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3월 특별새벽집회("천국, 소망에서 이제는 실제로") 다섯째날(마지막날)입니다.

제목: 천국복음(12) 한 달란트 받았던 종, 그의 잘못은 정말 지옥 갈 죄였는가?(마25:23~30)_2022-03-04(금)

https://youtu.be/1mGBSD8oGrQ  [혹은 https://tv.naver.com/v/25470513 ]

 

1.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심판 후에 그가 간 최종적인 장소는 어디였는가?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심판 후에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그는 영원히 거기에서 울부짖고 이빨을 갈게 될 것이다(마25:30). 그렇다면 그가 쫓겨난 '바깥 어두운 데'라는 장소는 대체 어떤 장소인가? 그가 쫓겨난 장소는 먼저는 '바깥쪽'이다. 그리고 또한 '어두운 곳'이다. 여기서 '바깥'이라는 말은 '외부'라는 뜻이다. 그곳은 마태복음 25:1~13에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가 남겨진 바로 그곳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곳은 '문 밖'이라고 나온다(마25:10). 여기서 '문'은 신랑 집의 문이을 가리키며, 신랑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가리킨다. 고로 그의 집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혼인잔치가 벌어질 장소이므로, 그 곳은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바깥'이라는 말을 '새 예루살렘 성'의 바깥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해 준 바 있다(계22:15). 그리고 '어두운 장소'라는 말은 빛이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곳을 가리킨다. 결국 이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없어 어두운 곳이기에, 지옥의 한 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2. 심판 후 '바깥 어두운 데'는 누가 가는가?

  심판 후에 '바깥 어두운 데'에 들어가는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씀으로만 본다면, '바깥 어두운 데'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을 본다. 첫째, 그곳은 예복을 입지도 않은 채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갔다가 쫓겨났던 자가 들어가는 장소다(마22:13). 이 사람은 원래 성 바깥에 있었다. 그런데 혼인잔치 중에 그곳에 들어간 자다. 사실 새 예루살렘 성은 12개의 진주문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문은 전혀 닫혀 있지 않다. 그러니 그리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곳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자 나중에 그는 수족이 결박된 채 쫓겨났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더이상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손과 발이 묶인 채 내 던져지는 것이다. 둘째, 그곳은 신랑을 마중 나간 열 처녀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로서, 등은 준비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이 들어가는 장소다(마25:10~11). 이 여인들은 주님과의 대면하여 만나는 그 날을 미리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과 대면하여 만나는 그날을 대비하여, 비싸더라도 댓가를 지불하면서 기름을 준비했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밖에 남겨진 것이다. 셋째,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쫓겨난 장소다(마25:3). 왜냐하면 이 종은 주님의 종인 종이었지만,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고, 무익한(쓸모없는) 종이었기 때문이다. 

 

3. 바깥 어두운 데도 차이가 있는가?

