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3(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우리 성도가 꿈꾸어야 할 진정한 꿈은 무엇인가?(창37:5~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TvQkPsd3il8  [혹은 https://tv.naver.com/v/30826423 ]

 

1. 들어가며

  사람은 꿈을 꾼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다만 꿈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꿈은 대부분 의미없는 꿈들이다. 그런데 꿈들 중에서도 계시적인 꿈 또한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계시적인 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과 같은 것으로서, 장래의 일을 미리 알려 주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는 두 명의 꿈꾸는 자를 발견하게 되는데, 한 사람은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라는 인물이요 또 한 사람은 바벨론 포로시절의 '다니엘'이라는 인물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들 중에서 '요셉'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왜 요셉은 계시적인 꿈을 꾸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되어서 주님이 항상 함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가 꾸었던 꿈은 대체 어떤 계시적인 뜻을 함유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의 꿈이 의미하는 바는 대체 무엇이며, 오늘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릴 장래의 지위와 그 꿈은 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가?

 

2. 의미없는 꿈과 계시적인 꿈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꿈을 꾼다. 그런데 꿈을 꾸고 나서도 대부분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나면 악몽을 꾸기도 하고 근심 걱정이 많아도 식은땀 흘리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꿈들은 대부분 자신의 생각이 무의식 속에서 펼쳐지는 꿈이기 때문에 앞뒤가 잘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꿈의 내용이 잘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이러한 꿈들은 보통 '개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꿈 중에는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계시적인 꿈들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꿈들을 가리켜 계시적인 꿈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조건이 들어맞을 때다. 그러면 그 꿈은 계시적인 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첫째, 꿈을 꾸고 난 뒤에도 그 꿈이 잊혀지지 않으며 계속해서 선명하게 기억나는 꿈이라면 그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꿈을 꾸되 겹쳐 꾸는 꿈이거나 반복적인 꿈 그리고 이어서 꿈을 꾸었다면 그 꿈은 계시적인 꿈일 수 있다. 셋째, 꿈의 내용이 일정한 패턴 즉 일정한 스토리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꿈이라면 그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그 꿈이 그대로 성취가 되는 꿈이라면 정말 그 꿈은 계시적인 꿈이라고 할 수 있다. 

 

3. 요셉이 꾸었던 계시적인 2가지 꿈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대체 어떤 꿈을 꾼 것일까? 그는 사실 처음부터 형제들에게 '꿈꾸는 자' 즉 '꿈쟁이'라고 불렸다(창37:19). 그만큼 그는 많은 꿈을 꾸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가 꾸었던 많은 꿈들 가운데서 오직 2가지, 겹쳐 꾼 꿈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꿈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꿈이었다. 그리고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꿈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그 꿈을 형제들과 그리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은 정확히 15년 뒤에 그대로 성취가 되었다. 고로 요셉이 꾸었던 꿈은 계시적인 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어떤 꿈을 꾸었던 것인가? 그가 꾸었던 꿈은 이러하였다. 

  첫째, 요셉이 형들과 함께 곡식단을 묶고 있었는데, 형들의 곡식단이 일어서더니 요셉의 곡식단을 향하여 절하는 꿈이었다. 17세 되었던 요셉은 그 꿈이 하도 선명하고 신기해서 그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형들은 요셉이 형들 위에 왕이 되어 다스릴 것 같으냐면서 동생 요셉을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같은 종류의 다른 꿈을 꾸었다. 이번에도 절하는 꿈이긴 하였지만 이번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꿈을 들은 아버지가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너에게 가서 땅에 엎드려 절하겠느냐"면서 요셉을 꾸짖었다. 그러나 야곱은 그의 꿈을 마음에 간직해 둔다. 

 

4. 요셉은 어떻게 되어서 계시적인 꿈을 꾸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미없는 꿈을 꾸는데, 왜 요셉은 계시적인 꿈을 꾼 것인가? 그리고 왜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늘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는가? 사실 요셉이 꾸었던 꿈은 그의 장래를 알려 주는 꿈이었고 더욱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그가 어떤 지위를 누리는지 알려 주는 꿈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듯 메시지를 갖고 있는 계시적인 꿈을 꾸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알려면 그의 4대 조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적인 꿈을 꾸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받은 축복을 누리기까지는 그의 조상들이 행했던 놀라운 회개생활과 희생이 요셉에게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영을 가지고 있어서 영의 눈(영안)으로 천사를 볼 수가 있고 귀신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귀신들이 사람의 몸속 특히 눈 속에 가득차 있어서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한다. 또한 계시적인 꿈도 꿀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요셉이 계시적인 꿈을 꾸게 되고 주님의 동행하심의 축복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살다간 그의 조상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사는 세상에 이미 하늘은 어둠이 걷혀 있었고 맑은 하늘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조상들은 어떻게 해서 요셉으로 하여금 이런 축복을 누리게 할 수 있었을까? 오늘은 그들 이야기를 다 자세히 살펴보기는 부족하기에 간단하게 그들의 삶을 정리해 본다. 

  첫째, 아브라함은 일찍 죽어 나가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가문의 저주를 끝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우상숭배의 도시인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왔고 회개하여 100세에 이삭을 낳아 불임의 저주까지 끝냈던 조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삶은 한 마디로 '저주를 끝냄'이었다. 둘째,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모리아산에 기꺼이 자신을 살아 있는 제물로 바친 사람이다. 그의 삶은 한 마디로 '헌신'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야곱은 이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기업을 잇는 후사가 되기 위해 일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상속자가 되기를 사모하고 또 사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삶은 한 마디로 '사모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로 요셉이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되고 계시적인 꿈을 꿀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의 조상들이 회개하고 믿음으로 살다가 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은 천국에서 어떤 위치에 앉아 있는가?

