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에 보면 "거기서 슬피우며 이를 갈리라"는 말이 딱 6번 나온다. 그런데 다 똑같은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지옥이라도 다 똑같은 지옥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곳은 그냥 '바깥'이고 또 다른 곳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지만 형벌 받는 곳도 있다. 그리고 불과 유황이 타고 장소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곳에 들어가는가? 우리는 절대 이러한 곳에 가지 말아야 한다. 2022-03-0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천국복음(14) 슬피 울며 이를 갈 자들은 누구며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마24:45~5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_Wsbzi6Hrw4 [혹은 https://tv.naver.com/v/25536855 ]

 

1. 들어가며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모두가 다 왕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인가? 과거에는 다들 그렇게 알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성경의 기록과 그곳에 갔다가 오신 분들의 간증을 살펴보면, 천국에도 신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이것은 나중에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옥도 마찬가지다. 지옥에 떨어지는 자가 다같이 똑같은 지옥으로 떨어져 고통받는 것이 아닌 것이다. 죄에 따라서 그들이 들어가는 지옥도 각각 다르다. '지옥'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그냥 유황 불못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지옥의 정확한 개념은 어둠이 가득한 장소로서, 빛되신 주님의 임재가 더 이상 없는 곳이 곧 지옥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에도 차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곳에 들어가는 지옥의 장소가 각각 다른 것이다. 최소한 성경이 말해 주고 있는 지옥은 세 등급이 있다. 그리고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종류의 지옥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적인 사실은 그곳이 어떤 등급의 지옥이든지 상관없이 그곳에 들어가는 자는 반드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지옥으로 쫒겨났다든지 아니면 그곳에 떨어지게 되었다든지, 그러한 사람이 그곳에서 받게 될 고통은 대체 어떤 것이며, 그들이 들어가게 되는 지옥의 장소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 믿는 이들은 죄들을 회개하고 주님께 충성하여서 꼭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2. 지옥에는 어떤 등급이 있는가?

  하나님이 임재가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옥에는 어떤 등급이 있는가? 성경에 보니, 지옥에 떨어지는 자가 느끼는 공통적인 체험은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이 표현은 총 6번 나온다(마8:1~12, 마25:28~30, 마22:11~13, 마24:48~51, 마13:41~43, 47~50).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1번 더 나온다(눅13:28). 그런데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갈게 되리라)'는 표현만 나오지 않을 뿐 그와 똑같은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부분은 더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지옥의 등급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이 표현이 쓰인 성경 말씀을 나눠 보면 크게 세 장소가 있다. 첫째는 그냥 '바깥'이라는 장소다. 여기서 '바깥'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엨소'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바깥' 혹은 '외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바깥 어두운 데'라고 번역된 장소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보면, '더 바깥쪽의 어두움 속'이라고 해야 옳다. 셋째는 바깥 어두운 장소의 맨 바깥 아래쪽에 위치한 곳으로써 유황불이 타고 있는 장소가 있다. 이곳은 유황 냄새가 가득하고 항상 불이 타고 있다. 그렇지만 매우 어둡다. 그래서 성경은 이곳을 '영영한(영원한) 불'이 타는 장소라고 하든지, 아니면 '풀무불(불의 구덩이)'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불과 유황이 타는 못'(불못) 혹은 '게헨나(불타고 있는 쓰레기 소각장=지옥)'라고 표현하고 있다. 

 

3. 성밖에는 누가 남겨지거나 쫓겨나게 되는가?

  지옥 중에서도 그래도 고통이 가장 덜한 곳은 '밖(바깥)'이라는 장소다. 여기서 '바깥'이라 함은 새 예루살렘성의 바로 바깥쪽을 가리킨다. 이곳에는 새 예루살렘성 안으로 들어갈 자격을 갖추었으나,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해서 천국에서 밀려난 자들이 간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거듭나지 아니한 불신자들을 찾아볼 수는 없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과거에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기는 했지만 그의 이름이 지워진 사람이다. 

  그럼, 성 바깥에는 대체로 누가 가는가? 성경의 말씀에 따르면, 여기에는 열 처녀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가 가는 장소요 그들이 남겨지는 장소다(마25:10). 여기서 미련한 다섯 처녀란, 그가 믿는 자로서 신랑되신 예수님을 마중 나가기는 하였지만,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서 결국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여,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를 가리킨다. 여기서 '기름'의 용도는 신랑을 마중 나가기 위한 것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신랑과의 만남을 위해 자신의 결혼 준비물로서 들고 가야 할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성도는 죽기 전까지 이것을 준비해야 한다. 만약 이것을 준비하지 못한 자는 그가 성도라 할지라도 그날 성밖으로 밀려나고 말 것이다. 

