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30(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하나님께서 아들을 먼저 낳으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롬8:15~19,29)

https://youtu.be/aQ7kSE7RY_o  [혹은 https://tv.naver.com/v/30435859 ]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아들을 낳으셨다. 그럼 하나님께서 아들을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낳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표현하시려고 하심이었다. 즉 모든 피조물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이 자기를 창조했다는 것을 알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먼저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어떤 피조물도 보지 못하였고 또한 볼 수도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딤전6:16).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창조하기 전에 아들을 낳으신 것은 이러한 이유 뿐일까? 아니다. 그것은 롬8:29에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시고 그 아들을 독생자로 낳으셨을 뿐만 아니라, 맏아들(장자)로 낳으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하나님께서 아들을 먼저 낳으신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고 보면 이것 때문에 천지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천지만물 창조 전에 아들을 먼저 낳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먼저 낳으신 궁극적인 이유가 따로 있는가? 그렇다. 이것이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이다.

 

2. 만세 전에 아들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었는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셨는데 그렇다면 그때에 하나님의 아들은 어떠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는가? 분명한 사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신 것이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육체를 입기 전까지 역시 아들도 볼 수 없는 영적인 존재로 계셨다. 그러니까 구약 시대까지 하나님의 아들 역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에 아들은 어떤 상태로 계셨는가? 성경은 그때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했다고 말씀한다(히1:3, 고후4:4). 다시 말해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자신을 당신 자신의 형상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만세 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하셨다고 하는 사실은 인간 창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닮음)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신 후에 당신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아담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창1:26~27). 고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으로 지어진 것이다(롬5:14). 그리고 아담이 창조된 것을 보니 하나님의 형상이 먼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성경은 만세 전의 '아들'이라고도 하며, 만물이 있기 전의 '그리스도'라고도 말하며, 만세전의 '말씀'이라고도 말한다. 

 

3. 하나님께서 아들을 먼저 낳으신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신 첫 번째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분이 모든 만물의 창조주라는 것을 계시하기 위해 아들을 낳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신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그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낳으신 후 인간도 그분의 형상으로 낳고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표현으로 만드시기 위함이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분을 하나님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그분을 따라 인간도 그분의 공동 상속자로 만드시기 위함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낳으신 궁극적인 이유는 그분의 형상을 가진 우리 인간을 얻으시기 위함이다(롬8:29). 아들은 만세 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계셨다. 즉 하나님의 표현으로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그분의 아들의 형상의 쌍둥이로 만들기를 원하셨다(롬8:29). 그래서 그분을 먼저 맏아들(프로토토코스)로 낳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의 모형으로 지어진 아담의 후손들로서 흙에 속한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변화될 날이 올 것이다. 사도 바울은 언젠가 우리 성도들이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후3:18).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생각하고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아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낳으신 후에, 우리도 그 아들의 형상을 따라 우리도 변화시키려고 작정하신 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 그분의 형상을 보게 될 것이다(고전13:12).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을 낳으실 때에 독생자이자 맏아들(프로토토코스)로 낳으셨다는 것이다(롬8:29). 이는 우리도 예수님의 형제들이 되어 그 아들을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낳으신 궁극적인 이유는 그 아들을 따라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롬8:17).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 아들을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히1:3). 그리고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기 위하여 일정한 절차를 진행하셨다. 그것은 먼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생명을 아들에게 주신 것처럼, '양자의 영'이자(롬8:15) '아들의 영'(갈4:6)이요, '생명 주는 영'(고전15:45)인 성령을 우리의 마음 가운데 보내시어, 우리를 역시 아들로 낳는 것이다(약1:18). 그래서 우리들도 역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거듭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가 비록 먼저 부모에게서 태어났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상속자들(후사들)이 나오는 것이다. 

 

4. 왜 천사들 중에 일부가 하나님을 대항하게 되었는가?