  우리는 신약시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어디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믿음을 칭찬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마8:11)" 그렇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천국에 들어갈 자가 될 것이며, 거기에서 잔치 자리에 참여하는 귀중한 신분이 된다는 말씀을 주께서 하신 것이다. 그렇다. 실제로 천국에 들어가서 보면 천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24장로들이다. 그런데 24장로들 가운데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들어 있으며, 더불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낳은 최고의 사람 요셉 역시 천국에서 24장로의 반열에 들어 있다. 왜냐하면 요셉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럼, 요셉은 어떻게 되어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지위를 얻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적인 꿈을 그대로 믿었으며, 여러가지 죄 특히 음행의 죄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었고, 자신에게 맡겨 주신 일에 충성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금 천국에 가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은 왕적 지위를 누리는 반열에 참여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사실 창세기 이야기는 창조의 이야기(1~11장)와 구속의 이야기(12~5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구속의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족장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야곱의 이야기는 동시에 그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의 이야기와 겹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야곱의 이기는 부분이자 열매가 곧 요셉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사람이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이 되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요셉 이야기를 통하여 그 실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는 것이다. 

 

6.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이야기는 무엇으로 귀결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와 같은 믿음의 족장들의 이야기는 성도들 중에 족장들의 이야기로만 끝난 것일까? 아니다. 왕적 지위에 관한 구약의 이야기는 비단 족장들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여 사용했던 민족 곧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다시 한번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처럼 그들의 우상숭배의 저주를 끝내기 위해 애굽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광야로 나왔을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삭처럼 자신을 바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 땅을 자신의 기업으로 받기 위해 피나는 전쟁을 벌여 그 기업의 상속자가 된다. 마치 야곱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될 때에는 요셉처럼 왕을 세워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된다. 그래서 구약성경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왕을 세우는 것인지를 알려 주는 책이 사무엘상하요, 그 왕들이 또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이야기가 열왕기상하인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세워진 왕은 사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우상숭배를 행하여 왕위를 내놓게 된다. 그렇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정하여 왕으로 예정해 놓았어도 왕적 지위를 누리기에 합당하지 않는 사람은 왕위에서 제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로 세워진 왕이 다윗왕이었는데, 다윗왕은 지금 천국에서 가장 빛나는 왕적 지위를 누리는 24장로들 중에 한 명이 되어 있다. 그럼, 그는 대체 어떻게 되어서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처음에는 아버지와 형들로부터 소외당한 사람이었으나 들판에서 양떼를 치면서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을 늘 목자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 즉 그는 항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 실로에 있었던 성막을 왕궁 옆으로 옮긴다. 그리고 어느 날은 자신은 백향목 향기나는 궁에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처소는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한다. 그러자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된다. 그렇다. 다윗이 하늘에서 왕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7. 요셉이 꾸었던 계시적인 꿈은 그의 장래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을 알려 주는 꿈이었는가?

  요셉이 겹쳐 꾸었던 2가지 계시적인 꿈은 결국 천국에서 일어날 2가지 영적인 비밀을 알려 주는 꿈이었다. 첫 번째의 꿈은 요셉이 장래 천국에서 다른 형제들로부터 섬김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 주는 꿈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실제로 이 땅에서부터 요셉의 형들은 자신의 동생 요셉을 찾아가 적어도 4번씩이나 절을 하였다(창42:6, 43:26, 44:14, 50:18). 그것은 형들의 시기로 인하여 요셉이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에 들어갔으나, 여차저차하여 요셉은 거기에서 총리가 되었고, 기근이 수년째 계속되었을 때 요셉이 총리로서 애굽에서 곡식을 팔고 있었기에,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에 들어가면서 총리 앞에서 절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형들은 실제로 요셉에게 네 번씩이나 절을 한다. 꿈대로 이뤄진 것이다. 두 번째의 꿈은 요셉이 장래 천국에서 해와 달과 별들을 다스리는 왕이 된다는 것을 알려 주는 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꾸었던 두 번째의 꿈을 잘못 해석하였다. 왜냐하면 자신과 요셉의 어머니 라헬과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으로 그것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곱은 요셉에게 절을 하지 않았으며,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야곱이 이 꿈을 꾸기 1년 전에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으며, 요셉의 형들은 11명이 아니라 10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꿈은 아버지마저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대강 알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왕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를 다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장차 있을 것에 대해 실례로서 당시 수년간 지속된 기근으로 인하여 수많은 외국 사절단과 왕들이 애굽에 곡식을 사러 와서 요셉에게 절을 하는 것으로 성취되기도 하였다.

