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4(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룻기서강해(06) 왜 보아스는 손해 날 것을 스스로 선택했는가?(룻4:1~1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IN16RviI1Lw [혹은 https://tv.naver.com/v/23595140 ]

 

1. 들어가며

   룻기서에 보면 설명이 잘 안되는 부분들이 더러 있다. 그중에 룻기서 4장에 나오는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로서 제1순위자가 처음에는 나오미의 기업을 물러준다고 말했다가 다시 번복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에 처음에는 나오미가 내놓은 기업을 사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사지 않겠다고 바꾼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게 하면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해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그 사람의 기업을 손해나게 할 수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가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나기 때문에 나오미의 밭을 사지 않겠다고 한 것은 보아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아닐 것이다. 제1순위자가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나는 일이었다면 역시 보아스에게도 아마 똑같이 손해가 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보아스는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겠다고 나선 것인가?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보아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왜 그가 훗날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었는지까지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스라엘 사람에게도 고엘제도와 형사취수제도(계대결혼제도,수혼제도)는 의무였는가?

  룻기서에서 기업 무를 자였던 보아스와 룻의 결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고엘'제도와 신명기 25장에 나오는 '형사취수제도(=계대결혼제도, 수혼제도)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룻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고엘제도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고엘제도란 형제가 가난해져서 기업을 팔았을 때, 그에게 가까운 형제가 그 판 것을 도로 사서 돌려주는 제도를 가리킨다(레25:25). 이때 '기업을 사서 도로 주는 자'를 '고엘(구속자=기업 무를 자)'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고엘의 우선 순위는 그의 형제다. 그리고 만약 기업을 물러줄 형제가 없다면 그의 삼촌이나 그의 삼촌의 아들 순이다(레25:48~49). 그런데 이때 조건이 하나 있다. 기업 무를 자가 무를 힘(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을 사 줄 능력이 없으면 기업을 물러주고 싶어도 그렇게 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형사취수제도'를 알아 보자. 형사취수제도라는 말은 형이 죽었을 때에 그의 동생이 과부가 된 형수를 취하여 자식을 낳아 주는 제도를 가리킨다(신25:5~10, 마22:24). 이때 동생은 형수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서 형의 아들이 되게 하여 기업을 잇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부터는 자신의 아들이 된다. 이러한 법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 여자가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방지하고, 자녀없이 홀로 불쌍하게 사는 미망인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압 여인이었으나 유다 지파 베들레헴 사람으로서 엘리멜렉의 장자 말론의 아내가 되었으나 과부가 되었던 룻의 경우는 고엘제도와 수혼제도도 같이 필요한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3. 나오미의 첫 번째 기업 무를 자는 왜 기업을 산다고 했다가 사지 않겠다고 번복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나오미가 전남편인 엘리멜렉과 그의 두 아들들인 말론과 기룐의 기업을 팔려고 내놓았을 때, 왜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로서 제1순위자였던 아무개는 처음에는 그 기업을 자신이 사겠다고 했다가 왜 포기하고 말았는가? 그는 포기할 때에 자기의 기업에 손해가 나는 일이기 때문에 안 하겠다고 말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자신이 손해를 보는 고엘이 되지 않겠다고 한 것인가?

  먼저, 그가 나오미가 내놓은 기업을 사겠다고 했던 이유부터 알아보자. 그는 나오미의 죽은 남편이었던 엘리멜렉의 가까운 친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족이 처음에는 밭을 사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나오미는 나이가 많은 과부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재혼을 해도 결코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룻1:11~13). 그러므로 자기가 나오미가 내어 놓은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의 기업을 사서 그녀에게 준다고 할지라도 어차 그녀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그녀의 모든 기업은 당연히 자신의 차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얼른 그 기업을 물러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 보아스가 말했다. 나오미로부터 기업을 살 때에는 룻도 같이 사서 룻과 결혼하고 그 낳은 자식을 말론의 아들로 입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나오미의 기업의 제1순위자는 금방 마음이 변해 버렸다. 왜냐하면 나오미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룻과 결혼해야 하며, 그녀가 자기의 자식을 낳는다고 해도 자기의 자식이 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사 준 기업도 말론의 아들의 몫이 되어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1순위자는 금방 그 밭을 사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 던지고 가 버린 것이었다. 

