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종말신앙(08) 천년왕국, 정말 환난 후에 지상에 세워질 왕국인가?(계20:1~6)_2021-08-26(목)

https://youtu.be/lhAAOhc8ANM [혹은  https://tv.naver.com/v/22076164 ]

 

1. 세대주의자들의 핵심 사항은 무엇인가?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슈는 크게 3가지다. 첫째, 이중 재림이다. 7년 대환난 전에 성도들의 휴거가 있고 7년 대환난 후에 지상 재림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둘째, 적그리스도 하에서 일어날 이스라엘의 구원이다. 7년 대환난 동안에 교회는 휴거되어 없고, 그때부터는 유대인의 추수가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셋째, 천년왕국이다. 그리스도의 재림후 지상에 천년왕국이 펼쳐질 것이라는 믿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중재림'은 없으며,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지지도 않는다. 다만 7년은 아니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 짐승(적그리스도)에 의해서 성도들이 환난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2. 지상의 천년왕국에 있을 것임을 믿는 이들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지상에 천년왕국이 펼쳐질 것을 믿는 기독교 교단도 있고 선교 단체도 있으며 신학자도 있고 개인도 있다. 그중에 대표는 역시 전천년설을 믿는 이들이다. 전천년설에는 2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있고 또 하나는 역사적 전천년설이 있다.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전천년설은 7년 대환난 후에 지상에 천년왕국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 전천년설을 믿는 이들은 마지막 시기에 대환난이 있을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며 이어서 지상에 천년왕국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을 믿는 개인이나 단체가 대부분 이단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지상에 천년왕국이 건설된다는 주장을 하게 되면 그러한 해석은 성경이 말씀하는 바로부터 멀어질 확률이 있다. 이러한 개인이나 단체로는,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이만희), 하나님의 교회, 여호와증인, 사랑침례교회(정동수목사), 순복음 교단 등이 있다. 

 

3. 천년왕국은 지상에 건설되는가 하늘에 건설되는가?

    천년왕국이라는 직접적인 용어가 성경에 등장할까? 아니다. 그렇지만 '천년동안 왕 노릇한다'는 말이 두 번 나올 뿐이다(계20:4,6). 그리고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천년'이라는 용어가 네 번 더 나온다(계20:2,3,5,7). 그래서 '천년왕국'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 같다. 하지만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종말의 징조와 재림과 관련하여 '천년왕국'이 직접 언급된 적은 없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은 언제 펼쳐질 것인가?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에 지상에서 펼쳐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전천년설주의자들이다. 그것도 그들은 지상에서 펼쳐질 것이라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천년왕국은 지상에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나하면 천년왕국은 하늘(천국)에서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간도 문자적으로 일천 년이라는 기간이 아니라 아주 충분하고 긴 시간을 의미하는 '천 년'동안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탄 마귀의 결박과 풀림에 따라 천년왕국이 시작되거나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은 왜 지상에 건설되지 아니하고 하늘에 건설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첫째,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이 들어가서 왕 노릇하는 왕국이 천년왕국이기 때문이요, 둘째, 천년왕국 전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아마겟돈 전쟁은 천년왕국 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년왕국 후에 있으며, 천년왕국 후에 있을 곡과 마곡의 전쟁이 곧 아마겟돈 전쟁이기 때문이다. 

 

4. 첫째 부활에 참여한 성도들이 참여하는 천년왕국은 어떠한 상태를 가리키는가?

