 "엘리야"라 함은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케하고 오직 한 분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라고 외치는 선지자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회개를 외치는 선지자로서 활동했습니다(마3:11). 사실 구약시대에 선지자는 2가지 일을 감당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첫째는 회개할 것을 외치는 자였고, 둘째는 메시야에 관한 것을 예언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구약의 선지자의 마지막 주자로서(마11:13)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으며(마4:17), "이분이 메시야이십니다(요1:30~34, 막1:7~8)"라고 마지막으로 외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제사장이어야만 인류의 죄를 예수님에게 전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 모든 백성들이 지은 죄는 백성의 대표가 죄를 어린양에게 안수하여 전가해야 했던 것처럼(레4:13~15), 인류의 대표자로서(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인 자였음, 마11:11) 제사장이었던 세례요한이 그 일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의를 이루어야(공의과 사랑을 동시에 이룸) 했기 때문입니다(마3:15). 사실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죄가 없이 성령으로 잉태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세례요한으로부터 안수를 받아 인류의 죄를 전가받으셨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세례요한은 그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외쳤습니다(요1:29). 인류의 죄를 넘겨받았기 때문입니다.

 

5. 초림의 예수님의 경우처럼 다시오실 메시야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초림의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회개를 외쳤던 세례요한의 경우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세례요한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사람을 요한계시록에서는 "두 증인(두 선지자)"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계11장). 그들은 모세(율법의 대표)와 엘리야(선지자의 대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자들로서, 십계명의 준수를 외치고, 회개를 외치는 선지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더욱더 회개를 부르짖고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알리는 주의 종들이 필요합니다. 동탄명성교회는 그러한 일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 거룩한 사역에 기도와 물질로 동참하실 분은 동탄명성교회(031-613-2001)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2019년 12월 19일(목)

정병진목사 


1. 들어가며

  세례요한, 그는 메시야의 선구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등장은 사실 메시야가 출현할 것이라는 결정적인 징조였다. 왜냐하면 그의 출현에 관하여 이미 B.C.700년경에 이사야가 예언하였고(사40:3~5), 또한 B.C.430년경 말라기가 예언하였기 때문이다(말3:1, 4:5~6). 그렇다면 세례요한의 사명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오늘 이 시간에는 그에게 주어진 숨겨진 사명에 대해 살펴보고 그 사명의 중요성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2. 세례요한의 3가지 사명은 무엇이었을까?

  세례요한의 사명은 구약성경에 의하면 총 3가지였다. 하나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었고 그 다음 2개는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었다.


1)광야의 외치는 소리

  먼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사40:3~5)부터 살펴보자.

40:3-5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예언은 '광야에 외치는 소리'에 관한 예언인데, 이 예언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오실 길을 만드는 자가 있다는 예언이다. 그래서 그가 먼저 와서 낮은 곳은 돋구고, 높은 곳은 깎아서 낮추며, 구불구불한 길은 반듯하게 만들고, 거친 길은 평평하게 만들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물론 이 예언에 등장하는 표현들은 다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낮은 곳'이란 당시 소외된 계층으로서 병든 자들이나 귀신들린 자들이나 세리나 창녀같은 자들을 가리키며, '높은 곳'이란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가리킨다. 결국 세례요한은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였으며, 하찮고 대접을 못받는 하층민이나 소외된 계층이라도 회개하면 얼마든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2)주의 사자(전령)

  그리고 세례요한에 관한 두번째 예언은 말라기 3장에 나온다(말3:1).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말라기 선지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메시야가 오기 전에 먼저 당신의 사자(전령)을 보낼 것인데, 그가 먼저 와서 하나님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이 예언에 따라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사자(전령)로서 예수님보다 먼저 광야에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였다.

  그러면, 메시야의 선구자가 해야 할 사역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해야 했던 사역은 한 마디로 회개를 촉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만 오실 메시야를 심판주가 아니라 구원의 주님으로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나서 메시야의 선구자는 "이분이 바로 그 메시야다"라고 천거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오시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주는 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라고 선포하였다.


3)오리라 한 엘리야

  그런데 세례요한이 해야 할 일에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말4:4~5). 그것은 그가 곧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세례요한의 세번째 사역이자, 그가 해야 할 숨겨진 회개사역이었다. 그의 숨겨진 회은 말라기 4장에 나온다.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그런데 이 사역은 앞과 두 경우와 같이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사역에 해당한다. 하지만 무슨 죄를 회개시킬 것이지에 대해서는 전혀 다르다. 이전에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이자 주의 사자로서 세례요한은 사람이 사람에게 잘못 행한 것을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못해 구제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시키고, 강포를 행하거나 정한 것 이상을 거둬들여 남의 물건을 빼앗는 자에게는 더이상 강포를 행하지 말고 정한 것만 징수하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책망은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순종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번째로 해야 할 세례요한의 요한은 이것과는 다른 회개사역이었다. 회개해야 할 죄목이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는 사역과 같은 것이었다.


