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성경에 '7년 대환난'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혹시 나온다면 어디에 있는 것을 가져온 것인가? 예수님께서도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신 적이 있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 '7년 대환난'이라는 용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에을 보면 오직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만 나오고 있을 뿐인데, 거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환난의 기간을 전3년반과 후3년반을 나눌 수 있는가? 그리고 후3년반의 기간은 대체 어떤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것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이 나는가? 이 모든 것이 이 한 편의 설교에 들어있다.

2021-08-2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바른종말신앙(05) 7년 대환난은 과연 성경적이며 또 그것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마24:15~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qBhXzK264iE  [혹은 https://tv.naver.com/v/22002725   ]

 

1. 들어가며

  '7년 대환란', 이는 세대주의자들이 교회 시대의 마지막 시기에 있을 기간으로 설정한 말이다. 이들은 7년 대환란을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이레'에서 가져왔다. 그들은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를 7년으로 해석하여, 그것이 종말의 시대에 성취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어느새부턴가 한국교회에서도 마지막 시기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자행될 핍박과 고통의 시기를 "7년 대환난'이라는 말로 표현해 왔다. 그렇다면, 과연 '7년대 대환난'이라는 용어는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정말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을 지칭하는 대용어로서 과연 합당한가? 과연 예수께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셨던 것이 있으셨는가? 우리는 이제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이 용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대환난기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지까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든 성도들은 대환난을 잘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며, 혹 그 기간에 우리가 놓여 있을지라도 대환난을 잘 이겨내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7년 대환난'이라는 용어가 과연 성경에 있으며 실제할 것인가?

  '7년 대환난'이라는 직접적인 용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럴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용어를 우리가 사용할 때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그러한 7년 대환난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세대주의자는 어떻게 7년 대환난을 사용하고 있는가? 그들은 7년 대환난은 이스라엘 민족과 휴거되지 못하고 남겨진 그리스도인들이 겪을 환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환난의 기간은 교회를 지칭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환난임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공히 함께 겪어야 할 환난을 가리킨다. 마지막 시기가 도래하면 정말 적그리스도에 의하여 대환난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3. '7년 대환난'이라는 용어는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가?

  그렇다면,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용어인 '7년 대환난'을 세대주의자들은 대체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가? 그것은 다니엘서에서 가져왔다.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이레'의 예언에서 가져온 것이다. B.C.538년 메대왕 다리오 원년에 다니엘은 자기 민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거기에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만에 마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니엘은 그날이 곧 다가올 것을 예견하고는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재를 덮어쓰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보내어 장차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에 되어질 미래의 일들을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바로 70이레'의 예언이다(단9:24~27). '70이레'에 관한 자세한 예언은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 여기서는 대강 아웃트라인만 살펴볼 것이다.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중건하라는 명령이 날 때를 기준으로 하여 7이레와 62이레가 지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62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일은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과 그 후에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70이레의 예언은 메시야의 출현과 죽음 및 예루살렘의 파괴에 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이 한 이레를 7년으로 계산하여, 이것이 69이레 후에 바로 성취될 것이 아니라, 공백기를 거치고 나서(교회시대 2천년), 인류 마지막의 어느 시기에 성취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므로 인류 마지막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는 시기를 '7년 대환난'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받는 핍박이므로, 그때 나타나서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존재는 이스라엘 민족과 7년간 평화조약을 맺었다가 파기하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죽일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기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기라고 그들은 정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기가 되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추수가 있어야 하기에, 교회는 잠시 그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7년 대환난 전의 '교회의 비밀휴거'라는 것이다. 

 

4. 예수께서는 '대환난'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으며, 그때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과연 대환난에 관하여 말씀하셨을까? 그렇다. 예수께서는 마24장에서,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 곧 우상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때가 대환난의 날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예루살렘에 세워질 때에 이스라엘에게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마24;15).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에 세워질 우상을 숭배하기를 거부함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죽임당할 것인데 이것을 두고 대환난이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 기간을 '7년'이라고 딱 못 박지는 않으셨다. 다만 '대환난'이라고만 말씀하셨다(마24:21). 그리고 그 기간도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감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22). 그러므로 세대주의자들이 그 환난의 기간을 7년이라고 말을 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산술적인 7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는 '대환난'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으며, 그 시기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대환난의 기간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7년 대환난을 요한계시록도 과연 언급하고 있는가? 둘째, 대환난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겪는 대환난인가? 셋째, 그 환난의 시작과 끝은 언제인가? 

