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2)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예언과 사명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는가?(행21:1~16)_2023-01-03(화)

https://youtu.be/sDO6bFyCA0A  [혹은 https://tv.naver.com/v/32116444 ]

1. 사명자는 언제 사명이 주어지는가?

  바울은 주 예수님으로부터 처음부터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자신의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택정함을 입었기 때문이다(갈1:15).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낸 자들 중에는 특별히 어떤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이다. 바울도 처음에는 자신에게 어떤 사명이 있는지를 잘 몰랐다. 적어도 30대 정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주 예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를 통하여 그에게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그것은 그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자라는 것이었다. 아나니아는 그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파하도록 택한 주님의 그릇이라고 알려 주었다(행9:15). 그랬다. 바울도 처음에는 자신에게 어떤 사명이 있는지를 잘 몰랐으나,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때는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였던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설 때에, 주 예수께서 그에게 홀연히 나타나셔서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이 땅에는 사명자가 있다. 사명자에게는 누구나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길이 있고 그 길을 걸어가게 된다. 그 길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고 해도 때가 되면 그 길을 가도록 하나님께서 불러내시고 그 길을 걷게 하시기 때문이다. 

 

2.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 중 밀레도 이후에 어디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갔는가?

  제3차 전도여행 중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고별설교를 한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된다. 그때 바울은 밀레도에서 고스로 다시 고스에서 로도로, 로도에서 바다라를 거쳐 두로에 상륙하게 된다. '두로'라는 도시는 수리아의 아래쪽에 위치한 세계 최고의 항구도시였다. 그래서 배에 짐을 싣고 내려야 했다. 그러자 바울은 그 시간 동안 약 일주일을 그곳에서 보낸다. 그리고 돌레마이를 지나 가이사랴로 내려간다. 바울은 거기에서 예루살렘교회의 초기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였던 복음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간 후 거기서 다시 얼마 동안 지내고 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3. 두로와 가이사랴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는가?

  그런데 바울은 두로와 가이사랴에서 예언을 듣는다. 그것은 바울 자신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두로에서는 어떤 제자들이 바울에게 영을 통하여 말하기를, 예루살렘 안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였다. 아마도 바울의 신변에 어떤 위험한 일어날 것임을 환상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서 약 80Km 떨어진 가이사랴로 내려간다. 그런데 거기에서 바울은 예언이 아니라 어떤 선지자를 만난다. 그는 유대로부터 내려온 선지자로서, 과거 30년 전에 바울이 안디옥교회에 있을 때에 와서 천하가 흉년이 들 것을 예언했던 바로 그 선지자였다(행11:28). 그의 이름은 '아가보'였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정말 천하에 큰 흉년이 들었다. 그때는 A.D.46년경이었다. 그런데 다시 30년이 지나 그 아가보 선지자가 가이샤라에 있는 빌립 집사의 집에 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신의 손들과 발들을 묶었다. 그러고는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라는 말과 더불어 예언을 하였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는 예언이었다(행21:11). 그는 말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보았던 것을 실제로 재현함으로, 예언을 하였다. 그것은 그만큼 바울의 결박과 체포 그리고 환난이 앞으로 확실히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4. 두로와 가이사랴의 예언은 서로 어떻게 다르며, 어떤 것이 잘못된 예언인가?

  바울은 두로에서도 믿음의 형제들을 만났다. 특히 환상을 보고 말할 줄 아는 은사를 받은 형제들을 거기에서 만났다. 그때 그들 형제들은 바울더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바울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은 과연 옳은 예언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옳은 예언이었는지를 우리는 바울이 가이샤라에 도착했을 때 아가보 선지자가 했던 예언을 통해 비교해 보자. 아가보는 바울에게 어떻게 예언했는가? 그는 이렇게 예언했다. 그것을 헬라어 원문으로 그대로 직역해 보겠다. "성령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안에서 유대인들이 이와 같이 이 띠가 있는 바 그 남자를 결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방인들의 손들 안으로 넘겨줄 것입니다(행21:11)" 그렇다. 아가보 선지자는 정확하게 예언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이란 성령께서 보여 주시고 들려주신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지, 거기에다가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로의 형제들은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어 바울에게 말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미숙한 예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바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예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잘못된 예언을 한 것이라고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예언을 은사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미숙하다는 것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예언이란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보여 주시고 들려주신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아가보 선지자는 자신이 보고 들었던 것에 어떤 것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달했던 바른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다. 

