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중의 복은 대체 무엇인가? 이 땅에서 건강하게 살고 재물을 누리며 살며 자녀가 잘되는 것 역시 복은 복이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받아야 할 복은 산상수훈에 나온다. 그것은 바로 '천국 복'이다. 이 복은 이 땅에서 받을 복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 저 천국에서 받는 복이다. 그런데 이 복만큼 중요한 복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그럼, 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아니 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첫 단추를 끼워야 하는가? 오늘 이 메시지는 천국복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하는 자에게 그리고 이 천국복을 얻기를 사모하는 자에게 첫 출발 지점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주는 말씀이다. 이 메시지를 제대로 듣는 자에게는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2022-05-29(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지금 이 시대에 진정 복있는 자는 누구인가?(마13:9~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42y7hafnNc8  [혹은 https://tv.naver.com/v/27081897 ]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는 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성경은 그것에 대해 크게 2가지 말하고 있다. 그것의 하나는 구약적인 복이요 또 하나는 신약적인 복이다. 구약적인 복은 육신이 받는 복이요, 이 세상에서 받을 복이지만, 신약적인 복은 영혼이 받는 복이요, 저 세상에서 받을 복이다. 그런데 구약적인 복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는 성경 구절을 고르라면 그것은 시편1:1~2의 말씀일 것이다. 그리고 신약적인 복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는 성경 구절을 고르라면 그것은 산상수훈의 말씀으로서, 마태복음 5~7장의 말씀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이것들 중에서 과연 어떤 복을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둘 다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적인 복은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복이 되기 때문에 꼭 받아야 하는 것이며, 신약적인 복은 우리가 받을 궁극적인 복이기 때문에 반드시 받아야 할 복은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적인 복의 핵심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이 곧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마5:3,10).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거기에서 상얻는 자가 되는 것이며(마5:11~12), 그곳에서 더 큰 지위를 얻는 자가 되는 것이다(마5:19). 그렇다면 이러한 천국 복을 얻기 위한 첫 출발점은 무엇인가? 무엇부터 시작해야 우리도 이러한 복을 받을 수가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천국복을 얻기 위한 출발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천국 복을 얻기 위한 바른 선택을 잘 하셔서 천국 복의 주인공이 꼭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왜 예수께서는 천국 말씀을 하실 때에는 비유로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 천국이 어떤 곳이며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설명하실 때에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때에 예수께서는 직설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대부분 다 비유로 말씀하셨다. 즉 천국을 말씀하실 때에는 "마치 천국은 ~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몇몇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마13:31)",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같으니"(마13:45~46),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22:2),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하리니(마25:1)"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천국의 실상과 비교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천국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어떠함을 상상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큰 복을 누리고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직까지 천국복음을 듣지 못했거나 천국의 실제를 경험하지 못한 자라면, 그의 참된 인생은 아직 출발도 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은 '천국 말씀'이요, 들어야 할 복음은 '천국복음'이라는 것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것을 알고 깨달아 실천하는 자가 복있는 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3:16).

 

3. 보고 듣는 것은 왜 중요한가?

  모든 기독교인들은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가서 말씀을 듣는다. 왜 우리 성도들은 오늘도 교회에 나가서 말씀을 듣는가? 그것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말미암기 때문이다(롬10:17).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매주일 교회에 나가서 어떤 말씀을 듣는가 하는 것도 역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매주일에 어떤 말씀을 듣느냐에 따라 우리가 그러한 사람으로 조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셨는가? 그것은 "너희들은 이 천국에 관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당시 모든 군중들에게도 천국 말씀이 들려졌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말씀을 듣고 깨닫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 백성이 되고 천국에서 상얻는 자가 되며, 천국에서 144,000석의 보좌에 앉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천국 말씀을 듣고 그것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천국 말씀 듣기를 사모해야 하며, 천국의 실체에 대해 경험하기를 힘써야 한다. 사실 여기서 '본다'는 말의 의미는 물리적으로 자신이 눈으로 무엇인가를 본다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실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천국의 비밀들을 바로 깨닫고 이해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인 것이다. 

