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예수께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 유대땅 베들레헴의 어느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 그리고 포대기에 싸여 말구유에 뉘여 있었다. 예수께서는 따뜻한 방 한 켠이 아니라 동물들의 우리인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조금은 안 돼 보이는 갓난아기의 모습이다. 왜냐하면 좀 괜찮은 부모였으면, 아무리 방구하기가 힘든 베들레헴이었다고 하지만  마굿간 한 켠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에 천사가 일러 준 말에 의하면, 그 아기가 표적이라고 한다. 그 갓난아기는 기적 중의 기적인데, 온 인류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 아기라는 것이다.  


2. 왜 갓난아기가 인류구원을 위한 표적이 되는 것인가?

  대체 평범해보이는 이 갓난아기의 출생이 어떻게 되어서 인류 구원을 위한 확실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첫째, 갓난아기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태어나신 것이기 때문이다(눅2:11). 천사는 그날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태어나셨다고 알려주었다(눅2:11). 다시 말해 인류를 구원할 자가 그날 태어났음을 천사가 알려준 것이다. 그런데 목자들이 베들레헴까지 달려가서 확인해 본 것은 어느 신혼부부가 낳은 맏아들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평범해 보이는 이 아기가 왜 표적이라는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태어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바로 구원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구원자는 오직 이스라엘의 왕이시자 홀로 한 분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신 만군의 여호와만을 가리키는 용어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사43:11, 44:6). 고로 그 아이는 본성에 있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태어난 것이다. 그랬다. 이 아기는 어느 신혼부부의 맏아들에 불과한 아기가 아니었다. 이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이 아이는 정상적인 부부의 관계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아기였기 때문이다(사7:14).

  둘째, 이 갓난아기가 바로 그렇게 많이 예언되어왔던 메시야이기 때문이다(눅2:11). 사실 이 갓난아기는 우연히 태어나서 메시야가 된 것이 아니다. 이미 수천년동안 예언되어왔던 바로 그 메시야로서 태어났던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메시야라고 아무나 주장하지 못하도록 무려 4천년동안 350가지 이상의 예언들을 말씀해주셨다. 메시야는 이러이러한 자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 메시야는 여자의 후손이자, 유다지파의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처녀가 낳을 것이다. 그리고 메시야가 태어날 장소는 베들레헴이 될 것이다. 등등. 그런데 정말 4천년이 지난 어느날 이런 메시야의 모든 조건을 갖춘 아기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 자라서 메시야가 걸어가야 할 길을 고스란히 그대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메시야로서 감당해야 할 모든 일들을 다 감당했던 것이다. 그렇다. 처녀 마리아가 낳은 아기는 우연히 태어난 단순한 아기가 아니라 구약시대 무려 4천년동안 350가지 이상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였던 것이다.

  셋째, 이 갓난아기가 바로 구약시대에 여호와로 나타났던 바로 그 주님(아도나이)이시기 때문이다(눅2:11). 천사 일러준 세번째의 사실은 그 갓난아기는 사실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으로 나타났던 바로 그분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주님(아도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구유에 누워있는 그 아기가 바로 그 주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갓난아기는 구약시대에 주님이라고 불렸던 여호와께서 오신 것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예수께서 이제 공생애를 거의 마칠 무렵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그때에 사람들은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열렬히 맞이한다. 그때에 그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요12:12~13)"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구약의 노래를 부른 것일까? 그때 그들이 불렀던 메시야찬송은 시편 118:25~26이었다. 여기에 보면, "지금 구원하소서(호산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되어있다. 그랬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여호와의 신분을 가진 자로서 환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갓난아기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분은 구약시대에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던 바로 그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일까?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죄로부터 건지려면 흠없는 속죄양이 있어야 하고 인류의 죄를 전가받은 흠없는 속죄양이 대신 피흘려 죽어야 한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한 이후 인간들은 죄된 본성아래 있기 때문에 아무도 흠없는 속죄양될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흠없는 사람으로 피흘려 죽으시고자 사람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은 원래 영이시다(요4:24). 그래서 피흘릴 수 없고 죽으실 수도 없다. 그런데 인간이 지은 죄값은 사망이요(롬6:23), 피흘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피흘려 대신 죽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것이다(히9:22).


3. 나오며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 유대땅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단순한 갓난아기가 아니었다. 어느 신혼부부의 첫아들로 끝내버릴 아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계획했고 예언했던 모든 것을 성취할 메시야가 태어난 것이요, 그의 본질은 하나님 자신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메시야로서 오기 위해 그날 육신을 입으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류를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큰 일을 행하신 날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날이다. 우리는 이 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 날에 감사드려야 한다. 이날에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죄지은 우리 인간이 해야 할 가장 바른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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