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기도는 점점 깊어진다. 그의 21일 작정기도와 금식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 사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나신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창18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타나셨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다니엘의 경우는 다르다.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힛데겔 강가의 환상"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다니엘서 10장을 통하여 어떤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이며, 기도에는 어떤 영적 비밀이 들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제 기도의 놀라운 세계로 한 번 들어가보자.

2020-07-01(수) 수요기도회
제목: 다니엘강해(17) 힛데겔 강가의 환상 중 첫번째 예언(단10:1~11:4)
https://youtu.be/XiZRQj3k1y4 [혹은 https://tv.naver.com/v/14578271  ]

 

 

1. 들어가며

  다니엘 7장부터 12장까지는 총 4가지의 환상과 묵시가 들어있다. 7장에는 "네 마리 짐승"에 관한 환상 및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나오며,  8장에서는 "수양과 숫염소"의 환상과 2,300주야 계시가 나온다. 그리고 9장에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의 장래에 관한 계시인 "70이레"의 묵시가 나온다. 그리고 단10~12장에는 "힛데겔 강가"에서 다니엘이 보았던 묵시가 등장한다. 특히 단7~12장에 나오는 4가지 환상과 묵시 중에서 다니엘10장~12장에 나오는 계시를 일컬어 흔히들 "힛데겔 강가 환상" 혹은 "힛데겔 강가의 묵시"라고 부른다. 다니엘은 놀랍게도 세 이레 기도 후에 힛데겔 강가에서 자기 앞에 현현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리고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앞으로 인류역사에 전개될 큰 전쟁에 관한 환상들을 보고 또한 듣는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어떻게 되어서 환상을 보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가 보았던 환상은 어떤 것이었으며, 그때 나타나서 다니엘에게 설명해준 환상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오늘 말씀은 힛데겔 강가의 환상의 서론(단10:1~2) 및 첫번째 계시(단10:21~11:4)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 환상의 서론부분을 통하여 성도의 작정 및 금식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며, 기도하면 하늘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기도응답은 언제 주어지는지 등에 관한 영적인 비밀들을 배울 수가 있을 것이다. 

 

2. 다니엘은 언제 힛데겔 강가의 묵시를 보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다니엘은 언제 이 묵시를 보았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사왕 고레스 제3년(단10:1)".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이때는 B.C.536년으로서, 다니엘이 약 85세쯤 되었을 때 본 환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연대기의 기록에 따르면, 다니엘이 이 묵시를 보았던 "바사왕 고레스 제3년"은 B.C.549년이다. 왜냐하면 고레스가 왕권을 잡은 해가 정확히 B.C.551년이었기 때문이다. B.C.551년 고레스는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진 사람들에게 귀환령을 허락했으며, 고국에 돌아가 자기들의 신전을 짓고 살라고 해방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그때는 메대왕 다리오(B.C.575~540년)가 아직도 여전히 집권하고 있던 시기다(참고로, 다리오는 고레스의 외할아버지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의 묵시를 보게 되었던 해는 메대왕 다리오(B.C.575~540)가 아직도 통치하던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참고, 성경과학연구소 김명현교수 책 참조). 

  그렇다면, B.C.549년 쯤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때는 B.C.551년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1차포로귀환 허가를 받은 유다백성들 중 약 5만명이 B.C.550년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그리고 그 이듬 해인 B.C.548에 유대인들은 드디어 제2성전 건축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지금 고국으로 되돌아간 사람들의 안녕과 그들에 의한 안전한 성전건축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 때 다니엘의 나이는 약 64세정도였을 것이다. 

 

3. 다니엘은 무슨 기도를 드렸는가?

  다니엘은 그때 세이레(21일)을 작정하고 금식으로 기도하고 있었다(단10:2). 그는 그때 앞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날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차 일어날 헬라제국에서 올라오는 북방왕에 의한 남유다의 유린의 핵심이었다. 북방왕은 곧 새로 짓게 될 성전을 더럽힐 것이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할 것이고, 멸망하게 하는 가능한 것을 세울 것이고 했다. 그러자 다니엘은 세 이레동안 작정하며 금식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장차 당할 일에 대해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4. 다니엘이 기도하자 하늘에서 벌어진 일은 무엇이었는가?