 

8.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리게 될 왕적 지위는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리게 될 왕적 지위는 실제로 무엇인가? 우선 우리가 알 것은 성도들 모두가 다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왕 같은 제사장도 있지만 종같은 제사장도 있기 때문이다. 천국 성도들 중에 일부가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실제로 성도들 중에는 어떤 왕적 지위를 누리는 것일까? 그것은 성경 말씀을 종합해 보면, 요셉의 꿈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첫째로 천국에는 성도들 중에 일부가 다른 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마20:26~27). 이것은 성도들이 다른 성도들 위에 군림하거나 왕 노릇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성도들 중, 간신히 구원얻은 성도들 중에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가진 성도들의 집에 가서 섬긴다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성경 어디에 그러한 말씀이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 중에 누가 크냐고 하는 다툼이 일어나자, 이 땅에서 크고자 하는 자는 천국에서 섬기는 자로 있을 것이고, 이 땅에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천국에서 종으로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0:26~27 헬라어 원문 참조). 그리고 둘째로 천국에서 성도들 중에 왕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은 성밖으로 나가서 왕 노릇을 하고 성 안으로 들어오는 자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계21:24). 그렇다. 성도들 중에 왕적 지위를 누릴 사람들은 성밖으로 나가 민족들을 다스리고 또한 해와 달과 별과 같은 행성들을 다스릴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왕 노릇할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9.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갖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장차 천국에 들어가게 될 때에 왕적 지위를 누리려면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이 땅에서 삶을 보내지 않은 사람 가운데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이 땅에서 살다간 사람들 중에 왕적 지위를 갖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도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성경의 인물들 중에서 누가 왕적 지위를 얻게 된 사람이었는지를 잘 살펴보고 그들의 삶의 발자취를 우리도 따라가야 할 것이다. 성경 말씀에 따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과 다윗이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반열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런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천국에서 우리도 왕적 지위를 얻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회개하여 가문의 저주를 끝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도 이삭처럼 자신을 주님께 드려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셋째, 우리도 야곱처럼 하늘의 상속자가 되고 왕적 지위를 얻는 사람이 되는 것을 사모하고 사모해야 한다. 넷째, 우리도 요셉처럼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계시적인 꿈을 그대로 믿고 죄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며,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우리도 다윗처럼 결코 우상숭배하지 않고 끝까지 오로지 주님만을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도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왕적 지위를 소유하는 복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10. 나오며

  사실 우리가 꾸는 꿈이나 체험은 모두가 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확실하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성도들의 최종적인 신분이자 최종적인 지위가 무엇인지를 성경적인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요셉으로 결론 지어지는 족장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윗왕으로 귀결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도 함께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말씀하시는 왕 노릇하는 조건은 이와 같은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앞의 것들과 똑같다. 그 내용은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나온다. 그중에서도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말씀 속에 왕 노릇하는 것이 나온다. 그것은 철장 권세로 왕 노릇하는 것인데, 거기에는 2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로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둘째는 주님이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계2:26~27). 사실 두아디라교회는 거짓 선지자 이세벨이 활동하는 교회였다. 그래서 성도들이 그녀의 가르침을 따라가서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고 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교회에는 많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는 이기는 자들이 있었다. 그렇다. 우리들도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탄 마귀의 궤계를 알아차리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저주를 끝내야 한다. 그리고 음행의 죄를 범치 말아야 한다. 요셉처럼 자신을 지켜 음행과 같은 죄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요셉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삭처럼 주님께서 헌신하고, 다윗처럼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들 중에 누군가는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갖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우리 성도들의 진정한 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2022년 11월 13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11-06(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아들에게 그리스도라는 직무를 주신 이유(계5:9~10,11:15)

https://youtu.be/LRR8Zz0sdi4  [혹은 https://tv.naver.com/v/30583622 ]

 

1. 들어가며

  한때 한국 교회에 '제자 훈련' 바람이 불었다. '제자'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그분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자를 가리킨다. 결국 믿는 이들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을 훈련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자 훈련이 이 나라를 휩쓸고 지나간지 벌써 25년이 지난 오늘, 제자 훈련을 받은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사실 제자 훈련은 성경을 암송하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데까지는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으나 성도들로 하여금 귀신들과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커리큘럼에 귀신과 천사들에 대한 공과가 없으며, 회개의 중요성과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 주는 공과가 전무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반드시 알아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것은 역시 회개의 중요성이며, 천국에서의 성도들의 지위와 신분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으면 즉시 이러한 현실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우주 만물은 존재하게 되었으며 인간은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그것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신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시되 왜 그에게 '그리스도'라는 직무를 맡기셨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 성도들의 천국에서의 직무에 대해 알게 될 것이며 그것을 준비하는 첫 단계에 우리도 도달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아들을 낳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왜 아들을 낳으셨는지를 살펴 보았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하나는 볼 수 없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과 당신이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피조물이 알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의 표현으로서 아들을 먼저 낳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해 먼저 맏아들로서 예수님을 낳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낳으신 아들에게 직무를 맡기실 때, 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라는 직무를 주신 것일까? 왜 많은 직무들 가운데 아들에게 '그리스도'라는 직무를 주셨으며, 저 천국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왕국'이라고 부르는 것일까?(계11:15) 그리고 장차 성도들이 들어갈 천국에서 성도는 어떤 직무를 맡는 것인가? 그것이 왜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일까?

 

3.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그리스도'라는 직책은 대체 어떤 직분인가?

