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부르심(8)] 바울의 부르심의 두번째 특징은 무엇인가?(행15:30~41)_2023-07-17(월)

https://youtu.be/GAhIIm6jN-k [또는 https://tv.naver.com/v/38328944]

1. 바울의 부르심의 첫 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여느 사명자처럼 바울도 주님으로부터 직접적인 방문을 받은 사역자였다. 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사명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그가 바로 무명의 다메섹의 제자 '아나니아'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소명을 받을 당시 주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부름받은 것은 맞지만,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아서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첫째로, 바울 자신이 감당해야 할 복음 전파 사역이 너무 큰 것이어서 바울로 하여금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둘째, 혼자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동역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셋째로,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복음 전파 사역에 참여하여 그들도 상을 받게 하기 위해서 그런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잃어버린 시력을 직접 고쳐 주지 않으셨다.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일정 부분 회복하게 하셨을 뿐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의사 누가를 통해 계속해서 치유를 받게 하셨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자신의 눈을 고쳐 달라고 세 번이나 주님께 힘써 간구했지만 주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는 그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큰 것이어서 그로 하여금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니까 바울의 부르심은 직접적인 부르심이었지만 사명은 다른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과 합력하여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 바울은 누구누구와 협력하여 복음을 전파했는가?

  그렇다면 바울은 누구누구와 협력하여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는가?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혼자 하지 않았다. 항상 동역자가 있었다. 먼저 1차 전도여행 때에는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서 사역했지만 그는 바나바와 함께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했다. 그리고 2차 전도여행 때에는 실라와 더불어 전도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에 루스드라에서 디모데와 합류하였고, 드로아에서는 의사 누가와 합류하였다. 그리고 빌립보에 갔을 때에 선교자금이 떨어졌지만 자주장사 루디아가 일정 부분을 보충해 주었다. 하지만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그리고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왔을 때에 또 한 번 선교자금이 떨어졌다. 그러자 바울은 텐트 만드는 일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그때 같은 기능업에 종사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난다. 그리하여 안식일에 말씀전하는 것을 보고는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바울에게 선교헌금을 대기 시작한다. 이후 바울은 평생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 그들 부부가 바울이 살아 있는 그날까지 선교헌금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3차 전도여행 때에는 전도의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다. 2차 전도여행 때까지만 해도 바울은 자신이 직접 여러 지방들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였고 각 지역에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3차 전도여행 때부터는 양상이 달라졌다. 바울이 소아시아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던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두란노서원을 빌려서 거기에서 교역자 훈련을 시키고 그들을 각 지역의 선교로 파송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가는 선교를 했다면 3차 전도여행부터는 보내는 선교를 시작한 것이다. 결국 바울은 혼자서 모든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협력하여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했던 것이다. 

 