  바깥 어두운 데도 차이가 있다. 그건 3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그냥 바깥 어두운 곳이라는 장소가 있다. 둘째, 바깥쪽 어두운 곳으로서 형벌을 받는 장소가 있다. 셋째, 맨 바깥쪽 아래에 유황 불못이라는 장소가 있다. 예를 들어, 미련한 다섯 처녀와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그냥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마22장에 나오는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들어갔던 자는 수족이 결박된 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던져졌다(마22:ㅣ11~14). 그리고 마24장에 나오는 악한 종은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이 처해지는" 그러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다(마24:51). 셋째, 가장 바깥 어두운 곳으로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이 따로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4. 왜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야 했는가?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 이유는 무엇인가? 한 달란트 받았던 자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난 이유는 3가지다. 첫째, 그가 악한 자였기 때문이다(마25:26). 그는 자신의 주인을 엄한(가혹한) 자로 거짓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 게을러서 일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된 원인을 나쁜 주인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인은 심지 않는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가혹한 주인이라고 증거했다. 그는 주인을 인색한 자로서 남의 노동력이나 재산을 착취하려고 하는 파렴치한 자로 매도하였다. 그는 주인을 악덕고대금업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주인은 그러한 주인이 아니었다. 그 주인은 은혜롭고 자비로운 분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떠나가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재산을 자신의 종들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마25:14,20,22). 그는 자비로운 분이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인을 아주 인색한 자로 치부했다. 거짓 말을 한 것이다. 둘째, 그는 게으른 자였기 때문이다(마25:26). 그는 자신이 게으르고 태만해서 일하기를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주인의 돈(달란트)를 받은 즉시 땅에 파묻었다. 그리고 주인이 올 때 고스란히 원금이라고 하면서 돌려주었다. 그러나 주인은 그 돈을 완전히 종들에게 넘겨준 것이었으므로, 도로 그것을 거두어서 주인에게 바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주인으로 돈으로 일하는 것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 돈으로 일하는데 열심을 내지 않았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셋째, 그는 쓸모없는 자였기 때문이다(마25:30). 그는 무익한 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나, 그 사람 자신을 위해서나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무데도 쓸모가 없는 자였다. 자기에게 맞는 분량의 달란트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았으며 노력를 안 했으며, 아예 일을 시도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주인의 기대를 부응하려고 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주인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그를 위해서 달란트를 준 것인데 그는 자신을 위해서 그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받은 돈은 상당한 금액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달란트를 받았다. 이는 노동자의 6,000일을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이었다(1달란트=6,000데나리온). 그러니 굳이 값으로 매기자면 그가 받은 돈은 노동자의 16년치의 품삯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돈을 묵혀두었다. 한 마디로 그는 주인이 기대하고 준 것을 아무데도 쓰지 않고 묵혀둠으로 그것을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게금 해 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5.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무슨 죄를 지었을길래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게 되었는가?

  그냥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의 행위만을 보면, 그는 죄를 안 지은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주인에게 한 달란트를 받아서 다시 주인에게 고스란히 한 달란트를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고로 그가 주인에게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않았으니 죄지은 것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죄를 지은 자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십계명 중에서 제9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증거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거짓말을 지어서 말한 것이다. 그는 주인을 가혹한 분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마25:24). 사도 요한은 이런 자는 반드시 성 바깥에 남겨질 것이라고 했다(계22:15). 둘째, 그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죄를 지었다. 그것은 그가 속된 것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계21:27).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 21:27에서 누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죄를 지은 자라고 하셨다. 그것은 속된 것을 행하는 자요,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라고 하셨다. 먼저, 그가 '속된 자'인 것은 그는 이 세상에 속한 가치만을 소중하게 여긴 채 하늘나라를 위해 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세상적인 일에만 몰두했을 뿐 영원한 천국과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노아의 홍수 때를 보라. 그때도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팔고 사고, 시집자고 장가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다 멸망을 받았다. 마찬가지다. 속된 일만을 행하는 자는 성 밖에 내버려진다. 둘째로, 그는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던 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을 정상적인 것일하고 속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일을 안 한 것이 정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인이 가혹한 자이기 때문에 일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실은 그가 게을러서 일하지 않은 것을 주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다는 아니더라도 성소수자들의 사랑은 '인권'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은 '음란'의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기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경건생활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자기자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서, 가증한 일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주인이 인색한 사람이기에 일을 안했다고 말했지만, 실은 그가 게을려서 일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앞뒤를 뒤틀어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속된 것을 따라갔던 자라고 할 수 있으며, 가증한 일을 행한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거짓말을 만들어내서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성밖으로 내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03월 04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03) 장차 누가 천국 안으로 못 들어가는가?(마25:41~46)_2022-02-23(수)

https://youtu.be/ZVlhPvxEreY  [혹은 https://tv.naver.com/v/25317849 ]

 