  다니엘이 작정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자 2가지 일이 일어났다. 하나는 그가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했던 첫날(B.C.549년 1월 3일)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가브리엘 천사를 파송한 것이었다(단10:12).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작정하고 기도하면 기도를 시작하자마다 응답해주신다. 또 하나는 다니엘의 기도로 인하여 하늘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가지고 내려오는 가브리엘 천사장을 바사왕국의 군주(대장,두목,통치자)인 수호신(천사장, 아마도 루시퍼였을 것)이 막아섰다는 것이다(단10:13). 그러자 21일동안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오지를 못했다. 그런데 21일이 지난 후 1월 24일이 되자, 가장 높은 군주(천사장)의 하나인 미가엘이 가브리엘을 도와주므로 가브리엘은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할 일을 와서 알려준다. 그렇다. 기도하면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 간의 전쟁이 일어난다. 물론 모든 전쟁은 선한 영들의 승리로 끝난다. 하나님께서는 그때에 악한 영들보다 훨씬 더 강한 천사를 파송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아니, 그럼, 바사왕국의 군주(천사장)가 가브리엘을 막아서므로 가브리엘이 21일동안 다니엘에게 오지 못하고 지연된 것이 아닌가?" 혹은 "천하의 미가엘 천사장이라 할지라도 바사왕국의 군주인 루시퍼를 처리하고 못하고 3주동안이나 싸우고 있었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추측이다. 왜냐하면, 가브리엘이 21일동안 다니엘에게 오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의 허락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사왕국의 군주를 처리할 수 있는 자는 최고의 군주(천사장)였던 미가엘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2장과 20장에 보면,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사탄마귀)과 그의 천사들로 더불어 하늘에서 전쟁을 펼치는데, 그때 용과 그의 천사들도 싸우지만 이기지 못하고 쇠사슬에 결박당하여 하늘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렇다. 미가엘이 능력이 없어서 루시퍼를 못 물리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있어서 그를 그냥 놔둔 것이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기도응답을 막아서고 있는 루시퍼를 그냥 두시었는가? 그것은 다니엘을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가셔서 하셔야 할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죄많은 인간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직접 뵈올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21일동안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자신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의 현현을 준비하도록 루시퍼의 방해를 그대로 두신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21일간 기도로서 계속해서 자신을 정결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다니엘에게 나타난 세마포 옷을 입으신 분은 대체 누구인가?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21일동안 금식하며 기도를 마치던 날 곧 그의 금식기도가 끝나는 날(1월 24일), 한 사람(남자)가 힛데겔의 강물 위에 공중에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때 다른 사람도 다니엘과 함께 있었지만 무섭고 두려워 도망치고 숨어버린다. 그러므로 그 환상은 오직 영안이 열린 다니엘만이 홀로 보게 되었다. 그때 장면을 잠깐 정리하면 이렇다. 힛데겔 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 편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서 있었고, 저쪽 편에서는 미가엘 천사가 서 있었다. 그리고 강물이 흘러내려오고 있는 위쪽 부분의 공중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신 것이다(단12:5~7).

  그때 다니엘은 똑똑히 세마포 옷을 입고 공중에 서 있는 분을 보게 된다. 그분은 세마포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허리에는 우바스에 나오는 순전한 금띠를 띠고 있었다. 또한 그의 몸은 황옥빛이었으며, 그의 얼굴은 번개빛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그의 눈은 이글거리는 불꽃 같았으며,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았다. 그의 말소리는 많은 군중의 소리와도 같았다. 

  그렇다면, "세마포옷을 입으신 사람"은 대체 누군가? 어떤 사람은 그를 "미가엘 천사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안식교...). 하지만 그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모습은 부활승천하신 예수님 곧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오실 이이자 전능한 하나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계1: 13~16). 천상에 계신 예수님을 A.D.95~96년경 사도요한이 보았는데, 그때 예수께서도 다니엘 때와 같이 발에 끌리는 세마포옷을 입고 있었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다. 그리고 그의 머리털은 흰 양털같이 새하얗고 눈 같았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았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놋) 같았으며,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는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았다(계1:13~16). 그렇다. 그리고 천상의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사도요한처럼 다니엘도 세마포옷을 입으신 이를 보자마자 똑같이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계1:17). 그들은 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본 것이다. 