  하나님께서 만세 전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아들을 먼저 낳으셨다. 그리고 그에게 '그리스도'라는 직무를 주셨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라는 직무는 대체 어떤 직무인가?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 구약시대의 어느 시점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니 예수께서 탄생하셔서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하시기 전까지도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잘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시켜 '그리스도'의 직무를 맡기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에게 '기름을 붓게' 하신 후 어떤 직무를 맡기는 것이었다. 사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 단어로서, 이것을 히브리어로 바꾸면 '메시야(마쉬아흐)'가 된다. 다시 말해, 메시야는 기름부음을 받고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기름부어서 직무를 맡긴 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구약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딱 세 종류의 사람에게만 기름을 부어 직무를 맡기게 하셨다. 첫째는 '제사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우실 때에는 반드시 기름(관유)을 부어 제사장의 직무를 맡기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레8:10~12). 그래서 최초로 기름부음을 받고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한 사람은 모세의 형 아론이었고 아론의 두 아들이었다. 그 다음부터 모든 제사장자들은 기름부음을 받아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둘째는 '왕'이다. 최초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자는 '사울'이었다(삼상10:1).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을 시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된 '다윗'도 역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 솔로몬 역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서 왕위에 올랐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들은 기름부음을 받고 왕의 직무를 행한 것이다. 셋째는 '선지자'다. 사실 대부분의 선지자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었지만 엘리야의 제자였다가 선지자가 된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선지자의 사역을 하였다. 물론 이것 역시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왕상19:16). 그런데 제사장과 왕과는 달리, 기름부음을 받고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한 사람은 성경에 엘리사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참으로 '메시야'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제사장도 메시야였고, 왕도, 선지자도 메시야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구약시대의 마지막 메시야였는가? 그는 바로 세례 요한이었다. 그는 율법과 선지자의 마지막 주자였기 때문이다(마11:13). 그러나 그는 한사코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은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는 구약의 메시야들이 다 메시야에 대한 모형들이요 그림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메시야를 직접 만났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가리켜, 나보다 먼저 계신 이라고 했다. 그분은 만세 전부터 메시야로 있다가 성육신하셨기 때문이다. 

 

4.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어떻게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하셨는가?

  예수께서는 구약시대의 경우처럼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에게 부어졌던 관유의 기름부음을 받고 메시야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성령으로부터 직접 기름부음을 받고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되셨다(마3:16, 눅4:18~20, 요3:34).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예수님 이외에 그 누구도 메시야라는 직분을 갖지 못했다. 참 메시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메시야는 오직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 뿐이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하신 것일까? 첫째로, 그분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셔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셨다(히5:5~10). 이는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은 자신의 나이로 30세에서 50세까지만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만세 전부터 영원 후까지 영원히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하셔야 하시기 때문에, 시작도 끝도 없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예표는 창세기 14장에 나오며(창14:18~20), 예언은 시편110:4에 나온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다윗왕의 후손으로 오셔서 영원한 왕으로서 그 직무를 수행하셨다(마1:6,16~17). 고로 그분이 태어날 때에 동방 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서 경배를 받으셨다(마2:2). 그리고 그분은 공생애 기간에 사람들로부터 "다윗의 자손" 곧 왕으로 오신 이라는 칭송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돌아가실 무렵 빌라도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에도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에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26:63~64). 또한 십자가의 죄패에도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죄패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진정 그분은 지상에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오시지 않았다. 그래도 그분은 하늘의 왕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만물들에게는 당신이 왕이신 것을 드러내셨다. 그러자 고기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그물 속으로 들어갔고, 자신의 입속에서 동전 한 세겔을 드러내 보였고, 식물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루 아침에 뿌리채 말라버렸다. 그리고 바다를 지으신 분이므로 바쁘실 때에 그분은 바다 위를 걸어오셨다. 그리고 귀신들도 하늘의 왕이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쫓겨나 떠나가야 했다. 셋째, 그분은 선지자로서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셨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말하는 존재인데,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말씀을 받아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전해주셨고(마11:27), 또한 그분은 사람들의 모든 마음까지도 다 헤아리시면서 사역하셨다(요2:24~25). 특히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에서 어떤 여인을 만나 대화하셨는데, 그분은 그 여인의 과거를 그대로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인은 "당신은 선지자로소이다"고 말했다(요4:19). 그리고 이어 그 여인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는 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다 말해 주실' 것이라고 하자,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고 말씀하셨다(요4:26). 이는 곧 예수께서 그리스도로서 선지자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5.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아들에게 그리스도의 직무를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그리스도라는 직무를 아들에게 주신 것인가? 그것은 아들을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의 맏아들이 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직무가 어떤 것인지를 미리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구원받아 천국에 입성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그리스도 곧 제사장직과 왕직 그리고 선지자의 직무를 맡기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들께서 이 지상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셨는지를 잘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장차 우리도 그러한 직무를 맡기에 합당한 자로 잘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6.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가서 어떤 그리스도의 직무를 맡게 되는가?

  하나님께서는 사실 우리 인간을 그 아들의 쌍둥이요 그리스도의 쌍둥이로 만드시고자 먼저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면 역시 그리스도로서 직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천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가?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데, 사도 요한이 A.D.95년경 밧모섬에 들어가서 하늘의 광경을 본 것을 기록해 놓음으로서 알려진 것이다. 과연 성도들은 천국에서 어떤 일(직무)을 하며 사는 것일까?

