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왜 형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는가? 그것은 우리 속에 무엇인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면 누구든지 그도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왜 그러한가?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사람인지 적그리스도의 영에 속한 사람인지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여기, 그 해답들이 나와 있다.

2021-12-08(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서신강해(05) 형제 사랑 실천 및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하는 법(요일3:13~4: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_ahm0Ylu_c [ 혹은 https://tv.naver.com/v/24018315 ]

 

1. 들어가며

  요한일서는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자들에 대한 영적 성장을 다룬 책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들의 미혹에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 것인가를 알려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초신자들을 위한 양육 지침서라고 정의할 수 있고 더불어 이단 세력으로부터 성도를 지켜 주는 예비 주사의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앞서 요한일서 1-2장의 내용이 하나님과의 교제(fellowship)의 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생활을 다룬 것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고, 이어지는 3:1-4:6에서는 하나님의 자녀(children of God)로서의 성도의 신앙과 그것에 합당한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이것들 중에서 오늘은 3:13~24까지의 말씀을 살펴볼 것인데,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삶의 적극적인 측면의 특징으로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삶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4:1~6의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경계를 권면하는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그래서 형제 사랑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며,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정리하고자 한다. 

 

2. 그리스도인은 왜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왜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도 요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말했는데 첫째 이유는, 믿는 이들은 형제 사랑에 대한 실천을 통하여 과연 자신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요일3:13~14). 그러므로 만일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있고 또한 형제를 미워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여전히 사망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내 안에 과연 하나님의 생명이 존재하는지를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형제 사랑의 실천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는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는 형제 사랑을 결국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는 형제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가인이 자신의 형제 아벨을 미워한 것이다. 결국 그의 미움은 살인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렇다. 가인 자신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의 마음을 악한 자가 치러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아우를 돌로 쳐죽이고 만다. 가인 안에는 자기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누구든지 과연 자기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는 형제를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는 아니다. 다시 말해, 혹 누가 형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 안에 꼭 영생이 들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에, 그냥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요일3:23). 그렇다. 자기 안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응당 형제 사랑을 실천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인들이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제 사랑이 무엇인지를 직접 보여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요일3:16).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시기 위해 먼저는 사람으로 오셨고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인류의 대속물로 내어 주신 것이다. 그분이 누구인가? 그분은 바로 성령으로 우리 믿는 이들 속에 들어와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자신의 동생으로 삼으려고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자신을 낮추시고 또 낮추시어 피조물의 몸을 입으신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목숨을 죽기까지 내어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다른 형제를 그렇게 사랑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3. 그리스도인들이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 삶으로 형제를 도와 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재물(재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형제가 궁핍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도 본체만체 한다면 그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지 않다고 했다(요일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말이나 혀로서만 형제를 사랑한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형제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직접 행동과 진실함 안에서 형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누군가 자기의 형제가 궁핍에 처하여 있는 것을 보고도 그를 도와줄 마음을 닫아 버린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어떤 그리스도인이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한다면, 그에게는 어떤 유익이 나타나는가?

  이어서 사도 요한은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단계에 도달하는 자가 갖는 상태를 말해 주었는데, 그것은 자기의 마음이 자기를 책망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 이 수준에 도달하는 자에게 주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것을 3가지로 언급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고 했다(요일3:21). 이는 성도가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자에게 담대한 믿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믿음에 담대함이 없는 자는 악한 영들 앞에서 주눅이 들어 버리거나 겁먹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들이 악한 영들 앞에서 주눅이 들거나 겁먹는지 아는가? 그것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그가 책망을 들을 만한 죄악들이 자기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개하고 또한 생명의 교통을 나누고 있으며 또한 형제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면 그는 자기 안에 어떤 거리낌도 갖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러한 자는 악한 영들 앞에 선다고 할지라도 담대해지는 것이다. 아니 당당히 맞서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한 것을 다 받을 수가 있다고 했다(요일3:22). 왜나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그가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요, 그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들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자는 기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기도 응답을 풍성하게 받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회개하고 생명을 성장시켜 형제 사랑을 실천하라. 그러면 그것으로 인하여 형제를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의 분량을 맞춰 주실 것이다. 셋째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그분에 거하는 상호 교통과 상호 내주가 가능하다고 했다(요일3:24). 그렇다. 주님과의 친밀도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의 친밀도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고 그분의 말씀이 또한 우리 안에 거할 때에 생기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있으며, 그렇게 구한 것들은 또한 즉시 응답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요15:7).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선한 열매도 맺을 수 없으며, 또한 마지막에 가서는 가지처럼 잘려 나가 밖에 버려져 불에 던져져 살라지고 말 것이다(요15:6). 