  또한 "세마포옷을 입으신 이"는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에스겔 선지자가 본 보좌 위의 하나님의 모습과도 역시 흡사하다(겔1:26~28). 고로 우리는 "세마포옷을 입으신 분"이 전능한 한 분 하나님의 현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성육신으로 사람 앞에 나타나기 전의 하나님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직접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한 번 나타나셨고, 다니엘에게 두번째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만큼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상달되는 아주 특별한 기도였던 것이다. 그의 삶과 그의 기도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직접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다니엘을 찾게 만든 것이다. 

 

6.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들려준 1차소식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그때 나타난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어떤 소식을 들려주었는가? 그 소식은 크게 4부분이다. 첫째, 곧 바사제국이 멸망당하고 헬라제국이 세워지지지만 능력있는 한 왕이 죽은 후 그의 왕권은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이 그것이다(단11:2~4). 둘째, 남방왕와 북방왕 사이의 전쟁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단11:5~20). 셋째, 비천한 북방왕에 의한 이스라엘의 유린당함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단11:21~45). 넷째, 마지막 날에 있을 대환난과 성도들의 부활과 상급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단12:1~3). 

  그중에서 다니엘 11:2~4은 가브리엘 천사가 들려준 큰 전쟁에 관한 첫번째 소식이다. 가브리엘은 이 소식을 전해주기 전에 "은총을 받은 다니엘"을 향하여 힘을 북돋아주면서, 자신이 왜 왔는지를 그에게 들려준다. 이때 가브리엘은 자기가 돌아가면 바사왕국의 군주와 다시 쌔우게 될 것이고, 자신이 떠나간 후에는 헬라왕국의 군주가 또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은 이미 진리의 책에 기록된 대로 일어나는 것이며, 그때 자기를 도와서 헬라군주와 대항해줄 자는 이스라엘의 군주인 미가엘 뿐이라고 하였다(단10:21). 하지만 자기도 미가엘 천사장을 도와준 일이 있음을 말하기도 하였다. 즉 가브리엘도 메대사람 다리오 원년에는 미가엘을 도와준 일이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단11:1). 이렇듯 선한 천사장들끼리는 서로 도와주는 일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서 가브리엘은 첫번째 큰 전쟁에 관한 소식을 다니엘에게 들려주었다(단11:2~4). 그것은 바사 나라에서 고레스 이후에 3명의 왕들이 더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단11:2). 그들은 곧 바사왕 제2대 캄비세스2세, 제3대 스메르디스, 제4대 다리오1세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때 바사왕 다리오1세는 B.C.490년 수십만 대군을 일으켜서 헬라와 전쟁을 치르는데, 그는 아테네 전투에서 대패하여 물러나게 된다(이 전투가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다). 그러자 돈이 많은 바사의 제5대왕이 일어났으니 그가 바로 저 유명한 "아하수에로"로서 "크세르크세스"왕이다. 그는 10년 뒤 B.C.480년에, 헬라의 아테네를 공격하고 그곳을 쑥대밭을 만들었다. 하지만 해전에서 대패하여 나라가 쇠잔하게 되는데, 그 해전이 바로 저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후 헬라제국에서 "한 능력있는 왕"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바로 헬라제국의 대제 "알렉산더 대왕"이다(B.C.334~324). 그는 비록 10년 밖에 통치하지 못했지만, 그의 강성한 나라가 그만 사후 사방으로 나뉘게 될 것이며, 그의 왕의 자리도 그의 아들에게로 넘어가지 아니하고, 그 외의 다른 사람에게서 넘어간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알렉산더 사후 두 아들들 모두가 암살당하게 되고, 헬라제국은 이제 4명의 부하장수들 곧 리시마쿠스, 카산더(카산드리), 셀류커스, [프]톨레미에게로 나뉘어 넘어가게 된다(단11:3~4). 