 

5. 바울은 형제들의 예언을 받은 후 자신의 사명과 그것을 어떻게 연결했는가?

  그때 바울은 형제들의 예언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는가?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을 포기하고 말았는가? 아니었다. 바울은 결코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형제들이 그에게 한 예언은 성령께서 주신 예언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다. 맞다. 그들이 받았던 것도 역시 성령께서 주신 것이다. 하지만 예언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다만 그러한 일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 줄 뿐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의 길을 그대로 걸어갔던 것이다. 예언이란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어느 부분에 있을 일을 미리 말해 주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말했던 고별설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행20:22~24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렇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가 걸어갈 길이 사명으로 미리 주어진 채 있는 것이다. 고로 그 길을 걸어가는데 어떤 환난이나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그 길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란이 사명을 가로막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예언을 통하여 우리의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있으므로 그날을 마음으로 잘 준비할 수가 있을 것이다. 

 

2023년 01월 03일(화)

정병진목사

2021-12-31(금) 송구영신예배 제목: 마음과 뜻을 바쳐 더 구하는 해(눅1:8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vdMMiXiPKDA [혹은 https://tv.naver.com/v/24416570 ]

 

1. 들어가며

  오늘은 한 해를 마감하고 새 해를 준비하는 날, 주님과 함께 한 해를 마감하고 주님과 함께 새 해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각 교회들은 올 한 해 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교회는 저마다 사명이 있다. 이 땅에 세워진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교회는 다 복음전파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교회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다. 한 번 주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해 주님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사에도 일반 은사가 있고 특별 은사가 있듯이, 교회도 일반적인 사명이 있고 특별한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탄명성교회는 어떤 사명이 주어져 있을까? 그래서 오늘은 송구영신예배를 맞이하여 동탄명성교회 교회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이며,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준비가 필요하며, 그 준비의 핵심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동탄명성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그렇다. 교회는 저마다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 교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 또한 있다. 그것을 가리켜 '특별 사명'이라고 한다. 이것은 개별 그리스도인에게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다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지만, 동시에 어떤 사람은 특별 사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 사명은 받은 자는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렇다면 동탄명성교회는 어떤 사명이 주어져 있는가? 동탄명성교회는 2007년에 세워졌고 올 해로 15년차가 되었다. 일반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껏 달려왔다. 그러다가 2013년 10월경,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회개와 천국복음'이다. 그래서 만 7년을 회개와 천국복음을전파하면서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특별 명령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젠 그 사명에 올인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동탄명성교회에서 부여한 사명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복음' 전파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회개'가 필요하다(마4:17). 그래서 회개와 천국복음이라는 사명 타이틀이 완성된 것이다. 

 

3. 특별 사명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가?

  그렇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이나 모든 교회는 특별 사명을 가지고 있는가? 성경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이나 모든 교회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사명은 담임목회자의 사명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특별히 부여한 사명을 받은 목회자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구약시대에도 특별 사명을 받은 자들이 있었다. 에녹이나 노아가 그랬으며, 아브라함과 모세가 그랬다. 그리고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랬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사도 바울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특별 사명자들은 이미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다. 다시 말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특별 사명을 부여받은 자들도 있지만 사명자들의 상당수는 하늘에서부터 그의 영혼이 이 땅에 보내어질 때부터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어느 집안의 어떤 아이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들은 자신이 모태로부터 혹은 모태 이전부터 하나님의 택정하심을 입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우를 보자. 

렘1:5-7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그렇다. 이 세상을 살다간 사람들 중에는 사명자가 있었던 것다. 그렇다면 사명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가 그냥 사명자가 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사명자는 그 사명을 감당할 만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4.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에게 혹은 교회에게 부여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사명자는 준비되어야 한다. 사명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준비가 될 때 사명자는 그 사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명자로 태어났거나 혹은 이 땅에서 사명자로 부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쓰임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준비되지 못한 자는 결국 중도에 미끄러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등장하는 사명자들이 이 땅에 태어나서 어느날 자신이 사명자인 것을 깨닫고 그것을 준비하기까지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40년을 준비한 사람들도 있음을 본다. 예를 들어, 노아는 정확한 기간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부름받은 이후 수 십 년동안 방주를 준비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75세 때에 부름을 받아 하나님께서 인정을 받기까지 25년동안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았으며, 야곱은 20년간, 요셉은 13년 그리고  다윗은 15년, 모세는 40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신약의 사람으로서 세례요한은 적어도 25년간을 광야에서 지내며 메시야가 오실 길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도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가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쓰임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을 수양을 쌓아야 했던 것이다. 

