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43) 창세기에 나타난 신부의 두 번째 예표 사라(창18:10~14)_2021-10-28(목)

https://youtu.be/pKZ8ZG_7cAU  [혹은  https://tv.naver.com/v/23226903  ]

 

1. 범죄한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내용은 무엇인가?

  하와는 오직 자기 남편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에덴동산의 침입자인 뱀의 말을 듣고 말았다. 결국 하나님의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고 자기의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게 하였다. 결국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이뤄지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그들에게 집행하기 전에 살 길을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장차 여자의 후손(씨)을 통하여 악한 마귀의 종이 되어 버린 인류를 놓아주시겠다는 것이었다(창3:1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와에게는 그 이후 엄청난 내면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끝없는 욕망이 솟아오르게 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어로 '데슈카'라고 말씀해 주셨다. 한글로 번역하면, '열망, 갈망, 사모'라는 뜻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다른 한글 번역 성경들에서는 이 단어를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창3:16)." 그런데 이 단어는 원함이나 바램 정도가 아니다. 어떤 욕구의 분출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창세기 3:16에 나오는 '데슈카'라는 단어는 성경에 딱 3번 나온다. 창세기 3:16에 한 번, 그리고 창세기 4:7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가서 7:10에 한 번 더 나온다. 그런데 창세기에 나온 '데슈카'는 하와가 범죄한 이후 인간의 내면 속에 파고 들어간 강렬한 욕구로서 그것을 이기내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이유가 그 열망(욕망)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가 너를 원하나('데슈카') 너를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

 

2. 선악과를 따먹게 된 후 하와 속에 들어가 버린 열망(욕망, 욕구)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선악과를 따먹게 됨으로 인하여 하와 속에 들어간 욕망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출되었는가? 그것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영하듯 창세기 3:16에 나오는 "너는 남편을 원하고"라는 부분을 다른 성경은 이렇게 번역해 놓았다. "[너는]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공동번역),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표준새번역). 그렇다. 사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인간은 그때부터 사탄의 본성이 자기 안에 주입된 것이다. 하나님이 없이 오히려 자기가 하나님처럼 군림해 보려는 욕망이 내면에 가득 들어찬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 후 인간은 철저히 고민하며 순종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절체절명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와는 실패한 것 같다. 하와가 아담을 주인처럼 섬겼다는 흔적을 성경에서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첫째 아들 가인을 낳은 후 실망했던 그녀의 마음은 고스란히 둘째 아들의 이름 속에 표현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와의 둘째 아들의 이름은 '아벨'이라는 단어로서, '허무, 공허'라는 뜻이다. 그녀는 자기의 태를 통해 여자의 후손(씨)이 태어나리라고 기대를 했는데, 철저히 죄된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가인을 낳은 후 '허무하다'라고 탄식했기 때문이다. 

 

3. 사라는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 중에서 왜 중요한 인물인가?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에서 아브라함의 처였던 '사라'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라는 하와의 실패의 자리를 여자로서 처음으로 승리의 자리로 바꾸어 놓은 여인으로 쓰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창세기를 읽는 것만으로는 그녀가 어떤 큰 믿음의 소유자였고 어떤 위대한 삶을 살았는지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창세기는 예수님의 혈통적인 조상들 곧 남성 중심으로 역사가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요, 또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짧게 기술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시자 그녀의 '피씩' 웃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와의 제대로 된 진면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감동으로 쓴 다른 성경책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중에 3권의 책은 사라의 진면목을 알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필수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사야서이며, 히브리서이고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의 말씀이다. 

 

4. 창세기가 아닌 다른 성경을 통해서 보았을 때 사라는 진짜로 어떤 존재였는가?