 

4.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떤 장소이며 누가 들어가게 되는가?

  좀 전에도 살펴보았지만 성경에서 '바깥 어두운 곳'이란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곳은 그냥 단순히 성 바깥이라는 표현보다 더 고통받는 곳이다. 이곳은 그냥 바깥보다 더 어둠이 있는 곳이며,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곳이다. 마찬가지로 '바깥'이라는 장소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역시 과거에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그 이름이 지워진 자들이 가는 장소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과거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제대로 신앙생활을 했다면 새 예루살렘성 안으로 들어갈 뻔했던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못했기에 새 예루살렘성으로부터 쫓겨난 자들 아니면 밀려난 자들이 가는 장소인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말은 자신이 살아 생전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것을 한탄하는 것을 표현한다.

  그럼, 누가 이 장소에 들어가게 되는가? 성경에 따르면, 첫째는 이미 언약(약속)을 받았지만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기를 거부했던 유대인들이 가는 장소다(마8:11~12). 그때가 되면 동쪽과 서쪽으로부터 많은 이방인들이 새 예루살렘성의 문을 통과하여 그 성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영광의 광장 안으로 들어가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본래 왕국의 아들들은 오히려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먼저 주어진 기회를 헌신짝처럼 발로 차버렸기 때문이다. 둘째는 앞의 표현과 조금은 비슷하지만, 비유로서 먼저 초청을 받았으나 실제 혼인 잔치의 초청을 거부한 자들이 가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마22:1~10).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 22장의 왕의 혼인 잔치의 비유들 중에 첫 번째 비유에 해당한다. 그럼 이 비유에서는 누가 바깥 어두운 데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으로부터 혼인 잔치의 초청을 받고도 거절한 채 세상 일에만 몰두한 자들이다. 그들은 혼인 잔치에 초대받았는데도, 밭을 사러 가고, 사업하러 가고, 장가가는 일만을 계속해서 몰두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가는 장소다(마25:26~30). 왜냐하면 그도 역시 주님의 종이긴 하였지만 그는 악하였고 게을렀으며, 주인에게 쓸모없는 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그분은 선한 분이요 자비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달란트를 맡겨 주신 그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죽어서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으로 쫓겨나고 말 것이다. 

 

5.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그렇다면,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에는 어떤 장소들이 있는가? 성경에 나오는 표현만 빌리자면, 그곳은 세 군데 정도로 확인이 된다.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장소들이 있을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성경에는 세 장소가 나온다. 첫째, 그냥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이 있다(마8:11~12, 22:1~10, 25:26~30). 이것은 방금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유대인들이나 먼저 초청을 받았으나 거부한 자들이나 한 달란트 받았던 악하고 게으르고 쓸모없는 종이 들어가게 된다. 둘째, 제한받는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이 있다(마22:11~13). 이곳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그것은 예복을 입지도 않았는데 새 예루살렘성 안에서 진행되는 혼인 잔치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을 보니 손발이 묶여 있다. 왜 그런가? 이들은 죽은 후에 이미 심판을 받아 성 바깥으로 쫓겨난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성 안의 혼인 잔치에 나아간 것이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성의 문들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열려 있는 문을 통과하여 성 안의 영광의 광장까지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법이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겁없이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러자 왕되신 주님께서 그의 손과 발을 묶어서 더 바깥쪽의 어둠 안의 제한받는 장소에 던져버린 것이다. 셋째, 형벌을 받는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이 있다(마24:50~51). 이곳에는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악한 종이 들어간다. 그는 하늘에서부터 이미 자신의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온 자다. 그런데도 그는 사명을 멀리한 채 세상 술친구들과 짝하여 먹고 마시는 일을 했다. 더욱이 믿음으로 살려는 동료 종들을 때렸던 자다. 그러자 주님께서도 이러한 자들은 엄히 때리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외식하는 자(위선자)가 받는 벌을 받게 하신다고 하셨다. 그는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에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는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도 주의 일을 미룬 채 세상을 즐기는 일에 취하였기 때문이다. 

 