3.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이었지만 끝내 받지 못했던 은사는 무엇이었는가?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특화된 은사를 갖고 있었다. 일반은사로서는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가 있었다. 그는 구약의 말씀을 통달하고 있었고 3개 국어를 할 수 있었기에 어디로 가든지 거기에서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건축의 은사가 있어서 각 지역마다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신령한 성령의 은사들이 가득했다. 그가 받은 영적인 은사들 중에 최고는 역시 '환상'의 은사였다. 환상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은 그가 과거로부터 현재를 알 수 있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며, 미래를 알 수 있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도 같이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회심한 이후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때에 그는 비몽사몽의 환상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내가 네게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행22:17)",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22:21)" 그리고 2차 전도여행 때에 드로아에서는 마케도냐인의 환상을 본다. 마케도냐인이 나타나 "마케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9)"는 음성을 들은 후 바울은 동쪽 지역 인도(인디아)로 선교 방향을 정하지 않고, 서쪽 지역인 유럽으로 선교지를 정하게 되었던 것이다(행16:9). 그리고 그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는 환상 중에 주님의 방문을 받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래서 고린도에서 2년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그때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18:9~10)"고 말씀하셨다. 이는 바울이 영안이 열려서 주님을 보았으며(행9:4~6,17), 주님의 음성도 들었다는 것이 된다(행18:9~10, 22:18,21). 또한 바울은 천사도 보았고 천사로부터 음성도 들었다(행27:23). 하지만 바울은 귀신을 직접 보고 그 귀신이 어떤 귀신인지를 알 수 있는 은사는 받지 못했다. 다만 2차 전도여행 중에 동역자 실라의 도움을 받아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적은 있었다. 이는 그가 귀신쫓음의 은사를 받은 것이지, 귀신을 보는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바울은 치유의 은사(행19:11~12, 28:8~9)와 기적의 은사(행28:3~5)도 받았으며, 방언통역(고전14장)과 예언의 은사(행19:6)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4. 바울은 자신이 귀신을 보는 은사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 약점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바울은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는 받았다. 그러므로 빌립보에서 점치는 여종을 만났을 때에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었다. 하지만 그는 귀신을 보는 은사는 받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귀신을 보지 않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귀신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한 어렵다. 그렇다면 바울은 빌립보에서 어떻게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자신과 함께 전도여행을 하고 있는 동역자 실라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이 된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우선 그가 누군지부터 살펴보면, 그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교회로 보낸 자로서, 예루살렘 공회의의 결의사항이 적힌 편지를 전달하라고 유다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졌던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데살로니가전서(1:1)와 데살로니가후서(1:1)에 나온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의 이름이 '실루아노'로 나온다. 참고로 실라는 유대식 이름이고, 실루아노는 로마식 이름이므로, 실라가 히브리파(본토) 유대인이 아니라 헬라파(해외 거주)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추정을 가능케 한다. 그런데 사도행전 15장에서는 그의 직무를 소개해 주고 있다. 이는 그가 선지자라는 것이다(행15:32). 그러므로 그가 선지자의 은사까지 받을 정도라고 한다면, 그는 아마 환상도 잘 보았을 것이고 귀신도 잘 보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둘째, 바울이 그를 데려와서 2차 전도여행 동역자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는 바울에게 없는 은사가 그에게 있어서 바울이 그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2차 전도여행 때에 실라와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귀신을 쫓았다는 성경 기록이 나온다. 고로 이날 귀신을 보는 실라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바울의 은사가 서로 합쳐져서 축사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5. 바울의 부르심의 두 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바울의 부르심의 두 번째 특징은 자기 혼자가 아니라 동역자와 더불어 복음을 전파하되, 한꺼번에 자신의 동역자를 모두 세워 일한 것이 아니라, 사역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은사를 메꾸어 주는 사역자를 세웠다는 것과 자신이 받은 사명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하여 함께 협력하려 하는 자를 동역자로 세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펴보면,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후원보다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한 후원이 상대적으로 더 강했고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을 전파할 수 있는 동역자와 물질을 제공하는 동역자를 붙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만났던 동역자들과 함께 자신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23년 07월 17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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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부르심(6)]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눅5:1~11)_2023-07-14(금)

https://youtu.be/ad-kNhEEdLw [또는 https://tv.naver.com/v/38328866]

1. 베드로가 주님의 수석 사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12명의 제자들을 뽑아 자신이 하는 사역을 보게 하셨다. 그리고 이들을 둘씩 둘씩 세상으로 보내셨다. 그래서 12명의 제자들을 사도라 일컫는다. 이때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12사도들 중에서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수석 사도로 삼으셨다. 항상 무슨 일이든지 대동했던 제자가 바로 베드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왜 수석 사도로 선택함을 받았던 것일까? 그 이유를 성경 본문으로 살펴보면 첫째, 그가 12제자들 중에서 제일 연장자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그가 최초로 부름받은 4명 중에서 가장 연장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부르심의 말씀을 종합해 본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아무나 수석 사도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의 속사람의 나이가 가장 연장자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래서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최초로 탄생한 예루살렘교회의 모든 일은 베드로가 주관했으며, 초기 복음 전파도 베드로가 주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그가 수석 사도로서 선택된 이유 중의 아주 근본적인 이유 하나가 등장한다. 그것은 베드로가 자신의 죄인됨을 시인하고 회개했다는 것이다(눅5:8).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오셨기 때문이다(눅5:32).

 

2. 주께 부르심을 받은 자가 필연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고로 주께 부르심을 받아 일해야 할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일이다. 성령 주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이 사명자로서 쓰임받은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회개하지 못했다면 끝내는 버림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전9:27). 그러므로 자신이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자라면 필수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 있다면, 그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은 늦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적게 쓰임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전혀 쓰임받지 못할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버림을 받아 성밖으로 내던져지거나(마7:22) 심지어 불못에도 던져질 수 있다(계21:8). 