 

5. 영들이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초신자들은 사실 사람의 말만 듣는 것으로서 그 속에 역사하고 있는 영을 분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영들을 무조건 다 믿지 말라고 권고한다. 오히려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를 분별해 보라고 권고한다(요일4:1). 왜냐하면 당시에도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이미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 아니면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영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느냐 시인하지 않느냐로 구분하라는 것이다(요일4:2~3).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 영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적그리스도의 영은 이미 와 있다고 했다(요일4:3). 한편 사도 요한은 2장에서도 역시 적그리스도가 누군지를 경고하였다. 적그리스도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라고 하였다(요일2:22).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라고 했다(요일2:22). 이는 당시 초기 기독교 이단 세력인 영지주의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이신 아들은 하나님으로 인정했지만 여호와는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께서는 물질을 창조했기 때문에 저급한 신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여호와와 예수님은 같은 하나님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그리고 아들을 위하여 모든 창조물들 창조했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특별히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 곧 예수께서 물과 피로 오신 것을 믿지 않는 자는 적그리스도인 것이다(요일5:6). 

 

6. 성도들이 적그리스도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도 요한이 말한 바, 적그리스도란 악한 자인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악한 자인 사탄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는 이 세상의 임금(왕)으로 활동하고 있는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다(요12:31, 14:30, 16:11). 예수께서는 그를 이 세상의 통치자라고 하셨다. 사실 영적인 권세로 서열을 매기자면 그는 하나님 다음으로 지혜와 능력을 소유한 자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그를 어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임금의 통치를 받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 수가 있는가? 그런데도 사도 요한은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악한 자인 사탄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 믿는 이들 속에 들어가서 내주하고 있는 분이 이 세상에 있는 악한 자 곧 사탄 마귀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다(요일4:4).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가 아무리 위대한 지혜와 강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자를 결코 손댈 수가 없는 것이다(요일5:18).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들이 비록 사탄 마귀보다 약한 존재일지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를 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사탄 마귀는 우리가 가진 권세와 능력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기는 것이다. 사탄이 아무리 강한 능력과 권세와 지혜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속에 내주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보다는 훨씬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사람은 이와는 달리 오히려 이 세상 임금인 사탄 마귀의 말에 순종할 것이라고 했다(요일4:5). 이는 그들이 세상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께 속해 있는 자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라고 했다(요일5:6).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결코 세상 임금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서 성도들은 누가 진리의 영을 소유한 자인지 반대로 누가 미혹의 영을 소유한 자인지를 구분할 수가 있는 것이다(요일4:6).

 

7. 나오며

  요한일서는 구조가 참으로 특이하다. 점진적인 것도 아니며 또한 수미쌍관형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요한일서가 순환론적인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동일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오늘 우리는 요한일서의 말씀을 통하여 '형제 사랑'에 대한 권면과 '적그리스도'에 대한 분별력을 갖추도록 2장에 이어 또다시 그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말씀을 들었다. 그래서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요한일서는 반복해서 말씀을 가르침으로 초신자들을 깨우치고 양육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이 책의 기술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요한복음의 저술 목적은 간단하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요20:31). 그러나 요한일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가 아니다. 사실 4가지로 나온다. 첫째는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자들의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려 주기 위해 쓴 것이기 때문이다(요일1:4).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방해하고 마귀에게 속하게 만들어 버리는 죄를 더 이상 짓지 않게 하려고 썼다고 했다(요일2;1). 고로 성도들의 일상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죄를 범하지 않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셋째는 성도들이 미혹하는 자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고 그들을 분별하여 그들에게 속하지 않기 위해서라고도 말했다(요일2:26).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요일5:13). 그렇다. 요한일서는 이처럼 영생에 관한 서신이요, 이단에 대한 예방 주사를 맞히기 위한 책이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는 이 책을 통하여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생명을 더 성장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죄를 짓지 않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이러한 생명의 능력들이 형제 사랑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오고 있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잘 분별하여 시간을 허송세월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영적 싸움에서도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1년 12월 08일(수)

정병진목사

 

'적그리스도'라는 용어는 성경에 딱 5번만 나온다. 그런데 이 다섯 번이 모두 다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에서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요한 사도는 대체 누구를 가리켜 '적그리스도'라고 칭한 것인가? 그리고 대체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죽은 후에도 이 신분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오늘은 성도들의 이러한 실제적인 삶을 한 번 돌아보자.

