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5)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1:12~14)_2022-06-10(금)

https://youtu.be/mNHtNldt3ic  [혹은 https://tv.naver.com/v/27276963 ]

 

1. A.D.30년 5월 18일경 120명의 성도들은 왜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는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약 40일이 되던 날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리고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로 알려진 다락방으로 모였다. 그럼, 그들은 왜 모였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을 받기 위해 모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너희가 들었던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왜냐하면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행1:4~5)"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제 성령받기 위해서 마가의 다락방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곳은 감람산으로부터 약 1Km 떨어진 곳으로서 안식일에 걸어가기에 알맞은 거리였다. 

 

2. 그곳에는 누구누구가 모여 있었는가?

  그렇다면 그날 마가의 다락방에는 누구누구가 모였는가? 그들은 '열한 사도들'과 '여자들'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었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나다나엘),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다대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3-14)" 

  그렇다. 이때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갈릴리 출신의 사람들이었다(행1:11). 그중의 핵심은 열 한 사도들이다. 그런데 이 사도들의 이름들 가운데 베드로의 이름이 첫번째로 기록된 것은 당시 베드로가 사도들의 대표자였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눅8:3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부터 예수님을 도운 여인들이 나온다. 그러므로 일곱 귀신 들려 나았던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수사의 아내였던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가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세베대의 아내였던 살로메(요한과 야고보의 모친)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막15:40).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름은 분명하게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들도 있었다고 했다.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동생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시몬, 유다 등이다. 그리고 예수님에게는 여동생들도 있었으므로, 아무도 여자들 중에 예수님의 여동생들도 들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마13:55). 누가는 그때 모인 무리들의 숫자를 기록해 놓았으니, 그들은 약 120명 정도되었다고 했다(행1:15).
 

3. 이들이 모여서 성령받기 위해 한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던 120명의 성도들이 과연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성령받기 위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합심기도였고 그들은 그것에 몰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행1;14). 왜냐하면 성경에 보니, "마음을 같이 하여(한 마음으로, 일심으로)" 그리고 "기도에 오로지 힘썼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행1:14).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니, 그때 상황이 보다 더 정확히 나온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이들 모두는... 마음을 같이하여(한 마음으로) 기도에 물두하고 있으면서 있어 왔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있어왔다"는 말은 직설법 미완료구문으로서 그들이 모여서 10일 동안 계속해서 기도해왔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특히 '오로지 힘썼다'라고 번역되고 있는 동사는 '프로스카테레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어떠한 상태로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 굳게 충성하다. 끈질기게 성실하게 임하다. 몰두하다. 전념하다.'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120명의 성도들이, 그때에 오직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합심하여 집중적으로 기도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도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기도에 몰두하여 성령을 간구하면 모두다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4. 사도행전에는 어떻게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보도하고 있는가?

  사도행전에는 성령세례를 받은 사건이 총 다섯 번에 걸쳐 나온다. 네 번은 단체적으로 성령이 임한 사건이요, 한 번은 개인적으로 성령이 임한 사건이다. 그것도 한 번은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고넬료가정에서, 마지막으로 에베소에서 일어났다. 이것들 중에서 단체적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사건으로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부어진 것으로 시작된다. 120명의 성도들이 에루살렘의 마가다락방에서 모여 한 마음으로 오로지 기도에 전념할 때에 성령이 부어졌다(행2:1~4). 이것이 예루살렘 성령세례 사건이다. 그리고 사마리아에서는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에 사마리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안수함으로 그들에게 성령세례가 부어졌다고 언급되어 있다(행8:14~17). 그리고 고넬료 가정은 개종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와 그 가정에 베드로가 가서 직접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이 부어진 사건이었다(행10:44~46). 그리고 마지막은 에베소 성령강림 사건인데, 이때는 사도 바울이 내려가서 안수할 때에 일어난 것이다(행19:1~6). 그런데 여기까지는 다 단체적으로 성령이 부어진 사건들이다. 이것 말고도 개인적으로 성령이 부어진 사건도 나오는데, 이는 다메섹에서 금식하고 있던 사울(나중에 바울)에게 아나니아가 안수함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이다(행9:17~19).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세례 사건은 총 다섯 번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자의 사건마다 성령세례를 받았던 조건은 동일했을까? 아니다. 성령세례가 임한 조건이 다 똑같지는 않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가 다 예수님께서 누군지를 알고 믿었던 자들에게 부어졌다는 것이며, 성령세례가 부어지게 되면 밖으로 나타난 성령의 선물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섯 번의 경우는 대체 성령세례의 조건이 어떠했던 것일까?

