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과연 언제 오실까? 그때가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요? 어느 교단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지막 시기에 있을 7년대환난 전에 오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7년대환난 후에 오시는 것인가? 그리고 7년 대환난은 정말 맞는 주장인가? 성도들의 휴거는 환난전에 있는가 아니면 주님의 지상재림시에 일어나는 것인가? 두 증인의 활동 시기는 언제이며, 대환난 시기에 남겨지는 음녀는 대체 누군가? 주님의 재림의 시기와 대환난에 관련한 모든 비밀이 여기에 있다.

 

2022-04-24(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천국복음(52) 최종회_주님은 과연 언제 오시는가 환난전인가 환난후인가?(계22:16~2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CzeIy4ah-w [혹은 https://tv.naver.com/v/26517477 ]

 
 

1. 들어가며

  주님은 과연 언제 오실까? 그것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 날짜와 시간을 예언했다. 우리 시대에 겪었던 가장 큰 미혹은 '다미선교회'였다. 그들은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온다고 했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단들이 역사적으로 수두룩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준 것만큼 알면 되고 성경이 말하는 것만큼 그날을 준비하면 된다. 그렇다면 주님이 오실 즈음에는 어떤 일들이 있는가? 과연 '7년대환난'이라는 것이 있는가? 그리고 성도들은 환난전에 휴거되는 것인가? 그리고 주님의 재림은 공중강림과 이중재림이라는 2가지로 재림하시는가? 아니면 지상재림 한 번 뿐인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260일이나 42달 그리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떤 의미인가?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666표를 찍을 때에는 언제인가? 참으로 궁금한 것이 많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주님 오실 때에 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이것은 지금 우리 시대에 어느 시간대 위치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날을 깨어서 준비하자는 데에 있다. 종말의 때에 관한 갖가지 이론이 너무나 많다. 어떤 학설을 따라가든지 그날을 깨어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날에 이르러 주님을 부끄럽지 않게 준비시켜준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2.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에 관한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주님께서 언제 오시는지에 관하여는 대체로 환난전에 오신다는 것과 환난후에 오신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환난 중간에 오신다는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 '환난'이라는 말은 '대환난'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보통 '7년대환난'이라고 언급되는 환난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대환난'의 기간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에서는 '7년대환난'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 '7년대환난'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사실 7년대환난이라는 말은 다니엘 9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70이레에 관한 예언에서 유래한 것이다(단9:24~27). 70이레 가운데, 마지막 한 이레(7년)가 인류의 마지막 시기에 도래한다고 생각하고 그 기간을 7년으로 잡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 9장에서는 69이레(483년)가 지난 후에 공백 기간이 있고 그리고 나서 미래의 어느 시기에 나머지 1이레(7년)가 온다고 말씀이 없다. 다니엘의 70이레는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려는 영이 난 후로 줄곧 70이레의 기간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환난의 기간과 관련하여 요한계시록에서는 '1,260일'(계11:3, 12:6) 혹은 '42달'(계11:2, 13:5)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계12:14)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면 이 기간은 '3년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보통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분들은 전3년반과 후3년반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것을 합쳐서 7년을 계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표현도 다니엘서에 나오기 때문에(단7:25, 12:7), 그것이 바로 '7년대환난'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경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교단에서는 7년 대환난과 환난전 휴거를 기정사실로 믿고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는 7년 대환난이라는 기간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예수께서는 7년 대환난에 대해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이 기간에 대해 언급하셨다면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은 결코 거기에다가 더하기나 빼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예수께서 7년 대환난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어떤 이론이든지 재고해야 할 것이며 그것을 기정사실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요한계시록이라는 말씀과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말씀하신 종말에 관한 말씀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혹시 둘 중의 하나의 말씀을 골라야 한다면, 우리는 전적으로 먼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하신 말씀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종말의 때에 관한 말씀들은 거의가 다 상징적이거나 환상의 이미지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말씀하신 환난의 기간은 환상이나 상징의 이미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과 관련지어서 '환난'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선적으로 공관복음에서 기록하고 있는 말씀을 우선적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이 최우선하는 것이다. 설령 사도요한이 언급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3.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주님의 재림은 환난전에 있는가 환난후에 있는가?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가운데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리고 주께서 언제 어디로 오시는까지도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첫째로,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짜와 그 시간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하셨다는 것이다(마24:36). 그것은 아들의 권한 밖에 있기 때문에 아들이신 예수님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짜와 그 시간을 계산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다만 징조를 통해서 그날이 가까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마24:42). 왜냐하면 깨어있는 자가 그날에 남겨둠을 당하지 않고 데려감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마24:40~41). 이 말씀은 종말의 어느 시기에 도래하게 될 '휴거'사건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종말의 때와 관련지어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주님께서는 환난 후에 오신다는 것이다(마24:29~31). 환난후 휴거에 관하여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다. 