  창세기의 기록만을 보면 그녀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또한 생리가 이미 끊긴 상태였으므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였다. 그런데 이것과 더불어 다른 성경책에 기록된 그녀에 관한 말씀을 보면, 그녀는 믿음이 없었던 여인이 아니라 아주 믿음이 신실한 여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첫째는 이사야서의 말씀에 그렇게 나온다. 이사야서에서는 사라를 어떤 여인으로 소개하고 있을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을 하면서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나 여호와가 시온을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셨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51:2-3)." 이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조상은 한 사람 '아브라함 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생산했던 또 한 명의 사람이 같이 있는데 그녀가 바로 '사라' 였던 것이다(사51:2). 그리고 둘째로, 그러한 그녀의 믿음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임신할 수 없었으나, 메말랐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히11:11-12)." 그런데 그녀는 바랄 수 없는 중에서도 바라고 믿었던 믿음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5. 베드로 사도에 의하면 사라는 어떤 측면에서 이기는 신부의 예표였는가?

  '사라'에 대한 기록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말씀은 사도 베드로의 언급이다. 그 말씀에 따르면 그녀는 이사야서와 히브리서에 나온 그러한 신실한 믿음 말고도 그녀가 신부의 예표가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중요한 이유를 언급해 주고 있다. 우선 그 말씀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벧전3:1-6)." 그렇다. 사도 베드로는 하와가 비록 남편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뱀의 말을 들어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야 했지만, 이제 사라에 대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그녀는 비록 불임의 상태였지만 항상 자기의 남편을 주(주인, 주권자)로 불렀으며,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자기를 아무리 높인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 하와 이후 인간은 남편을 이겨 보려는 하와의 열망, 혼자서 최고의 권위자가 되고 싶어하는 하와의 열망이 아주 컸다. 하지만 그것을 내려놓고 오직 죄인들을 구원하러 이땅에 오신 예수님만을 진정 나의 주인이자 구주로 섬긴다면,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당신의 신부로 맞이하여 주실 것이다. 특별히 창세기 18:12의 말씀에 의하면, 그녀의 자궁은 이미 메말라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라가 속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시들었고 내 주인도 늙었는데 내게 무슨 즐거움(원문: 에덴)이 있겠습니까?"(창18:12)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광야의 메마른 그녀의 자궁을 다시 에덴 같고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다(사51:3). 그리하여 사라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21년 10월 28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41) 창세기에 나타난 신부의 첫 번째 예표 하와(창2:15~18)_2021-10-26(화)

https://youtu.be/DMEAlCNWpkE  [혹은 https://tv.naver.com/v/23177241  ]

 

1. 신구약성경 가운데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첫 번째 예표는 누구인가?

  신구약성경 가운데 신부에 대한 교과서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아가서'일 것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가서 강해 30강'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아가서에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표로서 술람미 여인이 등장하는데, 아가서에는 누가 과연 신부가 될 수 있는지, 또한 신부가 어떻게 할 때 성숙해 가는지 그 과정이 잘 나와 있다. 그렇다면 신구약성경 가운데 맨 처음에 등장하는 신부의 예표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창세기에 2장에 나오는 '하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첫 사람 아담의 신부이자 아내로서,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의 신부이자 아내의 예표이기 때문이다(엡5:22~24). 

 

2. 하와는 어디에서 탄생했는가?

  아가서를 읽어 보면, 그리스도의 신부를 예표하는 술람미 여인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깨어났다고 말씀하고 있다(아8:5). 그리고 그녀는 사과나무 그늘에서 늘 쉬었다고 말하고 있다(아2:3). 그런데 이미 아가서 강해(30강)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아가서에 나오는 '사과나무'는 생명나무를 뜻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창세기 2장을 읽어 보면, 하와가 어디에서 탄생했는지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곳은 바로 '에덴동산'이다(창3:22). 그녀는 에덴동산에서 창조된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창조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구의 어딘가에서 빚으신 후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만드셨다고 나오기 때문이다(창2:7). 즉 첫 사람 아담은 지구에 있는 흙의 티끌로서 그의 육체가 만들어진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 곧 영을 그 사람 안에 집어넣음으로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동방의 에덴에 하나의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만드신 아담을 그곳에 두신 것이다(창2:8). 그리고 이어서 아담이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고 있었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그를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의 살과 뼈를 취하여 여자를 건축하신 것이다(창3:22). 여기서 '건축하셨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바나[흐]'라는 단어인데, 이는 '짓다. 세우다. 건축하다(build)'라는 뜻을 지녔다. 즉 이 단어는 '가문을 세운다'는 뜻으로, 혹은 '가옥을 건축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이 단어에 따르면 하나님은 건축자이시며, 설계도에 따라 하와를 건축하신 것이다. 그러니 하와는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가장 멋지고 아름답게 그녀를 건축하신 것이다. 

