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61)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이 반드시 경험하는 일은?(행14:19~28)_2022-11-02(수)

https://youtu.be/mfiM5t6E8kM  [혹은 https://tv.naver.com/v/30436112 ]

 

1.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이 수리아의 안디옥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1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 바울 일행은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많은 결신자들을 얻는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바울의 전도함을 시기하여 바울과 바울의 일행을 박해하고 그곳에서 쫓아 내버린다(행13:50). 그러자 이동한 이고니온에서 바울은 또 많은 결실을 얻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손으로 표적들과 기사들을 행하면서 주의 은혜의 말씀을 증언했기 때문이다(행14:3). 하지만 여기에서도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치려 하여 루스드라로 이동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진짜 놀라운 일이 일어났으니 그것은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 걷게 되었기 때문이다(행14:8~10). 그러자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드리려고까지 했다. 그러자 바울은 이를 억지로 말리게 되는데, 유대인들이 또 여기에도 들이닥친다. 심지어 루스드라에서 약 170Km 떨어진 비시디아 안디옥과 45Km 떨어진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들이 와서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치게 된다(행14:19). 바울은 피를 흘리고 쓰러지면서 얼마나 많이 맞았을까? 그들은 바울이 이미 죽은 채 있는 줄로 단정하고 그를 메어다가 성밖에다가 던져버린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11장 25절에서 "한 번 돌로 맞고"라는 간증을 한 적이 있는데, 바로 루스드라에서 당한 이 일을 기록하고 있는 것 같다. 

 

2. 바울은 왜 이틀 만에 다시 일어나 전도할 수 있었는가?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돌에 맞아 죽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루스드라에서 얻은 제자들이 그를 둘러서 있을 때, 그는 일어났다. 원문에 보니, "아니스테미'라는 단어로서, '위로 일으켜 세워졌다"는 뜻이다. 그렇다. 그는 죽은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다시 그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추측컨대 바울이 3층 천을 방문하고 왔다는데 이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다음 날 바울이 더베로 이동하여 거기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칼로 손을 베이어도 일주일은 아파서 손을 잘 움직일 수가 없는데, 무수한 돌에 맞아 머리가 깨져서 피를 많이 흘렸던 바울이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고 또한 이틀 만에 아무렇지도 않게 전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치료하시면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치유 천사를 시켜서 천국에 있는 생명나무의 잎사귀를 발라버리기 때문이다(계22:2). 천국과 지옥은 부활체가 들어가는 장소다. 그런데 둘 다 부활체를 입은 사람이 다칠 수가 있다. 부활체는 현재 육체의 몸처럼 피를 흘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도 치료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생명나무의 잎사귀'이다. 아마도 바울이 그걸로 치유받은 것 같다. 그러면 즉시 몸이 고쳐지고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사명을 가지고 온 자는 쉽게 죽지 않는다. 그 사명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3. 왜 유대인들은 바울을 그토록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이려 했는가?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은 그토록 바울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한 것인가? 그 이유를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그들이 바울을 그토록 미워하고 죽이려 했던 이유는 2가지 때문이다. 첫째, 구원론의 문제요 둘째는 신론의 문제 때문이다. 첫째, 바울이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가 없으며,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행13:39,48).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은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으로서는 칭의도 받지 못하고 영생도 얻지 못한다고 가르치니 바울이 그토록 미웠던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율법을 무시하고 모세를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법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 준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한 그렇게 지킬 수 없는 법이기에 그것을 지켜서 생명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둘째, 바울이 전한 하나님은 두 분 하나님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한 분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다고 전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다(신6:4).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복음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이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믿고 있는 신과는 다른 하나님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창세기만이라도 제대로 보았더라면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아들로 오실 것을 알았을텐데(창18:10,14), 그들은 하나님께서 장차 아들로 사람 가운데 오신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과 신적 경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의 무지와 오해가 바울을 돌로 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 대해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 이렇게 말했다. 