마24:29-31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그렇다. 주님께서는 환난 후에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오실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당신의 택하신 자를 불러 모으실 것이다. 이것을 두고 '휴거'라고 말한다.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환난이란 단순히 환난이 아니라 '대환난'이라고 하셨다(마24:21).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은 창세로부터 그날까지 없었던 환난일 것이며 또한 그 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마24:21). 그러므로 만약 주님께서 그 대환난의 날을 감하지(단축하지) 않으신다면 모든 육체가 구원얻지 못할 것이므로, 주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환난의 날을 감해주실 것이라고 하셨다(마24:22). 그러므로 설령 7년 대환난이나 전3년반 내지는 후3년반이라고 하는 환난의 시간이 실제한다고 할지라도, 그 날들은 분명히 감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의 기간을 산술적으로 '7년' 혹은 '3년반'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4. 요한계시록에는 주님의 재림과 환난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주님의 재림과 환난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 주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즉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의 예언이나 묵시 등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환상과 예언과 묵묵시가 기록된 요한계시록은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과 누가복음 17장과 21장의 말씀을 완전히 익힌 후에 추가적으로 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과 종말의 시기와 환난에 대하여 기본이 공관복음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후에 요한계시록을 보면 요한계시록이 열리게 된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나와있는 주님의 재림과 환난의 기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첫째, 주님은 일곱번째 나팔소리와 함께 하늘(공중)에 오신다고 하셨다(계11:15). 이때 울려퍼지는 일곱 번째 나팔소리는 공관복음서에는 "큰 나팔 소리"(마24:31)라고 표현되어 있고,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마지막 나팔 소리"(고전15:51), "하나님의 나팔 소리"(살전4:16)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주님의 재림의 최종적인 징조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불게 하시는 나팔소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 나팔소리가 요한계시록에서는 모든 재앙이 끝난 후에 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첫째 화(다섯 번째 나팔 재앙)와 둘째 화(여섯 번째 나팔 재앙)가 지난 후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계속해서 다른 각도에서 설명할 것이다.) 고로 모든 성도들은 첫째 화와 둘째 화를 다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환난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마24:21). 그럼, 일곱 번째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이 하늘에 오신다는 것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주 하나님의 칭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한 분 하나님이신 주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온다(계1:4,8,4:8). 그런데 일곱 번째 나팔소리 이후에 주 하나님에 대한 칭호가 바뀌어져 있다. 일곱 번째 나팔소리 이후에는 "전에도 계셨도 이제도 계신 이"라고만 나오기 때문이다(계11:17, 16:5). 왜냐하면 "장차 오실 이"라는 말씀이 이미 성취된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이미 하늘(공중)에 오셨기 때문이다. 

  둘째, 하늘(공중)에 오신 예수께서는 셋째 화(일곱 번째 나팔 재앙)가 적그리스도 치하에 내려지기 전에 성도들을 휴거시킨다고 하셨다. 고로 휴거된 성도들은 아마도 일곱 대접 재앙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일곱 대접 재앙이 적그리스도 치하에 쏟아지는 기간은 매우 짧은 기간일 것이므로 성도들 모두가 다 환난의 시기를 통과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다만 주님께서는 대환난의 날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대환난의 끝 어느 부분에서 성도들을 휴거시키실 것이다. 그런데 그 날짜와 그 시간이 언제인지가 요한계시록에서도 뚜렷하게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일곱번째 나팔 재앙 때에는 신실한 성도들이 공중으로 불려 올라가서 주님을 영접한 후에 아마겟돈전쟁을 치르실 주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어린양으로서 두루마리의 계시들을 하나씩 열어보이시다가(계5~8장), 다섯 번째 나팔(계9:1~12)과 여섯번째 나팔(둘째 화)(계9:13~21)이 울려퍼진 이후, 이제 작아진 두루마리를 사도 요한에게 넘겨주고는(계10장), 금면류관을 쓰신 채 구름 위에서 낫을 휘둘러 땅의 곡식을 거두실 것이다(계14:14~16).

  셋째, 성도들의 휴거 후 남겨진 성도들은 음녀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하셨다(계17~18장, 14:8, 16:17~21). 그러므로 땅의 곡식이 추수된 이후에 이 땅에는 불신자들(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들)과 음녀에 속한 성도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음녀'라 함은 신앙의 정절을 지키지 못한 채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는, 양다리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가리킨다(계17~18장). 이와 반대로 해를 옷입은 여자에게 속해 있는 처녀들이 있는데, 이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분만을 따라가는 자들이다(계14:1~5). 이들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진실한 신앙인들로서 환난의 끝부분 어느 시점에 휴거되어 공중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럼 음녀는 언제까지 지구상에 살아남아 있는가? 그것은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들을 다 받기까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것이다(계16:17~21). 그래서 이들은 주님께서 아마겟돈 전쟁(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이 치르기 직전까지 남아서 환난을 다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음녀로 표현되는 큰 성 바벨론이 일곱 번째 대접 재앙 때에 비로소 주님으로부터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의 잔을 받고 처절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였기 때문이다(계16:17~21)

  넷째, 성도들의 휴거 후 예수께서는 이미 천국에서 함께 따라온 천국의 성도들(천년왕국 성도들)과 천사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에 휴거시킨 성도들과 함께 아마겟돈 전쟁(곡과 마곡의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성도들의 휴거는 일곱인에 해당하는 일곱 나팔 재앙 중에서 여섯 번째 재앙(둘째 화)까지 받은 후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싯점이 어느 때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둘째 화가 있은 후 셋째 화가 이르는 어느 시점에 진실한 성도들이 먼저 휴거된다는 것이다. 먼저 휴거되는 목적은 성도들이 받을 환난이 너무 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ㄹ르 보면, 지상에 재림하실 신랑을 마중 나가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때 신랑되신 예수께서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고 있는 성도들(천년왕국 성도들)과 함께 그리고 그분의 천군천사들과 함께 공중으로 오실 것이다. 그리고 진실한 성도들을 먼저 휴거시키실 것이다(이때는 그때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살아있고 남아있는 자가 그 뒤를 이어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으로 휴거될 것이다). 그리고 인류 최후의 영적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을 치르실 것이다(참고로 이때 치를 전쟁은 아마겟돈 전쟁인데, 이 전쟁이 곧 곡과 마곡의 전쟁이다. 이러한 사실은 정병진목사의 요한계시록 52주 강해를 참고하기 바란다.) 

