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진정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형벌을 일생동안 받아야 했는가? 그럼 회개해도 다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성경에 있다. 히스기야왕은 죽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회개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리려고 하던 징계를 멈추셨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면 우리는 군소리 말고 그분이 결정한 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인가? 여기에는 회개와 형벌에 관한 신구약 시대의 놀라운 경륜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2022-01-23(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사무엘하강해(17) 왜 다윗은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앙을 받은 것일까?(삼하12:7~1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HqBqddDQzTE [혹은 https://tv.naver.com/v/24774077 ]

 

1. 들어가며

  신구약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갔을까? 성경의 기록과 실제 천국에 다녀온 사람들의 간증을 종합해서 정리하자면,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위인들은 대부분은 다 천국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구약의 사람들로는 아담, 아벨, 에녹, 노아가 있고, 아브라함과 욥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있으며,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고, 엘리야와 엘리사, 이사야와 에스겔, 다니엘과 예레미야 선지자 등이 있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로는 예수님의 직제자였던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 등이 있으며, 예루살렘 교회의 집사였던 스데반 그리고 사도 바울과 그의 선교팀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 뿐만 아니라 회개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갔다고 성경에 기록된 인물을 꼽으라면 욥과 다윗을 들 수 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은 다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이지만 공개적으로 자신이 회개함으로 천국에 들어갔다고 하는 분은 욥과 다윗 그리고 베드로 등이 있다. 이 사람들 중에서 오늘 우리가 다룰 인물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 칭함을 받았던 '다윗'이다. 그런데 다윗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한 사람에 속한다. 그렇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재앙(징계)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이 주신 재앙을 일평생에 걸쳐서 받아야 했다. 왜 그랬을까? 그의 회개가 소용이 없었던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오늘날 열심히 회개하여 온갖 저주로부터 벗어나려고 회개하고 있는 것은 다 헛된 일이라는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은 회개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재앙을 받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상황은 어떤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2. 다윗, 그는 어떤 인물이었으며, 어떤 죄를 지었는가?

  다윗, 그는 B.C.1040년에 태어나 목동으로 지내고 있다가, 15살에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드디어 30세에 유다 지파의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7년 6개월 뒤에는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리고 70세에 하늘나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는 약 40년간 왕으로 통치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일반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내 종'이라고 불렸으며, 구약시대이지만 성령을 받은 몇 안 되는 소수의 은혜받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흠도 티도 없을 것 같은 다윗이었지만 그도 역시 중한 죄를 범하고 말았으니, 그만 파렴치한 '간음죄'와 잔인한 '살인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일은 그가 왕위에 오른지 15년~20년 사이에 일어났다. 유다 지파의 왕이 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천도하고 법궤를 안치한 후, 주변 나라들을 정복해 가고 있을 때에, 그는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 장수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았으며 그리고 그녀가 임신하자 그 죄를 은닉하고자 부하 장수를 죽이도록 시켰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그 일을 은밀하게 진행했지만,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음을 그는 간과하고 있었다. 

 

3. 범죄한 다윗은 진정 회개한 사람이었는가?

  그러던 어느 날 다윗에게 선지자 나단이 찾아왔다. 그러고는 하나의 이야기를 그에게 꺼냈다. 그것은 한 도시에 살고 있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삼하12:1~6).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한 자였다. 부자는 자기 집에 양떼와 소떼가 아주 많았으나 가난한 자는 가까스로 어린 암양 새끼 한 마리를 사서 집에서 기르고 있었다. 그러니 애지중지 딸처럼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행인이 부잣집에 찾아왔는데 부자가 그만 자기의 짐승은 아끼고 가난한 자의 암양 새끼를 강제로 빼앗아 잡아 행인을 대접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윗은 그런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하고 그 죄값으로 4배를 갚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다윗은 그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였다. 그리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지었습니다"(삼하12:13)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이때 다윗은 진정 회개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회개하는 시늉만 한 것일까? 사무엘하의 기록만으로는 그가 진정 회개했는지 그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시편의 기록들을 보면, 그때 그가 어떠했었는지를 잘 나온다. 그러한 기록들에는 시편 51편, 32편, 40편, 6편 등이 있다. 이 시편의 글들을 보면 그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확실하게 그때 인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시51:3), 그가 칼로 우리아장수를 죽였던 살인자였음도 알 수 있다(시51:14). 그리고 그가 그 일로 인하여 회개를 시작했을 때에, 회개 중에 자신의 죄가 머리털보다도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고 그 눈이 자신의 침상과 요를 적셨다고 한다(시6:6). 그러니 그의 회개가 진실한 회개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4. 다윗이 정말 진실한 회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받게 되었는가?