  첫째, 7년 대환난의 기간을 과연 요한계시록에서도 언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있다'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은 산술적으로 7년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7년이라는 시간이 나오지 않고, 42달이라는 기간이 연거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42달은 한 달을 30일로 치자면, 1260일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삼년반이고, 다니엘에 나오는 표현으로 치자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기간을 3년반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숫자가 완전수 7의 절반으로서 3.5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난의 기간이 완전히 가득찬 기간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둘째, 대환난은 과연 이스라엘 백성만이 겪는 대환난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올시다'이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때에 대환난을 겪을 것이겠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자들 곧 교회도 동일하게 환난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계12:17, 13:7,10). 그때는 예수님을 믿는 이유 때문에 받는 환난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도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환난인 것이지, 성전을 세우고 거기에서 양잡고 하는 일 때문에 받는 환난은 아닌 것이다.

  셋째, 그 환난의 기간의 시작과 끝은 과연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대환난'이란 그냥 단순한 환난이 아니다. 그 환난은 아주 큰 환난이어서, 그런 환난이 이전에도 없었지만 이후에도 없을 만큼 아주 거대한 환난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환난은 이전에 있었던 환난과 좀 차별이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도 사실 성도들은 환난을 겪어 왔다. 그것은 짐승(적그리스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거짓선지자(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의한 핍박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은 용(사탄마귀)가 가세한 환난이다(계16:13~14). 즉 사탄의 삼위일체인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에 의한 환난인 것이다. 그래서 '대환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때의 환난은 아주 무서운 환난이 될 것이다. 성도들은 이때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의해 가차없이 목베임을 당할 것이다계13;10, 20:4). 그리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사람도 역시 목을 베임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 그 시기의 최소 시작 지점은 '두 증인'이 사역을 마칠 때다(계11:7, 17:8). 일곱 나팔 재앙으로 치자면 다섯째 나팔이거나 여섯째 나팔 재앙의 시기일 것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활동하는가? 그것은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땅의 왕들을 동원하여 하늘의 대왕이신 예수님께 대항하는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이 끝마칠 때까지다(계19:11~21). 이것을 나팔 재앙과 대접 재앙으로 말하면, 여섯째 나팔 재앙에서 여섯째 대접 재앙까지일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재림하시어서,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무저갱에 쳐넣으셔서 끝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같은 전쟁을 가리키는 것인데, 전쟁의 주된 존재가 아마겟돈 전쟁은 짐승과 거짓선지자이고, 곡과 마곡의 전쟁은 용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계20:10 헬라어원문 참조).

 

6. 나는 대환난의 기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그날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 내 믿음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고난도 각오하고 심지어 죽음도 각오하는 것이다. 믿음의 지조를 꼭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지막의 시기에 가서는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고 기꺼이 내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둘째,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회개하고, 조상들의 죄까지도 회개하여 귀신이 더이상 내 몸과 내 가정과 내 자녀에게 역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 시기에 가서는 내 식구 중에 믿지 않는 자가 나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라고 했다(마10:36). 그러므로 마지막 시기가 되기 전에 꼭 가족을 전도해야 한다. 명심하라.

  셋째,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상급얻는 자가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은사와 달란트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야 심은대로 천국에서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지난 주일(15일)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세력에 넘어가고 말았다. 2001년부터 미국에 의한 침공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국가였지만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신앙의 자유가 가능하였다. 그래서 약 1만명의 성도가 생겨났다. 하지만 지난 15일에 아프가니스탄이 급진적인 이슬람세력인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레반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그날부로 외국인과 연결된 사람들을 검색하여 처형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 선교사들과 접촉한 사람, 미국에 협조한 사람이 날마다 총탄의 세례를 받아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마지막 시기에도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미움을 받아야 하고 형제와 가족들에 의해 고발당하여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중에 가면 더 잔인하게 처형될 것이다. 우리 나라도 잘못 했다가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 오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그러한 날이 가까이오고 있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평화의 사도처럼 가장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종교간의 전쟁을 그치고자 종교통합을 이루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은 예수 이외에 다른 구원자를 인정할 수 없기에, 종교통합을 반대할 것이다. 그러면서 처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순교자의 숫자가 찰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약속해주셨다.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대환난의 날을 감해주신다고 말이다(마24:22). 그러므로 성도들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 죽는 자는 천국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계2:10). 그날 환난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조금씩 해 나가야 한다. 그럴려면 기도하여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죽음의 공포까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8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가짜 천국과 지옥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33) – 박소리목사편(04) – 마지막 시대에 7년대환난은 과연 있을 것인가?(단9:24~27)_2020-11-18(수) 

