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가? 그리고 천국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누구나 다 왕 노릇할 수 있는가?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거기에서 왕 노릇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당신을 창조의 시작이신 이라고 말씀하셨다(계3:14). 우리가 합당한 조건을 갖춘 자가 된다면 얼마든지 보좌를 창조하실 수 있는 이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천국에서 보좌에 앉아 다스리는 자가 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보좌 자리란 대체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할 때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가? 여기, 그것의 5가지 열쇠들이 있다.

 

2022-03-27(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천국복음(31) 천국에서 받을 상(3-4) 천국에서 보좌자리를 차지하는 이기는 자는 누구인가?(2)(계3:14~2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_ufOIGpX_MA [혹은 https://tv.naver.com/v/25945474 ]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쩌면 천국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순례객과 같은 것이다. 바로 천국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복 받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이자 그때에 주님께로부터 칭찬과 상을 얻는 자일 것이다(딤후4:7~8,18). 그렇다면 천국에서 성도들이 얻게 되는 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것은 총 3가지다. '천국 집'과 '면류관'과 '보좌 자리'가 그것이다. 이것들 중에서 '천국 집'은 우리가 주님께 기도 생활 잘하고 예배만 잘 드려도 좋은 집의 재료를 확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국 집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영적인 표현들을 통하여 지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두 번째로 '면류관'도 상으로 주어진다. 그런데 이것을 받으려면 그만큼 주님이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어야 가능하다. 이런 자들에게는 머리에 관이 쓰여지게 되는데, 그 모양이 월계관이나 왕관 혹은 티아라관처럼 생겼다. 그리고 그 면류관에 박힌 보석들도 다 그 종류와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다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럼 천국에서 가장 귀한 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셋째로 '보좌 자리'다. 그럼 보좌 자리란 어떤 상을 가리키며,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누가 과연 그러한 보좌 자리에 앉게 되는가? 오늘은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2가지 말씀과 더불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3가지 조건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이 저 천국에 준비된 그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 '보좌 자리'는 어떤 상을 가리키며, '보좌에 앉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천국에 가면 성도들이 예배하는 시간이 있다. 다만 천국에서 드리는 예배는 헌금 시간이 없고, 설교 시간이 없을 뿐이다. 거기에서도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천국 성도들은 3층 건물 정도로 보이는 커다란 스타디움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예배드릴 때면 24반차 중에서 하나의 반차가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그때에 성도들 중에 보좌에 앉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좌석은 다 지정석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성도들은 보좌 자리에 앉지 못한 채 서 있는 상태에서 예배를 드린다. 왜 그러는 것일까? 그것은 보좌 자리라는 것이 천국에서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아주 귀한 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좌 자리란 천국에서 누리는 최고 수준의 상으로서, 천국에서 성도들이 갖는 지위와 신분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는 성도들 중에 일부가 144,000석 중에서 자신에게 마련된 보좌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린다.

  그럼 천국에서 보좌 자리에 앉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천국에서 다스리며 통치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심판하며 분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스리는 자들도 사실은 2가지 계층이 있다. 하나는 왕으로 통치하는 자가 있고, 또 하나는 주인으로 다스리는 자가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왕으로 통치하는 자들은 그들이 다스릴 고을들이 있으며, 백성들이 있다. 그리고 주인으로 다스리는 자는 자기 집에 일하는 종들이 있다. 그들은 시녀(여자 일꾼)와 경호원(남자 일꾼)이다. 참고로 왕으로 통치하는 자들은 144,000석의 70줄의 좌석 가운데 1번 줄에서 6번 줄에 앉아 있으며, 주인으로 다스리는 자는 70줄 가운데 7번 줄에서 70줄 까지에 앉아 있다. 그렇다고 천국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세상의 경우처럼 비참한 신분이라는 것은 아니다. 기쁨으로 와서 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스리는 자들도 그를 목양하는 것이지 그들을 철장으로 치는 것을 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천국에서의 신분이 천국에서 크게 둘로 나눠지는 것이다. 다스리는 자와 섬기는 자로 나눠진다. 그럼 나는 과연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어떤 신분의 그룹에 속하게 되는 것일까?

 

3. 천국에서 보좌 자리는 누가 차지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천국에서 보좌 자리는 대체 누가 차지하게 되는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허투루 사람들을 아무나 그 자리에 앉게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행한 대로 보상해 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12).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모든 것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천국에서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보상의 수준은 제일 약한 수준으로는 '천국 집'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간 정도의 수준으로는 '면류관'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높은 수준으로는 '보좌 자리'로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보좌 자리에 앉는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이기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기는 자'라는 말은 크게 3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숱한 역경들에 대해서 '극복하는 것'을 가리키며, 둘째로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는 '승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는 남보다 '우세하는' 자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누가 이기는 자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당시 사도 요한이 쓴 일곱 교회의 편지 속에 들어 있다. 특별히 일곱 교회 중에서도 보좌에 앉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개의 교회 곧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말씀과 라오디게아에게 주신 말씀 속에 들어 있다. 