  만약 우리가 사무엘하를 읽어 본다면 우리는 다윗이 분명 회개를 하였고 죄용서를 받았으나 그 벌은 면제받지 못한 채 일평생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회개와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회개했을 때에는 죄용서를 받을 뿐만 아니라 더불어 죄에 대한 처벌까지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런데 다윗도 우리들처럼 분명 진실한 회개를 하였는데 그는 왜 죄용서만 받았을 뿐 죄에 대한 형벌은 면제받지 못한 것인가?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가설들을 세워볼 수 있다. 첫째, 다윗이 회개를 하긴 했으나 형식적인 회개만 하였을 뿐 참된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헝벌을 내렸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다윗의 회개는 진정성이 있는 회개였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둘째, 그가 회개를 하기는 했지만 그가 죄를 지은 즉시 회개한 것이 아니라 무려 10개월 동안 죄를 숨기고 있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비로소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책망을 했을 때에 억지로 회개한 것이기 때문에 그가 형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를 징계하기로 결정해 놓은 상태였기에 그가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견해이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어 보이나 완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셋째, 그가 지은 죄는 일반 사람들이 지은 죄가 아니라 한 국가의 지도자가 저지른 범죄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죄값을 무겁게 물렸다는 것이다. 이건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칭하였고, 내 종이라고 하였으며, 성령까지 주신 자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윗도 하나님을 매우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여삐 여기시고, 한낱 목동이었던 다윗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며, 사울의 나라를 그에게 주셨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부하 장수의 아내가 탐이 나서 그녀와 간음을 행하였고, 또한 그녀의 남편을 살해했으니,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죄값을 엄히 물으셨다는 것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모세도 단 한 번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죄값을 엄히 물으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것이 다윗이 진정으로 회개하고도 그 죄에 따른 형벌을 받게 되었던 진정한 이유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5. 다윗이 회개하고도 중한 처벌을 피하지 못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다윗이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도 엄청난 처벌을 받은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리시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다윗의 시대와 지금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의 시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경륜적인 차이)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왜 형벌을 내리시는지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시는 것은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이 있는지를 우리는 율법 말씀을 공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상 숭배를 한 자는 3~4대까지 죄값을 물린다고 하셨다(출20:5). 그리고 이웃의 아내와 간음을 행한 자와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레20:10, 24:17). 그러므로 다윗이 지은 간음죄와 살인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임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다윗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들려주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34:6~7)" 그러므로 범죄한 다윗이 형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다윗이 이러한 죄를 지은 후에 진실로 회개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회개하는 자에게도 이렇게 형벌을 내리시는 것인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해 보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그렇다. 진실로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은 깨끗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말씀도 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55:7)"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악하고 불의한 자라 할지라도 여호와께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고 그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내리실 수도 있고 내리지 않고 긍휼을 베푸실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징계를 내리셨다가 철회하신 경우도 있었고, 또한 내리려고 생각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때도 있었다. 히스기야왕은 전자의 경우이고,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성의 회개는 후자의 경우이다. 그러므로 회개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실 수도 있었고 그 죄값을 계속해서 물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값을 엄하게 물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지만, 일평생을 두고 죄값을 엄하게 치러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구약시대에는 회개를 한 자가 징계를 받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6.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회개하면 우리도 다윗처럼 형벌을 받게 되는가?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경우다. 과연 우리들은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우리도 다윗처럼 진실로 회개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의중에 따라 처벌을 받기도 하고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다윗의 경우처럼 형벌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경륜적으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2가지 측면에서 다윗과는 다른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다윗 시대는 아직 예수께서 인류의 죄값과 형벌을 대신 치르기 전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시대는 이미 2천년 전에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죄값을 처리하려고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시려고 채찍에 맞으시고 못 먹고 못 입으셨으며 수치와 멸시와 천대를 대신 받으신 이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시대에는 회개한 자라도 그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처우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분의 의중이 중요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에게는 죄를 엄히 물으시려고 결정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토록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탐욕을 남용하여 남의 가정을 파탄내었을 뿐만 아니라 살인까지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나라의 지도자에게는 죄값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지를 알려 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시대는 다르다. 예수께서 이미 오셔서 인류의 죄값도 처리하셨고 우리가 받을 형벌까지도 대신 받으신 후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내가 죄를 지었을 때에 이미 우리 몸속에 들어와 있는 귀신들을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서 내 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조상들의 우상 숭배의 죄를 우리가 대신 회개함으로 우리 속에 들어와 있거나(10%) 아니면 우리 밖에서 진치고 있는 악한 영들(세대의 영들)(90%)을 우리가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우리가 자백함으로 회개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 말씀이다(요일1:9).