 

7. 나오며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 앞에 작정하고 금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신다. 둘째, 모든 기도는 영적 전쟁을 수반한다. 특히 기도를 가져가고 가져오는 자와 그것을 막기 위한 사탄진영의 싸움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어떤 사탄의 세력도 하나님의 군대를 막을 수는 없다. 넷째, 기도응답이 지연되는 이유도 사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른 것이지 사탄이 힘세고 강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섯째,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것은 사람을 거의 죽음직전의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성을 가진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우리의 기도는 기도를 하기로 작정한 날에 이미 하나님의 응답이 준비되고 시행된다는 것이다. 일곱째, 중요한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가브리엘이 직접 가져온다는 것이다. 일곱째, 이 세상 제국의 흥망성쇠는 이미 기록된 진리의 책대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여덟째, 세상 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왕들까지도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세워지고 폐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다니엘서 10장은 기도에 관한 놀라운 비밀들을 우리에게 많이 알려준다. 우리도 더욱 더 기도에 힘써야 하겠다

 

2020년 07월 01일(수)

정병진목사

지금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태극기집회나 혹은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정치참여에 열심을 내야 하는가? 아니면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이 기도만 하고 있다가는 나라가 공산주의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면서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이 분연이 일어날 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참여를 해야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진정 무엇을 위해 내 목숨이라도 내놓아야 하는가?

2019-09-29(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과연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8:33~38)
https://youtu.be/mDc32heQffw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과연 참여해야 하는가 아니면 참여하지 말아야 하는가? 어떤 이는 정교분리원칙에 따라 교회는 정치에 참여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만약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면 교회가 권력의 맛을 보게 되고 그러면 교회도 타락하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요, 반대로 교회는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분들도 있다. 그것은 왜냐하면 만약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아 나라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되어버린다면 교회는 규제의 대상이 되다가 결국 핍박과 파멸의 대상으로 전락되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잘못하면 교회는 정부를 향해 촛불을 들거나 데모행사에 참여해야 옳은 것인가? 아니면 나라가 어떤 세상이 되든지 교회는 오직 교회에 모여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면 되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정치에 대하여 어떻게 바로보아야 하면, 정치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를 성경적인 원칙에 따라 구약시대의 선지자들 그리고 신약의 사도들은 어떻게 말했으며, 예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정치참여"란 대체 무엇이며, 민주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정치참여"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정치참여"란 주권자된 국민이 정치현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정치과정에 참여를 하거나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정치참여는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활동을 가리키는 바, 정치활동에 대한 지지를 보내거나 반대하는 모든 행동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민주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가? 그것에는 총 6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선거를 통한 참여방법이 있다. 선거는 대의정치의 꽃이다. 그리고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후보자를 밀어주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둘째, 국민투표를 통한 참여방법이 있다. 이는 자신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방식인데, 선거가 아니지만 나라의 중요 정책사항을 국민에게 묻는 것이다. 셋째, 여론과 언론활동을 통한 정치참여방법이 있다. 오늘날에는 SNS나 유튜브를 통해 주도적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자기의 의사를 정치권에 전달할 수도 있다. 넷째,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참여방법이 있다.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단체를 지지하고 후원함으로서 자신의 정치의사를 반영케 하는 것이다. 다섯째, 집회나 시위를 통한 방법도 있다. 물론 이 때에는 법이 정하는 바의 절차와 방법을 따라야 한다. 여섯째, 국가에 대한 청원을 통한 정치참여방법이 있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청와대에 있는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림으로서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중에서 어떤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할수 있는가? 아니 그것을 묻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정치를 참여해도 괜찮은 것인가?  그것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으로 그 해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3.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정치에 참여했을까?

  어떤 이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의한 정권에 맞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B.C.1446년경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는 이집트의 바로왕에게 대항하여 백성들을 구출해 낸 사건이 대표적인 구약의 정치참여의 사건이며, B.C.760년경 구약의 선지자 아모스가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4)"라고 선포함으로서, 정권에 항거했으니 이것이 정치행위가 아니고 또 무엇이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세가 이 세상의 권력을 가진 자를 대항한 사건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는 애굽왕으로부터의 탈출인가? 그리고 아모스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에게 항거한 사건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북이스라엘왕에 대한 책망인가?

 

4. 사도바울과 사도요한은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 어떻게 말했는가?