1.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어떤 것을 가리키며, 누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상태적인 천국을 가리키기보다는 실재하는 장소를 가리키는데, 그곳은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장소로서, 이를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사탄 마귀와 귀신들이 단 하나도 없으며, 죄와 죽음도 없고, 걱정 근심과 시기 질투, 미움 다툼, 혈기 분노가 전혀 없는 곳이다. 그럼 그곳에는 대체 누가 들어가는가? 그것에는 그곳에 들어가는 최소 조건이 있고 또한 그곳에 들어가는 충분조건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최소 조건이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를 가리킨다(마4:17, 계22:14).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대부분 충분조건으로 말씀하셨으니, 단지 예수님을 가리켜 주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마7:21). 고로 천국에 들어가는 숫자는 매우 적다. 추정컨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일반 성도의 90%가 못 들어가는 것 같으며, 목회자의 경우는 95%가 못 들어가는 것 같다. 

 

2. 구원받을 수 있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마16:16). 이것을 보통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예수님의 실재는 이보다 훨씬 더 높고 위대하시다. 즉 예수님은 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사람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다가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기보다는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피흘려 죽기 위해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사9:6, 마1:23). 또한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분이시다(행2:36, 계17:14). 그러니까 한 마디로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자신이시요 주님이신 것이다(요20:28). 이것을 흔히들 '도마의 신앙 고백'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은 최소한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분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산다면, 그는 구원받아 장차 천국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계21:8),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그것대로 행하고 있지 않는 자(마7:21~23)는 반드시 천국에 못 들어가게 될 것이다. 

 

3.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에 천국에 못 들어갈 자로 말씀하신 사람들은 어떤 종류가 있는가?

  예수께서 지상에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그분은 천국에 들어갈 자와 천국에 못 들어갈 자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다음 기회에 살펴보겠지만,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말씀하실 때에는 대부분 충분조건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 천국으로 다시 가신 후(부활 승천 후)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반드시 회개하는 자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권세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계22:14). 그렇다면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천국에 못 들어갈 자로 말씀하신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것은 크게 2가지 부류다. 첫째는, 그 사람이 천국에 못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대부분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둘째는 자신은 천국에 들어갈 줄 알고 있지만 실은 천국에 못 들어가고 바깥 어두운 데와 불못에 던져지게 될 자들이 있다. 

 

4. 예수께서 마태복음에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못 들어갈 자로 말씀하신 사람들은 누구인가?

  예수께서는 공생애 중에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할 자로서 다음과 같이 9가지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첫째, 자신의 의로움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는 자(마5:20). 둘째, 주여 주여 라고 말은 하지만 불법을 행하고 있는 자들(마7:21~23). 셋째, 자신은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민 의식에 빠져있는 자들(마8:11~12). 넷째, 천국을 듣고 알게는 되었지만 그곳을 향해 침노해 들어가지 않는 자(마11:12). 즉 천국을 위해서 어떤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자들. 다섯째, 세상의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자(마19:23). 여섯째,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는 자들(마21:32). 일곱째,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마23:13). 여덟째, 등은 가졌으나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들(마25:1~13). 아홉째, 가라지들(마13:29)이 이들이다. 

 

5. 자신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나 벌을 받을 자들은 누구인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은 예수님을 믿는 자이기에 천국에 들어갈 줄로 알고 있지만 실은 천국에서 쫓겨나 '바깥 어두운 데'나 혹은 '불못'에 던져질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로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처음 앞의 3가지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자들을 가리키며, 나머지 뒤의 3가지는 '지옥'(불못, 풀무불, 불과 유황이 타는 못, 영영한 불)에 떨어져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자들이 그들이다. 