 

2021-12-01(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서신강해(04) 적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요일2:18~3:1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_m4E7q1esmc [혹은 https://tv.naver.com/v/23859584 ]

 

 

1. 들어가며

  요한일서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을 보는 신학자에 따라 정의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확실히 이 책은 초신자를 위한 양육서라고 할 수 있고 동시에 이단의 세력을 대항하게 해주는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생명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책이며, 당시 이단세력인 영지주의를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일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관하여 관심이 요청되며, 당시 기독교에 침투하여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초기 영지주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영지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적그리스도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에 맞서는 하나님의 자녀는 대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2. 요한일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요한일서는 구조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요한일서는 교차대구법이 쓰인 것도 아니며, 직선론적인 논리전개방법도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일서는 어쩌면 순환론적인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요한일서는 하나의 바퀴가 굴러가고 있는데 또 하나의 다른 바퀴가 같이 굴러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므로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요 소제들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요한일서 1장에 보면 '빛'과 '어둠'과 '진리'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런데 요한일서 2장에서도 역시 '빛'과 '어둠'과 '진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일서를 큰 주제별로 구분한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의 주제는 '교제'(코이노니아)로서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더불어 사귀는 교제가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1~2장의 말씀이다. 그리고 두번째의 주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제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존재이며 그리고 무엇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요한일서 3~4장에서 증거한다. 그리고 세번째 마지막 주제는 요한일서 5장에 나오는데, 그것은 '승리'라는 주제다. 세상과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비결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당시에 이미 교회에 침투해 들어왔었으나 떨어져나간 바 있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가?

  사도 요한은 성도들간의 교제에 있어서 이제는 요한일서의 수신자들이라고 불리우는 성도들에게 들어온 이단적 세력에 주의할 것을 권고하기 시작한다. 사도 요한은 그들을 '적그리스도들'이라고 하였고(요일2:18,22,4:3, 요이1:7), '미혹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요일2:26, 요이1:7). 그렇다면 대체 이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바로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초기 영지주의자들이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의 말씀을 통하여 적그리스도 혹은 미혹하는 자가 영지주의자라는 사실을 계속 언급한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은 이러한 거짓 교사들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을 분별하는 방법으로서 어떤 것을 제시하였는가? 사도 요한은 요일2:18~29의 말씀에서, 영지주의 이단세력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3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이단세력은 정통교회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요일2:19). 즉 한 때는 영지주의자들도 정통 교회 안으로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더이상 참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한 자기들이 참 진리가 아니라 거짓이라고 알게 되어 교회를 떠나고 없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로부터 떨어져나간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 이단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진리는 진리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함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리를 외치는 교회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만약 참지 못한 채 참된 교회를 뛰쳐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것이다. 둘째,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하여 그리고 아버지와 그리고 아들이 누군지에 대하여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이단세력이라는 것이다(요일2:22~23). 즉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거나,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이단세력이요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것이다. 셋째, 이들은 계속해서 성도들을 미혹함으로서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이다(요일2:26). 누군가 말씀을 가르치는데,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점점 더 자신을 헤매게 만드는 자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세력인 것이다. 왜냐하면 참 진리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진정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믿는 자들에게 보내주시기 때문이다(행2:33). 이때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의 말씀을 증언하시기 때문이다.
 

4. 초기 영지주의가 당시 '이단세력'이자 '적그리스도'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당시 교회에 미혹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말하였다(요일2:26). 여기서 교회에 이미 들어와 미혹하고 있던 자들은 바로 다름 아닌 '초기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첫째,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요(요일4:2~3), 둘째,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2:22a). 그리고 셋째,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하나님으로 시인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3:22b). 넷째,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3:3). 그렇다면 이들의 고백이 이단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었다(요일4:2~3). 왜냐하면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영은 선하고 육(물질)은 악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결단코 육체를 가지신 예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기간동안에 나사렛 예수에게 들어갔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를 탈출했다고 말했다. 

  둘째, 그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부인하고 있었다(요일2:22). 이들은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더러운 육신을 입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에, 당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 중에 어떤 이는 그날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다름이 아니라 그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까지 말했다. 왜냐하면 '영'은 결단코 죽을 수가 없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들은 역시 아버지와 아들 중에 한 분을 부인하고 있었다. 요한복음이나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을 말할 때에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이 땅에 보내어진 아들이라고 말하고, 예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신앙고백이 아버지도 믿어야 하고 아들도 믿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두 분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가보면 하나의 하나님의 보좌에 다름 아닌 예수께서 앉아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루 우리 주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여호와를 무시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물질세계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말한다. 둘 다를 한 분 하나님이라고 시인하지 않는 자는 적그리스도라고 말이다. 그러나 두 분은 아울러 동시에 존재가 가능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때에 우리는 구별된 두 분을 또한 다르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두 분의 개별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상호침투 내지는 상호내주하시는 한 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만 당시 유대교나 오늘날의 여호와증인은 하나님은 믿으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이들이 바로 이단세력인 것이다. 

