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강림절(10)] 보혜사 성령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첫 번째 축복(요14:16~17)_ 2023-05-29(월)

https://youtu.be/O_IHOIw3IwU [또는 https://tv.naver.com/v/36741628]

1. A.D.30년 오순절 날 오신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이 세상에 계셨다.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여러 지도자들과 선지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3년 반이라는 공생애를 사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셨다. 그리고 공생애를 끝마치기 하루 전날, 이제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르자,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약속해 주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의 곁을 떠난다고 하자 제자들이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고로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을 대신하는 영이시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가시면 제자들에게 아버지로부터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은 예수께서 다시 성령으로 오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은 예수님의 또 다른 오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순절 날 보내 주실 성령을 가리켜 무려 4번씩이나 '보혜사'라고 말씀하셨다(요14:16,26, 15:26, 16:7). 그러므로 오순절 날 오신 성령은 '보혜사 성령'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 보혜사 성령에 대한 예수님의 첫 번째 약속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이제 제자들의 곁을 떠나시면서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때 주님이 보내 주실 성령은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실 분이라고 하셨다. 즉 보혜사 성령에 대한 예수님의 첫 번째 약속은 이제 성령께서 오시면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장차] 구(요청)하겠으니, [그러면]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장차] 주사, 영원토록(그 시대까지)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취하지) 못하나니, 이는(왜냐하면)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왜냐하면], 그는 너희와 함께(곁에) 거하심이요(머무실 것이기 때문이요) 또 [장차]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3.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말씀은 대체 무슨 뜻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보혜사께서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고 하니까, 자신이 한 번 얻은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과장된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토록'이라는 말은, 결코 그러한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에 '영원토록'이라는 말은 '에이스 톤 아이오나'라는 문구인데, '에이스'는 "~동안, ~까지"라는 뜻이며, '톤 아이오나'는 "그 시대까지, 그 세대 동안"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원토록'이라는 말은 '그 시대까지' 혹은 '그 세대 동안'이란 뜻이다. 실제로 성령께서 성도가 죽을 때에 떠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믿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었지만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아 결국 죽을 때에 어린양의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기 때문이다(계3:5). 그러므로 한번 들어오신 성령께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우리와 지속적으로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이 다음 세대에서의 하나님의 동행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 있을 때에 했던 결과를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문장을 헬라어로 보면, "보라. 내가 시대의 끝까지 모든 날들을 너희들과 함께 있느니라"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보내시는 성령도 우리가 믿는 자가 되었다면 이 시대의 끝까지 모든 날들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4.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어떤 축복을 받게 될까?

  예수께서 보내 주시는 보혜사 성령께서는 세상의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우리는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으로 인하여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가? 그것은 구약과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정리해 보면 총 4가지의 축복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축복을 받은 자의 대표를 꼽으라면 '야곱'을 꼽을 수 있을 텐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 그가 죽는 날까지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야곱을 비롯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어떤 축복을 받았는가?

창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첫째, 지키심과 보호하심을 받는다(창28:15).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난 때는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망칠 때였다. 하지만 그때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야곱을 해칠 수가 없었다. 라반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가족을 이끌고 야반도주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속에 나타나 야곱을 죽이지 못하게 했다. 또한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죽이려고 왔으나 죽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디나의 강간사건 때문에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성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자, 이에 분노한 가나안 족속들이 연합하여 야곱 식구들을 죽이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야곱을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게 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당신의 성도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이다(시121:4~7). 

  둘째, 대적자들이 오히려 패배하고 멸망당한다(삼하7:9).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다윗을 사울왕이 계속해서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오히려 사울왕이 죽게 되고 다윗이 왕 위에 오르게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를 대적하는 자는 본인이 오히려 패배를 당하고 죽게 되는 것이다. 

  셋째, 갈 길을 인도함 받는다(창46:4).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할지 몰라 방황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주셨다. 

  넷째,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성할 때까지 도우심을 받는다(수1:5~9, 사41:10).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해야 할 영적인 직무를 성령을 통해서 알게 하시고 또한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5. 우리가 간과했던 보혜사 성령의 임마누엘 축복을 어떻게 내 것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간과했던 보혜사의 축복은 임마누엘의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죽는 날까지 성령께서는 우리 곁을 결코 떠나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임마누엘 축복이 내 것이 되게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 원수 마귀도 손 못댈 뿐만 아니라 손대려 하는 원수 마귀를 하나님께서 물리쳐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넷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을 실천할 때에 성령께서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시어 사명을 완수할 것을 믿어야 한다. 