살전2:14~16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4. 비시디아 안디옥에 다시 돌아온 바울의 권면은 대체 무엇인가?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은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해 주시고 살려주셔서 이틀 만에 일어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파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도의 역순으로 되돌아가면서 교회의 상황을 살피고 각 지역 교회에 장로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말씀 안에 머물러 있기를 권면했다. 그러던 중에 바울이 다시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이르렀다. 그리고 거기에서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반드시 꼭 알고 있어야 할 아주 중요한 말씀을 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은 환난들을 통과하여야 한다"는 것이다(행14:22).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매우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5. 바울이 언급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하나님의 왕국'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께서 왕으로 다스리는 왕국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왕국은 예수님만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으로 전 우주를 통치하는 나라다(롬8:17). 왜냐하면 그때에 성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통치하는 공동상속자들이 되기 때문이다(롬8:17). 그렇다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모든 성도들이 다 통치자가 되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왕 같은 제사장도 있고, 종 같은 제사장도 있기 때문이다(벧전2:9). 여기서 '제사장'이라 함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가리킨다. 그렇다. 천국에서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모두 다 제사장의 신분을 갖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국에 들어간 모든 성도들이 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말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핍박을 받고 조롱과 멸시 그리고 끝내는 죽음을 맞이하는 자들이 결국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딤후2:10~12). 그것도 '많은 환난'을 통과하는 자들이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믿음 안에서 천국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복음을 전파할 때에 우리가 핍박를 받고 조롱과 멸시를 받는다면 그리고 죽는다면 그는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될 것이다. 그것도 같이 믿고 있는 이들로부터 그렇게 핍박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유는 그들이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한 분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나 비슷한 것 같다. 

 

2022년 11월 02일(수)

정병진목사

 

 

 

성도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육체의 한계 속에서, 사탄마귀의 유혹과 그가 주는 핍박 가운데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사람은 자연적인 재앙에도 노출되어 있고 사탄마귀의 미혹와 핍박에도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것을 이기는 성도가 된다면 우리는 천국이나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 놀라운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성도들은 과연 그곳에서 어떤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가?

2020-02-09(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환난(고난과 핍박)을 이겨낸 자들이 받을 축복(계7:14~17)
https://youtu.be/xPZOOiaZiBE


1. 들어가며

  마지막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환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징조로서의 환난은 사실 A.D.70년 예루살렘의 파괴로 인하여 1차로 실현되었다(마24:15, 눅21:20). 그리고나서 어언 2,000년이 훌쩍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도 주님은 오시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재림의 시기에 더 한 발자국 다가와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날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환난을 이겨낸 자들이 받게 되는 축복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오늘은 환난을 잘 통과한 자들이 받을 축복에 대해 살펴보자.

 

2. 주님은 환난전에 다시 오시는가 환난후에 다시 오시는가?

  다시 오시마고 약속하시며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과연 언제 오시는가? 대한민국의 상당수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환난전에 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환난전휴거설" 내지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 훈련받고 온 처음 장로교 목회자들이 미국의 세대주의 종말사상을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조금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환난전휴거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어느새부턴가 환난중간휴거설도 솔솔 흘러나온다. 전3년반은 지나갈 것이고, 후3년반이 되기 직전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것은 전3년반은 미온적인 환난기이고, 후3년반은 강력한 대환난기라고 보고, 전3년반이 지나고나서 진짜 대환난이 찾아올텐데, 그 대환난이 있기 전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어느것이 성경적인가? 환난전휴거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면, 잠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마24:21-22 이는 그 때에 큰 환난(대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대환난의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마24:29-31그 날 환난(대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성경은 분명하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게 될 우주적인 부활과 우주적인 휴거는 오직 단회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오심도 대환난 후에 있을 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환난을 받지 않고 휴거된다는 이론은 결국에 사람을 속이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정작 대환난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