 

5. 세례요한은 예수의 초림을 준비하는 사명자였다. 그는 무엇이 준비되어야 했는가?

  사명자들 중에 세례요한은 메시야가 이 땅에서 활동하도록 그 길을 닦는 자로 보내심을 받은 자였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제사장으로 쓰임을 받아야 했으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릴 적에 광야에 보내져서 거기에서 기도의 훈련을 쌓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나이 30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요단강으로 데리고 가서 세례를 주었다. 하늘의 왕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죄씻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선구자로서의 사명은 언제 주어진 것인가? 그것은 하늘에서부터다. 이미 메시야가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가 출현할 것이라고 B.C.700년경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을 하였으며(사40:3~5), 말라기 선지자가 B.C.430년경 예언을 한 채 있었기 때문이다(말3:1, 4:5~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집안에 그러한 영을 보낼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때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던 사가랴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가정에 그 영을 보내주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어떤 영을 파송하신다. 그때에 어느 가정에 보내실 것인지를 정하시어 보내신다. 그런데 사무엘을 낳았던 한나와 엘가나 부부와 요한을 낳았던 사가갸와 엘리샤벳 부부처럼 하나님은 기도하는 가정, 경건한 가정을 보내신다. 아무래도 기도가 준비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이 사명자가 자신의 사명을 더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모두가 다 타락해 있을 때에는 좋지 못한 가문에도 보내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수 있었고, 어릴 적에 구별된 지역에 보내서 경건훈련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눅1:13-16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6. 사명자로 태어난 세례요한은 어떤 준비를 하였는가?

  그렇다면 사명자로서 이 땅에 태어났던 세례요한은 그가 쓰임받는 날까지 어떤 준비를 하였던 것일까? 누가복음 1:80에 의하면, 그는 3가지 준비를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첫째 그는 자랐다고 했다. 여기서 '자랐다'는 단어는 '아욱사노'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식물이 크듯 성장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다. 그렇다. 하나님께로부터 쓰임받으려면, 누구든지 장성한 신체적인 나이까지 자라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구약시대의 경우를 보라. 어떤 남자가 군인으로 쓰임받으려면 적어도 20세까지 자라야 했다. 그리고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도 그가 제사장으로 쓰임받으려면 30살까지 자라야 했다. 이는 사명자라도 신체적으로도 성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어떤 사람이 신체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탄명성교회는 2007년에 개척되었다. 나이로 볼 때 14년이 흘러간 것이다.

  둘째, 그는 영이 강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헬라어('크라타이오')로 보면, 이는 영이 능력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 정말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받으려면 그는 반드시 영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 신체적인 성장과 더불어 영에 있어서도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나이가 많아졌지만 영적으로는 나이를 먹지 않아 어린 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도 한다. 만약 그런 자가 지도자가 된다면 그가 속한 공동체는 매우 힘들다.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명자는 영이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이 성장하게 굳세지고 강건해지고 능력있게 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 그것에는 최소한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 땜누에 영이 힘을 쓸 수가 없다. 회개해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영권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울왕의 경우를 보라. 그는 자신의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거역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영이 자랄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는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었지만 시기질투심과 혈기분노의 감정을 이기지 못함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셋째, 그는 때가 찰 때까지 광야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광야에서 숨어지내다시피 한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하나님께서 그를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날까지 광야(빈들)에 거주하면서 거기에서 훈련을 하였던 것이다. 사실 광야라는 개념은 구약시대로 치자면,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 땅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거주하는 장소였다. 척박한 땅이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자라야 했다. 과거에도 이야기했지만 '광야'라는 곳은 사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매우 살기 힘든 장소를 가리킨다(출16:3).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면 부족함이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신8:4). 무엇보다도 광야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곧 천국에 들어갈 자와 못 들어갈 자를 선별하는 장소다(민14:22~23).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광야에 나왔으나 광야를 통과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전철를 밟지 말아야 한다(고전10:7,8,9,10). 즉 우상숭배하지 말고, 음행하지 말고, 시험하지 말고, 원망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를 통과했던 것이다. 그러자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7.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명을 받은 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실히 잘 감당했을 때에는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되어질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왕노릇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광야의 시험을 잘 통과하였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했다. 그것은 메시야를 이 땅에 소개해주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의 왕을 맞을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세례를 줌과 동시에 그가 바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언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면서 예수님에게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던 것이다. 비록 그가 죽기 전에 약간의 시험에 들기는 했으나 그는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했기에 천국에서도 24장로들 중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지금도 천국에 있는 24개의 마을들 가운데 하나인 '세례요한'의 마을의 대표자가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신약의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오직 4명만이 24장로 안에 포함되었는데 그중에 세례요한이 들어있다는 것을 실로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정말 잘 준비하였고 감당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8. 나오며