  요한계시록 20:5~6에 의하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이 무엇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첫째 부활을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백보좌에 나아가기 위한 사람들의 부활이라고 한다면, 재림 직후 지상에 펼쳐질 천년왕국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천년왕국에 들어간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이 있고 난 후에 그들이 천년동안 왕 노릇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첫째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 드려지고 또한 바로 그 다음에 구약의 구원받은 성도들 모두가 한꺼번에 부활체를 입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승천 이후 모든 죽은 성도들이 죽은 즉시 개인적으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이후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첫째 부활로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거기에서 왕 노릇하는 것을 '천년왕국'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천년왕국'은 지상에서 펼쳐지는 왕국이 아니라 하늘에서 펼쳐지는 왕국인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기간도 산술적으로 천 년이 아니라 아주 길고 충분한 시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 재림 때까지의 기간(이것은 아무도 알 수 없음)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5.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같은 전쟁인가 다른 전쟁인가?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마지막 시기에 지구상에서 펼쳐질 전쟁에 관한 소식이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부른다(계16:13~14, 19:19~21). 그렇다면 이 전쟁은 천년왕국 전에 있을 전쟁인가 아니면 천년왕국 직후에 있을 전쟁인가? 혹시 요한계시록의 저술을 시간적인 순서의 기록으로 오해함으로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다 시간적인 순서로 기록된 것이라고 믿는다면, 천년왕국은 분명 아마겟돈 전쟁 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저술은 역사적인 순서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바로 다음에 펼쳐질 일들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막간 환상들을 보여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왕국'이라는 말씀도 거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어제도 살펴보았지만 아마겟돈 전쟁은 천년왕국 후에 있을 인류 최후의 전쟁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전쟁을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일으킨다는 관점에서 보면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불리지만, 이것을 사탄 마귀가 일으킨 전쟁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 최후의 전쟁은 '곡과 마곡의 전쟁'인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6:13~14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의 시작은 무저갱이 열리면서다. 즉 짐승(용)이 올라올 때부터다. 이때는 요한계시록 9장에 있는 다섯째 나팔이 울릴 때다. 그때부터 성도들에 대하여 사탄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가용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성도들을 핍박할 것이다. 사실 아마겟돈 전쟁이나 곡과 마곡의 전쟁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본 하나의 전쟁인데, 헬라어 원문으로 보지 못하고, 첫째 부활에 관한 이해가 없기에 이 두 전쟁을 각각 다른 전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어제 전했던 말씀을 보라. https://dongtanms.kr/77507). 왜냐하면 용이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질 때에 그때 동시에 짐승(적그리스도)과 거짓 선지자도 함께 불구덩이 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날 것이다. 그리고 인류 최후의 전쟁은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에 무저갱에서 올라온 용(사탄 마귀)과 그리고 짐승(적그리스도)과 거짓 선지자가 함께 일으키는 전쟁으로서, 이것을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하며, 곡과 마곡의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다. 흰 말을 타고 오신 예수께서는 그때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칼로서 이 전쟁을 끝내실 것이다. 그리고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산 채로(왜냐하면 영체이나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간 것이니까) 불못에 던져 넣을 것이다. 

 

2021년 08월 26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종말신앙(06) A.D.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은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의 성취인가 대환난의 예표인가?(마24:15~22)_2021-08-24(화)

https://youtu.be/A0v0u4fwbO4아침묵상입니다.  [혹은  https://tv.naver.com/v/22031734 ]

 

1. 환난과 대환난은 어떻게 다른가?

  환난과 대환난은 어떻게 다른가? 환난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되어 온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창세 이후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산 자들은 다 짐승을 경배해 왔으며, 이때 짐승 경배하기를 거절한 자들은 다 그 짐승으로부터 핍박을 받거나 죽임을 당해왔기 때문이다(계13:8~10).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환난을 받아 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의 끄트머리에 대환난이 또 한 번 더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하여 무저갱에 갇혀 있는 사탄 마귀가 진짜로 올라오는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계20:3,7). 그때의 싯점은 '두 증인'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죽임을 당할 때일 것이다. 이것이 대환난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환난의 예표가 몇 번 있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도 있었고 신약시대에도 있었는데, 신약시대에 있는 대표적인 대환난으로 A.D.70년에 있었던 로마의 디도 장군과 그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쌌을 때에 일어났다. 

 

2. A.D.70년에 있었던 대환난은 무엇이었는가?

  A.D.70년에는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예루살렘을 5개월간(A.D.70.4월~8월 9일) 에워쌈으로 대환난은 시작되었고,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하여 그것이 끝이 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A.D.68년경 로마의 디도 장군의 아버지였던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과 그의 아들 디도(티투스)와 함께 예루살렘을 에워쌈으로 먼저 시작되었다. 하지만 로마 장군 베스파시아누스가 네로 황제의 사망으로 인해 본국으로 소환되었고 곧이어 그는 스스로를 황제로 공포했다(A.D.69.7.1). 그리하여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디도(티투스)가 전쟁에 대한 책임을 맡았다. 이때 디도는 잠깐 자비를 허락했다. 그러자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펠라 지역으로 떠나갔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이 있었고 그때가 되면 빨리 도망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4:15~22). 그리고 로마 군단의 지원을 받은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에워싼지 5개월 만에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멸망하게 되었다. 

