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탄절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나타나신 놀라운 사건이다(요1:14~18)_2019-12-05(목)
https://youtu.be/zmDYj3VQ8B0


1. 예수님의 탄생은 아버지가 자식을 본 것인요 어머니가 자식을 낳은 것인가요?
  성경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아버지가 자식을 본 것(겐나오)"입니다(마1:16,20). 하지만 이때 아버지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아닙니다. 요셉은 법적으로 아버지인 것이지 피와 살을 물려준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하나님 혹은 성령이라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셔서 이 땅에 오신 것이고,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이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은 아머니가 자식을 낳은(틱토) 것이기도 합니다(마1:21,23,25). 그렇다고 어머니가 자식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 처녀로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임신했기 때문입니다(눅1:34~35).


2. 마리아는 아들을 낳은 사건은 어떤 사건이라고 봐야 하나요?
  마리아가 아들을 낳은 사건은 처녀인 마리아가 아들은 낳은 사건이기에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신비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아들을 낳은 사건은 메시야의 예언이 마리에게서 성취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때 그 예언이란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사7:14)"이라는 예언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사9:6)"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기"이자 "아들"로 탄생하신 예수님은 그분이 메시야로 오신 것에 대한 표적에 해당합니다(눅2:10~12).


3. 예수께서 이 땅에 탄생한 사건을 사도요한은 어떻게 설명했나요?
  그런데 예수께서 이 땅에 탄생한 사건을 두고 사도요한은 공관복음서와는 좀 다르게 표현학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나신 사건"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요1:18). 어느때든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가슴(품) 안으로 있는 홀로 태어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 바로 성육신 사건이요, 이것이 예수님의 탄생인 것입니다.


4. 예수께서는 언제 자신을 드러내셨나요?
  예수께서는 사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던 분입니다(요8:58). 그러나 구약시대에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인격적으로 나타내신 적은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현현하신 사건은 여호와께서 인간의 육신의 모양으로 현현한 것뿐입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세 명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중에 한 명은 "여호와"였고 나머지 둘은 "천사"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현현하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보았고 그분과 대화를 나누었던 유일한 사람입니다. 물론 이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직접 보여준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아브라함을 그때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구약시대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적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품 속 거기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은 하나님께서 홀로 말씀을 통하여 창조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품 속에 있는 홀로 태어난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시존재가 가능하시기에, 둘이 될 수도 있고 셋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에는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로 계셨으며, 그때 성령은 영으로 계셨으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신 것입니다. 이 때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었던 것이죠. 고로, 예수님의 탄생이란 보이지 않는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제시하신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5. 사도요한은 성탄의 의미를 어떻게 말했나요?
  요한일서1:1~2의 말씀을 통해서, 사도요한은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생명의 말씀" 혹은 "생명"을 직접 보게 되었다고 언급합니다. 아니 손으로 만져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아버지를 향하여 있어왔던 분인데, 자기시대에 자기를 나타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육신하기 전에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품(가슴)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천년전에 동정녀마리아의 태를 빌려 이 땅에 태어나심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부활하실 때에 자신이 입고 있었던 육신을 그대로 부활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몸을 그대로 가지고 승천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기에, 부활하실 때에 가장 아름다운 몸으로 자신을 만드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당신이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신 것에 대하여 영원한 간증이 되기 위해 그몸을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천국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가면 찢기고 찔리고 상했던 그 몸을 그대로 가지고 계신 예수님을 만나 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4:24). 그러므로 아무도 그분을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성령도 영이기에 아무도 그분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분은 한 때 육신을 입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천국에서 부활체를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부활체를 입고계신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지금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유일한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계3:21,7:17,22:1,3,21:5~6). 하나님은 영원토록 볼 수 없지만 우리는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친히 사람이 되사 십자가에서 대신 희생을 치르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님, 그분이 이 땅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찬양드립니다.


2019년 12월 05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은 어떻게 나타난 바 되었는가?(요8:28~29)_2019-02-01

https://youtu.be/m3MIdpJK05s

 

1. 하나님의 제일 속성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나타난 바 되었을까요?(요일4:8~9)

 

2. 하나님의 제일 속성은 아마도 "사랑(아가페)"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난 바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시작된 것입니다(아니 만세전에 그 일을 하나님께서 작정하고 계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성육신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바 된 증거인 것입니다(요일4:8~9). 사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구약시대만 해도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살리려고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사람으로 보내심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 말고도 또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3.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게 3가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우리의 구주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요일4:9~10). 둘째,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롬5:8). 셋째, 자신의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믿어 구원얻은 사람을 이 세상 끝날까지 지켜주시는 것입니다(마28:20).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사람(피조물)로 보내신 사랑, 우리 죄인을 위해 죽으신 사랑, 한 번 구원얻은 사람은 이 세상 끝날까지 버리지 아니하시는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귀하고도 귀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3단계로 나타난 바 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우리가 비로소 그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알게 된 우리 사람들은 어떤 반응이 나타나게 되는 것인가요?