 

4. 우리가 죽기 전에 귀로 들어야 하고 눈으로 보아야 할 복음은 무엇인가?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셨던 것들은 사실 '말씀'만은 아니었다. 보여 준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천국이 어떤 곳이며, 어떤 자들이 들어가게 되는지를 들려주셨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내내 하신 일은 천국 말씀 곧 천국복음을 전하는 일이셨기 때문이다(막4:23, 9:35). 그리고 주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셨던 천국복음이 비로소 세상의 땅끝까지 증거될 때에 세상의 끝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14). 주의 오심은 누가 오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천국복음이 전파될 때에 비로소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주님께서는 천국이 실제한다는 것을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심으로 보여 주셨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1/3은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사역과 병든 자를 고치시는 치유 사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축사 사역과 치유 사역의 배후에는 우리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배후 세력들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방해꾼들인데, 이들은 바로 사탄과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귀신이 쫓겨나는 것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천국의 실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그리고 병든 자를 고쳐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천국이 실제하고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5. 오늘날 내가 천국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내가 천국 말씀 곧 천국복음을 듣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지금 전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소수의 사람들만 이 천국복음을 듣고 있다. 보통 교회에서는 천국복음이나 귀신 축사 같은 것을 잘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들어야 할 복음은 천국복음이요 보아야 할 것은 천국의 실제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주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천국복음이 다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오늘날 내가 이 천국복음을 듣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첫째, 그것은 내가 이제 천국복음을 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마13:17). 그래서 이제는 나도 천국복음을 들어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도 당시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많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간절히 보고자 했지만 보지를 못했으며, 너희가 듣고 있는 것을 간절히 듣고자 했지만 듣지를 못했느니라(마13:17)" 그렇다. 그때는 천국복음을 듣기를 사모했던 자들이라도 그것을 듣지 못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의 성도들은 천국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확 달라졌다. 이미 예수께서 오셔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쫓아내어 무저갱에 쳐넣었기 때문에 그의 귀신들을 내쫓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성도들을 보라. 그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귀신을 쫓아내었는가? 없었다.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국의 실제에 대해서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들으려고만 하면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동탄명성교회 같은 이렇게 작은 교회도 이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는 세례 요한으로 끝났으며, 그 이후부터는 천국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눅16:16).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이 천국복음을 듣고 있다는 것은 이 천국복음을 듣고 나도 천국에 들어오라고 하시는 사인인 것이다. 사실  왜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도 저주 가운데서 있는지를 이 천국복음을 들어보지 않고는 잘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회개와 천국복음은 이 모든 비밀들을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천국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귀신을 쫓아내며,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이미 도래했기 때문이다.

