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9(금) 금요기도회

제목: 쓴뿌리 제거(03) 혈기 분노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시37:7~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I3r-sM5-zAI

 

1. 들어가며

'쓴 뿌리'란 무엇인가? '쓴 뿌리'란 내 몸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없는 듯하나 어느 때가 되면 싹이 자라나듯 올라와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악한 세력들은 웬만한 신앙생활로서는 제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대부분 조상적부터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던 영들로서, 우상숭배로 인하여 합법적으로 우리 몸속에 침투해 들어와 있는 영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합법적으로 그들을 몰아내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 몸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장애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죽게 되면, 그 영들이 밖으로 나와서 일부는 나의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쓴 뿌리를 '죄된 본성'이라고 말을 하지만 실체는 악한 영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통 자기 집안의 내력이라고 말하는 '혈기와 분노'의 실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며, 이러한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 오늘은 이러한 세력의 실체를 바로 알고 이에 관한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기도를 함으로써 이 악한 뿌리를 제거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2. 혈기와 분노는 죄인가?

혈기와 분노는 과연 죄인가? '혈기'란 생명을 지탱하는 피와 기운을 일컫는 말로서 이것이 없다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분노'라는 것도 역시 자신의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정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서 이것 역시 없다면 그는 죽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혈기와 분노' 자체를 죄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다만 혈기와 분노가 감정으로 표출되어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거나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그것으로 인하여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된다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만약 혈기와 분노 자체가 죄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예수님도 죄인과 같은 분이라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시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을 때에 그들에게 크게 노하셨기 때문이다(신1:34~35). 또한 신약시대에 예수께서도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장사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하면서 분노하셨기 때문이다(요2:14~15). 그러므로 우리는 혈기와 분노 자체를 죄로 보지 말고, 그것이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될 때 그것이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혈기와 분노의 죄를 짓지 않고, 귀신을 거절하고 쫓아내는데 사용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혈기와 분노에 대해 조절할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경고하였다(엡4:26~27).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마귀에게 틈을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 악에 대해서는 분노해야 하겠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미워하거나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사람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그를 분노하여 그를 쫓아내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3. 왜 우리는 혈기와 분노를 통해서 죄를 짓는 데까지 나아가서는 아니 되는가?

혈기와 분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탄 마귀는 이것을 이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혈기와 분노를 조절하고 극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혈기와 분노를 조절하고 극복하지 못한 채, 미움과 폭력과 살인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그는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인가?

그렇게 되면 첫째,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다(약1:19~20). 하나님께서는 미움과 폭력과 살인을 조장하는 분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혈기와 분노를 냈던 최초의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담의 장자 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혈기와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악한 영에 사로잡혀 쓰임을 받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동생인 아벨에게 혈기와 분노를 사용함으로 동생을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폭력을 행사하더니 결국에는 그를 죽이고 말았다. 이것이 혈기와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사탄에게 자신을 내어 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면, 그것은 모세의 경우다. 출애굽 후 2세대들이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더러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명령하셨다. 하지만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모세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고 말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못했던 모세는 그토록 자신이 바라고 소망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밟지 못했다. 그렇다. 혈기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이처럼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혈기와 분노를 통해 나타나는 2차적인 죄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받을 수가 없게 만든다(갈5:19~21). 혈기와 분노가 죄를 짓게 만들면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그것은 주로 원수맺는 것(적대강, 증오)과 분쟁(다툼)과 시기(질투)와 분냄(격동함)과 당 짓는 것(편가르기)과 분열함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러한 육체의 열매를 맺는 자들의 결국을 말해 주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말은 결국 그가 새 예루살렘 성밖으로 쫓겨나게 된다든지 아니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혈기와 분노를 조절하고 이를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 못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혈기와 분노로 인해 죄를 짓게 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혈기와 분노'를 자기 집안의 내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혈기와 분노'를 용인하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혈기와 분노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혈기와 분노는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남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지 않았을 때에 나타나는 격한 감정으로서, 이것은 우리 속에서부터 나오는 육체의 성질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것을 사탄이 잡아쓴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을 사탄의 졸개들인 귀신들이 이용하여 우리 몸에 합법적으로 침투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놈들이 혈기를 내게 하고 분노를 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몸속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다. 이러한 영들이 우리 몸에 자꾸 쌓이고 많아지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고 성질이 급한 사람이 되고, 혈기와 분노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질이 급하다든지 아니면 자기 집안의 내력으로 혈기와 분노가 있어 왔다고 용인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기의 성질을 좌우하고 집안의 내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정확히 알아내고, 그것을 쫓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5. 우리 몸속에 어떤 영들이 들어올 때 혈기와 분노가 한층 더 가중되는가?