  2021년이 다 지나가고 2022년의 새 해가 밝아오는 시간이다. 한 해동안 나와 내가 속한 교회가 어떤 경주를 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시간이 되었다. 동탄명성교회가 창립된 이후 가장 열심히 달려왔고 가장 놀라운 열매들이 나타났던 한 해가 2021년이 아니었나 싶다. 비록 환경은 코로나19의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회개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체험하였으며, 천국복음이 전파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탄명성교회가 이렇게 회개와 천국복음 전파를 한 해동안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사명을 붙잡았고 사명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2년도에도 역시 사명에 충실한 교회가 되도록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 특히 2023년에 시작하는 회개와 천국복음 연수소 건립을 위하여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 회개와 천국복음 연구소는 초교파적인 선교단체로서, 회개와 천국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기관으로서, 3가지 사역을 감당할 것이다. 문서사역, 방송사역, 훈련사역이다. 책을 출판하여 보급하고(출판사도 만들 것이다), 방송을 통해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할 것이다(작은 방송국 시설도 갖출 것이다). 그리고 주의 종과 평신도들을 위한 일주일간의 훈련 프로그램을 열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물이 필요하고, 기도와 물질과 인적자원이 필요하다. 바울선교팀처럼 팀으로 사역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사명에 충성하고 사명에 목숨을 걸 때 하나님께서 그 일에 함깨 하시고 복을 줄 것이다. 벌써 기대가 된다. 

 

 

2021년 12월 31일(금)

정병진목사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아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그 나라에 누군가는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대체 그 길은 무엇이란 말인가? 왜 우리는 그러한 길이 있다는 것에 그동안 주목하지 못했는가? 그런데 지금 이 길은 누가 걷고 있는 중이며, 여기에 나는 어떻게 동참할 수가 있는가? 그것은 바로 부르심과 택하심에 그 비밀이 들어있다. 오,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를 향한 부르심, 그것은 무엇인가? 2021-12-26(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우리가 주 예수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려면?(벧후1:10~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nsMbgnracGg [혹은 https://tv.naver.com/v/24313002 ]

 

1. 들어가며

  오늘은 송년주일이다. 일년을 마감하는 주일이다. 일 년 열두 달 사실 중요하지 아니한 주일은 하나도 없지만 송년주일은 더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송년주일의 때가 되면 지난 일 년을 돌아보고 또 한 해를 준비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일에 반성과 결산이 없다면 발전은 어렵고 더딜 것이다. 세상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재정을 결산하고 인적 자원을 결산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 일도 이러하는데 하물며 영적인 일은 더더욱 그렇제 않겠는가? 그러므로 올 해 우리의 신앙도 잘 결산해 보아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미 마25장의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당신의 종들을 불러모아 반드시 결산하는 모습을 일러주셨다(마25:19). 그렇다면 과연 그날 우리의 신앙은 어떤 기준과 잣대로 평가받게 될 것인가? 무엇이 과연 우리의 신앙을 결산하는 기준이 되는가?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 가운데 그 심판의 기준의 하나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들려준 신앙결산의 기준에 따라 올 한 해를 잘 결산하고 다음 한 해를 준비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사도 베드로가 신앙의 결산의 기준과 잣대로서 제시한 것은 무엇인가?

