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102)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행25:13~26:32)_2023-01-31(화)

https://youtu.be/mWHutGPFj6k [또는 https://tv.naver.com/v/32764123]

 

 

1. 복음을 모르는 두 종류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복음 자체를 아예 모르는 불신자들이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로마 총독으로서 유대에 파견된 베스도와 같은 경우다. 또 하나는 복음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지만 복음을 정확히 모르는 자들이 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그립바 왕이나 그의 여동생 버니게가 여기에 속한다. 왜냐하면 아그립바 왕이나 버니게는 헤롯의 증손으로서 아그립바1세의 아들 딸들이었는데, 이들은 다 하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원자인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복음을 전혀 모르거나 복음을 알되 정확히 알지 못하는 자는 둘 다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 제대로 된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2. 왜 바울은 베스도와 아그립바와 버니게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게 되었는가?

  유대 총독이었던 벨렉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이제 막 집무를 시작했을 때에 문안 인사차 아그립바 왕(아그립바2세)과 버니게가 가이사랴에 온다. 그러자 베스도 총독은 아그립바2세와 그의 동생 버니게에게 바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자문을 요청한다(행25:13~27). 이에 아그립바도 승낙하자 바울의 심문을 위한 청문회가 열리게 된다. 그러자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게 되고(행26:1~13), 청문회 참석자들에게도 신앙을 권고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다 거절한다. 하지만 청문회를 통해서도 그의 죄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청문회를 마치자 한사코 다들 그는 무죄하다고 말한다(행26:14~32)

 

3.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 자리였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및 거기에 배석한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한다. 그것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해 약속된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며, 바로 그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행26:16~18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고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눈이 열려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적인 세계를 볼 줄 아는 영의 눈이 열려지는 것이 그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이다. 

 

4.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영안)이 열리게 되면, 받을 수 있는 4가지 축복은 무엇인가?

  우리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영안이 열리게 되는 자가 받게 될 축복이 4가지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즉 첫째로, 어둠에서 빛으로 돌이키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둠'이란 거짓과 사망을 가리키고, '빛'은 진리와 생명을 가리킨다. 둘째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된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사람은 영의 눈이 감겨지기 시작하였다. 즉 하나님을 보는 눈이 감기게 되고 사탄이 주는 보이는 세계에 대한 눈만 더욱 열리게 된 것이다. 셋째로, 죄들 사함(용서)이 주어진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이미 대제사장으로서 속죄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속죄의 은총이 베풀어지기 때문이다. 넷째로, 예수님을 믿어 거룩하게 된 자들에게 하늘의 기업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바울도 역시 다메섹 도상에서 영안이 열려지기 전까지는 이러한 축복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도 역시 베스도 총독이나 아그립바 왕처럼 그러한 놀라운 하늘의 소식을 듣고도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5. 영안이 열리지 못했던 자들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는가?

  유대인들이나 산헤드린 공회 그리고 이어서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 또한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는 바울로부터 복음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유대인들이나 산헤드린 공회는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때로부터 10년 뒤였던 A.D.70년에 유대 나라는 완전히 망하여 지구상에서 없어지고 말았다(민족만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1948년 5월 14일에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벨릭스 총독은 바울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고 또한 바울로부터 뇌물을 기대하여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있다가, 그만 총독직에서 해임되고 말았다. 베스도 총독은 벨릭스 총독의 후임으로 대신 들어왔으나 역시 무죄한 바울을 석방하지 않음으로 인해 총독으로 부임한 지 2년 만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아그립바2세 왕과 버니게는 헤롯대왕의 증손들이었으나, 그 가문은 자신들을 끝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그렇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는 용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성령을 거부하는 자는 이처럼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성령으로 복음을 전해 주었던 바울의 말을 곧이듣지 아니함으로, 결국 다 파멸의 길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2023년 01월 31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100) 유대인들의 거짓고소 과연 이길 수 있었을까?(행24:1~23)_2023-01-26(목)

https://youtu.be/mVEUnpplqLI [또는 https://tv.naver.com/v/32647047]

 

1. 바울은 어떻게 되어서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가?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된 것은 여러 이방 교회들이 모아서 건네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기 위함이었고, 성전에 예물을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바울을 보았던 유대인들이 그를 보고 흥분한 나머지 성전에 있는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고 시도한다. 그때 이것을 지켜 본 천부장이 막아섰고, 안토니오 요새의 층계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변명할 기회를 가진다. 하지만 바울의 간증을 듣던 유대인들은 다시 그를 없이하자고 외친다. 그러자 다시 천부장이 그를 보호하게 되는데, 이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러자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공회에 그를 데리고 간다. 하지만 공회에서도 죽은 자의 부활 문제로 소요가 그치지 않게 되고, 그를 다시 공회로 부를 시점에 중간에서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천부장이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보내어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총독 앞에 서게 된다. 