 

4.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보좌 자리는 누가 차지할 수 있는가?

  주님께서는 누가 천국에서 보좌에 앉아 다스리는 자가 될 수 있는지를 먼저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2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인데, 어떤 것이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 주님은 구체적으로 2가지로 말씀해 주셨다.

  첫째는 거짓된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계2:24~25). 당시 두아디라 교회에는 이세벨이라고 하는 거짓 여선지자가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당시 두아디라 안에 있는 여러 교회의 주의 종들을 꾀여서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역 조합이라는 조직에 들어가서 그들이 섬기는 수호신이나 우상을 숭배하고, 신전 창기들과 음행을 행하고, 그리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한 일은 사회생활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서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아디라 성도들 중에 일부는 그녀의 가르침을 거부하였다. 그것은 엄연히 잘못된 우상 숭배 행위요 음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사람들은 왕따를 당하기 일쑤였고, 교회 밖에서는 사회적인 홀대를 받았으며, 경제적인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이들은 그녀의 거짓된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았다. 이들이 바로 이기는 성도 곧 역경을 극복하는 성도인 것이다. 이들이 바로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둘째는 예수님의 사역을 끝까지 성실히 준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계2:26~28). 그렇다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여 천국 백성을 산출해 내고 그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 일을 위해 주님께서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가르치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시기도 하셨다(마4:23, 9:35). 이는 천국이 실상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렇다.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때에 왕 노릇을 하는 자가 되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여 천국 복음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전파하는 자이다. 구원받는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자들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다(계2:26). 그렇게 되면 이들은 천국에서 섬기는 성도들을 목양할 것이며, 어떤 이들은 철장 권세를 사용하여 다른 이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5.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보좌 자리는 누가 차지할 수 있는가?

  이어서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으로 누가 보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3가지로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우리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포함하여 다섯 가지 말씀에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자가 천국에서 다스리는 자, 왕 노릇하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보좌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나머지 3가지 조건은 대체 무엇인가?

  첫째,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라고 하셨다(계3:19). 여기서 열심을 내라는 말은 뜨겁거나 차겁거나 하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어느 때부턴가 뜨뜻미지근하게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왜 그럼 그들의 신앙은 식어버렸으며, 죄에 대해서는 유야무야된 것인가? 그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세상적인 부요함 때문이었다. 그러자 주님은 세상적인 부요함 때문에 식어버린 그들의 신앙의 열정을 다시 회복하시기를 촉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오늘날 육적인 일들에 만족하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일들에 열심을 품고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도할 때에는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 회개할 때에는 회개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하는 것이다. 천국 말씀 잔치가 열리면, 열심을 내어 참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다시 하나님에 대해서는 히에라볼리의 온천수처럼 뜨거워져야 하겠고, 죄에 대해서는 골로새의 냉천수처럼 차겁게 거절해야 한다. 

  둘째, 세상적인 일이나 죄짓는 일로부터 돌이켜 회개하는 것이라고 하셨다(계3:19).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어느새부턴가 죄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었다. 왜냐하면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그들은 부자로 살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계3:17). 먼저 그들은 금융 사업을 통하여 집집마다 많은 금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흑양모 사업을 통하여 검은색의 코트들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브루기아 안약 사업으로 인하여 육의 시력이 다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영적인 상태는 가련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볼 때 그들은 가진 것이 없었으며, 영적으로 볼 때에 그들은 옷을 입고 있지 않았으며, 영적으로 볼 때 그들의 눈들은 심히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계3:17). 그러자 주님은 그들에게 세 가지 처방전을 내리셨다. 주님으로부터 3가지를 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계3:18). 먼저는 불로 정련된 채 있는 금을 사라고 하셨다. 그들의 집에 있는 금은 불순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순물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금이란 곧 주님이 이 교회에 자신을 소개할 때 했던 말씀처럼, 거짓말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사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신을 "아멘(참, 진리)이신 이, 신실하고 참된 증인이신 이(계3;14)"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돈만 모으는 일로부터 회개하여 진리의 말씀을 얻는 것으로 돌이켜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처방전은 주님에게서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흑양모 코트는 영적인 수치를 가리는데 아무런 효과를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자신들이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서 돌이켜 이제 회개함으로 자신의 영혼을 단장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 번째의 처방전은 주님으로부터 안약을 사서 발라 보라는 것이었다. 이는 천국에서 진정 부요한 자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눈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오직 회개함으로 고장난 눈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려면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던 일을 멈춰야 한다. 그것에서 돌이켜야 하는 것이다. 