  다섯째,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첫째 화(다섯째 나팔 재앙)와 둘째 화(여섯째 나팔 재앙)가 주님 오시기 전까지 게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환난을 겪는 것이다. 사실 일곱 인의 내용은 일곱 가지 나팔 재앙 중에서 여섯 번째 나팔 재앙까지는 모든 성도들도 다 받을 재앙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곱나팔 재앙을 순서대로 보면, 처음 네 나팔은 '지해강천(地海江天)'의 재앙을 일으켜 각 장소 곧 땅과 바다와 강과 하늘 생물의 1/3을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치는 재앙 3가지가 올 것인데, 그것은 다섯 번째 나팔 재앙(첫째 화)이요 여섯 번째 나팔 재앙(둘째 화)이다. 첫째 화를 통하여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이 다섯 달 동안 황충(메뚜기)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계9:1~12). 그리고 둘째 화를 통하여 지구에 사는 1/3의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계9:13~21). 여기까지는 모든 성도들이 다 받는 재앙인 것이다. 그리고 일곱째 나팔 재앙의 어느 시기에, 그것도 끝무렵 쯤에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여섯째, 첫째 화와 둘째 화의 기간 중에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첫번째는 이 기간은 두 증인이 활동하는 끝자락이 될 것이다(계11:3~13). 왜냐하면 두 증인의 활동기간이 1,260일인데, 이 기간은 시작지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씀하고 있다(계11:7).

  계11:7 그들(두 증인)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렇다. 두 증인의 활동이 끝나는 시점에 사탄이 올라온다. 즉 이때 무저갱으로터 올라오는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계13:1~10)도 아니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계13:11~18)도 아니다. 천년왕국의 마지막 시기에 주님이 무저갱에 갇혀 있는 사탄마귀를 잠깐동안 놓아주게 됨으로 그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260일이라는 기간은 그 기간이 영적인 기간인지 아니면 진짜 마지막 끝자락의 시기에 도래할 실제적인 기간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부터 시작된 환난의 날은 주님의 재림시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부터 혹은 마지막 시기의 어느 시점에, 바다짐승과 땅짐승이 연합하여 성도들을 죽이게 된다고 하였다(계13장). 그것이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데, 이러한 환난은 초기교회 때에도 있었다. 표를 받지 아니하면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황제를 "주 하나님"으로 숭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이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일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탄마귀가 올라와서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더불어 활동하는 잠깐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기 동안에 성도들은 다 환난을 받게 될 것이다. 참고로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지상에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하늘에 올라간 성도들이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것을 가리킨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병진목사의 요한계시록 52주 강해를 참고하라). 그리고 사탄의 감금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에 이미 일어난 일로서, 죄없는 예수님을 죽인 것 때문에 지상에서 활동하던 사탄마귀가 무저갱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자신을 대신하여 다른 짐승 곧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그리고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시켜 그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끝 무렵에는 그 놈이 직접 올라와서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다. 그리고 최종의 시기에 짐승(첫째 짐승=바다짐승)과 거짓선지자(둘째 짐승=땅짐승)와 연합하여 세상 만국을 미혹하고 땅의 왕들을 미혹하여 아마겟돈 전쟁 곧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세번째는 이 기간에 해를 옷입었던 여자가 광야로 가서 1,260일동안 양육받을 것이다(계12:6~17). 사실 여기에 나오는 1,260일 곧 42달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그것이 산술적인 숫자인지 영적인 숫자인지는 예단하기가 쉽지 않다. 왜나하면 해를 옷입은 여자가 광야로 가서 1,260일동안 양육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그 여자가 광야로 가는 시기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승천하는 직후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광야로 가서 양육받은 기간(1,260일)은 예수님의 승천이후 재림 때까지의 모든 기간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환난이 지속되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진짜 1,260일이라는 기간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진실한 성도들을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고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지 않는 자는 죽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가 도래하면 주님께서는 초자연적으로 성도들을 광야에 숨겨 양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첫 열매로서 예수님을 낳고 그 뒤로 이기는 성도들을 산출하였던 바, 해를 옷입은 여자를 주님께서는 환난 중에서 지켜주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에 의하면 죽임당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허락하심 하에 일어날 일이 될 것이며, 그런 자가 순교자의 숫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네번째는 이 기간동안 성전(교회의 성도들)이 이방인들(만국)에게 의해 짓밟힐 것이다(계11:1~2).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1장 첫 부분에서 이방인들(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에드네'로서 '만국')이 '거룩한 성'을 42달 동안 짓밟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거룩한 성'이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 42달이라는 기간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기간도 실제적인 기간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기간을 가리킨듯 보인다. 그리고 거룩한 성 또한 상징적인 장소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이 시간에 만국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기간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백성들 곧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42달의 기간은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까지의 전 기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앞에서 언급한 '두 증인'이 활동하는 기간이나, 해를 옷입은 여자가 도망하게 광야에서 양육받는 1,260일이나 사실은 다 같은 기간인 것이다. 