  둘째, 그것은 "네가 지금 이 천국복음을 듣고 있다면 나를 위한 천국 복이 예비되어 있는 상태다"는 것을 의미한다(마13:11). 주님은 아무에게나 이 천국복음이 들려지게 하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도 당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제자들)에게는 이미 주어진 채 있지만, 그들(무리들,군중들)에게는 주어진 채 있지 않다"(마13:11). 그렇다. 천국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천국 말씀이 모두 믿어지거나 또한 천국이 사모되는 것은 아니다. "천국이 어떠하고 귀신이 어떠하며, 어떻게 회개해야 하고 또 천국에서의 신분이 어떠하다"고 들려주어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 말씀을 귀기울여 듣지 아니한다. 아직 그 말씀을 들을 상태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천국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은 곧 나를 위한 말씀이요, 나를 천국에 들어오라고 하는 음성으로 들린다면 그는 이미 천국에서 받을 상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지금 그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천국복음이 들려지거들랑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런 자들에게 결국 천국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복을 더 사모하고 그것을 얻도록 더 준비하라는 것을 의미한다(마13:23). 사실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천국 말씀을 들을 때에 그것을 어떻게 듣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천국 입성과 천국에서 받을 상이 결정된다. 그것을 말씀하신 것이 바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인 것이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씨뿌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그 비유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씨 뿌리는 자는 인자이신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셨다(마13:37). 그럼 그때 예수께서 뿌린 씨앗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그냥 단순한 말씀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천국 말씀'이었기 때문이다(마13:19). 그 말씀이 바로 천국의 아들들에게 심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들려주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네 종류의 밭은 각각 천국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앞의 세 종류의 밭들 곧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의 밭은 결국에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이 천국 창고에 들어가는 결실을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이는 오직 좋은 땅 곧 옥토밭을 가진 자 뿐이다. 천국 말씀을 듣는 순간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단단히 붙잡아 인내함으로 결실하는 자가 좋은 땅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눅8:15).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은 이때 주님께서 들려주신 결실의 양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100배를, 어떤 이는 60배를, 어떤 이는 30배를 각각 따로따로 수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천국 말씀을 듣고 우리가 어떻게 실천했느냐에 따라 천국에서 누릴 우리의 상급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천국에서 받을 우리의 신분의 크기가 소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천국복음을 듣게 된 자들은 정말 기뻐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기대보다 훨씬 더 잘 행함으로 비록 한 달란트를 받았어도 다섯 달란트를 남길 자도 있을 것이다. 아니 100배를 남길 자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천국복음을 듣고 그 후로 어떻게 살았느냐가 결정해 줄 것이다. 

 

6. 내가 하늘에 준비된 천국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미 하늘에 준비된 채 있는 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천국 복을 사모하면서 살면 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우리가 천국 복을 얻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천국은 결코 사모함만으로 가는 곳이 아니며, 천국에서 받을 복도 역시 사모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천국 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를 주의하기를 바란다.

  첫째, 많은 무리(군중)가 되려 하지 말고 소수의 제자가 되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마13:10~11). 당시 바닷가에 앉아 있는 무리들도 역시 제자들처럼 다 똑같이 천국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날 바닷가에 앉게 된 목적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예수께서 일으키는 기적을 보고 자기도 고침을 받아 보려고 거기에 왔을 것이다. 아니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통해 자신도 무엇인가를 얻어보려고 거기에 왔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이 진정 주려고 하신 것과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달랐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시려는 것은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군중들, 무리들)에게는 아니 되었느니라"(마13:11). 그렇다. 그냥 천국 말씀을 들으면서 병이나 한 번 고쳐 보려고, 먹을 것이나 한 번 얻어 보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주님이 진정 주시려고 하는 바로 그것을 우리도 사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천국 말씀이 어렵다고 해서 그 말씀 듣기를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다(마13:14~15).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천국 복을 사모하지 않았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가르침과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천국복음에 대해 말하면 대부분은 채널을 돌려버린다. 귀신 이야기를 하면 싫어한다. 그리고 천국은 평등한 나라가 아니라 차등 상급과 차등 계급이 있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면서 이단 삼단이라고 말한다. 아니다. 당시에도 그들의 반응들 중에도 거역적인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천국 말씀을 환영하지 않으며, 스스로 천국 말씀을 배척해 버렸던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 말씀이 좀 어렵다고 할지라도, 천국 말씀을 이해하기가 좀 쉽지 않다고 할지라도, 천국 말씀 듣기를 거절해서는 아니 된다. 그때에는 이렇게 하면 된다. 자기의 귀에 들려진 만큼만 순종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 시점이 되면 점점 더 그 말씀이 많이 들려지고 점점 더 믿음이 생겨날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는 더 받아서 더 풍성하게 될 것이지만 가지고 있지 않는 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조차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3:12).

