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42) 베드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고 계셨는가?(행9:32~43)_2022-09-16(금)

https://youtu.be/wyOn2LlqWT4  [혹은 https://tv.naver.com/v/29303563 ]

 

1. 다시 교회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안정되어 숫자가 많아지자 베드로는 어떻게 했는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 수가 더 많아지자 베드로는 모든 곳들을 통과하여 두루 심방을 다닌다(행9:31~32). 특히 믿는 성도들이 있는 유대의 여러 서부지역을 심방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그가 갔던 장소는 '룻다'였다. 룻다는 예루살렘에서 약 30Km 떨어진 유대 서부 지역으로서, 유대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중풍병으로 병상에 드러누운지 8년이 되어가는 형제 '애니아'가 있었다. 그런데 '애니아'라는 이름은 사실 헬라식 이름으로 그 뜻은 '찬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가 중풍병으로 누워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를 향하여 주의 이름을 선포하면서 그가 나을 것을 명령했다(행9:34). 그러자 그대로 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상당히 유력한 인사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중풍병에서 치유되었다는 것이 알려지자, 룻다 뿐만 아니라 룻다에서 가까운 사론에 거주하는 이들까지 주께로 돌아오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행9:35). 

 

2. 베드로가 룻다에 있을 때에 어떤 심방 요청이 들어왔는가?

  베드로가 룻다에 있을 때다. 어느날은 룻다에서 약 16~18Km 서쪽에 위치한 지중해 항구도시 욥바에서 두 남자가 베드로의 소식을 듣고 그에게 찾아왔다(행9:38~39). 그것은 자기 동네에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여제자 '다비다'가 있는데 그만 그녀가 병들어 죽었고 이에 씻어서 다락에 시체를 뉘여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체하지 말고 빨리 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유달리 정결례를 중요시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았고, 또한 사람의 시체나 짐승의 주검을 함부로 접촉하지 않고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그곳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 유대지역을 돌아다니는 이유는 성도들을 심방하기 위한 것이었고, 더욱이 이번에는 심방의 부탁을 받은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들을 따라나섰고, 가서는 모든 사람들을 다락방에서 다 내보낸 후에 혼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다비다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라고 명령한다(행9:40). 이 말을 아람어로 바꾸면, '다비다 쿰'이다. 이는 예수께서 과거 공생애 시절에 죽은 소녀를 일으시킬 때에 사용했던 언어와 거의 비슷하다. 그때는 '달리다 쿰'이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막5:41). 그러자 다비다가 눈을 떴고 곧 일어나서 앉게 된다. 이에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켰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서 그녀가 살아난 것을 보여준다. 그러자 온 욥바 사람들이 이것을 듣고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행9:41~42). 

 

3.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살려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살려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얼핏 보기에 그가 복음을 전파할 때에 치유사역과 더불어서 소생의 기적을 일으킴으로 베드로도 능력전도를 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도 맞다. 그랬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비다'는 당시 욥바에 거주하는 이방인(헬라인)들로부터 '도르가'라고 불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비다'는 아람어식 이름이며, '도르가'는 헬라식 이름인데, 그 뜻은 둘 다 똑같이 '영양(가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살았을 때에 도움을 받았던 과부들 중에는 이방인들도 끼어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방인들이 많이 사는 '욥바'라는 항구도시에서 많은 선한 일들과 구제를 실천했기 때문이다(행9:36). 또한 이 일로 인하여 욥바에 있는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은 자들은 여전히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며, 이들은 유대인들 중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특히 베드로가 죽은 시체와 단 둘이서 한 다락방에 있었다는 점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유대 율법상 자신의 몸이 더럽혀지는 것을 매우 싫어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보니 이것 저것 가리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는 누구에게든지 가서 복음을 전해주어야 했고, 누구든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복음을 전파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결법을 중요시하는 베드로에게 다비다 사건은 한층 더 진일보한 사건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4. 다비다의 소생 기적 사건 이후 베드로가 머물러 기거하던 곳은 어디였는가?

