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5(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왜 마리아는 만세에 복있는 여인이라고 일컬어지게 되었을까?(눅1:26~3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zN_Z3beobTY [혹은 https://tv.naver.com/v/31902851 ]

1. 들어가며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성탄절에 마리아를 칭송한다. 그녀가 메시야를 낳았는데,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낳은 마리아는 고귀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오늘날에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까지 칭송한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낳으신 분은 예수님이시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에서 마리아가 복된 여인이라고 했다는 말씀은 접할 수 있지만, 그녀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하는 말씀을 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눅1:42,48). 그렇다면 그녀가 복있는 여인이라고 불리우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녀가 하나님을 낳은 하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왜 마리아가 복된 여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를 한번 살펴보고, 우리도 복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천주교에서 성탄절을 귀히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천주교에서는 성탄절을 매우 귀히 여긴다.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천주교나 개신교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를 예수님과 동일하게 매우 귀히 여긴다는 데에 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마리아가 기도 중재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도가 직접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기도드리는 것보다는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리고 마리아로 하여금 예수님께 부탁하면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부탁한 것이므로 그 기도가 잘 응답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럴싸한 이론이지만 천국에서 마리아는 결코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녀도 거기에서는 평범한 피조물로서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둘째, 마리아가 공동 구속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를 구속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마리아의 태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나셨기 때문에 구속도 역시 마리아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도 역시 구속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피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그녀도 죄를 가진 죄인이기 때문에 그녀의 피는 인류의 구속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셋째,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으셨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말이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리아는 하나님을 낳은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태를 빌어 이 땅에 들어오신 것인가? 

 

3. 마리아는 과연 하나님의 어머니인가?

  천주교에서는 일찌감치 마리아를 귀히 여겨 하나님의 어머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431년 에베소 회의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때 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교의를 발표하였다. 

  “성육신하신 말씀이 진실로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과 거룩한 동정녀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을 육체로 낳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431년, 에베소 회의)

  그런데 이 회의는 카톨릭에서만 인정하는 회의다. 개신교에서 함께 인정하는 회의가 그로부터 약 20년 뒤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칼케돈 회의'다. 그런데 이 회의 때에도 역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공식화하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을 따라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탄생되었고,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자신이 우리를 위하여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인성을 따라 ‘하나님의 어머니’이신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탄생되었다”(451년, 칼케돈 회의)

  그런데 마리아가 낳으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예수님은 역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마리아가 하나님을 낳았다고 하는 것을 두고, 어떤 측면에서는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나하면 만약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계속 말하고 고백하다 보면, 마리아가 하나님을 낳았으니 첫째, 마리아는 하나님보다 더 높은 분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리고 둘째, 예수님이 하나님(신)이시니, 그녀도 역시 신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더욱이 셋째, 하나님을 낳았으니 하나님을 창조한 이라고도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천주교에서는 그녀를 신격화시켜, 지금까지 그녀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하늘의 황후'라고 칭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서는 마리아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성경에서는 마리아를 '예수님의 어머니'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막3:3, 눅8:19, 요2:1, 행1:4). 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말한 적이 없다. 고로 우리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나오기 때문이다. 

 

4. 가브리엘 천사장은 왜 마리아를 찾아왔는가?

  세례 요한이 잉태된 지 여섯째 달이 되었을 때, 가브리엘 천사장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마리아를 찾아간다. 왜냐하면 인류를 구속할 메시야를 잉태할 여인이 땅에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브리엘 천사장이 그녀에게 말했다. "은혜를 받은 채 있는 자여, 주께서 당신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눅1:28). 이 말은 그녀가 아직 임신하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그녀에게 은혜가 임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말이다. 왜 그러한가? 왜냐하면 지금 그녀가 이미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눅1:27). 마리아도 유다 지파 사람으로서, 다윗의 아들 나단으로 이어지는 후손일 뿐만 아니라, 요셉도 유다 지파 사람으로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후손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정혼은 틀림없이 다윗의 씨로 오실 메시야를 낳은 조건을 갖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그녀는 은혜를 받은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특히 지난주의 말씀처럼, 마리아의 아버지 헬리는 딸들만 셋을 낳았고 아들을 낳지 못했기에 가문의 멸절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같은 동네에 요셉이라는 총각이 유다 지파 사람이었기에 요셉과 자신의 딸을 약혼하게 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므로 헬리 집안이 없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장을 이제 약 15~18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마리아에게 파송한 것은 그녀가 요셉과 약혼한 상태에 있어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낳을 수 있는 최적의 사람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는 지금 동정녀 곧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처녀로 있었기에,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를 낳을 여자의 조건 곧 처녀로서의 합당한 조건을 또한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사7:14). 그러므로 가브리엘 천사장이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5. 마리아는 자신의 태에 하나님의 아들이 임신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그러므로 나타난 주의 천사는 그녀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었다. 그것은 곧 그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장차 위대한 자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욱이 그 아이는 그의 조상 다윗의 후손으로서 장차 왕위를 이어받아 야곱의 집 곧 이스라엘 위에 영원히 왕 노릇하며, 그의 왕국은 무궁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을 말한다. 자신은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데, 어떻게 남자의 씨가 없이 자신의 태에 아이를 임신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가브리엘 천사장은 마리아로 하여금 처녀 잉태가 가능하다는 것을 믿도록 하기 위하여 비장의 한 카드를 꺼낸다. 그것은 마리아가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이모 곧 엘리샤벳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태중에 가지고 있는데,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엘리샤벳의 상태는 이미 마리아도 잘 알고 있듯이, 본래 임신을 못한다고 알려진 이모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이가 많았고 늙어서 아이를 임신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임신을 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어떤 불가능한 것도 다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마리아도 곧장 믿음이 생겼다. 자신의 이모가 임신을 했다면 자신도 얼마든지 임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로 그러한 믿음이다. 그러자 마리아는 천사에게 말한다. "주님의 여종이니, 당신이 지금 나에게 들려주신 그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눅1:38). 그러자 즉시 마리아의 태중에 예수님이 임신이 된다. 

