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87)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과 드로아에서 일어난 놀라운 기적(행20:1~12)_2022-12-23(금)

https://youtu.be/O11G4EEkXxA  [혹은 https://tv.naver.com/v/31902527 ]

1. 그동안 바울의 전도방법은 어떤 것이었는가?

  바울은 적게는 3번, 많게는 5번 정도의 전도여행을 했다. 많게 5번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로마로 이동하면서 전도한 것(제4차 전도여행)과 로마에서 전도한 것(제5차 전도여행)을 다 포함해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도여행 가운데 바울이 사용했던 전도방법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4가지 정도인데, 첫째, 그는 아는 사람에게 먼저 전하는 방식을 취했다. 바울이 이방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기는 했으나 그가 항상 맨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유대인의 회당'이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여전히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언제나 유대인의 회당에 먼저 찾아가서, 그들에게 "여러분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가 바로 이 예수님입니다"라는 사실을 전했던 것이다. 둘째, 한 번 세운 교회는 꾸준히 관리를 해 주었다는 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교회의 현황을 들은 후 바울은, 자신이 개척했던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자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하고, 사람을 파송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본인이 직접 재방문하기도 하였다. 셋째, 선교센타를 운영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전략으로서, 건물을 마련해 놓고 그곳에 와서 훈련을 받아 각 지역으로 파송하는 전략이었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넷째, 적대자들을 만나게 되면, 주님의 지시가 따로 없을 때에는 그들과의 충돌을 가급적 피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소극적인 면인데, 바울은 이러한 소극적인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고 오로지 적극적인 일에 전력을 다했다는 것을 알려 준다. 

 

2.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를 떠난 이후 어디를 다녔는가?

  사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에 있어서 핵심 지역은 '에베소'였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곳에서 3년 동안 선교센타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의 소요 사태로 인하여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드로아를 거쳐 마게도냐 곧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로 이동하여, 자신이 2차 전도여행 때에 개척했던 교회를 다시 돌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헬라 곧 아가야 지방으로 갔다. 그리고 아가야 지방의 고린도에서 약 3개월간 머물면서, 고린도후서를 집필하였고, 로마서를 써서 보낸다. 그리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복귀하려고 하였지만, 유대인들이 그를 해치려고 공모하고 있다는 것을 것을 듣고 계획을 수정한다. 다시 육로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이동한 후 마게도냐를 지나서 배타고 드로아에 상륙한 후, 거기에서 밀레도를 거쳐 수리아의 두로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두로에서 가이사랴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된다. 

 

3. 바울은 왜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했는가?

  바울은 이미 에베소에 있을 때부터, 마가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행19:21). 그는 이제 로마를 거쳐 서바나(스페인)까지 가서 전도하려는 계획을 이미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3차 전도여행의 종착 지점으로서 그가 예루살렘을 선택한 것은 자신이 개척했던 이방 교회로부터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각 교회에서 직접 자신이 헌금을 받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각 지역의 교회의 대표자들을 대동하여 그들이 직접 예루살렘교회에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래서 3차 전도여행 중에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교회에 가게 된, 각 교회의 지도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총 7명이었다. 베뢰아교회에서는 부로의 아들 소바더, 데살로니가교회에서는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더베교회에서는 가이오, 루스드라교회에서는 디모데, 아시아 곧 에베소교회에서는 두기와 드로비모가 있었다. 이런 교회에서는 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 준 모 교회, 곧 예루살렘교회로부터 받은 영적인 은혜를 물질으로나마 보답하고 감사하려는 의지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4. 바울이 드로아를 다시 방문했을 때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 계획을 들었던 바울은,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배를 이용하지 않고 육로를 이용하여 돌아가는 방식으로 계획을 수정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도착한 곳은 '드로아'였다. 그런데 바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전도하여 개척한 교회들을 이제는 두 번 다시 와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므로 드로아는 바울이 그 다음날 곧바로 떠나야 될 장소였지만, 그는 드로아의 어떤 3층집에 모인 성도들에게 하나라도 더 말씀을 전달하려고 강론을 밤중까지 이어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유두고'라고 하는 어떤 청년(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 말씀을 들으려고 찾아온 것이다. 캄캄한 밤중이라 등불을 많이 켜두었고 그래서 생겨난 탁한 공기 때문에 이 청년이 창가로 갔고 그곳에 걸터 앉아 있었는데,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했는지 그만 졸음을 이기지 못한 채 삼층에서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가서 일으켜 세워 보니 그는 죽어 있었다. 하지만 바울이 내려가서 그 청년 위에 엎드린 후에 자신의 가슴에 그 청년을 껴앉고 기도하여 주님께 그 청년을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하나님의 긍휼로 이 청년은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나게 된다. 물론 몸의 부서진 뼈들도 다시 다 달라붙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 바울은 날이 새도록 떡을 떼고 그들과 이야기한 후에 그곳을 떠나게 된다. 그 다음날 사람들(아마도 청년의 가족이나 친구들이었을 것)이 그 청년을 데리고 교회에 나온다. 그러자 교회가 적지 않게 위로를 받는다. 