그렇다면, 어떤 영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올 때에 우리가 혈기와 분노를 이기지 못해 죄를 짓게 되는가? 그것은 우상숭배의 영들 중에 딱 2가지 영들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는 제사의 영 때문이요 또 하나는 무당의 영 때문이다.

먼저, 첫째로, 우리가 제사를 드릴 때에 혈기와 분노의 영이 내 몸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집안의 가풍을 바로잡고 집안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을 통해 악한 영들이 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린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조상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다. 조상들에게 역사했던 악한 영들이 와서 제사를 받고 절하는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혈기와 분노의 영들은 절하는 사람의 뒷머리나 뒷목에 달라붙는다. 그러므로 제사를 강조하는 사람이 완고하고 성질이 급하고 혈기와 분노를 자주 내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혈기와 분노의 영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제사를 지내며 절을 했던 과거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특히 자기 뿐만 아니라 자기의 조상들이 열심으로 제사지내 귀신들에게 절했던 죄를 자복해야 한다. 그래야 뒷머리나 뒷목에 자리잡고 있던 혈기와 분노의 영들이 떠나가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무당 점쟁이의 말을 따라서 행하거나 혹은 자신이 무당 점쟁이가 될 때에 혈기와 분노의 영이 내 몸에 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무당 점쟁이는 악한 신들을 받아서 굿을 하거나 점을 쳐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이 때 무당과 점쟁이 속에 들어온 귀신들은 자신을 최고로 섬기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만약 무당과 점쟁이의 말에 말대꾸를 한다거나 무시를 하면 무당 점쟁이는 성질을 참을 수가 없다. 그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이 성질을 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당 점쟁이에게 자주 찾아가서 물어본다거나 혹은 자신이 무당 점쟁이가 되어 신을 받은 자는 성질이 아주 급해진다. 그리고 혈기와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당 점쟁이를 섬기거나 무당 점쟁이가 될 때에 우리 몸속에 혈기와 분노의 영들이 쏙쏙 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무당 점쟁이를 섬기거나 무당 점쟁이가 될 때 혈기와 분노의 영은 주로 우리 몸의 '심장'과 '간'에 달라붙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의 심장과 간에는 붉은 악한 영들이 감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혈기와 분노의 영은 매우 매운맛을 낸다. 이것들이 역사하면 자꾸 심장과 간이 따끔거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혈기와 분노의 감정이 솟구쳐 올라온다. 그러므로 내게 혈기와 분노가 올라오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또 내 심장과 간에 붙어 있는 악한 영들이 발작을 하고 있구만" 그리고는 그것들을 즉시 꾸짖어야 한다. 그때에는 십자가 세우기를 하여 그것들이 자신의 몸에서 떠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6. 어떻게 할 때 혈기와 분노의 영을 조절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가인이 혈기와 분노로 씩씩거리고 있을 때에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풀어서 말하자면, "혈기와 분노의 영이 너를 원하나 너는 혈기와 분노의 영을 다스려야 한다"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혈기와 분노의 영을 조절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

