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04)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름받았지만 왜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렘1:4~10)_2023-02-10(금)

https://youtu.be/Hv0OBh7dPbg [또는 https://tv.naver.com/v/33097024]

 

1.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언제 선택되었으며 언제 부르심을 받았는가?

  예레미야는 그가 모태에 빚어지기 전에 그리고 그가 태로부터 나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거룩히 구별하셨으며, 그의 나이 약 20세 전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아이라 말할 줄 알지 못하나이다"고 말했다. 이때 '아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아르'라는 말로서, 소년에서 청년에 이르는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는 빠르면 14세 정도에 그리고 좀 늦게는 20~25세 정도에 부름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통 신학자들은 그가 18~20세 정도에 부름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부름받았을 때는 남유다 16대 왕 요시아 13년으로서 B.C.627년이었다(렘1:2). 

 

2. 하나님으로부터 사역자로 부름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이후 선택을 받지 않는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를 어떻게 쓰실 것인지를 정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 수준에 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보내시기 때문이다. 또한 이 땅에 보내실 때에도 아무 집안 아무 여인의 태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를 어느 집안 가문의 어느 여인의 태에 보낼 것인지도 하나님이 정하신 후에 보내신다. 또한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만큼 크게 쓰실 것인지에 대하여 예정하시어 그릇의 크기도 정해서 보내신다. 또한 그가 어떤 사역을 감당하게 할 것인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 사역할 것인지 즉 사역의 기간도 정하신 채 보내시는 것이다. 예레미야도 역시 그랬다. 하나님은 그를 제사장 가문의 사람으로 보냈으며(렘1:1), 그를 남유다 뿐만 아니라 열방의 선지자로 보내셨다(렘1:5,10). 그리고 그에게는 예언 중에서도 심판을 주로 선포하되 회복까지 외치는 예언자로 보내셨으며, 사역의 기간도 적어도 40년 정도 길게 쓰임받는 선지자로 보내셨다(렘1:2~3). 

 

3. 그를 열방의 큰 선지자로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레미야는 어떻게 응답했는가?

  예레미야는 겸손했다. 그리고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두렵기도 하였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자신은 아이와 같은 자로서 말을 잘할 줄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실제로 나이가 어렸다. 한 20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 보지 않았기에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격려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서 누구에게 보내든지 그리고 무엇을 명령하든지 그냥 그대로 말하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먼저는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어 말하게끔 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요(렘1:9), 또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끝까지 함께 하실 것이며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그를 구출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렘1:7~8). 이 말씀은 결국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결코 어려움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지 아니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그를 건져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4. 예레미야의 선포 사역은 어떤 것이었는가?

  예레미야는 다른 선지자에 비해 사람들로부터 결코 부러움의 대상이 되거나 존경받는 대상이 되는 선지자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의 선포 사역은 심판 예언 사역이 주를 이루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내가 오늘 너를 이방 민족들과 여러 왕국들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렘1:10)" 그렇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심판과 회복을 2대1의 분량으로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것' 4가지이고, '건설하고 심게하는 것' 2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40년 동안 엄청난 분량의 심판 예언을 쏟아내야 했다. 그러므로 그의 선지자 사역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이 이미 암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5. 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쓰임받았지만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는가?

  사실 40년간의 그의 사역 가운데 요시아왕이 살아 있었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왜냐하면 첫째로 왕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에 제18대 여호야김왕은 예레미야가 보낸 두루마리가 읽혀지게 될 때는 그것을 찢어서 화로불에 던져고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였다. 또한 20대 시드기야왕은 자꾸 예레미야를 불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나 우유부단하여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대신 관료들에게 물어서 일을 결정하곤 했는데, 어느 때에는 대신 관료들의 말을 듣고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 뜰에 있는 구덩이에 처넣기도 했기 때문이다(렘38:6). 둘째,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항상 예레미야의 의견과 반대되는 말을 했으며, 예레미야를 대적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짓선지자 하냐냐는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와 성전기구들이 2년 안에 돌아올 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멍에를 꺾으셨기 때문이라고 예언했다(렘28:1~4,10~11). 하지만 그것은 거짓 예언이었다. 다른 선지자들도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꿈을 꾸었다느니 혹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통해 말씀하셨다느니 하면서 예루살렘은 평안할 것이며, 재앙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렘23:25~27). 하지만 그것 역시 거짓 예언이었다. 그리고 제사장인 임메의 아들 바스훌은 예레미야가 불길한 예언을 한다면서 그를 때리고 목에 나무 고랑을 채우는 행각도 서슴치 않았다(렘20:1~2). 그리고 셋째로, 자기 고향 아나돗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도 예레미야의 심판 예언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예레미야를 죽여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렘11:19~21, 26:8).