 

3. 인간의 고향은 대체 어디인가? 이 세상인가 하늘인가?

  아담과 하와의 창조의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 인간은 비록 육체는 이 지구에 있는 흙의 티끌로서 만들어졌지만 그의 영은 천국에 있는 에덴동산 곧 낙원에서 창조되어 자란 후에 어미의 태중에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영의 세계를 들어가 본 자라야 아는 일인데, 사실 사람의 영혼은 이 땅에서 창조되지 않는다. 사람의 영혼은 하늘의 낙원에서 창조되어 자라다가 대체로 4~6살 정도 될 때에 이 땅에 보내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엄마의 자궁에 아기의 몸이 자라고 있을 때다. 그리고 보통 아이가 태중에서 2개월 정도 자라고 있을 때에 영이 그 아기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않을 것 같으면 유산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멸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의 고향은 비록 이 지구라고 하겠지만, 사람의 영혼의 고향은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에 있는 에덴동산 곧 낙원이 우리의 본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찾는 자들이라고 언급하고 있다(히11:13~16).  

 

4. 하와는 어떤 목적으로 창조되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하와를 창조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창조했던 첫 사람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히브리어로는 '에제르 네게드') 즉 '도움의 짝'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창2:18). 그러니까 하와로 예표된 인류는 원래 자기 자신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첫 사람으로 예표된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여기서 '돕는'이라는 단어는 '도움, 원조, 돕는 자'라는 뜻이며, '배필'이라는 말은 '마주하는 자, 상대자, 짝'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창조된 이유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니 그를 돕고 그를 위하여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장차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자들인 인간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돕는 것이다. 그것은 첫 사람 아담에게 주어진 명령에 나와 있으니, 첫 사람이 아담이 해야 할 일은 딱 2가지였다(창2;15). 첫째는, 에덴동산을 경작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경작하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바드'로서, '섬기다. 일하다. 봉사하다'가 1차적인 뜻이지만 그 외에 2차적인 의미로서 '예배하다. 순종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사람은 그리스도가 하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 창조된 좀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를 높이고 찬양하고 예배하기 위하여 창조된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아가서를 보면, 술람미 여인이 남편을 잃어버렸다가 찾은 다음부터는 그녀도 남편이 하는 일 곧 양 떼를 치는 일과 또 다른 백합화를 산출하는 일에 동역했던 것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리고 첫 사람이 해야 할 일로서 둘째, 에덴동산을 지키는 일이었다(창2:15). 에덴동산을 다른 짐승들이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지키는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가서에는 동산을 '잠근 동산'이라고 한다(아4:12). 울타리를 지킴으로 그 동산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도록 해야 했던 것이다. 그 동산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단 한 사람 솔로몬뿐이어야 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담 혼자 있을 때에는 에덴동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하와가 창조되었다. 그런데 결국 그녀는 남편의 일을 도와주지 못하고 말았다. 그 동산 안에 뱀이 침범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 비극의 시작이었다.

 

5. 왜 하와는 에덴동산을 지키지 못했는가?

  하와가 에덴동산을 지키지 못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가 탄생하기 전까지 에덴동산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에덴동산을 잘 경작하고 있었으며, 또한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에덴동산을 잘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와는 남편을 섬기는 일에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뱀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덴동산을 지키는 일에도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 뱀이 들어오도록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뱀의 말을 받아들였고 그래서 선악과를 따서 먹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적어도 그녀는 뱀이 꾀일 때에 남편에게 물어보았어야 했었던 것이다. 그랬더라면 인류의 비극 곧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에덴동산의 풍요로움을 계속해서 누리고 사는 인생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순종이 얼마나 비중있는 일인지를 실감하지 아니할 수 없게 만든다. 

 

2021년 10월 26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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