https://youtu.be/z3z_WouZYw8  [혹은 https://tv.naver.com/v/16759350  ]

 

1. 박소리목사는 7년대환난 전에 성령받은 자들은 휴거될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7년대환난"이라는 것이 성경에 있는 표현인가나요?

  요한계시록을 비롯한 신약성경말씀에 "7년대환난"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습니다. 예수께서도 그러한 것을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구약성경 다니엘서 9장에 보면, "한 이레"는 단어가 나올 뿐입니다. 

 

2. "7년대환난"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7년대환난"은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을 신봉하는 교단에서 나온 종말론의 교리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보통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을 신봉하는 교단에는 예수님께서 공중재림(空中再臨)하실 때 성도(聖徒)들이 들림 받을 것이라면서, 이때 성도들은 7년 대환난(大患難)이 시작되기 전에 공중(空中)으로 휴거(携擧)되어 올라갈 것이므로 7년 대환난(大患難)의 고통을 하나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교리는 성경에서 나오는 말씀에서 따온 것일까요? 

 

3. 왜 환난전휴거론자자들은 "7년대환난"을 성경의 어디를 근거로 이러한 교리를 만들어 낸 것일까요?

  "7년대환난"이라는 용어는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이레 예언 가운데 "한 이레"에서 가져온 것입니다(단9:27). 하지만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종말에 관한 예언이 아니며, 단지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와 예루살렘 성 및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언에 해당할 뿐입니다. 굳이 명시하자면, 다니엘서 9장의 70이레 예언은 메시야의 초림과 예루살렘 멸망 그리고 성전파괴에 관한 환상예언일 뿐, 종말에 관한 예언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먼 미래의 일이라고 해석하는 천주교의 요한계시록의 해석법에서 그것을 퍼진 것을 개신교회가 사용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당시 교황은 자신을 짐승 곧 적그리스도로 보는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러자 그러한 사실에 평신도들이 관심갖지 못하도록 새로운 요한계시록의 해석법을 내놓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당시 리베라 신부(A.D.1537~1591)가 적그리스도는 먼 미래에 출현하게 될 세계정부의 지도자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이것을 영국의 성공회 신부였던 존 넬슨 다비(A.D.1800~1882)에 수용하여, 미국으로 가져갔고 미국에서 이것이 꽃을 피우게 되었으니 그것이 세대주의가 된 것입니다. 세대주의에서는 종말의 때를 다니엘9장에 나오는 70이레로 풉니다. 그래서 7이레와 62이레가 지난후 중간에 공백기가 있을 것이며, 어느날 교회가 비밀이 휴거되면 공중에서는 한 이레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공중으로 휴가되어 올라가 7년간 공중에서 혼인잔치를 벌이고, 지상에서는 7년대환난이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다니엘의 70이레는 초림의 예수님과 성전파괴에 대한 예언인 것이지, 종말에 관한 예언이 결코 아닙니다. 

 

4. 종말에 관한 예언은 어떤 예언이어야 맞나요?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종말에 관한 예언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마리 짐승에 관한 환난으로 성경에 다시 한 번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종말에 있을 짐승에 의한 환난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다니엘7장에 나오는 넷째짐승에 관한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주의자들은 다니엘의 7장에 나오는 넷째짐승에 관한 예언을 가져다 쓰지 않고,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이레'에 관한 예언을 가져다 쓴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적용과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다니엘7장에는 종말에 관한 어떤 예언이 있나요? 그것은 넷째짐승(로마제국 상징)의 열 뿔에서 세 뿔이 뽑히고 한 작은 뿔이 올라오는 것인데, 그 뿔이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며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뿔이 활동하는 기간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3년반, 1260일, 42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더라도 넷째짐승이 활동할 기간을 가리켜 "42달"이라고 정확히 묘사하고 있습니다(계13:5). 고로 성도들이 환난받는 기간은 7년이 아니라, 42달(3년반)이라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5. 성도들이 환난을 받는 "42달(3년반)"은 실제의 시간을 가리키나요 상징인가요?

