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19) 사명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사명을 깨우쳐 주신다(삼상9:25~10:16)_ 2021-12-08(수)

https://youtu.be/4yeocdpsdcw  [혹은 https://tv.naver.com/v/24018098 ]

 

1. 모든 믿는 이들은 다 사명자인가?

  그렇다. 모든 믿는 이들은 다 사명자다. 최소한 3가지 측면에서 사명자다. 첫째는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사명자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막16:15). 특히 자기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행16:31). 둘째는 기도에 있어서 사명자다. 기도 없이는 영적인 측면에 있어서 어떤 일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또한 제자로 삼는 일에 있어서 사명자다. 이것은 자기의 가족 구성원을 비롯하여 영적으로 가족이 된 자들에게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에 '일반적 사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각자에게는 개인적으로 다른 사명을 지니고 있다. 어떤 이는 가정을 세우도록 보냄을 받은 사명이 있고, 어떤 이는 주의 종을 도우라는 사명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교회를 세우라고 보내어진 사명자도 있고, 물질로 봉사하라고 그리고 자신의 달란트로 봉사하라고 사명을 받은 자도 있다. 

 

2.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받은 사울은 특별한 사명자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사명자를 세우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워 쓰시는 사명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하늘에서부터 정해져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자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땅에서 하나님에 의해 사명자로 선택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사무엘과 다윗과 같은 경우이고, 후자의 경우는 엘리제사장과 사울왕의 경우다. 그러나 이들의 수고한 것에 대한 결과는 모두가 다 자기의 복이 된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사울은 이 땅에서 세워진 사명자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에서 왕으로 선택되어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플랜B가 작동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끝으로 사사시대를 끝내고 다윗을 세워 왕정시대로 건너가기를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자유 의지를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에게도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는 플랜A가 아니라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플랜B가 작동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초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왕의 기초를 세워줄 자를 찾았다. 그리하여 선택된 자가 바로 기스의 아들 사울이었던 것이다. 그가 특별한 사명자로 선택된 이유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의 가문이 좋았고 그의 성품이 훌륭했으며 탁월한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5대째 신앙 좋은 가문의 사람으로 태어났으며(삼상9:1),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랫사람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았고, 어른을 공경할 줄도 알았고, 하나님의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도 소유했기 때문이다. 

 

3. 자신이 사명자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시는가?

  하늘에서부터 보냄을 받아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기 시작한다. 이런 자들에게서는 벌써 어릴 적부터 남다른 데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윗의 경우를 보자. 그는 15세 때에 사무엘로부터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그 이전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소년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사울왕은 이 땅에서 선택받은 특별한 사명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 땅에 태어나서 자신이 왕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런데 하늘에서 보내어진 사명자는 꿈과 환상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사명자인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사울왕은 이 땅에서 선택된 사명자였기에 이러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스라엘의 왕의 기초를 놓을 초대 왕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사무엘을 시켜서 그가 특별한 사명자인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4. 사명자인 것을 깨닫도록 사무엘이 사울에게 행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자신이 사명자인 것을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는 사울에게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를 만나자마자 "당신은 잃은 암나귀들 때문에 염려하지 마시오, 이미 찾았소. 그런데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인 줄 아시오. 바로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온 집이라오(삼상9:20)"이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를 찾아온 사울을 화목제사의 식사 자리에 초대했는데, 그때 사무엘은 초대된 30명 중에 사울을 맨 상석에 앉혔고 그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음식을 먹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특별한 사람으로 선택받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과 헤어지기 전에 사울만을 따로 불러서 그를 앉힌 다음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면서 말한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어 그분의 기업(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소(삼상10:1)".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것임을 사울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3가지 일들이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 7일 후에 길갈에서 자기와 보자고 했다. 이는 그를 왕으로 세우기 위한 번제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5. 사울이 집으로 가면서 경험하게 된 신비한 일 3가지는 무엇인가? 