  첫째, 천국에서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처럼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한다(계4:10~11, 5:8~10). 다만 천국에서는 제사드리는 일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천국은 이미 구속받은 영혼들이 거주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제사장들인 성도들은 대체 어떤 일을 수행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예배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때 성도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엎드려 경배하는데, 면류관을 쓰고 있는 자는 자신의 면류관을 벗어 놓고 경배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악기로 연주하는 성도들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을 벌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양을 올려드린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는 거기에 참여해 본 자만이 아는 것이다. 참고로 천국에서 예배 가운데 설교는 없다. 그리고 천국에서 예배하는 실제를 잠깐 소개하자면, 천국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한꺼번에 예배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천국에서 성도들은 2층 천에 살고 있다가, 3층 천에 올라와 예배를 드린다. 이때 24반차 가운데 하나의 반차(지파)가 올라와서 예배를 드린다. 한 반차의 총 인도자는 24장로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들은 각 마을의 수장이 되어서 예배를 인도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천국에서 찬양을 부를 때, 24장로들만 부르는 찬양과 144,000명이 부르는 찬양과 허다한 무리들이 부르는 찬양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 천국에서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처럼 왕의 직무를 수행한다(계5:10, 20:4,6, 22:5). 그런데 모든 성도들이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성도들의 지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는 왕적인 지위를 갖는 것이요 또 하나는 섬기는 자로서의 지위를 갖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주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된다. 한 마디로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할 때에 이기는 성도가 되었다면 그는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계2:26~27). 그러므로 모든 성도가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고 하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성도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지만 실제는 왕적 지위를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로 우리는 '종 같은 제사장'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참여하기를 소망하고 힘써야 한다. 참고로 지금 천국의 실상을 말씀드리자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죽은 즉시 낙원으로 올라가 자신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지위를 얻는다. 그중에서 144,000명에 들어가는 자는 1차적으로 왕적 지위를 얻는데 그들은 자신의 집에 섬기는 자를 둘 수 있다. 그리고 144,000명이 앉아 있는 70줄 가운데, 앞에서 6번째 줄까지는 전 우주 가운데 나가서 각기 별들을 다스리는 자가 된다. 그러니까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얻는 사람이 두 종류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창세기에 예표되어 있으니, 요셉의 꿈이었다. 요셉은 꿈쟁이였다. 하지만 그가 꾼 꿈은 딱 2가지만 소개되어 있다(창37:7~9). 하나는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다시 말해 천국에서 성도들 중에는 섬기는 자가 있고 섬김을 받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해와 달과 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이는 성도들 중에서 보좌 6번째 줄까지 차지한 성도들은 우주로 나가서 각기 우주의 별들을 다스리며 왕 노릇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천국에서 성도들 중에는 섬김을 받으며 왕 노릇을 하는 성도들이 있는 것이다. 

 

7. 나오며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아들을 낳으셨으며, 그분에게 '그리스도'라는 직무를 주셨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리스도'의 직무는 '제사장'의 직무와 '왕'의 직무였고 또한 '선지자'의 직무가 있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더 이상 선지자의 직무는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면 신적 지식이 모두에게 임하여 누군가로부터 하나님을 배워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주님께서 우리를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알고 그곳에 있는 성도들을 다 알기 때문이다(고전13:12). 그러므로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릴 그리스도의 직무는 딱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제사장의 직무요 또한 왕의 직무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사장의 직무는 모두가 수행하는 똑같은 직무다. 다만 부르는 노래가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과 면류관을 벗고 경배하는 자가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왕적 직무는 다르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모든 성도가 다 왕적 지위를 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이 행한대로 지위를 보상받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실컷 죄짓다가 천국에 들어간 사람의 지위와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 일평생을 바친 자의 지위는 결코 같지 않다는 것임을 알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면 가장 힘써야 할 것은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얻기 위한 준비다. 그것은 오직 이기는 자가 차지하기 때문이다(계2:26~27). 고로 성도라면 자신 안에 있는 죄된 본성을 이기고, 악한 영들을 이겨야 한다. 그리고 더 강한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그것에 충성해야 한다. 한 달란트 받았다고 그것을 감추어 두서는 결코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없다. 섬기는 자가 천국에서 섬김을 받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천국에 들어갈 때에 종과 같은 제사장으로 참여하느냐 아니면 왕과 같은 제사장으로 참여하느냐 하는 것은 다 이 땅에서 결정하여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아무쪼록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이것에 대한 실제 부분은 다음 주일에 말씀으로 나눌 것이다). 

 

2022년 11월 06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10-30(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하나님께서 아들을 먼저 낳으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롬8:15~19,29)

https://youtu.be/aQ7kSE7RY_o  [혹은 https://tv.naver.com/v/30435859 ]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아들을 낳으셨다. 그럼 하나님께서 아들을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낳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표현하시려고 하심이었다. 즉 모든 피조물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이 자기를 창조했다는 것을 알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먼저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어떤 피조물도 보지 못하였고 또한 볼 수도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딤전6:16).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창조하기 전에 아들을 낳으신 것은 이러한 이유 뿐일까? 아니다. 그것은 롬8:29에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시고 그 아들을 독생자로 낳으셨을 뿐만 아니라, 맏아들(장자)로 낳으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하나님께서 아들을 먼저 낳으신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고 보면 이것 때문에 천지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천지만물 창조 전에 아들을 먼저 낳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먼저 낳으신 궁극적인 이유가 따로 있는가? 그렇다. 이것이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이다.

 

2. 만세 전에 아들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었는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셨는데 그렇다면 그때에 하나님의 아들은 어떠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는가? 분명한 사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신 것이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육체를 입기 전까지 역시 아들도 볼 수 없는 영적인 존재로 계셨다. 그러니까 구약 시대까지 하나님의 아들 역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에 아들은 어떤 상태로 계셨는가? 성경은 그때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했다고 말씀한다(히1:3, 고후4:4). 다시 말해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자신을 당신 자신의 형상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만세 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하셨다고 하는 사실은 인간 창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닮음)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신 후에 당신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아담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창1:26~27). 고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으로 지어진 것이다(롬5:14). 그리고 아담이 창조된 것을 보니 하나님의 형상이 먼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성경은 만세 전의 '아들'이라고도 하며, 만물이 있기 전의 '그리스도'라고도 말하며, 만세전의 '말씀'이라고도 말한다. 