  셋째, 영광스러운 천국을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과 댓가라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마13:18~22). 천국은 가만히 사모하고 있으면 주어지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리고 우리가 그 왕국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우리 몸속에도 있으며, 우리 밖에서도 우리를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바로 마귀와 그의 귀신들이다(마13:19, 막4:15, 눅8:12).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천국 복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과 싸워야 하고 그들이 주는 유혹도 물리쳐야 한다. 그들이 주려고 하는 것을 덥석 물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탄 마귀의 세력들은 어떻게 방해 공작을 펴는가? 그것은 3가지다. 하나는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라면, 그에게서 즉시 천국 말씀을 빼앗아 가 버리는 것이다. 천국 말씀을 듣지 못하게 아예 귀를 닫아 버리게 하는 것이다(마13:19). 교회에 나와도 졸게 만들어 그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라면, 환난이나 박해를 그에게 일으켜 천국 복을 사모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마13:20~21). 예수 믿으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 무슨 회개를 또 해야 하느냐면서 예수믿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를 더 핍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다 끝내셨는데, 왜 조상의 죄까지 회개해야 하느냐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이단 삼단이라고 박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는 천국 말씀이 좋다는 것 정도만 아는 자들이라면, 그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염려와 근심거리를 더 많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것이 더 좋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즐기며 노는 것에 푹 빠지게 하는 것이다(마13:22~23). 그래서 결국 천국 복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고, 천국 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니다. 세상이 주는 것이라도 천국 복을 받기에 방해가 된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주는 명예와 영광, 돈에 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일에 너무 치어서 근심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회개하여 귀신을 내 속에서 제거하고 물리쳐야 한다. 그런데 회개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인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똑같은 죄를 반복해서 회개하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그리고 졸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다 이겨내야 한다. 이 복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의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를 하면서 이 일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7. 나오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귀있는 자가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천국을 주시려고 준비해 둔 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도처에 있는 것이다. 이들은 천국복음을 한 번 들으면 금방 깨달아 버린다. 금방 깨우침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아버린다. 이것이 내가 지금 힘써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버리는 것이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런 자는 이미 하나님께서 천국 복을 주시려고 예비한 자들이다. 그리고 지금이 그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니 이러한 자들은 이때부터 어떠한 희생과 댓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 달려가게 된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7가지 천국 비유 가운데, 적어도 2가지 비유는 엄청난 희생과 댓가를 치러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비유이다. 그것은 바로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요(마13:44),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다(마13:45~46). 이 사람들은 천국을 발견했을 때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버린다. 천국이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도 우리의 삶에도 천국이 희생과 댓가 없이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어찌 천국이 사모함만으로 갈 수 있겠는가? 지금은 주님이 오시기 직전의 상황이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인들이 여기저기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 천국 복을 사모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뒤로 미루지 말라.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얻는 자가 진정 이 시대에 가장 복 있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29일(주일)

정병진목사

 

 

 

사실 한 번 살아가는 인생이다. 하지만 사람은 육신을 가진 동물적인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진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먹고 입고 마실 것에만 온통 우리의 인생을 집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추구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믿고 구원 안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가장 보람되고 가치있는 인생을 사는 것일까? 그것은 이 세상의 복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하늘의 복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육신의 복을 받아야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이 아니냐면서 먼저 이 땅의 복을 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뒤바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많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 적이 없고 넉넉한 것을 가지고 일안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수의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 똘똘뭉친 그들을 사용하셨기 때문이다(마6:33). 2018년을 맞이하여 과연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오늘은 그 답을 찾아보자.

 

1. 들어가며

  사람은 한 번 태어났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사람은 아담의 범죄한 이후에 육체적인 죽음에서는 면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동물처럼 살다간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의미있고 가치있는 인생을 살다간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또 던지고 던져야 한다. 오늘 예배는 일년중에서 맨 마지막예배를 드리는 고귀한 시간이다. 송구영신예배로 드리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올 해도 부끄러움이 없는 살아왔을까? 사람은 육체를 지녔기 때문에 언젠가는 육체는 흙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육체가 흙이 되기 전까지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하나님께서 육체를 있을 때만 기회를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체의 시간을 선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말 고귀한 일에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어디에 투자해야 하며, 어디에다가 가치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가? 다시 말해 우리가 받아야 할 복은 대체 어떤 복이어야 하는가?