  그렇다면 신약의 사도들은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라고 했는가? 사도바울은 국가와 정부에 관한 성도들의 태도에 대해서 로마서 13장에 말한 바가 있다. 그런데 그 때는 언제였는가? 그때는 로마황제들 중에 처음으로 황제숭배를 시작했던 네로황제 치하였다. 네로는 자신을 신으로 섬기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한 로마황제다. 그런데 그때 사도바울은 국가의 권력에 대해서 성도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라고 말했을까? 그것은 롬13:1~7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그것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권세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든지 위로있는 권세에 순종해야 한다." 둘째, "특히 국가의 권세도 이와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국가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권선징악을 집행하는 하나님의 봉사자이기 때문이다." 셋째, "만약 국가의 통치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넷째, "그리고 모든 백성들은 국가가 합당한 권세를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에 세금을 바쳐야 한다." 여기에 보면, 국가와 정부에 대한 백성의 태도는 분명하다. 그것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합당하게 권선징악을 집행하지 않고 반대로 행할 경우에는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다. 사도요한이 활동하던 때는 사실 로마황제들 중에서 가장 기독교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였던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 때였다. 그때에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국가권력의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국가권력에 의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말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기꺼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사도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13:10)" 그렇다. 사도요한은 아무리 불의한 정부와 국가라 할지라도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그것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죽이는 로마 황제에 대해서는 죽음으로서 저항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력으로 로마에 대항하라는 말이 아니다. 억울하지만 합법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나 사도요한은 왜 국가권력에 대해 이렇게 순종해야 한다고 누누이 언급하고 있는가? 그것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만약 불의한 국가와 정부의 행태를 보고 그 권위를 부정하고 뒤엎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거역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누가 맨 처음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는가? 그것을 그것을 무시했는가? 그것은 바로 사탄마귀다. 사탄마귀가 하나님의 질서를 뒤엎고 자신의 최고의 권위를 얻으려고 시도했던 자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운 권세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는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의한 국가와 정부의 권위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성도라도 마귀의 전철을 밟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신앙과 이 세상의 권력자의 권위가 충돌하였을 때에 자기의 신앙을 지키기로 결정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이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주신 권위를 거역할 것이기에 거기에 합당한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권위도 존중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예수께서는 정치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로마정부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셨는가? 당시 유대당국자들은 예수님을 거짓으로 모함하여 사형언도를 내리도록 로마총독인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기고 있었다. 그들이 로마정부에 내놓았던 죄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되어서, 로마정부에 세금을 내지 말라고 했소이다. 이는 반역의 행위가 아닙니까?" 그러자 빌라도총독은 예수님을 불러다가 심문을 한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시요?"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기자신은 유대인의 왕으로 온 것이 아니며, 진리를 전하러 온 하늘의 왕이라고 했다. 또한 예수께서 세우시고자하는 왕국은 결코 이 세상의 왕국이 아니라고 했다. 그 이유는 만약 정말 예수께서 정말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더라면, 이미 자신의 부하들을 시켜 자신을 빌라도총독에게 넘기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께는 당시 유대당국자들이 자신을 로마총독에게 넘길 때에는 열두영되는 천사들을 시켜 그들을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로마의 총독 앞에서 섰을 때에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그것은 그분이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었고, 말재주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실 때 이미 자신에게 맡겨진 아들로서의 직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속의 사역을 감당해야 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진 하늘의 권력이나 자신의 부하들을 시켜 유대당국자들을 제압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마권력에게 하소연하지도 않았다. 예수께서는 로마총독에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라고 하셨다.

 

6. 불의한 정부나 국가권력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정부나 국가권력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정부나 국가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신에게 부여한 권세를 합당하게 사용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국가나 정부가 불의하게 권세를 사용하여 백성들을 탄압하고 독재하여 백성을 괴롭히고 죽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때에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때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첫째, 불의한 정권에 의해 권력이 집행되더라도 거기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런데 정부의 압력이 우리의 신앙을 포기하게 하거나 억압하거나 핍박하여 죽이려 했을 때에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그때에는 저항해야 한다. 그때라도 권력을 뒤엎기기 위해 폭력을 쓸 것이 아니라 국가의 권력 앞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권력을 부정하기 위해 저항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항거인 것이다. 국가의 권력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권력이 위에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우리의 신앙도 포기하면서 국가의 권력앞에 복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억울함을 목숨을 내놓으면서 항거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의한 정권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정치행위다.