  우선 초대교회 성도들의 경우를 보자. 그들은 환난전에 휴거되었는가? 아니다. 한 사람도 그러한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당시 원형경기장으로 끌려나가 사자에게 뜯겨 죽임당하거나 장작불 위에서 태워져 죽임당해야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일제시대 때 주기철목사는 어떠했는가? 그는 환난을 받지 아니했는가? 6.25전쟁 때를 보자. 손양원목사는 공산군에 의해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고 휴거되었는가? 아니었다. 그동안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환난을 통과했다. 세계의 교회사가 다 이것을 증거하고 있고, 우리나라 교회사도 여전히 이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기주장을 하고 싶다고 해도, 환난후에 오신다고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것을 뒤집어서는 아니 된다. 어떤 이는 마태복음서에 "종말장"이라고 부르는 마24장에 기록되지는 아니했지만 어딘가에 은밀한 휴거가 숨어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바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없는 것은 없는 것이지 거기에다가 무엇인가를 보태서는 아니 된다. 성경은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마24장 어디를 찾아본다고 해도 거기에는 은밀한 휴거는 나오지 않는다. 휴거는 우주적이고 공개적이고 동시적으로 나올 뿐이다. 그런데 도둑이 밤에 몰래 오듯이 주님께서 은밀하게 오셔서 알곡만 휴거시킨다고 미혹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도둑의 비유는 주님의 재림의 은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돌발성을 말해주는 비유이기 때문이다(마24:43~44). 성경에는 은밀한 휴거가 없다. 떠들썩한 우주적인 휴거가 있을 뿐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서 말씀 가운데 비집어넣으면 아니 된다. 그것이 미혹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는 환난을 다 받아야 한다.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난 뒤에 주님이 오실 것이다.

 

3. 요한계시록은 환난전휴거를 말하고 있는가 환난후휴거를 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환난전휴거를 말하는가 환난후휴거를 말하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100% 환난후휴거를 말한다. 환난후에 주님께서 백마를 타시고 하늘로부터 오시는데, 이때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천년동안 왕노릇하던 성도들과 함께 악의 무리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아마겟돈 전쟁(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 때에 오신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계19:11~21). 그리고 그것을 암시하는 무수한 환상과 말씀들이 있다.

  이것들 가운데 요한계시록 7장에도 성도들이 환난을 통과하여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찬양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이미 환난을 통과하여 첫째부활에 참여하여 천국에 들어간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때 사도요한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가운데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앞에서 찬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계7:9). 그러자 그들이 누군지가 궁금하던 차에, 하나님의 보좌 좌우에 있는 24장로들 중의 어떠한 한 사람이 사도요한에게 그 정체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들은 큰 환난(대환난)에서 지금도 나오고 있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자기들의 옷들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라고 말이다(계7:14). A.D.95년 사도요한의 때에도 이미 환난을 통과한 성도들이 첫째부활을 입고 승천하여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찬앙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일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첫째부활"이라 함은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단어로서(계20:5), 예수그리스도의 승천이후 죽은 성도들이 죽은 즉시 순간적으로 부활체를 입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 자들은 곧바로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알현하고 천국의 자기집에서 왕노릇하게 된다. 이것을 두고 "천년왕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 잘 모르겠다면, 헬라어원문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어보기를 추천해본다. 아니 다 죽어보면 곧바로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4. 천국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어떤 분이 되어주시는가?

  첫째부활(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재림전까지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부활하는 것)에 참여한 성도들은 곧바로 천국으로 간다. 그리고 천국의 중심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고 생명강를 따라 황금길 위로 날아가, 새 예루살렘 성의 중심인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주님을 뵈옵는다. 이렇게 해서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천국에 들어온 성도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천국에서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신 이"이라고 불리는데, 그분께서는 천국에 들어온 성도들에게 장막을 쳐주신다(계7:15). 그리고 그때에 어린양은 그들의 목자가 되어주신다(계7:17).