첫째, 가장 먼저는 우리 몸속에 침투해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그것은 회개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회개하되 나와 내 조상들이 제사를 지냈으며 무당과 점쟁이를 섬긴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 들어온 혈기와 분노의 영들에게 십자가 세우기를 하여 그것들을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럴수록 우리 몸속에 있는 악한 영들은 떠나게 되는데, 그러면 어느 때가 되면 우리도 역시 온유와 겸손이 가득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둘째는 나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음을 늘 상기해야 한다(갈2:20).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짓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긴 자들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그때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질이 이미 죽은 자임을 자각할 줄 알아야 한다. 죽은 시체는 절대 성질을 내지 않는다. 고로 혈기와 분노를 참지 못하던 나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상기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해 보라. 상당수의 혈기와 분노들을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 한다(엡4:26~27). 사람이 살다 보면 화가 날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치게 행동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또한 나를 무시하거나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 하는 것을 듣게 되면 즉각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화를 낼 수가 있다. 그렇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그 죄를 회개하라. 그러면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도 내가 지었던 죄목이 기록되지 않을 뿐더러, 귀신이 내 몸에 달라붙었다가도 금방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넷째는 혈기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갈5:19~21). 그렇다. 육체의 성질을 조절하지 못하는 자는 결국 육체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러한 죄를 회개하지 못한 채 죽게 된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가게 못하게 될 것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는데 육체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 결국 성밖에 내던져지거나 지옥에 떨어진다면 얼마나 통탄할 일이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성질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이러한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고 혈기와 분노를 조절할 때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7. 나오며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비해 성질히 급하고 혈기와 분노가 많은 사람이라면 그는 그것을 집안의 내력이라고만 여기고 그것을 놔두어도 괜찮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혈기와 분노의 실체는 우리와 우리의 조상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많이 드리고, 무당 점쟁이를 잘 섬기거나 무당 점쟁이가 되어서 굿을 한다거나 점을 쳐줄 때에 우리 몸속에 침투해 들어 오는 악한 영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 몸속에 침투해 들어와 있는 영들, 그중에서 혈기와 분노의 영들을 제거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이러한 영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온 지 오래되었거나 혹은 우리 몸 깊숙이 박혀 있을 때에 우리는 그것을 '쓴 뿌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혈기와 분노를 조절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것들을 제거하는 일이 가장 급선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것들을 여기에다가 부가적으로 적용하면 된다. 즉 내가 예수님을 믿을 때 육체를 따라 살던 나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상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즉시 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내가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늘 자신을 각성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혈기와 분노를 조절하고 극복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는 혈기와 분노의 영 쓴 뿌리 제거 회개기도문으로 기도를 시작해 보자.

 

 

2022년 12월 09일(금)

정병진목사

 

2022년 12월 09일(금)

정병진목사

 

3. ‘혈기 분노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제사의 죄

“하나님, 저는 제사를 지낼 때마다 혈기 분노의 영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혈기를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끄떡하면 혈기 분노를 참지 못한 채 행패를 부렸습니다. 혈기를 내고 분노하는 것은 내가 속한 가문의 특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제사드릴 때에 들어오는 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자신의 집안을 최고로 여기는 마음이라고 좋게 생각했는데, 제사 드릴 때 혈기 분노의 영들이 내 속에 들어온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혈기와 분노의 전통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집안의 이러한 풍조를 따르는 일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엄하게 다루고 상대방의 누르려면 혈기 분노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옳은 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혈기 분노야말로 다른 사람을 순종케 만들고 나의 말에 복종케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핏대를 올려가며 화를 냈고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상황도 가리지 않고 혈기를 부렸습니다. 물건을 집어 던지며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고도, 그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내 감정을 못 이겨 혈기와 분노를 낸 것이지만 나중에는 내가 내 속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붙들려서 혈기와 분노를 냈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 혈기 분노를 내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분을 내어 악한 영이 내 몸에 들어오도록 틈을 내주었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제사 지내 불러들인, 혈기 분노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 무당 점쟁이의 죄

“하나님, 무당 점쟁이를 가까이하고 무당 점쟁이가 되어 혈기내고 분노한 죄를 회개합니다. 나는 무당에게 속해 교만이 충천하여 혈기와 분노를 냈습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때에는 나를 무시한 처사로 생각하여 버럭 화부터 냈습니다. 알고 보니 내 속에 있는 무당의 영이 자신을 최고로 인정해주지 않아서 분노하는 것인 줄을 정말 몰랐습니다. 내 속에 있는 신(神)이 혈기와 분노를 내는 것인데, 내 말을 거역하는 것은 나에게 반항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조상이 지었던 과거의 죄까지 들추어내어 상대방을 굴복시켜야 비로소 분이 풀렸습니다. 내 속에서 왜 이렇게 교만하고 악한 마음이 올라오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내 속에 무당의 영이 있어서 교만한 마음과 함께 할 때에 혈기와 분노가 올라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때로는 까닭 없이 올라오는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물건을 부수고 집어 던질 때도 있었습니다. 내 판단이 옳고 내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내 속에 있는 무당의 영이 나에게 주는 생각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내 속에 남아있는 억울한 감정과 피해의식을 악한 영들이 잡아 쓴다는 것을 미쳐 몰랐습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해 화를 낼 때면 뒷목이 땡기고 심장과 간이 벌렁벌렁 거렸습니다. 그것을 고혈압 증상으로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혈기와 분노의 영이 내 뒷목을 잡아당기는 것이었고, 내 심장과 간을 요동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까지 귀신에게 속아서 참지 못했던 것입니다. 인내하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한 채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해주신다는 것을 믿지 못해 화부터 냈습니다.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다는 것을 적용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분을 낼수록 내가 육체의 소욕에 사로잡혀 혈기와 분노의 마음이 미움과 폭력과 살인을 가져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도 못할 뿐더러,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정신 차리지 못하고 성질대로 살아왔던 지난 날의 삶을 이 시간 회개합니다.