  그런데 당시 왕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뭇 백성들은 왜 한결같이 예레미야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인가? 그것은 첫째로, 예레미야가 한사코 불길한 심판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은 파괴될 것이고 성전이 훼파되어 버려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바벨론에게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거짓을 예언하지 않고 참된 것을 예언한 것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고통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 참된 선지자는 백성이 좋아하는 말을 만들어 예언할 것이 아니라, 설령 그것을 백성들이 싫어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는 것이다. 둘째, 많지는 않아도 그의 조상들 중에 반역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역의 영이 내려온 상태에 있었기에, 예레미야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 통일왕국 제3대 왕이었던 솔로몬 때에, 예레미야의 직계 조상이었던 아비아달 제사장이 반역의 무리에 가담했다가 파면을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왕상2:26~27). 이때 아비아달 제사장은 사울왕이 없애버리려 했던 이다말 가문의 제사장의 하나였다. 그러다가 아비아달은 사울왕으로부터 간신히 피해 다윗왕에게로 가서 다윗왕 시대에 다윗과 함께 했던 대제사장이 되었다. 하지만 다윗이 죽자 아도니야의 반역에 아비아달은 요압 장군과 더불어 합류하게 됨에 따라 아비아달 제사장 역시 반역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솔로몬은 아비아달이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에게 한 일을 기억하면서 그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를 파면시키고 그의 고향인 아나돗으로 보내 버렸다. 그러자 결국 폐위당한 아비아달 대제사장이 자신의 고향인 아나돗으로 가서 거주하게 되는데, 그의 후손으로 예레미야가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많지는 않지만 약간의 거역의 영, 반역의 영이 그의 집안에 내려온 채 있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예레미야는 더 심각하게 배척을 받게 된 것이다. 

 

 

2023년 02월 10일(금)

정병진목사

 

이 땅에 보내어진 성령께서는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 하나됨을 매우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교회는 7가지의 하나를 힘써 지켜나가야 한다. 그리고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이 땅의 모든 교회의 구성원들은 직분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았다면 그것을 귀히 여기고 그것의 목적에 맞게 충성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7가지 하나와 교회에게 은사로 주신 직분 5가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021-01-13(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11) 성령이 하나되게 하심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함(엡1:1~16)
https://youtu.be/NNwsGg7H1PY [혹은 https://tv.naver.com/v/17916458 ]

 

1. 들어가며

  에베소서는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가장 심오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품으신 구원경륜을 소개하고 있으며, 천사들도 전혀 몰랐던 인간구원에 관한 예정론이 들어있고, 교회가 무엇인지를 7가지 방면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영적 싸움에 관한 심오한 말씀들을 토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영성가로 치자면 아마도 기독교 최고의 영성가가 아닐가 생각된다. 그는 주님으로부터는 비밀스러운 계시를 받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특히 그가 에베소서를 통하여 들려주는 말씀과 그가 올리고 있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뜻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갈 방향을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또한 제시해주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 성도들이 힘써야 할 교회공동체의 연합과 일치에 관한 말씀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교회의 7가지 하나됨의 필요성을 살펴볼 것이며,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주신 5가지 직분적인 은사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통하여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하며, 성도를 온전케 하고 일을 하고, 교회를 세우도록 독려해야 한다. 

 

2. 교회공동체와 일치와 연합을 위한 7가지 하나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시는 7가지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몸과 성령과 소망, 주와 믿음과 세례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들이다. 이들의 구조는 셋 셋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맨 처음 셋은 성령 하나님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고, 가운데 셋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하나는 성부 하나님을 각각 거론하고 있다.

  먼저, 맨 처음 셋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것은 "몸과 영과 소망"에 관한 것이다. 사도바울은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제일 처음으로 "몸"의 하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몸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구성원 모두가 자신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형제들이라는 것과 지체들인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전12:12~13,20,27). 그리고 몸은 한 분 성령님으로 인하여 하나가 되는데, 결국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모두 한 가족이 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첫번째 하나의 묶음의 내용들이다.

