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많은 영계의 비밀들이 담겨져 있다. 그중에서도 사도바울은 사람의 영(속사람)도 나이를 먹는 것이며, 처음에는 어린아이의 수준이지만 그리스도의 충만한 나이에 이르러야 한다고 권면한다. 왜 사람은 자신의 영이 성장해야 하는 것인가? 그냥 놔두면 아니 되는가? 영이 나이가 들어서 성숙해지면 대체 어떤 유익한 점이 있는 것인가? 그것은 결국 우리의 영원의 상태를 결정하는 매우 중대한 잣대가 된다. 나의 영, 과연 어떻게 성장시킬 수가 있는가?

2021-11-28(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나의 영 곧 나의 속사람이 성장하게 하려면?(엡4:13~1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EeJsAeDbq04 [ 혹은 https://tv.naver.com/v/23802424 ]

 

1. 들어가며

  사람은 동물과는 분명히 다르다. 언어를 사용할 줄 알고 불을 사용할 수 있으며 직립 보행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 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영계를 접촉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류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인간과 성경이 말하는 인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로서 영을 가진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새부턴가 인간의 영적인 기능이 그만 약해져 버렸고 거의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왜 그랬을까? 인간은 왜 지금도 영이신 하나님과 직접 대화가 가능하지 않게 되고 말았는가? 그리고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치유는 왜 몇몇 소수에게만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 되고 말았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원래 인간은 어떤 존재로 창조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영적인 기능과 영적인 능력과 지혜는 대체 어느 정도이며, 왜 그것을 잃어버렸으며 그것을 회복시키고 또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영이 성장하게 되면 어떤 유익을 얻게 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처음 인간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처음 인간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그것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잘 나타나 있다. 거기에는 타락하기 전 인간의 처음 모습이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세기의 말씀을 통하여 인간은 아주 특별하게 창조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첫째로, 원형이 다른 생명체들과는 다른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창1:26~27). 인간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다 자기의 형상과 모양 안에서 창조되었다. 다시 말해, 독수리는 독수리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것이고, 사자는 사자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류'에 속할 뿐만 아니라 '신류'에도 동시에 속하는 것이다. 이는 오직 인간만이 갖는 특성이다. 오직 인간만이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신(교통)이 가능한 것이다. 둘째, 인간을 만든 재료가 다른 생명체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창2:7). 왜냐하면 사람은 이 세상의 물질로만 창조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이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의 육체는 땅(지면)의 흙(먼지, 티끌)으로 빚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의 바람을 불어서 그 사람의 코에 불어 넣으셨다. 이때 사람 속에 불어 넣어진 '생명의 바람'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사람의 '영'(히브리어는 '루아흐', 헬라어로는 '프뉴마')이라고 부르고, 사람의 '속사람'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니 사람의 육체는 이 세상의 물질세계와 접촉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만, 사람의 영은 영의 세계에 있는 것들 곧 하나님과 접촉하며 살아갈 수 있으며, 천사들(훗날 귀신들 포함)과 접촉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3. 처음 창조된 인간의 영의 수준 및 인간의 능력과 지혜는 어느 정도였는가?

  그렇다면 처음 창조된 인간의 영의 수준은 어떠했으며, 인간의 능력과 지혜는 어느 정도나 되었을까? 창세기 1~2장의 기록을 살펴보니, 첫째, 인간의 영적인 수준은 지금 우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담은 당시 자신의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면서 지냈고, 영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대화하며 지냈기 때문이다(창3:8~10). 그러나 오늘날 인간의 영적인 감각은 거의 상실되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과 접촉하지도 못한 채 살고 있으며, 자신의 영으로 하나님을 보지도 못할 뿐더러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처음 창조된 인간 곧 아담의 능력과 지혜는 어느 정도였던 것일까? 그때에 인간은 모든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모든 만물이 인간의 권세 아래에 굴복하였기 때문이다(창1:28).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혜는 탁월하여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름을 짓도록 데려온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아담이 즉석에서 지어 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아담의 영성이나 능력과 지혜가 매우 뛰어났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 전 세계에서 살고 있는 80억 인구를 다 합쳐 놓는다 하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인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간은 그러한 영적인 감각이나 능력을 범죄를 통하여 그만 상실하고 만다. 