 

6. 마리아가 복있는 여인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마리아는 엘리샤벳의 임신을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산골인 헤브론에 있는 제사장의 마을로 향한다. 사가랴와 엘리샤벳은 아론의 자손이자 제사장의 가문의 사람들로서 유대지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거리가 110Km이상 되는 것이므로, 적어도 거기까지 가는데 한 달 정도는 걸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임신한 상태에서 약 한 달이 지난 후에 엘리샤벳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엘리샤벳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자마자, 마리아는 자신의 이모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말이었다. 

눅1:42~45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그렇다. 마리아가 이제는 복있는 여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태중에 메시야를 잉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샤벳은 마리아를 가리켜 자신의 조카라고 말하지 않고, '내 주님이 될 분의 모친'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태중에 있는 아이 곧 장차 세례 요한이 될 그 아이가 복중에서 뛰놀았는데, 이는 30년 뒤면 자신이 소개할 메시야가 온 것을 알고는 기뻐서 뛰놀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복있는 여인이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녀가 메시야를 잉태해서인가? 아니면 그녀에게 전달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그녀가 믿어서인가? 우리가 만약 이것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우리도 역시 천주교의 잘못된 길을 걸어갈 수가 있게 된다. 왜냐하면 메시야를 낳은 위대한 여인으로서 그녀를 우리도 추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했던 엘리샤벳은 왜 마리아가 복있는 여인이라고 말했는지를 보라. 그것은 눅1:45에 나온다. 이것을 헬라어에서 직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주님에게서(주님으로부터) 그녀에게 발언되어진 채 있는 것들의 성취(완성)가 [장차]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눅1:45). 그렇다. 마리아, 그녀가 복된 여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메시야를 잉태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에게 하나님이 들려주신 그 말씀을 들은 후에 그 말씀이 그대로 자신에게 일어나게 될 것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복되다고 한 것이다. 

 

7. 마리아가 진짜 만세에 복있는 여인이라고 불리게 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마리아가 감격에 겨워 노래를 한다. 그것이 성경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으니 훗날 우리들은 이 노래를 '마리아의 찬가'라고 부른다. 그때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했다. 

눅1:46~47[헬라어 직역] 그러자 마리아가 말했다. "내 혼이 주를 크게 찬양합니다. 47 그리고 내 영이 하나님 내 구주로 인하여 기뻐합니다. 48 왜냐하면 그분이 그분의 여종의 비천함(낮춤)을 돌아보셨기(방문하셨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왜냐하면 이제로부터 모든 세대들이 [장차] 나를 복있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마리아가 모든 세대들이 자신을 복있는 여인이라고 부르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고 또한 그 말씀이 자신에게 이뤄지기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비천한 상태 곧 자신의 아버지의 가문이 멸절될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녀를 통해 하실 일을 전달받았는데 그것을 믿었기에 자신은 복된 여인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마리아가 복된 여인이라 칭함을 받게 된 것은 그녀가 위대한 아들 곧 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낳아서가 아니었다. 그녀도 역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었고 그 말씀대로 이뤄지도록 자신의 태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8. 예수께서는 자신을 잉태하고 길러 준 마리아에게 특별한 영광을 돌렸는가?

  우리는 사복음서를 통하여 예수께서 공생애 시절에 있었던 그분의 어머니와 그리고 그분의 동생들과의 조우를 접하게 된다. 그때였다. 한 여인이 예수님을 잉태하였고 길러주었던 마리아를 높이는 말을 했다. 이렇게 말이다. 

눅11:27~28 이 말씀[들]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그분에게] 이르되, 당신을 밴(짊어지셨던) 태(배)와 [그리고] 당신을 먹인 젖[가슴들]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그분 자신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이들과 그리고 지키[고 있]는 자[들]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그러자 주님께서는 어떻게 그 여인에게 반응하셨는가? 자신을 배었던 태와 자신에게 젖을 먹였던 마리아가 복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실행하는 자가 복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그때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게 특별한 영광을 돌리지 않았었다. 자신을 10달 동안 뱃속에 지니고 다녔던 자궁과 당신이 아기로 있었을 때 젖을 물려주었던 젖가슴을 복 있다고 곧 마리아 그녀가 복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복있는 여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이 그대로 자신에게 이뤄지도록 허용한 것 때문에 그녀가 복있는 여인이 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9. 나오며