  그리고 두번째 하나의 묶음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이신 우리 주 예수님님으로 인하여 하나되는 것을 소개한다. 그것은 "주님과 믿음과 세례다" 제일 처음으로 하나는 "주님"으로 하나되어야 한다는 말한다. 성도들은 결코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다. 신약이후 주님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이렇게 믿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믿음"도 하나여야 한다. 여기서의 믿음이란 믿는 믿음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주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잉태과 출생, 그분의 공생애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그분의 승천과 재림에 관한 신앙고백이 항상 같아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 곧 구원자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한 가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례"도 하나여야 한다. 이때 받는 세례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가리킨다. 오늘날 장로교에서는 보통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만,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한 번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준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여기서 하나를 언급할 때에는 그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믿는 이들이 세례를 통하여 다 "옛사람"으로 하나가 되며, 죽고 그리스도와 접붙힘을 받은 후에는 "새 사람"으로 하나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은 "하나님도 한 분이시다"고 소개한다. 사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모르는 성도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회서 주일에 고백하는 "사도신조"를 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는 신앙고백이 빠져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진 정 하나님을 제대로 믿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다는 생각을 다시 확고히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과연 한 분인가 세 분인가? 어찌보면 이것도 맞는 것 같아 보이고 저것도 맞아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사실이다(엡4:6). 

엡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특히 사도바울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마지막 사항으로 언급한 것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것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만유(모든 만)의 아버지 곧 근원이자 시작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으로 낳음을 받은 자가 곧 교회요 그 지체들인 것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은 3가지라는 것을 소개한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만유 위에 계신다. 그래서 그곳에서 그분 홀로 모든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인도하신다. 둘째, 성자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통일하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니고는 존재하는 만물도 사실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들은 영원히 성자이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한다. 그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경영도 알고 미래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성령님은 만유 가운데 계신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 각자의 속에 지금도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분이셔도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나눠서 순차적으로 집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은 무엇인가?

  그런데 주님이신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두 차례에 걸쳐 내려오셨다. 그것은 순전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낮아지신(눈높이를 하신) 것이다. 그 중에 첫번째 낮아지심은 성육신하심이다. 전능한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육체를 입은 것이다. 두번째는 그분이 음부에 내려가신 낮아지심이다. 사도바울은 분명하게 말했다. 그분께서 지극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후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이다(엡4:8). 그리고 사도바울은 그분께서 지극히 높으신 곳에 올라가셨다면 그분은 땅의 아래 부분들의 더 낮은 곳에 내려가셨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다. 그곳은 어디인가? 그분은 음부가 아닌 다른 곳이 아니다. 시편16편 기자인 다윗은 장차 나타나게 될 메시야는 결코 음부에서 썩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시16:10). 그렇다. 예수께서는 죽으시고 땅 속에 3일간 계셨다(마12:40). 왜냐하면 땅 속에 음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일 뒤에 살아나셨다. 그분에게서 죄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분의 1차적인 승귀다. 부활이 그것이다. 그리고 한 번 더 승귀하셨다. 그것은 승천이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보좌 위에 앉으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무슨 일을 하셨다고 사도바울은 말한다. 그것은 "사로잡혔던 자들"을 다시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전통적으로는 사탄마귀나 죄와 죽음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사탄마귀나 죄와 죽음을 사로잡지는 않으셨다. 그것은 부활 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승천하실 때에는 누구를 사로잡았는가? 그것은 엡4:8에 답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그때 사로잡혔던 자를 사로잡으시고 바로 그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사로잡혔던 자들'이다. 추정해보면, 사로잡혔던 자들은 사탄마귀에게 육신의 죽음을 당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경험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음부에 내려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낙원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아직은 부활체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원문), 사로잡은 자들은 죄로 인하여 사탄마귀에게 사로잡혔던 자들을 예수께서 사로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선물을 주신 것이다. 그들에게 면류관도 주고, 집도 주고 상급도 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4. 교회에게 주신 은사로서 주어진 5가지 직분은 무엇인가?