 

4. 아담의 영의 나이와 예수님의 영의 나이 그리고 우리의 영의 나이는 어느 정도인가?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아담의 육체는 몇 살 정도였을까? 신학자들의 연구들을 빌리자면, 인간은 그때 아담은 24~25세 정도로 창조되었고, 여자는 21~22세 정도로 창조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신체는 성년 수준으로 창조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인간의 영의 나이는 어느 정도였을까?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사람의 육체가 나이를 먹듯이 인간의 영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의 나이는 1년에 1살씩 먹는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인간의 영의 나이는 1년에 1살씩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하여 영안이 열린 사람을 통해서 이것을 확인해 보면, 사람의 영의 나이는 보통 3~4세 내지는 7~8세에 이 땅에 보내어지고 있으며, 이 땅에 살면서 영도 성장하여 나이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많이 먹는 사람의 경우라도 한 10살 정도 밖에 성장하지 않으며, 대부분은 10년에 1살도 채 못 먹는 것으로 알려진 채 있다. 그러니까 사람의 영의 나이는 사람의 신체가 자라는 것처럼 쑥쑥 쉽게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 따르면, 에베소 성도들의 대부분은 영이 어린아이(4~8세)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 바울은 이제는 그들도 영이 성장하여서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나이의 분량에 도달해야 한다고 권면하였다(엡4:13~16). 그리스도의 나이야말로 인간이 성숙할 수 있는 영의 최고의 나이였던 것이다. 그럼, 아담이 창조될 때 영의 나이는 어느 정도였을까? 영안이 열린 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때 아담의 영의 나이는 약 24~25세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의 나이는 한 30세쯤이 되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이고, 예수님은 창조주의 신분이니까, 아담의 영의 나이와 예수님의 나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5. 어떻게 하면 사람의 영의 나이를 그리스도의 충만한 나이에 도달하게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의 영이 성장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에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3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사도 바울은 사람의 영이 성장하게 하려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온전한 지식과 그분에 대한 믿음이 일치를 이루게 해야 한다고 했다(엡4:13). 여기에 보면, 사람의 영의 나이를 성장하게 하려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전제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을 때에는 우리의 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때에는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시게 된다. 그러면 그때 우리가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 불신자들은 자기들 속에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이 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당은 어떻게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알아 맞추고 때로는 사람의 병도 치료할 수 있는가?(물론 무당은 사람의 과거를 맞추기는 맞춘다. 그러한 정보를 점보러 오는 사람의 귀신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라도 미래를 맞추지는 못한다. 다만 그렇게 되도록 말을 먼저 흘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어떤 유명한 사람에게는 귀신을 딸려 보내서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그 유명한 무당이 맞추었다고 소문을 낼 것이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이 그 무당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병을 치료하는 것도 그 병을 가져다 주었던 영보다 더 큰 계급의 악한 영을 달래어서 잠시 그 병이 나은 것처럼 잠잠하라고 시킨다. 그래서 낫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무당에게는 그러한 영적인 지혜와 능력이 없지만, 귀신이 가져다주는 지혜와 능력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게 된다면, 그는 즉시 모든 신통력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그 귀신이 자신의 몸에 들어와 있으면 자신의 몸이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알지라도, 귀신의 신통력을 계속 받고자 무당들은 귀신을 자기 몸속에 모셔 놓고 받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신자의 영은 결단코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만이 영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요, 특히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그대로 믿는 자는 아는 것과 믿는 것에 일치를 이루어, 영이 잘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거짓을 버리고 진리를 말해야 한다(엡4:15).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본문이 '참된 것을 하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는 보통 참된 것을 실천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보면, '진리를 말하라'는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의 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거짓의 아버지요 거짓말장이인 사탄 마귀를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놈은 사기꾼이기 때문이다. 사기꾼을 따라가서는 결코 영이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영이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리만을 말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것에 주의하라고 당부하였다(엡4:14). 첫째는 사람들의 속임수에 끌려다니지 말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거짓말의 아비에게 속해 있으니 늘 속임수를 써서 사람을 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속임수를 분별하고 그들의 말에 속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교활함에 끌려다니지 말라고 하였다. 교활함은 사탄의 속성으로서, 사탄 마귀가 진리의 말씀에다가 살짝 가짜를 끼워 넣어 사람을 속여 자기의 포로를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마치 곡식을 뿌려 놓은 밭에 마귀가 와서 가라지를 슬쩍 뿌려 놓고 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영이 성장하려면 사탄의 교활한 속임수를 분별하여 그러한 사탄의 궤계를 따라가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셋째는 온갖 가르침의 바람에도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보통 교회에서도 여러가지 가르침을 베푼다. 그때에 이러한 성경공부를 하게 되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겠지 라고 기대하면서 성경공부를 시작하지만, 결국 그것만으로는 자신의 영이 성장하지 않으며, 지식과 교만만 성장하고 만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영은 그렇게 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영이 성장하게 하려면 이미 우리 몸속에 들어와 있는 거짓의 영들인,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것들이 우리 몸안에 죽치고 있을 때에는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귀신을 내보내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이때 귀신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은 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들까지 다 회개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귀신이 떠나가게 되고 그래서 귀신이 가라지를 우리의 마음에 뿌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진리의 말씀을 들음으로 영이 비로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하고 가지된 우리 믿는 성도들이 서로 지체가 되어 협력하고 도와주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엡4:16). 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것은 아주 필수적이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붙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요15:4). 이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불어닥치는 환난과 핍박과 역경 속에서도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몰려와도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영도 덩달아 같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서로 협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잘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저것을 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체된 우리가 서로서로 협력해야 우리의 영도 서로 잘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환상을 잘 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천사를 잘 부릴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귀신을 잘 내보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병을 잘 치유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지혜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잘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지체된 우리는 서로 도와주며 협력하면서 영을 성장시켜야 하는 것이다. 