  많은 사람들은 마리아를 부러워한다. 그녀는 참으로 좋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잉태하여 자신의 뱃속에 지니고 있었고, 자신의 젖으로 그분을 먹였기 때문에 그녀가 복있는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엘리샤벳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라. 엘리샤벳이나 예수께서 마리아가 복있는 여인이라고 한 것은 결코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복된 여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녀가 이 땅에 태어나서 존재하는 목적을 그대로 이뤘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예수님을 자신의 태중에 잉태하는 것이었고 그 아이에게 젖을 먹여 키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있어서 진정 복된 자가 누구인지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녀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낳아서 그래서 교회가 그녀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칭한다고 해서 복된 것이 아니라, 그녀도 역시 하나님께서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을 때에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자신이 왜 이 땅에 태어난 것이고 또한 자신이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지금도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인 것이다. 마리아를 부러워하지 말라. 내가 지금 어떠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고 그 말씀에 어떻게 순종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녀가 잉태한 것은 사실 예수님을 잉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그녀에게 주신 말씀을 잉태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얼마든지 말씀을 잉태할 수 있다. 2023년도에는 이제 우리와 우리 교회에게 주신 놀라운 말씀을 우리도 자신의 마음 속에 잉태하여, 그것을 출산하는 사람이 됨으로 진정 복있는 사람이 되어 보자. 

 

 

2022년 12월 25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12-18(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예수님의 탄생에서 요셉의 역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마1:18~2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ocNUmm4xjYc [혹은 https://tv.naver.com/v/31818337 ]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는 각기 고유한 역할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역할을 깨닫고 그 일을 잘 수행하는 사람을 지금도 찾고 계신다. 만약 그 역할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될 때에 그만한 사람을 이 땅에 내려보내신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역시 인간의 순종을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나를 향한 그리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이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하나님께서 계획한 그 일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아버지가 될 요셉의 순종이 없다면,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마리아의 순종함이 없다면 이 땅에 메시야는 탄생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였던 요셉은 과연 메시야의 탄생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것인가? 그는 어떻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깨닫게 되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그 일에 순종했던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요셉을 택하여 그에게 예수님의 부친으로서의 사명을 맡겨주셨던 것인가?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은 대체 무엇인가?

 

2. 요셉은 자신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갈릴리 나사렛의 청년 요셉은 의롭고 신중한 사람이었다(마1:19). 왜냐하면 그는 자신과 약혼한 상태에 있는 처녀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조용히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꿈속에서 주님께서 보내신 특별한 천사를 만나게 된다. 그때 주의 천사는 꿈 가운데서 요셉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녀 안에 아버지가 자식을 보게 된 그 일은 거룩한 영에서부터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한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장차]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들로부터 [장차]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마1:20~21). 그렇다. 그녀에게 잉태된 것은 다른 외간남자의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기 위해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를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지 그녀에게 잉태된 자는 요셉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씨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꿈속에서 천사가 말했던 것이 정말 사실인지를 확인할 수가 없는 그러한 종류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때 요셉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3. 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당신의 천사를 보낸 것인가?

  사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야(그리스도)를 보낼 때에는 구약의 예언을 따라 처녀 한 사람을 필요로 하셨다. 왜냐하면 창3:15에서 아담의 타락 직후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사야 7:14에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장차 메시야를 낳을 여자는 처녀여야 한다고까지 미리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메시야를 낳을 사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씨여야 한다고 미리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마리아는 처녀였으며 또한 다윗의 후손이었다(눅3:23). 그러므로 메시야가 탄생하기에 사실 요셉의 도움이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굳이 요셉에게 당신의 천사를 보내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당시 요셉이 메시야를 낳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마리아 혼자서는 메시야를 낳을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만약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한 상태가 아니라면 메시야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둘째는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였고 그나마 그의 신앙과 인격도 어느 정도 경건하고 훌륭했기 때문이다. 

 

4. 요셉은 왜 메시야를 낳는데 꼭 필요한 사람이었는가?

  그렇다면, 왜 마리아 혼자서는 아니 되며, 마리아는 반드시 요셉 청년과 정혼한 상태로 아이를 낳았어야 했는가? 왜 요셉 없이 마리아 혼자서 아기를 낳게 된다면 그 아기는 메시야가 될 수 없었던 것인가?