  그런데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주시고 있다. 이러한 은사들에는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있는가 하면(고전12:8~10), 직분의 은사들이 있다(고전12:28~29, 엡4:11). 그런데 에베소서 4:11에는 오늘날에도 그성령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나눠주시는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총5가지 직분의 은사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인 교사. 여기서 목사와 교사를 하나의 직분으로 본다면, 4가지 직분의 은사들을 그리스도께서 나눠주시는 것이다. 참고로 고전12:28~29에는 5가지 직분의 은사들 중에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의 은사만 나온다. 특별히 사도바울은 엡4:11에 나오는 5가지 은사를 다 받은 자다. 딤전2:7과 딤후1:11에 의하면, 스는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와 교사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행13:1~2에 보면, 그는 선지자와 교사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온전케 하라고 주신 5가지 은사들은 대체 어떤 은사일까?

  첫째, "사도"의 은사가 있다. 사도의 은사란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전파하도록 친히 보낸 자들을 가리키는데, 어린양의 12사도들이 첫번째 사도들이다(눅6:13). 그리고 또 한 명의 사도가 있는데, 그는 "바울"이다. 베드로가 할례자들을 위해 보냄받은 사도라고 한다면, 바울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은 사도이기 때문이다(갈1:1, 15~16, 2:7~8). 첫번째 어린양의 12사도들 가운데 가룟 유다가 자기의 길을 감으로 베드로는 맛디아를 제비뽑는데 그때 사도의 조건으로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자라고 했다(행1:21~22). 그러므로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기에 오늘날 우리는 그를 사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둘째, "선지자"의 은사가 있다. 여기서 선지자가 함은 구약의 선지자와는 좀 다른 은사자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오실 메시야를 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는 일을 하는 자를 가리키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선지자는 더이상 오실 메시야를 예언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미 오신 메시야를 말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선지자는 보통 대언자라고 부른다. 사도행전 13:1에 보면,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이 있었고, 사도행전 15:32에 보면 예루살렘교회의 성도였던 유대와 실라(바울의 2차전도여행 수종자)가 선지자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신약의 선지자 중에는 예언적인 은사로 미래의 일을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선지자라기보다는 예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자라고 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초대교회가 개척되고 세워질 때에 가장 필요한 직분의 은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사도"와 "선지자"의 은사라고 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기초)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했기 때문이다(엡2:2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경륜의 비밀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나타내셨다고 말했다(엡3:5). 그러므로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정도의 기능을 가진 자를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선지자는 교회를 개척하고 세우는 은사에 속하기 때문이다. 

  셋째, "복음전하는 자"의 은사가 있다. 말 그대로 여러지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사도나 선지자는 복음을 전하는 자에 속한다. 그러나 복음전하는 자를 사도나 선지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의 7집사들 중에 한 명으로서, 사마리아교회를 개척했던 빌립집사를 "복음전하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행21:8). 예수님에 의해 직접적으로 보내심을 받지는 않았지만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바로 "복음전하는 자"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자기의 후계자로서 에베소교회에 파송했던 "디모데"로 하여금 "복음전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권면하기도 하였다(딤후4:5).

  넷째와 다섯째, "목사인 교사"의 은사가 있다. 네번째와 다섯번째의 은사는 목사의 은사요 교사의 은사다. 그런데 이 두 직분을 언급하는 헬라어단어를 보면, 정관사가 하나만 붙어 있다. 그러므로 "목사이면서 교사"인 직분자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여기서 "목사"는 양떼들을 목양하는 자라는 뜻이다. 또한 목사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바울은 말한다. 만약 이 두 직분을 나눠서 "목사와 그리고 교사"라고 한다면, 오늘날 교회학교(주일학교) 선생님들은 교사의 직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목사"라는 직책은 사실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포이멘"이라는 단어로서 양떼를 치는 "목자"와 동일한 단어다. 하지만 개신교회에서는 목자라는 단어를 목사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쓰고 있다.

  참고로, 오늘 위의 5가지 직분 가운데 지금까지 여전히 존재하는 직분은 "목사"와 "교사"뿐이다. 앞으로 3가지 직분인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는 원래적 의미로서 그 직분이 현재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왜 교회에서 이러한 5가지 직분을 주셨을까? 그것은 엡4:12에 나오는데 다음주에 공부해보기로 하자. 

