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30) 천국에서 받을 상급(3-3) 천국에서 보좌자리를 차지하는 이기는 자는 누구인가?(1)(계2:18~29)_2022-03-25(금)

https://youtu.be/7idfI1Eo-oE  [혹은 https://tv.naver.com/v/25945195 ]

 

1. 천국에서 보좌 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되는가?

  천국에 들어가면 성도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다스리는 자'이며 또 하나는 '섬기는 자'이다. '다스리는 자'는 다시 두 종류가 있어서, 주인으로서 다스리는 자가 하나 있고, 왕으로서 다스리는 자가 또 하나 있다. 주인으로 섬기는 자의 집에는 시녀들(여자로서 섬기는 자)과 경호원(남자로서 섬기는 자)이 있다. 그리고 왕으로 섬기는 자는 성밖으로 나가서 왕으로 다스릴 민족들 내지는 나라들이 있다. 특별히 왕으로 섬기는 자를 요한계시록에서는 144,000명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들은 최소한 자기 집에 시녀와 경호원을 데리고 있다. 그리고 144,000명의 다스리는 자들 중에 첫 번째 줄부터 여섯 번째 줄까지는 왕 노릇을 하는 다스리는 자가 된다(참고로, 144,000명은 24반차별로 총 70줄의 좌석이 놓여 있다. 그리고 한 줄에는 여러 명이 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누가 이 보좌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가?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이 보좌 자리는 이기는 자들이 차지하게 된다(계2:26~27, 3:21).

 