이제는 가족과 이웃과 아랫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겠습니다. 무당의 영에게 나를 내어주지 않겠습니다.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의식하며 살겠습니다. 이제는 성령과 함께 살아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참고 기다리는 자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나 자신을 의뢰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며 남을 배려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그동안 분노와 혈기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믿는 자답게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누를 끼치며 귀신에게 종으로 잡혀 살아왔음을 회개합니다. 이 시간 이 모든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무당과 점쟁이를 섬겨 불러들인, 혈기 분노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022-11-13(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위대한 사도 바울에게도 과연 악한 영들이 있었을까?(행15:36~4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E_ek8LbBS3k  [혹은 https://tv.naver.com/v/30826490 ]

 

1. 들어가며

  과연 최고로 영성이 깊었던 대사도인 사도 바울에게도 과연 악한 영들은 역사하고 있었을까? 우리가 육적인 시야만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잘 모를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라 할지라도 깨끗한 영안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사정을 달라진다. 그러므로 만약 지금이라도 마음이 청결하고 깨끗한 사람이 된다면, 우리에게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영안으로 진단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 그러한 영성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과연 바울 속에 과연 어떤 악한 영들이 역사하고 있었는지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는 어떤 악한 영들이 역하고 있었던 것일까? 

 

2. 사도 바울에게 역사했던 악한 영들은?

  아무리 뛰어난 영성을 가진 사람이 할지라도 악한 영들이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혹시 만약 그러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분은 사람으로 오셨던 주 예수님 뿐이실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대한 사도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는 악한 영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나 사실은 성경기록만을 보더라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볼 악한 영들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러니 실제는 이보다 악한 영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히 알 것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처음부터 악한 영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자식을 태중에 잉태하는 순간부터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도 바울 속에는 어떤 영들이 역사하고 있었을까? 악한 영들 중에서 바울에게 역사했던 영을 큰 영 내지는 숫자가 많이 들어 있는 영의 순서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에게는 '교만의 영'이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울의 몸 속에 사탄의 사자(천사) 곧 가시를 넣어두신다고 했기 때문이다(고후12:7).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교만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주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에게 사탄의 사자를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자신에게 역사하고 있는 영 곧 육체의 질병을 일으키는 영을 쫓아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무려 세 번씩이나 기도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오히려 주께서는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왜냐하면 내 능력은 약한 때에 완전하여 지기 때문이다"고 말씀해 주셨다(고후12:9). 고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죽는 날까지 교만의 영이 역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바울에게는 '논쟁하게 하는 영'도 있었다. 사도 바울은 사실 정말 많이 배운 사람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예루살렘에 유학온 유학파였다. 그리고 당시 바울은 최고의 율법교사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율법의 대가였다. 한 마디로 율법에 대해서는 실력파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라틴어와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다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사람이든지 만나면 그 나라의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이처럼 바울은 많이 배웠을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었기에, 그에게는 항상 논쟁하게 하는 영이 뒤따라다녔다. 예를 들어보자. 그의 전도여행 가운데 가장 논쟁했던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아마도 2차 전도여행 중에 만났던 아덴(아테네)이었을 것이다. 그는 거기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의 논쟁을 벌였다(행17:18). 그래서 당시 철학자들은 그를 '말쟁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그는 말로서 다른 사람에게 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처럼 논쟁하게 하는 영이 있었던 것이다. 

  셋째, 바울에게는 '우울의 영'이 역사하고 있었다. 바울을 영성이나 실력이나 능력 면에서 보면, 그는 베드로를 능가하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베드로의 율법주의적 삶을 책망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최대의 약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육체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바울은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있을 때에 12사도로 부르심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른 12사도들에게 뒤질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늘 못 마땅하게 여기거나 그를 비난하는 자들은 바울을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말했다(고전9:2~5, 고후11:5~6, 12:11). 그러므로 그는 이 일에 대해 많은 변명을 해야 했다. 그는 사실 많이 우울해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죽는 그날까지 늘 우울의 영이 붙어다녔다. 

