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8(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새 이름'이 들려주는 놀라운 비밀(계3:1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vHXly-7plg [혹은 https://tv.naver.com/v/31818360 ]

 

1. 들어가며

  성경은 계시들의 기록이다. 그것은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그렇다면 계시는 어디에서 완성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모든 계시의 마지막이자 계시의 종합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하여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까지 가야 한다. 만약 요한계시록의 바로 앞에 수록된 유다서까지만 보았지만 계시를 다 보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누군지에 관하여 요한계시록만이 전해주는 부분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빌라데빌아 교회에서 주신 말씀을 살펴볼 것이다. 그중에서 예수께서 이기는 자에게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할 것이라는 말씀이 들려주는 놀라운 계시를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새 이름이 과연 무엇이며, 예수님이 누군지를 보다 더 정확히 알아가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요한계시록 3:12의 말씀은 누가 들려주신 말씀이며, 그 말씀은 무엇인인가?

  요한계시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계1:19). 그것이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있을 때에 먼저 본 것과 그리고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되어질 일로 구분할 수 있다. 이것들 중에서 '그가 본 것'은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는 인자같은 분이시다. 이것은 1장 9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이다. 그리고 '지금 있는 일'이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라는 것으로서, 요한계시록 2~3장에 기록된 말씀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차 될 일'이라는 요한이 환상과 계시의 말씀으로서, 요한계시록 4장부터 22장까지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3:12의 말씀은 누가 들려주고 있는 말씀인가? 그것은 자신을 '거룩하사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들려주고 있는 말씀이다(계3:7). 특히 계3:12의 말씀은 그분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결론적으로 주신 말씀으로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헬라어에서 바로 직역해 본단면 다음과 같다. 

계3:12  이기고 있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 안에 그를 기둥으로 [장차] 만들 것이다. 그러면 그가 결코 더이상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나의 하나님의 이름과 나의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부터(밖으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질적으로] 새[로운]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질적으로] 새[로운] 이름을 그이(그사람) 위에 [장차] 기록할 것이다.

 

3. 요한계시록의 3:12에서 1인칭 단수로서 자신을 '나'라고 소개하고 계시는 분은 대체 누구인가?

  그렇다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자신을 '거룩하사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라고 소개하고 계시는 그분은 대체 누구신가? 예수님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성령님이신가? 우리는 그분이 누군지를 요한계시록 1장에서 확인해 볼 수가 있다. 거기에 보면 그분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분은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이신데, 옷은 발에 끌리는 흰 겉옷을 입고 계셨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있었으며,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같고 눈 같았다. 그리고 그분의 눈은 불꽃같았으며, 그분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된 빛난 주석같았다. 또한 그분은 자신의 오른 손에 일곱 별들(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쥐고 계셨으며, 그분의 일비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렇다면 그분은 대체 자신을 무엇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하셨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빌라델비아에 교회에게 말씀하고 계신 이는 다른 분이 아니라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고 계시는 분이신 것이다. 

 

4. 자신을 가리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자신을 소개하신 분은 누구신가?

  우리는 성경에서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고 계시는 두 분을 만날 수가 있다. 한 분은 구약성경 이사야서에서 만날 수 있고 또 한 분은 요한계시록에서 만날 수가 있다. 먼저 이사야서 말씀을 보면,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소개하고 계시는 분은 홀로 한 분이신 여호와이시다. 그분은 나 외에는 결코 다른 신들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분이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자신을 무려 세 번씩이나 그렇게 소개하셨다(사41:4, 44:6, 48:12). 

사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그런데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말이다(계1:17, 2:8, 22:13). 

계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계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그런데 요한계시록 1:17과 2:8에서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계1:18에서 자신을 자신 이제 살아있는 자이며, 자신이 전에 죽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죽었다가 살아난 적이 있는 분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2:8에 나오는 그분은 누구인가? 그분도 역시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이기 때문에 그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13에 보면, 그분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이자,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라고 소개하신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분은 '나 예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계22:13).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자신을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5. 요한계시록에서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시고 있는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고 계신가?

  그렇다면,구약시대에는 분명히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하시면서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은 누구인가? 그분은 분명 '여호와'이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떻게 말해야 옳은가? 그것은 우선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상정해 볼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 아니신데, 자신이 가리켜 여호와라고 사기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이 곧 여호와이시다. 