  요한계시록에서 미래의 환상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과 시간은 실제인 것도 있으나 대부분 상징적인 것입니다. 계5장에 보면, "어린양"이 등장하는데 이 어린양도 뿔이 일곱이요, 눈이 일곱입니다. 실제라면 괴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계13장에 보면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입니다. 다 무엇인가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7"은 이 세상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키며, "12"는 하늘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10"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열이듯 충만한 수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3년반은 7년의 절반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환난의 날이 분명 있기는 있는데 그날들이 많이 축소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마24장의 종말장에서 그날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받을 수 없기에 택하신 자들을 위해 환난의 날을 감해주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마24:21~22). 고로 42달은 7년에 비해 많이 짧아진 기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환난을 받기는 받지만 순교하는 사명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환난으로부터 보호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든지 찾아올 환난을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혹시 환난받지 아니하고 훌쩍 휴거되어 올라가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그냥 시간만 보내다가 환난이 찾아오면 견디지 못하는 약한 자가 되어서는 절대 아니되겠습니다. 환난을 대비하여 환난을 당할 때면, 죽으면 죽이라는 각오로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20년 11월 18일(수)

정병진목사

 

어떤 사람은 대환난기가 "7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3년반"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7년"과 "3년반"이라는 기간은 대체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가? 우리는 이 기간에 대해 다니엘에서 2번, 요한계시록에서 5번을 만나게 된다. 특히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시기를 동일하게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그것은 3년반으로서, 1,260일이며, 42달에 해당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1,260일"은 정말 산술적으로 딱 3년반의 기간만을 가리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상징적인 숫자요 영적인 숫자라는 것이, 요한계시록 12장과 11장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계12장("여자"와 용에 대한 환상)에서는 그 시작의 시기를 말해주고 있으며, 계11장("두 증인"에 대한 환상)에서는 그 끝의 시기를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 기간은 대체 얼마만큼 되는 것이며, 그 시작과 끝은 언제인 것인가?

2019-05-10(금) 금요기도회
제목: 용과 여자의 쟁투(6) 짐승에 의한 환난기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시작점과 끝점은 언제인가(계11:3~13)
https://youtu.be/pU9S-15wMKw


1. 들어가며

  지금의 시대는 과연 환난기인가 평온기인가? 과연 우리의 시대에 대환난이라는 것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대환난"이란 미래의 어느날이 되었을 때에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이스라엘과 7년간의 평화협상을 맺게 될 터인데 그때부터가 환난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중에도 전3년반은 미온적 환난기라고 하고, 후3년반은 극심한 환난기이기 때문에, 대환난은 3년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주장이 과연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환난기이며 대환난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짜 3년반의 환난기가 언제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3년반의 환난기의 시작지점과 끝지점이 언제인지를 통해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시기가 어느 정도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환난을 대비하고, 환난에서 이기는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더불어 살펴보고자 한다.

 

2. 세대주의적 환난전휴거론자들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떤 기간을 가리키는 것인가?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은 이 기간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한  두 때와 반 때"를 산술적으로 해석하여 시간적으로 딱 1,260일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어느 미래에 나타날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과 성도들을 죽이는 딱 3년반의 기간만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은 사실일까?