 

4.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자는 공통적으로 자기도 하나님처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요일4:11~12).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실 사람이 부모가 되어봄으로 비로소 우리도 알게 됩니다. 부모가 되어버리면 그만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그때부터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을 키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가장 큰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비로소 아버지가 되시고 아들이 되셨던 사건, 곧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사건이야말로 인류최대의 빅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나타내 보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셨지만 우리는 그분이 이 땅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에서는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오셨던 예수님께서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까?(요8:28~29)

 

5. 유대인들과의 논쟁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네가 누구냐?(요8:25)" 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너희가 인자(사람의 아들)을 든(들어올린) 후에야 '내가 그'인 줄을 [너희가] [장차] 알고(알게 될 것이다)(요8:28)" 했습니다.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시게 되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분이 누군지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은 "스스로 계신 이"요,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I am=스스로 있는 자)"(출3:14~15)라고 직접적으로 자신을 소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홀로 한 분이신 전능하신 창조주의 자기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란 스스로 계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의 속죄를 위해 사람이 되신 사건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더 많이 그리고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보내신 사랑"에서 "직접 사람이 되어 오신 사랑"이라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하나님께서 직접 아들이 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낮추시고 피조물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신성한 자가 스스로 죽기 위해 인성을 취하여 사람이자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알게 된다면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19년 2월 1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이름과 예언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오심인가 아들의 오심인가?(마1:18~25)

https://youtu.be/d-wBf-3tXoE

 


1. 예수님의 탄생은 아들의 탄생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오심인가요?

 

2.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을 아들의 탄생이자 하나님의 오심이라고 둘 다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1:21)"는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아들의 탄생임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하지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장막을 치시매)(요1:14)"라는 말씀과 "그(하나님)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딤전3:16)"라는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오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수십차례에 걸쳐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서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될 때에 처음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각(계획) 속에 있는 아들이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 성육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다고만 이야기할 뿐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고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슨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까?

 

3.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고는 참 많이 이야기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는 것은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한 분이 아니라 세 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신경만 보더라도 이러한 왜곡은 심각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는데(침례교만 제외하고), 사도신경에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선언도 없으며,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선언도 없습니다. 사도신경에는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더욱 더 안타까운 사실은 [새]사도신경에는 예수께서 승천하시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고백(물론 상징적인 표현임)"을 바꾸어서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고침으로서, 하늘에는 아버지 하나님 보좌가 있고 그의 오른편에 아들의 보좌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성경에는 단 한 번도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혹은 "아버지 하나님 보좌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아버지의 보좌에는 아들이 앉으셨습니다(계3:21, 7:15~17). 곧 하나님의 보좌에 예수님이 앉으신 것입니다(계20:5~6,22:13). 그러니 요한계시록 끝에가면 하나님의 보좌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단수)"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계22:1,3). 요한계시록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는 곧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주의 천사가 일러준 예수님의 탄생소식은 아들의 탄생소식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오심의 소식인가요?

 

4. 주의 천사가 나타나 요셉의 꿈을 통해 알려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태어날 아기에 관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예수"라는 이름이었고(마1:21) 또 하나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마1:23). 먼저, 주의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날 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명명할 것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1:21에 나와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헬라어로 직역해보게 되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장차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자기의 백성"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곧 태어나실 분은 자기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자로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분은 누구였습니까?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셨습니다. 출애굽 무렵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보낼 때에 얼마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러므로 마1:21에 나오는 "그분 자신"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대명사인 것입니다. 곧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시려고 아들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고로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자기백성을 구원하러 오셨다"인 것입니다. 사실 "예수"라는 글자는 구약시대에는 "여호수아" 내지는 "예수아"라는 이름인데, 그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내지는 "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예언에는 그분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마1:23, 사7:14)

 

5. 구약시대 이사야선지자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을 장차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분명히 예언했습니다(사7:14). 장차 태어날 아들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어로 "임마누엘"이라는 글자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임=함께(with)", "마누=우리와(us)", "엘=하나님(God)"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일러준 "예수"라는 그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들로 태어나긴 했지만 그분은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인 그분의 백성과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말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라는 표현과 더불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들로 오셨다"라는 표현도 동시에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아들이자 아기로 오실 분이 곧 기묘자인 모사(보혜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분명하게 예언했던 것입니다(사9:6). 우리를 위해 기꺼이 낮고 천한 피조물로 오신 하나님을 이 시간 높이 높이 찬양드립니다.

 

2018년 12월 24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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