   첫째, 혼인 예복을 받기는 받았지만 그것을 소홀히 여겨 그 예복을 입고 있지 않은 자(마22:13~14). 둘째, 다른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맡았으나 자신의 책임을 소홀히 한 악한 종(마24:48~51). 셋째, 사명과 은사를 받았으나 게을러서 일하지 않음으로 책망받은 악하고 게으른 종(마25:24~30). 이상 세 종류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져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넷째, 자신을 항상 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은 염소의 삶을 살다가 죽은 자들(마25:41~45). 다섯째, 다른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는 자들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마13:41~42). 여섯째,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마13:49~50). 이들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불못에 던져져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이들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로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더불어 회개를 잘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2년 02월 23일(수)

정병진목사

 

 

어느 날 문득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성도는 회개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회개 중에서도 열매 맺는 회개를 못했을 경우 결국에는 버림받아 꺼지지 않는 불 못에 던져진다는 경고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냥 흘려 듣지 아니할 것이다. 그렇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회개는 대체 어떻게 행하는 것인가? 여기 그 방법이 들어 있다.

 

2021-09-19(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무엇이며 또 어떻게 맺어야 하는가(마3:7~1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nqmA5XtOwXs  [혹은 https://tv.naver.com/v/22575596  ]

 

 

1. 들어가며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은 저마다 누구나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과 그 회개는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회개를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회개가 진정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는 회개가 됨으로 자신의 죄가 사라졌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과연 내가 드린 회개 기도가 온전히 상달되어 그 죄들이 사라지게 하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부분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놀라운 말씀 중의 하나다. 그래서 오늘은 이 시간에는 내가 드린 회개가 진정한 회개였는지를 알아보고 어떻게 하면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 후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는 대체 무엇이며, 그러한 회개는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그동안 내가 왜 영적인 진보를 이루지 못했으며 회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2. 진정한 회개란 어떤 것인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회개를 한다. 그렇다면 회개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께 상달되어 자신의 죄가 하늘의 행위책에서 지워지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회개에 관한 기본 상식과 그리 멀지는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회개는 3가지 측면의 회개 즉 깨닫고, 뉘우치고, 고치는 회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는 어떤 회개인가? 첫째로, 죄를 깨달아야 한다(지적인 측면)는 것이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죄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란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은 회개도 하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을 찾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구원 받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말과 행동이 죄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계명 법을 주셨고 더 크게는 구약 율법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고로 오늘날 우리가 죄를 안 채 기도하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회개기도문'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죄에 대한 24가지 항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죄를 뉘우쳐야 한다(감정적인 측면)는 것이다. 죄를 지은 것을 애통해하는 것이다. 정말 자신이 잘못 되었다고 후회하는 것이다. 그 죄가 우리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이 지은 죄를 정말 뼈아프게 생각했던 사람이 구약시대에 살았다. 그는 다윗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황소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상한 심령과 통회(깊이 뉘우치는)하는 마음인 것을 알았던 것이다(시51:17). 그러므로 죄를 회개할 때에 통곡의 눈물을 흘려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감정적인 측면에 좀 약한 분들이라고 하겠다. 셋째는 죄를 고쳐야 한다(의지적인 측면)는 것이다. 죄를 지었던 현장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하는 것이다. 두 번 다시 반복해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은 죄를 회개한다고 했지만 다시 죄를 짓고 있다면 그 사람의 회개는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것이다. 임시 회개인 것이지 완전한 회개가 아닌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말씀도 바로 의지적인 측면의 회개다. 고로 오늘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이 세 번째 방면의 회개를 잘 모르는 자는 자기가 지금 회개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회개가 아직 덜된 상태에 놓여 있는지 모를 수 있다. 만약 그러다가 주님 앞에 서게 된다면, 그는 쭉정이라는 말을 듣고 바깥 어둔 데 내지는 불 못에 던져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를 위한 마지막 단계로서, 회개의 의지적인 측면 곧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회개에 대해서 알아보자. 우리는 가끔씩 세례 요한이 증언했던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문구에서 우리가 꼭 이해해야 할 말은 '합당한'이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언뜻 '타당한', 혹은 '적합한'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뜻이 아니다. '합당한'이라는 단어는 '악시우스'라는 단어로서, 이 단어는 동사 '악사'에서 온 단어다. 그 뜻은 '무게가 나가다. 무게를 가지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가 뒤에 소유격을 달고 오면 '악시우스'는 '~만큼의 동일한 무게를 가지다. ~에 상응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고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회개에 적합한 무게를 가지는 열매'라는 뜻이며, 그 말은 자신이 진정 회개를 했다고 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 어떤 행동들 곧 그것에 상응하는 무게 있는 열매들을 가리킨다. 고로 진정 누군가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회개를 하고 있다면, 그는 누가 보더라도 눈에 보여지는 어떤 열매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자기 남편에게 말을 건넸지만 남편이 자기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 어떤 아내들은 남편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궁시렁궁시렁거릴 수 있다. 남편이 되어 가지고 부탁 하나도 들어주지 않는다며, 핀잔을 하거나 험담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새를 참지 못하고 말을 퍼붓던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설거지를 하면서 하나님께 회개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나님, 사라는 자신의 남편 아브라함을 주인 모시듯 섬겼다는데, 저는 제 남편을 제 자식처럼 부려 먹으려고 하였고 그렇게 안 해 준다고 무시하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기도를 끝내면 그 사람의 회개 기도는 끝난 것인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드시 남편에게 다가가 "여보, 아침에 내 성질을 참지 못하고 궁시렁거렸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요 입이 방정이에요. 당신의 사정도 있을텐데 오직 내 생각만 했어요. 미안해요."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 순간 남편이 먼저 말하기를 "여보,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당신의 말을 그만 흘려 듣고 말았어요. 미안해요. 다음부터는 아무리 바빠도 당신의 말을 꼭 경청해서 듣겠소." 그러면 아내는 "아니에요. 제가 먼저 당신을 두고 험담을 했으니 사과할 사람은 바로 나이지요. 미안해요, 여보." 그리고 "사랑해"하고 달려들어 와락 안아 준다. 이것이 바로 진정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라는 것이다. 