 

2. 성경에 말하는 2가지의 복

  성경에서 복은 딱 2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육체적인 복이자 이 땅에서 받는 복이고, 또 하나는 영적인 복이자 하늘에서 받을 복이다. 구약에서 복은 궁극적으로는 하늘의 복을 향하고 있지만 그 샘플로서 육체적인 복과 이 땅의 복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만약 구약성경을 잘못 보게 되면 육체가 받는 복을 진짜 복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영적인 복이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 이 땅의 복을 그리고 육체가 받을 복을 샘플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약의 복은 처음부터가 다르다. 신약의 복은 육체가 받을 복을 언급하지 않는다. 육체가 받을 복이 진정한 복이라고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이다. 신약의 복은 어디까지나 오직 한 가지 하늘에서 자신의 영혼이 받을 복이라고 언급한다. 신약의 복은 하늘에서 내 영혼이 받을 복이기에 또한 영원한 복이기도 하다. 영원무궁토록 받는 복이 바로 하늘의 복인 것이다.

 

3.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사도바울이 말했던 복이자 승천하신 예수께서 언급하신 복은 무엇이었는가?

  그럼 예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복을 무엇이라고 언급하셨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천국을 차지하는 복이라고 하셨다(마5:3). 그리고 그 복은 이 땅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받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마5:12). 다시말해,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참된 복이라 말씀하셨으며(마5:20), 그곳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는 자가 더 큰 복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마5:19).

  그런데 이러한 하늘의 영적인 복을 예수님만 언급한 것은 아니다. 사도바울도 똑같이 그것을 언급했다. 그가 기록한 엡1장을 보자. 거기에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받을 복이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고 말했다(엡1:3). 그러면 에베소서에서 하늘의 영적인 복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엡1:5)과,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것(엡1:7)과, 하늘의 상속자가 되어서(엡3:6), 하늘의 기업을 분배받는 것(엡1:11)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렇다. 사도바울도 예수님처럼 우리가 받을 복에 대해, 이 땅의 복이나 물질에 속한 복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적이며 하늘에 속한 복을 말했다.

  그렇다면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요한에게 어떤 복을 말씀해 주셨을까? 그것은 예수께서 육체로 계실 때에 말씀하신 것과 사도바울이 말했던 복이나 같다. 결국 그 복은 천국에 들어가는 복이며(계21:24~27), 거기에서 왕노릇하는 복이며(계22:5), 생명나무를 다스리는 복이자(계22:14),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복(계22:14)이다. 또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복(계19:9)이다. 그러나 이것들도 한결같이 영혼이 받는 복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받아야 할 복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받을 복인 것이다.

 

