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지금 이 시대에는] 전염병인 우한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만 잘 대비하면 되는가?(계6:7~8)_2020-01-30(목)

https://youtu.be/zHUseFfjSCs

 

1. 우한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은 어떤 전염병인가요?

   최근 의학전문 학술지인 란셋(http://news.mtn.co.kr/newscenter/news_viewer.mtn?gidx=2020012814213620228)에 의하면. 이번 우한폐렴은 감염의 속도가 매우 빠르며, 초기 감염자 41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사망률이 15%나 되었고, 그중 73%가 남자였다고 합니다. 감염자의 32%가 당뇨,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자였으며, 나타난 특징으로는 발열과 마른 기침인데, 이외에도 폐렴과 숨가쁨, 피로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콧물이나 폐결핵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몸에서 면역반응으로서 "사이토카인"이 분비되는데, 이것이 과도히 분비되면서 오히려 자신의 폐와 심장을 손상시켜 사망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홍콩대 가브리엘 렁교수는 2020년 1월 28일 현재, 중국의 잠복기 포함 감염자수는 4만4천명에 이를 것이고, 감염자수는 6일만에 2배로 늘어날 것이며, 절정기는 오는 4월말에서 5월초라고 밝혔고, 7월에 되어야 위세가 약화될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니 지켜봐야겠죠.

 

2. 성경은 말세에 전염병의 창궐만을 언급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6:1~8에 보면, 말세의 징조로 "전염병" 말고도 "전쟁"과 "기근"에 의한 사망도 있을 것이며 그리고 "땅의 짐승들"(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의한 사망(순교)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장차 미래에 일어날 일을 계6장에서 일곱 봉인이 떼어지는 과정을 통해 소개하고 있는데, 그가 보았던 것은 어린양께서 하나님의 오른손으로부터 취한 두루마리의 봉인을 뗄 때에, 처음부터 네번째 봉인까지는 어떤 말과 그것 위에 탄자가 튀어나왔는데, 그 말들의 색깔이 흰 말과 붉은 말, 검은 말과 청황색 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뒤의 세 마리의 말(자마, 흑마, 청황색마)이 의미하는 바는 계6:8에 나와 있으니, 그것은 칼(전쟁)과 흉년(기근)과 사망(전염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땅의 짐승들(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들)에 에 의한 사망도 있을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중에서 "칼"은 붉은 말에 대한 해석이고, "흉년"은 검은 말에 대한 해석이며, "청황색말"은 전염병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짐승들에 의한 사망이 더 있기는 한데(겔14:21),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의한 성도들의 순교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칼과 흉년과 전염병은 동일한 전치사(엔)와 접속사(카이)로 연결되어 있지만, 땅의 짐승들은 다른 전치사(휘포)가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첫째 봉인이 떼어졌을 때에 튀어나온 흰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땅의 짐승들"이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에 의한 복음전파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흰 말을 탄 자에게 면류관(승리관)이 주어졌다는 것과 그가 이기면서 나갔으며 또한 이기기 위하여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전체에서 "승리관(스테파노스)"는 오직 예수님과 성도도들만이 쓸 수 있는 면류관이기 때문이요,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에 되어질 일들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보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마24:14).

 

3. 말세 중의 말세를 향하여 가고 있는 성도들은 무엇에 대비해야 할까요?

  말세 중의 말세에 살고 있는 성도들은 전염병만을 대비할 것이 아닙니다. "기근(흉년)"도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도 현 정부가 4대강 보를 철거하려고 한다는데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얼마 안 있어서 물부족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쟁"도 대비해야 합니다. 특히 성도들은 "짐승들"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의한 핍박과 환난과 죽음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용)이 두 증인을 죽일 것이며(계11:7),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째짐승도 칼로 그리스도인을 죽일 것이고(계13:10), 땅에서 올라오는 둘째짐승(거짓선지자)도 짐승의 우상을 숭배하기를 거절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가차없이 죽일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계13:15). 다시 말해, 악의 삼위일체(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인 짐승들에 의해 그리스도인들 중에 순교자가 발생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악의 삼위일체 세력들에 의한 환난에 대비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다가 죽으면 죽을 것이라는 각오를 다져야 하는 것입니다.