 

4. 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가?

  왜 회개할 때에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까지 맺는 회개를 해야 하는가? 그냥 하나님께 말로 혹은 마음을 다해 회개 기도해도 아니 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회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회개가 덜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런 식으로 회개를 다 끝마쳐서는 아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열매가 없는 회개를 하게 되면 마귀가 우리의 죄의 약점을 알고 그 방면에 계속해서 죄를 짓게 만들어서 결국 마귀의 손아귀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심판대 앞에 우리가 섰을 때,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선고를 할 것인가? 그것은 "너는 쭉정이였느니라"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열매 없는 회개를 한 자는 결국 마귀의 손아귀에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십일조와 헌물(예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말3:8~9). 그런데 웬만한 그리스도인 치고 십일조를 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의 월급이나 보너스 정도는 십일조로 내고 살 것이다. 그런데 가끔씩 들어오는 용돈들이 있다. 그럴 때에는 5천 원이나 만 원 정도를 십일조로 내야 하는데, 그것을 매번 십일조로 내자니 번거롭고 해서 모아서 내겠다고 했다가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달에 나가야 할 돈이 너무 많아서 십일조를 내지 못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며칠 후에 내야지 하고 있다가, 지나가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 제가 이번에 십일조를 떼어 먹었어요. 죄송해요"하고 회개 기도만 하면 그것으로 끝인가? 그러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죄를 용서받는 것인가? 아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회개하고 있는 장면을 하나님도 보고 계시지만 귀신들도 다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귀신들은 이 사람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데 문제가 있다고 간파하고 계속해서 십일조를 드릴 수 없는 형편을 만든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면 자신의 약점 때문에 사탄 마귀의 포로가 되어 계속해서 반복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열매가 뒤따르지 않는 회개를 하면 영적인 진보를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 반복적으로 죄만 짓다가 맨 마지막에 가서는 쭉정이가 되어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든지 아니면 쭉정이를 불태울 꺼지지 않는 맹렬한 불 못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이다(마3:12).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회개할 때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회개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결국 자라지 못할 것이다. 계속 죄가 깨끗이 제거되지도 못한 채 반복적으로 죄를 짓게 될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죄들로 인해 우리의 신앙은 결국 껍데기만 갖춘 신앙인 곧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니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가 우리의 약점을 알고 그 약점에 따라 죄를 짓도록 계속 유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분명 알곡의 모양은 갖추긴 했지만 결국 그 속이 차지 못해 쭉정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죽는 날, 주님의 심판대에서 쭉정이라는 판정을 받고는 쭉정이를 불태울 맹렬한 불 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정말 그 무시무시한 지옥에 던져지고 마는 것이다. 