 

 

2023년 05월 29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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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강림절(6)] 오순절 성령강림 후 치유(병치료)의 획기적인 변화(행3:1~10)_2023-05-25(목)

https://youtu.be/9QnGLXg8D3s [또는 https://tv.naver.com/v/36740114]

1.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적인 의의는 무엇인가?

  A.D.30년 5월 28일 오전9시경,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인류 역사와 구원 역사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사람 속에 다시 들어오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담부터 노아 때까지 있었던 하나님의 임재 방식이었다. 아담의 10대손이었던 노아 때까지 성령께서는 당시 사람들 속에 내주하고 계셨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하여 육체가 됨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사람 속에 있는 성령을 거둬가셨다. 그러고 나서 약 2,50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밖에서 몇몇의 선택받은 자들 위에 성령을 보내셔서 당신의 일을 하셨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오셨고,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의 내주를 약속하셨다. 그리하여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내려오셨다. 그리고 내주하셨다. 그리하여 신약시대에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항구적으로 사람 속에 거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성도들의 삶에 매우 중요한 변화를 안겨 주었다. 왜냐하면 항구적인 성령의 내주로 인하여, 모든 믿는 자들이 다 방언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막16:17~18). 그래서 처음으로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오실 때에도 120명의 모든 성도들에게 내려오셨으며,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실 때에도 역시 고넬료 가정에 모인 모든 이방인들에게 동시에 성령이 내려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단지 모든 사람이 다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는 것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후로 성도들은 이제 누구나 귀신을 쫓아낼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에 병든 사람을 치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막16:17~18).

 

2.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에 구약의 사람들은 어떻게 치유를 받았는가?

  구약성경을 읽어 보면 누가 언제 어떻게 치유를 받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약성경에는 그러한 기록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굳이 개인 치유의 기사가 구약성경에 나오는지를 묻는다면, 한 세 사람 정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고침받은 남유다의 13대 히스기야왕이 있다(왕하20:3).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이방인으로서 고침받은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이 있으며(왕하5:10), 마지막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전무후무한 왕이었던 다윗이 있다(시6:2,30:2).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병이 낫게 되었는가? 먼저 알 것은 구약시대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그들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니, 다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병이 들면 다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에게 찾아간 것이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찾아갔고,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갔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었기에 직접 하나님께 자신의 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경우 병을 치유받으려면 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치유받는 것이었지, 누군가 예수님처럼 명령함으로 병에서 치료받은 사례가 없다(나아만 장군에게 엘리사가 명령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아직 하나님의 아들 딸이 탄생하기 전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는 천사들을 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병을 치유받으려면, 병든 자는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찾아가서,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간구해야 했던 것이다. 

 

3.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최초로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 못 걷는 자를 어떻게 치료했는가?

  그런데 사도행전 3장 1~10절에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최초의 치유 기적 사건이 나온다. 그것은 성령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던 중에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40여세쯤 되어 보이는 남자로서, 나면서부터 못 걷는 이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걷게 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120명의 성도들이 방언을 하는 것을 보고 몰려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날 3,000명이나 세례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나면서 걷지 못한 자를 걷게 함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남자 5,000명이 더 믿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 미문의 나면서 못 걷게 된 이의 치유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병든 자의 치유 사건은 몇 가지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는 것이다. 첫째, 구약시대처럼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에 의해 치유받았다는 것이다. 둘째, 기도를 하여 치유받은 것이 아니라 명령함으로 치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구약시대만 해도 아픈 환자는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찾아가서 자신의 질병 치유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을 뿐인데, 오순절 이후부터는 혹 부탁을 받지 않았어도 누구든지 전도 대상자가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에 그에게 치유의 기적을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자는 공식적으로 '믿는 자'의 자격만 갖추면 되었던 것이다(막16:17~18). 그러니까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누구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상대방의 병든 자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4. 과도기였던 신약의 예수님 공생애 시대에 예수께서는 어떻게 병을 치료하셨는가?

  그런데 구약시대를 지나 신약의 예수님의 공생애 시대에 이르자, 병 치료의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병을 치료하실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시고, 다음과 같은 3가지 방식으로 병을 치료하셨기 때문이다.