 

2. 바울을 고발한 자들은 누구였으며, 죄목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을 로마 총독에게 고발한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였다. 그러므로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104km 떨어진 가이사랴까지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아나니아와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와 몇몇의 유대인들이 찾아왔다. 

  이들이 바울을 기소한 이유는 3가지였다. 첫째, 소요죄로 고발했다. 바울이 세계에 온 유대인들을 소요하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단 괴수죄로 고발했다. 즉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셋째, 성전 모독죄로 고발했다. 즉 바울이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감으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3. 바울은 어떻게 이들의 고발에 변명해야 했는가?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기에 자신의 죄목에 대해 변호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로마 총독 벨릭스의 허락에 따라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첫째, '소요죄'에 대해서는 2가지 이유를 들어 그들의 거짓으로 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행24:11~13). 첫째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 지 12일 밖에 안 되었으니, 소요를 일으킬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누구와 변론을 했다든지 혹은 회당이나 시 안에서 무리를 소동했다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고 되물은 것이다. 그러므로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둘째, '이단 괴수죄'에 대해서는 자신의 믿음이 유대인들의 믿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행24:14~16절). 즉 바울도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믿으며, 그들의 소망처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정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셋째, '성전 모독죄'에 대해서는 그러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행24:17~19절). 다만 바울은 예루살렘에 자신의 민족을 구제하기 위해 구제헌금과 제물을 가지고 왔으며, 성전 안에서는 결례를 행한 것 뿐, 거기에서 어떤 모임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소동도 없이 성전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 자신을 반대할 사건이 있었으면 당사자가 고소했어야 하는데 고소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단지, 예루살렘의 공회에서 사건이 마무리 되지 못한 것은 공회 석상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이야기함에 따라 분열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총독 앞에 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4. 총독 벨릭스는 어떤 선고를 내렸는가?

  이에 총독 벨릭스는 고발자의 고발과 피고인의 변호를 다 들은 후에 판결을 내리게 된다. 그것은 선고를 연기한다는 것이었다(행24:22). 하지만 바울은 무죄였다. 그러므로 총독도 바울을 감옥에 수감하도록 명령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를 지키되 그에게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바울을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만 말하였다(행24:23). 일종의 자유로운 구류를 지시한 것이다. 이는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독은 바울을 석방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유대 지역의 대표자들인 산헤드린 공회가 서로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독 벨릭스는 자기와 유대 지역 대표자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선고를 무기한으로 연기한 것이다. 그런데 벨릭스는 무려 2년씩이나 그렇게 하고 있었다. 

 

5. 이 사건이 말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총독 벨릭스 앞에서는 재판 과정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진리의 참된 복음을 전하려 하는 자에게는 한사코 시기와 모함, 핍박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울도 역시 그랬다. 바울의 복음 전파를 가로막기 위해 유대인들은 그를 뒤따라 다니면서 방해했고, 그를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또한 유대인들은 총독 앞에서 바울을 이단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교리와 바울이 전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진리의 참된 복음을 전하려 하는 자를 가리켜 이단이니, 삼단이니 말하면서 모함을 하게 되는 것이 상당히 많다. 왜냐하면 사탄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기 때문이다. 둘째, 거짓을 동원한 사탄의 계략은 아무리 치밀할지라도 성공을 거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었던 로마 총독과 산헤드린 공회는 같은 편이었지만 둘은 바울을 결코 정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행한 일들이 결코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총독은 뒷일을 생각하여 바울을 구류해 두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거짓이 진리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불의가 의로움을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거짓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서서 심판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결코 불의한 일을 저질러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본다. 

 

 

2023년 01월 26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9) 가장 안전한 피난처에서 보호를 받으려면?(행23:12~35)_2023-01-20(금)

https://youtu.be/lvh0MWsX2B0 [또는 https://tv.naver.com/v/32646619]

 

1. A.D.58년경 바울이 1차 공회를 마치자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결의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A.D.58년경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왔을 때에 에베소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게 되어 공회석상에 서게 된다. 하지만 공회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 나눠짐으로 서로 간의 싸움판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천부장은 유대 민족끼리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음을 간파하고 임시 대기를 시킨다. 그런데 그날 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결의를 하게 되는데, 바울을 살해하기 전까지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한 것이다(행23:12~13). 일종의 바울 암살단을 조직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암살단은 다시 공회가 열리면 안토니오 요새에서 공회로 이동하는 바울을 제거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2. 바울 암살 음모는 어떻게 바울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는가?