 

5. 왜 하나님께서는 이 죽은 청년을 살려주었는가?

  그렇다면 왜 난간에서 떨어져 죽은 이 청년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살려주시고 그 몸을 치유해 주신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이 청년이 살아나게 된 3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철야로 수고하며 애쓰는 바울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다(7절,11절). 바울은 조금만 복음을 전해 주고 떠나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혼신을 다해 밤을 지새워 가면서 복음을 전해 주었다. 하나라도 더 전해주기 위한 바울의 열정이 여기에 들어 있다. 고로 만약 그 청년이 죽는다면 바울의 열정이 허사가 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바울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죽은 청년이지만 살려주셨던 것이다. 둘째, 낮에 일함으로 인하여 매우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들어보겠다는 사모함으로 집회에 나온 청년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셨기 때문이다(9절). 아마도 이 청년은 종이었을 것이다. '청년'이라 쓰인 단어가 '종, 노예'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추정컨대 15세 전후의 청소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복음을 사모하여 그 집회 장소에 나왔으니 하나님께서 이 청년을 불쌍히 여겨주신 것이다. 셋째, 교회 공동체를 위로하여 힘주시기 위함이다(12절). 왜냐하면 위대한 사도가 와서 집회를 했는데 사람이 죽어서 집회가 끝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랬었는지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청년을 살려주셨다. 그리하여 이 청년을 알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이 그 청년을 다시 교회에 데리고 나옴으로 인하여 교회는 위로를 받았고 큰 힘을 얻게 되었다. 

 

2022년 12월 23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83) 에베소에서 처음 시도된 획기적인 선교전략은 무엇인가?(행19:8~12)_2022-12-16(금)

https://youtu.be/HszzehqFgM0 [혹은 https://tv.naver.com/v/31818261 ]

 

1. 바울의 획기적인 선교전략이 실행된 에베소는 어떤 지역인가?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수도이며 항구도시로서, 아시아에서는 가장 컸던 통상도시였다. 여기에는 당시 세계 제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데미 신전도 있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귀환하는 길에 잠깐 멈춘 곳이 바로 이곳인데, 전략적인 면에서 이 도시는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면 수많은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거점도시가 바로 이 도시였기 때문이다. 에베소는 바울이 1~3차 선교여행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도시인데, 이때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이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귀환하면서, 자신을 따라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이 도시에 머물게 했다. 그때에 이 도시에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석학 아볼로가 와서 복음을 전해 주었고 요한의 세례를 준 후에 고린도로 떠났다. 그런데 뒤이어 바울이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 아볼로부터 복음을 들었던 이들은 성령이 있다는 사실조차 들어보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자 바울이 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고 안수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게 하였다. 이때 안수를 받고 성령의 은사들로서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발언했던 자들은 약 12명쯤 되었다. 