 

3. 하나님께서 아들을 먼저 낳으신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신 첫 번째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분이 모든 만물의 창조주라는 것을 계시하기 위해 아들을 낳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신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그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낳으신 후 인간도 그분의 형상으로 낳고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표현으로 만드시기 위함이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분을 하나님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그분을 따라 인간도 그분의 공동 상속자로 만드시기 위함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낳으신 궁극적인 이유는 그분의 형상을 가진 우리 인간을 얻으시기 위함이다(롬8:29). 아들은 만세 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계셨다. 즉 하나님의 표현으로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그분의 아들의 형상의 쌍둥이로 만들기를 원하셨다(롬8:29). 그래서 그분을 먼저 맏아들(프로토토코스)로 낳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의 모형으로 지어진 아담의 후손들로서 흙에 속한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변화될 날이 올 것이다. 사도 바울은 언젠가 우리 성도들이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후3:18).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생각하고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아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낳으신 후에, 우리도 그 아들의 형상을 따라 우리도 변화시키려고 작정하신 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 그분의 형상을 보게 될 것이다(고전13:12).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을 낳으실 때에 독생자이자 맏아들(프로토토코스)로 낳으셨다는 것이다(롬8:29). 이는 우리도 예수님의 형제들이 되어 그 아들을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낳으신 궁극적인 이유는 그 아들을 따라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롬8:17).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 아들을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히1:3). 그리고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기 위하여 일정한 절차를 진행하셨다. 그것은 먼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생명을 아들에게 주신 것처럼, '양자의 영'이자(롬8:15) '아들의 영'(갈4:6)이요, '생명 주는 영'(고전15:45)인 성령을 우리의 마음 가운데 보내시어, 우리를 역시 아들로 낳는 것이다(약1:18). 그래서 우리들도 역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거듭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가 비록 먼저 부모에게서 태어났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상속자들(후사들)이 나오는 것이다. 

 

4. 왜 천사들 중에 일부가 하나님을 대항하게 되었는가?

  천사들은 하늘들이 창조된 후에 가장 먼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짓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는 결코 주지 않는 지구의 통치권을 아담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천사들 중의 일부가 이를 시기 질투하였다. 그중에는 대 천사장 루시엘이 있었으니 이것을 보고 에덴동산의 중앙으로 올라가는 길에 생명나무와 비슷한 선악나무를 만들어 놓고는, 하와를 유혹하였다. 그걸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선악과를 먹은 하와가 그의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함으로, 인간은 마귀의 종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영계에서는 지는 자는 이기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벧후2:19). 또한 누구든지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롬6:16). 그러자 아담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만다. 그러자 아담은 죄인의 형상으로 변한다. 그러자 인간은 그때부터 늙고 병들고 죽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살려 주시기 위해 아들을 사람으로 보낸다. 그러자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처리해 주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생명 주는 영이신 성령을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달랐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심부름꾼이자 종으로 지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려고 지은 존재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려고 창조하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서도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도록 자식이 없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길리운 종 다메섹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서 난 아들이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생명을 이어받지 못한 자는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인간만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천사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존재들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상속자도 될 수가 없는 것이다.

 

5.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 중에 누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누구나 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는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상속자이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공동 상속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조건을 언급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기꺼이 고난도 함께 받는 자라고 말했다(롬8:17~18). 그런데 장차 하나님의 상속자가 누리게 될 영광은 우리가 받을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왜 한 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셨으며, 왜 그분이 사람이 되셔서 죽었는지를 전하다 보면 우리는 핍박을 받기도 하고 고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 전해 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한 목적이기에 우리는 죽는 날까지 이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설령 고난의 길이요 험난한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예로부터 경건하게 살고 주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왔다. 그 예표가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 속에서도 나온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이스마엘이었고 둘째는 이삭이었다. 하지만 둘 다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하고 핍박했다. 그러자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되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만다. 이것은 하나의 예표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이고, 이삭은 약속의 성령을 따라 난 자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아들이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고자 해야 한다. 누구든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6. 시편 2편과 16편을 보면 다윗은 대체 무엇을 보고 들은 것인가?

  한편 우리는 시편의 말씀을 통하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시편의 저자 중 하나인 다윗이다. 다윗은 영성이 깊은 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자였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인하여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들을 많이 보고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도 역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복을 받음에 있어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시편에 기록해 놓았다. 그것은 소위 메시야 시편이라고 불리는 시편 2편과 시편 16편 말씀이다. 우선 시편 2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아들로 낳은 후 그에게 열방을 유업으로 주신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철장권세로 왕 노릇할 것이라는 것을 말했다(시2:7~9). 그리고 그는 시편 16편을 통하여 그가 받을 할당받은 분깃 곧 영토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언급하였다(시16:5~6). 그에게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 준 영토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장차 들어갈 저 세상에서 우리가 할당받을 영토는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7.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은 어떤 것인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성도들의 부활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천국에서 누릴 영광의 크기에 대해서 말하였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살 때 비록 흙에 속한 자의 형체를 입고 있지만 하나님의 상속자는 하늘에 속한 형체를 자기의 속사람으로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같은 하나님의 상속자라 할지라도 하늘나라에서 받을 영광의 크기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해의 크기의 영광을 가진 자도 있지만 어떤 이는 달의 크기의 영광을 가지며, 또 어떤 자는 별의 크기의 영광을 가진 자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별과 별의 영광의 크기도 다르다고 했다. 또한 우리가 장차 회복하여 누리게 될 하나님의 형상은 3가지 면에서 특별하다고 했다. 그것은 첫째로, 결코 썩지도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때가 되면 우리는 영원히 영적 존재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 형상이 아주 영광스럽다고 했다. 우리도 그 아들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그 형상은 강하다고 했다. 그때가 되면 영적인 피조물인 천사들까지도 부리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8. 예수께서는 왜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변화될 때는 대체 언제인가? 그때는 우리가 아들이신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될 때다. 그 시작은 우리가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때요, 완전한 것은 우리가 부활체가 되는 때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받는 이가 하나에서 났기 때문에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것은 아들이 받은 생명과 우리가 받은 생명이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주님이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에 과연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제부터라도 이제 예수님께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9. 나오며