 

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이다"는 말은 어떻게 성취되었나요?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15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24:15)" "멸망의 가증한 것"은 다니엘이 말했는데 그것이 진짜 이루어지면 빨리 도망치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이 '대환난'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을 가리키며, '거룩한 곳'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가? '멸망의 가증한 것'은 짐승(적그리스도)의 우상이며, '거룩한 곳'은 제3의 성전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러나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것의 대표 주자는 세대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다니엘의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에 7년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고, 짐승 곧 적그리스도가 그 이레의 절반(3년 반)에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이며, 그리고 그때 유대인들이 그것을 거부할 것이므로 그때에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예수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과연 다니엘이 말한 바 '한 이레'를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니면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이것을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으로 보지 않는다. 다니엘의 한 이레 곧 7년 대환난과 후 3년 반의 기간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주일 오후찬양예배 때(https://dongtanms.kr/77356)에도 살펴보았지만, 7년 대환난은 다니엘의 한 이레의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짐승에 의한 대환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이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마태복음 24:15의 평행 본문들을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가 있다(막13:14, 눅21:20). 

막13: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눅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우리는 마가복음이 맨 처음 쓰였고, 이어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그 뒤에 그리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쓰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저자는 그 전에 쓰여진 채 있었던 마가복음을 이미 자기의 손에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마가복음 13:14의 말씀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멸망의 가증한 것"과 "서지 못할 곳"으로 나온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과 "거룩한 곳"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썼던 누가복음에서는 그 부분을 "군대들"과 "예루살렘"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말은 어떤 군대들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이 포위당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4. 예수께서 인용하셨던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럼, 예수께서 인용하고 계시는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인가?(마24:15) 그것은 사실 다니엘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다니엘에서는 이 표현이 딱 세 번 나온다(단9:27, 11:31, 12:11).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것들 중에 어떤 것을 생각하시면서 비유하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께서는 그것의 하나를 딱 지정하여 말씀하신 것도 아니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이 예언했던 "멸망의 가증한 것"을 다니엘 9:27의 말씀만으로 한정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그것 외에도 두 번 더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단11:31, 12:11). 

단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단11: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단12: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이것들 중에서 다니엘 9:27의 말씀을 보자. 이는 '70이레의 예언' 중에서 '한 이레'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 있을 일이다. 그런데 다니엘 11:31에서는 헬라 제국이 분열된 후 셀류커스 왕조에서 나온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 왕이 저지른 가증한 일(B.C.168년)을 예시하고 있다. 그리고 다니엘 12:11은 앞의 것을 종합해서 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 9:27의 말씀이 언제 실행되었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다니엘의 한 이레에 대한 해석은 너무나 다양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들은 대부분 맞지도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로 증명된 것은 A.D.64년에 일어난 로마의 폼페이 장군이 예루살렘에 군대를 데리고 들어가서 성전을 유린하였던 일이다(https://dongtanms.kr/62962). 고로,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은 헬라 제국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 왕과 로마 제국의 '폼페이 장군'과 그의 군대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유린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5. 세대주의자들이 해석하는 '한 이레'에 있을 일은 과연 합당한가?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을 참고는 할 수 있지만 그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 곧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말은 장차 미래의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을 예고한 것이지, 결코 세대주의자들이 말하고 있는 한 이레에 있을 일들 곧 적그리스도가 제3의 물리적인 성전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1:20의 말씀은 예수께서 마태복음 24:15에서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한 것이다. 즉 로마의 '군대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에워싸이는 것이다. 그것은 곧 대환난을 가리키는 것이다. 곧 말세에 A.D.70년에 있었던 것과 같은 대환난이 다시 올 것이라는 뜻이다. 