2. 천국에서 보좌 자리에 앉게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천국에서 성도들 중에 보좌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은 2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이들이 천국에서 자신의 보좌에 앉아서 통치자가 된다는 뜻이다. 이때 통치할 대상은 주인으로서 섬기는 성도들이 될 것이며, 왕으로서 여러 민족들(나라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이들이 천국에서 심판하는 무리에 속한다는 뜻이다. 원래 천국에서 심판하는 자는 인자됨으로 인하여 예수님에게 주어진 예수님의 고유한 권한이었다(요5:27).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도 이러한 권한을 나눠 주신다고 하셨다(계3:21, 20:4). 그래서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 중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민족들과 열방 민족들을 심판하는 일을 감당할 자가 있는 것이다(눅22:30, 마19:28). 그런데 이때 성도가 심판하는 자들에 속한다고 해서 이들이 다른 성도들을 지옥에 보내는 일을 결정한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다만 성도들의 행위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다섯째 인을 떼었을 때 있었던 순교자들의 호소처럼 하나님께 어떤 것을 신원해 달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며, 또 어떤 분들은 니느웨 백성들처럼 당시에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던 자들을 정죄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보좌 자리를 차지하게 될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누가 보좌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들인지를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이기는 자들에게는 만국(민족들, 나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6~27). 이때 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전의 메시지에서도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첫째로, 성안에 있는 성도들(섬기는 자들)은 목양하는 일도 될 수 있고, 둘째로 성 밖에 있는 성도들을 철장 권세로 질그릇 깨뜨리듯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과연 누가 이 보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요한계시록 2:24~28에 나와 있듯이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남은 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남은 자들'이란 여선지자인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은 소수의 무리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사탄의 깊은 것들을 경험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두아디라 교회는 단어 자체가 복수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두아디라 교회 안에는 두 종류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들 가운데, 교회 이름이 복수로 나오는 교회는 딱 두 교회 뿐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는 두아디라 교회요, 또 하나는 사데 교회다. 이 두 교회만이 그 교회의 이름이 성경에 똑같이 두 번씩 나온다. 그리고 두 번씩 나오는 교회 이름이 둘 다 복수로 쓰였다(계2:18,24, 3:1,4). 이는 교회가 심판 날에 교회가 크게 두 무리로 분류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 중에는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들이 있고 또한 그녀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는 남은 자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데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데 교회 안에는 자기들의 옷을 더럽힌 다수의 교인들과 그리고 더불어 자기들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흰옷을 입고 다니는 몇 명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 중 후자들은 다 이기는 자들이 되어 보좌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성 밖으로 내어 쫓겨나거나 혹은 불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4. 이세벨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세벨의 가르침'이란 무엇이며, '사탄의 깊은 것'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계2:24). 여기에 나오는 '이세벨'은 가명인 것 같아 보인다. 왜냐하면 성도가 과거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숭배했던 '이세벨'이라는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실제 그녀의 이름을 들어서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두아디라 교회 안에는 그러한 지도급 인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이 여자는 대체 어떤 여자인가? 이 여자는 그녀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여자는 저 이스라엘 왕국 당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의 아내로 시집온 시돈 왕 엣바알의 딸과 같은 자였을 것이다. 당시 그녀는 정략결혼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에게 시집을 왔다. 그런데 그때에 그녀는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데리고 북이스라엘로 왔다. 그리고 이방 신전을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세웠다.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선지자들을 찾아서 학살까지 하였다. 그렇다면 두아디라 교회에서 이 여자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사실 이 여자의 정체가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는다. 다만 이 여자가 두아디라 도시 안에 위치한 여러 교회들의 종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미혹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때 가르쳐진 것은 성도는 음행을 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고 하여도 크게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에는 그때 당시 성도들의 고민을 풀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두아디라 도시에는 '길드'라는 상업 조직이 있었다. 일종의 무역 협동 조합인 셈이다. 그런데 이 조합에는 구리 세공업 조합도 있었고, 염색 세공업 조합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 조합원들은 자기들의 경제적 차지와 단결을 위해서 자기들의 수호신을 숭배하였다. 이들은 특별히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두아디라에서는 '티림노스'라 불렀다)를 섬겼으며, 그리고 제물을 제단에 바쳤다. 그리고 남자들은 신전 창기와 음행을 행하였고, 그리고 바쳐진 고기를 가져다가 각 방에서 식사를 하였다. 이때 혼사 이야기도 오갔고, 사고 파는 일에 관하여도 의논하였다. 그러니 이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그러니 교회 성도들이 주의 종에게 이 모임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물었을 것이다. 그때에, 이세벨과 같은 여선지자는 그곳에 가서 음행을 저질러도,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괜찮다고 가르친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우상의 제물이 자기의 몸을 더럽힐 수가 없고, 음행을 한다 해도 사회의 보편적인 관습이기에 괜찮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구원에는 그리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이세벨의 가르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5. 누가 두아디라 교회의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단호하게 두아디라 교회 안에 있는 두 종류의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에게는 엄중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그의 눈이 불꽃같고 그의 발이 빛난 주석같은 분이 말하고 있다고 했다(계2:18). 이는 그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그리고 이것은 이 땅에서 질병의 침상에 던져지는 일이고, 큰 환난 가운데 빠지게 되며, 그녀의 자식들이 갑자기 죽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런 자들은 죽은 후에 심판을 받아 최소로는 성 밖으로 내어 쫓겨난다든지 아니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 중에는 이러한 이세벨의 가르침을 거부한 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을 따라가려는 자들이 소수가 남아 있었다. 이들이 바로 두아디라 교회의 남은 자들이다. 이러한 성도들에게 주님은 장차 만국(민족들, 나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우선 첫째로, 이세벨의 가르침을 거부했다. 그러므로 이들은 교회에 와서도 아마 왕따를 당했을 것이다. 둘째로, 이들은 주님의 행위들을 끝까지 지켰다. 여기서 '주님의 행위들'이란 회개할 것과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핍박을 당해도 조롱을 당해도 그들은 그렇게 참고 인내하면서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왜나하면 주님께서도 역시 그 일을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한 마디로 정결한 처녀라고 할 수 있다. 세속에 있는 것들로서, 쾌락(음행)의 정욕과 돈(노동 조합에 바친 우상의 제물을 먹음)의 정욕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4장에서는 144,000명이 누군지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들은 첫째로 이세벨과 같은 여자로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둘째는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로서 그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했다(계14:4~5).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과연 어디에 속한 것인가? 만약 잘못된 길, 멸망의 넓은 길로 가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돌이키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미 그러한 좁은 길을 가고 있는 분이라면 세상 끝날까지 그 길을 쭉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2022년 03월 2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09) 왜 회개해야 하는가?(09) 회개하지 않으면 질병 환난 사망 등 징계조치가 취해지니까(계2:20~23)_2020-12-03(목) 

https://youtu.be/hTVZm8pAw0E  [혹은 https://tv.naver.com/v/17006021  ]

 

 

1. 천상의 예수께서는 두아디라교회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거짓여선지자 이세벨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했나요?

  천상의 예수께서는 두아디라교회 편지를 통하여, 거짓선지자 이세벨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녀가 회개하지 않자 징계를 내리고 있거나 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본인은 지금 침상에 던져지고 있다고 했으며, 둘째, 그녀의 의견에 동조하는 자들에게도 큰 환난으로 던져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그의 자식을 사망에 이르게 하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2.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사람이 회개해야 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요?