  요한복음 5장 17절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일하시고 있으시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낳아서 그 아들로 하여금 일하고 계신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일을 하셔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당신이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신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둘째로, 보다 더 궁극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표현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해 주시려고 먼저 하나님의 형상과 만물의 상속자로서 아들을 보여 주신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어떻게 우리가 만물의 상속자가 되어서 온 우주를 다스릴 것인지를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먼저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완전한 사람이신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 주시고 우리보다 먼저 앞길을 걸어가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섬세하시고 자상하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이렇게 사랑하신다. 그 큰 사랑과 계획을 우리가 안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부합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2022년 10월 30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10-23(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하나님께서 굳이 아들을 낳으신 이유는 무엇인가?(골1:15~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nfq33urOS9s  [혹은 https://tv.naver.com/v/30434246 ]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가장 먼저 아들을 낳으셨다(골1:15~17).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그분을 가리켜 사도 요한은 '아들' 또는 '독생자'라고 증언한다(요일4:9~10).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아들을 낳으셨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흔히들 아들은 아버지만 못한 존재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아들은 피조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둘 다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하신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아들이 아버지보다 못한 하나님이 되는 것도 아니며, 아들이 피조물이 되는 것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자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그래서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요8:42). 고로 하나님께서 낳으신 분을 가리켜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보면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아들을 가리켜 '먼저 나신 이'라고 증언하였다(골1:15).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굳이 아들을 낳으신 것일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혼자서 모든 일을 행하시면 되실 것을 왜 아들을 낳으시고, 그 아들을 통해서 일을 하신 것일까? 거기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 오늘은 먼저 첫 번째 이유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언제 아들을 낳으셨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아들을 낳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만물이 생기기 전에 먼저 낳으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들을 '먼저 나신 이'(프로토토코스)라고 증언하고 있으며,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으며 그분을 통하여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증언하였다(골1:16).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살아생전에 마가 다락방에서 아버지께 기도할 때에, 창세전에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으로 지금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요17:5). 그러므로 아들은 만세전에, 시간과 공간이 생기기도 전에 먼저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낳으신 분이자 만물의 창조자이신 아들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로고스)이라고도 증언하고 있다(요1:3). 만물이 말씀을 통하여 생기게 되었으니, 만물이 말씀이 없이는 하나도 있게 되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예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계셨을까? 이때만 해도 아들은 아직 육체를 입지 않으신 상태이기 때문에 이때도 역시 아들은 보이지 않는 영체로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한 번 태어난 것이 아니다. 실은 두 번 태어난 것이다. 먼저는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먼저 태어나셨다. 그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셨다. 그런데 만세전부터 아들로 계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사람으로 또 한 번 태어나셨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베들레헴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셨던 것이다. 그래서 이때 태어난 아들은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리게 된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때에 자신을 가리켜 1인칭 대명사로서 '인자(사람의 아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없이 태어난 그분을 가리켜 사도 바울은 '마지막 아담'이라고 언급했으며, '둘째 사람'이라고도 말했다(고전15:45,47). 왜냐하면 아담 이후 그분은 사람으로서는 죄없이 태어난 유일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들을 낳으셨다고 해서 아들이 하나님보다 부족한 존재이거나 그분을 피조물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채 있으니 그분은 아버지보다 더 부족한 분이거나 피조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항상 하나로 존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요10:30). 그래서 아들은 결코 아버지로부터 분리할 수가 없다. 아들은 아버지와 다만 구별할 수는 있지만 분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친히 증언하시기를 "나 자신과 아버지 곧 우리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10:30).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며(요14:9~10), "나를 믿는 것은 나를 보셨던 이(아버지)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12:44~45).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보다 부족한 분이 결코 아니다. 둘째로,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스스로 계신 분'이자,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고 증언하셨기 때문이다(요8:24,28,58, 계1:17~18, 22:13). 즉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에 유대인들은 예수께 "너는 누구냐?"하고 질문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해온 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요8:24,28,58). 우리말 개역 성경에서는 "내가 그"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출3:14~15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알려 주실 때에 당신의 이름으로 사용하신 것을 그대로 예수께서 인용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상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에 올라가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천국에서 당신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하늘에 계신 아들 예수께서 사도 요한을 불러내어 그에게 말씀하실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나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계1:127~18). 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에서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계22:13). 그분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선언이 예수께서 처음 사용하신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에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역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선언을 무려 3번씩이나 하셨기 때문이다(사41:4, 44:6, 48:12). 그리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 곧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그분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을 먼저 하셨으니, 구약으로 치자면 예수께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예수께서 친히 증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나오셨다고 해서 아버지보다 부족한 하나님이거나 피조물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롬9:5). 그분이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그분의 발 아래 만물이 있는 것이며, 그분은 만물의 머리로서 만물의 통치자이신 것이다(엡1:22).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리켜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라고 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어린양이셨던 예수님을 가리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고 증언하였다(계17:14, 19:15~16). 그러므로 우리는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하나님께서 굳이 아들을 낳으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왜 굳이 아들을 낳으셔야 했던 것일까? 그것은 먼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만물들에게 자신을 창조한 이가 누군지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그런 조치를 취하신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들로서 표현하지 않았다면, 피조물은 영영토록 하나님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창조한 이가 누군지를 영원토록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 노릇하는 거짓 영들에게 속아 피조물인 귀신들을 하나님으로 섬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있다는 것과 자신이 창조주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영으로서 그분은 죽을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누구도 그분을 볼 수 없으며 보이지도 않는 분이다(딤전6:16). 심지어 영물인 천사들도 본 적이 없으며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피조물이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 곧 아들인 것이다.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만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먼저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둘째, 피흘릴 수 없고, 죽으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낳으신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을 거역하고 반역한 마귀와 그의 부하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피와 살을 갖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죽으실 수가 없다(딤전6:16).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마귀의 말을 들어 영원히 죽게 생겼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인간을 내버려두지 않고 그들을 살리시기 위해 대신 죽기로 결정하셨다(히2:9). 그런데 하나님은 결코 죽으실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죽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셨고, 아들로 하여금 종의 형체인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고로 하나님께서 죽기 위해서 낮고 천한 종의 형상인 인간의 육체를 입고 태어나셨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이 되신 후에 또한 죽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히2:14).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역시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모아 놓고 행한 설교에서 교회를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획득하신) 교회"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은 피를 흘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피흘려 죽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과정이 곧 하나님이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셔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이 하나님되고자 했던 사탄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들이 되신 것이다. 마귀와 그를 따르는 귀신들은 원래 하나님 보좌 곁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반기를 들고 하나님을 거역하여 마귀가 되고 귀신이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가 보았을 때 육체를 가진 인간은 천사들보다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사람인 이상 그를 죽여 없애버리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탄 마귀는 사람들을 배후 조종하여 죄 없으신 그분을 거짓으로 고소한 끝에 십자가에서 죽게 한다. 하지만 사망 권세는 오직 죄를 지은 자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 일을 통해 사탄 마귀는 불법자가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여 이 지상에서 내쫓아 지옥(음부)에 가둬버린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탄 마귀는 지옥에서 나오지 못한 채, 자신의 부하들인 귀신들만 올려보내어 그의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요(요일3:8), 죽음을 통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고자 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히2:14). 