  그리고 둘째는,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의 천사를 시켜서 벌을 주시던 시대였다는 것이다(삼하12:13).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이 일어나게 하겠으며,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들을 빼앗을 것이고 그들을 네 이웃들에게 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이 모든 재앙들을 구약시대에는 다 하나님께서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 그렇게 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한 자라도 재앙을 더 받게 할 것인가 아니면 덜 받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결정하심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온갖 저주를 다 담당하신 이후에는 우리가 귀신들과 또한 그들이 가져다 준 저주를 처리하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적어도 신약시대부터는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귀신들이 사람들의 몸속에 들어와서 온갖 재앙을 일으키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로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회개라는 것은 놀라운 축복의 도구가 아닐 수가 없다. 왜냐하면 회개하는 즉시 귀신을 내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며, 귀신의 세력을 해체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막16:17~18).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진실로 회개하고 있는 자에게는 결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형벌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우리가 회개를 하지 못해서 귀신의 공격을 받거나 귀신이 주는 재앙을 받고 있을 뿐이다. 

 

7. 나오며

  그렇다. 실로 지금의 시대는 복된 시대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하늘에서는 우리의 죄들을 용서받게 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는 귀신들과 저주들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이 살던 시대는 지금의 우리의 시대와 경륜적으로 달랐다. 그때에는 아직 예수께서 형벌을 대신 받기 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시켜 형벌을 내리던 시기였다(삼하12:13).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예수께서 이미 우리의 저주를 다 담당하신 뒤이고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귀신들을 내보내고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받고 있는 저주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거의가 다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귀신들이 공격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재앙들을 두고 하나님을 향하여 삿대질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대신 받게 하신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알라. 우리는 다만 내가 죄를 지었을 때에 내 몸에 침투해 들어온 악한 영들을 내가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서 내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들로 인해 악한 영들이 내려와 있더라도, 우리가 조상들이 지은 죄를 대신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고 그들의 세력을 와해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형통의 축복은 절로 뒤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내 집안에는 왜 형통의 축복이 오지 않느냐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말을 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 조상들이 그만큼 죄를 많이 지었기에 응당 처벌을 받고 있는 것이요, 우리가 회개하지 못해서 귀신들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의 게으름을 회개하고 우리의 죄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의 범죄로 인하여 우리 주변에 포진해 있는 악한 영들을 와해시키기 위해 회개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할수록 우리는 온갖 저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다 누리게 될 것이다.

 

2022년 01월 23일(주일)

정병진목사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를 통과하여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과연 전세계적인 전염병의 창궐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인가? 이것을 하나님의 징계라고 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며, 이 징계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또한 이것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2020-04-19(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코로나는 과연 하나님의 징계였나?(히12:8~11)
https://youtu.be/nqfIKDgfOww


1. 들어가며

  지난 12월 30일,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놀라운 속도로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2020년 4월 19일 현재, 코로나 확진자가 224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15만5천명을 넘어섰다. 특히 미국은 너무나 심하다. 벌써 70만명이나 이 질병에 감염되었고, 죽은 자들도 3만5천명이 넘어섰다고 한다. 시작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어찌하여 창궐은 한국을 거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방역이 문제인가? 국제사회가 하나로 엮어있다는 것이 문제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특히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인지 자연현상인지를 성경적으로 들여다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전염병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하나님의 징계인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는 단순한 좀 독한 감기가 국제적으로 퍼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징계인가? 어떤 이는 그것은 전염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징계에 해당한다. 왜 그런가? 왜 그것을 하나님의 징계라고 확언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따라 다음과 같이 3가지 근거를 통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그것이 하나님의 집(성전)을 파괴하거나 성전문을 닫아버리는 일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징계임에 틀림없다(말1:10). 하나님께서는 말라기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제단 위에 더이상 헛된 제물을 불사르지 못하게 하고, 너희가 제물을 더이상 바치지 못하도록 차라리 누군가 이 성전문을 닫아버렸으면 좋겠다(말1:10)" 그렇다. 하나님의 성전이 파되거나 문이 닫힌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징계다. 둘째,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흩어져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임에 틀림없다(렘29:1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남유다백성을 흩어버리셨다. 바벨론 군대를 끌어들여 성전을 파괴하도록 허락하셨고 남유다 백성은 죽임당하거나 포로로 잡혀가 타국에 흩어버리셨다. 이것이 징계가 아니라면 무엇을 징계라고 할 수 있는가? 셋째, 그것이 전염병의 창궐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면 그것은 징계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민족과 국가를 치시는 3대 심판의 도구가 칼(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이었기 때문이다(렘24:9~10, 29:18). 고로 지금 전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확산은 하나님의 징계임에 틀림없다.