  그렇다면 천국에서 하나님은 두 분인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이렇게 말이다. 사실 3차원의 물질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에 대해 온전히 다 알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진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요4:24). 단지 보좌에 앉아계시는 분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것은 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성도들이 천국에 올라가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볼 수 없다. 아니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딤전6:15~16).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요4:24). 하지만 천국에서 성도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를 자기의 눈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 성도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성육신하셨던 그분이 돌아가실 때에 그 육신을 가지고 그대로 부활체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실 우리가 영원히 볼 수 없지만, 아들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천국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예수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어린양"이라는 표현은 그분이 어떤 분이고 무슨 일을 알려주는 존재 곧 상징하는 표현으로 가장 많이 성경에 등장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가 올라가신 예수님에 대한 가장 많이 쓰이는 호칭이 바로 "어린양"이시다. 어린양은 순결하고 흠이 없다는 뜻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의 죄를 위해 속죄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불린다. 그것도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 환난을 통과하여 천국에 들어온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보이시는가? 그것 역시 "어린양"이시다. 하지만 이때 "어린양"이라는 표현은 속죄의 간증을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뜻이지, 직접 어린양의 모습으로 존재하지는 않으신다. 왜냐하면 만약 어린양이 실제로 존재하는 양이라면, 예수님은 아마도 괴물로 보일 뿐, 결코 어린양의 모습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어린양에게는 눈이 일곱 개가 달려있으며, 뿔도 일곱 개가 달려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계5:6). 여기서 예수님의 눈과 뿔이 "일곱"이라는 것은 이 땅에서의 그분의 살피심과 권세가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분은 당신의 눈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감찰하고 계시며, 그분이 이 땅에서 발휘하는 권세는 완벽한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천국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하나님과 어린양은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 이후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불리게 된다(계22:1,3). 만약 하나님과 어린양이 다른 존재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들"이라고 해야한다. 하지만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보좌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단수)"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과 어린양은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5. 환난을 통과한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환난을 통과해서 천국에 들어간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과혜택은 무엇인가?

  그것은 총 5가지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더이상 굶주리게 하지 않으신다고 했다(계17:16a). 그리고 둘째로, 그들을 더이상 목마르게 하지 않으신다고 했다(계17:16b). 그리고 셋째로, 그들 위에 해(태양)이나 뜨거움이 상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했다(계17:16c).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천국에 들어온 성도들에게 주시는 축복과 혜택이다. 이러한 축복은 사실 더이상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자연재앙들을 더이상 받지 않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들이다.

  굶주림과 목마름은 사실 이 세상에는 기근의 재앙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천국에서는 기근의 재앙이 없다. 그곳은 모든 것이 풍족하고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먼저는 먹을 것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 천국에는 부활체로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아니한다. 그렇지만 이 땅에 먹던 습관이 있기에 천국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놓으셨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천국에서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 아무것이나 다 먹는가? 그렇지는 않다. 천국에서 먹을 수 있다는 나오는 것은 딱3가지다. 첫째는 생명나무의 열매다(계2:7, 22:1~2). 생명과는 생명나무로부터 나오는데, 생명과는 달마다 그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어마어마한 길이의 생명강가에 있는 생명나무로부터 모든 성도들은 마음껏 생명과일을 먹을 수가 있다. 이것은 과일이니 일종의 후식이다. 하지만 주식처럼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둘째는 만나다(계2:17).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나와서 40년간 만나를 먹었다. 바로 그 만나를 천국에서 우리들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음료수로서 포도주가 있다(눅22:18,30). 천국에서는 포도주를 마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서 만나와 포도주 그리고 생명과를 먹는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참고로, 천국에서 육식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화장실도 없다. 먹은 음식을 배출할 때에는 방귀를 뀌는데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더이상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다. 이것은조금 있다가 살펴보겠지만, 어린양이 목자가 되사 베풀어주시는 혜택과 동일하다.