  셋째, 신랑되신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고 다시 오실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계3:20). 왜냐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그들의 마음 문 밖에 서서 그들의 문을 두드릴 것인데 그때에 문을 열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슨 말씀인가? 그것은 2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영적인 무감각에 빠져 있는 신부들을 깨우기 위해 주님이 오실 때에 그분을 맞아들임으로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주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마치 아가서에서 나오는 말씀처럼, "나의 사랑, 나의 누이, 나의 어여쁜 자, 나의 완전한 자야" 라고 그들을 부르시면서 그들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 신랑되신 주님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하지만 문 앞에 서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둘째로, 주인이 오면 언제든지 문을 열어 줄 준비를 하고 있는 종처럼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눅12:36~37). 다시 오실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인 것이다. 

 

6. 나오며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과연 주님께서 지금 재림하신다고 하실 때에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지금까지 언급한 다섯 가지 사항을 잘 준수하고 있는 사람인가? 첫째로, 세상적인 부와 쾌락을 추구해도 상관없다는 거짓된 가르침을 과연 거절한 채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그분만을 따라갈 수 있는가? 둘째로, 주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에 하셨던 사역처럼 천국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셋째로,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가? 넷째로, 죄에 대해서는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철저히 회개하고 있는가? 그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 다섯째로, 예수님과 친밀해지고 있으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다섯 가지 질문에 우리가 OK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천국에서 보좌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 구원과 구속은 사실 믿음과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상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한 대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연 우리는 오늘 소극적인 일들 곧 거짓된 가르침과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적극적인 일로서 영적인 일과 천국 복음 전파에, 그리고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재림 준비에 과연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아무쪼록 이 말씀이 우리의 영적인 나침반이 되어서 우리 모든 성도들을 천국에서 보좌에 앉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2022년 03월 27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귀신을 내게서 완전히 쫓아버리기 위한 첫번째 조건(요일5:4)_2020-02-11(화)

https://youtu.be/9NHto3Wv7wE

 