  사무엘은 사울더러 그가 왕으로 선택받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을 확실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때 이후로 그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경험하게 될 세 가지 일을 미리 알려 준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일은 실은 사울을 하나님께서 왜 부르셨고, 그를 어떤 상태에서 부르셨는지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사울을 어떻게 쓰실 것인지를 알려 주고 그가 하나님께 쓰임받을 때에는 어떤 것에 주의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첫째 표징은 길을 가다가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하였다(삼상9:2). 그때 그들이 사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했다. "당신이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은 이미 발견되었소. 보시오. 당신의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지만 당신들(사울과 그의 사환) 때문에 걱정하고 있소.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소. '내 아들이 나귀를 찾으로 나간지 삼일이 넘었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이 징조는 그가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서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특별히 선택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사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실은 사울왕이 더 걱정된다는 예언적인 말이었다. 왜냐하면 라헬은 야곱의 부인으로서 베냐민을 낳다가 죽어 가면서 아이를 살려 낸 여인이기에,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귀중하게 보신다는 뜻이다. 

  둘째 표징은 거기서 더 가다가 다볼 상수리나무 아래를 지날 때에, 벧엘에 제사드리러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그때 첫 번째 사람은 염소 새끼 세 마리를 이끌고 있을 것이고, 두 번째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지고 있고, 세 번째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울에게 평안을 빈 다음에 떡 두 덩이를 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전쟁 중에 시행할 세 번의 제사가 중요한데, 두 번째까지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겠지만 세 번째는 잘못된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암시였다. 왜냐하면 사울은 염소 새끼 셋과 포도주는 받지 못한 채, 떡만 두 덩이를 받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셋째 표징은 시간 관계상 내일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위하여 사명자를 세워서 일하시는데, 사명자가 그것을 못 깨달을 수도 있으니, 사명자 본인이 사명자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를 인도해 주신다고 말씀을 배울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명자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사역을 하다가는 장차 있을 사울왕의 경우처럼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그만 낙마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2021년 12월 08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주님을 따라가기 위한 두번째 방법, 왜 주님은 우리더러 십자가를 지라고 하는가?(마16:21~28)
https://youtu.be/0I6REclk5ow


1.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을 따라오도록 2가지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마16:24)


2. 예수께서는 만일 누구든지 당신을 따라오려거든 2가지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의 하나는 자기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져야(원문:들어올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자기자신을 부인해야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3. 자기자신을 부인해야(거절해야, 부정해야) 한다는 말은 자기자신을 부정하는 것인데 특히 자기자신의 생각을 거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베드로가 주님을 말린 것과 상관이 있습니다. 즉 베드로는 예수께서 3년간 공을 들여예루살렘에서 무엇인가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예수께서 죽으실 것이라고 하니까, 꾸짖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리 마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그분은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마20:28).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생각에는 주님이 막상 죽어버린다면 지금까지 주님을 따라온 것이 허사가 되지 않겠느냐면서, 주님은 절대 죽지 마시고,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미 아담의 범죄로 오염되어 있는 인간의 본성을 부인하지 못하는 얄퍅한 생각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을 따라가서 결국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데,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자기자신을 부인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결국 자기자신의 욕심 때문에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자신을 부인하지 못해본 자는 결국 노년에 가서도 자기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떤 자는 재물에 대한 욕심, 어떤 자는 권력에 대한 욕심, 어떤 자는 자기자리에에 대한 욕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 이와는 달리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4.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말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사명, 직분, 의무,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고 자기가 감당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땅에서 주님의 제자가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결코 폼나는 일이 아니며, 즐거운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 일은 사실상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아마도 대부분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주님을 믿고보니, 자신이 그 일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 마음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편 성경에 보면, 십자가는 2가지 용도로 쓰시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자기자신을 죽음에 넘기는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갈2:20, 롬6:6). 과거에 자신의 죄된 본성이 지배하는 옛사람을 못박아 죽음에 넘기는 도구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는다는 것은 더이상 죄짓지 않기 위한 작업이라고 한다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결국 그 일을 감당함으로 하늘에서 상을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든지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아 죽음에 넘기울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더욱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십자가를 짊어질수록 그것이 천국에서는 상급으로 주어지는 어떤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의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6~27).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부담을 자기가 감당하는 것으로서, 결국에 내가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나에게 보상으로 다가올 것들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의 경우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5. 보통 사람의 경우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2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하나는 아예 겁을 먹고 그것을 회피해버리는 경우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해보고는 아예 처음부터 그것을 포기해버리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그것이 나에게 꼭 주어진 과제라고 한다면 그것을 나의 사명으로 알고 감당하겠다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의 사람이 바로 지금 나의 모습이라면 오늘 말씀은 대단히 힘이 되고 용기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감당해야할 십자가의 분량만큼 천국에서 상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16:27). 사실 주님을 위해 거룩한 부담이 없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셔도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몸된 교회를 위하여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그것을 성실히 이행하는 자는 천국에서 받을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억지로 강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지금 나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거룩한 부담이 있나요? 오늘은 바로 그것을 깊이 한 번 더 생각해보시고 그것을 위해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왕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면,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자신의 갈 길을 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18년 11월 02일(금)
정병진목사 