  사람이 회개해야 할 이유는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으로부터 징계조치가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징계조치가 내려질 당사자가 지도자에 위치에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3. 하나님으로부터 징계가 내려질 때 사람이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요?

  본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징계조치가 내려질 경우 사람이 해야할 가장 우선적인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되돌아보고 빨리 하나님께 죄를 자백해서 지은 죄들에 대한 용서를 받고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징계를 받게 될 것이고 결국 주변의 사람들까지 다치게 하고, 자식이 죽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의 종(목회자)이 중한 질병(암병, 불치병)에 시달리게 되었는데도 회개하지 않는 분들이 수두룩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충성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에게는 이렇게 가혹하게 다루시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고 또한 현재도 짓고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는 못한 채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자신이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징계를 받는 있는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4. 지도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침상에 던진다고 했는데 그 뜻은 무엇인가요?

  천상의 예수께서는 두아디라교회의 선지자였던 이세벨에게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르침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 그녀는 두아디라교회에게 어떤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했습니까? 그것은 두아디라시민으로서 염색산업에 종사하여 돈을 벌기 위해서는 두아디라 도시의 수호신인 티림노스를 경배하고 또한 파티에 참석하여 음란을 즐겨야 했는데,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즉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분명한 우상숭배와 음란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굶어죽을까봐 그러한 행위들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영혼이 한 번 구원받으면 어떤 죄된 행위를 저질러도 그의 영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우상숭배행위이며 음란행위에 해당합니다. 

 

5. 사람 특히 지도자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를 가만 두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시편기자는 그것을 3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고 했습니다(시7:12a). 둘째, 그의 활을 당기어 겨누신다고 했습니다(시7:12b). 셋째, 화살촉에 불을 붙여서 그를 죽일 도구를 준비하신다고 했습니다(시7:13).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런데 신약시대에 예수께서도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당시 예루살렘 망대를 짓다가 그만 망대가 무너지는 바람에 18명이나 죽게 되었는데, 이와같이 만일 누구라도 회개하지 아니한다면 그에게 언제 불어닥칠 징계 때문에 그가 곧 멸망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3:3~4). 이는 즉시 회개하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징계조치가 언제 취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했으면 즉시 자백하여 용서를 받고 자신의 상태를 깨끗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0년 12월 03일(목)

정병진목사

 

 

사데교회, 살아있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어있는 교회라고 책망받은 교회다. 그런데 한때 사람들은 이 교회의 유형이 중세시대의 교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데교회는 지금 우리 개신교회(개신교회)의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왜 사데교회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자기들의 이름이 이미 하늘에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데도 주님으로부터 엄하게 책망을 받아야 했던 것인가? 그것도 주님이 도둑처럼 갑자기 임하여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시겠다고 엄히 책망하신 것인가? 이들은 대체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러나 한 편으로 이러한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가운데 자신의 더럽혀진 옷을 예수님의 피로 씻어 희게 하고 다니는 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살아있다고 명성을 자자하지만 사실은 죽어있는 교회, 만약 그대로 쭉 진행된다면 결국 하늘의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는 교회에 관한 경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은 어떻게 구원을 이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교회가 교회되게 하려면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교회를 세우고 가신 일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찌하든지 교회를 잘 세워야 한다. 주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운 목적대로 교회가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해주시고 칭찬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어떤 교회를 세워야 하는가? 반대로 어떤 교회가 되면 우리 주님께서 버리시는 교회가 되는 것일까? 한국교회는 1885년 미국의 선교사들이 와서 세운 교회들이다. 1885년이 되기 전에 한국에는 교회가 없었다. 그리고 133년이 흘러갔다. 과연 한국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세우시고자 하는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7가지의 교회유형 가운데 한 가지 유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의 상태는 어떤 교회의 유형 안에 속해 있으며, 계속 이대로 있으면 어떤 교회가 될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교회의 상황 가운데서도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또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A.D.95년경 소아시아 지역에는 어떤 유형의 교회들이 있었는가?