 

5. 요한 사도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왜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표현하였는가?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오셨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어떤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으면 그는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으로 쓰임을 받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장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구주로 보내시는 분은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기름부음을 받은 자(=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은 이미 구약성경 이사야서에서 증언하는 것으로서(사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1-3)"라고 하였다. 더욱이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실 주실 때에는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자에게 보내주실 뿐만 아니라(욜2:28~29), 사람 속에 내주하실 것이라는 말씀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겔36:26~27, 렘31:33). 그러므로 마가다락방에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보혜사 성령과 성령의 내주에 관하여 그는 요한복음에 그것을 기록할 수가 있었다(요14:16).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교회의 성도들은 영지주의자의 교사들이 가르치는 말씀을 배울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요일2:20). 그리하여 이상한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말라고 했다(요일2:27). 오로지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분은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어 예수께서 누구시며, 또한 그분이 하신 말씀을 깨닫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요14;26). 그러므로 영지주의의 미혹에 속아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6.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는 대체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2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그리고 아들이신 예수님과 교통(코이노니아)를 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아울러 이러한 교통을 방해하는 이단세력이 있으니 그 세력을 잘 분별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후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대체 어떤 존재를 가리키며, 또한 현재는 어떤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는지를 언급하였다.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3장 1~12절까지의 말씀의 핵심이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난다고 했다(요일3:10).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을 가리키며, 마귀의 자녀들은 미혹의 영으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라고 하였다(요일4:6).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가?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면이 갖춰진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했다.

  그것은 첫째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분과 같이 되기 위해서 지금 그분이 깨끗한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있는 자라고 말했다(요일3:3).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영은 선한 것이고 거룩하며, 육은 악한 것이고 더럽다고 판단했기에, 자기의 육체를 성결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육체로 죄를 짓는 것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어차피 육은 영에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 있는 자는 장차 주님의 재림의 날에 하나님의 자녀로 발견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둘째,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께서 의롭게 있는 것처럼 자신도 의를 행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요일3:7).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뒷받침되지도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장차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의로움이 비록 발견되지 않고 있어도, 그리스도의 재림시가 되면 응당 자기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미혹'이라는 것이다(요일3: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도 여전히 죄를 짓고 있다면 그는 마귀에 속한 자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 자는 결코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아닌 것이다(요일3:8). 셋째, 하나님의 자녀는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는 것이다(요일3:11~12).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자야말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있는 자는 사망 안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자라고 하였다(요일3:14). 만약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은 여전히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악한 자에게 속하여 있는 자이다(요일3:12). 그러한 자는 마귀에게 속했기에 결국 최초의 형제 살인자였던 가인처럼 자기의 형제를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요일3:12). 

 

7.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죄를 짓지 아니하고 의로움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들을 멸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멸한다'는 표현은 그것을 무효화시킨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것을 폐하여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마귀가 아무리 사람들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한다고 해도 쓸모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미 오셔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해 놓으셨기에, 믿고 회개하는 자는 지금도 그분의 피로 인하여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마귀가 어떤 일들을 해도 그 일은 무효화되어버릴 것이며, 폐지될 것이다.

  또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믿는 이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때에 사람 속에 '하나님의 씨'도 주셨다고 말했다(요일3:9). 여기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씨'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일 수도 있고 '성령'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한일서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씨는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을 믿은 후 거듭날 때에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온다. 그러면 그때의 생명은 우리 안에서 싹이 트게 되고, 말씀과 성령의 도움을 받아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범죄하지 않으려면 최소 자기 안에 하나님의 씨 곧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8. 나오며

  가인은 당시에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노아훙수 이전까지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가인은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잃고 만다. 그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고 악한 자 곧 마귀의 인도를 따라갔기 때문이다(요일3:12). 결국 회개하지 않은 가인은 영원한 멸망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다시 말해 자기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결국 누구의 음성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다시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음성을 따라가지 않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도록 하기 위해 사도 요한은 미혹하는 자 곧 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의 특징에 대해 3가지를 말하였다. 그리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징들에 관하여 3가지를 언급하였다. 요한이 자꾸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미혹하는 영에게 속지 말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서 꼭 영생을 얻으라는 권면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신천지나 하나니의 교회와 같은 이단이 횡횡하고 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여 끌어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당시 이단을 분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으니,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 이단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서 마지막 날에 꼭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12월 01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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