누구에게나 구원의 문은 넓게 열려져 있다. 하지만 그 문을 통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사실 구원은 어떤 한 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종의 과정이다. 경주를 끝마쳐야 승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긴 여정을 잘 통과하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가 있는데 그것이 잘못 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우리 주님의 말씀에 빗나간 구원론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천국가는 신앙은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영혼이 구원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놀라운 말씀이 들어있다.

 

1. 들어가며

우리는 지난 이틀 동안 구원이 한 순간이 아니라 일종의 과정인 것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복음전파를 위해 예수님께서 특별히 세운 사도바울도 구원을 하나의 경주라고 했으며(3:12~14), 히브리서 기자(記者)도 성도들은 쉽게 얽어매는 죄와 끝까지 싸우며 자신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독려했다(12:1).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죄성)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하지만 구원을 순간처럼 여기고, “오직 믿음만세전 예정을 주장했던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지금까지 숱한 폐해를 낳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자들의 잘못된 구원관은 무엇인가? 이들의 주장은 보통 4가지로 요약된다. 그들은 첫째, 구원은 믿기만 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구원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얻을 수 있는 좁은 길이라고 하셨고(7:13~14,21), 또한 구원얻는 자도 아주 적을 것이라고 했다(10:24~25,12:32). 그리고 그들은 둘째, 구원은 만세전에 개인적으로 예정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만세전에 예정된 개인구원은 한 사람도 없으며, 있다면 개인에 대한 사역적인 예정만 있었을 뿐이다(1:15~16,1:5,9:15). 그리고 실제로 예정된 자란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되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었다(3:16,10:22,10:27~28). 그들은 셋째, 칭의(稱義)는 오직 믿음으로 얻으며 그것이 곧 구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칭의는 구원의 노정의 첫 시작에 불과한 것이며(3:23~24,15:6), 칭의 자체도 믿음만이 아니라 회개를 동반하는 것이었다(18:13~14). 또한 그들은 넷째, 한 번 얻은 구원은 절대 잃어버릴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칭의로 얻은 구원이라 할지라도 그 구원은 결코 안전하지 않으며(6:4~8), 중도에 탈락할 수 있어서(4:1), 죽는 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야 하는 것이었다.