  네번째는 이 기간에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성도들이 핍박하여 죽이기도 할 것이다(계13장). 이때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째 짐승(일명 '적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제국의 왕)와 땅에 올라오는 둘째 짐승(일명 '거짓선지자'로서 교회의 지도자)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짐승(바다짐승)이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길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계13:7). 이 때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참으로 필요할 것이다(계13:10). 더욱이 첫째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이제 둘째 짐승(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서, 교회 가운데서 활동하는 '거짓선지자')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첫째 짐승을 위하여 표를 만들라고 하고, 짐승의 표(666표)를 받지 아니하는 자들을 죽일 것이 때문이다. 이것은 초기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마지막 시기에 더 활성화될 것이다.

  다섯번째는 이 시기에 하늘에 있는 보좌자리인 144,000석의 자리에 이기는 성도들로 거의 다 채워질 것이다(계6:9~11, 14:1~5). 그리고 나머지는 셋째 화(일곱번째 나팔=일곱가지 대접 심판들)의 직후에 채워짐으로 완성될 것이다. 지금 천국에 있는 144,000석의 보좌 자리는 거의 다 채워진 상태에 있다. 몇 몇 자리가 비어있기는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이 마지막 시대에 그 자리들이 채워질 것이다. 그 자리가 채워지면 주님이 오신다. 그 빈 자리가 채워지는 기간이 곧 1,260일이며, 42달이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될 것이다. 

 

5. 주님이 공중으로 오시는 그 시점에는 무슨 일이 있는가?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언제 하늘(공중)으로 오실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통하여 그 싯점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오심은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 같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살전5:3). 그러므로 그날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은 그날이 도둑처럼 임할 것이다. 하지만 깨어있어 그날을 준비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 싯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둠에 있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다(살전5:4). 그러므로 진실한 성도들은 그날이 언제쯤 될 것인지를 예상하고 있다가 부름을 받고 공중으로 들려올라갈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천국에 이미 들어가 있는 성도들과 그의 천사들과 함께 과연 언제 공중으로 오시게 되는가? 그리고 그때쯤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첫째, 이 때 쯤에 이제 마지막 재앙인 셋째 화(일곱번째 나팔재앙=일곱대접 재앙들)가 시작될 것이다. 이 시점은 무저갱으로부터 용(짐승)이 올라와서 두 증인을 죽임으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계11:7). 왜냐하면 성도들은 '첫째 화'와 '둘째 화'는 동일하게 받지만 적그리스도 치하(음녀 포함)에 내리는 '셋째 화'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기서 '셋째 화'라는 것은 일곱 번째 나팔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일곱 가지 대접 재앙들을 가리킨다(계16장)

  둘째, 셋째 화의 시작 시기를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그때는 천년왕국이 끝나는 시점으로서 하나님께서 무저갱에 갇혀 있는 용을 잠깐 놓아주는 기간이 될 것이다. 거의 확실하건데 셋째 화는 진실한 성도들은 받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무저갱에 갇혀있던 사탄이 올라와 죽이는 환난은 실로 무시무시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을 감하지 않는다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환난의 날들을 감하신다고 하셨다. 이 시기가 바로 그 시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천년동안(상징적인 기간으로 많은 시간을 가리킴) 왕노릇하던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하늘군대의 대열에 참여할 즈음에, 주님께서는 미가엘 천사(?)를 지켜서 무저갱에 갇혀있는 사탄마귀를 잠깐 놓아줄 것이다. 그것도 일시동안만 말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모아서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라고 주시는 특별기간이다. 그러므로 이 때에 이 땅에 남겨진 성도들은 쭉정이나 음녀와 같은 성도들 뿐일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진실한 성도들이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간 상태이므로 사탄 마귀는 명목상이지만 남겨진 세속적인 성도들을 핍박할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짐승에게 경배하고 그의 표를 받아 사탄의 편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도 극소수는 깨닫고 짐승을 경배하지 않으며,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몇몇은 순교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보면, 음녀 곧 세상과 짝하여 사는 성도들이 죽임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음녀가 짐승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다. 무저갱에서 사탄마귀가 올라오기 전까지, 음녀는 첫째 짐승과 놀아났다. 그래서 사탄을 대신하는 첫째 짐승을 힘입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진찌 짐승 곧 사탄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는 것이다. 

