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95년 당시 소아시아에 실제했던 빌라델비아(형제사랑)교회, 오늘날에도 여기 저기에 빌라델비아라는 교회간판이 보인다. 당시 빌라델비아교회는 꾸중 하나 없이 칭찬만 들었던 교회다. 그 교회는 뛰어난 주의 종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성도들이 부자이거나 높은 관직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어서 그 교회는 우리 주님으로부터 칭찬만 듣는 교회가 될 수 있었을까? 그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 땅과 하늘의 2가지 축복을 다 약속받았을까? 어떻게 되어서, 이 땅에 있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을 시험하려고 다가오는 시험의 때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약속을 받았으며, 장차 들어갈 천국에서는 면류관을 쓰는 축복을 받는 교회로 약속받았을까? 이제는 빌라델비아 교회 속으로 들어가서 살펴보자.
1. 들어가며
빌라델비아교회는 A.D.95년경 소아시아지역에 있었던 실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다. 빌라델비아지역은 교통의 관문지역에 위치해 있었지만 그리 큰 도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도시가 고원지대에 조성되었으나 여러 번의 지진으로 파괴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 세워진 빌라델비아교회는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님으로부터 매우 큰 칭찬을 받은 교회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교회에는 뛰어난 주의 종들이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성도들의 신분이나 지위가 높아서였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교회는 어떤 교회였길래 꾸중 하나 없이 칭찬만 들을 수 있었던 교회가 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오늘은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회가 칭찬듣는 교회가 될 수 있는지를 살펴봄으로, 우리들도 주님 앞에 서는 날 칭찬듣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빌라델비아 도시는 어떤 도시였나?
'빌라델비아'라는 지역명칭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빌라델비아'라는 단어의 뜻 자체는 '형제사랑'이다. 하지만 '형제사랑'이라는 뜻의 지명의 시작이 예수께서 주셨던 새 계명(요13:34~35)에 따라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 지역를 다스렸던 두 형제 왕들의 우애에서 붙혀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B.C.150년에 이 도시는 버가모왕국의 4번째 왕인 유메네스2세가 다스리고 있었다. 유메네스2세는 자신이 전쟁에 나갈 때마다 정치와 군사에 관한 지식이 많았던 동생 앗탈로스2세(아탈로스 필라델푸스)에게 내정을 맡기곤 했다. 그런데 이 도시를 노리고 있던 로마가 필라델푸스를 회유했으나 끝가지 형 유메네스2세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자 유메네스 역시 죽을 때에 왕위를 자식에 넘겨주지 않고 동생 필라델푸스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두 형제 왕들의 우애 때문에 이 도시의 이름이 '필라델푸스(빌라델비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도시는 자주 발생하는 지진 때문에 건물이 대부분 파손되었지만 지진 후에는 건물의 큰 기둥들만큼은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주님께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으로써 "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계3;12). 그리고 이 지역의 특산품으로는 포도주가 유명했다. 계곡마다 포도가 잘 자랐기 때문에 이 도시의 주요수입원은 바로 포도주였던 것이다.
3.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셨는가?
그렇다면, 빌라델비아교회는 어떤 교회였으며, 이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이 교회를 칭찬하시고 있는 예수께서 당신을 어떤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이 교회에게 당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4가지로 말씀하셨다(계3:7). 첫째, 거룩하신 이, 둘째, 진실하신 이(참되신 이, 완전하신 이), 셋째,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 넷째,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이다.
그런데 여기에 표현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자기소개가 조금은 특이하다. 왜냐하면 이전에 나오는 5개의 교회들(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교회)에게 당신자신을 소개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즉 이전까지 예수께서는 이미 자신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언급했던 요한계시록 1장에 나오는 주님의 모습에 따라, 거기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 중 몇 가지를 간추려 각 교회의 특성에 맞게 소개하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에베소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께서는 자기소개를 이렇게 했다. "오른 손에 일곱 별들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계2:1)"였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13절과 16절 전반부에 나온 예수님이 모습을 그대로 옮겨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빌라델비아교회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예수께서 자기소개를 하실 때에, 이전에 사용했던 모습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이전에는 표현하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은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교회의 유형이 앞에 나았던 5가지 유형으로 정리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교회의 5가지 유형으로 교회소개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후에 나오는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교회가 사데교회의 연장 내지는 확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사데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이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였다. 그리고 이 교회에서는 어떤 온전한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처음 들었고 처음 받았던 복음이 무엇인지를 빨리 기억해내라고 하셨다. 주님께서는 만약 그들이 회개치 아니하면 도둑같이 임하여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데교회에 몇 명 되지 않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흰옷을 입고 있는 자들인데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렇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사데교회 가운데 흰 옷입은 자들에 대한 확대다. 그리고 이어지는 라오디게아교회는 그 외에 나머지 사람들로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거룩하고 참되시며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며 열거나 닫으면 그대로 있게 만드는 이라고 소개하신 것은 그때 빌라델비아교회를 책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작은 능력을 지녔음에도 주님의 모습처럼 그대로 살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첫째, 주님인 거룩하신 분이다. 사실 신약에서 예수님에 대해 거룩하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존재는 많지 않다. 단지 둘뿐이다. 하나는 천사이고(막1:24), 또 하나는 요한사도다(요일2:20, 계3:7). 그렇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이이다. 그분은 죄에게서 떠나계시고 구별되신 이이다. 빌라델비아교회가 그랬다. 그들은 구별된 삶을 살았고 회개하여 자신의 옷을 깨끗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그분은 진실하신 이다. 원문에 따라 번역하면, '참되신 이"요 '완전하신 이"이다. 셋째, 그분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다. 이것은 사실 사22:22에서 빌어온 말이다. 