  이 땅에는 수많은 종류의 교회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교회의 유형에는 어떤 교회의 유형이 있을까? 교회를 나누는 기준과 방식에 따라 여러가지 유형들의 교회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를 어떤 유형으로 보시고 있을까? 그것은 승천하신 예수께서 A.D.95년경 사도요한에게 써보내라고 했던 편지들을 살펴보면, 이 세상에는 어떤 유형의 교회들이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사도요한의 편지에는 7가지 교회가 쭈욱 등장한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로 그 교회들이다. 그런데 A.D.95년 당시 소아시아에는 방금 언급한 7가지 교회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골로새교회, 히에라볼리교회 등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들 중에서 7개의 교회들을 말씀하셨고, 그중에 한 교회가 바로 오늘 다루게 될 사데교회라는 교회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데교회를 향하여 엄한 꾸중과 책망을 하신다. 그것도 단순한 꾸중과 책망 정도가 아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한 사람도 구원받을 사람이 없을 만큼의 그 교회에 중한 상태에 있음을 엄중히 경고하셨기 때문이다. 대체 사데교회는 무슨 잘못을 범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교회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었을까?

 

3. 사데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사데교회는 두아디라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 사이에 있는 교회다. 그런데 이 교회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살아있다고 하는 이름(명성)은 가지고 있으나 사실은 죽은 교회라고 하셨다. 왜 이런 책망을 받았을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그 교회에서 온전한 행위들을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그 교회가 더럽혀진 옷을 입은 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들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던 자들이다(계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도둑처럼 가시어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실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의 경고 가운데서도 우리들에게서 믿음에 따른 행위들이 발견되지 않은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다가는 죽을 때에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의 이름들이 지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는 것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다가는 더렵혀진 옷을 입은 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사데교회는 왜 엄중한 책망을 받았으며, 오늘 우리 교회는 사데교회와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믿는 이들 중에 자신이 사데교회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은 절대 그러한 교회에 속해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사데교회를 책망하실 때에 들려주신 2가지의 조건들을 다시 보라. 과연 우리에게 믿음에 따른 행함의 열매들이 발견되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날마다 지은 죄들을 회개하여 어린양의 피에 자신의 겉옷들을 씻어 희게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언제부턴가 예수믿는 성도들은 자신의 구원을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예정)과 믿음으로 얻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믿음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믿음이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구원론이 제대로 된 구원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이러한 구원론이 제대로 된 구원론이라고 한다면, 사데교회는 결코 책망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그들도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믿음이 인정을 받아 하늘의 생명책에 이미 자기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꽃같은 눈으로 성령을 통해서 교회의 사정을 깊이 감찰하고 계시고, 오른손으로 주의 종들을 붙들고 계시는 우리 주님께서 도둑처럼 임하여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벼르고 계셨다. 그것은 그들이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들로부터 어떠한 믿음의 행위들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더렵혀진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사실 상당히 심각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상황과 거의 맞아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에 들어와서 어떤 교회가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외치고  있는가? "예수님을 믿어도 우상숭배하고 음행하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말하는 교회를 들어보았는가? 또한 "예수님을 믿어도 믿음에 따른 행함이 열매가 없으면 믿음으로 얻은 구원일지라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교회를 보았는가?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있어도 자신의 지은 죄들을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외치는 교회를 보았는가? 그런데, 사데교회가 그렇게 되기에 충분한 교회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엄중한 책망을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사데교회는 어떤 유형의 교회요, 어떤 시대에 속한 교회를 가리키는가? 신학자들 중에는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교회들의 모습은 초기사도시대의 모습부터 말세시대의 교회의 유형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에베소교회 : 기독교초기 사도시대의 교회(A.D.31~54/81)  *54년은 네로황제의 통치 시작년도, *81년은 도미시안황제의 통치 시작년도

2)서머나교회 : 로마박해시대의 교회(A.D.54/81~313)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연도

3)버가모교회 : 로마국교시대의 교회(A.D.313~590) *590년은 제1대 로마교황 그레고리1세가 즉위한 연도

4)두아디라교회 : 로마카톨릭시대의 교회(A.D.590~1517) *1517년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연도

5)사데교회 : 종교개혁시대의 교회(A.D.1517~현재)

6)빌라델비아교회: 회복 및 선교시대의 교회(A.D.1700~1900) *1700년은 영국에서 자유의지와 회개를 강조한 연도(존 웨슬리는 1703~1791년 사람임)

7)라오디게아교회: 말세시대의 교회(A.D.1900~재림전) *1900년은 기독교교단이 사라지고, 성령운동과 같은 은사운동이 시작된 연도.