 

2021년 08월 24일(화)

정병진목사

 

 

과연 성경에 '7년 대환난'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혹시 나온다면 어디에 있는 것을 가져온 것인가? 예수님께서도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신 적이 있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 '7년 대환난'이라는 용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에을 보면 오직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만 나오고 있을 뿐인데, 거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환난의 기간을 전3년반과 후3년반을 나눌 수 있는가? 그리고 후3년반의 기간은 대체 어떤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것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이 나는가? 이 모든 것이 이 한 편의 설교에 들어있다.

2021-08-2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바른종말신앙(05) 7년 대환난은 과연 성경적이며 또 그것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마24:15~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qBhXzK264iE  [혹은 https://tv.naver.com/v/22002725   ]

 

1. 들어가며

  '7년 대환란', 이는 세대주의자들이 교회 시대의 마지막 시기에 있을 기간으로 설정한 말이다. 이들은 7년 대환란을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이레'에서 가져왔다. 그들은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를 7년으로 해석하여, 그것이 종말의 시대에 성취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어느새부턴가 한국교회에서도 마지막 시기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자행될 핍박과 고통의 시기를 "7년 대환난'이라는 말로 표현해 왔다. 그렇다면, 과연 '7년대 대환난'이라는 용어는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정말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을 지칭하는 대용어로서 과연 합당한가? 과연 예수께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셨던 것이 있으셨는가? 우리는 이제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이 용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대환난기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지까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든 성도들은 대환난을 잘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며, 혹 그 기간에 우리가 놓여 있을지라도 대환난을 잘 이겨내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7년 대환난'이라는 용어가 과연 성경에 있으며 실제할 것인가?

  '7년 대환난'이라는 직접적인 용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럴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용어를 우리가 사용할 때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그러한 7년 대환난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세대주의자는 어떻게 7년 대환난을 사용하고 있는가? 그들은 7년 대환난은 이스라엘 민족과 휴거되지 못하고 남겨진 그리스도인들이 겪을 환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환난의 기간은 교회를 지칭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환난임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공히 함께 겪어야 할 환난을 가리킨다. 마지막 시기가 도래하면 정말 적그리스도에 의하여 대환난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3. '7년 대환난'이라는 용어는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가?

  그렇다면,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용어인 '7년 대환난'을 세대주의자들은 대체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가? 그것은 다니엘서에서 가져왔다.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이레'의 예언에서 가져온 것이다. B.C.538년 메대왕 다리오 원년에 다니엘은 자기 민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거기에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만에 마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니엘은 그날이 곧 다가올 것을 예견하고는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재를 덮어쓰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보내어 장차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에 되어질 미래의 일들을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바로 70이레'의 예언이다(단9:24~27). '70이레'에 관한 자세한 예언은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 여기서는 대강 아웃트라인만 살펴볼 것이다.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중건하라는 명령이 날 때를 기준으로 하여 7이레와 62이레가 지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62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일은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과 그 후에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70이레의 예언은 메시야의 출현과 죽음 및 예루살렘의 파괴에 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이 한 이레를 7년으로 계산하여, 이것이 69이레 후에 바로 성취될 것이 아니라, 공백기를 거치고 나서(교회시대 2천년), 인류 마지막의 어느 시기에 성취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므로 인류 마지막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는 시기를 '7년 대환난'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받는 핍박이므로, 그때 나타나서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존재는 이스라엘 민족과 7년간 평화조약을 맺었다가 파기하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죽일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기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기라고 그들은 정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기가 되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추수가 있어야 하기에, 교회는 잠시 그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7년 대환난 전의 '교회의 비밀휴거'라는 것이다. 

 

4. 예수께서는 '대환난'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으며, 그때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과연 대환난에 관하여 말씀하셨을까? 그렇다. 예수께서는 마24장에서,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 곧 우상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때가 대환난의 날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예루살렘에 세워질 때에 이스라엘에게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마24;15).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에 세워질 우상을 숭배하기를 거부함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죽임당할 것인데 이것을 두고 대환난이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 기간을 '7년'이라고 딱 못 박지는 않으셨다. 다만 '대환난'이라고만 말씀하셨다(마24:21). 그리고 그 기간도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감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22). 그러므로 세대주의자들이 그 환난의 기간을 7년이라고 말을 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산술적인 7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는 '대환난'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으며, 그 시기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대환난의 기간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7년 대환난을 요한계시록도 과연 언급하고 있는가? 둘째, 대환난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겪는 대환난인가? 셋째, 그 환난의 시작과 끝은 언제인가? 