 

3. 현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난 3개월간의 전염병을 접하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가? 이 사건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적어도 3가지 이상은 될 것이다. 첫째,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직장을 폐쇄함에 따라 일상생활과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재앙과 손실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전세계적인 코로나의 감염으로 인해 폐쇄조치된 일로 말미암아 나타난 재정적인 손실을 천문학적인 숫자가 되어가고 있다. 둘째, 전염병의 창궐을 막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의 폭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국가마다 상대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미리 연습해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비상사태훈련을 해보고 있는 것이다. 성전에 나와 예배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잘 받고 있는 것이다. 셋째, 교회생활을 핵심키워드인 주일성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성도들의 신앙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임을 예측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해서 더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파악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4. 하나님께서는 왜 전염병의 징계를 내리시는가?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실 때 전염병으로 치실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염병으로 사람을 치시고자 할 때에는 어떤 경우인지 알아보자.

  첫째, 부정적인 이유부터 살펴보자. 그것은 한 민족이나 국가가 하나님에게 죄를 짓거나, 한 민족이나 국가의 지도자가 범죄했을 때에 전염병의 징계를 내리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출애굽직전의 애굽에게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때 모세를 시켜 애굽에 있는 자기의 백성을 내보내 줄 것을 요청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을 들은 바로왕은 그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여호와가 누군지를 알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중에서 5번째 재앙이 바로 가축 전염병 재앙이다(출9:3). 하지만 그것을 사람에게 내렸을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고 말았을 것이다. 나중 7번째 우박재앙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손을 펴서 돌림병(전염병)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라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라(출9:15)"고 하셨다. 그만큼 전염병으로 인한 재앙은 손실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디 그뿐인가? 하나님께서 남유다의 히스기야왕 때에도 전염병으로 사람을 치셨다. 그때에는 대상이 달랐다. 왜냐하면 히스기야왕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농락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앗수르 군대를 하루 아침에 전염병으로 치셨다. 그때 숫자가 무려 18만5천명이나 되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백성을 농락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능멸하려는 자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히스기야왕 때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조롱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능멸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은 사실은 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기독교를 핍박해왔는데, 2018년에는 중국당국이 종교시범정책시행 도시로서 우한을 선택하여 대대적인 기독교인 핍박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지하교회 강제 폐쇄, 십자가 철거, 교회당 폭파, 성경 불태우기, 교회당마다 cctv설치하여 감시하기, 교회당 안에 국기와 시주석 초상화 설치하기, 예배순서에 정부선전물 시간 넣기, 교회 목회자 수감 등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로 하나님께서는 중국에 있는 당신의 백성을 핍박하고 하나님을 능멸하는 중국을 그냥 좌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중국우한시에서 발흥한 신종코로나의 발생원인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적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에게 내리는 재앙으로서 전염병은 꼭 이방인에게 내리는 것은 아니다. 출애굽1세대들에게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후,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그들을 처리하려고 하셨는지 아는가?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멸하고(없애버리고), 네가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민14:12)"고 말씀하셨다. 만약 목숨을 건 모세의 중보기도가 없었더라면 그날 그들은 전염병으로 다 광야에서 쓰러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민족의 지도자가 하나님을 버리고 권력을 의지하거나 하나님이 아닌 것을 섬겨 우상숭배를 자행할 경우에도 전염병으로 치셨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다윗왕 때 벌어진 사건이다(대상21장). 다윗은 자신이 늙자(65세) 이제 15세정도밖에 되지 않은 솔로몬에게 나라를 물려주기 전에, 현재의 군사력으로 안정된 나라를 물려줄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 인구(군사)를 조사하게 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악하게 여기시고 그 민족을 치신다. 그러자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한다. "죄를 지은 것은 나인데, 왜 당신의 백성을 치십니까? 죽이시려면 나와 내 집을 내리치소서"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의 참된 모습을 본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든 칼을 거두게 하시고,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한다. 그러나 이미 3일전에 시작된 전염병으로 인해 벌써 7만명의 백성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렇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지도자가 타락했을 경우에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염병의 징계를 내리시는 다른 이유도 있다. 둘째, 거기에는 긍정적인 이유도 있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의 거룩하심에 동참하게 하시기도 하기 대문이다. 이것은 히브리서 12:9~11에 나온다. 우리들은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오죽했으면 예배당의 문을 닫히도록 허락하셨겠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감사할 일도 있다. 왜냐하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없는 환경에 되었을 때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혼자 혹은 가족단위로 신앙을 유지하는 패턴을 훈련해야 할 때가 되었다. 국가가 막든 하나님께서 막으시든 이러한 상황은 또한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중간적인 이유도 있다. 하나님께서 이번 기회를 통하여 누가 알곡인지 쭉정이인지를 흔들어보시기 위함도 그 이유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성도들은 태어나서 사상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범세계적으로 교회가 문을 걸어 잠근채 2달 이상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 일은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공공선을 이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일로 인하여 국가가 교회가 드리는 예배행위를 제지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어느 시점에 이르러, 국가가 기독교인이 신앙을 갖는 자체를 사회악으로 규정하여,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킨다면 교회는 그날부로 다시 교회문을 열 수가 없게 될 날도 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이런 날에 대비할 수도 있어야 한다. 소수가 모여 예배할 수밖에 없는 날이 도래한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우리는 어찌하든지 주께 붙어있어야 한다. 떨어져나가면 우리는 쭉정이로 발견될 것이기 때문이다.