예루살렘왕궁 곧 다윗집의 열쇠를 맡았던 셉나가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자 왕은 그의 열쇠를 빼앗아 엘리야김에서 주었다. 예루살렘왕궁은 하나님의 성전 곧 하늘나라인 천국을 상징하므로, 다윗의 열쇠는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인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당시 유대인들은 자기이 다윗의 후손들로서 자기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존재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열쇠가 합당하지 않으므로, 그들의 열쇠를 빼앗아 주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주신 것이다. 넷째,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이다. 이는 주님께서 천국의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는데,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님 뿐임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께서는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이미 열려진 채로 있는 문을 그들에게 주셨다고 했다(계3:8). 다시 말해 그들이 천국에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4. 빌라델비아교회가 칭찬들을 들었던 이유 3가지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대체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했길래 이런 축복을 받고 있었던 것인가? 이들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에 열려진 채로 있는 문을 통해 천국에 들어가고 있었다. 첫째, 작은 능력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지켰기 때문이다(계3:8). 둘째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계3:8). 셋째, 주님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인내로 지켰기 때문이다(계3:10). 그랬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밖에 가지지 않았다. 변변치 않았던 것이다. 주의 종이나 성도들 중에 뛰어난 인물들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께서 명하신 계명 즉 "서로 사랑하라(요13:34~35)"는 계명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실천에 옮겼다. 이웃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긴 것이다. 그들은 포도주특산지답게 포도주를 정성스럽게 담갔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300여개의 교회에게 성찬식용으로 공급했다. 주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사랑을 그들로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계3:9에 나와있듯이 유대인들로부터 갖은 핍박과 고난을 당했다. 하지만 끝까지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머나 도시처럼 빌라델비아 도시에도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해 와서 살았기 때문인데, 이들은 빌라델비아교회가 예수님을 주님이자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는 로마정부에 그들을 고소하여 어려움을 당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위로해주셨다. "그들은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칭하나 사탄의 모임이다. 장차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리라. 그래서 그들이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하리라(계3:9)".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다윗의 열쇠가 주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은 단지 사탄의 모임일 뿐 그들에게 있던 다윗의 열쇠는 이제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있다고 말씀하셨다.
5. 환란전휴거(세대주의), 과연 성경적인가?
그렇다면, 고난과 핍박 중에서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어떤 보너스를 주시는 것일까? 계3:10에 의하면,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누릴 수있는 보너스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것은 온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시험하려고 하는 시험의 날에 그들을 시험의 때로부터(from)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다(계3:10). 그런데 이 말씀은 그들로부터 환란을 면제해 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환난을 함께 겪어야하겠지만, 그들은 이미 환난을 겪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날에는 그것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어떠한가? 계3:10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 말씀은 환난전휴거의 근거라고 주장한다. 환난전에 비밀휴거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믿는 자들 중에 일부가 공중으로 끌어올려져, 공중에 강림하시는 예수님을 먼저 만나고 거기서 7년혼인잔치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밀휴거는 성경에 없다. 즉 그리스도가 지상으로 재림하기 전 공중으로 오실 때에 성도들이 휴거된다는 주장은 로마카톨릭의 신부였던 리베라(1537~1591)와 라쿤자에 의해서 생겨난 엉터리주장이요, 영국 스코틀랜드장로교 목사였던 에드워드 어빙(1792~1834)도 주장했으며, 존 넬슨 다비(1800~1882)에 의해서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거기에서 스코필드성경에 내용이 들어감에 따라 확산된 것이다. 아니다. 예수께서는 직접 환난 후에 오실 것이라고 했다(마24:29). 그래서 환난의 날을 감하지 않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택함받은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실 것이라고 했다(마24:21~22). 그리고 계3:10에서도 빌라델비아 성도들을 환난에서 보호해주시겠다는 하셨다.
6. 빌라델비아성도들이 하늘에서 받게 될 축복 3가지
그러면, 주님께서는 이기는 성도들에게 하늘에서 어떤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까? 3가지다.
첫째는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다(계3:11). 그것은 아마도 서머나교회의 경우와같이 생명의 면류관이리라(계2:10). 둘째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계3:12). 여기에 나오는 '성전'은 물질적인 성전(히에론)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나오스)을 가리킨다. 고로 이기는 자들은 천국에서 그리스도의 지체처럼 떨어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셋째는 3가지 이름들을 그들(이마) 위에 새기겠다고 했다. 그들의 이마 위에 새겨질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이다. 이것은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시겠다는 뜻이며, 새 예루살렘의 주인이 되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정말 놀랍지 아니한가?
7. 나오며
그렇다. 신앙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표현되는 신앙이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 성도들도 작은 능력밖에 없다 할지라도 거기에 눌러 있지 말라. 자기가 할 수 있는 형제사랑의 행동들을 실천해보라. 그리고 믿음 때문에 어떠한 핍박을 당한다 해도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럴 때에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복을 주실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도 복을 주실 것이다. 이 땅에서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겪는 환난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광스런 면류관을 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될 것이며, 하나님과 새예루살렘과 예수님의 새 이름이 이마 위에 새겨진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이는 그가 영원토록 주님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벅차 오르지 아니한가? 그런 날이 우리에게도 올 수 있도록 준비하자.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