6. 영영한 불이나 불못, 불구덩이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이제는 마지막으로 지옥의 맨 바깥 부분으로서, 사람이 죽으면 밑으로 뚝 떨어지면서 들어가는 불타는 장소가 있다. 이곳에 타오르는 불을 마태복음에서는 '풀무불(불의 구덩이)'이라고도 하고(마13:42,50), '영영한 불'이라고 한다(마25:41).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곳을 '유황이 타는 불타는 연못(계21:8)' 곧 '유황 불못'이라고 한다. 이곳에 들어간 자는 거기에서 아주 끔찍한 형벌을 받는다. 그리하여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 대체 누가 이러한 끔찍한 장소에 들어가게 되는가? 첫째, 다른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자나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들어간다(마13:41~43). 이들은 아마도 교회 안에 속해 있기는 하였지만 가라지였을 것이다. 그렇다. 남을 실족하게 하거나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고 멸시하는 자는 반드시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둘째,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이 간다(마13:47~50). 주님은 마지막 날이 되면 의인들이라 지칭되는 성도들 중에서 악인을 갈라낼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무가치한 사람들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골라 먼저 불못에 보내는 것이다. 셋째,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등장하는 '염소들'이 이곳에 들어갈 것이다(마25:40~46). 이는 불타는 이곳에 떨어져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넷째, 주님을 믿었지만 비겁하게 주님을 부인한 자와 믿지 않는 자와 가증한 자들 그리고 십계명을 어겨서 살인하고, 간음하고, 점치고, 우상 숭배하고, 거짓말하는 자들이 이곳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계21:8).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 짐승(적그리스도)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들의 이마 혹은 손에 표를 받게 되는 자들이 이곳에 들어갈 것이다(계14:9~11). 그곳은 불과 유황으로 인한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장소다. 

 

7. 나오며

  누가 과연 그날 심판을 받은 후에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인가? 그들은 상당수가 불신자이겠지만 그들 중에는 신자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믿는 자라 할지라도 그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서 지워지게 되면 그냥 성 밖으로 내쫓겨 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되었으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혹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해가 지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 자신의 죄목이 기록되지 아니 한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도 행하지 않고 게을러서 일하지 아니하는 자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믿고도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반드시 더 바깥쪽 어두움 안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아무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믿는 자라도 우상을 숭배하면 그도 불못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자를 비롯하여 음행하는 자, 살인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도 역시 불타는 지옥이 그의 최종 운명의 장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달란트가 주어져 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기업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신분과 상을 준비하게끔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천국에서도 들어가는 자의 신분과 상이 각각 다르듯이, 지옥에서도 죄의 경중의 차이에 따라 지옥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불타는 지옥에 결단코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회개하라. 그리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맡겨 주신 일에 순종하고 충성해야 한다. 

 

 

2022년 03월 06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가짜 천국과 지옥,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11) - 천국편(10) - "바깥'은 천국인가 지옥인가?(계22:14~15)_2020-10-22(목)

https://youtu.be/bsZF5DOBFrU  [혹은  https://tv.naver.com/v/16340551 ]

 

 

1. 미국 LA에 있는 주님의사랑 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는 서사라목사의 간증 가운데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서사라목사는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간증자로서 좀 알려진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후 썼던 그분의 책을 보면, 기존교회에서는 들러보지 못하는 주장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중에는 성경에 나온 말씀대로 이야기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이라도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기도 하더라.", "구원받은 자라도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구약의 여호와가 곧 예수님이시다", "전능하신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말은 비중에 있어서 다르다"  등등입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지나친 면을 포함하고 있기도 있지만, 기존교회의 목회자들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사실 놀라움을 금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 했다가는 교리를 성경으로 알고 있는 자들로(이단사냥꾼)부터 이단 삼단이야기 얼마든지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미국에서 목사안수를 받아서 그런지 조금 자유롭게 이야기하십니다. 

 

2. 서사라목사의 보고온 천국 중에서 "고통받고 형벌받는 장소"로서 "성밖"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인가요?

  서사라목사가 보고 온 천국간증들은 사실 논란이 많은 주장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듣고 보았다는 것을 고스란히 가감없이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보고 들었다는 것에는 성경과 다른 주장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들로서 두 가지 정도를 고르라고 한다면, 하나는 천국에서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사는 자들은 고통받고 형벌을 받으며 이런 자들은 결코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천국에 갔더니 예수님께서 직접 "베리칩이 666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듣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성경으로부터 상당히 빗나간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보았던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성경구절을 여기저기서 가져다가 붙여놓고 있습니다(이것은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이 사용하는 수법과 유사합니다). 특히 새 예루살렘 성밖은 고통받는 장소요 형벌받는 장소라는 주장은 성경과는 너무나 빗나가 있습니다. 

 

3. 그녀는 왜 "성밖"과 "지옥"을 다른 장소라고 주장하는가요?