3. 세례요한의 세번째 사명 곧 그의 숨겨진 회개사역은 무엇이었나?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로서 사역해야 한다는 것을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것은 왕상18장에 나왔던 엘리야의 사명과 같은 것이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제7대왕 아합왕 때의 선지자였는데, 그는 북이스라엘이 바알숭배로 젖어들었을 때,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을 섬기고 있는 것을 회개하고 오직 참 신이신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에게도 숨겨진 또 하나의 회개사역이 있었던 것이다. 마치 구약시대에 엘리야가 했던 회개시키는 사역을 세례요한도 실행했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실제로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가 이제 순교할 때가 가까워지자, 그에게 대한 조심스러운 평가를 무리들에게 들려주셨다. 그것은 즐겨받기를 원한다면 그가 바로 오리라 한 엘리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례요한은 당시 이스라엘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신처럼 섬기는 우상숭배를 책망하여 회개시키는 사역을 할 자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신을 버렸으면 이제는 오직 한 분이자 참된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촉구해야 할 선지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십계명 중에서 1계명과 2계명을 순종치 아니한 것을 책망하고, 메시야로서 나타난 예수님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선포해야 했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만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는 오리라 한 엘리야라고 들려주셨던 것이다(마11:14). 그리고는 귀 있는 자는 그것을 들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1:15).

  그랬다. 세례요한은 일상생활에서 잘못한 것만 회개하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을 회개할 것을 촉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메시야로 자기 앞에 나타난 예수님을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로서만 소개할 것이 아니라, 그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소개했어야했다. 왜냐하면 그 일이 바로 구약의 엘리야가 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왕상18장을 보면, 북이스라엘이 온통 바알신앙으로 물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내 아합왕을 비롯하여 북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누가 참 하나님인 것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렇다. 세례요한도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그것을 온전히 실천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세례요한의 숨겨진 회개사역을 받지 못했던 자들은 결국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지 못해서 지옥에 떨어졌고,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믿지 못해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참된 회개를 못하였기 때문이며, 참 신이며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4.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오늘날도 이렇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사실 지금 믿는 이들중에도 예수님만 믿으면 우상숭배를 해도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천국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런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일상생활에서 지었던 범죄만을 회개하는 것이 온전한 회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겨왔던 것을 회개해야 진정 회개를 이루는 것이 되며, 예수님이야말로 한 분 하나님이며 참 신이시며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자신이 몰랐던 것을 회개해야 참된 회개를 이루고 결국에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익히 들어왔던 것에만 익숙해져 왔다. 그래서 예수님만 믿으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우리는 자신의 생각의 잣대로 계산하고 있다. 그래서 뺄 것은 빼고 듣고 있고, 넣을 것은 넣고 믿고 있는 것이 많다. 다음의 성경구절을 보라.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께서는 영생을 어떻게 얻는다고 말씀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그분의 말씀만 들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는가? 아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믿어야 하지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을 보내신 분이 누군지를 믿어야 영생을 얻는다고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 우상숭배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가 없으며, 자기의 마음속에 유일한 한 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것을 섬기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그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5. 나오며

  이제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첫째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짓고 있는 죄들을 회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내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것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예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을 믿어야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사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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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구자(先驅者), 앞서서 말을 달리던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나중에는, 어떤 일이나 사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앞선 사람이라는 말이 되었다. 세례요한,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일평생동안 한 가지 일만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다. 그것은 메시야 앞서 보내심을 받아, 사람들을 회개시킨 뒤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었다. 그는 바로 선구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감당해야 했던 일은 그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에서 아무리 외친다고 한들 아무도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잘못하면 그가 하는 일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죽임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 앞서 보냄을 받은 자로서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실했다. 세례요한,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고, 그가 맡은 사명은 무엇이었으며, 그가 맡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그 자신에게 꼭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세례요한,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살펴보자. 그는 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신분이 있었다. 그것은 제사장이라는 신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사장이 직분을 한 번도 감당하지 못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론가문의 후손으로서 다윗이 정한 24반차 중에 8번째 반차인 아비야반열에 속한 제사장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늙어서 성전에 봉사하러 가더 날, 제비뽑기를 통해 그는 향단에 분향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한 제사장의 일은 일평생 한 번 맡기도 어려운 직책이었다. 그때 그는 향단에 분향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것은 아들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메시야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구자로 쓰시고자 하여,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의 태를 막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마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말이다. 그러자 그는 기도를 통해 늙으막에 아들을 얻게 된다. 그러자 사가랴는 기꺼이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도록 주님께 내어드린다. 그래서 일치감치 세례요한은 광야로 내보내졌고 거기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는 그는 약대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고 살아야했다. 그리고 음식은 광야에서 뛰어다니는 곤충을 잡아 먹었고 야생꿀을 먹고 자라게 되었다. 그러므로 훗날 예수께서는 그를 일컬어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라고 칭하였다. 선지자의 직분을 뛰어넘어 선구자로서의 일을 감당했기 때문이다(마11:9)