  첫째는 명령하심으로 치료하셨다. 병든 자에게 명령함으로 치료하신 것이다. 예를 들어, 나병환자에게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마8:3)"라고 명령하셨고,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에게는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마9:6)"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았던 여인에게는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마9:22)"고 명령하셨고, 한 편 손마른 자에게는 "네 손을 내밀라(마12:13)"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나면서 못 보는 어떤 이에게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마9:6~7)"고 명령하셨다. 

  둘째는 만지심으로 치료하셨다는 것이다. 어떤 두 맹인이 자신의 눈을 뜨기를 요청하자, 예수께서는 그들의 눈을 만져주신 후에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9:29)"고 명령하셨다. 또한 여리고성 가까이에 있던 두 맹인에게도 그들의 눈을 만져주심으로 치료해 주셨다(마20:34). 그리고 열병에 시달리고 있는 베드로의 장모도 예수께서 가셔서 그녀의 손을 만지시니 그녀가 나음을 입었다(마8:15).

  셋째는 병든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치료하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병을 치료하실 때에는 그냥 명령하시든지 혹은 사람을 손으로 만지신 후에 명령하시든지, 아니면 병든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치료하셨다. 예를 들어, 간질병 걸린 어떤 아들을 치료하실 때에는 그 청년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심으로 치료하셨다(마17:18).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해 주셨다. 

 

5. 병든 자에게 명령하면 영의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하는가?

  사실 자신이 성령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누구든지 병든 자를 치료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기 때문이다(막16:17~18). 고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자들 중에서도 성령으로부터 병고침의 은사를 받았다면 그는 병을 더 잘 치료할 수가 있게 된다(고전12:9). 

  그렇다면 병든 자에게 손을 얹거나 치유를 명령하면 환자에게 어떤 일이 생겨서 병이 치료되는 것인가? 그것은 성도나 은사자로부터 불이 나와서 치료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 순간에 성도나 은사자로부터 불이 나와서 반대편 환자 속으로 들어가서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영안을 열어서 보면, 그때에 치유천사가 내려와서 치유를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즉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환자에게 불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에 치유천사들이 와서 환자의 치료를 돕는 것이다. 이 때에 치유천사들은 의료용 가방같은 것을 들고 와서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환자의 병을 치료하려면, 첫째는 환자에게 병이 나을 것을 명령해야 한다. 아니면 치유천사에게 명령하여서 병을 치료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귀신이 붙잡고 있는 질병일 때에는 먼저 축사를 한 후에 병을 치료해야 한다. 여기서도 깨닫는 가장 놀라운 사실은 질병 치유 명령을 사도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믿음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해서 좀 늦게 낫고 더디 나을 뿐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로서 환자를 볼 때에는 항상 담대해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평소 때에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치유의 기도시간이나 치유의 명령시간에 기적이 자주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023년 05월 25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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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강림절(5)] 방언은 믿는 이의 '표적'인가 성령의 ‘은사’인가?(고전12:4~11)_2023-05-24(수)

https://youtu.be/uoeT4SdCoSY [또는 https://tv.naver.com/v/36740085]

1. 방언은 표적인가 은사인가?

  성경에서는 방언을 '표적'이라고도 말씀하기도 하고(막16:17, 고전14:22), '은사'라고도 말씀하기도 한다(고전12:10, 14:2,13~14). 이는 방언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다 방언을 지칭하는 표현들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누가 방언을 '표적'(쎄메이온=sign)'이라고 언급했으며, 또한 '은사'라고 말했는가? 먼저, 방언에 대해 그것을 표적이라고 말씀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이다(막16:17~18).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방언이란 믿는 자들에게 응당 뒤따라오는 표적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방언을 성령의 '은사'(카리스마=spiritual gift)라고 하였다(고전12:4~11). 성령께서 주시는 초자연적인 선물이라는 것이다. 한편, 사도 바울은 방언을 '은사'라고만 말하지 않고, '표적'이라고도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고전14:22). 고로 믿는 자의 표적으로 알려진 방언을 은사라고 명명한 것은 바울에 의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예수께서 방언을 '표적'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주 예수께서는 방언에 대해 믿는 자에게 뒤따라오는 '표적'이라고 하셨다(막16:17~18). 왜냐하면 방언이 기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방언이란 믿는 자들에게 뒤따라오는 기적적인 현상으로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자기 속에 성령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표시인 것이다. 고로 누군가가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그가 이미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신 성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 하겠다. 고로 표적으로서의 방언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인지 안 믿는 자인지를 구별시켜 주는 잣대가 된다. 