 

  이상의 교회사적인 증거들을 살펴보면, 결국 사데교회는 종교개혁이후(A.D.1517~현재)의  교회상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에 루터(A.D.1483~1546)가 종교개혁을 했을 때에는 회개와 믿음을 동시에 강조했었다. 그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내붙힌 95개 반박문 가운데, 적어도 11개조항이 회개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개혁을 바톤을 이어받은 칼빈(A.D.1509~1564)은 다시 중세시대의 구원론을 다시 가져왔으니 그것이 바로 어거스틴의 절대주권에 의한 예정론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러다보니 행함이 없어도 믿음만 있으면(이미 만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것이니) 구원얻는다는 생각이 팽대해지기 시작하였고, 회개없이도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는 생각(하나님이 작정한 것은 틀려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영락없이 사데교회의 상황이 그대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5. 사데들 안에 있는 자신의 겉옷을 더럽히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은 누군가?

  그런데 사데들 안에 자신의 더러운 겉옷을 씻어 흰 옷을 입고 다니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씻어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더럽혀진 옷을 깨끗하게 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보통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아, 사데교회가 주의 종들과 성도들 모두가 잘못된 구원론에 빠져 있었지만, 그 교회 안에는 참된 구원론을 가지고 있는 몇 몇의 성도들이 있었던 모양이로구나"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데교회 안에 그러한 성도가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말 성경으로 보더라도 "사데에"라고 나와 있는 것을 보라(계3:4). "사데 안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계3:4)" 하지만 이것을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자신의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나온다. "사데들 안에 자기들의 겉옷을 더럽히지 아니하였던 몇 명이 있어...(계3:4)" 그렇다. 사데교회 안에 겉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데라는 도시 안에 그러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데와 같은 도시들 안에 그러한 몇 명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데교회와 같은 가르침 안에 있는 성도들 중에는 자기들의 죄로 더럽혀진 겉옷을 예수님의 피로 씻어 희게한 자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말이 된다. 다만, 사데들 곧 사데와 같은 다른 지역들 안에 그러한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것은 사데교회 바로 앞에 소개되고 있는 두아디라교회의 상황과 비슷하다. 두아디라교회는 중세 로마카톨릭시대의 교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때에도 "두아디라들 안에 남아 있어, 그 교훈(거짓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받지 아니한...(계2:24)"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두아디라는 이미 주의 종들마저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있기만하면 우상숭배해도 천국가고, 음행을 저질러도 천국간다고 가르치던 시기였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평신도들은 주의 종들(신부들)의 가르침을 따라 마리아도 숭배하고, 성인들도 숭배하고 그리고 죽은 자들도 숭배하고, 성물을 숭배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지옥에 떨어질 우상숭배의 죄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성경을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깨어있는 자는 두아디라교회 안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있는 자는 다만 두아디라들 안에 있었던 것이다. 즉 두아디라와 같은 다른 지역에 있으면서 두아디라교회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았던 것이다.

 

6. 사데교회같은 유형의 교회, 과연 무엇이 무엇인가?

  바른 구원론이 아니라 거짓된 구원론이 가르쳐지고 있는 시기에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어느 교회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가르침을 따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모든 교회가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데, 거기서 아니라고 외친다고 한들 그것이 교회(교회의 지도자들)를 바꿀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상한 취급받아 퇴출당하거나 이단으로 정죄받아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깨어있는 자는 두아디라교회 안에 있지 아니하였고, 사데교회 안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두아디라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고, 사데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두아디라교회나 사데교회나 똑같이 다 지도자들도 타락하고, 성도들도 타락한 동일한 유형의 교회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두아디라교회는 주의 종들이 앞장서서 우상숭배나 음행을 저질러도 다시말해, 십계명을 어겨도 구원에는 상관이 없다고 가르친 시기의 교회라고 한다면, 사데교회는 살아있다는 그 명성이 알려주듯이, 겉으로는 정통신앙이라고 하는 구원론을 따르고 있다고 믿기에, 자신이 이단적인 가르침(이세벨의 교훈)안에 있지 않으며, 정통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으니 당연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기의 교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스로가 깨어있다고 하는 개신교회(개혁교회) 성도들은 두아디라교회에 있는 성도들(로마카톨릭교회의 성도들)을 보고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정통이라고 하는 이름의 교회 안에 있으니까 자신의 구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한다. 사데교회를 책망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라. 믿음이 있어 자신의 이름이 이미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믿음에 따른 행위들이 뒤따르지 아니한 자들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지 아니한가?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자신이 지은 죄들을 회개하지 않고 있으면 결국 자신의 더럽혀진 행실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지 아니한가? 오늘날까지 두아디라교회(중세로마카톨릭시대의 교회)나 사데교회(종교개혁이후시대의 교회) 안에 남아 있어 그들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자들의 구원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7. 나오며