 

4.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나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왜 나오미가 내놓은 기업을 사겠다고 한 것인가?

  그렇다면, 나오미의 기업의 제1순위자 다음 순번이었던 보아스는 왜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날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나오미의 기업을 되사주기로 결정하고 동시에 룻과 결혼할 것도 결정한 것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는 비록 자신은 나이가 많았지만 현숙한 아내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엘리멜렉의 친족으로서 고엘이 될 수 있는 친족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로는 제1순위자인 아무개와 보아스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오미의 밭을 살 수 있고 룻을 아내로 취할 수 있는 고엘으로서 자격을 갖춘 자는 두 사람 뿐이었다. 왜냐하면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아직 결혼하지 못한 미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결혼해서 아내가 있었다면, 그들은 결코 과부를 취하여 두 번째 부인으로 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과 결혼할 수 있는 총각이어야 하고, 기업을 사 줄 만한 부자여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1순위자는 자신은 고엘이 되지 않겠다고 도망치듯 가 버렸다. 그 이유는 룻을 자신의 아내로 취하고 싶은 생각이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땅만 차지할 욕심이 있었을 뿐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스는 달랐다. 자기의 밭에 보리 이삭을 주우러 왔던 룻과 이미 안면이 있었고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들어 그녀에게 대해 아주 좋은 감정과 평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자신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달라고 청혼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눈이 볼 때, 그녀에 대한 그의 평가는 한마디로 '현숙한 여인'이었다(룻3:11). 그럼, 그녀가 현숙한 여인이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솔로몬이 썼던 잠언 31장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적어도 3가지 조건을 가진 자여야 한다. 첫째는 근면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한다(잠31:13~16). 둘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야 한다(잠31:29~30). 셋째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자라야 한다(잠31:31). 그런데 룻은 이러한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기업에 손해를 보더라도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 싶어 했던 것이다. 

  둘째, 그에게는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곧 히브리어로 '헤쎄드'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율법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남겨진 자와 버려진 자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라고 말씀하셨는데, 보아스에게는 그러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신24:19~21). 그러므로 이삭을 주우러 나온 그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사환들에게 곡식을 줍고 있는 룻을 위해 이삭을 조금 떨어뜨려 놓으라고도 했었고, 룻에게는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마시라고 했으며, 식사할 때에는 볶은 곡식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기 때문이다(룻2장).

신24:19-21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5. 나오며

  그렇다. 룻은 자신의 재산에 손해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룻이 현숙한 여인이었기에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픈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이 누구의 아들이 되든 아내를 얻기 위한 마음에 기꺼이 댓가를 지불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심성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불쌍히 여기는 헤쎄드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기꺼이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의 기업을 사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부였던 룻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우리 인간의 기업 무를 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정확히 예표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남편을 잃어버려 과부가 되어 있는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기꺼이 우리의 남편이 되어 주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분명히 손해가 날 것이 분명한 일이긴 하였지만 그분이 그렇게 하고자 한 것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버려진 채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건져 주시기를 기뻐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내면에서는 가난하고 잃어버린 것이 많아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에 대하여 헤쎄드의 마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영원히 버림받은 존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고 우리의 신랑이 되어 주시기를 기뻐하셨던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그분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헤쎄드의 마음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평생 그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일평생 고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드리워진 과부의 운명을 결코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었을테니 말이다. 

 

2021년 11월 14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룻기서강해(01) 룻기서, 과연 어떤 책인가?(룻1:1~5)_2021-11-09(화)

https://youtu.be/5TU4MRw6FaA  [혹은  https://tv.naver.com/v/23428995  ]

 

1. 룻기서는 어떤 책인가?