  오늘 말씀에 보니,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신앙을 결산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이 기준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 기준대로 살기만 한다면 우리도 엄청난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대로 살기만 하면 우리들도 주 예수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 하면 우리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우리 주의 나라 곧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오늘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벧후1:10-11[직역]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더욱[더] [단호하게] 힘써(열심을 내라). 너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확실하게) [계속해서] [자기자신을 위하여] [행]하라(실행하고 있기 위하여) [왜냐하면] 너희가 이것을 [실]행한즉(실행하고 있다면) 언제든지(어느때든지) [너희가]실족하지(비틀거리지, 걸려 넘어지지) 아니하리라(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1 [왜냐하면]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안으로) 들어감(입장함)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공급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 따르면, 성도가 자신을 향한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해 열심을 품고 확실히 실행한다면 그는 이 땅에서 걸려 넘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그에게 넉넉히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님 앞에 서서 심판받을 때에 우리가 넉넉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제시되고 있으니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충성하라는 것이다. 

 

3. 부르심과 사명 그리고 택하심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의 경우 자신을 향한 그리고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성도들기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을 아는 일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오늘 사도 베드로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사항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이제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면, 그는 반드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소명)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여기서 '부르심(소명)'이란 의미는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을 택하여 그에게 어떤 특별한 직무를 맡기려고 그를 불러내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그에게 맡겨진 임무(직무)를 가리켜 우리는 보통 그가 달려갈 길 곧 '사명(소명)'이라고 부른다(행20:24, 딤후4:7). 이처럼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특별한 직무을 맡겨 세운 자들이 있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역을 맡기려고 특정한 사람을 택하시며 어느날 그를 부르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부름받은 자는 반드시 자기가 무엇 때문에 부름을 받았고 또한 보냄을 받았는지를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로 자신이 어떤 부름으로 부름을 받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아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져 있는 일반 사명이란 무엇이며, 어떤 특정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특별 사명이란 무엇인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실 공통된 부르심을 가진 자들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막16:15). 우리가 복음을 들어서 구원받은 자가 되었다면 우리도 또한 다른 사람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달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곧  자기가족에서부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친구와 이웃들에게 그리고 자기의 민족과 국민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다른 민족과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특별한 사명을  주시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약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던 자였다. 왜냐하면 그도 일반 사명을 가진 자이지만, 그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의 나이가 34살 정도되었을 때였다. 그는 그 이전까지만 해도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오직 여호와만 하나님이 유일한 절대자라고 믿고, 사람이었던 예수님은 절대 하나님이 될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분이 대낮에 그에게 나타난 것이다. 죽어서 이미 없어진 줄 알았던 그분이 살아서 자기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그에게 지시를 하였다. 이제 더이상 예수님을 믿는 형제들을 핍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을 지시할 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다메섹 도성으로 들어갔고 거기에서 아나니아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자신을 향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예수의 이름을 전하도록 주님이 택한 그릇이라는 것이다(행9:15). 그렇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는 할례를 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름을 받은 자가 있있었으니 그는 '베드로'였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부름을 받은 자로서 '바울'이 선택되었던 것이다. 