  그런데 다비다가 살아난 이후 베드로가 머문 집이 실로 놀랍기만 하다. 이전 같았으면 절대 가지 않을 집에 가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 집이 예수님을 믿고 있는 집이었고, 그 집에서 베드로를 초청하여 자기 집에 머물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이름이 '시몬'이기 때문이다(행9:43). 고로 그는 유대인이었을 것인데 특히 그는 헬라파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직업이 그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피혁공(무두장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 중에 율법에 엄격한 사람은 2가지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첫째는 이방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식사도 하지 않을 뿐더러 이방인의 집을 방문하지도 않는다. 둘째는 시체나 주검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시체어 짐승의 주검을 만지거나 접촉하게 되면 부정해지고 또한 부정해져저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결예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의 시체를 만지면 일주일 동안 부정하고(민19:11), 짐승의 주검을 만지는 자는 해질 때까지 부정하다고 율법이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레11:24~25). 그런데 짐승의 주검을 취급하는 피혁공인 시몬의 집에 그가 머물렀다는 것은 베드로의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아마 그것은 성도였던 시몬의 가정에서 베드로를 초청하여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5. 베드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그렇다. 이제 베드로는 이방인을 전도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살아계셨을 때에 그의 신앙에 따라 예수께서 그에게 '천국열쇠들'을 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6:19). 그래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 첫 번째 열쇠를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두 번째 열쇠를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이때까지만해도 베드로는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의 전도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 자체를 꺼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방인 전도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12사도의 대표로서 베드로가 이방인 선교의 테이프를 끊어주기를 바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점차적으로 이방인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그를 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먼저는 헬라파 유대인들을 심방하게 하셨고, 이어서는 죽은 시체에 가까이 가도록 허락하셨으며, 맨 나중에는 짐승의 주검을 취급하는 사람의 집에 머무르게도 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완전한 이방인인,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 그가 가서 복음을 전해주어야 할 때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처럼 한 사람의 고정관념이 깨어지기까지는 여러 단계들이 필요한 것이다. 주님은 그 일을 하나하나씩 진행하고 계셨다. 설령 베드로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왜냐하면 이방인에 대한 선교는 필수적인 선교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2022년 09월 16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24) 예루살렘 교회가 직면한 첫 번째 문제, 어떻게 극복했을까?(행6:1~7)_2022-07-19(화)

https://youtu.be/Fa-hWLKKTh4  [혹은 https://tv.naver.com/v/28025366 ]

 

1. 이 땅에 최초로 세워진 예루살렘교회, 과연 무슨 문제가 발생했는가?

  예루살렘교회는 이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다. 성령의 강림하심과 은사를 부어 주심으로 인해, 이를 보고 듣고 놀라서 찾아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베드로가 복음을 전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러한 예루살렘교회가 성장의 성장을 거듭한 끝에 이제는 2만 명 이상으로 구성된 견실한 교회가 되었다. 당시 예루살렘 실제 거주 인구가 10만 명이었다고 하니 그중의 약 1/5이 예수믿는 사람이 된 셈이다. 그런데 교회가 커지다보니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다. 그것은 구제 문제였다. 헬라파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에 비해서 매일의 구제에서 소홀히 여겨진 것이다(1절). 일종의 섭섭병이요 오늘날 우리들이 흔히들 말하는 것으로 '시험'이 든 것이다. 그러자 헬라파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을 원망하고 그들에게 불평을 쏟아 내었다. 그러나 실제는 이 직무를 감당하고 있는 사도들에게 불평을 쏟아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헬라파 유대인들이란 자기가 사는 지역이 원래는 이방 지역이어서 그곳에서 회당을 짓고 살다가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와서 절기를 지키던 자들이거나 혹은 그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이사와서 사는 자들로서 이들은 히브리어(아람어)를 잘 사용하지 못하고 헬라어를 주로 사용하는 다소 진보적인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이란 팔레스틴에서 대대로 태어나서 자란 정통 히브리인들로서 헬라어는 잘 모르고 히브리어(아람어)를 사용하고 있는 보수적인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2. 왜 헬라파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 혹은 사도들에게 불평을 하였는가?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사실 유대인들만으로 구성된 교회였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비롯된 신비한 일들로 인해 3천 명이 믿었다. 이때에 복음을 들은 자들은 예루살렘에 오순절을 지키려고 왔던 디아스포라(흩어진, 해외 거주자인) 유대인들과 그 근방에 있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40세나 된 자로서 나면서 걷지 못한 자를 낫게 한 놀라운 기적으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왔고 그들은 다시 복음을 전함으로, 무려 5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자신의 재산을 바친 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것을 필요에 따라 식품과 일상 생활용품으로 나눠주는 일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숫자가 적었을 때에는 12사도들이 그 일을 감당하기에 충분했지만,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교회의 첫 번째 문제는 작게는 구제의 문제로 보이지만, 실제로 크게 보면 사도들의 직무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2절을 직역해 보자. "그런데 열두 사도들이 제자들의 무리를 가까이 부른 후에,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뒤에 남겨둔(버려둔) 후에, 식탁들에게 [계속] 봉사하는 것이 우리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행6:2)"

 

3. 예루살렘교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시도했는가?