 

5.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질 때 성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번처럼 전염병의 징계가 내려질 때 성도는 어떻게 대처해야 옳은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 방법으로 대처하기를 권해본다.

  첫째, 이미 하나님의 징계가 시작되었다면 겸손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어왔던 죄에 대흔 결과물이 나타난 것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참고 참고 또 참으셨다. 그래서 마지막 경고조치로서 전염병을 내리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남유다에게도 참고 참고 참으셨다.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 경고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끌어들여와서 남유다를 치셨다. 성전을 파괴하도록 허락하셨고 제사장들은 죽어나갔다. 살아남은 백성들은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70년을 보내야 했다. 그렇다. 이미 재앙과 징계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돌이킬 수 없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시간이 얼마나 될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 시간을 우리는 받아들여 속죄의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둘째, 징계 속에서도 참된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바벨론에 끌려 잡혀갔지만 거기서 풀어지지 않고 오롯이 신앙의 정결을 유지했던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말이다. 성전이 없어도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마음에 작정한 것이 있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은 먹지 아니하리라. 절대 우상에게는 절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다니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창문을 열어놓고 아침과 점심과 저녁에 세 차례 꼭 기도했다.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셋째, 그동안 자신이 잘못 살아왔던 개인적인 범죄나 민족과 국가적인 범죄행위를 자복하여 돌이켜 회개하면서 더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해방후 3년만에 3,500개의 교회가 사라지게 된 것을 두고 김일성을 꼭두각시로 내세운 소련공산당의 전략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7년전에 평양서문밖교회에서 신사를 참배할 것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내게 불어닥치고 있는 징계가 있다면 지금 지은 죄 때문이 아니라, 이전에 지었던 죄에 대한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틀림없이 그러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7년년전,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6. 나오며

  그리스도인들이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은 우리가 재앙이나 하나님의 징계를 만났을 때 지금있는 현상에만 집중하지 아니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고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지금 있는 사건이 뒤로 미뤄지고 미뤄졌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전염병의 재앙이 지금 당장 있는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계속해서 자행한다면 우리도 몇 년 뒤에 아니 몇 십 년 뒤에 또다시 재앙과 징계를 맞딱뜨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시대와 우리후손들에게 좋은 것만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전염병은 오늘의 일로만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사람을 죽이는 재앙이 찾아올 것이다. 그날을 대비해야 한다. 어떤 신앙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지 지금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때가 되어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 북한에 교회를 세우고 이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다가 주님을 만나볼 수 있도록 그날을 지금부터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0년 04월 19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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