 

2. 바울이 처음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에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에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12명에게 성령세례를 받게 한 후 바울은 회당으로 가서 전도했다. 바울은 이때부터 매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서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을 전했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으로 그들에게 강론하였으며 그들을 설득했던 것이다. 그것을 무려 3개월 동안이나 지속했다. 그러자 유대인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바울의 복음을 듣고 바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또 하나는 바울이 복음을 전할수록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고 순종하지 않으며, 오히려 바울의 복음 전파를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반응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3. 바울은 에베소에서 어떤 선교전략을 처음으로 시도했는가?

  이때 바울은 에베소에서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복음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자들과 계속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바울은 우선 복음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자들로부터 떠났다. 그리고 자신이 전한 복음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그들로부터 따로 분리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칠 새로운 장소를 찾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에베소에 있는 두란노 학교였다. 이 학교는 아마도 '두란노'라는 의사가,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후보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였는데, 그들을 가르치지 않는 시간에 바울이 그 학교를 빌려서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오전11시부터 오후4시까지의 낮잠 자는 시간과 저녁 시간에 바울은 그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2년 넘게 그렇게 하였다. 그러자 온 아시아에 거주하는 자들 모두가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이나 할 것 없이 다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4. 바울이 세운 두란노 학교는 어떤 학교였는가?

  그렇다면 바울이 세운 두란노 학교는 어떤 학교였는가? 그것은 바울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학교였다. 이렇게 함으로서 바울은 새로운 전도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바울이 현지에 직접 가서 복음을 전한 뒤에 믿는 사람들을 얻게 되었고 그들을 발판으로 하여 교회를 세우고 떠난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도전략이 새롭게 바뀌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에베소에 아예 학교를 세워 놓고, 사람들을 그곳에 불러서 공부하게끔 하고, 훈련을 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훈련이 마쳐지면 그들을 자기가 살던 각 지역에 파송하여 교회를 세우게 하였다. 한 마디로 이것은 선교훈련소 혹은 선교센타  전략이었던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신학교 같은 것을 운영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하여 이때로부터 40년이 지났을 때에, 에베소를 중심으로 최소 7개 이상의 교회가 개척되었고, 그 교회는 잘 성장하였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에베소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빌라델비아교회, 라오디게아교회의 경우다. 사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사역할 때에는 A.D.55~57년경이었는데, 이후에 바울은 로마에 가서 A.D.67년경 순교하게 된다. 이후 에베소는 디모데가 가서 목회를 하다가 그도 역시 순교를 하게 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도 요한이 그곳에 가서 목회를 하게 되는데, 그때 목회하면서 쓴 책들이 바로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요,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은 에베소 앞에 있는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에 그가 환상을 보고 기록한 책이다. 이처럼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선교센타를 운영하자, 약 40년이 지났을 때에는 에베소를 중심으로 엄청난 많은 교회들이 생겨났고 성장한 것이다. 

 

5. 바울은 두란노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쳤는가?

  그렇다면 이때 두란노 학교에서 바울은 무엇을 가르쳤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왕국)'였다(행19:8). 하나님의 왕국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인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됨으로 이러한 천국을 소유하게 될 수 있었고 천국의 실제를 경험하다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완전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란노 학교는 이론만 배우고 훈련하는 학교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 학교에서는 이론과 더불어 천국의 실제를 경험하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도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왕국)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곳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사람 위에 덮어놓게 되면 그 사람에게서 질병이 떠나가고 귀신이 떠나가는 등의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두란노 학교는 말씀(이론)과 실제가 함께하는 학교였던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역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들었을 때에 그 복음을 기뻐하고 그 복음 전하기를 사모하는 자들을 들어서 쓰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복음을 듣기는 들어도 마음을 닫고 복음듣기를 거부하며 비방하는 자들을 더 이상 쓰지 아니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22년 12월 16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79) 평신도 선교사 부부와 성경학자 아볼로의 아름다운 만남(행18:18~28)_2022-12-09(금)

https://youtu.be/XnM7gpT8zNM

 

 

1.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어떻게 마무리했는가?