  하지만 오늘날 불의한 정권에 맞서 시위와 집회를 주도하는 이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그들은 정권을 뒤집기 위해 자신의 세를 과시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권력을 가진 정권이라도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불법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을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행동에 참가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마귀의 행위를 따라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의한 정권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무엇인가? 그것은 불의한 정권을 뒤집으려고 시도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배후에서 악한 일을 조종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결박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회개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잘못을 진정으로 아뢰고 회개했다면, 우리는 불의한 정권의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악한 귀신들을 결박하고 그들의 권세가 무너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렇지만 사실 불의한 정권 배후에서 악한 영이 날뛰게 된 것은 다 우리들의 탓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에 우리가 악을 행하고도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오늘의 심판으로 도구로 사용하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4개의 종파가 있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열혈당원과 에세네파"가 있었다. 이중 “바리새파”는 그냥 말씀대로만 지키려고 했던 경건한 율법주의자들을 가리키며, “사두개파”는 성전의 제사장들로 구성된 자들로서, 성전을 이용하여 돈과 권력을 손에 쥐려고 하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열혈당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려고 애썼던 독립투사들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힐 때에 함께 못박혔던 자객들과 같은 자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에는 완전히 관심을 끝 채 광야로 들어가, 물로 자신을 성결케하고, 금식하며 기도로 보낸 “에세네파”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 네 가지 유대인들의 종파들 중에 어느 종파만을 두둔하지 않았다. 그렇다. 국민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정치집단에 소속되어서 얼마든지 정치참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다르다.  즉 하늘에 속한 자로서 우리는 악한 자 사탄과 대적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 결코 이 땅의 정부에게 대적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과 국가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두고 불법이라고 하고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우리를 핍박한다면 우리는 목숨읋 걸고서 그것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수호와 복음전파에 목숨을 걸어야 할 사람들인 것이지, 결코 어떤 사상에 목숨을 걸어야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어떤 사상의 조류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신앙의 수호를 위해 내 목숨을 내놓을 준비와 각오를 하고 있는가? 주기철목사를 보라. 그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항거하라고 선동했는가? 아니다. 그는 신사참배를 통해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일본에 저항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목숨으로 지켜낸 것이다.

 

2019년 9월 29일(주일)

정병진목사 


구약시대와는 달리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오셔서 그에게 역사하실 수 있게 되셨다. 구약시대에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은사와 능력을 주셨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누구든지 믿는 자들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신다. 그리고 또한 구하고 찾는 자들에게는 바깥에서도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함께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수적으로 성령의 내적인 충만을 받아야 하겠지만 더불어 바깥에서 역사하사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들도 체험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확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바깥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해, 다양한 은사들과 능력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인가? 성경의 사례들을 보니 약 4가지 정도의 사례들이 있다. 사실 성령체험은 생각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부르짖음과 사모함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 성령체험을 위한 4가지 실제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이제 찾아보자.

20129-03-08 금요기도회
제목: 외적인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1:12~14과 2:1~4)
https://youtu.be/caTfoSMVQEY


1. 들어가며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방식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믿는 자들 속에서 역사하는 방식이 있고, 또 하나는 믿는 자들 밖에서 역사하는 방식이 있다.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방식은 구약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이었으며, 믿는 자들 밖에서 역사하는 방식은 구약에도 있기는 있었으나 아주 작은 분량에 불과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욜2:28~29과 렘31:33과 겔36:26~27의 약속에 따라, 오순절이후 성령께서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기 시작하셨고, 한층 더 확장된 방식으로 역사하기 시작하셨다. 첫째,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 속에 들어와 역사하기 시작하셨으며, 둘째, 믿는 자들 밖에서 일하시되 특정한 몇몇  사람에게 일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 밖에서 역사하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오늘 이 시간에는 오순절이후 성령께서 밖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임재 방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밖에서 역사하시도록 하려면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믿는 자들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은 어떤 사역들을 감당하시는가?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는 이제 믿는 자들 속으로 들어가실 수가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 속에 들어가시는 성령께서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 그것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성령께서는 그때부터 사람들을 거듭나게하신다. 그리고 거듭난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보증해주기도 한다. 또한 죄를 책망케 하여 회개시킴으로 사람을 정결케도 만들어주고, 진리의 말씀도 깨닫게 도와주시시며,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해주시기도 한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 밖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대체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인가?