  우리는 사데교회가 어떤 유형의 교회인지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살아있다고 하는 명성을 가진 교회 즉 정통이라는 이름 하에서 종교개혁의 신앙을 가진 이들의 교회라는 것도 살펴보았다. 그런데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이 무섭게 들린다. 속히 도둑같이 임하여서 하늘의 생명책에서 그들의 이름을 지워버리시겠다고 경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계3:5b).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시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계3:5c). 더럽혀진 채 있는 그들의 행실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저들에게는 천국의 흰 옷을 입혀주지 않으시겠다고 경고하지 계시기 때문이다(계3:5a). 그런데 이 이야기가 남들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행함이 뒤따르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임을 다시 확인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날마다 더렵혀진 자신의 행실을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씻어내어 희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가 죽는 날 우리의 이름도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름만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론에 따라 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날마다 지은 죄들을 회개함으로 자신의 더럽혀진 행실을 깨끗케 해야 하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7월 8일(주일)
정병진목사

 

 

버가모교회와 두아디라교회는 사실 매우 닮은 교회다. 교회 안에 거짓된 이단교리를 받아들인 교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우상숭배를 해도 죄가 되지 아니하며, 음행을 저질러도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가르치는 거짓 사도와 거짓 선지자들을 두 교회는 용납했다. 그 결과 주님은 그들의 심판주로 나타났다. 좌우에 날선 칼을 가지시고, 불꽃같은 눈을 가진 이이자 빛난 주석같은 발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교회는 주의 종과 성도들간에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다. 대체 이 두 교회는 어떻게 달랐고 무엇이 같았는가? 그리고 두아디라교회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1. 들어가며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적어도 60년 이상이 지난 어느날,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요한이 영 안에서 4번의 환상을 보게 된다. 사도요한은 그때 나팔소리같은 큰 음성을 들었고 일곱금촛대 사이에 거니시고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예수께서는 당신이 누군지를 소개하시면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신다. 그 편지들 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것은 소아시아에 위치해 있던 일곱교회들 가운데 네번째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한다.

  사실 예수께서는 각 교회들마다 당신이 누구신지에 대해 다르게 말씀하셨고, 각 교회들의 상황에 맞춰 말씀도 다르게 주셨다. 그렇더라도 예수께서 각 교회에게 주신 말씀은 그 교회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은 아니다. 왜냐하면 각 교회의 편지의 말미에 가서 "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지금 성령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단호하게 들을지어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각 교회를 위해 쓰여진 편지는 그 교회의 상황에 따른 주님의 판단과 처방전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교회들에게도 주신 말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 버가모교회와 두아디라교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난 앞에 있는 3시간을 통해서 3개의 교회의 형편과 그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배웠다. 주님께서 첫번째로 말씀하신 교회는 에베소교회다. 에베소교회는 진리를 수호하려고 노력하다가 그만 주의 종들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다. 그리고 두번째 교회는 서머나교회인데, 이 교회는 유대인들과 로마정부에 의해 온갖 핍박으로 고난을 받는 교회였다. 그리고 세번째 교회는 버가모교회로서, 핍박의 때에 순교자를 배출하기는 했지만 일부 교인들이 발람의 가르침 내지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수용함으로서 거짓 진리와 타협했던 교회였다.

  이제는 네번째 교회로서 두아디라교회를 살펴볼 차례다. 두아디라교회는 사실 버가모교회와 비슷하다. 둘 다 잘못된 비진리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던 교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가모교회는 주의 종들만큼은 타락하지 않았다. 버가모교회의 주의 종들은 참된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아디라교회는 주의 종들이 타락해버렸다. 둘 다 우상숭배와 음행을 허용함으로 교회 자체의 타락을 가져왔는데, 버가모교회가 평신도들이 거짓된 진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면, 두아디라교회는 주의 종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다르다. 거짓된 진리를 포용하는 정책을 폈던 버가모교회와 두아디라교회는 어쩌면 거짓된 진리를 전혀 수용하지 않은 에베소교회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두아디라교회를 통해 주의 종이 거짓된 가르침을 수용했을 때 주님께서는 어떻게 주의 종들을 심판하시는지 그리고 타락한 주의 종이 있는 교회의 성도들은 과연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3. 두아디라 도시의 특성과 두아디라교회가 당면했던 심각한 문제는 과연 무엇이었나?