  룻기서는 기독교에서는 역사서(여호수아~에스더) 중의 한 권으로 분류하지만, 유대교에서는 케투빔(성문서)의 하나로 분류한다. 룻기서는 사사기의 말기쯤에 실제 일어났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하늘의 영적인 지혜를 전달해 주는 책이어서 교훈서로서 손색이 없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성은 1장은 발단을, 2장은 전개를, 3장은 절정을, 4장은 결말을 말하는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이 책 이야기의 맨 마지막이 유다의 아들 베레스에서 다윗까지의 족보를 수록하고 있기에, 다윗왕 때에 누군가가 기록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그런데 룻이 결국 다윗왕의 증조할머니라는 것을 계산해 보면 다윗왕의 윗대 선조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이 이야기는 과부였던 룻이 보아스와 재혼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것으로 끝을 맺어도 아무런 흠이나 잘못은 없다. 그런데 굳이 다윗의 족보를 집어넣어서, 보아스가 과부 룻과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으며,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가 다윗왕(8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7째 아들이 됨)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윗왕과 많은 관련이 있어 보이기는 한다. 

 

2. 룻기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룻기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얼핏 보기에 책 제목처럼 '룻'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룻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빛나게 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룻을 주인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책의 주인공은 사실 '나오미'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책의 플롯이 나오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두에 해당하는 룻기 1:1~5의 말씀은 나오미의 '텅 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이 책의 끝부분은 4:13~17에는 나오미의 '채워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3. 룻기서의 특이점은 무엇인가?

  룻기서의 특이점은 이 책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이름이 책의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이 책 제목이 된 책은 룻기서 외에는 에스더서 뿐이다. 그만큼 룻기와 에스더의 이야기는 특이하며 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에 무슨 기적이라든지 환상이나 꿈 또는 초자연적인 계시 등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작용하여 누가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는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경66권 가운데 선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이방 여인 룻을 등장시켜 이 책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은 모압 출신의 이방 여인을 높이 평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만을 선민으로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책은 상당히 의외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절기 때에 낭독하는데, 오순절날과 결혼식날에 이 책을 지금도 낭독하고 있다고 한다. 

 

4. 룻기서의 배경은 어떤 상황인가?

  룻기서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룻1:1). 그것도 다윗왕이 태어나기 전의 상황이므로, 이때는 사사기의 말기 정도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사사기서는 이때가 어떤 시기였는지를 알려 주는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것은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마다 각기 자기의 소견(눈)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기였다는 것이다(삿17:6, 21:25). 한 마디로, 이스라엘을 한 민족으로서 바르게 인도할 만한 뚜렷한 지도자가 없던 시기여서 사람마다 자기가 생각할 때에 옳은 것 같다고 하면 그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그러한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룻기서에 등장하는 룻이라는 여인은 달랐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시어머니가 자신의 본국인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할 때에, 이제는 자유롭게 재가하여 결혼하여 자식 낳고 잘 살라고 하는 시어머니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오미의 첫째 며느리였던 룻은 자기 편할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끝까지 시머어니를 봉양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시어머니를 따라가려 했으며, 시어머니가 전해 준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을 버릴 수 없었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고향 산천과 부모를 남기고 유다 땅으로 향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과 모압 여인 룻이 서로 비교된다. 

 

5. 룻기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가 이 시대에 룻기서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다른 책과는 달리 이 책에서만 들려주는 놀라운 영적 비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하나로서 한 예를 들자면, 고엘 제도의 실현이다. 즉 이 책은 유대인들의 토라서(모세오경)의 하나인 레위기 25:25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있는 바, '기업 무를 자의 제도(고엘 제도)'가 실제적으로 어떻게 실행되었는지를 알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에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장차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신부를 취하러 오실 때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자는 어떤 자여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크게 보면,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갈 이기는 자이므로, 그리스도의 신부에는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해당되는 것이며, 거기에는 남자들도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나오미의 둘째 며느리인 오르바의 경우를 통해서, 원래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었으나 탈락되는 자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는 귀중한 책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나오미의 삶을 통하여, 불행으로 기쁨으로 전하기 위한 방법이 제시되고 있으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부의 조건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신부가 되는 조건으로서 '회개'가 부각되지 않는 시대인데, 이 책이 구약성경의 하나임에도 그것이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매우 중대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11월 09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여고냐의 아들 스알디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900년전에 만들어놓은 형수취수제도란 무엇인가?(마1:12)_2019-12-17(화)

https://youtu.be/-cxCA1W5oTE

 