  그런데 이러한 바울 암살 음모는 바울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울의 조카(생질)가 와서 그 사실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행23:16). 그렇다면 어떻게 바울의 조카는 바울 암살 음모를 알게 되었을까? 우리는 여기서 처음으로 바울의 가족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울에게 누나가 있었다는 것이며, 그 누나에게는 적어도 아들 청년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울의 누나가 언제부터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녀가 장성한 청년 아들을 두었다는 것은 팩트다. 그런데 바울은 원래 길리기아 주의 다소 성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다(행21:39, 22:3). 그리고 어느 때부턴가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와서 살게 된다. 그리고 그때에 바울은 율법의 가장 엄한 교훈을 가르치는 바리새인의 거장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행22:3). 그래서 그도 역시 바리새인이 되었고 바리새인의 후손이 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암살 음모는 당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바리새인 포함)도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바울의 매형은 이러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거나 이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바울의 매형이 이러한 첩보를 입수한 뒤, 자기 아들을 시켜 바울의 신변이 위험하다는 것을 바울에게 알려준 것이 아닌가 싶다. 

 

3. 바울 암살 첩보를 입수한 천부장은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그러자 바울의 조카가 바울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알려주었고, 바울은 백부장을 통해 천부장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청년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천부장은 그날 밤에 바울을 보다 안전한 장소로 피신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그날 밤 9시, 보병 200명, 기마병 70명, 창병 200명으로 꾸려진 호송 군사들과 함께 바울은 가이사야의 총독 벨릭스에게 보내진다(행23:23).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로마 군인들은 고작 60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총독관저가 있는 가이사랴에는 로마 군인 약 6,000명 정도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신변이 보다 더 안전한 곳이자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장소는 역시 가이사랴였다. 그리고 더불어 당시 총독 벨릭스 역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에 대한 정식 재판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천부장은 바울을 총독에게 보내었던 것이다. 또한 총독 벨릭스는 유대 땅 뿐만 아니라, 수리아 그리고 길리기아 성까지 다스리고 재판하는 통치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에 대한 재판도 할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돈 한 푼 내지 않은 채, 미결수의 신분으로 470명의 로마 군사들에게 둘러쌓여 안전하게 가이사랴까지 이동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4. 바울이 죽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이 암살단에 의해 죽지 아니하고 가이사랴까지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2가지다. 첫째는 주 예수님께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고 하는 말씀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행21:11). 그러므로 바울은 안전하게 로마까지 이동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가 예루살렘에서 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어떤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면 인간의 어떤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고로 바울이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파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없었다면 바울은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인생을 마감해야 했을른지도 모른다. 둘째는, 그를 도와주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는 천부장이 있었다. 맨 처음에 천부장은 소요 사태의 진압 과정에서 바울을 만났으나, 그가 헬라어를 구사할 줄 알고, 로마 시민이었다는 것 때문에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아직 바울이 죄인인지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죄인으로 취급했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그는 바울을 쇠사슬에 결박시켰고 더욱이 그를 채찍질 할 것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이 잘못되면 도리어 자신이 벌을 받게 되고 관직을 박탈당할 위험이 있었기에 천부장은 바울의 안전을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울 암살 음모를 듣게 되자 그는 즉시 바울을 보다 더 안전한 가이사랴의 총독관저로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안전하게 재판을 받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둘째로는 좀 전에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의 생질(조카)이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죽지 않고 가이사랴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5.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역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도와줄 자가 아무도 없을 때에, 로마의 천부장과 바울의 조카 생질을 바로 그곳에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에는 예루살렘 안에 있는 교회 구성원들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도 어느 정도는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안에는 믿는 이 수만 명이 있다고 주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이 막상 붙들려 갔을 때에 어느 누구도 바울을 구출하는 데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엉뚱하게도 로마 장교가 나타나서 바울을 지켜주었고 그리고 바울의 조카가 나타나서 바울의 살해 위험으로부터 그를 지켜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그곳에 사람을 배치하여 바울을 구원하기로 섭리하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피난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특히 우리들 중에 누구라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려면 바울의 경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복음 전파의 사명이 남아 있다면 어느 누구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고로, 우리 인간편에서 볼 때 가장 안전한 피난처에서 보호를 받으려면 우리도 역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역시 당신의 일을 하는 우리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시며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다. 