  천사들은 하늘들이 창조된 후에 가장 먼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짓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는 결코 주지 않는 지구의 통치권을 아담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천사들 중의 일부가 이를 시기 질투하였다. 그중에는 대 천사장 루시엘이 있었으니 이것을 보고 에덴동산의 중앙으로 올라가는 길에 생명나무와 비슷한 선악나무를 만들어 놓고는, 하와를 유혹하였다. 그걸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선악과를 먹은 하와가 그의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함으로, 인간은 마귀의 종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영계에서는 지는 자는 이기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벧후2:19). 또한 누구든지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롬6:16). 그러자 아담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만다. 그러자 아담은 죄인의 형상으로 변한다. 그러자 인간은 그때부터 늙고 병들고 죽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살려 주시기 위해 아들을 사람으로 보낸다. 그러자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처리해 주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생명 주는 영이신 성령을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달랐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심부름꾼이자 종으로 지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려고 지은 존재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려고 창조하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서도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도록 자식이 없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길리운 종 다메섹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서 난 아들이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생명을 이어받지 못한 자는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인간만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천사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존재들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상속자도 될 수가 없는 것이다.

 

5.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 중에 누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누구나 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는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상속자이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공동 상속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조건을 언급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기꺼이 고난도 함께 받는 자라고 말했다(롬8:17~18). 그런데 장차 하나님의 상속자가 누리게 될 영광은 우리가 받을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왜 한 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셨으며, 왜 그분이 사람이 되셔서 죽었는지를 전하다 보면 우리는 핍박을 받기도 하고 고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 전해 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한 목적이기에 우리는 죽는 날까지 이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설령 고난의 길이요 험난한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예로부터 경건하게 살고 주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왔다. 그 예표가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 속에서도 나온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이스마엘이었고 둘째는 이삭이었다. 하지만 둘 다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하고 핍박했다. 그러자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되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만다. 이것은 하나의 예표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이고, 이삭은 약속의 성령을 따라 난 자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아들이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고자 해야 한다. 누구든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6. 시편 2편과 16편을 보면 다윗은 대체 무엇을 보고 들은 것인가?

  한편 우리는 시편의 말씀을 통하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시편의 저자 중 하나인 다윗이다. 다윗은 영성이 깊은 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자였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인하여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들을 많이 보고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도 역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복을 받음에 있어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시편에 기록해 놓았다. 그것은 소위 메시야 시편이라고 불리는 시편 2편과 시편 16편 말씀이다. 우선 시편 2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아들로 낳은 후 그에게 열방을 유업으로 주신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철장권세로 왕 노릇할 것이라는 것을 말했다(시2:7~9). 그리고 그는 시편 16편을 통하여 그가 받을 할당받은 분깃 곧 영토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언급하였다(시16:5~6). 그에게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 준 영토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장차 들어갈 저 세상에서 우리가 할당받을 영토는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7.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은 어떤 것인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성도들의 부활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천국에서 누릴 영광의 크기에 대해서 말하였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살 때 비록 흙에 속한 자의 형체를 입고 있지만 하나님의 상속자는 하늘에 속한 형체를 자기의 속사람으로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같은 하나님의 상속자라 할지라도 하늘나라에서 받을 영광의 크기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해의 크기의 영광을 가진 자도 있지만 어떤 이는 달의 크기의 영광을 가지며, 또 어떤 자는 별의 크기의 영광을 가진 자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별과 별의 영광의 크기도 다르다고 했다. 또한 우리가 장차 회복하여 누리게 될 하나님의 형상은 3가지 면에서 특별하다고 했다. 그것은 첫째로, 결코 썩지도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때가 되면 우리는 영원히 영적 존재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 형상이 아주 영광스럽다고 했다. 우리도 그 아들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그 형상은 강하다고 했다. 그때가 되면 영적인 피조물인 천사들까지도 부리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8. 예수께서는 왜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변화될 때는 대체 언제인가? 그때는 우리가 아들이신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될 때다. 그 시작은 우리가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때요, 완전한 것은 우리가 부활체가 되는 때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받는 이가 하나에서 났기 때문에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것은 아들이 받은 생명과 우리가 받은 생명이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주님이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에 과연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제부터라도 이제 예수님께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9. 나오며

  요한복음 5장 17절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일하시고 있으시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낳아서 그 아들로 하여금 일하고 계신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일을 하셔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당신이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신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둘째로, 보다 더 궁극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표현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해 주시려고 먼저 하나님의 형상과 만물의 상속자로서 아들을 보여 주신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어떻게 우리가 만물의 상속자가 되어서 온 우주를 다스릴 것인지를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먼저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완전한 사람이신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 주시고 우리보다 먼저 앞길을 걸어가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섬세하시고 자상하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이렇게 사랑하신다. 그 큰 사랑과 계획을 우리가 안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부합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2022년 10월 30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44) 천국의 하나님의 보좌와 그 앞에 있는 4생물과 24장로는?(계4:1~11)_2022-04-12(화)

https://youtu.be/I0RC06AXgn4  [혹은 https://tv.naver.com/v/26214822 ]