  그렇다면, 왜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3년반 즉 1,260일이라고 그겋게 주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단9:27에 나오는 "다니엘의 한 이레"에 대한 자의적 해석 때문이다. 그들은 한 이레(7년)의 언약을 이렇게 푼다. 즉 한 이레(7년)의 절반에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의 성전(제3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게 될 것이라는 본다. 그런데 그때에 비로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랐던 그가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면서 목베임을 받아 구원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러한 해석은 잘못 오해하고 내린 해석이다. 왜냐하면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이레의 언약 가운데 "한 이레"에 대한 그들의 해석이 처음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니엘의 70이레의 "한 이레"는 초림하신 메시야의 죽음과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언인 것이지, 미래에 있을 적그리스도와 이스라엘간에 맺을 7년평화협정이 아니기 때문이다(단7:24~27). 다니엘은 어느날 하나님으로부터 70이레에 대한 말씀을 듣는다. 그것은 7이레와 69이레가 지난 후에 메시야가 나타나서 기름부음을 받을 것이며, 그후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라고 했다(단9:27). 그러므로 마지막 "한 이레(7년)"의 시작은 메시야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기름부음을 받음을 받은 해(A.D.27년)를 가리키는 것이며, "한 이레의 절반"은 기름부음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시기로서, 그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 사실을 가리킨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이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랐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신 것을 거부한 채 계속해서 성전에서 동물의 피의 제사를 드리려고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 곧 로마의 디도장군을 보내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셨던 것이다(마24:15,눅21:20). 이것이 바로 한 이레의 절반 이후에 되어질 일이다. 고로,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이 말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산술적으로 1,260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초림의 예수님의 사건을 미래에 있어질 적그리스도의 통치로 해석한 잘못된 주장이다.

 

3. 요한계시록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의미는 대체 어떤 의미인가? 우선 요한계시록에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용어가 단 한 번 등장하고 있다(계12:14). 그런데 이 용어가 동일문맥 안에서 1,260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계12:6). 그래서 우리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1,260일과 동일한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이것은 달(month)수로 환산해본다면, 42달이며, 연(year)수로 계산해 본다면, 3년반에 해당한다. 고로 우리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곧 "1,260일"이자, "42달"이며, "3년반"을 가리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1,260일은 정말 문자적으로 딱, 42달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상징적인 시기요 영적인 시기다. 왜냐하면 그 기간은 성도들이 대적자들에 의해 핍박을 받고 환난을 받는 기간 전체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도요한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용어를 요한계시록에서 사용하게 된 것은 이 단어서 처음 쓰였던 단7:25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단9장의 70이레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다). 거기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에 의해 핍박받는 기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짐승같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에 의해 핍박받고 환난받는 기간을 가리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간일지라도 성도들을 보호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요한이 본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체라고 여겨지는 한 여자가 용(사탄)의 얼굴을 피해 광야로 도망가서 거기서 양육받는 기간을 1,260일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260일이란 여자가 용으로부터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이면서, 동시에 여자가 용에게 핍박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4. 환난의 시작지점이 어디이며, 환난의 끝지점은 대체 어디인가?

  그렇다면, 환난의 때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시작시점은 어디며, 환난의 끝지점은 어디인가?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은 그것이 언젠가 도래하게 될 적그리스도의 통치기간으로서 그 기간의 처음과 끝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 기간에 적그리스도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할 것이라고 해석하기에, 지금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반드시 제3의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적그리스도가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 후에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 일을 99.9%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좀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들은 단9장에 나오는 한 이레를 잘못 해석하고 있음이 매우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즉 3년반(영적인 대환난기)의 시작점은 언제이고, 또한 3년반의 끝지점은 대체 언제인가? 놀랍게도 그 시기가 요한계시록 12장과 11장에 잘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환난기의 시작점이 기록되어 있고,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환난기의 끝지점이 기록되어 있다.

  첫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3년반)"의 시작지점은 어디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날이다(계12:5~6). 왜 그런가?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총체로 표현된 여자가 예수님을 낳은 이후 용에 의해서 핍박을 받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먼저 해를 옷입은 채 있는 여자와 남자아이가 누군지부터 살펴보자. 처음에 여자가 누군지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남자아들은 알 수 있다. 그는 장차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남자라고 했기 때문이다(계12:5). 계19:15과 계2:27을 읽오보면,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재림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후에 출현하게 되는 "이기는 성도들"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장차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남자이의 첫 열매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분의 뒤를 이어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이기는 성도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참고로, "해를 옷입은 채 있는 여자(계12:1)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산출하는 모체를 가리키며, 예수님 탄생 전까지 이 여인은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하지만, 예수님의 탄생 이후부터는 천국에 들어갈 이기는 자들을 산출하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뒤에서 가서 더 자세히 나옴).