  두아디라, 자주 옷감장사 루디아가 살던 도시로 알려진 그곳, 그곳은 무역의 도시였다. 그 지역은 털실과 아마포 그리고 외투 제조업과 더불어 그것을 염색하는 공장이 많이 상주해있던 도시였다. 그러므로 다른 도시로 염색한 옷들을 판매하기 위해서 이 도시 사람들은 '길드'라는 상업조직으로 움직였다. 그러므로 상업과 무역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길드의 조합원이 되어야 했다. 특히 두아디라 조합원들은 태양신인 티림노스(아볼로)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그들은 이 외에도 다른 신들을 숭배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조직의 조합원이 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당연히 조합원의 회합에 나가야 하는데, 그때에 우상 앞에 경배하고 우상의 제물을 같이 먹어야 했으며, 2차순서로서 음탕한 행위를 저질러야 했기 때문이다. 길드조합원들에게 있어서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을 행하는 것은 친목도모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행15장의 예루살렘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우상의 제물과 음행"을 멀리해야 했다(행15:20,29). 이방인이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두아디라성도들은 비록 할례와 안식일은 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은 것과 음행을 멀리하여야 했다.

 

4. 두아디라교회가 처했던 심각한 상황은 무엇이었나?

  그런데 두아디라교회는 교회지도자마저도 거짓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세벨은 사실 두아디라교회의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자칭 자신을 선지자라고 했던 이세벨은 그 교회에 들어와서 다른 가르침을 전파했다. 그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괜찮고 음행의 회합에 나가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세벨선지자도 버가모교회처럼 니골라당의 교훈과같은  비슷한 가르침을 폈던 것 같다. 하지만 맨 처음에 등장했던 에베소교회는 두아디라교회와는 정반대로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니골라당이란 대체 어떤 자들을 가리키는가? 그들은 영지주의의 한 분파로서, 하나님에 관한 영적인 지식을 터득한 자는 그 어떤 육적인 행위를 저질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이단이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오직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 우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혹시 우상을 숭배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죄가 되지 않으며, 천국에 들어갈 부분은 자신의 영혼이므로 육체가 음행을 저질러도 상관이 없으며 그것 또한 자신의 영혼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세벨이라는 여자가 그것과 유사한 가르침을 가지고 두아디라 교회에 들어온 것이다.

 

5. 우상숭배는 어떤 결과들을 초래하는 것일까?

  초대교회와 구약의 율법의 가르침에 의하면, 두아디라교회의 주의 종들은 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상업조직에서 탈퇴하라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차마 그렇게 선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줄 한 사람의 전령을 만난 것이다. 이세벨이라는 여선지자가 나타난 것이다. 믿는 자는 비록 길드조직에 참여하여 우상을 숭배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죄가 되지 아니하며, 길드조합원들과 음행을 저질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그녀는 가르쳤다. 결국 두아디라교회의 주의 종들마저도 그만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가고 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 성도들 중에는 초대교회의 순수한 가르침 곧 참된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성도들이 있었다. 주님은 그들을 격려하시면서 자기들이 붙들고 있던 진리를 주님이 재림할 때까지 붙들고 있으라고 격려하셨다. 그래서 결국 이기는 자에게는 철장권세와 새벽별의 영광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거짓된 진리를 선포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자들에게는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예수께서 그들을 정확히 가려낼 것이며,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고서 그들을 짓눌려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전지하신 분이며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금 하기 위해 주님께서는 그때도 그들에게 징계를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세벨 본인에게는 질병의 징계로 나타나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가르침을 계속해서 따라가는 주의 종들에게는 커다란 환난이 닥쳐올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세벨의 자녀들(육적인 자식이나 영적인 후손들)에게는 철저히 사망의 재앙으로 치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것을 만나면 그때라도 회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듯 싶다.