1. 마태복음 1장에 등장하는 메시야의 조상들 가운데, 제3기를 시작하는 세 인물은 누구인가요?(마1:11~12)

  메시야의 조상들 가운데 바벨론 포로기부터 시작되는 제3기의 처음 세 인물은 '여고냐(여호야긴)'와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입니다. 즉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았으며,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스알디엘은 어떤 사람인가요?

  스알디엘은 여고냐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낳았던 첫번째 아들입니다(대상3:17~18). 여고냐는 바벨론에서 총7명의 아들들을 두었는데, 그중에 첫째가 스알디엘이었고, 둘째는 말기람, 셋째는 브다야였습니다. 여고냐는 그뒤로도 4명을 아들을 더 두어서 그에게는 총 7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3:17~19절에 보면, 스알디엘은 자식이 없이 죽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의 족보에 그의 아들로 기록되었던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이 아니라, 여고냐의 셋째아들이자 스알디엘의 셋째동생인 브다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친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성경이나 메시야의 족보에는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이라고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스라와 느헤미야 그리고 학개선지자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스3:2,8,5:1, 느12:1, 학1:1,12,14,2:2). 그리고 메시야의 족보책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마1:12).

 

3. 스알디엘은 자식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되어서 메시야의 조상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나요?

  스알디엘에게 자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룹바벨이라는 아들로 두었고 메시야의 족보에 그와같은 사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2가지 면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 그의 아들로 기록된 스룹바벨은 계대결혼제도(형수취수제도)를 통하여 그의 아들로 입적된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귀중하게 보셨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아들이 없었던 스알디엘에게 스룹바벨은 사실은 자신의 동생인 브다야를 통하여 낳은 아들이었습니다(이것은 조금 뒤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스알디엘은 열조들의 우상숭배와 주변제국을 의지한 탓에 그 죄값을 자신의 아버지였던 여호야긴왕과 자신이 고스란히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왕의 자리를 빼앗겼고,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가 죄수로서 37년을 생활했으며, 결국 자신의 고국인 유다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바벨론에서 숨을 거두어야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장자였던 스알디엘 자신은 바벨론에서 죄수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결국 유다의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던 비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상숭배하면 그 죄값을 3~4대까지 묻겠다는 율법의 말씀(출20:5)과 우상숭배를 했음에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의 자녀를 죽이겠다는 말씀(계2:23)에 따라, 그는 죄값을 받고 일찍 죽게 됩니다. 아마도 질병에 의한 조기사망 같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성경과 메시야의 족보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그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신앙 때문에 그를 메시야의 조상들의 족보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징계를 받고 죽은 자라도 그가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놓지않고 붙들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사코 그를 소개할 때에는 "여고냐의 아들이자, 스룹바벨의 아버지"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4. 스알디엘은 어떻게 되어서 스룹바벨을 아들로 둘 수 있었나요?

  스알디엘은 자식이 없이 죽었지만 그의 셋째동생 브다야를 통하여 아들(스룹바벨)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브다야가 형수를 취하여 아들(스룹바벨)을 낳아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계대결혼법은 스알디엘로부터 약900년을 거슬러 올라가, 모세에게 주셨던 신명기법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녀]의 남편의 형제가 그[녀]에게로 들어가서 그[녀]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녀]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녀]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신25:5-6)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스알디엘의 셋째동생은 그의 형수를 취하여 낳았는데, 그가 바로 스룹바벨입니다. 그러니 스룹바벨이 스알디엘의 아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낳은 이스라엘의 혈통의 계보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미 900년전에 율법에 이러한 법을 만들어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이 적용된 예는 오직 스알디엘 밖에 없으니, 스알디엘을 위해 이 법을 미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알디엘의 신앙을 존중해주기 위해 이러한 법을 미리 만들어 둔 것입니다. 만약 스알디엘이 신앙이 없는 자였다면, 메시야의 족보는 아마도 "여고냐는 브다야를 낳고, 브다야는 스룹바벨을 낳고"라고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메시야의 계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알디엘의 신앙을 칭찬해주고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라는 족보를 기록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5. 스알디엘이 우리에게 들려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스알디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은 2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공의를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죄값을 받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것을 반드시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알디엘은 그렇게 쓸쓸히 죽어갔던 것입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그의 이름을 보존해주시고 축복의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이나 다 기록하여서 인구에 회자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징계를 받는 자라도 그가 회개하는 것을 들으시고 그의 믿음을 존중히 여겨주시어, 비록 육체로는 징계 가운데 병들어서 죽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그의 영혼만큼은 멸망받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2019년 12월 17일(화)