  먼저, 요셉은 구약의 메시야의 예언을 따라 이 땅에 태어난, 확실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마1:20). 왜냐하면 그의 조상을 위로 올라가면 다윗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요셉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윗에게 많은 아들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았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요셉은 바로 솔로몬의 대를 이어 그의 후손으로 태어난 다윗의 적자였던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시되, 다윗의 후손 특히 왕이신 메시야를 보내 주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왕을 낳으려면 왕손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는 다윗의 자손이기는 했지만 왕가의 자손은 아니었다. 오직 요셉만이 왕가의 자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다윗의 왕가의 후손인 요셉과 결혼해야만이 왕이신 그리스도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만약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하지 않는다면 마리아 혼자 혹시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그 아이는 메시야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을 통하여 2가지 족보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2가지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같은 족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다윗의 아들 대부터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가 된 요셉까지의 족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의 족보는 다윗-솔로몬-르호보함...야곱-요셉으로 이어지는 왕가의 후손으로서 요셉이 태어났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의 족보는 다윗-나단-맛다다...헬리-요셉으로 이어지는 다윗의 후손으로 요셉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셉은 야곱의 아들인가 헬리의 아들인가? 마태복음의 족보는 누가 누구를 낳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복음의 족보는 상향식 족보로서, 누구의 위는 누구다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적인 자료를 통하여, 헬리가 예수님의 모친이 된 마리아의 아버지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헬리가 딸만 셋을 두었다. 그중의 첫째 딸은 마리아요 둘째 딸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있으며, 셋째 딸은 살로메였다. 살로메는 사도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인 바로 그 살로메다. 그런데 헬리는 세 딸 이외에 자식을 두지 못했다. 즉 아들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모세 때에 아들이 없는 가문에 대한 부모기업 전수법이 나온다. 그것은 당시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를 찾아가 말하기를, 자신의 아버지 슬로브핫이 아들이 없이 딸만 다섯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아버지의 기업이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으며, 아버지의 족보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없는 가문에서는 딸일지라도 기업을 전수받을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해 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도 족보책에서 없어지지 않도록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 달라고 청원을 한 것이다. 그러자 모세는 이것을 하나님께 여쭈었고 모세는 다시 이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기업 전수법을 모세에게 일러주게 되는데, 즉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을 가되 자신이 속한 지파의 남자에게만 시집을 가서 기업이 사위에게 주어지게 하라고 명령하셨고, 아버지의 족보는 사위의 족보와 합하여 두 집안을 하나로 묶으라고 한 것이었다(민36:6~7). 그러므로 마리아가 처녀였을 때 헬리는 자신의 딸을 유다 지파의 총각에게만 시집을 보내 자신의 족보가 없어지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유다 지파의 총각이 한 명 살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요셉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헬라어성경 원문에 따르면, 마리아는 그때 요셉에게 정혼이 되어 있었다(마1:18). 요셉이 좋아서 스스로 정혼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이 다윗-나단...맛다다-헬리로 이어지는 가문이 멸절하지 않을 뿐더러, 기업도 요셉에게 주어져서, 태어난 아기도 다윗의 자손이 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요셉이 약혼한 상태에 있는 마리아와 파혼을 하게 된다면, 마리아는 족보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아버지 때까지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마리아가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그래도 그 아이는 결코 다윗의 자손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반드시 유다 지파의 총각이었던 요셉과 결혼을 했어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에게만 천사를 보내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던 것이 아니라, 요셉에게도 천사를 보내, 정혼한 상태에 있는 처녀 마리아를 꼭 아내로 맞이하라고 했던 것이다. 

 

5. 요셉이 받은 은혜는 어떤 것이었으며, 그의 신앙과 인품은 어떠하였는가?

  그렇다면 요셉이 받은 은혜는 무엇인가? 요셉은 어떻게 되었길래 메시야를 자기의 후손으로 둘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그가 메시야를 낳을 수 있을 정도의 신앙과 인격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그는 메시야를 자기의 후손으로 둘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왕가에서 태어나게 된 것은 자기의 결정으로 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육체는 자신의 부모인 야곱과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서 물려받은 것이며, 또한 자신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그 집안의 어머니에게 보내주셨기 때문에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이 법적으로 메시야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 곁에 두고 쓰시는 주의 천사의 방문을 받게 한 것도 주의 은혜였으며, 그 천사로부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정확히 듣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둘째, 그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신앙과 인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천사를 만나기 전에도 그는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마1:19). 그는 비록 가난했지만 불의를 기뻐하지 않았으며 의롭게 살려고 노력했던 신앙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아내될 정혼녀가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는 혈기와 분노로 그녀를 대하지 않고 그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려고 했었다. 그것을 보면 그의 인격도 상당히 훌륭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났을 때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도 그가 선택받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천사의 지시를 결코 의미 없는 그러한 꿈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정성을 바쳐 그 지시에 순종했던 것이다. 

 

6. 요셉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요셉이 그때 당시에 꼭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2가지였다.

  첫째, 파혼하지 않고 정혼한 처녀 마리아를 반드시 자신의 아내로 데려오는 일이었다(마1:20). 그래야만 처녀인 마리아를 통하여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실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의 천사는 그에게 2가지 임무를 주었다. 하나는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데려오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요셉은 천사의 지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아들었고, 또한 그것이 자신이 이 땅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대로 순종하였던 것이다. 

  둘째, 메시야를 낳은 마리아를 보호하고 곧 태어날 아기를 보호하는 일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까딱 잘못하면 마리아가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 찍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천사의 지시를 받고 아직 결혼하기까지는 약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만약 그녀가 배가 불러도 혹시 요셉이 속도위반한 것으로 사람들이 알아들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그녀는 안전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출산일이었다. 6개월 만에 아기를 낳게 되면 속도위반이라는 말도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즉시 이 문제에 개입하셨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로 하여금 호적령을 내리게 한 것이다. 즉 그는 세금을 걷기 위해 자신의 속국에 있는 모든 남자로 하여금 자신의 출생지로 가서 호적을 하라는 명령하였다. 이것은 누가복음 2장에 나온다. 그리하여 요셉은 호적하러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요셉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여자는 호적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갔다. 그래서 거기에 있는 마굿간에서 아기를 낳게 된다. 그리하여 미가서 5:2의 말씀이 성취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굿간에서 집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때 동방박사가 예루살렘에 방문하여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알려 주었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헤롯대왕이 베들레헴으로 사람을 보내 2살 이하의 아이를 살해하려 하였다. 그러자 다시 주의 천사가 나타나 빨리 어린아이인 예수님과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라고 했다. 그러자 요셉은 이번에도 천사의 지시에 그대로 순종했다. 그래서 애굽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헤롯대왕을 죽게 하였다. 그러고는 요셉에게 주의 천사를 다시 보냈다. 이제는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3~5살 정도 되었을 때에 요셉은 어린아이인 예수님과 마리아와 함께 자신이 살던 곳 곧 갈릴리의 나사렛에 가서 살게 된다. 그리하여 요셉에게 주어진 모든 사명을 그가 완성하게 된 것이다. 