  셋째, 열매 없는 회개를 하는 생활이 계속해서 반복되었을 때에는 우리가 주님 앞에 행한 일들마저도 형식적인 것이 되어서 하나님께 제대로 인정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죽기 직전에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럴지라도 그는 자기가 주님을 위해 행한 일들마저 제대로 상급으로 계산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의 일을 감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 드린 헌신이 온전한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주님 앞에 드린 모든 헌신들이 온전히 하나님께 열납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열심히는 살았다 하더라도,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왕권 신부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열매 맺는 회개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왕이면 천국에서 시녀 신부로 살기보다는 왕권 신부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5.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회개할 때에 우리가 회개에 합당한 회개 곧 열매 맺는 회개를 할 수 있는가? 그 방법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 2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첫째는, 열매 맺는 회개를 하려면 '즉시' 하라는 것이다(마3:7,10). 왜냐하면 뒤로 연기했다가는 회개할 기회마저 얻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 위에 놓여 있는 싯점에 우리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고로 회개를 뒤에 가서 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미 그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고로 누군가에게 사과를 하려면 지금 가서 사과하기를 바란다. 용서해 줄 사람이 있으면 지금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현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 즉시 감사를 표현하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즉시 지금 가서 도와주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남을 도울 때에 없는 돈을 빌려다가 할 일은 결코 아니다. 내가 이 정도로 한다 할지라도 기쁨으로 감당할 만한 수준에서 하면 된다. 남을 도와준다고 행한 것이 내 가정을 힘겹게 만들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천적인 회개는 사람에게만 행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도하지 못했다고 치자, 그러면 지금 즉시 무릎을 꿇으라. 예배를 빼먹고 있었다면 즉시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든지 오는 주일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라. 혹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와 예물을 빼먹었다면 즉시 그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일상 생활이 되지 않을 정도로 힘겹게 바치라는 말이 아니다. 떼어 먹은 것을 다 드리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서 주님 앞에 드리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철저히 계산해서 드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 더 이상 십일조와 예물을 가지고 사탄이 나를 장난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것이 힘들더라도 죄의 무게에 상응하는 회개를 시행하라는 것이다. 지은 죄가 클수록 열매 맺는 회개를 하기란 더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유부남과 살고 있다고 치자. 상대가 원 가정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를 사랑해서 자기에게 집을 얻어 주고 매월 돈도 준다고 치자.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을 떠나 보낸다면 내가 살기가 막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유부남하고 살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그것은 음행의 죄로서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지는 죄이기 때문이다(계21:8). 그런데 주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막9:43,45,47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렇다. 열매 맺는 회개를 실천하기가 아무리 어렵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던져져서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렇다. 아무리 열매 맺는 회개를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할지라도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져서 숨도 제대로 한 번 쉬지 못한 채 영원의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귀신들이 쉴 틈도 주지 않은 채 수만 가지 고문을 주는 그 장소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지 아니한가? 고로 죄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죄를 청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우리가 무엇에 중독되어 있다거나, 물질에 묶여 있다거나, 사람에 묶여 있다면, 그곳에서 벗어나는 회개를 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내 자신이 장차 그 영원한 지옥에 던져질 것을 생각하고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를 바란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6. 나오며