정병진목사 


메시야의 조상들 가운데 남유다의 마지막왕은 여호야긴(여고냐)왕이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여고냐는 바벨론에서 일곱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런데 장자였던 스알디엘은 아들이 없이 그만 죽고 만다. 그런데 구약의 족보책이나 신약의 메시야의 족보책에서는 그에게 아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아들은 "스룹바벨"이라는 인물이다. 제1차 포로귀환을 총지휘했던 유다총독, 그가 바로 스룹바벨로서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2019-12-15(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스룹바벨이 들려주는 놀라운 메시야 족보 이야기(마1:12)
https://youtu.be/zL3NB5gdlUE


1. 들어가며

  예수님의 조상들의 이름들이지만 메시야의 족보에는 그 이름을 올리가 못한 사람도 상당히 있다. 그렇다면 메시야의 족보책에 올라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록된 마태복음 1장 곧 "메시야의 족보책"의 주제는 대체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주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 본문을 통해서 과연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시는가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렇다면, 과연 마태복음 1장의 족보책의 주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마태복음 1장이 구약과 신약을 잇는 다리역할을 감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의 예언이 어떻게 혈통적으로 성취되었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중요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오늘 이 시간에는 마1:1~17에 나오는 메시야의 족보 가운데 제3기에 등장하고 있는 여고냐와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통하여 거기에 담긴 놀라운 메시야 족보이 비밀과 함께 마태복음 1장의 족보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지난 시간에 "메시야의 족보에 관한 메시지"를 통해서 마태복음 1장이 '다윗'이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철자값에 따라 14대씩 3기로 나누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메시야의 족보는 제1기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로 구분할 수 있으며, 제2기는 다윗부터 요시아왕까지 14대로서 제2기를 차지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끌려간 후의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로서 여호야긴(여고냐)부터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까지 14대로서 제3기를 형성하고 있음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시간에 제2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다윗의 일생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제3기를 시작하고 있는 세 명의 인물들 곧 여고냐왕과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한다.

 

3. 메시야의 족보의 이야기의 특징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족보의 이야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비록 적통을 가졌던 자라도 범죄하거나 우상을 숭배한 자는 족보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람에서 암미나답 사이의 430년간에는 족보가 나오지 않는다. 그들이 애굽에 들어가서 애굽의 송아지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사시대 340년간에서 족보가 나오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가나안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유다의 요담왕과 웃시야왕 사이에도 세 명의 왕들 곧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들도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둘째, 메시야의 족보에는 비록 큰 범죄를 저질렀거나 우상을 숭배했던 자라도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메시야의 족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질렀으나 진정으로 회개한 끝에 메시야의 족보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며, 솔로몬왕이나 므낫세왕도 갖은 우상을 숭배한 자이나 족보책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죽기 전에 회개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그들의 아버지였던 다윗과 히스기야왕의 기도의 덕도 본 자들이다. 셋째, 메시야의 족보에는 여인들이 이름도 간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다말, 라합, 룻, 마리아다. 마리아를 제외한 다말과 라합과 룻은 부정한 여인이었거나 이방여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기꺼이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를 기뻐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했고, 자기의 태를 통해 자식을 얻기를 원했던 여인이다. 그러므로 이이러한 여인들의 이름이 메시야의 족보에 기록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시야의 족보에는 혈통적으로 장자가 아니더라도 계보를 잇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삭이나 야곱은 장자가 아니었고 차자였으나 메시야의 조상의 계보에 들었고, 유다는 야곱의 넷째아들이었으나 메시야의 조상의 계보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고 살펴보겠지만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이 낳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스알디엘의 아들로 기록될 수 있었다. 이것이 메시야의 족보의 4가지 특징이다.