 

7. 나오며

  그렇다. 믿음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목숨걸고 수행하는 것이다. 요셉은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요셉의 순종으로 인하여, 처녀 마리아는 요셉의 보호 아래서 메시야를 낳을 수 있었으며, 또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은 요셉의 보호로 인하여 죽임당하지 아니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혈통적인 조건은 더 이상 필요없는 시대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메시야가 태어나기 위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고로 지금의 시대는 메시야를 태어나게 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미 행하신 일을 전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작금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복된 것이 아닐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메시야가 오셔서 행한 일을 전하기만 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축복이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정말 복된 사람들인 것이다. 더욱이 지금의 시대는 마지막 시대다. 그러므로 지금은 하나님께서 막바지 은혜를 부어 주는 시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그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위해서는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되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마24:14), 지금은 천국복음을 전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믿음만 있어서는 안되고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마4:17). 그리고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이 어떤 곳이며, 그곳에서 우리가 영원토록 누리게 될 지위와 신분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다. 지금 듣고 있는 이 말씀이야말로 그때 요셉에게 들려준 주의 천사의 말씀이 아니겠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라. 

 

 

 

2022년 12월 18일(주일)

정병진목사

 

[참고]

1:18~25 헬라어 직역

 

(18)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은 이와 같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에게 정혼이 되어진 후, 그들이 함께하기 전에 그녀가 거룩한 영에서부터 임신하는 것 안으로 발견되었다.

(19) 그런데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있으면서 그리고 그녀를 드러내기를 원하지 아니하면서, 그는 그녀를 몰래 풀어보내는 것(파혼하는 것)을 원하였다.

(20) 그런데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한 후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을 따라서 그에게 나타나졌다. 말하고 있으면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녀 안에 아버지가 자식을 보게 된 그 일은 거룩한 영에서부터 있는 것이다.

(21) 그런데 그녀가 한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장차]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들로부터 [장차]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22) 그런데 이 일 모두가 된 채 있다. 이는 주님에 의해, 선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을 통하여, 입말씀되었던 것이 성취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23) 보라. 처녀가 [장차] 자궁 안에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한 아들을 [장차] 낳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장차] 부를 것이다. 이런 그것은 번역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24) 그런데 요셉이 잠으로부터 일어난 후에, 주의 천사가 그에게 지시했던 것처럼 행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아내를 데려왔다.

(25) 그리고 그는 그녀가 한 아들을 낳았던 그때까지 그녀를 알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

 

 

 

 

2022-12-11(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지금 이 시대에 전해주어야 할 성탄의 기쁜 소식은?(마1:18~2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fsnvA-24WQo  [혹은 https://tv.naver.com/v/31817830 ]

1. 들어가며

  과거에는 성탄절이 되면 "성탄 축하의 밤"이라고 하는 행사를 대부분 가졌다. 교회에서 칸타타를 비롯하여 연극, 선물 교환, 새벽송 등의 여러가지 순서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때 가장 많이 불렀던 찬송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찬109장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찬송을 보면, 후렴 부분이 "왕이 나셨도다 왕이 나셨도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새찬송가로 바뀌면서 "구주 나셨도다 구주 나셨도다"라고 전환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성탄은 왕이 나신 것인가 구주가 나신 것인가? 마태복음을 읽어 보면 왕이 나셨다는 관점으로 쓰여 있다(마2:2). 그런데 누가복음을 읽어 보면 구주가 나셨다고 전한다(눅2:11). 그런데 오늘 마태복음 1:18~23에 따르면, 성탄의 밤에 누가 나셨는지에 관하여 3가지로 말씀하고 있음을 본다. 첫째는 그리스도요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셋째는 하나님 자신이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의 탄생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들이 전해야 할 성탄의 기쁜 소식은 누구의 탄생에 관한 기사인가? 그래서 오늘은 사도들의 복음 전파 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용어들의 차이점을 한번 살펴보고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전해야 할 성탄의 기쁜 소식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2.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왜 소동하였을까?

  예수께서 탄생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온다. 큰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이 탄생한 것을 알아차린 박사들이 아기를 경배하러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근방에서 별이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그들은 헤롯왕궁으로 찾아가서 아기 예수의 행방을 물어본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그러자 헤롯대왕은 깜짝 놀란다. 자기의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어야 하는데, 자신의 아들이 아닌 다른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비수를 숨긴 헤롯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나겠는지 묻는다. 동방박사들의 질문은 동시에 온 예루살렘 사람들을 소동케 한다. 왜냐하면 유대인들도 수백 년 동안 메시야의 탄생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왕으로 오신다는 사상이 당시에 팽배해 있었음을 증명해 준다. 다시 말해, 헤롯대왕을 비롯하여 온 유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왕으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로 예수께서 탄생할 즈음에 유대인들은 왕이신 그리스도 곧 다윗의 후손으로서 오실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초대 교회와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해 주었는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시자 성령을 받은 성도들과 사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때 그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그분이 사실 그리스도였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오셨는데 그것을 몰라보았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전에 있을 때나 집에 있을 때나 언제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였다(행2:36, 5:42).