  셋째,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자신을 예수라고 소개하신 것이다. 

  과연 이 셋 중에 어떤 것이 맞는가? 첫째는 우선 틀렸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요 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거짓말을 하실 리가 없다. 사탄마귀가 거짓의 아버지인 것이지 예수께서 거짓말장이실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가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맞은 말일 수도 있으나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나 예수님을 둘 다 하나님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예수님은 곧 여호와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와는 신성만 가지신 하나님이시고, 예수께서는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여호와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번째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사야서의 말씀이나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이렇나 정의에서 적용하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원래는 자신이 '처음이요 마지막'이셨던 한 분 하나님이셨는데, 그분이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6. 예수께서 '나의 새 이름'을 이기는 자들에게 기록하시겠다는 말씀이 들려주는 놀라운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서 주신 말씀 가운데 그분이 이기는 자들에게 자신의 새 이름을 기록하시겠다는 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은 3가지 영적인 비밀을 발견할 수가 있다. 

  첫째,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신 분은 과거에 옛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새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의 옛 이름을 무엇이고, 새 이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그분의 옛 이름은 여호와이시기 때문이고, 그분의 새 이름은 예수이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 분 하나님의 옛 이름은 '여호와'이셨던 것이고, 그분의 새 이름은 '예수'이신 것이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는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것이요, 신약시대에는 자신을 예수로 계시하신 것이라고 하겠다. 

  둘째,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옛 이름을 끝까지 사용하시지 않고 새 이름을 지으신 것인가? 그것은 당신의 이름이 새 이름으로 불려지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새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새 이름으로 불려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보통 옛 이름이 계속 사용되길 원하면서 새 이름을 짓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기보다는 예수라는 이름을 불러야 하는가? 그것은 예수라는 이름 속에는 이미 여호와라는 이름도 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에 구원자이 이름은 오늘날까지 '예수'라고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이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본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새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셨기 때문이다. 

  셋째,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오직 하나라고 하셨다(신6:4). 자신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하셨다(사44:6). 그리고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사도들이나 성도들 그리고 예수님도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곧 한 분 하나님께서 이제는 예수님으로 오셨다는 것을 뜻한다. 즉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언급한 '나의 새 이름'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분이 예수님으로 오셨다가 당신의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7. 나오며

  한 분이신 주님께서 오실 때가 다 되었는데, 아직까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분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사실 지금으로부터 20~30년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기가 어려웠다. 그때만 해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요20:28)이라고 하니, 하나님은 마치 두 분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였다. 하나님 아버지도 계시고 아들 하나님도 계시니 하나님은 두 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성령님께서도 하나님이라고 나온다. 그러니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라고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삼위일체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정의를 듣고 유대인들은 과연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하나님에게 아들 같은 존재는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두 분 혹은 세 분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개신교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말을 한고 있지만, 실제로는 두 분 내지는 세 분으로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세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한 분이시다. 한 분 하나님께서 다중으로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는 달리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 존재하실 수 있고, 사역하실 수가 있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여 천국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삼위로 역사하셨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 분 하나님께서 다중으로 사역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동시에 존재하실 수가 있었고, 동시에 일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홀로 한 분이신 그분께서 아들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다(계22:1,3). 왜냐하면 그분의 이름만이 영원히 기억할 새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18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한 분 하나님의 새 이름과 성령의 이름은 무엇인가?(계3:12)

https://youtu.be/nKIfwpxNmGQ

 

1.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에서는 시대마다 구원자의 이름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성부시대에는 구원자의 이름이 여호와이며, 성자시대에는 예수께서 구원자의 이름이며, 성령시대에는 "예수의 새이름"인 "성령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 이름이 바로 "안상홍"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안상홍이 성령의 이름이요, 예수님의 새 이름이라는 것이 계3:12에 나와있다고 말합니다. 그게 진짜일까요?