  그러자 사도들이 무리들을 모아 놓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남겨둔 채(버려둔 채), 식탁들에 봉사하는 일을 감당하는 것이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이 문제를 놓고 그들은 공동회의를 하게 된다. 오늘날로 말하면 '공동의회'를 연 것이다. 그리고는 사도들은 이제 원래적인 직무 곧 '기도'와 '말씀'의 봉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매일의 '구제'의 문제는 성령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한 사람을 일곱을 골라 그 직무을 수행하게 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다. 즉 처음으로 직무의 분리를 시도한 것이다. 이전까지 사도들은 봉사의 직무와 사도의 직무를 동시에 수행해 왔었다. 다시 말해 사도들이 1시간 구제해야 할 일은 여러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사도들은 본래적인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것은 2가지였다. 하나는, 기도의 직무(봉사)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전에 올라가 기도를 하거나 기도회를 인도하거나 각 집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드리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말씀의 직무(봉사)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구약에 기록된 메시야에 관한 말씀을 가르치거나, 밖에 나가서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병든 자를 치유하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지 못했다. 내부 문제에 매달리다 보니, 사도들이 원래 주님이 그들을 세우신 목적, 곧 밖으로 나가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병든 자를 치유하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사도들은 신속히 전체 회의를 열어서 2가지를 결정했다. 첫째는 사도들의 직무는 12명의 사도들이 감당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봉사의 직무는 충성된 일꾼 중에서 7명을 따로 안수하여 세워서 그들에게 맡기자고 결정한 것이다. 

 

4. 사도의 직무와 봉사의 직무를 나누는 기준과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그리하여 이제 두 가지 직무가 각각 분리되어 사역이 나눠진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의 직무와 안수집사의 직무로 나눠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직무를 나누는 기준과 근거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것이다. 즉 주님이 주신 사명에 따라 그 직무를 나눈 것이다. 사도들은 주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자들로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고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직무(기도와 말씀 사역)를 감당하도록 한 것이다(마28:19~20, 막16:15). 그리고 안수받은 평신도 지도자들은 구제와 같이 교회 내부의 문제 처리와 행정을 관리하는 일을 감당하게 한 것이다. 둘째는 그것이 은사와 달란트를 따라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역의 원칙은 주님의 부르심이며 그 다음으로는 그 사람의 은사와 달란트에 따른 것이다. 그래야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두 세력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히브리파 유대인 그룹과 헬라파 유대인 그룹 간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그래서 그동안은 히브리파 유대인의 대표자로서 12명의 사도들이 중심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헬라파 유대인의 대표자로서 7명의 안수받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세워짐으로 두 세력 간에 균형이 맞춰진 것이다. 

 

5. 사역의 분리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리하여 사역이 분리됨으로 인하여 과부하로 인한 피로감은 사라지게 되었고, 각기 맡은 사역을 충성되이 감당함으로, 구제의 불평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의 분리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놀라운 좋은 결과들을 낳게 된다(7절). 첫째는 사도들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 사역이 성장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도들이 본연의 직무를 잘 감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도를 더 많이 드릴 수 있게 되었고 기도회와 예배를 인도하는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그들은 성도들에게 구약의 율법 말씀을 가르치고, 나아가서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관심을 보인 자들에게 메시야를 전해 주게 된 것이다. 둘째는 제자들의 숫자가 증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벌써 예루살렘 인구의 1/5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더 믿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교에서 행하는 구제보다도 교회의 구제가 더 잘 조직화되었고 더 아름답게 잘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핍박자들이 변하여 예수님을 믿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제사장 그룹이 회개하여 교회의 무리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이는 핍박자들의 변화다. 그리고 동시에 직무의 분리로 인한 선행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은 비단 그때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다. 지금도 과부하가 걸린 주의 종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그들로 하여금 본래적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기도와 물질과 헌신으로 함께 사역을 돕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오직 주의 나라와 주의 영광을 위하여...

 

2022년 07월 19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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