  둘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3년반)"의 끝지점은 언제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의 재림 직전"이다. 왜냐하면 그 기간은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서 양육받는 기간임과 동시과 두 증인이 활동하는 기간과 일치하고 있는데, 두 증인의 사역이 마치는 날은 무저갱으로부터 한 짐승이 올라오는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계12:7). 이때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한 짐승"은 사탄을 가리킨다(계9:1,11,16:13~14,17:8). 그때에 두 증인이 자신의 사역을 마치는 그날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때 주님의 재림이 있다. 고로, 환난기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인 것을 알 수 있다.

 

5. 두 증인은 누구를 가리키며,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두 증인이 자신의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서 두 증인과 전쟁을 일으키며 그들을 죽이는 짐승은 대체 누구인가?

  먼저,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남자아이를 낳은 여자가 피신하여 양육받는 기간이 어떻게 되어 두 증인이 활동하는 기간과 동일한 것인지부터 살펴보자. 계12장에 의하면, 해를 옷입은 채 있는 이 여자는 일차적으로 "구약의 성도들을 산출하는 모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해를 옷입고 있었고 달이 그녀의 발 아래는 달이 있었으며, 12별들의 면류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37:9에 의하면, 요셉의 꿈에, 해는 야곱을 가리키고, 달은 그의 어머니를, 열한별들은 그의 형제들을 가리키고 있다. 고로 해를 옷입은 채 있는 여자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어 애를 쓰며 부르짖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앞에는 큰 붉은 용이 있어서, 그녀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먹어치우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늘의 별들(천사들)을 1/3을 끌어다가 말이다. 그런데 여자가 낳은 아들을 용은 먹어치우지 못한다. 오히려 여자가 낳은 아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낚아채져 가버린다. 그리고나서 그 여자는 광야로 도망을 친다. 광야는 어떤 곳인가? 그곳은 하나님께서 1,260일동안 그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예비된 장소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계속해서 아이를 낳게 된다. 그렇다면, 여자가 낳은 첫째아들은 누구인가? 그분은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실 예수님이시다(계19:15, 2:27, 시2:9). 그리고 그의 동생들이 지금도 태어나고 있다. 이들이 바로 계20장에 등장하고 있는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자가 광야로 피하여 용의 얼굴을 떠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는 시점의 시작은 바로 예수님의 승천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두 증인이 등장하여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 보도되고 있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동안 예언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그들이 누군지를 더 말해준다. 첫째는 "두 감람나무"라고 했고(계11:4a), 둘째는 "두 촛대"라고 했으며(계11:4b), 셋째로 "두 선지자"라고 했다(계11:10). 먼저 사도요한은 그들을 이 땅에 주님 앞에 이미 서 있는 채 있는 "두 감람나무"라고도 말했다(계11:4a). 이는 슥4장에 나오는 대제사장 여호수와와 총독 스룹바벨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곧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에게 제사장과 왕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이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두 촛대"라고 하였다(계11:4b).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촛대"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계1:20). 그리고 이들은 "두 선지자"라고 하였다(계11:10). 왜냐하면 이들이 세상을 향해 회개를 외치고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예표가 누군지를 말해주고 있는데, 그들은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이며, 선지자의 대표인 엘리야다(계11:5~6). 이들 두 사람들은 어떤 자들인가? 요약하면, 첫째는 회개를 촉구하는 자들이며, 둘째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사역이 마치는 때가 언제인지가 정확하게 나온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증언을 마칠 때라고 하였다(계11:7).