  믿는 자들 밖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첫째로, 능력을 부어주신다(행1:8). 둘째로,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성령의 은사들을 주시기도 하신다(고전12:7~11). 그리고 셋째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담대한 마음까지도 주신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 밖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면 역사할수록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성령의 표적들은 놀랍게 표현되는 것이다. 그때에는 아무리 고칠 수 없는 질병이라 할지라도 병이 그만 떠나가고, 귀신도 떠나기도 한다. 또한 주께서는 성령을 통해 주시는 다양한 은사들이 그들에게 주어지며, 담대한 마음이 생기게 되니, 용기백배하여 복음을 더욱 힘있게 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힘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외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믿는 이들이 바깥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못받을 것이라고는 진단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구원문제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문제인 것이지, 결코 외부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믿는 자들 밖에서 역사하는 성령님을 체험하게 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 완전히 신뢰하게 되고, 기적을 맛보고, 병든 것이 치유받고, 귀신도 떠나가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3. 믿는 자들이 바깥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체험하기 위해 필요한 실제적인 4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믿는 자들이 바깥에서 역사하는 능력있는 성령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사례들을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4가지 경우의 사례들이 있다. 우리도 이 사례들을 따라서 성령의 체험을 간구한다면 우리에게도 초대교회와 같은 바깥에서 역사하는 성령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외적인 성령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고전12:31,14:1,14:12,시107:9).

고전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14: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시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둘째,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내게도 부어지도록 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행1:14,눅11:13,18:18).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셋째, 생각나는 모든 죄들 회개해야 한다(행2:38).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시66: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넷째, 마지막으로 이미 성령받고 성령충만한 주의 종들(지도자들)의 안수기도를 받을 필요도 있다(행8:17,19:6).

행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4. 나오며

  성령을 체험하는 일은 생각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것에는 간절함과 부르짖음이 동반되어야 한다.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림이 필요한 것이다. 성령체험은 결코 인식의 전환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방언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자신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도 그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도 인격을 가지고 있는 분이므로 그로부터 무안을 당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을 환영하고 그분이 나를 주관하시도록 내 자리를 내어드리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회개가 되어지고 죄를 멀리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성경을 더욱 더 깨닫게 되고 예수님을 더 잘 믿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불어 외적인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동시에 외적인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방언도 체험하고, 능력도 받고, 질병도 치료받고, 귀신을 물리쳐야 한다. 그래야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된다. 그래야 담대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3월 8일(금)

정병진목사

  


  한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여야 할까?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가야 할 지도자는 어떤 조건의 사람이어야 하는 것인가? 오늘 이 시간에는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지만, 그 상황을 믿음으로 대처하는 히스기야의 남다른 모습을 통해서, 참된 지도자상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히스기야왕은 남유다의 3대 선한 왕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분열왕국이후 남유다 왕으로서는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왕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왕위에 등륵하자마자 국정기조에 나가서 행한 연설과 대제국의 앗수르의 침략에 맞서 싸운 기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25세에 왕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어서 맨 처음에 한 일은 국방력강화가 아니었다. 왕권강화도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최우선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그는 왕으로 등극하자마자 부친이 닫아놓은 성전문을 열고 성전기명들을 깨끗히 한 다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으로 예배를 회복했다. 그리고 남유다와 이미 망한 북이스라엘에에 이르기짜 보발군들을 보내 유월절 절기을 지켰다. 그러나 여건상 유월절절기를 지키지 못한 사람을 위해 왕은 일주일 더 기간을 연장했고 그리하여 온 백성들이 유월절 절기를 지킬 수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14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앗수르왕 산헤립이 남유다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파죽지세로 내려오는 앗수르군대를 어떻게 막을 수도 없었다. 남유다의 견고한 요새같은 46개 성급이 함락되었고, 서남쪽에 위치한 제2의 수도였던 라기스마저 함락되고 말았다. 그러자 앗수르왕 산헤립은 그의 부하장수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항복하라고 종용하였다. 이 세상 어떤 나라와 어떤 신이 대왕 앗수르 산헤립의 손에서 벗어난 일이 있느냐면서,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자는 히스기야왕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지 말라면서 말이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우선 라기스에 있는 산헤립에게 전쟁배상금을 주고는 예루살렘을 지켜낼 방도를 찾아았다. 그가 행했던 일들은 곧 남유다를 건지는 바른 길이 되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왕은 대체 어떻게 앗수르의 공격에 대비했을까? 그는 크게 4가지를 준비하였다.