  둘째, 그렇다면 그가 맡은 사명은 무엇이었을까?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그의 나이 30세가 되자,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직책 곧 선구자의 일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광야에 소리가 되어 메시야가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사40:3, 말3:1, 4:5~6).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2가지였다. 한 가지는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일이었고 또 한 가지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그들에게 소개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유대광야에서 사람들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느니라(마3:2)"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사람들이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더니 그에게 나아와서 죄를 자복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을 인도하여 요단강으로 가서 세례를 주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세례주는 행렬에 메시야가 나타날 것이고, 그 메시야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세례요한의 세례주는 일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6개월은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세례요한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금방 그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사코 말리는 세례요한에게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세례를 베풀라라고 요청하셨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그에게 세례를 주었을 때, 하늘에서 비둘기같은 성령이 내려와 그분 위에 앉았다. 그리고 하늘에서 예수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니 내가 기뻐하는 자다" 그러자 세례요한은 즉시 "저 분이 바로 메시야이십니다. 내가 이곳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는 것은 다 저분을 여러분에레 소개하고자 함입니다. 그는 커저 나가야 하겠고 이제 나는 줄어들어야 합니다."

  셋째, 그렇다면 메시야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최소한 2가지가 필요하다. 한 가지는 담대함이다.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로, 메시야 앞서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데에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일에 담대함은 필수적이다.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면서 메시야를 소개하려면 쉽겠지만 사람들의 죄를 책망하면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담대함이었다. 마치 모세가 떠난 뒤 두려워하고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강하고 담대할 것을 주문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렇다면, 회개를 외쳐야하는 선구자로서의 담대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한다는 믿음이요(수1:6,9), 또 하나는 기도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요일5:14~15). 오늘날 왜 믿는 이들이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담대함의 부족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요, 기도부족이 그 원인인 것이다. 기도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으라.

  둘째로,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는데 어찌 선구자로서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겠는가? 마가복음과 마태,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을 통해서 살펴보면, 세례요한이 소개해야했던 예수님이 누군지가 나온다. 하나는 그분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소개했다(막1:1, 요1:33~34). 그리고 하나는 그분은 바로 세상죄를 없애러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야이심을 소개했다(막1:1, 요1:29). 마지막으로 하나는 그분이 바로 구약에 나타나셨던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소개했다. 자, 보라. 사40:3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광야에서 여호와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 곧 메시야의 선구자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막1:3에 의하면, 그는 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선구자가 외치는 메시야는 바로 주님이요 여호와 자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로 쓰임받았던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전 세계교회 가운데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진 자들이 많지 않다. 계속해서 예수님을 이 지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나 메시야로 가둬놓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이 죽고나서 부활하신 후에도 그분은 계속해서 아들이신가? 아니다. 아들도 되시지만 이제 그분은 하나님 자신의 자리에 오르신 분이시다. 그래서 부활후 제자들의 고백에서 예수님은 "주님이요, 하나님"으로 고백되어졌다(요20:28). 그렇다. 여러분은 세종대왕을 장헌세자로 부르는가? 아니면 충녕군으로 부르는가? 세종이 대왕자리에 오르기 전에 그는 먼저 충녕군이라 불리웠고, 세자로 책봉된 다음에는 장헌세자로 불렸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후에는 세종이라고 불렸고 후대에 가서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선 27명의 왕중에서 유일하게 세종만을 세종대왕이라 칭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와서 아무도 그분을 세종이나, 장헌세자, 충녕군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가 받은 최고의 직분을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장헌세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부른다. 아니다. 그분은 이미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다. 그분이 바로 한 분이신 하나님 자신이요,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한 바로 그분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는 자들이 이제는 선구자의 사명을 가진 것을 깨닫고 나가서 외치는 것이다.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이요, 예수님을 외치는 것이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약성경에 300번이상 예언된 메시야로, 하나님 자신인 것을 외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에게 담대함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승천하기전에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28:20)"을 신뢰해야 하며,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그분을 소개해야 한다.

  온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을 향해 회개할 것과 예수님을 붙들라고 믿음으로 외쳤던 세례요한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도 그에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돌로 그를 치려고 했을까? 아니었다. 성경에 보니, 모든 유대사람들과 예루살렘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다(막1:5). 그리고 사람들은 세례요한의 외침대로 예수님께로 나아갔고 그들은 결국에 천국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 천국에서 세례요한은 전도의 축복을 받아서, 영광스런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또한 그의 선구자적인 외침을 듣고 지금도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끝까지 붙드는 자들도 다 하나씩 천국에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 선구자는 이렇듯 외치는 자이다. 특히 회개하라고 외치는 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붙들라고 외치는 자이다. 당신도 그러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땅 위에 복음에 빚진 자로서 우리들을 남겨진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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