  한편 사명은 보통 어떤 개인이 받는 것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어떤 공동체나 민족이 받는 경우도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구약시대에 이사야나 예레미야는 개인 사명자였다. 그러나 모세나 다윗같은 자는 개인적인 사명자이기도 하지만 그 사명은 그가 속해 있는 민족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신약시대로 치자면, 빌립집사의 경우는 혼자 개인적으로 사명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면, 바울은 개인이 받은 사명을 뛰어넘는 것으로서, 교회과 선교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파송한 안디옥교회와 그를 돕도록 하나님께서 붙혀준 바울선교단의 일행은 바울로 인하여 함께 부름을 받은 사명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민족 중에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민족의 사명도 있는데, 그것은 메시야를 이 땅에 산출하라는 사명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그토록 못된 짓을 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했어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그루터기를 남겨두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아마 마지막 시대에 대한민국도 아마 그러한 사명이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5. 하나님의 부르심은 보통 어떻게 나타나게 되고 이루어지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보통 어떻게 사람을 불러 그를 들어쓰시는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셨지만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는 특별히 지정해서 주신 사명도 있다. 이러한 사명을 가진 자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어느날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게 된다. 그러한 사람 중에는 하늘에서부터 그가 영혼으로 있을 때에 이미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택함을 받아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들도 있으며, 이 땅에 태어난 이후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여 그를 불러 쓰시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성경 사무엘서를 읽어본다면, 전자의 해당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바로 '다윗'이라는 사람이며,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는 '사울왕'이라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역을 위해 어떤 특정한 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특정한 직임을 맡기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명자를 어떻게 불러내시는가? 성경을 보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러내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 볼 수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시는 경우가 있다. 구약시대에는 노아나 아브라함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경우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나타나서 직임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경우는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경우다. 베드로는 육신을 갖고 계셨던 예수께서 직접 불러 세우신 예이고, 바울은 부활승천하시어 하늘에 계신 예수께서 직접 오셔서 불러서 그에게 직임을 맡긴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부르심은 극히 드문 사례의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대에 하나나 둘이 있을까 말까 하는 경우다. 둘째, 천사를 시켜 불러내르시고 그에게 직임을 맡기는 경우가 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의 경우이고, 신약시대에는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나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모세에게는 여호와의 천사(가브리엘로 추정됨)가 나타나서 그를 불러내어 사명을 주셨고, 사가랴나 마리아의 경우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사명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셋째, 꿈과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간접적으로 그에게 직임을 맡기기도 하신다. 넷째, 영적으로 깨끗하고 경건한 사역자들 곧 방언통역 사역자나 예언 사역자를 통해서 일을 맡기기도 하신다. 오늘날 목회자가 되신 분들은 어느날 부흥성회 때에 기도를 받았는데 예언이 나와서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주의 종이 되었다는 분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특별 사명자는 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주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일찌감치 그러한 소명을 받아서 알게 된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아는 경우도 종종 있다. 

 

6. 특별 사명자가 아닌 일반 평신도의 경우는 어떻게 사명을 받고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 세운 사명자가 아닌 일반 성도들의 경우는 어떠한 사명이 있는 것인가? 사실 사명자가 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라고 소원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결코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요동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사람을 어떤 그릇으로 쓸 것인지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다. 이는 마치 토기장이가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자신의 뜻을 따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딤후2:20~21).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반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롬9:20~21). 성경을 다시 한 번 보라. 과연 하나님께서 쓰셨던 인물들 중에서 자신이 그러한 사역자가가 되겠다고 선언해서 된 자가 있는지를 말이다. 성경의 기록은 전부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을 불러내어 그를 들어쓴 것들 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경우를 보라. 자기가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제자가 된 경우가 있는가? 없다. 예수님께서 그를 지명하여 불러서 쓰신 것들 뿐이다. 사도 바울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특별한 부르심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값진 삶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불러 세운 사명자를 협력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로 치자면, 이는 마치 아론이나 훌이 모세를 도와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것과 같다. 신약의 경우라면 바울을 도와서 바나바, 실라, 디모데, 브리스가와 아굴라, 아볼로 등이 쓰임받은 것과 같은 이치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 것이요, 의인으로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 것과 같다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0:41~42).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를 돕게 된다면 그 사역자가 받을 상을 그도 함께 받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계의 법칙 중에 하나다. 그러므로 적어도 하나님께서 불러 세운 사역자를 돕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엄청난 상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중들에 상당수가 '충성'의 면류관이나 '섬김'의 면류관 더 나아가서는 '겸손'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7. 하나님의 택정함을 받아 사명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 중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있다. 그러한 일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그러한 자를 알아볼 수가 있는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불러내어 사용하는 사역자들을 알아볼 수 있는 어떤 특징은 없는 것인가? 아니다.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명자들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특징으로는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자는 자신이 어떤 사역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러한 사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여러가지 경로로 그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그러한 사명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하여 열정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명자는 어떠한 어려운 난관에도 굴하지 않으며, 받은 사명을 끝까지 완수해 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개인의 야망과는 다른 것이다. 야망이란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주인 되어서 추진하는 열정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야망과 소명은 다른 것이다. 셋째, 이러한 사명자는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아무도 그를 죽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초자연적으로 그를 지키시키고 보호해주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늘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붙혀주시고 재정까지도 붙혀주시게 된다. 요한계시록의 두 증인의 경우를 보라. 그들은 이 땅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하라고 주님이 불러서 세운 자들이다. 여기서 '둘'은 증인의 숫자로서 두 명인 것이지 딱 두 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마치기까지 어떤 사람도 그를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계11:5). 고로 만약 그 사명자가 죽임을 당한다면 그것은 그의 사명이 거기에서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8. 자기와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2가지 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자기와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주어지는 사명을 완수하는 자에게는 어떤 복이 주어지게 되는가?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다음과 같은 2가지 복을 주어질 것이라고 했다. 첫째는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는 개인이나 공동체는 결코 실족하지 않으며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벧후1:10). 그러한 사명자는 내적이든 외부적인 다른 어떤 이유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거나 다른 길로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사명을 반드시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주 예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그러한 사명자와 공동체에게 넉넉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벧후1:11). 오 그렇다. 믿음을 지키고 회개를 해도 천국에 들어가기가 쉬운 일은 아닌데, 이러한 종류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가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우리 인간의 들이 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고로 이제부터라도 개인이나 공동체에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사명에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러한 자들에게는 새 예루살렘 성에 입장하는 것이 넉넉하게 준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9. 나오며