 

4. 마지막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전부 순교해야 하는 것인가요?

  그것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보면, 몇 사람만 죽을 것입니다(계2:10). 다시 말해 순교할 자로 예정되어 있는 자만 죽을 것이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성도가  순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인내함으로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는 주께서 시험의 때 곧 온 세상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시험의 때로부터 지켜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계3:10).

 

5. 앞으로 우리는 어떤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되나요?

  앞으로 우리의 세대들에는 말세에 나타나게 될 여러가지 징조들을 더 많이 더 빨리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 네 개의 봉인들이 떼어질 때에는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에 의하여 사람 1/4만이 죽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계6:8), 중간에 있는 재앙인 다섯번째와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나팔재앙 때에는 사람 1/3이 죽게 될 것이며(계9:18), 마지막에 있을 일곱 대접들 재앙 때에는 사람들이 전부 다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에 의한 사망과 마지막 때의 강력한 복음전파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주님이 오실 때가 완전히 가까이왔음을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환난과 핍박과 순교의 상황에 대비하여 그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난을 이겨내며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신앙을 갖추도록 더욱 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서 말이죠.

 

2020년 1월 30일(목)

정병진목사 


요한계시록에 보면, 네 마리의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들에 대한 환상이 나온다(계6:1~8). 이는 어린양되신 예수께서 장차 되어질 일이 기록된 두루마리의 일곱개의 인들 가운데 처음부터 넷째 인까지를 뗄 때에 보여진 장면이었다. 그때 네 마리의 말과 그것 위에 탄 자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백마과 홍마와 흑마과 청황색마와 그것 위에 탄 자였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백마와 백마를 탄 자는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적그리스도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가?

2019-11-1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흰 말과 그 위에 탄 자는 과연 적그리스도인가?(계6:1~8)
https://youtu.be/gzYxQb-Rg3U


1. 들어가며

  주님께서는 과연 언제 오시는가?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당장 오실 것만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적인 논조가 아닌 것도 같다. 너무 빨리 오신다고 하면 조급함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칠 수가 있고, 너무 늦게 오신다고 하면 나태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를 지닌 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곧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인들으로 봉한 두루마리에서 첫째 인을 뗄 때에 나오는 흰 말과 그 말 위에 탄 존재를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 과연 이 해석은 올바른 해석이며, 흰 말과 그말 위에 탄 존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래서 오늘은 일곱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하여 어린양이 첫째인을 떼시는 장면을 가지고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일곱인은 재앙인가 아닌가?

  요한계시록을 해설해놓은 여러가지 책들이나 주장들을 살펴보면, 어린양되신 예수께서 떼신 일곱 개의 인들을 대부분 "재앙"이라고 해석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일곱인들의 재앙과 일곱나팔들의 재앙과 일곱대접들의 재앙으로서 3중재앙이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이 과연 요한이 쓴 묵시(계시)를 잘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별히 일곱 인에 대한 해석 가운데, 둘째 인과 셋째 인과 넷 째인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일치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말과 그 탄자를 각각 "전쟁"과 "기근"과 "사망"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째 인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흰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다면,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를 과연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해도 되는 것인가?

 

3. 무엇이 바른 성경해석의 기준이 되는가?