  그렇다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선택을 받아서 복음을 전파했던 사도 바울은 무엇을 전했는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는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때 유대인들에게 전했던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가? 그것은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러한 증언함은 데살로니가 회당에서나 고린도 회당에서나 다 마찬가지였다(행17:1~3, 18:5). 

 

4. 왜 초대 교회와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하지 않고 그리스도라고 전했을까?

  그렇다면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바울은 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하지 않고, '그리스도'라고 전한 것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던 약속된 메시야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약 600년 이상 메시야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곧 왕이 오실 때에는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는 장차 보내주실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베들레헴에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삼하7:13~14, 미5:2). 둘째, 만약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하면 신성 모독죄에 걸려들어 돌에 맞아 죽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에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재판에 넘겨 죽게 한 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과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요19:7). 그런데 만약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했더라면, 그들은 그러한 행위를 신성 모독죄로 알고 베드로와 바울을 돌로 쳐죽였을 것이다(레24:16).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결코 그들에게 하나님은 두 분이 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신6:4, 출20:3, 사43:10).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항상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했던 것이다. 

 

5. 바울과 사도 요한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을 과연 누구라고 전해 주었을까?

  복음 전파 초기 단계에서 사도들은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그때 전해 준 복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점차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해지게 된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어떻게 전해 주었던 것일까?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증언했을까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한 것일까? 성경 기록을 살펴보니,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줄 때 그들에게 소개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탄생했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그리 기쁜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윗과 같은 왕적인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아들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구원하신다고 전해 준 것이다. 사실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소개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는 것이 훨씬 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전도여행 가운데 2차 전도여행을 보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줄 때에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살전1:9~10) 그리고 고린도에서(고후1:19) 전부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A.D.55년경에 쓴 로마서에서도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롬1:4). 왜냐하면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야 훨씬 더 잘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시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다 구원하신다고 전했을 때에 이방인들이 훨씬 더 복음을 잘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6. 오늘의 시대에는 과연 예수님은 누구라고 전해 주어야 하는가?

  문제는 지금 이 시대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전해 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을 전해 주어야 하는가? 사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확실히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전했을 때에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줄 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인류를 구원하셨다고 전할 때에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운 이 마지막 시대에는 어떻게 예수님을 전해 주어야 하는가? 그것은 모든 민족이 예수님을 다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전한다면 유대인들은 끝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 결코 두 분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는 이방인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해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을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임마누엘 하나님이라고 전해 주는 것이다(마1:23). 왜냐하면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로 오셨다고 하면, 유대인들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이방인에게만 복음을 전해줘야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만 전하면 유대인들은 영영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고로 우리는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전하는 것이다. 

 

7. 가장 늦게 기록된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과연 누구라고 증언하였는가?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된 성경이 있다면 그것은 사도 요한이 쓴 성경책들이다. 복음서로서는 요한복음이 있고, 서신서로는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가 있다. 그리고 계시록으로는 요한계시록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A.D.90~95년 사이에 쓰여진 책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책들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묘사되어 있을까? 놀라지 말라. 요한의 문서들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께서 스스로 계신 한 분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도 예수님은 자신을 "스스로 계신 자"(요8:24)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도 예수께서 자신을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라고 계시를 하셨다는 말이다(출3:14). 다만 그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그분은 원래 홀로 스스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아예 참 하나님이자 영생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한다(요일5:20). 무엇보다 사도 요한이 A.D.95년경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하늘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본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지 않았다.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셨으며, 거기에 앉아서 심판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셨다(계22:13). 그런데 구약성경 이사야서를 보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분은 여호와이시다(사41:4, 44:6, 48:12). 다시 말해,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와 마지막'이라고 소개하시는 분은 주 하나님이셨던 것이다(계1:8).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홀로 한 분이신 주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 사도 바울은 그의 복음 전파 후기에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였는가?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책에도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A.D.55년경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써 보낸 편지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을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롬9:5). 그리고 그가 3차 전도여행 때에는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독자로 삼아주셨으니 조심하여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되,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잘 돌보라고 하였다(행20:28). 그런데 하나님은 사실 피를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시다. 피를 가지신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피흘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사도 바울이 죽기 직전에 썼던 디모데전서에 따르면, 바울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딤전3:16). 그렇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자신의 서신서 곳곳에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모든 인류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9. 나오며

  지금은 마지막 때다. 이제는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아야 할 마지막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때 가장 예수님을 안 믿는 민족은 누구인가? 그중에는 유대인들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 이렇게 두 분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대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아들'로 전할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전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유대인들도 한 분이신 하나님 곧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냈다고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직접 사람이 되셨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가 있다. 고로 성탄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낸 것이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라고 할 때 더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20~30년 전만 해도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전하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거의 다 찼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전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기쁜 소식이 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게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마지막 사명이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11일(주일)