1. 귀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귀신은 영물입니다. 타락한 천사입니다(죽은 조상이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범죄하여 이 세상으로 쫓겨내려와 귀신이 되었습니다. 귀신의 처소는 현재 지구의 땅속 곧 음부에 있습니다. 음부는 이 세상과 연결된 수많은 통로를 가지고 있으며, 귀신은 지금도 그리로 왔다갔다 합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 나온 목적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시기질투하여, 어찌하든지 우리 인간을 죄짓게 만들어서 음부(지옥)로 끌고내려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귀신의 숫자는 대단히 많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은 죽은 가족의 모습으로 가장하여 나타납니다(나라마다 특색이 있어 귀신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귀신은 한 집안에 3~4대까지 머물면서 기생합니다. 그런데 귀신도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들도 배워야 앏니다. 그래서 귀신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고 능력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시간을 들여서 그 집안을 관찰합니다. 그래서 그 집안의 내력을 쫙 꽵니다. 그래야 사람을 잘 속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떤 타겟을 정한 후 그를 죄짓게 만든 후에 그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2. 귀신이 사람 속에 어떻게 들어갈까요?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가려고 하는 경우는 가족의 누군가로부터 귀신이 빠져나와서 숙주를 찾고 있을 때입니다. 귀신은 결코 무소부재한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동시존재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로부터 나와야 다른 사람에게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 귀신입니다. 만약 가족 중에 여러 사람에게 귀신이 역사하고 있다면 아직 누군가에게 안 들어가고 밖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 갑자기 귀신이 들렸다고 했을 때에는 대부분 귀신이 들려있었던 어떤 가족이 죽었을 때입니다. 그러면 3~4년 안에 귀신은 다른 사람을 물색하여 다른 사람에게 들어갑니다. 그때에 귀신은 대부분 첫째로 의지가 약한 사람이면서 둘째로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을 숙주로 선택합니다. 특히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거나 부모를 거역하거나,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분노를 삭이지 못하거나 했을 때에 귀신은 그 사람을 숙주로 선택합니다. 지나치게 열등감이 있거나, 내성적이거나, 소극적이거나, 생각이 많은 사람도 자주 공략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러한 성격을 가졌다면 신앙생활을 보다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더욱 활발하게,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찬양도 많이 부르고 기도할 때에는 부르짖어 통성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3.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가려고 사람을 물색할 때에는 어떤 식으로 하나요?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는 것은 우선 그 사람의 의지를 장악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그 사람 속에서 어떤 속삭임으로 다가갑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을 자신의 노예가 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귀신은 상당한 인내를 가지고 우리의 생각 속에 조금씩 조금씩 침투해 들어옵니다. 가장 처음에는 우리의 생각을 틈타고 들어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13:2)" 그리고 귀신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우리에게서 어떤 것이 이루어지게 만들죠. 그렇게 해서 하나씩 둘씩 우리의 생각을 점령하게 되고, 또 진짜 어떤 놀라운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함으로 그것을 더 신뢰하게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해주었는데, 너도 내 말을 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니"하면서 그 사람에게 요구를 하기 시작하죠. 그런데 그것이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시킬 때에는 그 사람이 조금 주저하는데, 그러면 자신이나 가족을 해치겠다고 위협을 가합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 사람에게서 이상한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때 가족이 물어보죠. 그러나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가족에게도 거짓말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거짓말하라고 시킵니다. 귀신과 마귀는 원래 속이는 자이기 때문입니다(요8:44). 그러나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오고 싶어도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합법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요일3:8). 그러므로 사람 속에 귀신이 들어오려면 그 사람이 죄를 짓게 해야 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요일3:8)" 그러므로 귀신에 내게 말을 걸어올 때 그 말을 들어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거래입니다. 그것은 제2계명인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이 되어, 필경 귀신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들려주고 거래하고자 할 때 단번에 거절해야 합니다. 특히 부모나 조상이 우상숭배를 했다거나(특히 무당이 있는 경우는 더욱 심합니다), 귀신들린 가족 중에 죽었을 때에는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4. 귀신을 쫓으려 하는데 안 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귀신이 나가지 않는 이유는 딱 2가지입니다. 첫째는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을 때입니다. 죄가 없으면 귀신도 역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귀신이라도 맘대로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죄를 지어야만 그것을 근거로 그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한 귀신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자기에서 귀신이 나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아직 회개 안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분들은 낙태죄를 회개하셔야 합니다. 그것도 엄연히 살인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능있는 자(예, 귀신쫓아주는 목회자)의 힘에 의해 강제로 귀신이 쫓겨났다고 해도(그러나 대부분은 나간다고 말만 하고 숨어버리기 일쑤입니다), 귀신은 다시 들어옵니다. 자신은 합법적으로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억지로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귀신의 측면에서 보면 억울한 것이죠). 그러니 축사받으러 다니지 마십시오. 내가 스스로 귀신을 쫓아내야 그때에 완전히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안에 귀신이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있나를 살펴보시고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의 핵심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묻기를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느냐고 하는데, 간략히 요약하면 도덕적인 죄 곧 십계명을 범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산상수훈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셔야 합니다. 산상수훈은 구약의 십계명법을 한층 더 강화한 것으로서 천국의 헌법과도 같은 것인데, 여기에서는 의도나 마음까지도 죄로 봅니다. 형제에게 욕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살인죄에 해당하며, 속으로 간음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져도 간음죄에 해당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거역해도 귀신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귀신이 틈타지 못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려면 자신이 십계명과 산상수훈을 순종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셔야 합니다. 그럼, 언제까지 회개해야 할까요? 그것은 내게서 귀신들린 증상이 사라질 때까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철수될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우선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철저히 파악해야 하겠죠(제가 증거한 십계명강해를 참조하십시오). 그때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회개해야 할 죄도 크게 보면 2가지입니다. 본인이 직접 지은 죄가 있으며, 또 하나는 조상들이 지은 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조상들이 지은 죄라도 그것이 우상숭배 죄라면 3~4대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출20:5). 그러므로 그때 회개할 때에는 자신의 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죄까지도 대신 회개해야 합니다. 조상들이 우상숭배하고 살았던 것을 대신 회개하는 것입니다.

 

5.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두번째 방법은 무엇인가요?

  귀신이 안 나기는 두번째 이유는 그 사람이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누구에 대한 믿음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10:17)"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 곧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 곧 그리스도가 누군지에 관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하신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를 들어서 믿음을 차곡차곡 쌓아가셔야 합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내 몸을 성전삼고 거하고 계시는데, 여기에 감히 귀신이 빌붙어 살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내일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요1:5). 어둠이 떠나지 않는다면 아직 빛이 내 속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빛은 있지만 아직도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십시오. 철저히 회개하십시오. 회개가 급선무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아주 강력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귀신을 아작 내버릴만한 강력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말씀 그리고 그분이 하신 말씀이 어떤 것인지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다 자기에게 있는 귀신을 쫓아내고 자신에게 얼씬 거리지도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영적인 세계는 아주 확실하고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02월 11일(화)

정병진목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그분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창조주요 통치자이시다. 그럼, 나님은 어디에서 통치하는가? 시11:4, 왕상22:19, 사6:1에 의하면 그분은 셋째하늘의 성전안에 있는 높이 들린 보좌 위에 앉으셔서 통치하신다. 그런데 그 보좌를 라오디게아 성도들도 차지하기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게 어디 가당스러운 말인가?