 

6. 우리의 영의 나이를 성장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것을 실행할 때에 주의 사항은 무엇인가?

  우리는 육체의 나이를 먹는 것에는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영의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니 영도 나이를 먹느냐면서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가 더이상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엡4:14). 우리는 어찌하든지 그리스도의 충만한 나이의 분량에 도달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왜 사도 바울은 영이 성장하고 성숙해야 함을 그렇게 당부했던 것인가? 그것은 크게 2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이 땅에서 영이 성숙해지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회복되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영이 성숙해져야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그분께 물어보고 앞으로 전진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닥치는 영적인 문제들을 성숙한 영이 잘 해결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에게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배후 조종자 곧 우리의 몸에서 병까지 일으키는 귀신들을 보고서 그 놈들을 우리의 몸에서 핀셋처럼 집어서 내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우리가 죽은 다음의 생애에 들어가게 될 때에 우리가 이 땅에서 가진 나이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요, 그 영의 나이를 영원히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어린아이로 살기를 원한다면 영을 성장시키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천국은 영원한 나라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천국에 들어가면, 다스림을 받을 자도 있고 왕 노릇할 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이 성장하지 못해서 어린아이의 상태로 천국에 들어간다면, 그는 천국에서 결코 왕 노릇하는 자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이 땅에서 영이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뱃속의 아기를 낙태시키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그 아이가 이 세상에 나와서 자신의 영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아이가 얼마나 슬퍼하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성도는 결코 낙태나 살인 그리고 자살을 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내 영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오늘날에는 교회를 다녀도 자신에게는 영이 없는 것처럼 사는 성도들도 더러 있다. 그들은 바로 세상적인 성공을 '성공'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육신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관심이 많다. 자신의 영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있는 것이다. 이 땅이야말로 자신의 영을 성장시키는 아주 중요한 양육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을 성장시키는 데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사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정말 큰일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일평생 40~60년 신앙생활을 하지만, 자신의 영의 나이는 채 5살을 먹지도 못한 채 죽는 것이 거의 전부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어린아이'이다보니 계속해서 투정만 부리고 자기만 알아 달라고 요구하며 삐지고 짜증을 내며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그렇게 사는 자는 자신의 영의 나이가 오히려 줄어들기도 한다.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영적 감각을 이제는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영의 나이에 이르도록 나를 훈련해야 한다. 그리하여 어느 때부턴가는 나도 악한 영들을 보면서 그것들을 쫓아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고 응답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은 채 살아 갈 수 있다. 그리고 남들도 도와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 자신의 영의 나이는 오히려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자신의 영의 나이가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만약 아직도 내게서 시기 질투와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 그는 어린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전3:1~3), 그리고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는 말을 듣고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도 역시 어린아이라고 할 수 있다(히5:13~15). 그리고 천국은 다 같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참여하는 것이지, 천국에 무슨 신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느냐며 화를 내는 자가 있다면 그도 역시 '어린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성경 말씀을 한 군데만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도 달라져야 한다. 주님 오실 때가 다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영이 자라는 데에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반드시 회개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땅에 사람의 영을 보내 주실 때에 3~4살 내지는 7~8살 정도로 낮추어 보내 주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영의 나이가 큰 자를 보내 주었는데, 그 능력과 지혜로 악한 사탄처럼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내면에 악한 본성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히 회개하여 우리 속에 있는 귀신들을 다 몰아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몸과 영혼을 다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영이 성장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회개하자. 그리고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자. 그리고 진리만을 추구하자. 그리고 머리되신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말자. 그리고 여러 지체들의 도움도 받으며 도움을 주자. 이것이 자신의 영을 성장시키는 놀라운 비결이다. 