 

4. 제3의 메시야의 족보의 시작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

   누구든지 마태복음 1장의 족보책을 읽어보면, 이 족보책이 제1기에서는 아브라함이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제2기에서는 다윗왕이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3기의 중요인물은 누구인가? 그것은 스알디엘의 아들인 스룹바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룹바벨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제1차 포로귀환시 무리를 인도했던 유다총독으로서, 포로에서 돌아온 뒤 제2성전인 스룹바벨성전을 건축한 바로 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족보로 볼 때에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라는 문장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스알디엘이 아들이 없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대상3:17~19). 그렇다면, 아들이 없이 죽었던 스알디엘은 어떻게 되어서 자기의 자식으로 스룹바벨을 두게 되었을까? 어떤 이는 스알디엘이 스룹바벨을 양자로 삼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메시야의 혈통이 양자를 삼아서 될 일이었을 것 같으면, 무슨 족보 이야기가 필요하겠는가? 아무나 메시야의 조상들이 될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를 낳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5. 메시야의 제3기의 족보의 인물들 중에 갑자기 무슨 일이 발생하였는가?

  스알디엘은 여고냐(남유다의 제19대왕 여호야긴)의 장자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부터 비운의 역사는 시작된다. 스알디엘의 아버지 여고냐(여호야긴왕)는 B.C.597년경 18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3개월 뒤에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는데, 자기의 어머니와 아내들과 방백들과 귀족들과 함께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간 자들이었다. 그런데 여호야긴왕은 그곳에서 고통을 당하여 하나님께 회개를 했는지 거기에서 7명의 아들들을 낳았는데, 모두가 다 신앙적인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이다. 첫째가 '스알디엘'이다. '스알디엘'이란 "내가 하나님께 간구하였다"는 뜻이며, 둘째가 '말기람'인데 이는 "나의 왕은 높으시다"는 뜻이다. 그리고 셋째가 '브다야'인데, 이는 "여호와께서 속량하셨다"는 뜻이다. 이렇듯 그가 낳은 아들들은 전부다 한결같이 신앙의 이름들을 가지게 되었다(그래서 메시야의 족보에 '스알디엘'도 들어가 있다). 그런데 메시야의 조상들 가운데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여고냐의 장남이었던 '스알디엘'이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스알디엘은 남유다의 열왕들의 죄값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기에, 첫째로는 왕의 장자로 태어났지만 왕의 자리를 얻지 못했으며, 둘째로 자식을 낳지도 못한 채 죽었던 것이다.

 

6. 스알디엘이 맞이했던 메시야의 계보의 최대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되었는가?

  스알디엘이 후사가 없이 죽게 되었으나,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스알디엘의 아들로서 스룹바벨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무려 구약성경에 9번(스3:2,8, 5:2, 느12:1, 학1:1,12,14, 2:2, 23)이나 그리고 신약성경(마1:12)에도 등장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으며, 학개선지자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스알디엘의 아들인 스룹바벨을 "내 종"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학2:23).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후사가 없었던 스알디엘에게 스룹바벨이 그의 아들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인가? 스알디엘이 죽기전에 스룹바벨을 양자로 들이기라도 한 것인가?