  첫째, 7년 대환난의 기간을 과연 요한계시록에서도 언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있다'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은 산술적으로 7년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7년이라는 시간이 나오지 않고, 42달이라는 기간이 연거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42달은 한 달을 30일로 치자면, 1260일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삼년반이고, 다니엘에 나오는 표현으로 치자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기간을 3년반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숫자가 완전수 7의 절반으로서 3.5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난의 기간이 완전히 가득찬 기간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둘째, 대환난은 과연 이스라엘 백성만이 겪는 대환난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올시다'이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때에 대환난을 겪을 것이겠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자들 곧 교회도 동일하게 환난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계12:17, 13:7,10). 그때는 예수님을 믿는 이유 때문에 받는 환난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도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환난인 것이지, 성전을 세우고 거기에서 양잡고 하는 일 때문에 받는 환난은 아닌 것이다.

  셋째, 그 환난의 기간의 시작과 끝은 과연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대환난'이란 그냥 단순한 환난이 아니다. 그 환난은 아주 큰 환난이어서, 그런 환난이 이전에도 없었지만 이후에도 없을 만큼 아주 거대한 환난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환난은 이전에 있었던 환난과 좀 차별이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도 사실 성도들은 환난을 겪어 왔다. 그것은 짐승(적그리스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거짓선지자(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의한 핍박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은 용(사탄마귀)가 가세한 환난이다(계16:13~14). 즉 사탄의 삼위일체인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에 의한 환난인 것이다. 그래서 '대환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때의 환난은 아주 무서운 환난이 될 것이다. 성도들은 이때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의해 가차없이 목베임을 당할 것이다계13;10, 20:4). 그리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사람도 역시 목을 베임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 그 시기의 최소 시작 지점은 '두 증인'이 사역을 마칠 때다(계11:7, 17:8). 일곱 나팔 재앙으로 치자면 다섯째 나팔이거나 여섯째 나팔 재앙의 시기일 것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활동하는가? 그것은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땅의 왕들을 동원하여 하늘의 대왕이신 예수님께 대항하는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이 끝마칠 때까지다(계19:11~21). 이것을 나팔 재앙과 대접 재앙으로 말하면, 여섯째 나팔 재앙에서 여섯째 대접 재앙까지일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재림하시어서,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무저갱에 쳐넣으셔서 끝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같은 전쟁을 가리키는 것인데, 전쟁의 주된 존재가 아마겟돈 전쟁은 짐승과 거짓선지자이고, 곡과 마곡의 전쟁은 용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계20:10 헬라어원문 참조).

 

6. 나는 대환난의 기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그날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 내 믿음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고난도 각오하고 심지어 죽음도 각오하는 것이다. 믿음의 지조를 꼭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지막의 시기에 가서는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고 기꺼이 내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둘째,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회개하고, 조상들의 죄까지도 회개하여 귀신이 더이상 내 몸과 내 가정과 내 자녀에게 역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 시기에 가서는 내 식구 중에 믿지 않는 자가 나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라고 했다(마10:36). 그러므로 마지막 시기가 되기 전에 꼭 가족을 전도해야 한다. 명심하라.

  셋째,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상급얻는 자가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은사와 달란트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야 심은대로 천국에서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지난 주일(15일)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세력에 넘어가고 말았다. 2001년부터 미국에 의한 침공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국가였지만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신앙의 자유가 가능하였다. 그래서 약 1만명의 성도가 생겨났다. 하지만 지난 15일에 아프가니스탄이 급진적인 이슬람세력인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레반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그날부로 외국인과 연결된 사람들을 검색하여 처형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 선교사들과 접촉한 사람, 미국에 협조한 사람이 날마다 총탄의 세례를 받아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마지막 시기에도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미움을 받아야 하고 형제와 가족들에 의해 고발당하여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중에 가면 더 잔인하게 처형될 것이다. 우리 나라도 잘못 했다가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 오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그러한 날이 가까이오고 있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평화의 사도처럼 가장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종교간의 전쟁을 그치고자 종교통합을 이루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은 예수 이외에 다른 구원자를 인정할 수 없기에, 종교통합을 반대할 것이다. 그러면서 처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순교자의 숫자가 찰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약속해주셨다.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대환난의 날을 감해주신다고 말이다(마24:22). 그러므로 성도들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 죽는 자는 천국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계2:10). 그날 환난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조금씩 해 나가야 한다. 그럴려면 기도하여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죽음의 공포까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8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가짜 천국과 지옥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32) – 박소리목사편(03) – 성령받은 자는 7년대환난을 겪지 않는가?(행14:19~23)_2020-11-17(화)

https://youtu.be/8mCtvMym2aM  [혹은 https://tv.naver.com/v/16742502  ]