 

2021년 11월 28일(주일)

정병진목사

 

사람은 침팬지나 오랑우탕같은 유인원이 진화하여 발달한 가장 고급의 생명체인가?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를 읽어보면 사람은 동물과는 처음부터 각기 다른 종류로 지어졌으며, 사람은 사람의 종류로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종류로서 창조된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사람과 유인원의 이종교배로 생명체가 태어나지 않는 것으로 어느정도 증명되고 있고, 침팬지나 사람 사이의 수많은 중간 생명체가 없는 것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 종교생활을 한다는 점에서도 구별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은 동물과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비교검토함으로서, 사람은 처음부터 어떤 존재로 창조되었는지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2021-02-21(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창세기강해(23) 동물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창1:4~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5wY43OILb6E [혹은 https://tv.naver.com/v/18628735 ]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만물을 창조하셨는가? 전능한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출20:11)에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창1:3, 시33:6, 요1:3),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골1:15~17) 창조하셨으며, "지혜로"(잠8:22~26,30,시104:24) 그리고 "성령으로"(시104:30,욥33:4) 창조하셨다(창1:1,2:1). 그리고 창조후에는 있는 것을 가지고 만드시거나 빚으셨다. 그리고 어떤 것은 이미 있는 존재로부터 있게도 하셨다. 그것들 중에서 '동물'과 '사람'은 그냥 말씀하심으로만 창조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직접 흙으로 빚으신 후에 살아있도록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이다(창2:7,19). 그래서 모든 생명체는 숨을 쉬고 살아가는 생명체가 되었다. 창1:20에 보면, "생물"이라는 용어가 낭는데, 이 용어에 대한 정확한 뜻은 "숨쉬는 존재(사는 생명)"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동물과 인간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동물과 인간이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것은 있으며, 동물에게는 없지만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창조목적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무엇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지어주는 기준이 되는가? 그리고 "우리가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동물창조와 인간창조에 관하여 전체적인 조망을 한 번 해보고 거기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함께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2. 동물은 언제 어떻게 창조되었이며, 어떤 복이 주어졌는가?