  베드로와 바울에 의하여 이 땅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는 계속해서 또 다른 교회를 낳고 또 낳았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어떤 특정한 개인과 교회 공동체를 불러내시고 그들을 들어 사용하신다. 누구를 들어쓰시는가 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정하시는 일이다. 그것은 그분이 바로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도 특정한 사람이나 공동체를 불러서 그에게 과업을 맡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중에 작지만 동탄명성교회와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도 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기관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지적인 믿음만으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깨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오늘 이 두 기관을 들어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기관이나 혹은 개인사역자는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중에 어느 한 구석을 이 두 기관이 지금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보면, 정확한 것은 앞으로도 이 두 기관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사용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 뿐이다. 구약시대 사울왕은 자신에게 맡겨주신 직무에 성실하지 않았다. 그것을 오히려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버림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직임을 맡은 사명자나 단체라 할지라도 혹 잘못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인간이니까. 그렇지만 누군가를 어떤 그릇으로 쓰실 것인지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다만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뿐이다. 고로 사명도 일종의 '은혜'인 것이다(갈1:15). 그분의 은혜, 자격없는 자라도 들어쓰시는 그분의 은혜, 가난한 자를 들어쓰시어 부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그분의 은혜. 만약 이러한 은혜를 받은 개인이나 공동체가 끝까지 충성한다면 그들이 하는 사역은 주님이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이 사역에 동참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나라에 입장하되 넉넉하게 입장하도록 이끌어주실 것이다. 

 

2021년 12월 26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19) 사명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사명을 깨우쳐 주신다(삼상9:25~10:16)_ 2021-12-08(수)

https://youtu.be/4yeocdpsdcw  [혹은 https://tv.naver.com/v/24018098 ]

 

1. 모든 믿는 이들은 다 사명자인가?

  그렇다. 모든 믿는 이들은 다 사명자다. 최소한 3가지 측면에서 사명자다. 첫째는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사명자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막16:15). 특히 자기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행16:31). 둘째는 기도에 있어서 사명자다. 기도 없이는 영적인 측면에 있어서 어떤 일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또한 제자로 삼는 일에 있어서 사명자다. 이것은 자기의 가족 구성원을 비롯하여 영적으로 가족이 된 자들에게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에 '일반적 사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각자에게는 개인적으로 다른 사명을 지니고 있다. 어떤 이는 가정을 세우도록 보냄을 받은 사명이 있고, 어떤 이는 주의 종을 도우라는 사명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교회를 세우라고 보내어진 사명자도 있고, 물질로 봉사하라고 그리고 자신의 달란트로 봉사하라고 사명을 받은 자도 있다. 