  그런데 성도가 천국에서 더이상 굶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한다는 것은 사실 이사야선지자가 예언한 천국에 관한 성취다. 왜냐하면 장차 도래할 천국에서는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사49:10)"고 예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간 자에게 주어지는 2가지 축복이 더 있다. 그것은 어린양이 목자가 되어주심으로 주어지는 2가지 혜택이다. 우리의 생각으로 볼 때 양은 결코 목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양"이라는 표현이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서 주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목자가 되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목자는 여호와에 대한 묘사로서 등장한다(시23:1~2, 100:3). 시편기자가 말하기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3)"고 비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오면 목자는 우리 주 예수님을 가리킨다(요10:11,14). 고로 우리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로 나타나셨던 한 분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더불어 천국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갓 천국으로 들어온 성도들에게 목자가 되어주신다고도 했다(계7:17). 그래서 주시는 2가지 혜택이 있다. 첫째는 목자가 양떼를 이끌고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듯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생명수의 샘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했다(계7:17a). 그러면 우리는 더이상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성도가 이 땅에 있을 때에 복음전파하는 일로 인하여 옥에 갇히게 되거나 핍박을 받으면서 목말라했던 것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그것을 더이상 경험하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뜻이다. 둘째는 목자는 구원받은 성도의 눈에서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고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겠다고 하셨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천국에 있는 보좌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에서 사도요한은 천국의 실재가 어떤 곳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21:4에 나온다.

계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렇다.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도 육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부활의 몸이 거하는 곳이다. 또한 거기에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사탄마귀도 없다. 그들은 형벌의 장소인 불못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우리가 죄를 지어 고통받고 질병에 시달릴 이유가 없다. 더욱이 죽을 일도 없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고, 죄로 인한 아픔들 곧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 땅에 살 때 이 세상의 죄악의 상태를 보면서 애통해하는 우리의 마음이 천국에서 환한 빛으로 바꾸어질 것이다. 산상수훈에서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마5:4). 그런데 놀랍게도 사망을 폐하시고 모든 눈물을 씻겨주신다는 예언의 말씀이 이사야서에 도 나온다는 사실이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25:8)" 참으로 이사야서는 구약의 신약성경이자 구약의 요한계시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메시야에 관한 수많은 예언들을 담고 있고 있으며, 천국에 관한 예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이 땅에 살 때 성도는 이 세상 사람처럼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육체를 갖고 있는 어려움을 그들과 똑같이 견뎌내야 한다. 자연재앙을 만나 기근이나 뜨거움이 임하면 그것에 의한 고통을 함께 겪어야 하는 것이다. 전염병이나 지진을 만나더라도 함께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그런데 성도들은 이 땅에서 살 때 사람으로부터 오는 재앙도 추가로 더 이겨내야 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미혹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의한 핍박이다. 사탄은 사람들을 써서 성도들을 미혹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선지자나 거짓그리스도에게 속아 남어가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사탄은 사람들을 써서 성도들을 핍박도 할 것이다. 성도들은 이것까지도 이겨내야 한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므로 짐승에 의한 핍박에 대처하는 방법은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라고 했다(계13:10).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러한 자연적인 재앙들과 사람들에 의한 환난을 다 이겨낸다면 우리는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혹 주님의 재림시까지 살아남아있는 성도가 있다면 그들은 그때 우주적인 부활 곧 둘째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천국이나 새하늘과 새땅에 에 들어가게 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굶주리거나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며, 해와 달과 별들의 이상에 의한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더이상 사탄마귀과 존재하지 않으므로 죄로 인한 질병이나 아픈 것을 맛보지 않아도 될 것이며 더이상 죽음도 맛볼 일도 없을 것이다. 눈물, 근심, 걱정, 아픔, 애곡 등이 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머지 않았다. 끝까지 잘 참고 견뎌내자. 마라나타!!!

 

2020년 2월 9일(주일)

정병진목사 


서머나교회, 부활승천하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존재하는 7가지 유형의 교회들을 언급하셨다. 그중에 두번째로 언급하신 교회가 바로 서머나교회다. 그런데 이 교회을 향한 주님의 책망이 없다. 오직 격려와 칭찬만 있다. 세상 천지에 격려와 칭찬만 들을 수 있는 교회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아무리 뛰어난 성도라 할지라도 한 가지쯤은 책망받을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교회는 그 어떤 책망도 듣지 않았다. 대체 이 교회는 어떤 교회였길래, 주님으로부터 이러한 과분한 평가를 받았을까?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있을 텐데, 그때 칭찬듣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서머나교회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오늘은 그것을 알아보자.