  첫째는 예루살렘 성령강림사건처럼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에 일어났다(행1:14). 둘째는 사도들이 안수할 때에 성령이 임하였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사마리아의 경우가 있고(행8:14~17) 에베소의 경우가 있다(행19:1~6). 그리고 사울에게는 다메섹의 경건한 기독교 자도자로 추정되는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할 때 일어났다(행9:17~19). 그리고 셋째로, 고넬료 가정의 경우는 베드로가 가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에 성령세례가 부어진 경우이다(행10:44~46). 고로 종합해보면, 성령강림이나 성령세례 사건들은 성도들이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그리고 믿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에, 그리고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 권위있는 사도들이 가서 안수할 때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무리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표현에는 무슨 뜻이 들어있는가?

  오늘 우리는 성령세례 사건 중에서 처음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으로서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모인 무리 120명에게 성령이 임한 사건을 살펴보고 있다. 이때 성령세례는 오로지 모인 무리가 예외없이 성령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도에 전념할 때에 일어났다. 그럼, 우리도 성령을 달라고 기도에 전념하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물론 이 말은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정확히 이 사건을 살펴보면, 성령세례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기도', 특히 '합심기도'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하겠다. 그것은 오로지 성령받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성령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오로지 기도에 전념할 때에 성령세례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세례에 대한 기대를 갖고 열심히 기도만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그들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를 정확히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예루살렘의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와 우상숭배에 찌들어 살아온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부어지는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토박이 유대인들이 받는 성령세례와 오늘날 대학민국 사람같은 이방인들이 받는 성령세례는 그 상황과 조건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천편일률적으로 기도만 하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잠시 내려놓고 그때 당시로 돌아가봐야 한다. 그리고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기록을 통해 사람이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회개"라는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눅24:47~49, 행2:38, 8:17~24). 이 부분을 간과하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악한 영들에게 속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관계상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06월 10일(금)

정병진목사

 

 

 

죄를 지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죄를 회개하지 않은 채, 성도가 성령집회에 참석하여 성령을 초청하는 일은 과연 괜찮다고 할 수 있는가? 오늘날에도 성령치유집회, 성령은사집회를 하는 곳들이 상당히 있다. 그런데 그러한 집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성령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인? 거기에 귀신들이 성령을 가장하여 들어올 여지는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한 번쯤은 질문해보아야 할 중요한 질문 중의 질문이다. 과거 금가루, 금이빨 사역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뒤로 넘어져 방언을 말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기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동물울음소리도 나오기도 한다. 과연 이것을 성령사역이라고 할 수 있는가? 미국 캐네스 해긴 목사는 기괴한 웃음을 가리켜 "거룩한 웃음"이라고 말했다. 과연 이것이 성령의 사역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치유은사집회가 과연 성령집회인지 아니면 귀신이 성령을 가장한 집회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한다. 그래서 어떡하면 성령께서 일하시는 사역이 될 수 있는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2019-03-10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회개없는 죄인의 성령간구는 왜 조심해야 하는가?(행2:36~41)
https://youtu.be/xC7TF68bvyM


1. 들어가며

  오순절이후 이 땅에 오신 보혜사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 속에 들어가시게 되었다. 또한 밖에서도 계속해서 역사하신다. 어떤 이는 신약성경이 완성됨과 동시에 성령의 은사도 없어지고 종료되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경륜적으로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 오신 성령께서는 그후 또다른 어떤 경륜을 가지고 있다고 예언된 성경구절은 없다. 오순절날 모든 믿는 자들에게 부어졌으며 그리고 동시에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어 일하시는 성령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성도들의 안과 밖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순절이후, 성령께서 우리 밖에서 역사하실 때에 성령께서는 주로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그리고 이때 성령을 위장하여 귀신이 그 역할을 한다면 어떻게 분별해낼 수 있는 것인가? 죄인으로서 성령하나님의 오심을 간구할 때에는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오순절이 이후 믿는 자들의 밖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귀신과 구별하고 오직 성령께서만 역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2.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가?