    하나님께서는 동물들을 다섯째 날부터 창조하셨으며, 여섯째 날까지 창조사역을 하셨다. 그러니까 동물들을 이틀 동안에 창조하신 것이다. 특별히 다섯째 날에는 바다에 움직이는 생명체(주로 '물고기') 그리고 하늘에서 움직이는 생명체(주로 '새')를 창조하셨으며, 여섯째 날에는 육지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를 창조하셨으며(주로, '짐승'),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것은 똑같은 동물이라고 할지라도, "바다생명체"와 "하늘생명체"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할 것을 복으로 명하셨지만(창1:22), 육지생명체에는 복을 명하셨다는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창1:24~25). 아마도 육지생명체 가운데 들의 짐승의 하나였던 뱀이 사람을 죄짓게 할 때에 쓰임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이 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닐 수 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동물을 창조하실 때에는 "자기들의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몇 번이고 강조하셨다(창1:21,24~25). 이는 동물이라는 것이 결코 진화를 거듭해서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며, 한꺼번에 여러 쌍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인간만큼은 아담 혼자만 먼저 창조하였고, 그리고 나중에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고 언급한다. 이는 사람은 오직 한 쌍의 남녀만을 창조하셨을 뿐, 수많은 쌍의 사람들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복을 명하실 때에는 "바다생명체"와 "하늘생명체" 그리고 육지에서는 "사람"에게만 복을 명하셨는데, 복의 내용은 사실은 똑같다. 그것은 "생육하고(번식하고), 번성하여(많아져서), 충만하라(가득채워라)는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손을 낳기 위하여 참으로 안간힘을 쓴다. 마치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목적인 것처럼 씨를 퍼뜨리는 일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체들이 멸종당하지 않은 채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육지생명체들을 언제 어떻게 만드셨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육지생명체를 만드실 때에는 그것을 좀 더 구분하여 창조하셨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육지동물을 비롯한 바다동물과 하늘동물을 다 포함하여 그것을 "생물"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네페쉬 하야"라는 말로서, "숨을 쉬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동물이라는 정의는 "숨을 쉬는 움직이는 생명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하면, 육지동물(육지생명체)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구분지어 창조하셨는가? 그것은 3가지로 구분하시어 창조하셨이다. 첫번째 부류는 가축이다. 여기서 '가축'이라 함은 히브리어로서는 "베헤마"라는 것인데, 이는 그 뜻이 "네 발을 다니는 짐승"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육지생명체 중에는 사람을 이롭게 하도록 주로 집안에서 길러지는 짐승을 가리켜 "베헤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육지생명체 중에서 베헤마는 훗날 "가축"이라는 말과 통용되어 사용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짐승들, 예를 들어 "양이나 염소, 소와 돼지, 말이나 나귀" 등은 사실  네 발 가진 움직이는 생명체('생물')임과 동시에, 집안에서 길러지는 가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한 날에 창조된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어서 "땅 위에 기어다는 것"을 창조하셨는데, 이는 네 발로 걸어다니는 동물을 제외한, 모든 육지동물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네 발 이상을 가지거나 배로 기어다니거나 배로 기어다니는 육지동물을 가리킨다. 이들에 대한 당시 명칭은 "땅 위에 기어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땅의 짐승"을 창조하신다. 여기서 "땅의 짐승"이라 함은 "에레츠의 하야"라는 것으로서, 이는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 전부를 가리킨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여섯째날에 땅 위 곧 육지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를 그룹별로 창조하셨다고 모든 창조사역을 그치고 안식하게 된다. 

 

4. 하나님은 인간을 언제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언제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께서 모든 우주와 지구, 지구 위에 있는 것과 지구 위에 있는 생명체들 중에서 가장 나중에 창조하신 생명체로서 가장 고등동물인 육지생명체까지 지배하고 다스시고 살도록 창조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딱 2가지 방법만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첫째는 사람의 육체부분을 창조하신 방법이 따로 있고, 둘째는 사람의 영의 부분을 창조하신 방법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먼저, 사람의 육체부분은 하나님께서 땅(지구)의 흙(아다마), 그것도 흙의 티끌을 뭉쳐서(창2:7) 그것을 손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빚으신 후,에 그 코에 생기(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심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한 마디로 육체는 이 땅의 흙으로 빚어져서 만들어진 부분이지만(창1:26), 영은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후에, 사람의 영 속에 불어넣어주시신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영혼을 지닌 존재로서 창조되었고, 동시에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창조되었던 것이다. 