 

2. 천국가는 신앙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준 구원관 즉 천국가는 신앙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우리가 구원의 노정에서 탈락하지 않고 천국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 적어도 우리에게는 2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주님의 속죄에 대한 유일한 믿음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죽는 그날까지 회개를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주님께서 직접적으로 가르쳐준 것이다(4:17).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도바울은 믿음 이후 성령의 인도에 대해서는 강조했지만 회개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지를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정말로 성령의 인도함과 더불어 회개의 중요성을 더 강조해야 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성령의 인도함 받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성령과 육체의 싸움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려주었지만(5:16~17), 회개가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언급하지는 못했다. 또한 더불어 안타까운 것은 종교개혁자들도 오직 믿음과 예정을 강조했을 뿐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사람이 구원을 얻기까지는 2가지 방해세력이 있다. 그것을 대비토록 해야 했었다. 그것은 바로 내부적인 요인으로서 우리 안에 들어있는 죄된 본성이며, 외부적인 요인으로서 우리 밖에서 유혹하는 사탄과 귀신들이다. 죄성(罪性)과 사탄마귀들을 이기려면, 성령충만(5:16)과 더불어 꼭 회개(13:5)가 필요한 것이었는데, 사도바울이나 종교개혁자들은 회개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지 못했던 것이다. 큰 일이다. 회개없이는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주 예수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은 뱀의 꾀임을 받기 전부터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고,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첫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4:17,1:15)”였으며,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할 때에도 회개를 외칠 것을 명령하셨다(6:12).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부활승천이후 범죄한 다섯 교회를 향해 오직 회개할 것을 주문하셨다(2:5,16,21~22, 3:3,19).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고 천국가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자신이 과연 구원얻기에 합당한 사람인지 날마다 실천적인 삶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행함의 열매는 구원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심판의 기준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의 열매들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25:35~36).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인지를 늘 확인하면서 계속해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딤전6:12). 그렇다. 예수께서는 죄된 본성과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자가 천국에 입성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21:7~8). 야고보서에 기록된 말씀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2:14,17,26). 자신이 진정 성령의 인도를 받아 죄와 싸우는 자라면 그는 오늘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지금 성령의 인도가 아니라 귀신의 인도를 받는 것일 수 있고, 죄와 싸우지 않고 죄와 적당히 타협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게 살다가 회개치 못하면 그도 지옥행이다.

 

3. 주 예수님과 교회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잠깐, 여기서 구원의 순서를 좀 살펴보자. 사람은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살전5:23).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먼저는 죄사함이 일어나고(2:38) 거듭남이 일어나게 되고(3:5), 그에게 칭의가 선물로 주어진다(3:28). 그런데 이런 것들은 다 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 다음에는 혼()의 영역에서 구원이 일어나게 된다. 내 생각이 주님의 생각으로 바뀌고, 내 마음이 주님을 사랑하게 되며, 내 의지와 결단이 주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리는 육체로부터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영혼이 구원을 얻은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육체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사실이다(요삼1:2, 4:19). 먼저 아브라함과 같은 개인의 경우를 보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근이 들어 애굽에 들어갔어도 나올 때에는 우양과 노비와 나귀와 낙타를 가지고 나오게 하셨다(12:16). 그리고 그가 비록 남의 땅에서 살았지만 그에게 소와 양떼가 넘치게 해 주셨다(13:5~6). 다시 말해 물질적인 복을 그에게 덤으로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민족도 마찬가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과 맞서서 한 일이 있었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애굽의 은금패물와 의복을 달라고 요청하라 하셨다(12:35~36). 그래서 믿음으로 유월절의식을 행하던 그날 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은금패물과 의복을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그것들을 다 내주었다. 여기서 애굽세상을 상징한다.

12:35-36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은금패물과 의복을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취하게 하셨을까? 그것은 속죄제사를 통해 죄사함을 받게 하고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장소인 성막을 건축하게 하기 위함이었다(25:22). 그렇다. 영혼의 구원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시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세상에 물질이 존재하는 목적은 바로 칭의로 구원받아 천국으로 행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차지하여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사용하게 함인 것이다. 여기서 건축할 성막은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2:21) 이어서 이차적으로 교회를 상징한다(고전3:16). 그렇다. 물질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10:29~30) 곧 이 온 세상에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존재한다(18:29~30).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물질을 그리스도와 복음전파를 위해 쓰는 것은 결코 허비가 아니다. 가장 값진 일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자. 한 여인이 자신의 비싼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렸다. 그러자 가룟 유다가 그만 화를 내었다. 왜 향유를 허비하는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여자가 주님께 아주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칭찬하였다(14:6).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자신의 옥합을 주님과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깨뜨리는 것은 결코 허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께서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온 정성을 다해 한 일을 언급함으로 그녀를 잊지 말라고 하셨다(14:9). 그렇다. 참된 구원을 전파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다. 그것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 전리품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이여, 자신의 가진 물질은사달란트그리고 시간을 어디에 써야 허비가 되지 아니고 값진 것이 될 수 있는가? 만약 자신이 주께 드릴 것이 없다면 이것을 취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우리도 이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자. 할렐루야! 아멘.