 

3. 주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가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자신이 주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라면 그는 반드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레19:2, 20:7, 11:44~45, 벧전1:15~16). 깨끗함은 주님에게 쓰임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자 첫 번째 조건이기 때문이다(마4:17). 

레20:7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둘째,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완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고후7:1).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못하면 그는 악한 영들에게 실컷 쓰임받다가 버림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4. 주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에게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주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는 반드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사명자에게 주님께서 내린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히 구별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레19:2, 20:7, 11:44~45). 그리고 신약의 베드로 사도도 우리를 불러내신 거룩하신 이 곧 예수님처럼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명령한 바 있다(벧전1:15~16). 또한 사도 바울도 우리더러 자신을 깨끗하게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실 때에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게 하라고 명령했다(딤후2:20~21).

레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20:7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5. 주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았을 때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명자인 우리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받은 바 사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악한 영들이 자신을 성령으로 속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사탄도 자신을 광명(빛)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다(고후11:14). 까딱 잘못하면 귀신이 하는 일을 성령이 하시는 일로 알고 행하다가, 불법자가 되어 심판 때에 버림받은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악한 영들이 우리에게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말과 행위가 하나님의 뜻과 계시에서 점점 더 멀어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악한 영들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신이 우리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이다(고후4:4).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깨달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증언할 수도 없다. 

  셋째, 악한 영들이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할 수도 없고, 또한 새로운 은사를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은사는 모태 신앙인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며, 불신자였다가 믿는 자라면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에 은사를 받는다. 그리고 신앙생활하면서 필요에 따라 은사를 간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악한 영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의 은사는 묻히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은사를 간구해도 귀신들이 은사를 튕겨 버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려면 반드시 회개를 하여서, 하나님이 거주할 공간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넷째, 마지막으로 더러운 영들을 성도들에게 전달하고 나눠주게 되기 때문이다. 사명자가 설교할 때에는 자신의 입으로부터 귀신들을 나눠주고, 안수할 때에는 자신이 갖고 있는 악한 영들과 성도들에게 나눠주게 되며, 사역자 자신에게 불이 없다면 먼저 안수했던 더러운 영이 자신의 손에 달라붙어 있다가, 다음 안수하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중 형편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고로 사명자는 반드시 회개를 하여 악한 영들이 달라붙지 못하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사역할 때에 귀신이 다른 이에게로 넘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 

 

 

2023년 07월 14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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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부르심(5)] 내가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자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2)(출3:1~12)_2023-07-13(목)

https://youtu.be/SdHswyjz9Vw [또는 https://tv.naver.com/v/38328384]

 

1. 내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자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미 보내신 사명자이지만 어렸을 적에는 그것을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생을 살면서 사명자는 자신이 사명자라는 것을 반드시 알게 된다. 왜냐하면 사명자는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이미 정하여 이 땅에 보내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아직까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기 전의 상황에서,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사명자라는 것은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기준으로 살펴보면 된다.

  첫째,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의 관심은 언제나 영적인 것, 말씀, 천국, 은사와 능력 등 하나님에 관한 것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훗날 예수님의 12사도가 되었던 안드레와 요한은 원래는 어부였다. 하지만 그들이 비록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어도, 그들의 관심은 항상 메시야에게 있었다는 것을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알려 준다(요1:35~43). 둘째, 비교적 영적인 나이가 성숙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하나님께서 그가 하나님께 쓰임받을 때까지 죽게 하지 아니하시며,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환경을 안배해 주신다는 것이다. 

 

2. 사명자로 쓰임받으려면, 그 사람의 영적인 나이는 보통 어느 정도나 될까? 