 

5. 구약시대에 아들은 과연 어떠한 상태로 계셨는가?

  그렇다면 아들이 육신을 입지 않고 계셨던 구약시대에 아들은 어떤 존재로 계셨던 것일까?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그분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때에 비로소 붙여진 이름이므로, 그분이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 전에 그분은 '예수'라는 이름도 갖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때는 '아들' 내지는 '말씀'으로 계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신격에 있어서 그분은 아버지와 항상 하나이기 때문에 그분도 역시 어느 누구도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피조물들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으로부터 먼저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아들은 어떻게 존재했을까? 그것은 최소 하나님의 형상(고후4:4)이자 영광의 빛(광채)(히1:3, 요1:9)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볼 수 없는데 그분이 빛으로 나타나기도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빛으로 보여졌다는 것은 그분이 자신을 빛으로 계시하셨다는 것이요, 그 계시의 통로가 바로 아들이었음을 말해 준다. 고로 구약시대에는 천사들도 역시 아들을 본 적이 없었다. 다만 하나님의 임재를 빛으로서 조금이나마 감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것도 그들이 빛을 직접 볼 수 없기에 두 날개로 자신의 얼굴을 가려야 했다. 그러므로 만약 구약시대에 아들이 보여진 존재로 있었다면 천사들도 그분의 존재를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던 루시엘(루시퍼, 마귀)조차도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그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다. 이는 그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재가 누군지를 알고 싶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신 것은 맞지만 예수께서 육신을 입을 때까지는 그 누구도 아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는 아들이 다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말씀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아담도 역시 하나님의 형상인 [하나님의] 아들을 따라 창조될 수 있었으며, 만물들도 생겨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시대까지만 해도 아들은 존재하고 있었으나 형체를 가지지 않는 영체로서 아버지와 같은 영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나타나실 때에 비로소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증언하였던 것이다(요1:18).

 

6. 나오며

  왜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기도 전에 아들을 먼저 낳으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은 영원히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그분이 창조한 모든 만물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이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으로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방식으로서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나오시게 됨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이제 아버지와 아들로 존재하게 되신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니 우리는 그분을 '예수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구약의 십계명은 그때는 아직 아들도 역시 육신을 입지 않았던 때이므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이 만들어 낸 우상을 섬길 것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계시고 또한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주신 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계신 아들이 드디어 육신을 입고 아들이 되셨으니 우리는 오직 아들이신 예수님만 경배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 중에 제자들은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만 경배하고 있었으나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분을 바로 하나님으로 경배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볼 수 있는 분으로 나타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찌 보면 베드로의 신앙고백 역시 놀라운 신앙고백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가리켜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는 것은 예수께서 온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계셨다는 것을 말한 것이며, 그분을 만세전부터 그리스도 특히 만유의 주인이자 왕으로 간증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간증한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께서는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감탄하시며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도 이러한 계시의 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자에게 주님께서는 영생을 주신다고 했다(요17:3). 그런 자들이 아들의 나라인 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오직 한 분 하나님께만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2022년 10월 2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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