 

2.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 3:12에서는 안상홍이 예수님의 새 이름이라고 하는 그 어떠한 증거도 없습니다. 그들이 갖다 붙힌 것입니다. 먼저, 계3:12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기[고 있]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안]기둥이 되게 하리니,그가 결코 다시(더이상)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리라(직설법미래능동태).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안에서부터 밖으로) 내 하나님께로부터(그 밖으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그사람) 위에 기록하리라(직설법미래능동태)(계3:12)" 이 말씀에 "나의 새 이름"으로 나와있는 그 새 이름이 "안상홍"이어야 한다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기들의 주장대로 "예수님의 새 이름"이 "안상홍"이며, 그것은 "성령의 이름"이라고 억지로 주장하는 것 뿐입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새 이름이 성령의 이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도 억지입니다. 그렇다면 계3:12에 나오는 "나의 새 이름"은 무엇일까요?  곧 발에 끌리는 흰 옷을 입으신 채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며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서 편지를 써보내라고 하셨던 그분의 새 이름은 무엇일까요?

 

3. 요한계시록에서 발에 끌리는 흰 옷을 입으신 채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며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서 편지를 써보내라고 명령하시고 있는 분은 죽었다고 부활하셨던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계1:11~20). 그런데 그분은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계1:17)"고 소개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보면, "나는 처음으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보좌에 앉아계시는 분"(계21:5~6)이시며, 그분은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라고도 소개하셨습니다(계22:13). 그런데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 분은 "나 예수(계22:16)이시며, 그분이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편지를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그분은 자신을 "나는 다윗의 뿌리와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하셨으니 그분은 틀림없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사야서를 읽어보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사41:4,44:6,48:12). 그러므로 "나의 새 이름"을 이기고 있는 사람의 [이마] 위에 기록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셨던 한 분 하나님과 동일하며, 신약시대에는 아들로 오시어 자신의 이름을 "예수"라고 계시하셨던 분을 가리킵니다. 고로 "나의 새 이름"이란 한 분 하나님의 새 이름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출3:14~15)이시며, 신약시대에 들어와 여호와로 불리셨던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아들)로 이 세상에 들어오셨으니, 그분의 이름이 바로 "예수"인 것입니다(딤전3:16, 2:5, 1:15). 고로, 한 분 하나님의 새 이름이 곧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새 이름을 이기는 그 사람[의 이마] 위에 기록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장차 이긴 자의 이마 위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인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을 이긴 자의 이마 위에 인친다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입니까?

 

4. 이기[고 있]는 자의 이마 위에 장차 한 분 하나님의 새 이름인 예수라는 이름을 기록한다(인친다)는 뜻은 그 사람이 예수님의 영원한 소유가 된다는 뜻이며, 예수님의 허락없이는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가 이제 영원히 천국의 백성이 될 것이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며,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그것은 계3:12에 나와있는 다른 말씀과도 동일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가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될 것이다"는 말은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 진짜 기둥(말뚝)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의 일부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천국백성으로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새 예루살렘 성)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도 다 동일한 예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 사람 위에 기록한다는 것은 그가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성"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성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이러한 일들이 있게 되는 것일까요?

 

5. 한 분 하나님의 이름(구약시대에는 "여호와")과 한 분 하나님의 새 이름(신약시대에 "예수") 그리고 하나님의 성의 이름(새 예루살렘)은 언제 성도들의 이마 위에 기록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신 이후부터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더라도 죽을 때에 하나님의 시민권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으니(계3:5),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는 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입니다(물론 예수님의 재림 전에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그때부터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장~3장의 일곱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후에 주어질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계2:7, 11, 17, 26~28, 3:5, 12, 21). 그러므로 예수님의 새 이름 혹은 성령의 이름이 안상홍이며, 안상홍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입니다. 자신이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때에 주어지는 것을 지금 이 시간에 주장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약 성령시대에 주신다고 주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혹 안상홍이라고 치더라도, 그것이 말도 안 되는 것은 성령강림이후부터 안상홍이 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A.D.33년~1918.1.13)까지 아무도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구약시대에는 "여호와")(욜2:32) 혹은 하나님의 새 이름인 예수님의 이름으로(행4:12)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이외에 다른 구원자의 이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로 오신 우리 주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의 이름이 없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는 요14장~16장에서 또 다른 자기자신으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요16:16, 15:26), 보혜사 성령님은 모든 믿는 자들 속에 들어가서 내주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요14:17). 그런데 어떻게 되어서 믿는 자들 속에 안상홍이가 들어가 있다는 하는 것인지, 지금은 참으로 분별력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2018년 12월 12일(수)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