 

1. 사도 요한은 어떻게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을까?
  사도 요한이 어느 날 밧모섬에 위배되어 있을 때에 그는 영 안에 있게 되었다. 그때 그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게 된다(물론 이 음성은 '예수님'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그때 되돌아 보니 일곱 금촛대 사이를 돌아 다니고 있는 인자 같은 이 곧 예수님이 보여졌다. 그때 사도 요한은 그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는다(계1:10,12~13,19). 그때 그가 '본 것'은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님이었고(계 1장), '지금 있는 일'은 일곱 교회에게 보낼 편지 내용이었으며(계 2~3장), '장차 될 일'은 하늘의 광경들과 환상들(계 4~22장)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고 난 후, 사도 요한은 하늘에 이미 열려진 채 있는 문(아마도 12진주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을 보았는데, 그때 그가 처음에 들었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을 다시 듣게 된다. 그것은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게 네게 보이리라"는 음성이었다(계4:1). 그러자 그는 자신의 영이 몸에서 빠져 나온 뒤, 하나님이 계시는 새 예루살렘 성의 보좌 앞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4장부터 22장까지의 말씀에는 사도 요한의 영이 천국에 가서 직접 본 것들도 있고, 그때 주님이 장차 되어질 일을 보여 준 환상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 이것을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4~5장과 21~22장은 최소한 사도 요한이 직접 본 것을 기록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2. 하나님은 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계셨는가?
  그렇다면 사도요한이 보았을 때 천국에서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계셨는가? 그것은 높이 들린 보좌 위에 좌정해 계셨다(사6:1 참조). 그런데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 곧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다만 그의 눈에는 그분이 어떤 색깔과 유사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것의 하나는 '벽옥'이었고 또 하나는 '홍보석'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벽옥(Jasper)'이라 함은 바다 청옥으로써 푸른 빛을 내는 것을 가리키며, '홍보석(ruby)'이라 함은 붉은 빛을 내는 것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 보석은 사실 대제사장이 가슴에 단 판결 흉패의 마지막 보석과 처음 보석과 같다(출28:17~20). 다시 말해, 이 보석은 오메가와 알파의 색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좌에 둘러 있는 무지개가 그의 눈에 보였다. 그런데 이 무지개의 색깔은 '녹보석(emerald)'과 같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빛은 푸른 바다 빛깔이었고, 빠알간 루비색이었던 것이며, 보좌 주위에는 초록 빛이 퍼져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색깔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를 암시해 주는데, 예를 들어, '바다의 푸른 빛'은 하늘색으로서 하나님의 초월성, 엄위성, 무한성을 가리키며, '빠알간 루비 빛'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짐으로 이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서로 가까워지고 서로 친밀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사실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도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하지만 화목제물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따뜻하 분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하나님의 보좌는 심판의 보좌였다면 이제는 은혜의 보좌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엄위하신 분이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와 같이 친밀하게 되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보좌에 둘러서 초록 빛이 나오고 있었다. 이는 구약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이 본 것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주위에는 불이 타오르고 불이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A.D.95년경에 본 하늘의 광경에서는 불이 아니라 초록의 어떤 빛이 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생명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특히 거기에 무지개가 있는 것은 노아 때의 무지개처럼 하나님께서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신 것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3. 하나님의 보좌는 한 개인가 두 개인가?
  그때 사도 요한이 보았던 보좌는 과연 한 개였는가 두 개였는가?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니까, 천국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가운데에 있고 그 보좌 오른편에 또 다른 보좌가 있어서 거기에 예수님이 앉아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두 개가 아니라, 딱 한 개뿐이기 때문이다. 그 보좌에 주 하나님이 앉아 계신다. 그것도 전능자로서, 전에도 계셨으며,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가 앉아계신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22장에 가면, 그 보좌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1,3에 보면, 그 보좌는 비록 한 개이지만 그 보좌를 가리켜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라고 언급하고 있다. 보좌는 한 개 뿐이지만 이 보좌를 수식하는 것은 하나님과 어린양, 이렇게 둘로서 그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동시에 어린양의 보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하나님의 보좌가 이제는 어린양의 보좌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 전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셨으니까 그 보좌를 '하나님의 보좌;라고 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기에 그곳에 여호와 하나님이 앉아 계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세 전에 인류 구원을 위해 예정된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다시 하늘로 가셨다. 그리고는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 지상에 오신 목적을 완성하시고 모든 것에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사실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또 다른 보좌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활승천하신 후하나님의 보좌에는 예수께서 앉아 계신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보좌에 앉아 계실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동시 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비공유적 속성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교에서 그려놓은 삼위일체나 이위일체의 그림은 모두가 다 잘못된 것이다. 어떤 그림은 하나님의 보좌를 3개를 그려놓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보좌를 2개로 그려놓은 것도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는 단지 한 개 뿐이며, 거기에 이제는 예수께서 앉아 계신다(계21:5~6,22:12~13,16, 3:21). 