  그렇다면, 두 증인이 자신의 증언의 사역을 마칠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무저갱으로부터 짐승이 올라오는 때"라고 하였다(계11:7). 사실 짐승으로 표현되는 "용"(사탄마귀)은 무저갱의 천사로서, 사탄마귀를 뜻한다(계9:11). 그는 원래 하늘의 천사장의 하나였으나, 자신의 높은 지혜로 인간들과 무역(거래)을 하고 있었다. 즉 하늘에 있으면서 지상의 왕(황제)들을 유혹하여 자신을 신으로 섬기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알고 있었으나 그의 특성을 이용하여, 그를 일시적으로 인간들의 "참소자"로 사용하였다(계12:11). 그러나 그의 무역(거래)이 커져 하늘의 별들(천사들)의 1/3을 끌어들였다(계12:4). 그러자 예수님의 탄생직전에 하나님께서는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을 시켜, 용과 그의 천사들을 하늘에서 쫓아내었다(계12:7~9). 그러자 그들은 땅속(지구 속)(원문)으로 떨어졌고(계12:9,13), 사탄마귀는 거기에 자신의 보좌를 만들고 귀신들을 자신의 부하들로 조직한 왕국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사탄의 왕국'이다(마12:26). 그들의 처소가 바로 땅 속 곧 음부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구약시대만해도 사탄마귀는 하늘의 천상회의에 늘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범죄한 인간들을 참소했다. 그 장면이 욥1~2장과 왕상 22장과 슥3장에 고스란히 나온다. 그는 하늘과 지구를 왔다갔다 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께서 탄생하셨고, 인류의 위한 속죄를 위한 사역을 시작했다. 그것의 시초는 세례요한으로부터 받았던 바로 그 세례였다.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라고 말이다. 사탄이 즉시 예수님께 다가왔고 첫 아담의 경우처럼 그를 시험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3대0으로 승리했다. 그리하여 마귀는 이제 진 자가 되고 말았다(벧후2:19). 그러니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사탄마귀의 부하들인 사람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두목인 사탄마귀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3대0으로 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자신의 종으로 삼으려는데 실패한 사탄마귀는 잠시 물러나 예수님을 없앨 계획에 착수하는데, 그것은 종교지도자들을 이용하여 죽이는 것이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의 이권문제와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마귀에게 쉽게 포로가 되어버렸고 결국 산헤드린공회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행하고 로마총독에게 사형집행을 부탁한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하지만 그것은 사탄마귀가 죄없으신 예수님을 자신이 가진 사망권세를 사용해 죽였으니 불법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그러자 그때 그는 즉시 사망권세를 빼앗기게 된다. 그리하여 사망의 음부의 열쇠가 예수님에게 주어지게 된 것이다(계1:18). 그리고 그는 그때에 결박당해 무저갱에 갇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그의 권세는 많은 제한이 가해졌다. 이것이 천년동안 마귀가 무저갱에 갇히게 되었다는 말씀의 의미다(계20:1~3). 이 기간 동안에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이것을 "첫째부활"이라고 부른다), 천국에 들어가와 왕노릇하게 되는데, 이것을 일컬어 "천년왕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에 사탄마귀를 무저갱으로부터 잠깐동안 풀어준다고 말씀하셨다(계20:3,7). 그때 무저갱으로부터 사탄마귀로 올라오게 될 것이다(계11:7). 그러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이 전부 다 끝나는 것이다. 이제 그가 올라오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갇혀지냈던 분풀이를 예수믿는 자들에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지막 시기의 대환난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결국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순교자의 숫자가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님이 재림하실 수가 있으시다.

  고로 두 증인이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 올라온 짐승이 두 증인(두 명의 개인 아님)과 더불어 전쟁을 하게 되고 이내 그들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순교자의 숫자가 채워질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재림을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무저갱에서 짐승이 올라오는 시기가 주님의 재림직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 그리하여 두 증인이 활동하는 기간은 예수님의 승천이후부터 예수님의 재림직전이라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6. 나오며

  그렇다. 계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은 예수님의 승천이후부터 이 땅에 회개를 외치며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성도들과 사역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두 감람나무"처럼 교회의 성도들에게 기름(성령)을 공급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두 촛대"와 같은 자들인데 계2~3장에 나오는 교회의 사례를 가지고 비교한다면,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와 같은 역할을 할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사역을 하는 것인가? 그들은 예수님의 승천이후부터 예수님의 재림직전까지 사역할 자들이다. 그 사역을 하는동안 아무도 그를 손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의 권세가 그들을 해하려는 자들을 삼켜버릴 것이기 때문이다(계11:5). 그리하여 그들은 3년반동안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회개를 외치며 천국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고로, 요한계시록 11장에 등장하는 "두 증인"이나 요한계시록 12장에 등장하는 "여자" 곧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낳고 광야의 피난처로 가서 보호받는 여자는 동일한 존재를 다른 각도에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이기는 성도들을 계11장에서는 "두 증인"으로 표현하고 있고, 계12장에서는 "여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마지막 때까지 살아남아 이기는 성도들이 되고 이기는 성도들을 배출하는 자가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두 증인"처럼 사역해야 한다. 끝까지 회개를 외치고 예수님이 누구며 무슨 일을 했는지를 알려주는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러면 그 교회는 음부의 문들이 이길 수 없는 교회가 될 것이다(마16:18). 그러면 어떤 짐승이라도 건드릴 수 없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회개와 천국복음을 증거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보자. 건투를 빈다.