  셋째,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지면 용이 올라와서 마지막 대환난(대대적인 핍박과 살해)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 주님은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오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공중으로 오실 것이다. 그렇다고 환난전 휴거론자들이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주의자들처럼 주님이 공중에서 7년동안이나 머물러 혼인잔치를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천국에 들어가서 진행되는 어마어마한 행사이기 대문이다. 그 일을 공중에 잠시 머무는 동안 진행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시어 공중에서는 7년동안 모든 성도들과 함께 혼인잔치를 하고, 지상에서는 유대인들이 남아서 핍박을 받다가 적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구원을 받는다는 설정은 처음부터 잘못된 설정인 것이다. 비록 본인이 혈통적으로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그때 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인내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적그리스도의 치하에서 고난을 겪는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천년왕국의 끝부분에서 사탄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믿는 사람들이 그의 살륙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지혜로운 다섯 처녀 처럼 댓가를 지불하여 기름을 준비해 놓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날 남겨져서 사탄의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날이 되어셔 부랴부랴 준비하지 말고 지금부터 기름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의 핍박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견디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기 전에 미리 회개하여 깨끗한 자녀가 되고 주님께 드릴 옥합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6. 나오며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만큼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더이상 나아가려해도 아니 되고, 이미 나와있는 말씀인데 없다고, 모른다고, 아니 알 것 없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환난의 날이 곧 도래할 것이다. 마지막 시기에 있을 환난은 이전보다는 더 극심한 환난이 될 것이다. 최근까지 뜸하였는데 갑자기 코로나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청황색말). 그리고 곡과 마곡의 땅인 러시아가 유대인이 대통령으로 시무하고 있는 우크라이를 침범하여 전쟁을 시작하였다(붉은 말). 그리고 조금 있으면 극심한 기근이 찾아올 것이다(검은 말). 그렇지만 천국 복음 전파는 마지막 시기에 더욱 더 불타오를 것이다(흰 말). 이미 네 가지의 인들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순교자의 호소가 뒤따라올 것이다. 이것이 다섯번째 인이 떼어지는 것이다. 순교자들이 채워진다는 것은 극심한 성도들의 핍박과 살해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여섯째 인이 떼어질 때 해와 달과 별들에게 이상한 징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이다(마24:29~31). 순교자들의 채워진다는 것은 짐승과 거짓선지자에 의한 핍박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곧 있으면 이 마지막 시기에 이 환난은 더 극심하게 적용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누구든지 환난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환난을 견뎌낼 신앙의 준비가 필요하고 일상생활을 영유하기 위한 준비도 같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면 얼마후에 사탄이 놓이게 될 것이다. 이때에 주님께서 하늘로 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정확한 시기는 알 수는 없어도, 주님께서 진실한 성도들을 공중으로 불러올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휴거'인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는 적그리스도 치하에 일곱 대접 심판들이 내려질 것이다. 음녀가 되어 세상과 짝하여 살던 양다리 신앙 성도들은 이때 남겨질 것이다. 그래서 사탄짐승에 의한 극심한 박해를 겪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은 주님을 부인하고 짐승을 경배하고 666표를 받겠지만 그래도 몇몇의 극소수의 사람들은 그때에 회개할 것이다. 아마도 이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휴거된 성도들의 기도가 이들을 순교의 자리에 들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숫자는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금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회개하고 천국복음을 전파할 시기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지금처럼 좋은 시기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회개하려면 지금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을 사모하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주님의 주시는 주님의 마지막 자비이기 때문이다. 

 

 

2022년 04월 24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용과 여자의 쟁투(5)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1260일,42달)의 3중적 의미는 무엇인가?(계12:10~17)_2019-05-10(금)

https://youtu.be/K7tZNOvvakc

 

1. 요한계시록 12장에 의하면, 남자아들을 낳은 여자가 광야에 도망하여 양육받은 기간은 대체 얼마입니까?(계12:6,13)

 

2. 남자아들을 낳았던, 해를 옷입은 채 있는 여자가 광야에 도망하여 양육받은 기간은 "1,260일"이요(계12:6), 또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계12:14)입니다. 그렇다면, "1,260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얼마나 되는 기간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3. "1,260일"이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같은 기간으로서 "3년반"을 의미합니다.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면, 1,260일은 42달에 해당하며, 3년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고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반"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간은 문자적(산술적)으로 꼭 1,260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개념은 요한계시록에 처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니엘서에 사용된 개념을 사도요한이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단7:25,12:7). 그런데 다니엘서에 의하면, 이 기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의해 핍박과 고난받고 환난당하는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고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의미도 구약의 개념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 기간은 대체 어느 정도되는 것일까요?

 