  넷째, 그에게는 '혈기 분노의 영'도 있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가운데 가장 애석한 모습을 사도행전 15장에서 볼 수가 있다. 그것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에 수행원으로 누구를 두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바나바와 심각하게 다투었다는 점이다.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했지만, 바울은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았다. 결국 둘은 심히 다투었고 피차 갈라서게 된다. 이때 사도 바울에게도 혈기 분노의 영이 역사했던 것이다. 사실 바울에게 있었던 혈기 분노의 영은 이미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일 때부터 바울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했었다.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너무나 특심했다. 하지만 잘못된 믿음에서 출발한 그를 혈기 분노의 영이 놔주지 않았다. 

  다섯째, 바울에게는 '솔직하지 못함의 영'도 있었다. 바울은 바나바와 피차 싸운 뒤 서로 갈라져서 각기 다른 전도의 길에 올랐다. 그때에 바울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자로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이 바나바의 적극적인 배려와 추천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적어도 마가 요한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가는 문제를 놓고 바나바와 충돌했을 때에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도 바나바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는 보다 더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섯째, 바울에게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는 영'이 있었다. 어느날 바울은 자신을 찾아온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종인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데 앞장 서왔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많은 괴로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죄없는 스데반을 죄를 뒤집어 씌워 돌로 쳐죽이는데 정작 자기자신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모함을 받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쓸 때에도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스데반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일곱째, 바울에게는 '주의 영광 가리게 하는 영'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나바와의 다툼은 누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예수님을 대신하여 파송받은 사역자로서는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때에 사도 바울은 주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잃어버리게 하는 영'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이 바나바와 2차 전도여행을 놓고 피차 싸우는 바람에, 바울은 사실 자신을 후원하는 교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2차 전도여행 초기를 제외하고서 바울은 안디옥 교회로부터 그 어떤 후원금도 받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바나바와 싸음으로 인하여 그는 후원교회를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둘도 없는 좋은 사역자 바나바도 랕이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3. 사도 바울에게 역사했던 영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렇다면 바울에게 역사하고 있었던 악한 영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대체 무엇인가?

  첫째,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성경에서 가장 영성이 뛰어났던 사도 바울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남에게 감추고 싶은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둘째, 교만의 죄는 사람이 죽는 그날까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은 사역자는 더 교만할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도 바울의 행적을 보면 그에게도 자기 자랑의 마음이 있었고,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도 있었으며 그리고 자기자신이 인정받으려는 욕구도 아주 많았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가 있다. 

  셋째, 자신이 가진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사도 바울은 강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악한 영들이 역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혈기분노의 영이 역사하는 통로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많이 배운 지식은 그를 교만하게 만들기도 하였으며, 선교에 대한 열정은 그를 양보심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넷째, 누구든지 조상적부터 내려오고 있는 세대와 가문의 영을 완전히 피해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있는 큰 악한 영은 교만의 영이요 논쟁의 영이며, 그 다음으로는 우울의 영이자 혈기분노의 영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영들은 다 무당 점쟁이 계열의 영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역시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조상적부터 내려오고 있는 악한 영들로서 무당 점쟁이 계열의 영을 많이 갖고 태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고로 바울의 윗대 조상 중에 무당 점쟁이를 가까이 했든지 아니면 무당 점쟁이로 활동했던 조상들이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다섯째, 조상적부터 믿는 사람들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영들보다 자기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더 많은 영들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도 바울은 사실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영은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므로 그에게 역사했던 영들은 대부분 자기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더 많이 침투해 들어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는 1~2대만 위로 올라가면 다 불신자이며, 무당을 가까이 했던 민족이기 때문에 우상숭배의 영이 아주 많다.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악한 영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4. 나오며

  이상과 같이 사도 바울에게 역사했던 악한 영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정말 윗대부터 하나님을 믿는 조상들을 가진 사람들은 참 복이 많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은사를 가진 채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죄짓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를 짓게되면, 자신의 죄로 인하여 악한 영들을 자기 몸 안에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는 이스라엘과는 정반대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의 경우는 거의 다 믿지 않는 불신자일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에 찌들어 있는 조상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경우 이스라엘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 상대적으로 악한 영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우상숭배에 관련된 영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인 것이다. 고로 우리 나라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난과 질병과 패망의 영들을 몸 속에 지니고 태어난 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세대에 자신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정말 힘겨운 영적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치 않게 되는 것은 지금의 시대야말로 마지막 시대이니만큼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은혜와 은사를 주신다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 만 더 회개하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풍성한 은사를 내려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회개에 힘을 기울여보자.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조금 더 가져보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어느때보다도 더 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회개함으로 내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고, 또한 하나님께 간구하여 성령의 은사들을 많이 받아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2022년 11월 1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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