정병진목사

 

성탄절은 어떤 날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새로운 방식을 취하신 날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날에 영이 아니라 사람이 되시는 새로운 방식을 취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새로운 방식을 취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방식을 취한 일로 인하여 우리 인류가 누리게 될 혜택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무려 7가지나 된다. 2021-12-25(토) 성탄축하예배 제목: 임마누엘 성육신이 가져다 준 7가지 놀라운 축복(마1:2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W0cJDBx4UlQ [혹은 https://tv.naver.com/v/24312797 ]

 

 

1. 들어가며

  오늘 성탄절날이다. 성탄절은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 최대의 절기 가운데 하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아들로 오심으로 인하여 절망에 빠져 있고 마귀에게 매여 종노릇하던 우리 인생들이 드디어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분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하신 일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요, 또한 그분께서 그 일을 다 감당하시고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19:30).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했던 바로 그 복을 받아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받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있다면 그것 7가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7가지 축복을 받아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성탄절을 맞이하여 그분의 성육신이 들려주는 놀라운 영적인 의미들을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임마누엘'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마태복음의 기자는 태어난 아기 예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언급했다(마1:23). 그런데 이것은 마태복음의 기자가 지어낸 말인가? 아니면 이미 있어온 예언의 말씀을 인용해서 한 말인가? 그것은 이미 있어온 이사야서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그때는 B..C.733년경으로 그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그렇다. 그것은 이사야가 알려준 하나님의 아들의 새로운 이름이었언 것이다. 그렇다면 태어날 아기의 이름인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는 어떤 뜻을 가졌는가? 그것은 "임+마누+엘'의 합성어로서, "하나님 우리와 함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을 알려주는 귀한 이름이 바로 '임마누엘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이래로 하나님께서는 줄곧 인간들과 함께 하고 계셨다. 특히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야곱에게도, 모세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줄곧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라는 뜻은 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함께 하심으로 함께 하시겠다는 뜻이다. 이는 이전에는 없던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이 방식으로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이전에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인류와 함께 하셨는가? 그때에는 영으로 함께 하셨다. 그런데 이제 시작하는 새로운 방식은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인간이 되어 오심으로 함께 하시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던 방식이다. 이것을 우리는 '성육신'의 방식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전과는 다른 함께하심의 방식을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인가? 왜 부족함이 없는 전능자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려고 하시는 것인가? 그 이유와 목적은 마태복음 1장 21절에 나와 있다. 

마1:21 [그리고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칭]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부터]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렇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죄를 지은 인간들을 구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으면 그것으로 다 된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는 이유는 그렇게 하심으로 인간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그분이 인간 대신 피흘려 죽기 위함이었다(히9:22, 롬6:23). 그러므로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던 날, 드디어 유월절에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피흘려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시던 날 십자가에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 이루었다"(요19:30). 이것은 그분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야 해야 했던 일을 다 이루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분은 숨을 거두셨다. 그리하여 인류가 지은 죄값을 다 지불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죄를 많이 지은 자라 할지라도 그분을 믿고 회개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게 되었다. 동시에 사망에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로부터 놓임을 받게 되었으며(히2;14), 하나님에게터 발을 형벌에서도 놓임을 받게 되었다(살후1:8)

 

4.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오셨음을 확인해주는 증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다시 말해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우리 인류는 어떻게 알아 볼 수가 있는가? 혹시 누군가가 말하기를, "내가 바로 그 사람이요"라고 말했을 때에 우리는 "당신은 아니요"라고 어떻게 말할 수가 있는가? 다시 말해, 그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와 함께 하기 위해 육신으로 오신 분인지를 어떻게 알아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육신되신 그분을 우리가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의 장치를 마련해 주셨다. 그것은 아무나 흉내를 낼 수 없는 그러한 종류의 방식이었다. 그것은 바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야 출생 예언의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하나님께서 인류와 함께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성경기록을 볼 때, 탄성을 질러야 한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신화적인 인물로 만들기 위하여, 초기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니다. 처녀가 아들을 잉태한 방식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독특한 방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누가 되었든 자신이 바로 약속된 그분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야, 너는 가짜거든... 왜 그러는 줄 알아! 하나님이 사람되실 때에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야"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만 해도 30명 이상의 하나님과 재림예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들이 모두 가짜인 것은 그들은 모두 처녀가 잉태하여 태어난 아들을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 곧 그분이 원래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증거하신 것을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살펴볼 수가 있다. 그분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신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그분이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분만이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하게 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5.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식을 새롭게 바꾸셔야 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 인간들과 함께 하시는 방식을 이렇게 새롭게 바꾸셔야 했는가? 그것은 조금 전에도 살펴보았지만 먼저는 첫째로, 인류의 속죄를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방법을 취하지 아니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류 가운데에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을 수 있는 속죄양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담 이후에 그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다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흠없는 속죄제물이 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되신 이유는 흠없는 속죄제물이 되시어 우리 대신 죽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놓아주기 위해서 그러한 방식을 취하신 것이다. 마귀는 사실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직전까지 하늘에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실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했는데, 이 소식을 마귀 자신도 듣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하늘에서 한 번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인지를 아닌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을 찾아가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때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고 예수님께 시험한 것이다. 마귀 자신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재가 누군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예수님도 먹으면서 살고 있고, 화장실도 가야 하고, 또한 먹지 않으니 그만 피골이 상접해있다는 것을 보고서는 자기가 얼마든지 그를 처치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꼬드겨서 예수님을 죽게 만든다. 그러나 사탄마귀는 오직 죄를 지은 사람에게만 사망권세를 사용할 수가 있었는데, 죄없는 예수님에게 그것을 사용하고 말았다. 그는 사실 예수님만 죽여 없앤다면 세상은 자기 것이 될 줄을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불법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사망권세를 빼앗기게 되었고 결국 예수믿는 자들 위에 더이상 왕노릇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와 함께 하시는 방식을 '사람의 방식'으로 바꾸셨던 것이다. 