 

6. 한국교회의 우상숭배의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문제를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말씀과 비교해보면 지금 한국교회가 바로 두아디라교회와 같은 상황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교회는 이미 우상숭배행위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주의 종들이 앞장서서 우상숭배를 준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에서 자행하고 있는 우상숭배행위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죽은 자에게 제사드리는 것이다. 그것을 기독교식으로 포장한 것이 바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이다. 사실 추도예배는 불신자들의 조상제사를 기독교화시킨 것이다. 안의 내용물은 그대로 두고 형식의 틀만 바꾼 우상숭배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고전10:20을 보라.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 민족은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에서 들어온 조상제사를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사실은  귀신들에게 제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적인 사실을 전혀 모르던 우리민족은 조선 500년동안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조상제사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예수믿는 자들은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조상제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결국 우리민족의 조상제사장려와 기독교의 우상숭배금지명령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7. 한국교회의 추도예배와 장례예배,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던 차에, 1897년 정동감리교회 이무영이라는 사람이 자기 어머니의 기일을 맞이하여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추도예배를 창안하였다. 그 이유는 부모도 몰라보는 불효자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었으나 그것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핍박을 면해보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너도나도 할 것없이 추도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결국 1934년에는 감리교에서 추도예식을 아예 예배모범집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1950년대에는 구세군과 성결교가 이 의식을 그대로 도입하였다. 그리고 장로교는 1970년대 후반에 이르자 또한 이 의식을 수용하였고, 이제는 모든 교단이 다 예식서에 추도예식과 장례예식을 넣어 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있다. 그리하여 귀신을 섬기는 추도식과 장례식이 그만 예배의 형식을 띠고 공식적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참으로 큰 일이다.

  성경을 보라. 과연 죽은 자를 놓고 예배드렸다는 장면이 나오는가? 시체는 부정한 것이라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다. 시체를 만지면 부정한 자가 되어 성전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사망은 사탄에게 속한 것이며, 시체는 사탄이 즉시 접수하여 자신의 것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시체를 놓고 예배를 드리면 안 된다. 그런 전례가 성경에 없고, 예수님께서도 한 번도 그것을 허락하신 경우가 없다. 초대교회도 그랬다. 그러므로 육체가 죽은 자는 영이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라고 했을 뿐이다.

  그렇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즉시 시체에서 빠져 나간다. 이때 믿고 회개한 자는 생명의 부활의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지만, 믿지 않고 회개치 못한 자는 사망의 부활의 몸을 입고 지옥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시체는 그 사람의 껍데기일 뿐 거기에 그 안에 영혼이 들어있지 않다. 한편 아담이 타락한 직후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흙을 먹고 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 사탄과 귀신들은 지금도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을 안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는 즉시 귀신이 속에 들랄날락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 시체 앞에 절을 하거나 향을 피우거나, 국화꽃을 바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이 곧 변형된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절대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드려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지만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우상숭배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8. 나오며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래된지가 약 100년이 조금 넘었다. 그래도 3~4대가 예수믿는 집안은 많지 않다. 대부분 1대 내지는 2대가 예수믿는 집안이다. 하지만 2~3대가 예수님을 믿는 집안이 되었는데도 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저주와 징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까? 왜 기독교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질병과 환난과 사건사고에 불신자들처럼 동일하게 휘말리고 있을까? 그것은 기독교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추도예배와 장례예배같은 우상숭배행위를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개신교단에서는 우상의 제물(음식)을 만들 때, 십자가를 긋고 만들면 해가 없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우상에게 절만 하지 않으면, 우상의 제물을 만들거나 그것을 먹어도 상관없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아니다. 다 똑같은 우상숭배행위다(시106:28~29).

  그러므로 한국교회에서 저주와 가난과 질병과 불의의 사건사고에서 확실히 벗어나려면 우선적으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같은 우상숭배행위를 그쳐야 한다. 예식서에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임종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화장예배)를 빼내서 버려야 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마15장에 말씀하신 것처럼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려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결과를 낳는 것과 같다. 그렇다. 출애굽기20:5을 보라. 거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식 3~4대까지 우상숭배죄의 댓가를 묻겠다고 말씀하셨다. 우상숭배는 나 때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죄없는 자손 3~4때까지 해악을 입게 한다. 무서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라도 혹시 우상숭배행위를 용납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있다면 즉시 그것을 그쳐야 한다. 만약 우상숭배행위를 그치지 않는다면, 믿는 자라도 계속해서 불치병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커다란 환난 가운데 던져질 것이다. 그리 자식들은 갑자기 비명횡사할 것이 뻔하다. 미국의 릭워렌 목사를 보라. 이슬람의 신 알라가 곧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다가 그의 아들이 권총으로 자살해서 죽지 않았던가! 그렇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우상숭배행위를 그치지 않는다면, 그는 죽어서 불못 곧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계21:8).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이세벨의 가르침처럼 교회 안에서 자행되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절대 용납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것은 자기자신과 후손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고, 죽어서는 지옥의 고통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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