4. 여자가 박해를 받지만 피난처에서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이 어느정도인지는 요한계시록12:6과 13절에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계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12: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렇습니다. 해를 옷입었던 한 여자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들을 낳게 되고, 그 아이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려간 직후, 사탄이 하늘에서 내쫓겨나게 될 때, 용이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게 됩니다. 그때 이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여 거기에 하나님이 준비해둔 피난처에서 양육을 받게 되는 기간이 "1,260일"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1,260일이란 다음과 같이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에 의해 박해받는 기간을 가리키며, 둘째는, 동시에 박해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제 이것을 좀 더 확대해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신약은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의해 핍박받는 기간이 1,260일이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은 요한계시록 11:1~2을 보면,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바깥뜰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히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요한계시록 13:1~10에 의하면,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의해 성도들이 박해받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 기간은 해를 옷입은 여자(신구약백성을 산출하는 모체)가 낳은 남자아들(1차적으로는 첫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부터는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승천했던 직후부, 예수님의 재림때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고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 "1,260일"이나 "42달" 그리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정확히 "예수님의 승천이후부터 예수님의 재림때까지의 기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간은 계11:4~13에 따르면, 다른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5. 요한계시록에서 쓰여진 "1,260일(42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은 환난과 핍박, 보호와 양육의 기간이라는 의미 외에 어떤 의미가 더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제3차적인 의미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계12:11과 계11:3~13에 의하면, 두 증인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하는 기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12을 보면, A.D.95년 당시 하늘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음성 곧 이미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외치는 거대한 찬양소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용(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자 성도들을 핍박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이겨낸 성도들이 누구였는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을 가지고 용(사탄)을 이긴 자들입니다(계12:11). 그런데 이 말씀(계12:11)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는 요한계시록 11장에 있는 "두 증인"의 사역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1,260일동안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그들은 큰 성 바벨론에서 굵은 베옷을 입고 외치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자가 핍박받으나 보호받는 1,260일이란 이 2가지 의미 외에도 동시에 복음전파기간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니다. 즉 여자의 후손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바벨론(타락한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기간이 바로 1,260일인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환난기간에도 보호받고 양육받으려면 반드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만이 환난의 기간(주님의 승천이후 재림때까지의 기간)에서 보호받고 양육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지금 당장 복음을 전파합시다.

 

2019년 5월 10일(금)

정병진목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반을 가리키는 기간이다. 이것은 다니엘에서 처음 나오는 표현이지만(단7:25, 12:7), 요한계시록에서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도 똑같이 쓰이고 있다(계12:14). 하지만 이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다른 말로 "42달"이라고도 말했고(계11:2,13:5), "1260일"이라고도 말했다(계11:3,12:6). 같은 기간에 대한 다른 표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간은 산술적으로 1260일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가? 세대주의자들(환난전휴거론자)들은 이 기간을 먼 미래에 있을 적그리스도에 의해 통치받는 기간의 한 부분(후3년반)으로 본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정말 세계정부를 이끌어갈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한 이레(7년) 평호협정을 맺고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 다음,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는 자들을 핍박하는 기간일까? 우리는 이 표현이 요한계시록에서 등장하는 것인 만큼 요한계시록의 문맥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물론 다니엘서를 참고하여 볼 것이다. 여러분도 이 비밀을 알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어느 정도 보일 것이다.

 

1. 들어가며

  우리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2가지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하나는 핍박과 환난에 직면해야 한다(마24:9~10,13,21~22,29).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람들의 미혹에 주의해야 한다(마24:4~6,11,23~26).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이 두 가지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이 두 가지를 이겨내야 한다. 사실 누군가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이러한 수많은 난관을 뚫고 천국에까지 입성할 것인지 사뭇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해도 하나님으로서는 가능하 하셨으니 믿고 따라가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말씀과 예수께서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앞길에 대하여 바르게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달려가다가 그만 좌우로 치우쳐 끝까지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어려움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종말론에 관한 여러가지 미혹들이다. 그중에서 오늘 우리는 세대주의자들(환난전휴거론자)이 말하는 후3년반의 핍박이 문자적으로 실제하는 기간인지 아니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따로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우리는 미래의 일들에 잘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그리고 42달 내지는 1260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 기간에 무슨 일이 있게 될 것인지를 조목조목 살펴볼 것이다. 물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다니엘서까지 살펴가면서 말이다.

 

2.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디에서 온 개념인가?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상징들이 나오는 구약의 예언서와 같은 책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천국의 환상을 본 자들의 기록도 알고 있으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구약성경의 기록들을 포함하고 있거나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더 확장되어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한계시록은 결론의 책인만큼 구약시대보다 더 완전한 계시가 들어있기도 하다(예를 들어, 구약시대 성도들이 보았던 천국환상 가운데, 단 한 건도 24장로들에 대한 기록은 없다는 것은 요한계시록이 마지막 계시의 책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꿈꾸는 자라고 불렸던 창세기의 요셉과 욥 그리고 천국의 모습을 보고 기록한 미가야선지자 그리고 구약묵시서들인 다니엘서와 이사야서, 에스겔서와 스가랴서 등은 필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숫자가 한 가지 나온다. 그것은 "3년반"이라는 숫자다. 이것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표현인데 두 묵시서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나온다(단7:25, 12:7, 계12;14). 하지만 요한계시록에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말 대신에 "42달(계11:2, 13:5)" 혹은 "1260일(계12:6, 11:3)"이라고도 나온다. 사실 한 때를 1년으로 게산하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반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을 달수로 환산하면 42달이 되는 것이고, 일일로 환산하면 1260일이 되는 것이니,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42달이자 1260일이며, 3년반의 기간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과연 산술적으로 3년반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우리는 들여다보아야 한다.

 

3.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의미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산술적으로 딱 3년반의 기간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들어있는 것인가?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쓰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혹은 "42달"과 "1260"을 분석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에서 이 기간은 일정한 기간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약하면 적어도 3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첫째, 요한계시록에서 이 기간은 성도들이 환난받고 핍박받는 기간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계11:2, 13:5~8). 특히 성도들이 이 기간에 고난받고 핍박을 받게 되는데,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는 다름 아닌 이방인들이자(계11:2),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계13:5~8)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 기간은 3년반에 해당하는 여러 표현들 중에서 꼭 "42달"이라고 나온다.