  서사라목사는 "새 예루살렘 성밖"과 "지옥(게헨나)"를 서로 다른 장소라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는 천국에 올라가서 보고 들었던 것에 근거합니다. 그녀는 "성밖"이라는 공간이 "지옥"과 다른 이유가 5가지라고 주장합니다. 첫째, 성밖에 있는 자들은 흰 옷을 입고 있는데, 지옥에 있는 자들은 벗거벗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성밖에 있는 자들은 다 나이가 더 젊은 사람들인데, 지옥에는 그들이 죽을 때의 나이로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성밖은 천사들이 다스리고 있지만 지옥은 마귀의 부하들(귀신들)이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성밖은 천국레벨에서 계단 150개 정도 내려가면 있는데, 지옥은 천국레벨에서 한참을 어두운 곳 터널을 통과하여 내려가면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성밖에서 받는 형벌은 아주 미약한 벌들이나, 지옥에서 받는 형벌은 극한 형벌이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핵심』 서사라목사, 하늘빛출판사, 2019, pp.211~212).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새 예루살렘 성밖이 형벌받고 고통받는 장소라는 것을 증명해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성밖에 지옥이라는 것을 더 증거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근거로서는 첫째, 지옥에서도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 가운데에는 흰 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더러 있기 때문이요, 둘째, 천국(새하늘과새땅)에서는 결단코 천사가 다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천사는 처음 창조될 때부터 종으로 지음받은 피조물들이며,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과 같은 동료이지만, 천국에 가면 그들은 구원받은 성도(하늘의 상속자들)을 섬기는 종으로 있을 뿐, 결코 사람을 다스리는 존재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몇 계단을 내려갔든지 지하로 내려갔다면 그곳은 아마 "지옥"에 해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결단코 그것이 미약할지라도 인간에게 주어지는 형벌이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새하늘과 새땅)은 걱정과 근심, 슬픔과 눈물, 아픔과 고통이 없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계21:4). 

 

4. 서사라목사는 성밖과 성안이 다른 이유로서 대체 어떤 것들을 주장하고 있나요?

  그녀는 새예루살렘 성밖과 성안이 다른 것은 4가지 이유라고 말합니다. "첫째, 성밖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지 아니한다. 둘째, 성밖에는 생명수와 생명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 성밖에서는 공통적으로 슬피 울며 이를 갈기 때문이다. 넷째, 성밖에서는 지은 죄에 따라 다른 그룹들이 다른 형벌을 받기 때문이다. " 그러면서 그녀는 각기 다른 벌을 받고 있는 그룹들을 7가지로 소개하였습니다. "첫째, 뒤로 손이 묶인 채로 앉아 있다가 하나씩 불려나가 매를 맞는 그룹. 둘째, 쇠찰상 안에 들어가 있는 그룹. 셋째, 손이 뒤로 묶여 있으면서 뱀이 상체를 감고 있는 그룹. 넷째, 돌이 배 위에 얹어져 있으면서 누워있는 그룸. 다섯째, 큰 나무기둥을 나르고 있는 그룹. 여섯째, 뒤로 손이 묶인 채로 앉아서 입으로 계속 무엇으로 옮기고 있는 그룹. 일곱째, 좁고 좁은 데를 통과하면서 아픔을 느껴야 하는 그룹." 그러나 천국는 결코 형벌받은 장소가 아닙니다. 그리고 만일 사람에게 형벌을 주는 뱀이 그곳에 있다면 그곳은 지옥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다른 방식으로 고문과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곳 역시 지옥일 것입니다. 그리고 종일 아픔을 느끼고 있다면 그곳 역시 지옥일 것입니다. 그녀는 형벌이 좀 약한 지옥을 보고와서는 그곳을 일컬어 "성밖"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5. 계22:15에 나오는 "성밖(바깥쪽, 외부)"을 지옥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사라목사는 계22:15네 나오는 성밖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해석하며, 그곳에 간 사람들은 각기 지은 죄들에 따라 각기 다른 형벌들을 받고 있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결코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 전적으로 위배되는 주장들입니다. 그녀는 지금 형벌이 좀 약한 지옥을 가리켜 굳이 "성밖'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헬라원문성경에 보면, 계22:15에 나오는 "성밖"은 새 예루살렘 성전 바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바깥쪽(외부=엨소)에 있는 "지옥"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과 관련된 평행구절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계22:12에 나오는 사람들(개들, 점술가들, 음행하는 자들, 살인자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 중에 상징적으로 표현된 "개들"이 계21:8에서는 "두려워하는 자들(비겁한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가증스러운 자들)"로 표현되어 있을 뿐 그 죄목들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인들이 결국 가는 장소를 계22:15에서는 "밖(바깥, 외부)'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계21:8에서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둘째사망"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로 계22:15에 나오는 "밖"은이라는 장소는 새 예루살레 성의 바깥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기준으로 볼 때 외부인 "지옥"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좀 더 살펴보겠지만, 성밖일지라도 빛이 그곳까지 환하게 둘러비추고 있으며, 성밖에도 생명강이 있고 생명과가 있어 그것을 따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사라목사의 "성밖"이라는 장소가 형벌받는 천국이라는 표현은 정말로 위험하곧 위험한 주장이라고 아니 말할 수가 없습니다. 

 

2020년 10월 22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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