 

4. 하나님의 보좌 옆과 앞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좌 옆과 그리고 앞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먼저 하나님의 보좌 옆에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4명의 생물이 있었다(아마도 앉아 있는 듯하다). 그리고 더 바깥으로는 반타원형 형태로 24개의 보좌들이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앞쪽으로 놓여져 있는데, 보좌들 위에는 24장로들이 머리에 금 면류관(승리관)을 쓰고 앉아 있다. 4생물과 24장로들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다음 이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그렇다면 둘째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하나님의 보좌 앞 가까이에는 첫째로, 하나님의 일곱 영인 성령께서 일곱 등불로 불이 켜진 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더 앞쪽으로 나아가서는 둘째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성도들과 천사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성도들은 70줄로 144,000명이 보좌에 쭉 앉아 있으며, 그 너머에는 허다한 무리들이 서서 예배를 드린다. 참고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좀 떨어져서 70줄로 144,000명이 앉아 있는 것은 천국에 직접 가서 본 분들이 그곳에서 예배드리는 실제 사람들과 천사들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간증한 것을 바탕으로 말한 것이다. 

 

5. 왜 하나님의 영은 등불로서 표현되어 있으며, 일곱 개의 등불로 형상화되고 있는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했다(계4:5). 여기에 나오는 일곱 등불은 일곱 촛대는 아니다. 일곱 개의 등불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이 땅에 보내어진 영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일곱'이라는 숫자는 이 땅에 관련된 완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을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곱 영은 요한계시록 5:6에 보면, 어린양의 일곱 눈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이 땅에 파송한 영이 하나님의 일곱 영이며, 일곱 영은 곧 어린양의 눈이 되어 이 땅을 감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당신을 소개할 때에 "그의 눈이 불꽃 같고, 그의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고 하셨다(계2:18). 이는 예수께서 심판주로서 불꽃 같은 눈으로 모든 사람의 뜻과 마음을 감찰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167장에 나오는 보혜사 성령은 예수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이 땅에 파송한 영으로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믿는 자들 속에서 내주하시어 일하시는 성령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일곱 영이 등불처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다 감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우리는 삼위일체로 표현되고 있지만 한 분이신 하나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가 2개 내지는 3개가 아닌 것과 더불어서 하나님께서 한 분이신 것을 더욱 더 증명해 준다고 하겠다. 

 

2022년 04월 12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일반은총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 2가지는 무엇이며 그중에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인가?(고전10:31~33)_2020-05-01(금)

https://youtu.be/CnD9vK0-3Lc [ 혹은 https://tv.naver.com/v/13620650 ]


 