  첫째, 그는 앗수르의 공격을 막을 방책을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전문적인 전투지휘관들을 불러모아 의중지를 모았다(대하32:3). 그는 중차대한 문제를 혼자 생각하고 혼자 처리한 것이 아니라 먼저 중지를 모으기 위해 전투지휘관 전략회의를 개최한 것이다. 예루살렘을 지켜내기 위한 방책을 논의한 것이다. 그렇다. 참된 지도자는 혼자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람들을 불러놓아 그들의 의견을 청휘하여 바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둘째, 그는 실제적으로 예루살렘성을 보호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대하32:3~6). 히스기야왕은 예루살렘성을 보호하고 오랫동안 방비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우선 성밖에 있는 물근원을 위장하여 찾지 못하도록 하였고, 물은 지하수로를 통해 성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히스기야 터널공사). 그리고 허물어진 성벽의 일부는 보수하였고, 또한 성바깥에 외벽을 하나 더 만들어 쌓았다. 그리하여 몇 년이 지나도 버틸 수 있는 성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 참된 지도자는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지도자가 아니다. 자기도 함께 동참하면서 위기상황에 하나씩하나씩 꼼꼼히 대비해나가야 한다.

  셋째, 그는 대제국 앗수르왕의 군대장관인 랍사게의 항복종용의 말을 듣고 흔들리고 있는 백성들을 성문광장에 모아놓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였다(대하32:6~8). 이것은 참된 지도자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항목인 것 같다. 백성의 마음이 나뉘어지만 아무리 힘쓰고 애쓴다 할지라도 물거품이 될 확률이 많아진다. 그런 전차로 히스기야왕은 백성을 불러모아 예루살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가치있는 일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앗수르왕이 섬기는 신의 도움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이 훨씬 더 나음을 연설로 표현하였다. 그렇다. 참된 지도자는 자기의 뜻을 백성에게 제대로 알리고 그들을 설득하여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아내자고 말해야 한다. 진실성이 약해 설득력이 없는 지도자는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그는 인간의 능력 위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았고 그분의 도움을 구했다(역대하32:20). 그는 이 문제를 먼저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받고 있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알렸고 그로 하여금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자신도 부르짖어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오직 세상 나라의 신들은 사람이 만든 신이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온 천하만국에 홀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니, 산헤립의 손에서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지켜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을 능멸하는 산헤립을 벌해달라고 기도했다.

  어찌 되었을까? 놀라운 사실은 그 일이 있고 난 후 다음 날이 되자, 적군 30만명 가운데 18만 5천명이 송장으로 변해있지 않은가? 역사책에는 그때 급성전염병으로 앗수르의 군대가 전멸되다시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뜬 소문을 듣고 철수하여 자신의 신인 니스록에 경배할 때에 자기의 두 아들이 들어와 그를 암살해버렸다. 그리고 앗수르제국은 점점 쇠퇴하여갔다.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박근혜대통령이 있다. 이명박정부 때처럼 언론과 사람의 눈치보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능한 지도자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변 강국들의 싸움에 휘말려 손해볼 것이 아니라 그들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국민담화를 통해 전 국민들을 하나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종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정작 자신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신다. 하나님께서 절대 나라가 망하도록 놔두시지 않으신다. 나라를 보해주시는 것이다. 나라가 끝장나 없어지지 않게 해 주시는 것이다. 오 그분이 누구인가? 그분이 바로 홀로 살아역사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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