  

5. 나오며

  오늘은 교회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해서는 모든 성도가 7가지 하나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엡4:4~6). 그리고 성육신하셔서 사람이 되셨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땅 아랫곳인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셨으며,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그때 승천하시면서 사탄에 의해 육체적인 죽음을 맛보았던 자들로서 그때 낙원에 있던 성도들을 다시 사로잡으시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하여 지금 그들은 부활체를 입고 주님이 주시는 상을 받아서 자기 천국집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영인 성령을 보내시어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각자 성령께서 정해주신 분량에 따라 직분의 은사도 주셨다는 가실을 배웠다. 직분의 은사는 사실 하늘에 속한 은사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영을 보내어 육체 속에 집어넣어주실 때에 은사를 줘서 보낸다. 그러므로 우리들 중에 교회에서 받은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교회를 섬기라고 보낸 은사일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더러는 하늘에서 주신 은사가 아닌데도 임직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을 직분에 충실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 과분한 직분이 자신에게 주어졌는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통해 자기에게 어떤 직분이 주어졌든지 상관없이 받은 직분에 충성하고 진실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다른 사람을 예수믿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도와주어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1월 13일(수)

정병진목사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가운데 주신 직책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리고 전도사역을 감당할 때 사탄의 방해공작과 맞물려 전도자가 꼭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한 유대인과 유대와 사마리아지역의 복음전파에 이어 세계선교의 바톤을 이어받은 교회가 있다. 그 교회는 바로 '안디옥교회'다. 그 교회는 스데반의 일로 말미암아 흩어진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함으로 세워진 교회다(행11:19~20). 그러자 예루살렘교회가 그 소식을 듣고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바나바를 안디옥교회의 목회자로 파송한다. 이에 따라 바나바는 고향 다소에서 자기를 준비하고 있던 사울을 데려와 함께 목회를 하게 된다. 그때였다. 예루살렘교회에 기근이 불어닥친다. 그러자 안디옥교회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자기들도 여의치 않지만 예루살렘교회에 부조를 보내기로 결정하고는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부조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교회에 부조헌금을 전달하고 돌아올 때, 바나바와 사울은 오면서 마가요한을 데리고 온다. 마가요한은 바나바의 조카였다. 그리하여 이들로 말미암아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안디옥교회는 당시 교회의 지도자였던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구별하여 그들을 목양사역자에서 선교사역자로 파송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안디옥교회가 교회의 존재목적에 충실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복음전파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처음으로 이 지상에 세워진 첫번째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교회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 교회는 유대인들로만 구성된 교회였다. 그러다보니 이 교회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인색했다. 그들은 오로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환상을 통해서 이방인들도 이제는 교회의 지체가 될 수 있음을 깨우쳐주었다. 그리하여 그 첫번째 열매로서 가이사랴의 백부장인 고넬료와 그의 가정이 선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교회는 역시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파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교회에 핍박을 허락하였다. 그 일로 인하여 흩어진 성도들이 나가서 세운 첫번째 이방인의 교회가 바로 안디옥교회였다. 그러므로 안디옥교회는 처음부터 왜 교회가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안디옥교회는 자기교회의 지도자요 기둥같이 여기는 있던 바나바와 바울까지도 기꺼이 선교사로 파송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 복음은 나자신만을 위해서 나에게 전달되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도 안디옥교회의 선교정책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오직 다른 이들에까지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디옥교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한 것일까? 행13:2을보라. 성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성령의 음성을 육신의 귀로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그것이 성령의 음성인 줄을 알았을까? 당시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5가지 직책 중에서 2가지 직책을 각각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선지자직이었고 또 하나는 교사직이었다. 헬라어원문에 보면, 바나바와 시므온(니게르)과 루기아(구레네 사람)가 한 개의 그룹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두 명 즉 마나엔(헤롯안디바의 젖동생)과 사울이 다른 한 개의 그룹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도바울도 자신의 목회서신에서 자신의 직책을 소개할 때에 다음과 같은 3가지 직책으로 소개했다. 자신은 사도와 복음전파하는 자와 교사라고 소개했다(딤전2:7, 딤후1:11). 그러므로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시므온와 루기오가 선지자직을 수행하는 지도자였으며, 마나엔과 사울이 곧 교사직을 수행하는 지도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 선지자직분을 갖는 자는 과연 어떤 사역을 감당하는 존재였을까? 