4. 성도들이 받아야 할 복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복을 받아야 할까? 그것은 단연코 영적인 복이요 하늘의 복인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인 복이요 그것을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 그리고 사도들이 그렇게 언급하고 있는 복이기 때문이다. 사실 신약성경에서 육체적인 복이나 이 땅의 복을 언급하는 부분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만약 육신이 이 땅에서 받는 복이 진짜라면, 어느 누가 고난과 핍박 가운데 복음을 전하겠으며, 복음전하다가 순교할 하겠는가? 사실 구약적인 복은 2가지로 집중된다.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복이자, 자손이 번성하는 복이다. 물질을 풍족하게 누리고 자손이 잘 되는 복이 구약의 핵심적인 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는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이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5. 그런데 사람도 육신을 가진 존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참된 복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육신이 받을 복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슨 복을 구해야 진정 복된 사람인지를 언급해주는 것일 뿐,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난하게 살라고 말씀하지 않았으며, 병들어 살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또한 자손이 없어져서 외롭게 살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것을 위해서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언급했던 말씀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나머지 것들은 채워진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6:33). 여기서 나머지 모든 것이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 곧 의식주를 가리킨다(마6:25~32). 이런 것들은 사실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을 위해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동물과도 같은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동물적인 존재가 추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나라와 민족을 보라. 그들은 여전히 하루종일 이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못먹고 못입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런 것들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영적인 필요 곧 하늘의 복을 사모하고 살 때에 이 세상의 복이나 물질적인 복은 채워진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한 영적 교훈은 둘째로, 사도바울에게서도 여전히 발견된다. 사도바울은 빌4장에서 그것을 말했다.바울은 여러번 선교팀을 꾸려 선교에 나섰다. 때로는 3명이 떠나기고 하였고, 많게는 8명 가까이 선교팀을 꾸려 떠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선교지에서 어떤 일이 있을른지 아무도 알 수는 없었다. 사도바울은 자비량선교를 하였다. 하지만 선교헌금은 여전히 부족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개인적으로 건강도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의 12사도들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어린양의 12사도들과 동역하며 사역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일들이었다. 이방인선교의 사명이 그에게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이 사도바울은 어떻게 채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도 빈틈없이 채워졌다. 선교헌금이 부족할 때에는 빌립보성의 자주장사 루디아나 천막장사를 하고 있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에 의해서 채워지기도 하였으며, 건강은 의사 누가가 돌보아주었으며, 자신의 사역을 계승할 사람을 중간에 만나기도 하였다. 그는 디모데다. 또한 그의 동역자들로서 바나바와 실라, 아볼로 등이 합류하여 그의 사역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랬다. 바울의 선교사역은 처음부터 채워져 있었거나 넉넉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도바울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였기에, 필요할 때마다 그런 것들은 채워졌고 그래서 사역을 지속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 갖춰놓고 일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바울은 그때 빌립보성의 자주장사 루디아의 선교헌금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일감이 없어 선교헌금이 많이 부족했을 때인데, 루디아가 선교헌금을 에바브로디편에 보내주었다. 그때에 바울은 빌립보교회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보냈다.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8b~19)" 그렇다. 빌립보교회가 사실 넉넉해서 선교헌금을 보내준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사도바울의 선교팀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 사도바울이 눈물겹게 감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고, 그 일은 빌립보교회의 부족한 것을 넉넉히 채우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6. 나오며

  이제 2018년도 새롭게 시작된다. 2018년에 수 많은 어려운 일들이 산적해 있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기회의 해가 될 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고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교회라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12명 가지고 목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이 능력이 없어서 선교팀을 10명을 채우지 못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다. 하지만 거룩한 일에 뛰어들었던 그들은 소수를 가지고 그러한 일을 감당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고자 하는 열정이 그들의 마음 속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마18:20). 사실 기록상 하나님께서 다수를 기뻐하신 적이 없다.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열정을 품고 있는 한 사람 내지는 한 지도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한 시대를 이끄셨다.

  우리 동탄명성교회에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여한 사명이 있다. 그것은 "회개와 천국복음"을 이 나라와 온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다. 사실 교회를 다녀도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천주교처럼 고행성사나 세례와 같은 의식으로 천국가는 것이 아니다. 면죄부를 돈 주고 사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또한 행위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것을 이어받은 사도들의 역사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으니,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막1:15, 행20:21). 아무튼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몰라서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회개하지 못해서 천국에 못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한다. 회개의 종요성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로부터 믿음을 회복했다. 하지만 너무 믿음을 강조하다보니 결국 회개의 중요성을 약화시키거나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셨고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정확히 전파해야 한다. 요 며칠전 드디어 "회개와 천국복음"이라는 책자까지 나왔다. 이제는 못할 것이 없다. 이 책은 아무런 선입관없이 읽을 수만 있다면 한국교회는 달라질 것이다. 온전한 믿음이 생길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사실 기대된다. 2018년도에는 정말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

 

 

2017년 12월 31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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