 

3. 방언이 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방언'이 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방언이 일종의 초자연적인 현상으로서 기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표적'이라는 말은 기적은 기적인데, 그것이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에 붙이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방언도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적인 것이다. 사실 요한복음에는 7가지 '표적'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들은 다 원래 기적들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나오는 7가지 기적은 전부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영적으로 알려 주기 때문에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고, '표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을 '표적'이라고 하는 것은 포도주야말로 '생명'(물)을 가지신 예수께서 장차 흘리실 '피'(포도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표적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생명의 떡으로 오셨으며, 계속해서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분임을 오병이어의 기적이 고스란히 보여 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방언을 표적이라고 하는 것은 방언이 어떤 기적적인 현상이기는 하나, 자기 안에 예수님을 가지고 있어서, 본인이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은 자임을 드러내 주는 표시(사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자신이 예수믿는 사람이 되었다면 누구든지 다 방언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4. 방언은 왜 '은사'인가?

  사도 바울은 방언을 성령께서 주시는 9가지 초자연적인 은사들 중의 하나로 보았다(고전12:8~10). 여기서 '은사'(카리스마)라고 하는 말은 영적인 선물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이 바로 은사인 것이다(고전12:31). 이때 성령께서는 그 성도의 유익을 위하여 은사를 나눠주신다(고전12:7). 그러므로 은사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방언'을 받은 자에게는 영적으로 매우 유용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고로 이 은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종류의 방언을 받게 되면, 그 사역자는 여러 가지 영적인 일들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로 모든 믿는 자가 표적으로서 방언을 말할 수 있지만, 모든 믿는 자가 다 은사로서 방언을 받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5. '표적'과 '은사'로서 방언을 서로 비교한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표적으로서의 방언은 기적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이는 어떤 사람이 믿는 자가 되었을 때에, 자기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표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으로서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자신이 불신자가 아니라 성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언은 자신이 믿는 자가 되었다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으로서 방언은 '받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방언은 영이 말하는 것으로서 그냥 혀를 성령께 맡기고 말하면 곧바로 나오는 쉬운 것이다. 비록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는 하나, 믿는 자가 되었다면 누구든지 이러한 방언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사로의 방언은 이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왜냐하면 은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영적인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기는 하지만, 사모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다. 방언은 성령께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선물로서, 성도들끼리는 서로 조금 다른 종류의 방언을 받는 것이다. 고로 은사로서의 방언은 성도들 중에서 특별한 사람만이 받는 은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은사로의 방언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와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사로서 방언의 종류를 구분해 본다면, 대신방언, 대인방언, 대물방언, 대적방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화방언, 기도방언, 찬양방언, 축복방언, 예언방언의 종류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한편 '대신방언'이라 함은 기도와 찬양으로 하는 방언을 가리키고, 대인방언이라 함은 자신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방언을 말했는데, 듣는 사람이 자기 나라의 말로 알아듣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날에 120명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방언을 말했던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대물방언'이라 함은 방언하는 자가 동물이나 식물과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방언으로 새와 꽃과 대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적방언'이라 함은 귀신들에게 하는 방언으로서, 이 방언을 하게 되면 귀신들이 매우 무서워하고 또한 잘 떠나간다. 

 

2023년 05월 24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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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강림절(4)] 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성령의 내주와 더불어 성령세례를 베풀어주시는가?(행2:14~47)_2023-05-23(화)

https://youtu.be/hRskPO7h3uI [또는 https://tv.naver.com/v/36740053]

1. 오순절 성령강림은 어떠한 사건인가?