 

6. 임마누엘 성육신이 가져다 주는 놀라운 축복 7가지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그분이 우리 인류와 함께 하신 방식을 성육신의 방법으로 바꾸심으로 인하여 우리 믿는 이들이 입게 된 놀라운 은총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려 7가지나 된다. 여기서 굳이 7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7'이라는 숫자가 이 땅에서의 완전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째, 아무도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직접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있을 당시에 살았던 제자들은 직접 예수님을 만져볼 수도 있었고, 그분의 육성을 그들의 귀로도 들을 수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요일1:1).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성육신하신 것은 그때 당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영의 세계가 물질세계로 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사실 영의 세계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성육신의 사건은 모든 인류가 영의 세계가 실재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첫째 아담이 이루지 못했던 일을 이제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 해 내심으로 우리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아담은 범죄로 인하여 이 세상에 죄가 들오오게 하였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오게 했는데, 둘째 아담이자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으로 죄값을 지불하셨고, 그때 사망도 함께 멸하셨으며 또한 하늘에서 오르실 때에 당신이 가진 생명을 해방시켜 주셨다. 그래서 그분은 생명주는 영이신 성령을 통하여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해주셨다.  한 마디로 그분이 죽고 부활하심으로 그분은 생명주는 영이 되셔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분배하심으로 그분을 믿는 자들이 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게 하신 것이다(고전15:45). 

  다섯째,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값을 지불하셨기에 이제는 그분을 믿고 회개하기만 하면 그분이 이루신 속죄의 효력을 누구든지 다 받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분의 성육신이 아니었다면 사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고 그분 앞에 자신의 죄를 토설하면 누구든지 다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섯째, 마귀에게 눌려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세상 임금은 마귀다(요12:31,14:30,16:11). 마귀는 지금도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인 이 지구와 음부와 둘째 하늘에서 여전히 왕노릇하고 있는 존재다.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류에게 죄짓게 만들고, 그들이 죽은 다음에는 자기들이 있는 곳으로 끌어가는 악한 세력을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 한 마디로 그들을 십자가에서 무장해제키심으로 누구든지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마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또한 귀신들을 내어쫓을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아 그들과 함께 영적으로 싸워서 승리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일곱째, 마지막으로로 이제는 더이상 다른 구원자를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그때 오시지 않았더라면 우리 인류는 구약의 백성들처럼 마냥 인류의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가짜 사기꾼들에게 농락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분이 오셔서 속죄하는 일과 생명주는 일 그리고 마귀를 멸하는 일을 다 행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 이외에 다른 구원자가 있는 것인지 찾아볼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는 다른 메시야를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고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을 입으셨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그분 이외에 다른 구원자가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다 사기꾼임을 금방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구원자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2천년전에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던 그분만을 다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7. 그분이 이루신 일을 우리가 경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임마누엘로 성육하신 것을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 그분이 이미 성육신하심으로 인하여 이루어놓으신 혜택을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첫째,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 바로 만세전 전에 계셨던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없이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죄사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요, 그것이 없이는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가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그분이 이루어놓으신 일들을 효과있게 하시는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한다. 성령이란 믿는 자들에게 오시는 영으로서, 예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신다. 그리고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하셨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셋째, 그분이 이루어놓으신 것을 체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마귀의 포로로부터 탈출해야 하며,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그리고 가난과 질병과 저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믿는 자라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이러한 기적은 체험되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를 통하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어놓은 일들을 내 것이 되게 해야 한다. 넷째, 마지막으로 그분이 해놓은 일들을 남들에게도 전해 줌으로 하늘에서 받을 상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이 누구시며 주님이 무엇을 해 놓으셨는지를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고 마귀로부터 벗어나게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틀림없이 하늘에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천국집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며, 여러가지의 면류관으로 주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신분과 계급으로 드러날 것이ㅊ다. 

 

8. 나오며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은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른다. 보통 아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 정도가 많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더 무지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성탄절은 착한 사람들에게 산타클로스 아저씨가 선물주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은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 아니었다. 이날은 인류 역사에 가장 거룩한 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날 영의 세계에서 존재하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형태로 자신을 드러낸 날이었기 때문이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여주신 날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식을 새롭게 제시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날로 인하여 우리 인류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그분이 속죄양으로 우리 대신 죽으셨고 그분은 마지막 아담으로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새로운 경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에 그분이 이루어놓으신 속죄의 은총을 누리게 될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역사하고 있는 악한 영들까지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분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요, 그분 때문에 우리가 죽는다 하여도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 때문에 하늘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엄청난 상급에 대해서 듣게 되었고 그것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25일(토)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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