바울의 전도여행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마도 2차 전도여행 중에 있었던 고린도 전도 사역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하나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으며, 또한 주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그에게 나타나 위로와 격려를 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곳에서는 며칠 혹은 몇 주간에 걸쳐서 머물렀지만 고린도에서는 무려 1년 6개월 동안이나 머물렀다. 왜냐하면 거기에 주님의 백성이 많다고 주 예수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복귀할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잠깐 들른 곳이 바로 에베소다. 그런데 바울의 눈에 에베소는 놀라운 선교의 거점 도시로 보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곳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떨어뜨려 놓는다.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수리아의 안디옥을 향하여 떠난다. 그래서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예루살렘교회에 가서 선교 상황을 보고하였으며, 이어 수리아의 안디옥에 가서도 선교 상황을 보고함으로써 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한다.

 

2.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2차 전도여행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바울팀은 이제 얼마 안 있어서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한다. 먼저는 1차 전도여행 선교지였던 남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거쳐서 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에 이른다. 왜 바울은 에베소로 갔을까? 그것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를 떠나면서 그곳에 있는 형제들에게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행18:21). 그래서 약 6년간의 바울의 3차 전도여행(A.D.53~58)이 여기에서 시작되고 여기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바울에게 있어서 3차 전도여행은 사실 전도의 관점에서 볼 때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 바로 그때였다. 왜냐하면 2차 전도여행까지 바울은 각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몰두하였으나, 3차 전도여행 때에는 에베소에 선교센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교사들을 훈련시켜고, 거기에서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3. 바울이 에베소를 향하여 오고 있었을 때 에베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바울이 남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거쳐서 에베소에 오고 있었을 때에 에베소에서는 역사적인 아름다움 만남이 있었다. 그것은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와 성경학자 아볼로와의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볼로는 북아프리카의 거대 학문도시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석학이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웅변술도 뛰어났으며 또한 무엇보다도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다(행18:24).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는 세례 요한의 제자로부터 세례 요한의 세례까지 배웠고 세례 요한이 소개한 메시야(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에베소에 와서 전한 말씀은 회개의 세례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례 요한이 소개한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에베소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볼로는 안식일이면 회당 안으로 들어가서 구약성경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였다. 그런데 그때 회당 안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있어서 아볼로의 설교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4.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에게 한 일은 무엇인가?

그때였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에게 무엇인가가 빠져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것은 그들 부부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로부터 1년 6개월 동안 들은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부부가 바울에게서 들었던 말씀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복음전도자였던 바울로부터 들은 말씀이다. 그러므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구약성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에 대해 거의 모든 말씀들을 다 들은 셈이다. 그러므로 비록 아볼로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길에 대해 전반적인 것을 모르는 것을 알아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자신들이 바울로부터 들었던 메시지를 그에게 그대로 들려준 것이다. 그렇다. 평신도라고 해서 성경학자를 가르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는 교회적인 직분이 주어진 시기가 아니었으며, 또한 누구든지 먼저 배운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누구에게 말씀을 배운 것인가?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 배웠느냐에 따라 말씀의 깊이와 높이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고린도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러 있을 때에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한 말씀이 얼마나 체계적이며 뛰어난 말씀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왜냐하면 그것을 듣고 배웠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대 성경학자인 아볼로를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5. 아볼로는 대 성경신학자인데 어떻게 되어서 평신도 부부의 지도를 받아들였는가?

아볼로는 누구인가? 바로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는 바로 그 아볼로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아볼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고전3:5~6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바울은 그를 자신의 동역자이자 고린도교회의 사역자로 소개했으며(고전3:6), 또한 디도서에서는 그를 율법교사라고 소개했었다(딛3:13). 그렇다. 아볼로는 학문의 도시이자 유대인들이 아주 많이 살았던 북아프리카의 최대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성경신학자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장막 만드는 자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평신도 선교사 부부의 지도를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는 아볼로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 그는 자신보다 더 먼저 주의 길을 걸어가신 분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그분에게서 배운다는 것을 감사함으로 여겼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써 준 추천서를 가지고 고린도에 갔다. 그리고 바울의 뒤를 이어 고린도교회에서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랬다.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지도를 받은 후에 담대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더 확실하게 증거했으며, 공공연하게 유대인들을 논박하며 회당에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22년 12월 09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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