 

5. 인간창조의 특징들은 무엇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것을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어떻게 만드실 것인지를 미리 천사들과 의논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창1:26).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 안에서, "우리"의 모양을 따라 만드셨다고 했을 때, 여기의 "우리"라는 1인칭 복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과 이미 창조된 채 있는 천사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이스라엘 모든 랍비들도 그렇게 해석하고 있고, 총신대 전구약학 교수이신 김정우교수께서도 그것이 옳다고 논문으로 발표하신 바 있다. 

  둘째,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육체만을 지닌 존재로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진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졷왼 영을 가지고 있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셋째, 특별히 사람은 사람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람은 사람의 종류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곧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종류로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류(신류)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창1:27). 그러므로 사람은 원숭이와 같은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로 지구에 태어나서 살고있는 모든 생명체들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죽은 후에 천국으로 이사가서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넷째,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창조했던 모든 동물들 곧 바다생명체와 하늘생명체와 육지생명체를 다스리게 하려고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통치권을 사람에게 주시려고 사람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바다와 하늘과 육지의 생명체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셨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마도 장차 도래할 뱀의 유혹을 대비케 하시기 위함이 있을 것이라 판단되며, 하늘에 가서도 왕노릇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명령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다섯째,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오직 한 쌍의 부부로만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생명체들 곧 바다생명체와 하늘생명체와 육지생명체는 처음부터 여러 쌍으로 만드신 후에 한꺼번에 창조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러므로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았거나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아담 한 사람의 후손에 속한다. 고로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는 죄인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류는 둘째아담이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칭의인이 될 수 있다. 

  

6.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창1:26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를 만드실 때에는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닮음)을 따라"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창1:27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모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둘은 히브리어가 각각 다르다. "형상"은 "첼렘"이며, "모양"은 "데무트"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 뜻은 무엇인가? "형상"(첼렘)은 '그림자'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외형적인 어떤 모습을 가리킨다. 여기서 외형은 인간의 원형이신 그리스도이시다(고후4:4). 그리고 "모양"(데무트)은 "닮음, 유사함"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절대적인 거룩하심 등의 하나님의 성품 등을 가리킨다. 하지만 창5장에 가면, 하나님의 모양이나 하나님의 형상은 동일한 단어에 대한 강조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모세는 이 단어들을 동일한 범주 안에 속해있는 2가지 표현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아담은 130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창5:3)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사람은 동물처럼 육체를 가진 존재이다. 하지만 사람은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사람 안에는 또 하나의 자기자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 속에 있는 영이다. 사람은 영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존재다. 그리고 지어질 때부터 다른 생명체와는 차원이 다르게 창조되었다. 즉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어떻게 만드실 것인가를 하나님께서 먼저 고민하시고 생각하시고 천사들에게도 알려주신 후에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드시기도 전에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동물들을 다스리도록 의도를 가지고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만물 위에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다.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위임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인류는 모든 동식물을 지배하고 다스려온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다스린다(라바)" 함은 돌보는 것도 의미하지만 통제하고 교정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진 존재 곧 하나님 종류로서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 사람은 결코 원숭이나 유인원에서 진화한 동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종류가 전혀 달랐던 것이다. 사실 사람은 동물의 한 종류로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류로서 창조된 것이다. 놀랍지 아니한가?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원숭이나 침팬지같은 것들이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믿는 것은 자유이겠지만 어찌 이러한 동물에 사람을 비교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부모로부터 육체를 물려받아 동물적인 외형을 갖추고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 살고 있는 존재임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성장하여서 또 다른 사람에게 영적인 생명이 공급되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종류로 지어진 우리 인간이지만, 죽을 때에 동물처럼 버려진채 영원히 지옥에서 살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2월 21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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