  그러나 성경을 해석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주의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문자적인 해석이다. 본문이 기록된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고, 앞 뒤의 문맥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 성경해석에 대한 가닥이 잡힐 것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과 같은 경우는 그 내용이 거의 환상과 상징으로 기록된 채 있기 때문에, 그냥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요한계시록 12:1에보면, "해로 옷을 입은 여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여인의 발 밑에는 달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녀는 머리 위에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이러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옳다. 어떻게 사람이 해(태양)로서 옷입고 있을 수 있으며, 달을 발로 밟고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이런 경우는 다른 잣대로 해석을 해야 한다. 그래서 두번째의 해석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을 상징이나 은유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징을 아무렇게나 대입해서는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해석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성경의 묵시들(계시들)은 이미 다른 곳 특히 구약에서도 언급된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징이나 은유를 해석하려 할 때에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례를 찾아보아야 한다. 그럴 때에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 갈 것인가가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예수께서는 어떻게 해석했으며, 사도들은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해석한 방법과 사례가 아닌 다른 방법과 사례로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면 그는 이단이나 사이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를 들어, 민수기 21장의 장대 위에 높인 달린 놋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보자. 그런데 예수께서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장대에 달린 놋뱀에 대해서 언급하신 적이 있다. 그것이 곧 십자가에 위에 달리신 죄없으신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당시 독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들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볼 때에 살게 되었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바라보는 자는 죄로 오염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사 가운데 그 본문에 대하여 어떤 해석을 해 왔는가를 참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본문을 해석하는 데에 참고할 만한 것들이 많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성경해석은 문자적인(문맥적인) 해석, 상징적인 해석, 예수님과 사도들의 성경해석, 교회사적인 해석을 통하여 가장 바른 성경해석을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성경의 원저자로서, 요한복음 14~16장에 나오는 보혜사 성령의 도움없이는 바르게 성경해석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4. 일곱인의 해석에 대한 핵심적인 단서 내지는 열쇠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린양에 열어젖혔던 일곱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 안의 첫째 인과 둘째 인과 셋째 인과 넷째 인에 대한 해석의 핵심적인 단서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가장 먼저 본문의 문자나 문맥을 통해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이 본문에는 그것이 요한계시록 6:8에 기록되어 있다. 사망으로 [동물이나 사람이] 죽는 4가지 방법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검(칼)과 흉년(기근)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누가 해를 받아서 죽게 될른지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사람이나 동물 무두가 다 해를 받지 않나 싶다.

  그런데, 우리는 계6:8의 말씀을 통하여, 동물이나 사람이 죽어나가는 4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 모두가 다 첫째 인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에 의한 사망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붉은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칼"로 인한 "전쟁"을 상징하고, 검은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흉년"으로 인한 "기근"을 상징하며, 청황색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둘째 인과 셋째인과 넷째인을 뗄 때에 나오는 말 탄 자는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에스겔나 예레미야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다 나온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추가로 더 들어 있다. 그것은 "땅의 짐승들"에 의한 사망이다(겔5:17, 14:21). 사람이 짐승들의 공격을 받고 죽어나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들은 단순히 그냥 짐승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자'와 '곰'과 '표범'이 대제국의 황제들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며, 그 배후에는 사탄마귀의 부하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계13장).  고로, 요한계시록의 첫째 인은 칼과 기근과 전쟁과 짐승에 의한 재앙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니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5. 첫째인을 뗄 때에 출현한 흰 말과 그 말 위에 탄 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첫째인을 뗄 때에 출현했던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말이 흰 말이라는 것 때문에 말탄 자는 계19장 1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가 아닌가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리스도는 두루마리 책을 떼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리스도"라고 해석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른다. 더불어 넷째인을 뗄 때에 뛰어나온 말 탄자를 "사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흰 말을 타고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둘째 인을 뗄 때에도 동일하다. 즉 둘째 인에 떼어질 때에 붉은 말과 그 말 탄 자가 튀어 나왔는데, 그것은 칼로 인한 전쟁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첫째, 일곱인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부터 살펴보자.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가슴에 금띠를 띠고 흰 옷을 비고 나타나신 예수께서 사도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들과 지금 있는 일들과 장차 될 일들을 기록하라(계1:19)" 결국 요한계시록 1장은 "네가 본 것들"에 해당하며, 요한계시록 2~3장은 "지금 있는 일들"이고, 요한계시록 4~22장은 "장차 될 일들"에 해당하는 것이다. 고로, 일곱인은 전부 재앙을 가리키는 아니라, "장차 될 일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승천이후 재림 때가지는 결코 재앙만 있지 않다. 복음도 전파될 것이고, 순교자고 나올 것이고, 자연에 재앙도 있을 것이며, 기근과 지진, 전염병이 창궐하고 귀신의 공격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곱인을 무조건 "재앙"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서는 아니 된다. 예를 들어, 다섯째인이 떼어질 때에는 이미 죽임당한 성도들이 천국의 제단 아래에서 자기들의 피를 신원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데, 이는 재앙(화, 심판)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흰 말과 그것 위에 탄자를 그리스도라고 해석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를 "그리스도"라고 해석하는 데에는 장차 지상에 재림하실 그리스도가 백마(흰 말)을 타고 오시기 때문이다(계19:11). 하지만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떼시고 있는 분이 어린양이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좀전에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를 "그리스도"라고 해석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셋째,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를 사탄이라고 해석하는 데에는 일곱인이 재앙이라는 관점과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는 관점에서 그렇게 해석하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을 탄 자가 쓰고 있는 면류관을 보면 "적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흰 말을 탄 자의 머리에 쓰고 있는 "면류관"은 "디아데마(왕관)"이 아니라, "스테파노스(승리관,면류관,월계관)"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한 번도 사탄이나 사탄 쪽에서 일하는 자가 "면류관"을 썼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다섯째 나팔 때에 올라오는 황충들이 자기들의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었는데, 그것도 면류관이 아니라, 금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이라고 나올 뿐이다(계9:7). 성경에서 면류관은 오직 예수님과 이겼던 성도들만 쓸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죄와 마귀와 죽음을 이기셨고, 성도들도 예수님을 힘입어 죄와 마귀와 죽음을 이기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문자나 문맥을 통해서 파악할 수 없다면, 그후로는 상징적인 해석을 시도해봐야 하며, 그것도 안 되면 예수님과 사도들은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24장에 보니, 예수님의 해석이 나온다. 마24장에 보면,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있을 징조들"이 무엇인지에 관해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둘째 인과 셋째 인과 넷째 인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즉 "전쟁"이 있을 것이고(마24:7),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며(마24:7), "전염병"이 있을 것(눅21:11)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더불어 거짓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출현도 있을 것(마24:4~5,11)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바로 사망으로 역사하는 마지막 도구들로서 "땅의 짐승들"이 그것에 해당한다(계6:8). 그렇다면,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마24:14). 즉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그렇다. 흰 말과 그것 위에 탄 자는 복음전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첫째로,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만이 "면류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한 번 이기고 끝마치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기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계6:2). 뿐만 아니라 셋째로, 일곱인이 전부 재앙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승천이후 재림 때까지 있어질 일이라고 볼 때에도 복음전파가 가장 타당한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6. 나오며