  하나님께서 사명자로 쓰시는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그의 영적인 나이가 성숙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속사람의 나이는 최소 10세 이상은 된다. 사실 최초의 사람 아담은 완전히 성숙한 나이로 창조되었었다. 그의 영적인 나이가 약 25세~26세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최고의 높은 수준의 사람으로서 이 땅에 보내어진 속사람의 나이는 어떠한가? 그들의 나이는 약 15~16세 정도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영적인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영적인 나이가 높은 사람은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만난다고 해도 절대 그것에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잘 견뎌낸다는 것이다. 고난과 역경을 성숙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쉽게 지치거나 낙망하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도전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인생을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스스로 구별된 삶을 살며, 자기보다 성숙한 사람과 교제하면서 지낸다. 그렇다면 사명자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의 경우 영적인 나이는 어떻게 보내지는 것일까? 놀라지 말라. 적게는 3~4살에 보내어지며, 보통은 5~6세 정도에 보내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영의 나이는 보통 10년에 1살 정도 더 먹는다는 것이다. 고로 예수님을 믿은 후 60~70년을 살아도, 영의 나이는 6~7살 정도 밖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천국에서의 나이는 그 사람이 죽을 때의 영의 나이로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3. 사명자의 세 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이 땅에 사명자로 보내어진 사람의 세 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가 하나님께 쓰임받을 때까지 죽지 않도록 보호를 받으며,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일평생 환경의 안배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모세의 경우를 보라. 그가 하나님께 부르받아 쓰임받을 때의 나이는 80세였다. 그 전까지 그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그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이 쓰실 지도자로 다듬어갔다. 그리고 그가 죽임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셨다. 즉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애굽의 왕 바로는 모든 이스라엘의 사내아이를 다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의 부모가 그를 죽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아름다운 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히11:23). 그래서 석 달 동안 숨겨 키웠다. 그러고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맡겨 갈대상자를 만들어 그 아이를 나일강에 띄워 보냈다. 그리하여 애굽의 공주(하셉슈트 공주)가 갈대상자를 발견하여 자신의 아들로 키워낸다. 그러니 모세는 40세까지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하는 일에 능한 사람이 되었다(행7:22). 하지만 열정은 있었지만 성숙되지 않은 관계로 그는 40세에 광야로 보내어져 무려 40년 동안 양치기로 지내야 했다. 그리고 그의 나이 80세가 되었을 때 광야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를 불러내신다. 그리고 그에게 사명을 정확히 알려 주신다. 그리하여 그는 그 뒤로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영도자로서 쓰임을 받는다. 

 

4.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여 보내신 사명자는 어떻게 부름을 받는가?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는 이미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할 수 있다(히3:1).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쓰시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개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모세가 그랬고, 이사야가 그랬으며, 베드로가 그랬고, 사도 바울이 그랬다. 대부분 어떤 극적인 체험이 수반되는 것이다. 특히 구약시대로 치자면 여호와께서 직접 그들을 불러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약시대로 치자면, 오늘날까지 여전히 예수께서도 역시 어떤 사람을 불러내어 그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물론 성령께서 꿈과 환상, 그리고 방언통역과 예언 가운데 부르시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쓰시는 사역자로부터 부름을 받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받게 될 사람일수록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 때에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은 경우는 노아,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등이 있다. 그리고 신약시대 때에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은 경우가 있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12사도들과 사도 바울이다. 

 

5.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사람을 부르시는가?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위해서 지금도 사람을 부르고 계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다 개인적으로 부르시는 것은 아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이 쓰실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을 이 땅에 내려보내시되, 대부분은 하나님이 쓰시는 시대적인 사역자와 함께 협력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도록 배려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정말 만남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갈 사람을 시대적인 사역자와 함께 불러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들은 각 시대마다 쓰시는 하나님의 종들과 어떤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끈으로는 가족관계로서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배우자가 있으며, 사제관계로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있다. 부모와 자식관계의 예로서는 아브라함과 이삭, 이삭과 야곱, 야곱과 12아들, 다윗과 솔로몬 등이 있으며, 형제 자매로서는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이 있고, 신약시대에는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있다. 그리고 사제관계로서의 예는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베드로와 마가, 바울과 디모데가 있다. 또한 지역관계로서 같은 마을과 동네에 살기도 한다. 그것은 갈릴리 출신으로서 예수님의 12사도들이 된 자들이 있으니,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세리 마태, 빌립과 바돌로매(나다나엘)가 있다. 고로 우리는 우리의 만남 속에 하나님의 뜻과 계시가 있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이 세상에서 우연한 만남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2023년 07월 13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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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부르심(4)] 내가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자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1)(요1:35~42)_2023-07-12(수)

https://youtu.be/458olLo_A70 [또는 https://tv.naver.com/v/38328363]