  오늘날에도 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역사처럼 성령께서 역사하고 있는 것인가? 어떤 이는 성령의 은사들은 성경의 기록이 종료됨과 동시에 끝났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더이상 예언이나 환상, 계시나 방언, 방언통역같은 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성경이 완성되면 성령의 은사가 종료된다는 말씀은 없다. 오순절 이후에 성령께서 달라지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순절 이전에만 해도 성령의 역사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구약시대부터 예수님의 초림시까지 성령께서는 사람들 위에 계셨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 위에 계신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하나님께서 선택한 몇몇의 사람들 위에만 있었다. 그래서 어떤 직임을 주고 능력과 은사를 주었다. 성령께서는 기드온 위에 내려오셔서 지도자가 되게 하셨으며, 삼손에게는 강력한 힘을 주었으며, 사울왕에게는 예언하게 했으며, 여러 선지자들 위에 내려오셔서 선지자로서 예언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몇몇 사람들에게 제한 된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성령을 모든 사람들 위에 부어줄 것이며(욜2:28~29), 모든 믿는 자들 속에 있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겔31:33 겔36:26~27). 그리고 그것이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서 실행되었다. 성령이 모든 믿는 자들 위에 내려오셨고 또한 믿는 자들 속에도 들어가신 것이다.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 위에 내려오셔서 지금도 갖가지 은사들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있으며, 믿는 자들 속에 들어가셔서 그들을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고 인치시고 보증해주시며, 죄를 멀리하여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로 인도하시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가르쳐주시며, 그분이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러한 사역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3. 오늘날의 무분별한 성령사역,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오늘날에 성령사역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과연 그것이 제대로 된 성령사역인지 구별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알파코스에서 개최되는 성령수양회나 G12에서 실시하는 엔카운터수양회의 예를 보자(이것은 이러한 수양회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며, 단지 이러한 수양회에 나타난 현상들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직접 체험한 것이기 때문이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사역 전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말씀드린다). 알파코스사역을 할 때에 손에 금가루가 생기고, 금이빨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거나 보기도 한다. 그리고 엔카운터수양회 때에 보면, 사람들이 뒤로 넘어져서 깔깔깔 거리는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동물소리를 내는 분들도 있다. 과연 이들은 정상적으로 성령을 체험하고 있는 것인가? 과거에는 그러한 것들 모두를 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사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사역을 위장한 가짜사역이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사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금가루, 금이빨, 기괴한 웃음"은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 곧 생명주는 사역과 속죄사역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것들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캐네스 해긴이라는 미국 성령사역자가 있었다(지금은 돌아가신 분이시다). 그는 "거룩한 웃음"이라고 하면서 자기도 웃고 다른 사람도 웃게 하는 것을 성령사역이라고 했다. 그것을 통해 사람이 치유되고 힐링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들이 지르는 웃음소리를 들어보았는가? 무엇이 성령사역이고 무엇이 귀신이 행하는 사역인지 이제는 구별할 때가 되었다. 또한 오늘날 신사도 빈야드운동을 하는 곳에서의 치유사역과 방연과 예언사역을 직접 체험해 보았는가? 과연 이들이 행하는 사역을 성령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4. 성령사역인지 성령을 가장한 귀신사역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어떤 사역이 성령께서 행하시는 사역인지 귀신(타락한 천사)이 행하고 있는 사역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사실 성령이나 귀신은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이다. 성령도 영이시며, 귀신도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 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귀신이 주는 것도 성령이 주는 것과 유사한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귀신들은 원래 어떤 존재로 생겨난 것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창조된 능력있는 영적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시103:20~22, 벧후2:11). 귀신도 천사들이기 때문에 천사로서 동일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구약시대에 바벨탑의 언어혼잡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천사가 일으킨 것이고, 출애굽때 애굽의 장자를 죽인 것도 명령받은 천사가 행한 일이며, 히스기야왕 때 앗수르군대 18만5천명을 하루아침에 송장되게 한 것도 하나님이 보낸 천사였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사람들은 천사들을 가리켜 "엘로힘"(하나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시82:1,6, 86:8). 천사들도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사람들에게 "신(엘로힘)"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엔돌의 신접한 여인이 불러올린 거짓 사무엘을 기억하는가? 거짓으로 환상을 보여주는 것도 악령이 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성령치유은사집회에 가서 환상을 보았다든지, 예언을 하게 되었다는 말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이 진짜 성령께서 주신 것인지 귀신들이 주는 것인지를 분별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역사할 때에도 군데군데마다 귀신들이 치고 들어와 가짜를 보여주는 것이 영적인 세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집회에서는 병이 나았다고 간증하기도 한다. 하지만 병이 나은 것인지 잠시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 잠잠해서 병이 나은 것처럼 보이고 있는지를 점검해보아야 한다. 귀신들도 얼마든지 속이기 때문이다.