 

2019년 5월 10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용과 여자의 쟁투(5)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1260일,42달)의 3중적 의미는 무엇인가?(계12:10~17)_2019-05-10(금)

https://youtu.be/K7tZNOvvakc

 

1. 요한계시록 12장에 의하면, 남자아들을 낳은 여자가 광야에 도망하여 양육받은 기간은 대체 얼마입니까?(계12:6,13)

 

2. 남자아들을 낳았던, 해를 옷입은 채 있는 여자가 광야에 도망하여 양육받은 기간은 "1,260일"이요(계12:6), 또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계12:14)입니다. 그렇다면, "1,260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얼마나 되는 기간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3. "1,260일"이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같은 기간으로서 "3년반"을 의미합니다.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면, 1,260일은 42달에 해당하며, 3년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고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반"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간은 문자적(산술적)으로 꼭 1,260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개념은 요한계시록에 처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니엘서에 사용된 개념을 사도요한이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단7:25,12:7). 그런데 다니엘서에 의하면, 이 기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의해 핍박과 고난받고 환난당하는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고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의미도 구약의 개념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 기간은 대체 어느 정도되는 것일까요?

 

4. 여자가 박해를 받지만 피난처에서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이 어느정도인지는 요한계시록12:6과 13절에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계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12: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렇습니다. 해를 옷입었던 한 여자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들을 낳게 되고, 그 아이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려간 직후, 사탄이 하늘에서 내쫓겨나게 될 때, 용이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게 됩니다. 그때 이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여 거기에 하나님이 준비해둔 피난처에서 양육을 받게 되는 기간이 "1,260일"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1,260일이란 다음과 같이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에 의해 박해받는 기간을 가리키며, 둘째는, 동시에 박해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제 이것을 좀 더 확대해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신약은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의해 핍박받는 기간이 1,260일이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은 요한계시록 11:1~2을 보면,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바깥뜰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히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요한계시록 13:1~10에 의하면,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의해 성도들이 박해받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 기간은 해를 옷입은 여자(신구약백성을 산출하는 모체)가 낳은 남자아들(1차적으로는 첫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부터는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승천했던 직후부, 예수님의 재림때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고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 "1,260일"이나 "42달" 그리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정확히 "예수님의 승천이후부터 예수님의 재림때까지의 기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간은 계11:4~13에 따르면, 다른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5. 요한계시록에서 쓰여진 "1,260일(42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은 환난과 핍박, 보호와 양육의 기간이라는 의미 외에 어떤 의미가 더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제3차적인 의미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계12:11과 계11:3~13에 의하면, 두 증인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하는 기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12을 보면, A.D.95년 당시 하늘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음성 곧 이미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외치는 거대한 찬양소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용(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자 성도들을 핍박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이겨낸 성도들이 누구였는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을 가지고 용(사탄)을 이긴 자들입니다(계12:11). 그런데 이 말씀(계12:11)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는 요한계시록 11장에 있는 "두 증인"의 사역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1,260일동안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그들은 큰 성 바벨론에서 굵은 베옷을 입고 외치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자가 핍박받으나 보호받는 1,260일이란 이 2가지 의미 외에도 동시에 복음전파기간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니다. 즉 여자의 후손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바벨론(타락한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기간이 바로 1,260일인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환난기간에도 보호받고 양육받으려면 반드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만이 환난의 기간(주님의 승천이후 재림때까지의 기간)에서 보호받고 양육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지금 당장 복음을 전파합시다.

 

2019년 5월 10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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