이것을 알아야 어떻게 되어서 성령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당신이 시킨 일을 위하여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셨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초대교회에 있던 선지자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와는 상당히 다른 존재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란 대부분 회개를 촉구하고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되, 장차 오실 메시야가 어떤 존재일 것인지를 예언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을 끝으로 구약의 선지자는 끝난다고 말씀하셨다(마11:13). 왜냐하면 그렇게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왔던 메시야가 세례요한의 때에 출현하게 되었고 그 메시야께서 구약의 율법과 예언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등장하는 선지자라는 직책은 구약의 직책과는 사뭇 다른 사역을 감당하는 존재인 것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선지자는 과연 어떤 직능을 수행하는 자였을까? 첫째, 신약시대의 선지자는 회개를 촉구하는 자와 죄를 책망하는 자다( 고전14:24~25). 둘째, 신약시대의 선지자는 사람을 세우며, 권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하는 자다(고전14:3). 그리고 셋째, 신약시대의 선지자는 모든 사람들이 배우도록 혀로 알아들기 쉬운 말로 복음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자다(고전14:6,9,19,31).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언적인 어떤 일을 예언하는 자다. 하지만 이때의 예언에는 결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없다. 이미 메시야가 와서 예언을 다 성취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한 것은 이미 바나바와 바울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이 왜 안디옥교회에 와서 목회를 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심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앞으로 자신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과 복음전파를 위해 부름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도 선지자적인 직무를 수행하고 있던 바나바의 입술을 통해서 예언적으로 선포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안에 성령을 모시고 있다. 그래서 기도할 때면 때를 따라 내 안에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 몸밖에서도 역사하신다. 특히 성령께서 외부에서 역사할 때에는 강한 능력으로 일하시고 은사를 부어주시며, 기적을 행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 속에 들어와 역사하심으로, 믿는 자들이 왜 부름을 받았는지를 깨닫게 하시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일깨우는 역할을 수행하신다. 그때, 바나바와 바울은 단지 안디옥교회를 세워주는 존재로 끝날 것이 아니라, 세계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면 복음을 전파할 복음전파자로서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자 둘은 주저없이 교회의 파소을 받아 이방인복음전파에 주력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지 첫 술에는 배부르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그들이 도착하여 맨 처음 복음을 전파했던 구브로섬의 살라미에서는 한 명의 결실을 얻지 못했다. 단지 회당에 나가서 그곳에 모여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 정도밖에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장장 180km나 떨어져 있는 구브로섬의 서남쪽 도시인 바보에까지 가면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바보의 도시에도 복음을 전파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거기에서 바울일행은 비로서 이방선교의 첫번째 열매를 얻는 데에 성공한다. 그 사람의 이름은 '루기오 바울'이다. 루기오 바울은 로마사람으로서 흩어진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구브로섬에 총독으로 부임받은 이방인이다. 그런데 그도 바나바와 사울의 꾸준한 복음전파로 인해 자신의 귀가 열리기 시작했고, 바울일행을 초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게 된다. 그렇다.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숨겨둔 당신의 백성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사울의 로마식이름과 똑같았던 총독 루기오 바울은 예수에 관한 복음을 듣더니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사사건건 루기오 바울이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던 유대인이자 거짓선지자이며 마술사였던 바예수 즉 엘루마는 그만 바울의 책망을 듣고는 일시적으로 눈이 멀어버린다. 꼭 바울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눈이 멀었으나 회개함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듯이 그도 회개하여 구원을 받기라고 하라는 것 같다. 

  그렇다. 어디에서든지 복음전파는 주님께서 아주 특별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성령께서는 특별히 더 복음전도자들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신다. 그래야 불신자도 구원의 복음을 들었을 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총독 서기오 바울을 전도하는데 계속해서 방해공작을 펼치는 마술사 바예수(엘루마)를 징계한다. 일시적이지만 그로 하여금 소경이 될 것을 명령하자 그대로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마술사 엘루마에게도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는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성경에는 마술사 엘루마가 회개했다거나 개종했다는 기록이 없다. 다만 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바나와 바울이 하던 일을 보고는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 복음전파자에게 주어지는 권세는 이처럼 대단히 강력하다. 때로는 귀신도 꼼짝 못하고 만들어버릴 수 있고, 자연만물을 일시적으로 꼼짝 못하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지금도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 쓰임받고 있는가? 그러면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할 자격이 있다. 그것으로 사탄의 진연을 깨부수며 복음을 전파하라. 그래야 사탄의 방해공작이 심하더라도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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