계11:1-2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나오스)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나오스)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도시)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계13:5-8 또 짐승(처음 짐승, 바다에서 올라오는 열 뿔 가진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그렇다. 요한계시록에는 지상에 있는 성전을 딱 한 번 언급하는데, 그것이 바로 계11:1~2에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성전"이라는 표현은 물질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히에론"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 혹은 인격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나오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고전3:16~17). 그러므로 계6~20장까지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표현들은 상징적인 의미와 숫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계11:1~2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전"은 자기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성도들 곧 교회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의 대표자인 이방인들이 접수하는 지역은 성전바깥마당이요, 짓밟는 공간은 거룩한 성 곧 예루살렘 성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기왕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지, 바깥마당에서 세상과 교회에 양쪽 발을 딛고서 이쪽에다 아니면 저쪽에다 대었다 떼었다 하는 성도는 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거룩한 성이라는 표현처럼, 온전히 거룩한 성도들이 아니라 이러한 성도들과 관련된 주변사람들로서 있을 때에는 결국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혀질 수 있음도 알고 있어야 한다.

  더욱이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42달동안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물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경우에만) 하는 존재가 나오는데, 그는 바다에서 올라오고 있는 넷째짐승이라고 나온다. 이 넷째짐승은 첫째짐승(사자)과 둘째짐승(곰)과 셋째짐승(표범)의 장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달린 짐승으로 나온다. 그런데 다니엘서 7장~8장을 읽어보면, 이 첫째짐승부터 넷째짐승이 과연 누구를 의미하는지 그 해설이 나온다(단7:1~8, 8:15~27). 결론적으로 이들은 전부 세상 대제국의 왕들(황제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첫째짐승은 사자로 표현된 인물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 바벨론 제국의 왕 느부갓네살을 의미하고, 둘째짐승은 곰으로 표현된 인물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 메대와 바사제국의 왕 고레스를 의미하며, 셋째짐승은 표범으로 표현된 인물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 헬라제국의 왕 알렉산더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뿔이 열이요 머리가 7개 달린 넷째짐승은 로마제국을 의미하는 것임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 세상제국은 로마제국이었기 때문이요, 넷째짐승인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기독교인들을 악랄하게 핍박하고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처음짐승(넷째짐승)은 머리 하나가 상하게 죽게 된다고 되어있다. 결국 로마제국도 점차적으로 쇠퇴하여 멸망당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로마제국은 멸망당했고, 이어서 로마황제가 그 바톤을 이어받아서 성도들을 천년간 핍박했으니, 무려 6천만명을 죽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창세이후로 그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아니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이 그 짐승을 경배할 것이라고 했다(계13:8). 그러므로 42달이라는 기간은 상징적인 기간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제국의 왕들에 의해 성도들이 핍박받는 전 기간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 요한계시록에서 이 기간은 반대로 성도들이 양육받고 보호받는 기간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이 기간은 "1260일(계12:6)"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계12:14)"라고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1260일"은 산술적으로 3년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승천이후 재림전까지 성도들이 양육하고 보호받는 기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계12:6,14). 이것은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한 여자(여인)로부터 시작된다. 이 여자는 해를 옷입고 있었고 달을 밟고 있었으며 열두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계12:1). 꼭 요셉이 꿈에 본 것으로 자기의 아버지 야곱과 어머니와 형들의 모습과 같아 보인다. 그리고 어느날 때가 찼을 때에 이 여인의 첫번째 존재목적인 사내아이(아들)을 출산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여인이 출산한 사내아이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가? 그것은 장차 철장(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계12:5). 그리고 이 아이는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니, 백마를 타고 재림하시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존재로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우리 주 예수님으로 나온다(계19:11~16, 17:14). 그런데 이 여인이 아이를 낳으려할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막 낳은 그 아기를 잡아먹으려고 큰 붉은 용인 사탄마귀가 대기하고 있었다(계12:3). 하지만 이 사내아이는 보호함을 받은 후 속죄사역을 마치고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가버린다. 그러자 이 큰 붉은 용은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여인에게 독수리의 두 날개가 주어지고, 광야에 자기를 위해 예비된 장소 곧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장소로 날아가서 보호를 받는다(계12:6,14). 그리고 이 여인은 그곳에서 1260일동안 양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광야에서 이 여인은 계속해서 자식을 낳게되는데, 그 자식들은 계명을 지키고 예수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했다(게12:17). 그러자 용이 분노하여 돌아가서 이 여자가 낳은 자식들을 핍박하고 죽이기 위해 대제국이 일어나려고 하는 바다 위에 서 있게 된다(계12:17~13:1). 그리하여 무저갱으로부터 자기를 대신하는 처음짐승(열뿔달린 짐승)을 올려보내어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이다. 결국 사내아이를 출산한 여인이 누군고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자 하나님의 자녀들을 산출하는 모체인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믿는 구약백성들을 낳았던 존재요, 신약에 들어와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교회를 낳은 존재가 바로 이 여인인 것이다. 그리고 이 여인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죽지 않고 보호받고 양육받는 가운데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이자 자녀를 산출할 것이다.