 

크기변환20170305_주일낮예배.jpg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시기 위해 제자들을 갈릴리로 오라 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 세계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제자들을 준비시키신다. 우선 핍박 앞에서 주님을 부인함으로 인하여 깨어진 주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신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는 사역보다도 관계의 회복을 더 원하신다는 점이다. 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교회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행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에서 사역을 행하는 것은 사실 많이 힘든 일이 된다. 그러므로 사역에 앞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후에 사역을 하기 바란다. 그런 후에는 어떤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주님 얼굴을 뵐 면목이 없던 제자들이 어찌 스스로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겠는가? 특히 제자들의 수장이라 일컬어지던 베드로는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붙들려간 주님을 따라가고자 대제사장의 집 뜰 안에까지 어떻게 들어갔지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과 같이있던 사람이라는 말에 그만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부활 후 천사들더러 제자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전달하라고 하셨다. "내가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에 갈 터이니 거기서 보자꾸나"하고 말이다. 그후 그 소식을 전달받은 베드로는 갈릴리로 떠난다. 그러자 다른 6명의 제자들도 함께 따라나섰다. 기다렸지만 주님이 오시지 않자, 베드로와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로 가서 그물을 던진다. 하지만 그날밤도 밤이 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으나, 멀리 육지에서 들려오는 사람 소리에 배 오르편에 그물을 던졌는데, 3년전과 같이 기가막히게 고기를 많이 잡게 되었다. 그러자 요한은 즉시 그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보았고 "주님이시다"라는 말에 베드로는 바다로 뛰어든다.
  가서보니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베드로가 부인하던 날 불을 쬐던 그 숯불 위에 말이다. 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따로 불러내신다.
  그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던진 첫 마디가 무엇이었을까? "너, 수제자로서 그럴  수 있니? 아무리 힘든 고난이 닥쳐온다해도 절대 나를 부인하지 않겠다는 그 약속은 어디 갔니?"라고 하셨을까? 아니다. 주님은 단 한 마디만 물어보셨다. "네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느냐?" 그렇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래도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이제는 한 가지를 부탁하신다. "주님의 어린 양들을 먹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몸된 성도들을 먹이고 돌볼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베드로의 사명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신다. 젊어서는 스스로 띠띠고 갔지만 늙어서는 남들이 두 팔을 벌릴 것이고 띠를 띠고 끌고 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십자가의 순교를 예견하시고 하신 말씀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사도요한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는 그의 갈 길이 있고 너는 너의 갈 길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모든 사람에게는 각기 다른 사명이 있고, 각기 다른 임종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렇다. 왜 나는 이렇게 힘들게 신앙의 길을 가야 하느냐고 불평하지 말라. 그것이 내게 주어진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이 세상에 머물게 할지라도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 정말 그랬다. 사도요한은 최고로 오래 산 제자가 되었다. 적어도 A.D.95년경까지 그는 살아있었고 그리고 순교하지도 않고 자연사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 사도요한만이 예수님의 십자가 형장까지 따라갔던 유일한 제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님은 다 아신다.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 자리였는지를...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제자에게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했고, 그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를 지켜주셨던 것이다. 그는 이미 골고다 언덕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제자란 어떤 자인가? 끝까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대로 충성하는 것이다. 그 길이 어떤 길이든 순종하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큰 상을 주실 것이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