  우리가 열매를 맺는 회개를 실천한다는 것은 실로 힘겹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며 주님께서도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자기의 핸드폰도 정지시키고 기도원에 들어가 한 달이나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으실 분이 결코 아니시다. 회개를 한 후에 들이닥칠 물질의 문제를 두고서도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난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실 분이 아니시다. 주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세신다고 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그런데 그분이 진정 우리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회개를 하려고 몸부림 치는 것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으실 분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죄를 청산하려는 그 의지를 볼 때에 한걸음으로 달려오실 분이시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나에게 힘도 주시고 용기도 주시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실 분이시다. 그분을 믿으라. 그분은 전능자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우리가 그동안 죄를 끊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죄를 끊어 내지 못했던 것일 뿐, 우리가 진정 죄를 끊어 내려고 결단하고 실행에 들어가면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능히 감당하시도록 도와주실 분이시다. 그렇다. 회개란 단순히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끝내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은 반드시 행위를 고쳐야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죄를 계속 그냥 놔두게 되면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의 약점이 될 것이고 그것을 빌미로 사탄 마귀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우리는 반복적으로 죄만 짓다가 결국 멸망에 이르고야 말 것이다. 왜냐하면 속이 차지 않은 곡식은 쭉정이가 되어 불 못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이여! 이제라도 결단하라. 계속해서 사탄 마귀의 노예로 살다가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지지 말라. 지금 힘들더라도 그 죄를 끊어냄으로서 주님이 도와주시는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라. 주님은 죄짓다가 회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더럽혀진 채 있는 자를 거룩한 성 안으로 들여보내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라. 죄를 회개하다가도 그것을 끝내지 못해 미완성된 채 그대로 죄를 남겨놓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열매 맺는 회개를 하라. 그것은 깨닫는 즉시 실천할 때 가장 잘 행할 수 있다.

 

2021년 09월 19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가짜 천국과 지옥,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10) -천국편(09) 성밖은 천국인가 중간지대인가(계22:14~15)_2020-10-21(수)

https://youtu.be/I_S7wsXhzoM  [혹은 https://tv.naver.com/v/16335170  ] 

 

 

1. 미국 LA주님의사랑 교회의 서사라목사가 본 천국과 지옥은 진짜일까요 가짜일까요?

  2014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서사라목사의 천국과 지옥 간증은 그 뒤로 꾸준히 인터넷상에도 올라왔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5일에 CBS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여 간증함으로써, 이분의 천국과 지옥 간증은 이제 팩트(사실)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사라목사가 보고 온 천국과 지옥의 간증은 많은 부분이 성경과 다릅니다. 이것은 이분이 간증하고 있는 내용 전체가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이분이 행한 간증의 많은 부분이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 이분의 간증을 팩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분은 자신이 낸 책의 서문을 통해서, 요한계시록의 부분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생각으로 깨우쳐주신 것을 기록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서, 자신의 간증이 잘못될 수도 있음을 살짝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2. 서사라목사는 대체 무엇을 잘못 본 것인가요?