 

1.  박소리목사(전 미국 켈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주마교회 담임목사)는 천국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했나요?

  박소리목사는 천국에는 빛이 환하게 비치지 않는 성밖의 장소가 있고, 빛이 환하게 비치는 성안의 장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은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박소리는 목사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자신의 어머니가 성밖의 어두운 곳에 살고 있었고, 자신의 어머니의 집은 허름하고 나지막한 집이었으며 재개발지역단지에 있는 연립주택의 모습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천국의 아름다운 것을 영원토록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그들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들어갈 수는 있어도 부끄러워서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박소리 목사의 집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었기에, 자신은 어머니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어머니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 성 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계21:26). 천국에 성밖과 성안은 신분이나 계급별로 구별장소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 성밖에 자신이 사는 집이 갖고 있고, 성도들은 예배드리기 위해 성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2. 박소리목사가 말하는 삼층천은 무엇인가요?

  박소리목사는 천국에 1층천과 2층천과 3층천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던 자신의 어머니는 1층천에 살고 있었고, 자신은 천국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인 3층천에 자기의 집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후12장에 보면, 하나님이 계신 곳을 3층천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천국 자체가 3층천인 것이지, 천국 안에 1층천과 2층천과 3층천의 하늘들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3. 박소리가 목사는 예수님으로부터 종말에 있을 환난에 대해 어떤 말씀을 들었나요?

  박소리 목사는 천국에서 사도요한을 만났으며 그의 입으로부터 환난 때의 상황을 주님을 대신하여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도요한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 주님이 사랑하는 자는 환난을 겪더라도 아주 가볍게 겪을 것인데, 7년대환난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질문하기를 "환난에 남겨진 자들은 누군가요?"라고 물었을 때에, 사도요한은 성령받은 자 중에는 거의 없고, 환난치하에 남겨진 자들을 돌볼 사명자들만 조금 남을 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환난에 남겨진 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농담으로 여긴 자들,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가벼이 여긴 자들,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환난전휴거론을 주장하는 것으로서, 성경에 없는 휴거론을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환난전휴거를 지지해주는 직접적인 단 한 개의 성경구절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성경은 성도들이 환난기를 겪어야 한다고 말하나요?

  성경을 보면, 그동은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다 환난을 겪었다고 증거하고 있으며, 마지막 때에도 역시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나로 말미암아 박해는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의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그들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의 사도였던 사도바울도 행14장에서 루스드라에서 돌을 맞아 죽을 뻔 한 이후에 제자들을 만나서 말하기를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고 말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여러 가지 증언들을 살펴보더라도 모든 성도들은 다 환난을 다 겪게 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5. 요한계시록에 보면, 성도들이 환난을 겪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성경구절은 있나요?

  요한계시록을 보면 무수히 많은 곳에서 환난 중에 자연재앙의 환난과 사람에 의한 핍박의 환난을 성도들이 겪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갇히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순교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계6"9~11, 2:13). 다 환난을 겪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결코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며, 끝까지 믿음의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계14:12). 혹시 죄를 범하였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회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계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계2: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계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계7:13-14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13: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환난을 면제받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계3:10은 잘못 번역된 것임). 누구든지 환난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고, 사도들도 그렇게 살았으며, 신약성경의 기록자들도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정금같은 신앙이 되게 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환난 후에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24:29~30). 그러므로 환난을 예상하고 있지 않는 자는 막상 환난이 불어닥치게 되면 환난을 견디지 못하고 신앙을 포기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환난을 대비한 채 회개하고 영적으로 무장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하겠습니다. 

 

2020년 11월 17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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