1. 모든 사람에게 일반으로 은총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형상 2가지는 무엇인가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일반은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형상은 2가지 뿐은 아니지만 그중의 핵심은 2가지입니다. 첫째는 능력이요 둘째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두 가지 츨면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훨씬 뛰어난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약점들을 극복하고 모든 동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동물들은 다 자기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지만, 인간만큼은 인간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창1:26~27). 그러므로 우리 인간만이 하나님이 가지신 속성들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2. 일반은총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은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일반은총으로 주어신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은 사실 타락하기전 아담만이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많은 것을 잃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만 주신 능력과 지혜를 상당부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하나님의 형상이 깨졌다" 혹은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아담이 범죄할 때 그 허리에 씨로 들어있어서, 범죄에 참여하기는 했어도, 그렇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파괴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꺼져가는 등불이자 상한 갈대이기 때문입니다. 즉 꺼져가는 등불이지만 아직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으며, 상한 갈대이기는 하나 아직 완전히 꺾여진 것은 아니기 때문니다. 그러므로 예수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얼마든지 능력있는 자가 있고, 지혜로운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부모로부터 타고난 어떤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할지라도, 그후 이 세상에서 어떻게 공부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진 능력과 지혜의 분량은 다릅니다. 고로 그리스도인은 적당히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때에 특별한 것이 주어지나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고후4:4). 그래서 그분이 가진 능력만이은 완전한 하나님의 능력이며, 그분이 가진 지혜만이 완전한 하나님의 지혜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능력과 지혜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게 되었면, 우리는 우리 내부에 전능하고 전지한 분을 항상 나의 스승(교사)로 두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께 간구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지혜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로 치자면, 다니엘과 세 친구들 곧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러한 은혜를 미리 체험한 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4. 예수믿는 사람에게 직업에 귀천이 있나요?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직업은 사실 어떤 귀천이 없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 직전까지 중세시대에는 사제직만이 거룩하고 일반 평신도가 가진 것들(직업)은 다 속되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로 인하여 이러한 생각이 점차 바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루터에 의해서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소명)이라고 여기게 되었는데 이는 직업을 갖고 일하고 있는 모든 자가 다 왕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루터주장, 벧전2:9). 그리고 이어진 종교개혁자 칼빈에 의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자라고 천명했기 때문입니다(칼빈주장, 고전10:31). 그리하여 세속적인 직업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5. 루터와 칼빈은 무엇을 근거로 평신도들의 직업도 거룩한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나요?

  루터는 벧전2:9을 근거하로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루터는 어떠한 평신도들라고 할지다도 다 거룩한 제사장이니, 그때 이후부터는 평신도가 가진 직업도 결국 거룩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칼빈은 고전10:31을 근거로,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소명의식 즉 직업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직업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칼빈의 신학의 모토 중의 하나가 곧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주장은 거시적인 안목에서는 맞는 말이나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때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노력으로 오늘날 직업에 있어서 성속의 개념이 사라질 수 있고, 신분차별도 사라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0년 05월 01일(금)

정병진목사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이 가지고 있었으나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은 대체 무엇일까? 그렇지만 인간은 그 형상을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에 단지 흠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아담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어느정도 상당한 타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깨져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되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창1:26~27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손상이 간 것은 하나님의 형상일 뿐, 하나님의 모양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모양은 결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담의 범죄한 후에도 하나님의 모양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모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예를 들어, 사람의 영과 지정의 같은 것이다. 사람이 비록 범죄한다 해도 영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며, 지정의(지성과 감성과 의지)도 사라지지 아니한다. 거기에다가 사람만이 종교적인 본능(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하님의 모양에 해당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범죄할수록 그것이 깨어지게 되어있다. 본래 하나님께서 주신 형상이 작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고후4:4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리고 골1:15에 의하면,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도 나눠주신 어떤 속성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기는 했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나눠주지 않는 속성들이 그분에게 있다. 그것은 신학적인 용어로 하나님의 비공유적인 속성이라고 하는데, 총 4가지가 있다. 첫째가 자존성, 둘째가 전지전능성, 셋째가 영원불변성, 넷째가 무소부재성(편재성, 동시존재성)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4가지 속성을 제외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속성을 인간에게도 나눠 주셨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담의 범죄로 인해 깨져버린 것이다.