  그런데 이 비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시내산 언약에 들어 있었다. 다시 말해, 모세의 율법 안에 이 비밀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신25:5~6에 보면, 만약 형제들이 사는데, 형이 후사가 없이 죽게 되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서, 장자는 형의 후사로 주고 둘째부터는 자기의 아들로 삼으라는 율법이 있다. 이것을 일컬어 "형수취수제도" 혹은 "계대결혼제도"라고 부른다. 이 법에 따라 스알디엘은 후사를 낳지 못했지만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얻어,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아들로 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역대상 3:17~19에 나온다. 스알디엘에게는 동생들이 여섯 명이 있었는데, 바로 밑의 둘째동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형수취수제도대로 행하지 아니했다. 그러자 셋째동생이었던 브다야가 큰 형수와 결혼하여 장자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스룹바벨"이었고, 둘째아들이 "시므이"였다. 고로, 스룹바벨은 브다야가 낳은 아들이기는 하지만 법적으로는 큰 형인 스알디엘의 아들이 된 것이다. 고로 형수취수제도를 늘 배우고 알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룹바벨이 비록 스알디엘의 동생의 장자였어도 그를 스알디엘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기록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안 다음 구약성경을 보면, 일찌감찌 야곱의 아들이었던 유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창38장). 유다에게는 세 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엘'과 '오난'과 '셀라'가 그들이다. 그후 '엘'은 '다말'과 결혼하게 된다. 그런데 엘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악을 행하자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죽게 된다. 그러자 둘째 오난에게 유다가 말했다.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창38:8)" 그런데 오난은 자식을 낳아봤자 그 자식이 자기자식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그것을 거부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도 쳐서 죽게 하였다. 그러자 이제 남은 것은 '셀라'였다. 그런데 셀라는 어렸다. 그런데 더욱 겁나는 것은 유다가 셀라도 죽을까봐서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이내 유다의 처가 죽었고, 얼마후 양털을 깎으로 내려가다가 어떤 여자를 만나 사랑을 나눴는데, 그 여자가 그만 쌍둥이를 낳게 된다. 그 아이들이 바로 "베레스와 세라"다. 유다의 넷째아들과 다섯째아들이 된 자들인데, 메시야의 족보에는 유다의 후손으로 "베레스"가 기록된다. 그런데 그 여자가 누군고하니, 창녀가 아니라(그곳에서 창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창녀의 복장을 하고 시아버지를 끌어들여 아들을 낳은 며느리 "다말"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의 이름이 메시야의 족보에서 5명의 여자들 가운데 최초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여자가 비록 시아버지를 꾀어 자식을 낳은 것은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유다의 집안의 자손을 이으려는 열망만큼은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7. 마태복음 1장의 메시야 족보의 주제는 무엇인가?

  고로 제3기 메시야의 족보를 통해서 우리를 적어도 2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첫째, 우상숭배의 댓가는 어찌하든지 반드시 치른다는 것이다. 살펴보니 남유다왕국의 열왕들이 저지른 죄의 댓가를 제19대 여고냐(여호야긴)왕과 그의 아들 스알디엘이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여고냐는 왕직을 빼앗긴 왕이 된 것이요, 스알디엘은 자식이 없이 죽은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B.C.4,000년경 인류의 타락 직후부터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인 메시야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3:15), 그리고 B.C.2,000년경에는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창22:17~17), 그리고 B.C.1,000년경에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삼하7:12~14). 그런데 남유다의 열왕들이 지은 죄값도 반드시 치러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을 때에는 왕은 사라지며, 계2:23의 말씀에 따라 후손도 죽게 된다. 그것을 여고냐와 스알디엘이 담당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메시야를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하나님께서는 지키셔야 한다. 그러므로 장차 후손이 없을 죽을 수 있는 스알디엘의 위기상황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스알디엘이 태어나기 이미 900년전에 율법책 속에 형수취수제도 조항을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메시야만큼은 낳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고로 우리는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해,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족보의 주제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8. 나오며

  누구든지 자기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약속의 말씀"이다. 마1장의 족보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해보면, 우상숭배한 자는 족보에서 제외된다는 것이요, 죄를 지었으나 진실로 회개한 자는 족보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부정한 사람이나 이방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붙들며 그의 백성이 되기를 바라는 자는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약속은 우리가 어떠한 험악한 상황에 놓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니만큼 반드시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의 이야기로 오늘날까지 면면히 증거되고 있다.

 

 

2019년 12월 15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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