 

5. 무엇을 두고 귀신사역이 아니라 성령사역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귀신에게 속지 않고 온전한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신약성경 특히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과 귀신이 행하는 것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마리아에서 빌립집사의 활동은 성령의 사역이지만, 세례받은 전직 마술사 시몬은 성령사역을 위장한 귀신사역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훗날 성경 외의 기록에 의하면 시몬 때문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장난에 미혹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치유은사능력사역이 과연 성령사역인지 귀신사역인지를 구별하고, 어떻게 하면 귀신사역이 아니라 성령사역을 행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결과로만 보았을 때에는 사실 그것이 성령사역인지 귀신사역인지 구분하기는 어렵기도 하지만, 귀신이 절대 틈타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놓는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하는 사역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순전히 성령께서만 역사하실 수 있는 환경이 되게 하려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 방면이 있다. 그것은 성령사역을 하기 전에 무슨 말씀을 증거하고 성령을 초대하느냐에 달려 있고 또한 성령사역을 하기 전에 통성으로 회개기도를 충분히 하고 성령을 초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첫째, 성령사역을 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사역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전하고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실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 오시기 하셨지만 성령께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증언하는 영이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가서 다시 오시마고 약속하신 것이 사실은 성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사역을 하기 전에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을 증언하러 오신 성령께서 역사하시며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넬료가정에 임한 성령강림사건이다. 그날 베드로는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성령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말했다.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적이 사실과 의미를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고넬료가정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렇다. 성령사역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전하는 일이며, 그분이 누구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둘째, 성령사역을 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두번째 사역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마귀에게 속한다. 그러면 귀신이 합법적으로 사람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러므로 귀신이 우리 몸 속에 혹은 우리 몸 밖에서 역사하실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최고로 좋은 방법은 귀신이 우리 몸 속에 들어올 근거를 없애버리는 일이다. 그것은 죄를 고백하여 죄를 씻어버리는 일이다. 죄를 회개하여 죄를 씻어내면 귀신이 우리 몸 속에 들어올 근거가 없어진다. 귀신은 어떤 영인가? 더러운 영이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깨끗함을 받지 못한 영이다. 그런데 우리 성령은 어떤 분인가? 거룩한 영이다. 깨끗한 영이다. 그러므로 귀신이 역사할 수 있는 환경은 죄를 짓고 있고 어둠 가운데에 있을 때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경을 제거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야 성령사역에 귀신이 틈 탈 기회와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회개하자. 생각나는 모든 죄를 회개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성령사역을 하게 되면 귀신이 역사하지 않고 성령이 역사하는 사역이 될 수 있다.

 

6. 나오며

  성령이나 귀신은 둘 다 영적 존재이므로, 사실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께서 역사하셨는지 아니면 귀신이 일했는지를 우리가 분별해내기가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귀신이 활동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환경을 조성할 수는 있다. 그것은 성령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영인 것을 알고 예수님의 생명주는 사역과 속죄사역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성령을 일컬어 "예수의 영"(행16:7) 혹은 "그리스도의 영(롬8:9)", "아들의 영(갈4:6)"이라고 불렀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증언하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사역 시간에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씀이 없이 오직 성령만 오시길 초대하는 것은 귀신에게 날 잡아먹으라고 내주는 격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귀신이 성령을 가장하여 치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충분히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는 회개해야 한다. 지은 죄들을 낱낱이 고백하여 귀신이 틈 탈 공간을 내주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성령사역을 진행하라. 그러면 귀신이 아니라 성령께서 오셔서 활동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3월 10일(주일)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