  그렇다. "복음전파"는 예수님 때에나 예수님의 제자들 때에만 있을 일이 아니다. 그리고 가장 잘 나가던 19세기에만 있을 일도 아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지속되어야 할 일이다.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8:18~20). 고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아니 된다. 특히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열심을 내야 한다. 이것이 마지막에 전해야 할 복음이기 때문이다.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것은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누가복음 24:47에 의하면, 그것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증언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눅24:47~48). 이 일을 위해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눅24:49). 그렇다. 우리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행1:8). 이것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해야 일이며,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증인"의 사역과 일치한다(계11장). 그렇다. 복음을 증거하자. 그런 자들에게 승리의 면류관이 쓰여질 것이다(계6:2, 2:10, 3:11). 주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지켜주실 것이다(계3:10~11). 주님께서 부탁하신 사명을 완수하기 전까지 주님은 그를 붙들어주심으로 죽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복음을 증거하자. 오직 천국복음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자.

 

2019년 11월 17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우리 성도들이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가장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한계시록6:1~8을 중심으로)(계6:1~8)_2019-11-20(수)

https://youtu.be/gDec2_zPZ5A

 

1.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은 무엇인가요?(행1:8, 마24:14, 눅24:47)

  예수께서 승천하시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것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행1:8). 그런데 어떤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마24:14의 말씀에 의하면, 천국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증거해야 할 복음은 그래서 "천국복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눅24:47의 말씀에 의하면,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도 증언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파되고 있는 복음은 어떤 복음입니까? 그것은 "이신칭의의 복음"이지, "천국복음"이거나 "회개복음"이 아닙니다.

 

2.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인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요한계시록에 6장에 보면,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으로부터 취한 두루마리로부터 인을 떼는(책을 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는 모두가 다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곱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었던 것일까요? 계1:19과 계4:1에 의하면, "장차 되어질 일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승천이후 재림 때까지 일어날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마지막 시기 혹은 7년대환난 기간에 나타날 "재앙들"이 거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대환난의 시기 이전에는 일곱 인의 내용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일곱인으로 봉인되었던 그 계시들은 예수승천이후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 있는 것들입니다.

 

3. 처음 4개의 인들은 대체 무슨 내용인가요?