1. 사람의 영혼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람은 육체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영혼까지 가진 존재다. 사람이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람의 육체에 영혼이 결합될 때다. 그렇다면 영혼은 대체 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우리가 아는 정보에 따르면, 사람의 육체는 엄마의 자궁 속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이때 인간의 힘은 개입되지 않는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혼은 어떠한가? 영혼은 사람의 육체가 만들어질 때 함께 창조되는 것인가? 아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고 있다. 사람의 영혼은 사람의 육체가 만들어지고 난 후, 어느 순간에 육체 속에 집어넣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간의 영혼은 이미 창조되어서 일정 기간 살고 있다가, 사람의 육체 속에 보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잠12:7). 그렇다.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채 있다가 엄마가 아이를 잉태한 지 3~4개월 정도 지나면 엄마의 자궁에 있는 아이에게로 보내어지는 것이다. 참고로 사람이 창조되는 장소는 하늘 본향으로서(히11:13~16), 실제는 천국에 있는 한 켠인 낙원이라고 불리는 장소이다. 

 

2. 엄마의 자궁에 있는 아이 속에 들여보내는 영혼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엄마의 자궁 속에 보내어지는 영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여 보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 땅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을 보내실 때에는 그 아이가 태어날 나라와 가정 그리고 그 아이가 장차 감당할 직책과 사명까지 정하신 후에 보내시는 것이다. 그리고 보내어지는 아이의 남성과 여성을 결정하여 보내신다. 뿐만 아니라 낙원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의 나이도 정하여 보내신다. 

 

3. 이 땅에서 살다간 성경의 인물들 중에 사명자였던 자들의 고백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살다간 성경의 인물들 중에는 사명자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고백하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를 태중에서부터 당신의 종으로 지었고 부르셨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로는 이사야, 예레미야, 사도 바울이 있다. 

사49: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사49:5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갈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4. 자신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명자로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시어 사명자로 보낸 이들이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이 땅에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그래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러한 사명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적어도 다음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육신을 가졌기에 이 세상에서 육신을 위해 살아가기는 하지만 자꾸 영적인 일에 관심이 가져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행하는 일도 소중하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이 땅에서 자신이 사는 목적이 아니라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즉 영적인 세계 곧 하늘나라가 궁금하고, 성경이 궁금하고, 하나님을 알고 싶고,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안드레와 요한 같은 경우도 바로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원래 갈릴리 토종 어부였다. 안드레는 자신의 형 베드로와 함께 벳새다 출신의 어부로서 약간 도회지와 같은 가버나움에 이사 와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요한은 자신의 형인 야고보와 자신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오래전부터 가버나움에서 살고 있었다. 특히 야고보와 요한은 예루살렘에 생선을 납품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안드레와 요한은 항상 영적인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줄 때에 그리로 가서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되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선지자로서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은 장차 나타날 메시야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메시야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러자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을 찾아간다. 왜냐하면 둘은 늘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자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사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채 있기에 늘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5. 자신이 사명자인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

  자신이 사명자인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그 사람의 속사람(영)의 나이가 성숙하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면 그 사람은 1년마다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 그래서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속사람도 이와 비슷하다. 속사람도 이 땅에 보내어질 때 자신이 가진 나이가 있다. 그 나이로부터 시작하여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다. 물론 일평생 살면서 영적인 나이가 한 살도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보통은 10년에 한 살씩 먹는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살펴보기로 하고, 자신이 사명자인 사람의 특징의 하나가 바로 성숙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먹은 채로 이 땅에 보내어졌기에, 다른 또래의 아이들과는 달리 비범해 보이고 성숙해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래 아이들과 논다면 항상 거기에서 대장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작은 동생들과 친하게 지내기보다는 자기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볼 때에는 그 아이가 일찌감치 철이 든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또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의 특징이 있으니, 그것은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자신에게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결코 낙심하거나 동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난을 잘 견뎌내는 것이다. 지치지도 아니한다. 혹 실패를 거듭해도 결코 낙망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계속해서 도전해 본다는 것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사명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도 이어서 사명자의 특징에 대해서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다. 

 

 

2023년 07월 12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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