  그래도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는 완전하지는 않지만도 하나님의 형상들이 조금은 남아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에는 다음과같은 10가지 사항들이 있다. 물론 이것보다 더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찾아낸 것은 여기까지다. 하나님의 형상 곧 인간에게도 나눠주신 하나님의 속성들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거룩함(깨끗함, 구별됨), 둘째는 의로움(공평함, 공정함), 셋째는 선함(착함), 넷째는 사랑(용서와 용납과 희생), 다섯째는 자비로움(인자함, 긍휼함), 여섯째는 오래참음(인내,기다림), 일곱째는 신실함(충성됨, 진실함), 여덟째는 변함없음(일정함, 불변함), 아홉째는 화평함, 열째는 양심 등이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속성들을 뒤집어 놓으면 무엇이 되는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사탄의 속성이다. 사탄과 그의 귀신들은 더러우며, 불의하며, 악하며, 용서가 없고, 긍휼이 없다. 그리고 인내하거나 기다리지 못하고, 충성되지 못하며, 늘 요동하며, 불안하며, 양심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의 반대가 사탄의 형상이라고 정의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런데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이 완벽했다(창1:26~27). 하지만 아담이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형상이 사람 속에게도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약화되고 사탄의 형상이 들어차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모양은 달라지지 않듯이 하나님의 형상도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깨어져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거나 그것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4가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회개'와 '순종'과 '믿음'과 '기도'다. 그런데 이 4가지 것들은 하나님에게는 필요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은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오직 죄지은 우리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이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는 회개야 한다.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잘못 판단하고 잘못 선택하고 잘못 행했던 것을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고 했다(요일3:8). 결국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차원에서 이것을 해석하게 되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의 형상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지은 죄를 씻어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대신해주는 것이 아님을 알라! 하나님이 이것을 대신해 준다고 하면, 아마도 모든 인간은 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에는 다 구원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사실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우리가 피흘릴 필요까지는 없다. 왜냐하면 죄있는 사람의 피는 속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흠없는 피만이 유효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대신 피흘리기 위해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신 회개까지 해 주시지는 않는다. 회개는 우리의 몫으로 남겨두신 것이다. 진정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회복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회개해야 한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대신해주지 않는 것에 셋이 더 있다. 그것은 순종과 믿음과 기도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 대신 순종해주지 않으며, 우리 대신 믿어주지도 않으며, 우리 대신 기도해주지도 아니하신다. 이것은 다 죄를 지은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회개하려 할 때에도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실 때에 즉시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하라고 하시면 즉시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 믿고 수용해야 하며, 성령께서 기도를 시키실 때에는 무릎을 꿇고 곧바로 기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주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행해야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사실 우상숭배의 변형의 형태라고 성경은 말한다(고전10:20).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우리는 이러한 우상숭배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를 드려서는 아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계속해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를 드린다면 그는 결국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우상숭배의 죄를 계속 범하는 자의 죄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우상숭배하는 자는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계21:8). 그러니 이러한 말씀들을 거부하지 말라. 이러한 말씀에 순종하라. 그리하여 절대로 우상숭배하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를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면 사탄의 형상이 내게 들어오게 된다. 우상에게 붙어있던 귀신이 내게 들어와서 나를 사탄의 형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그러면 귀신의 속성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주님의 말씀에 주의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우리에게서 주님의 성품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회개하면 되지 않겠는가?

  셋째, 우리는 또한 믿어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최고의 것을 준비하여 가지고 있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 주님의 판단이 완벽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비록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말씀하셨으면 주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만 그것을 허락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다. 하지만 당신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정말 중요한 것들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신다. 천국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회개했을 때에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피로 씻겨진다는 것도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분의 피가 우리를 깨끗게 한다고 약속하셨으면 그대로 믿는 것이 믿음이다(요일1:7~9). 그러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면서 불평하거나 불신한다면 그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만큼 역사하기 때문이다. 믿음이야말로 말라 우리가 바라고 요청하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이다(히11:1).

  넷째,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우리는 갈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의롭게 되기를 그리고 오래 참을 수 있기를 기도로 아뢰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 없거나 부족한 것이 있다고 달라고 구해야 한다.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마7:7). 구하는 자에게 주어질 것이요, 찾는 자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려질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우리의 아버지는 주고 싶어서 줄 수 없는 형편이었을 때에는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전능자요 모든 것이 가능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시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어찌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다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비록 가지고 있지 않아도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법칙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것을 되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의 형상은 증가되고, 사탄의 형상은 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는 자가 얻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 결코 주실 수가 없다. 그러면 반칙이요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실 온 우주를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불의하신다면, 어찌 그분이 우주를 통치하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하지 않는 자에게 주실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당신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요청하라. 그래야 한다. 그래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안 되면 죽어서 다음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게 것이다.

  구약시대에 에녹은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을 형상을 되찾기 위해 65세 때에 결심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갔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더 이상 세상에 두지 않아도 되겠다고 판단하셨다. 그래서 300년이 지났을 때에 하나님은 그를 그냥 하늘로 데려가셨다. 그렇다. 그는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당신도 하나님의 형상을 찾기 위해 오늘부터 시작해보지 않겠는가!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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