  어린양께서 떼신 일곱인들 중에 처음 4개의 인들로 봉인된 "미래의 일들"은 같은 종류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4개가 펼쳐질 때에 다 네 생물이 하나씩 "오라"하면서 보여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4개가 다 말과 말탄 자가 나오는 환상이었는데, 다만 말의 색깔만 다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말은 흰 말, 둘째말은 붉은 말, 셋째말은 검은 말, 넷째말은 청황색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이 보았던 네 말들은 사실 구약성겨 스가랴 6장에 동일하게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스가랴 선지자가 보았던 4마리의 말들에 대한 환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나요?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말들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낸 천사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4마리의 말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경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 네 생물들이 다 한 목소리로 "오라"고 말할 때에 나타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보좌 앞의 네 생물은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얼굴을 가진 천상적인 존재로서, 각자 한 개의 바퀴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바퀴들에는 많은 눈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눈들을 온 세상을 감찰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네 생물은 피조물을 대표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어린양이 4개의 인을 떼실 때에 나타난 계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4. 첫째 인을 떼실 때에 나타난 흰 말과 그 말을 탄 자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첫째 인을 떼실 때에 나타난 흰 말과 그 말을 탄 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먼저,말은 어떤 사건에 대한 수단이나 도구들을 가리키는 것이요, 그 말을 탄 자는 그것의 결과물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넷째말은 청황색말인데, 그 말을 탄 자는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시는 재앙들이 기록된 에스겔 14:21, 5:17에 의하면, "죽은 사람의 시체나 동물의 사체의 색깔"을 지칭하는 청황색말은 "전염병"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 말을 탄 자는 "사망"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둘째 인의 붉은 말과 그 말을 탄 자는 칼로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가리키며, 셋째 인의 검은 말과 그 탄 자는 흉년으로 인한 "기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바로 계6:8에 곧바로 그 해설이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흰 말과 그 말을 탄 자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요? 첫째, 일곱 인들이 재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가리킨다고 한다면, 적어도 흰 말을 탄 자는 "그리스도"나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지금 어린양이 되시어 인을 떼고 계시기 때문이요, "적그리스도"에게 한 번도 "흰 색"이 적용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흰 말을 탄 자가 받은 면류관(스테파노스)은 승리관(월계관)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도 한 번도 사탄진영에게 속한 존재에게 씌여진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승리관(스테파노스)은 전부다 죄와 죽음과 마귀를 이긴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서, 예수님(계14:14), 이긴 성도들(계12:1)에게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계2:10, 3:11, 4:4, 4:10). 둘째, 종말장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마24장에 따라서, 이것은 증인들에 의한 복음전파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때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마24장과 눅21장에 나오는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전쟁(붉은 말)(마24:7)과 기근과 지진(검은 말)(마24:7), 그리고 전염병(청황색말)(눅21:11)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천국복음전파(마24:14)도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천국복음은 아무나 막을 수가 없어, 끝이 올 때까지 계속 전파되어야 할 것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5. 마지막 시기까지 전파되어야 할 참된 복음은 무엇인가요?(마24:14)

  예수께서는 말세의 징조들을 열거하실 때에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신 것은 천국복음 전파입니다.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흰 말과 그 위에 탄 자는 "복음"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그것도 천국복음(마4:17)이자, 회개복음(눅24:47)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한 번 실천하고 끝낼 것이 아니며, 특정 시기에만 전파해야 할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말씀처럼(계6:2),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전파되어야 할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면관계로서 복음을 전파하기 어렵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다른 수단들 예를 들어, 문서선교와 방송선교를 이용해서라도 회개와 천국복음을 계속적으로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2019년 11월 20일(수)

정병진목사 


  이 시대에 진정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얼마남지 않은 우리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인가? 아니면 주님 일에 오늘도 계속해서 충성하는 것인가? 둘 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며, 주님께서 나 자신과 교회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서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하는지 알고서 충성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와 어떻게 사명에 충실해야 하는지도 알고서 기다리며 충성해야 한다. 이것을 모른 채 마냥 주님의 재림만을 기다리면 주님께 책망만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 충성한다고 하면서 남을 해치면서까지 충성해서 아니 될 것이다.