  서사라목사가 잘못 본 것은 천국의 실재의 모습들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그녀가 천국을 잘못 보았다는 것은 첫째 그녀의 간증이 그분의 상상력의 산물일 수 있다는 것이며, 둘째, 귀신이 보여준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준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찌되었든 서사라목사가 본 것을 기록한 그녀의 책을 보면, 그녀가 본 것은 가짜일 확률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조금 정리하면, 첫째, 그녀가 보았다는 천국에서의  음식과 의복(복장)이 성경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천국에서 쌀과자와 비스켓과 젤리 등과 그리고 이사야와는 진수성찬을 먹었다고 하는데, 성경에서는 천국백성들이 먹는 것으로는 생명나무의 열매들과 생명수 그리고 포도주만 먹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천국에서는 옷이 맘에 안 든다고 하면서 바꿔달라고 하면 바꿔주는 곳이고, 자신도 연분홍 드레스를 입었다고 말하며, 마리아는 머리에 수건같은 것을 둘렀다고 간증하고 있는데, 이것도 성경과 다릅니다. 성경에서는 천국백성이 천국에서 입는 옷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옷 뿐이며, 머리에는 면류관을 쓴 사람과 없는 사람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녀가 천국에서 주님과 그리고 천국에서 만난 다른 성경의 인물들과 대화를 통해 듣게 되었다는 내용이 사실 성경이 다릅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천국에서 성밖(예루살렘 성 바깥쪽)에 사는 사람들과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 각각 다르더라는 것과 베리칩이 666이라고 주님이 직접 가르쳐주었다는 부분입니다. 

 

3. 천국에서 "성밖"은 정말 매맞는 곳인가요?

  서사라목사는 천국을 성안과 성밖으로 나누는데, "성밖"이란 지옥은 아니지만 천사들에 의해 어떤 곳에서는 성도들이 묶임당한 채 매를 맞더라고 언급합니다. 그래서 성밖에는 누가 있는가 하고 살펴 보았더니 거기에는 대략 3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첫째는 이기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고, 둘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자들(특히 목사들)이 있었으며, 셋째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진 자들이 있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도 성경과 위배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천국과 지옥(영생과 영벌) 이외에 중간장소(천주교에서 말하는 '연옥'같은 장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서사라목사의 주장이 얼마나 성경에서 빗나간 것인지를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 계22:15에 나오는 "성밖"은 지옥인가요 중간장소인가요?

  서사라목사는 계22:15을 언급하면서, 성밖에 사는 천국백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고 있는 자들"이라고 성경에 나오는데, 이들에 대한 해석을 달리했습니다. 즉 이 문장에 나오는 "개들"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목사들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이들은 이기지 못하는 성도들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진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동일한 본문을 서사라목사처럼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계22:15의 말씀과 계21:8의 말씀을 서로 비교해보시겠습니다. 

계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 두 개의 말씀을 비교해보면, 앞의 말씀은 사도요한이 예수께서 직접 들려주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며, 뒤의 말씀은 "보좌에 앉으신 이"께서 직접 들려주신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나중에 또 살펴보겠지만 "보좌에 앉으신 이"는 누굽니까? 그분은 주 하나님으로서 한 분 하나님을 가리키며, 그분이 사람에게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성경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계22:15)과 "보좌에 앉으신 이"의 말씀(계21:8)은 서로 비교했을 때에, "개들(계22:15)"이라는 표현만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로 바뀌어서 설명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순서만 다를 뿐 동일한 사람들이 두 본문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계22:15에서는 이들이 "성밖"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계21:8에는 그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불못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밖"이라는 장소 "불과 유황이 타는 장소" 곧 불못이요 둘째사망을 입은 자들이 들어가는 지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서사라목사가 주장하는 장소 곧 천사들에 의해 매를 맞는 징계의 장소인 "성밖"은 사실 없습니다. 거짓된 주장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두손이 뒤로 묶인 채로 매를 맞는 장소가 있다면 그 장소는 지옥일 것입니다. 

 

5. 헬라어 원문성경에는 "성밖"이 어떻게 되어있나요?

  그렇다면 계22:15에 나오는 "성밖"은 헬라어 원문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그런데 그것은 "그 성의 바깥쪽"이라고 나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냥 "엨소"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뜻은 "바깥" 혹은 "외부"라는 뜻입니다. 그 성의 바깥쪽이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새 예루살렘 성의 바깥쪽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모든 자"는 중간장소인 "바깥"에 있을 것이 아니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내일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천국과 지옥 사이에 중간지대는 결코 없습니다. 매맞는 천국의 한 켠은 결코 없는 것입니다. 

 

2020년 10월 21일(수)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