시46: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시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2023년 01월 20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8) 바울이 혼자였음에도 공회 앞에서 위축되지 않았던 이유는(행23:1~11)_2023-01-19(목)

https://youtu.be/Ia-ZnFICKGA [또는 https://tv.naver.com/v/32508708]

 

1. A.D.58년경 바울은 왜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서게 되었는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에베소에서 절기를 지키러 온 유대인들에 의해 바울은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간신히 천부장으로 도움으로 죽임당함을 면키는 하였으나, 그 일로 인해 바울은 천부장으로부터 결박을 당한 채 채찍질을 당할 상황까지 간다. 그러자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말한 후에 천부장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공회에서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2.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데 바울은 유대의 최고 의결기구로서 72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 앞으로 불려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앞에서 전혀 주눅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을 변호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그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자신의 신변은 이제 천부장에 의해 지켜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이 불법적으로 자신을 심문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 중에서도 바울을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은 과거 바리새인이었다. 그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가말리엘의 제자로 공부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바리새인이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말했다(행23:6). 그는 바리새파로서 철저히 교육을 받았으며, 장차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산헤드린이 어떤 기관이며 무슨 일을 행하고 또한 그들이 어떤 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공회가 시작되자,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아나니아(재위 A.D.48~59)가 바울에게 죄를 정치도 아니한 가운데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하는 것을 듣고는 강하게 항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바울은 그를 가리켜 '회칠한 담'이라고 말했다(행23:3). 예수께서는 과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런데 바울은 이제 대제사장더러 '회칠한 담'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그가 속은 이미 잘못된 상태에 있으면서 겉으로 회를 칠하고 있기 때문에 거룩한 척, 의장인 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로 탐욕스럽고 포악하고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산헤드린 공회 의장으로서 합당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산헤드린 의장은 재판관으로서 약한 자라고 재판을 굽게 하지 않아야 하고 공의를 집행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레19:15), 또한 위증한 자를 철저히 가려서 모함한 자가 누군지 판명되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선고하여, 악을 제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신19:15~19). 그런데도 대제사장은 그렇게 행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법을 알고 있으면 이처럼 법 앞에 당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4.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의 실체를 폭로하여 그의 성질을 돋군 바울이 그 다음에 선택한 또 다른 자신의 변호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그러나 결과는 바울이 산헤드린 의장을 모욕한 것처럼 되어 버렸으니, 바울도 입장이 난처하게 된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바울이 곧바로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선택한 다음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산헤드린 공회원 중에 바리새파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변호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것은 당시 산헤드린 공회가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로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역이용한 것이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제사장들을 위시로 한 사두개파 사람들과, 바리새인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로 구성된 바리새파 사람들로 나눠져 있었다. 그러자 바울은 곧바로 자신이 바리새인이며 비리새인의 제자라는 것을 알리고는, 자신은 지금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심문을 받고 있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고 있었으나,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주장한 예수의 부활을 거부한다면, 사두개파 사람들과 같이 될 것을 우려한 바리새인들이 이제는 바울 편을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부활도 믿고, 천사도 있고 영도 있으며, 천국과 지옥도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두개인들은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행23:8).

 

5. 바울의 복음 전파 방법의 부수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이전에 바울이 전도할 때에 쓰던 방법은 가장  먼저 이방인 지역의 회당에 찾아가서 거기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일로 시작했다. 그러나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직접적으로 그렇게 했다가는 곧바로 돌에 맞아 죽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바울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신 것을 자신의 간증 형식으로 증거하였으며, 바리새인들이 믿고 있는 부활 사상을 근거로 예수님의 부활의 타당성을 함께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바울은 자신이 배우고 익혔던 것들과 자신의 학문과 지위와 지식을 적절히 이용하여, 그것에 상응한 신분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로마의 백부장과 천부장에게는 자신이 로마의 시민인 것을 사용하여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게 하였고, 천부장에게는 헬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여 그로부터 발언권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산헤드린 공회법에 관한 지식을 활용하여 그들에게 적절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와 능력과 학문과 지식을 적절히 활용하여 그것에 상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참으로 지혜로운 바울의 복음 전파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01월 19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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