  자, 일례를 들어보자.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마땅이 주의 자녀가 해야 할 일은 행하지 않은 채 날마다 그날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린다면 그게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되는가? 누가 어느 때쯤 휴거가 일어난다고 하면 거기에 쏠렸다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또 언제쯤이라고 말하면 또 거기에 쏠려 그날만을 기다리는 자는 정상적인 성도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에 그런 자들이 한국교회 안에 있다. 시한부종말론자들이 그들이다. 특히 올 9월 장막절에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이라면서 사람을 꼬드기는 이들이 올 해도 이미 활동하고 있다. 그들의 대표자는 부천에 있는 어느 교회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고, 제주도의 한 팬션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9월 28일에 1차 휴거가 일어나지 않게 되자, 오늘 10월 4일 12시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또 어명을 받았다고 계시의 미명하에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들을 이끌고 있는 김여명목사라는 분은 정말 목사인지 묻고 싶다. 이번에 또 불발이 되면 무슨 말로 사람들을 또 속이려고 들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나 그것은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마24장을 읽어보라. 성도들의 휴거가 있는 날까지도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그들은 그날도 일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밭에 나가서 일하다가 들림을 받았고 여자들은 집안에서 멧돌을 돌리다가 들림을 받았다(마24:40~41). 그리고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받고 한 사람은 남겨둠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눅17:34). 그렇다. 성도도 인간이니만큼 휴거되는 그 날까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면서 그 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낮시간에는 일해야 하고 밤시간에는 잠을 자야 한다. 그러나 밤이나 낮이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날만 오기만을 기다린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도라도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인간이기에 열심히 일하면서 그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오로지 주의 재림만을 기다리는 잘못된 성도들에게 이렇게 엄하게 말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 그렇다. 기다림의 목적이 잘못 되었고 기다림의 방법도 잘못된 그들을 결코 따르지 말라.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이 주의 날을 잊고 살아서도 아니 될 것이다. 천기를 분별할 줄 알면서 영적인 상태를 분별하지 못한 채 세상 일에만 취해 있어도 아니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열심이 일을 하면서도 저 천국으로 이사갈 준비도 꾸준히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저 천국은 어떻게 들어가는지 그리고 거기에 들어간 자는 어떤 축복을 누리게 되는지를 준비하면서 세상 일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메시야의 왕국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한 생각은 그들에게 팽대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메시야의 왕국은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었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곧 그 왕국이 지상에 세워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혹시나 예수께서 메시야의 왕국을 세우지 않을까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한다고 하니까, 모두가 다 열렬히 예수님을 환영했다. 구약성경에 그토록 예언되어 있는 메시야의 왕국이 곧 세워질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메시야의 왕국에 관한 시편118편에 말씀에 따라 목청껏 찬송을 불러댔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 뒤 채 5일이 다 지나기도 전에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고 말았다. 왜나하면 예수께서 왕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먼저 이 세상 임금인 마귀를 제압한 뒤에, 십자가에서 인류의 대속의 죽음을 죽어야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고난과 죽음을 택하신 것이다. 그러나 고난당하고 죽으시는 메시야에 대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은 닫혀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인 메시야의 등극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만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들의 기대는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예수님을 3년 반씩이나 따라다녔던 제자들의 생각은 조금은 달랐다. 그들도 처음에는 실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죽으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시어 그들을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의 눈들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시대에 메시야의 왕국을 세우시려나보다" 하고서 말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즉시 부활하신 주님께 언제 메시야의 왕국을 이루실 것인지를 직접적으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 질문에 대해 답해주시었는데 놀라지 말라. 주님의 대답은 아주 분명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제자들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이 곧 제자들 위에 부어질턴데 그러면 능력을 받아서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을 증언하는 것이 그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하셨다(행1:7~8). 그렇다. 이 땅 위에 세워지는 메시야의 왕국의 때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지 말아야 하듯, 우리들도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믿는 이들의 제일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서 아니되어야 한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유대인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들은 지금까지 메시야의 왕국이 이 땅 위에 세워질 것을 고대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 빨리 예루살렘 성전 산에 유대인들의 성전을 세워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곧 제3의 물질적인 성전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왜냐하면 살후2장에 나오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해야 그 뒤에 주님이 재림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전'의 물질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히에론'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나오스'라 단어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림의 예수께서 하늘의 왕이자 메시야로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왔었지만 그들이 끝끝내 그분을 왕으로 영접하지 않은 채 배척하고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장차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탄식하셨다.