  천국가기도 어려운 판국인데 어찌 천국의 보좌를 차지할 꿈이나 꿀 수 있겠는가? 있다면 아마도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하게 선택받고 쓰임받을 종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어찌 조무래기같은 평신도에게까지 그 자리가 주어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사도요한과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그러한 것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전6:2~3). 그리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을 이기고 하늘에 올라와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처럼, 너희들은 세상을 이기고 하늘에 올라와 내 보좌에 함께 앉아 통치하자꾸나" 하신다. 어느날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에게 청탁을 했다. 주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통치할 때에 자기들도 좌우편에 앉아 통치하게 해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 주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게 되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하셨다(막10:39~40). 다시 말해 그 자리는 지정석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든지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과연 평신도들도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만약 차지할 수 있다면 어떤 자들에게 그 자기가 주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 보좌란 개념은 대체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일까?
  첫째, 보좌에 대해 알아보자. 천국에서 보좌라는 개념은 2가지로 쓰인다. 하나는 통치라는 개념이요(시103:19, 눅22:29~30) 또 하나는 심판이라는 개념이다(시9:4, 계20:4). 천국에서 보좌는 통치하는 장소요 재판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그 보좌에 앉아 왕노릇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그 자리에 앉아서 세상과 천사를 심판할 자가 바로 성도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기 때문이다(고전6:2~3, 계3:21).
  둘째,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다. 우리이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을 이겨야 한다. 예수께서도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다(요16:33). 그렇다. 우리도 세상을 이겨야 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육체의 한계와 세상의 부귀영화와 사탄의 시험들을 이겨야 한다.
  셋째,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기는 자가 되어 하늘에 마련된 그 보좌에 참여할 수 있을까? 주님께서는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교회의 성도들 즉 라오디게아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셨다. 그것은 3가지 방법이었다.
  첫째로는 주님으로부터 금와 흰 옷과 안약을 사라고 하신다(18절). 이것은 어떤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영적인 것들을 얻기를 사모하라 하신 것이다. 사실 당시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대부분 부자였다. 그들은 세계최대의 금융업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루기아 안약장사로 인해 흑양모를 입고 살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으시대며 살았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신다. 세상적으로 볼 때 너희들른 부자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어보이지만, 사실 너희들의 영적 상태는 비참하고 가난한 상태이며, 벌버벗은 상태이고,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그러니 주님으로부터 이제는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부끄러운 수치를 가리고, 안약을 사서 발라서 눈을 보게 하라고 하신다. 그렇다. 그들은 육적으로 세상적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매우 영적으로 가난했고 더러웠고 눈이 멀어 있었다. 이제는 주님으로부터 금과 흰 옷과 안약을 사서 그들을 새롭게 가꾸라 하신다. 영적인 것을 얻기 위해 댓가를 지불하라 하신다. 당신도 영적인 것들을 얻기 위해 댓가를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둘째로는 열심을 내라 하신다(19절). 그들은 그 도시에 공급되고 있는 물처럼 신앙도 뜨뜻미지근했다. 북쪽 히에라폴리스에서 온천수가 내려왔지만 내려오면서 식어서 뜨뜻미지근했고, 동쪽 골로새에서 차거운 물이 내려왔지만 내려오면서 뜨뜻미지근한 물이 공급되고 있었다. 신앙의 회색지대에 있는 자는 결코 천국의 보좌에 앉을 수 없다. 차든지 더웁든지 해야 한다. 열심을 내야 한다. 천국과 보좌는 찾고 구하고 침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
  셋째는 책망받고 징계를 받았으면 회개하라 하신다(19절). 돌아서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았으면 돌이켜야 한다. 버려야 한다. 이제는 옛생활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뜨뜻미지근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자신을 미화하고 포장하지 말라. 오히려 회개하고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천국에 가면 우리 성도들이 앉을 24개의 보좌가 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주님과의 혈연관계나, 간절한 타원이나 편애로 주어지는 자리가 결코 아니다. 예수님처럼 이기는 자가 얻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 빈 자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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