 

1. 예수님은 수많은 교회들 중에서 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를 언급하셨을까?

  이 세상에 있는 교회는 어떤 유형의 교회로 분류할 수 있을까? 예수님에 의하면, 교회 총 7가지 유형의 교회로 분류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시 소아시아에 현존하고 있던 교회들의 모습이다. 그 교회들은 에베소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빌라델비아교회, 라오디게아교회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는 당시에 현존하고 있던 교회였을 뿐만 아니라 초기교회 때부터 주님 오실 때까지 있게 될 역사적인 교회의 유형과도 흡사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첫번째 교회로 소개되고 있는 에베소교회는 거짓 이단적교회를 분별하다가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로서, 기독교초기교회의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예수부활이후~ A.D.96년경). 그리고 두번째 교회로 소개되고 있는 서머나교회는 로마의 도미시안황제의 황제숭배강요 때부터 기독교신앙이 로마의 공식종교로서 인정되기 전까지의 교회로서(A.D.96년경~313년), 유일신을 믿는 유대인들과 로마의  세력에 의해 기독교인들이 핍박받아 순교하는 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고 버가모교회는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세상과 타협하는 로마공인시대의 교회를 가리키고(A.D.313~590년), 두아디라교회는 영적인 지도가가 타락의 극치를 달리는 중세로마카톨릭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s.590~1517년). 그리고 사데교회는 1517년 종교개혁이후의 1,700년까지 시대의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을 지녔지만 말씀을 순수하게 보존하면서 갖은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교회는 말세지말의 교회상으로서, 물질적으로는 풍성하지만 영적으로 거의 죽어있어 뜨뜻미지근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를 가리킨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이러한 일곱교회의 기록 순서가 소아시아의 지역위치상으로 볼 때 시계가 돌아가는 방향과 똑같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러한 배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역시 예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신 것을 다시 한 번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 예수께서 언급하신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기록 순서 또한 기독교회의 역사적인 변천순서와 거의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소아시아에 있었던 두번째 교회 곧 로마의 도미시안황제 의한 황제숭배강요이후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의 기독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서머나교회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서머나"라는 도시와 서머나교회의 상황을 알아보자.

  먼저, 서머나도시와 서머나교회 상황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서머나라는 이름은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몰약'이라는 뜻이다. 특히 서머나라는 도시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56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는 항구도시로서, 헬라의 유명한 시인 호머의 출생지라는 설이 있는 바로 그 도시다. 그런데 이 도시 역시 다른 도시처럼 황제숭배를 강요받던 도시였다. 만약 이것을 거절했을 경우에는 사자밥이 되거나 화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그 배후에는 유대인들의 시기질투심이 한몫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A.D.70년을 기점으로 유대인들이 대거 서머나교회로 이주하였고, 서머나에서 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승에 의하면, 당시 서머나도시의 절반이 유대인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은 그들은 가만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단의 앞잡이인 로마정부를 꼬드겨 로마황제를 자신의 주님과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들을 같이 철저히 죽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나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었다. 그것은 이미 주님께서 언급하신 경고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머나교회는 이처럼 불굴의 믿음, 모진 고난과 박해속에서도 지키는 자신의 믿음, 그리스도로부터 칭찬만 듣는 교회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직 유일하게 살아남은 교회는 일곱교회 중에서 오직 서머나교회 뿐이다.

 

3. 서머나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과 그 교회의 상황과 칭찬 그리고 축복의 약속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서머나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으며, 서머나교회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서머나교회는 오직 칭찬만 받은 교회였는데, 그들은 어떤 칭찬을 받았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축복의 약속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성경 한 구절 한 구절(계2:8~11)을 직접 헬라어에서 직역하면서 살펴보도록 하자.

 

가. 서머나교회에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예수님은 과연 누구신가?