마23:37-39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잘 곱씹어 생각해보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기대를 하나님께서 사실상 접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가?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민족 가운데 제사장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출19:5~6). 하지만 그들은 주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이 먼저 선택받은 만큼 하나님을 잘 섬겨 복을 받은 다음 타 민족에게도 그러한 복을 나눠주는민족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기를 거부했다. 결국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왕으로 재림하시는 날까지 이스라엘은 버림받은 상태로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그들은 먼저 선택받은 민족으로 사명을 저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버림받았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백성에 대한 기대는 그대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아니다. 비록 이스라엘백성에 대한 기대는 끝났지만 그들이 감당해야 할 제사장의 사명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 것이 차이가 난다.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주님께서 핏값을 주고 산 교회에게 제사장권이 넘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계1:5~6, 5:9~10). 어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유대인들이 회개하여 천년왕국 안으로 제사장이 되어 참여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천년왕국이 실제 도래하게 되고 그들이 거기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그곳에서 제사장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거기에는 주님께서 핏값을 주고 사신 교회가 제사장직무를 감당할 것이고 왕노릇도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먼저 부름받은 사명을 사실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 그 특권은 주님을 위해 헌신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교회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오늘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며 수고하고 충성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서 제사장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살 것이다. 복음전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며 그것을 주님께 드린 자가 왕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세상의 모든 교회들은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먼저 회개와 천국복음을 들어 깨달게 되었다면 그것을 실천하고 그것을 온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백성에 걸맞는 본보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 먼저 참된 복음을 접한 자로서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치 않는면 촛대는 또 다른 곳으로 옮겨질 것이 뻔하다. 그렇다. 이 시대에 우리 성도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먼저 부름받아 먼저 주의 자녀가 된 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사명이자 과제인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하면서 주의 재림도 기다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그날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종말론자가 되지 말라.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지도 않으면서 주의 재림만을 기다린다면 그날 주님으로부터 엄한 책망만 들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 시대 가운데 오로지 주의 복음을 전파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 주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죄인인 우리에게는 이것 말고도 또 한 가지도 더 우선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회개"하는 일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날마다 시간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만 매달릴 수 있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거의 없다. 혹 그런 자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런 자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떤 시기에는 그 일을 잘 감당했던 자라도 어느 순간엔가 쉬고 있는 자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하다가도 시험을 받아 주의 일을 쉬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항상 우리는 주님 일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충성할 수는 없는 일이다. 충성해야 하지만 잘 충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혹 육신이 아프거나 나이가 들게 되면 충성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이라면 주님 일에 충성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것이다. 더욱이 세상에 살다보면 성령충만이 떨어지기 때문에라도 못하게 된다. 더욱이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된 본성이 우리로 하여금 주 앞에 항상 충성하도록 그냥 내버려두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우선적으로 이 시대 가운데 해야 할 것은 주님 앞에 날마다 매 시간마다 충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개를 하는 일이다. 사실 천국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 일에 충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지은 죄를 회개하지 못해서다. 왜 오늘날까지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지 아는가? 여러 가지 요인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베드로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당시에 고난받고 핍박받는 상황에서 성도들은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기다린다 해도 주님이 오실 수는 없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는 성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그들은 회개치 못하고 주의 재림을 맞이하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이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오직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기회를 주신 까닭이다. 오, 주님께 감사하라.

  사실 회개의 중요성은 누누이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는 주제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아시아의 7교회를 보라.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충성하라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번 믿었다고 해서 미래의 죄까지 다 사함받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백한 죄에 대해서만 용서받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므로 이 시대에 성도들이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은 날마다 시간마다 회개하는 일이다.  

  성도들이여, 주님의 재림이 아주 가까운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 명확해졌다. 하나는 주의 일에 충성하여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의 육신을 벗는 그날까지 날마다 매 시간마다 회개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충성한 만큼 그날에 보상을 받게 될 것이며, 회개하는 만큼 용서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5-10-04 이 시대에 우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행1;6~11_벧후3;9).ts_00114037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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