 

2.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받은 사울은 특별한 사명자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사명자를 세우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워 쓰시는 사명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하늘에서부터 정해져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자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땅에서 하나님에 의해 사명자로 선택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사무엘과 다윗과 같은 경우이고, 후자의 경우는 엘리제사장과 사울왕의 경우다. 그러나 이들의 수고한 것에 대한 결과는 모두가 다 자기의 복이 된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사울은 이 땅에서 세워진 사명자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에서 왕으로 선택되어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플랜B가 작동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끝으로 사사시대를 끝내고 다윗을 세워 왕정시대로 건너가기를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자유 의지를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에게도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는 플랜A가 아니라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플랜B가 작동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초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왕의 기초를 세워줄 자를 찾았다. 그리하여 선택된 자가 바로 기스의 아들 사울이었던 것이다. 그가 특별한 사명자로 선택된 이유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의 가문이 좋았고 그의 성품이 훌륭했으며 탁월한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5대째 신앙 좋은 가문의 사람으로 태어났으며(삼상9:1),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랫사람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았고, 어른을 공경할 줄도 알았고, 하나님의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도 소유했기 때문이다. 

 

3. 자신이 사명자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시는가?

  하늘에서부터 보냄을 받아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기 시작한다. 이런 자들에게서는 벌써 어릴 적부터 남다른 데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윗의 경우를 보자. 그는 15세 때에 사무엘로부터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그 이전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소년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사울왕은 이 땅에서 선택받은 특별한 사명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 땅에 태어나서 자신이 왕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런데 하늘에서 보내어진 사명자는 꿈과 환상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사명자인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사울왕은 이 땅에서 선택된 사명자였기에 이러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스라엘의 왕의 기초를 놓을 초대 왕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사무엘을 시켜서 그가 특별한 사명자인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4. 사명자인 것을 깨닫도록 사무엘이 사울에게 행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자신이 사명자인 것을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는 사울에게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를 만나자마자 "당신은 잃은 암나귀들 때문에 염려하지 마시오, 이미 찾았소. 그런데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인 줄 아시오. 바로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온 집이라오(삼상9:20)"이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를 찾아온 사울을 화목제사의 식사 자리에 초대했는데, 그때 사무엘은 초대된 30명 중에 사울을 맨 상석에 앉혔고 그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음식을 먹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특별한 사람으로 선택받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과 헤어지기 전에 사울만을 따로 불러서 그를 앉힌 다음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면서 말한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어 그분의 기업(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소(삼상10:1)".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것임을 사울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3가지 일들이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 7일 후에 길갈에서 자기와 보자고 했다. 이는 그를 왕으로 세우기 위한 번제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5. 사울이 집으로 가면서 경험하게 된 신비한 일 3가지는 무엇인가? 

  사무엘은 사울더러 그가 왕으로 선택받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을 확실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때 이후로 그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경험하게 될 세 가지 일을 미리 알려 준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일은 실은 사울을 하나님께서 왜 부르셨고, 그를 어떤 상태에서 부르셨는지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사울을 어떻게 쓰실 것인지를 알려 주고 그가 하나님께 쓰임받을 때에는 어떤 것에 주의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첫째 표징은 길을 가다가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하였다(삼상9:2). 그때 그들이 사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했다. "당신이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은 이미 발견되었소. 보시오. 당신의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지만 당신들(사울과 그의 사환) 때문에 걱정하고 있소.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소. '내 아들이 나귀를 찾으로 나간지 삼일이 넘었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이 징조는 그가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서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특별히 선택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사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실은 사울왕이 더 걱정된다는 예언적인 말이었다. 왜냐하면 라헬은 야곱의 부인으로서 베냐민을 낳다가 죽어 가면서 아이를 살려 낸 여인이기에,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귀중하게 보신다는 뜻이다. 

  둘째 표징은 거기서 더 가다가 다볼 상수리나무 아래를 지날 때에, 벧엘에 제사드리러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그때 첫 번째 사람은 염소 새끼 세 마리를 이끌고 있을 것이고, 두 번째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지고 있고, 세 번째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울에게 평안을 빈 다음에 떡 두 덩이를 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전쟁 중에 시행할 세 번의 제사가 중요한데, 두 번째까지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겠지만 세 번째는 잘못된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암시였다. 왜냐하면 사울은 염소 새끼 셋과 포도주는 받지 못한 채, 떡만 두 덩이를 받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셋째 표징은 시간 관계상 내일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위하여 사명자를 세워서 일하시는데, 사명자가 그것을 못 깨달을 수도 있으니, 사명자 본인이 사명자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를 인도해 주신다고 말씀을 배울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명자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사역을 하다가는 장차 있을 사울왕의 경우처럼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그만 낙마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2021년 12월 08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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