8절. 그리고 서머나교회의 사자(메시지 전달자)에게 [단호하게] 쓰라(기록하라, 편지하라). 이것들을 처음이요 그리고 마자막인 분이 말한다. 이분은 [과거에] 죽었다 그리고 [과거에] 살아나셨다.

  그렇다. 서머나교회에 자신을 소개하고 계신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첫째,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시다. 이는 예수께서 구약시대에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던 하나님 자신인 것을 그대로 드러내준다(사41:4,44:6,48:12).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그리고 둘째, 그분은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로부터 죽임을 당한 것인가? 또한 그분은 일으키심을 받은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살아나신 것인가? 성경에 나오는 표현들을 보면, 공관복음서와 사도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분은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시고, 하나님에 의해 일으키심을 받으신 분이다(마16:21,17:23). 즉 예수께서 사람이 되신 입장에서 보면, 그분은 죽임을 당하시고 하나님에 의해 일으키심을 받은 것이다(고전15:3~4,13~14,17,20, 행2:23~24,32). 하지만 하나님이신 그분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스스로 인류구원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신 것이며, 스스로 생명을 취하여 부활하신 것이다(계2:8).

  한편, 우리말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죽으셨지만 살아나셨다”고 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사실은 이 문장들은 전부 수동태문장으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일으키심을 받은”이라는 뜻이다(동사 에게이로의 직설법, 완료, 수동태, 3인칭, 단수). 하지만 이미 예수께서 하나님의 자리에 복귀하신 후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은 스스로 생명을 취하여 부활하신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결국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곧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해주는 것이다.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죽임을 당할 것과) 제삼일에 살아나야(일으키심을 받을)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17: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일으키심을 받을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고전15:3-4 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일으시킴을 받으사)

고전15:13-14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일으시키심을 받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일으키심을 받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일으키심을 받은)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일으키심을 받으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23-24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일으키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일으키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자신을 소개할 때, 당신이 바로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예수께서 서머나교회 성도들에게 두려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주신 말씀이다. 비록 서머나교회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을 당하여 어떤 경우에는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인해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는 것이니만큼 고난과 죽음을 절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즉 사람이 죽임당해 순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첫 번째의 사망에 해당할 뿐이지, 둘째 사망의 해는 결코 받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고 싶으신 것이다.

1:18-19 [현재]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나를 위하여] 죽었었노라(,,,중디)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는 채로] 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나. 주님은 서머나교회를 향해 무엇이라고 칭찬하셨는가?

9절.  나는 너의 환난과 궁핍을 알아온 채 있다. 그러나 [너는] [현재] 부요하니라. 그리고 자기자신을 유대인들이라고 말하는 자들로부터 [있는] 훼방(신성모독)[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사단의 회[].

  사실 서머나교회는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들 2개 교회 가운데 한 교회다. 그렇지만 그들을 겉으로만 본다면 비참한 모습이었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으로는 극한 환난을 당하고 있었고, 신앙을 유지하려다보니 물질적인 궁핍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이 영적으로 부자라고 선언하셨다. 하지만 꾸중만 들었던 라오디게아교회는 어떠한 교회였는가? 그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풍부한 교회였으나 영적으로 매우 가난한 교회라고 꾸지람만 들었다.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렇다면, 서머나교회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인 장본인은 누구였는가? 놀랍게도 그 핵심세력이 유대인들이었고, 로마정부가 유대인들과 함께 그 일을 하였던 것이다. A.D.70년의 일이다. 예루살렘 도시가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함락당하기 전에, 많은 유대인들이 서머나로 이주해왔다. 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는데, 나중에는 로마정부와 협잡을 통해서 서머나교회를 악랄하게 핍박했다. 실제로 서머나의 초대감독이었던 폴리갑이 빌라델비아 성도 11명과 함께 A.D.155년에 죽임당할 때에 그 핵심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날 처형날짜는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주님께선느 그들이 비록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사탄의 모임이라고 격노하셨다.