  A.D.30년 5월 28일에 일어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만세 전에 예정하신 일 곧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바로 '오순절 날'에 일어났다. 여기서 '오순절'(칠칠절, 맥추절)이란 구약시대의 7대 절기 가운데 하나로서, 봄의 보리 추수를 마치고 드리는 절기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초실절부터 시작된 보리 추수가 이제 맥추절로 마쳐지고 밀 추수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이 되면, 보리떡 두 덩이로 새 소제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다(레23:15~17). 그러므로 사도행전 2:1~4의 성령강림 사건은 새 소제를 드리는 사건으로서, 먼저 유대인들로 구성된 한 덩이의 떡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사도행전 10장에 가서, 고넬료 가정에서 이방인들로 구성된 한 덩이의 떡이 다시 한 번 더 드려졌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들을 주어서 구원 역사의 시작을 열도록 하신 것이 성취된 것이다(마16:19). 고로 성령강림이 오순절에 일어났다는 것은 구약 율법에 따라 칠칠절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이것은 드디어 구약에 약속된 영혼의 추수가 일어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2.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성령에 관한 어떤 예언의 말씀의 성취인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시기적으로 볼 때에는 맥추절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령과 연관지어 이 사건을 살펴보면, 이것은 '성령의 내주'에 관한 예언과 '성령의 부어지심' 곧 '성령세례'에 관한 예언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노아홍수 이후 성령을 사람 속에서 거두어 가시고 나서, 구약시대에는 성령께서 줄곧 몇몇 사람 위에만 내려오셔서 역사하고 있었는데, B.C.595년경 성령을 다시 사람 속에 두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B.C.800년경 성령을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을 성취하신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내주(안에 들어오셔서 거주함)'에 관한 예언은 어떤 예언인가? 그것은 먼저는 B.C.595년경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통하여 주어졌으며(렘31:31~33), 이어서 B.C.585년경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서 또 다시 주어졌다(겔36:26~27). 

렘31:31~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부어지는 성령' 곧 '성령세례'에 관하여 약속해 주셨다(욜2:28~29). 그리하여 드디어 A.D.30년 오순절 날에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가 동시에 성취된 것이다. 

욜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 오순절의 성령강림이 있기 전에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에 대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또 말씀해 주셨는가?

 공생애를 마치기 직전 예수께서는 이제 자신이 제자들을 떠날 시각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고 중요한 메시지를 남겨 주셨는데, 그것을 가리켜 흔히들 '예수님의 고별설교'라고 한다. 그 말씀이 곧 요한복음 14~16장의 말씀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성령의 내주에 관하여 말씀을 들려주셨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떠나 하늘로 가시면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실 성령을 보내 주실 터인데, 그분은 지금까지 제자들 곁에 있었던 것과 더불어서 앞으로는 제자들 속에도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요14:16~17). 그리고 제자들 속에 들어오시는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증언해 주실 것이며(요15:26), 성경이나 영의 세계와 같은 모든 것들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요14:26, 16:13), 죄를 책망하여 회개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16:8).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는 성령의 부어지심 곧 성령세례에 관하여 한 번 더 말씀해 주셨다(행1:4~5). 그리고 성령이 제자들 위에 내려오게 되면 제자들이 능력을 받아서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행1:8). 고로 사도행전 2:1~4에 기록된 성령강림 사건은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가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행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4. 오순절 날 실제적으로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드디어 약속된 그날이 되었다. 그러자 성령께서 제자들 속에 들어오신 것이다. 즉 성령의 내주가 실현된 것이다. 그러자 거기에 모여 있던 120명의 성도들의 영들이 다 살아났다. 하나님의 생명이 성령을 통해 120명의 성도들 속에 다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 세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이는 그들의 영이 살아났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베드로에게도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그날 모여든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시려고, 이제 베드로에게 역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날 성령강림 사건이 과연 어떤 구약 예언의 성취이며 그것의 의의가 무엇인지를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었으며, 성령을 보내 주신 주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 줄 수 있게 하였다. 그때 베드로는 성령강림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라고 설교하였고, 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시편16편의 성취라고 설교하였으며,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오른 편에 앉아 계신다고 설교하였다. 

  그리고 그날 성령께서는 또한 제자들 위에 부어짐으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담대해져서 거기에 모인 무리들에게 당당하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무려 3,000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어 세례를 받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동시에 사도들도 많은 기적들과 표적들을 행하게 되었으며,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서 40세나 되는 장애인 곧 나면서 못 걷는 자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일으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5.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를 베풀어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그날처럼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를 베풀어 주고 계시는가? 그렇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때의 성령의 역사 방식이나 지금의 역사 방식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2가지 방식의 성령의 역사 방식은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를 베풀어 주시는가? 그것은 '성령의 내주'를 통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이요, 또한 '성령세례'를 통해 누구든지 능력과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다른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한 마디로 '구원'과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믿는 자들 속에 성령을 보내 주고 계시며, 또한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공급하시어 담대하게 복음을 증언할 수 있는 증인이 되게 하시고 있는 것이다. 

 

 

2023년 05월 23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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