  셋째, 요한계시록에서 이 기간은 회개와 천국복음이 전파되는 기간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두 증인이 그 일을 감당하게 된다(계11:3~13). 이때 그 기간을 "1260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계11:3). 그렇다면, 이 두 증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두 증인은 증인들로서, 꼭 두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처음짐승)이 나와서 이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으니, 한 두 사람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사명을 완수하는 날 전쟁에서 죽게 되는데, 짐승의 세력이 이들의 시체를 바벨론 성에 전시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의 시체는 시체들이 아니라 "시체(단수)"라고 나와 있다(계12:8). 고로 이들은 단체적인 복수의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구약시대에 송사하려 할 때에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하지 말하고 했던 것처럼(신19:15) 또한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파송할 때 2명을 정탐꾼을 파송한 것처럼(수2:1), 그리고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실 때 둘을 함께 보내셨던 것처럼(막6:7, 눅10:1), 2명은 증인의 수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이 활동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을 하는 사람들인 것을 보니, 이들은 회개를 외치는 선지자들에 해당하며(계11:10), 증언을 한다고 하였으니 예수님의 증인들인 것을 알 수 있다(계11:7). 또한 이들이 예언하는 날 동안인 3년반(1260일)동안 비가오지 못하게 한다 했으니, 구약시대 선지자의 대표였던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하여 감당하는 것 같고, 능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때든지 여러가지 재앙으로 땅을 친다고 했으니 구약시대 율법을 대표했던 모세의 사역을 계승한 자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구약시대에는 모세와 엘리야로 이미 예표되었던 자들로서,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회개와 십계명준수를 외치는 주의 종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증언사역을 마치고 죽게 될 때에는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 의해 아마겟돈전쟁에서 죽는 것을 보니(계11:7), 이들이 활동하는 1260일이라는 기간도 우리 주님의 부활승천이후부터 주님의 재림전까지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1260이라는 기간은 산술적으로 1260일을 가리킨다고 보기보다는 두 증인으로 불리는 주의 종들이 회개를 외치고 십계명준수를 외치며 참된 복음을 증거하는 기간으로서,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주님의 재림시까지의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

 

4. 다니엘서에 나오는 한 이레(전3년반과 후3년반)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그렇다면, 다니엘서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떻게 성취되었을까? 구약의 다니엘서에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즉 한 이레의 절반의 기간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하나는 단9:27의 예언에 따라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활동하는 기간으로 나온다. 이때 장차 그리스도가 와서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그친다고 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3년반의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하셨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열뿔가진 넷째짐승에 의해 성도들이 괴롭힘을 받는 기간으로도 나온다(단7:25, 12:7). 이것은 아마도 후3년반을 지칭하는 것 같다. 또한 이것이 실제로 그대로 성취되었으니, 한 이레의 앞절반(전3년반)은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로 활동하신 기간으로 성취되었고, 뒤절반(후3년반)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사도들과 일곱집사들과 성도들)이 엄청난 핍박을 받는 것으로 성취되었다. 그래서 한 이레가 끝날 무렵인 A.D.31년에 스데반이 순교당함으로(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더이상 성전제사가 필요없게 되었고 끝났다고 설교함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예루살렘 성도들이 온 세계로 흩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죽고 스데반집사가 죽기까지의 기간은 짐승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받는 후3년반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5. 나오며

  요한계시록에서는 왜 3년반의 기간을 3가지 의미로 쓰고 있을까? 즉 성도들이 핍박받고 고난받는 기간이자, 양육받는 기간이요, 복음이 전파되는 기간으로서 폭넓은 의미의 기간으로 쓰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구약시대에 다니엘서에 보면, 그리스도가 활동하는 전3년반의 있을 것이라고 하였고, 성도들이 핍박받는 후3년반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사도요한이 받은 계시에서도 성도들이 핍박받는 기간으로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개념이 그대로 차용되어 쓰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가장 먼저 자신이 속한 문맥 안에서 풀어가는 것이 원칙이므로,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처럼, 다니엘의 한 이레를 먼 미래의 일 곧 세계정부의 통치자가 나타나 이스라엘과 맺을 7년의 기간이라고만 보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아니다.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부터 벌써 핍박은 이미 시작되었고 동시에 양육과 보호도 시작되었으며, 복음전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상징되는 그 기간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고난받고 핍박받는 기간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성도들이 양육받고 보호받는 기간일 뿐만 아니라, 교회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놀라운 기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먼 미래의 어느날에 와서 통치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만 예상하고, 그날까지 베리칩과 같은 짐승의 우상만 받지 않고 있으면 자신은 베리칩이 융통되기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하는 얄팍한 환상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다. 모든 성도들은 다 환난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마24:29). 그렇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신다면 참새 두 마리도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듯이,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사탄마귀라도 우리들을 손도 못댄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요일5:18). 그분은 언제라도 우리들이 거하는 그 장소(광야같은 곳이지만)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회개복음과 천국복음의 전파의 사명을 완수하기까지는 절대 우리가 죽임당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임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살를 믿는 믿음인 것이다. 아무쪼록 주님이 오시기 그날까지 우리는 적그리스도가 언제 등장할 것인지만을 엿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두 증인의 경우처럼 회개를 촉구하고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믿어도 지옥간다는 것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순교하든지 그러다가 먼저 천국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그러다가 하늘로부터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건투를 빈다.

 

 

2018년 7월 8일(주일)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