 

다.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격려의 말씀과 축복에 대한 약속은 무엇이었는가?

10절. [너는] [계속해서] 장차 [오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있어라. 볼지어다. 장차 마귀가 너희들로부터 감옥 안으로 던지려하고 있다. 그리고 너희가 [미래에] 십일의 환난을 받게 될 것이다. [너는] [계속해서] [너희 자신을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하고 있어라. 그러면 [내가] [미래에] 너에게 생명의 면류관(승리관)을 줄 것이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서머나교회에 대해 박해가 또 다가올 것임을 미리 알려주셨다. 성도들이 어떤 고난을 통과한다고 해서 그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주님께서는 사탄의 회인 유대인들과 로마의 정치권력이 결탁하여 장래에 서머나교회의 성도들을 옥에 가두고 몇 사람은 죽게 할 것이라고 예고해주셨다. 하지만 더불어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몇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실 성도의 생사여탈권은 참소하는 자 곧 사탄에게 있지 않다. 오직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에 있다. 그러므로 사탄을 쥐고 계신 예수님만 두려워하면 된다. 특별히 여기서 십일동안이라는 말씀에서 "열"이라는 숫자는 열 뿔(12:3, 13:1, 17:3,7,12,16)에서도 알려주듯, ‘충만이나 완전수이기는 하나 제한된 숫자임을 가르쳐준다. 이는 믿는 자들이 완전한 고통이 수반되는 고난을 받기는 하겠지만, 동시에 그 시간이 제한된 시간만 해당하며 몇 사람만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셈족의 독특한 표현에서도 나온다. 그것은 창24:55의 말씀이. 그것은 아주 짧은 제한된 기간을 가리킨다.

24:55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그렇다면 고난을 통과하고 있는 서머나교회 성도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성도들은 과연 언제까지 믿음이 지조를 지켜야 하는가? 그것은 죽을 때까지다. 순교하기까지 성도는 자신이 가진 믿음을 지켜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순교의 현장에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귀가 자신의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성도들은 순교적인 죽음을 항상 각오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육신을 벗는 그날에, 생명의 면류관(승리관)을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면류관은 왕관(디아데마)이나 제관이 아니다. 그것은 올림픽의 최후승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승리관이다. 그렇다. 천국에 가면 제일 큰 상급을 받는 자가 누구인지 아는가? 그것은 주님과 신앙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는 자이다. 그리고 복음전하는 자가 그 뒤를 따른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 고난받고 순교하는 것에 대해 결코 슬퍼하지 말고 감사하고 기뻐하라.

  이어서 11절에성도 이기는 자들에게 대한 축복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11절. [현재] 귀를 가지고 있는 이는 그 영이 교회들에게 [현재]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단호하게] 들어라. [현재] 이기고 있는 자는 두 번째의 죽음으로부터 결코 [단번에] 해를 받지는(부당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서머나교회의 이기는 성도들에게 또다른 축복의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두 번째 죽음의 해를 결코 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둘째사망이란 하나님과 영영 분리되는 죽음을 가리키는데, 고난을 이겨낸 자들에게는 이것을 결코 맛보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것은 이기는 자가 결단코 불못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0:6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4. 나오며

  에베소교회가 바른 진리를 수호하고 그것을 분별하려다가 주의 종들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한다면, 서머나교회를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고난과 궁핍함 속에서도 믿음의 지조를 지켜낸 교회라고 할 것이다. 핍박과 고난을 이겨낸 서머나교회는 빌라델비아교회와 함께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가 되었다. 그렇다. 성도들은 핍박과 고난과 궁핍함 앞에서 떨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미래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잠시 잠깐의 삶속에서 비굴한 사람이 되지 말라. 주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주님을 모른다고 말하지 말라. 우리는 우리가 가진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 죽음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자들이 천국에 입성할 수 있고, 그곳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고난이 온다고 해도 염려하지 말라. 제한된 시가만 허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당하라. 그리고 떨지 말라. 오직 예수님만을 붙들고 그분만을 따라가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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