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44) 내게 일어난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아는 방법은?(행10:17~23)_2022-09-22(목)

https://youtu.be/j_I2Xo1rQRM  [혹은 https://tv.naver.com/v/29459108 ]

 

1. 환상을 본 후 왜 베드로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는가?

  환상을 본 후 베드로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은 환상 가운데 그가 예상치 않은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이제까지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실행해왔던 음식법을 깨뜨리라는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전부터 계속 해오던 방식대로 그냥 살 것인가 아니면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순종할 것인가?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베드로는 이전에 자신이 소신있게 실행해왔던 규례가 틀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였던 것일까? 그런데 베드로에게 들려진 음성은 무려 환상 중에 세 번씩이나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이제는 네 고집을 내려놓고 하늘의 음성에 순종하라"고 하였던 것은 아닐까? 그러자 베드로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행9:17,19).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뜻과 섭리라면 이제는 나도 그 뜻에 순종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2. 베드로의 고민과 더불어 발생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이처럼 베드로가 자신이 보았던 환상(행9:10~16)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을 때, 자신의 마음 속에 계신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밖에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으니, 일어나서 내려가서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이는 내가 그들을 보내었기 때문이다."(행9:20). 그리고 가서 진짜 내려가 확인해 보니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세 사람이 그 집에 와 있었다. 한 사람은 군인이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베드로의 하인이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말했다. "백부장 고넬료는 의롭고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유대 모든 민족에 의해 증거되고 있는 확실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한 거룩한 천사로부터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그분의 집 안으로 초청하여 당신의 곁에서 당신의 입말씀(레마들)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행10:22). 그러자 베드로는 우선 그들을 집에 들어오게 한 후 묵게 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몇몇의 형제들과 함께 그들을 따라 나서게 된다. 

 

3. 베드로는 세 사람이 오기 직전 무슨 환상을 보았는가?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사실 지붕 옥상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환상이 보였다. 하늘이 열리면서 한 보자기 그릇같은 것이 내려왔는데, 그 모양이 큰 보자기 같았고 네 귀에는 끈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율법상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함께 들어있었다. 거기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도 있었고,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새들도 있었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일어나라. 도축하라. 그리고 먹으라" 이는 곧 일어나서 그것들을 잡아 먹으라는 음성이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왜냐하면 저는 언제나 부정하고(속되고) 불결한(깨끗하지 않은) 것들은 어느 것이라도 결코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행10:14). 그리고 두번째로 소리가 났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던 그것들을 네가 부정하다고 말하지 말라"(행10:15). 그리고 그러한 일은 세 번씩이나 연거푸 있었다. 그리고는 그릇이 곧 하늘 안으로 올라갔다. 

 

4.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왜 음식환상을 사용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이제는 그가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주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전히 이방인의 전도에 대해서 소극적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알게 해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장 깨뜨리기 어려워하고 있는 율법규례를 보여주시면서, 이제 이방인이 부정하다는 생각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폐지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즉 구약의 율법 가운데 음식법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성됨으로 폐지되었다는 것을 환상을 통해 알려주신 것이다. 15절에서도,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던 그것"이라고 분명하게 알려주셨다. 사실 그 보자기 안에는 부정한 짐승이 있었지만 그러한 짐승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미 그것을 깨끗하게 했다는 것이며, 그러한 일은 과거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럼, 음식법의 규례는 언제 폐지되었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이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율법 가운데 의식법들을 그때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예표로서 의식법들은 예수께서 성취하셨고, 구별은 없애버리신 것이다. 그러한 철폐는 음식법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음식법 뿐만 아니라 할례법(갈5:2~3)과 안식일법(갈3:10,골3:126~17,롬14:5~6) 그리고 절기법(갈3:10,골3:16~17)과 정결법(엡2:13~15) 등도 다 함께 폐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온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때까지 계속해서 율법규정에 따라 그것을 이방인에게까지 적용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것을 바꾸시기 위해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다. 

 

5. 내게 일어난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현재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쌍방간에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내게 찾아와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러시는데, 나에게 100만원을 주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한면 그 사람에게 100만원을 그냥 줄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일이 진행될 때에는 과연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가를 잘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때에는 결코 부탁하는 사람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부탁하는 사람이나 그 청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동시에 다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있다는 것을 양쪽 편에 사람들이 다 인정할 수 있도록, 양쪽 사람들에게 먼저 무엇인가를 보여주거나 듣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탁하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쉽게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 정녕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부탁받을 사람에게도 미리 성령의 감동을 주시든지 아니면 초자연적인 계시로서 알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랬다. 베드로와 고넬료 사이가 그랬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고넬료에게 환상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천사의 지시를 통하여 베드로를 청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기도하는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진행될 것임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성령께서도 베드로에게 직접 그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렇다.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리고 순종한 것이다. 특히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시간까지도 다 정확히 맞추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고 더 확증해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당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로 하여금 환상을 보게 하셨고 그것이 무슨 뜻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게 하신 것이다. 만약 베드로가 환상을 보기도 전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먼저 왔더라면, 아마 베드로는 이방인들을 따라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이방인의 집을 심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환상 가운데 부정한 짐승은 절대 잡아먹을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2022년 09월 22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18) 하나님의 섭리로 선택된 사울, 다윗과는 무엇이 달랐는가?(삼상9:1~24)_2021-12-07(화)

https://youtu.be/-wGaat1Cid8  [ 혹은 https://tv.naver.com/v/23950103 ]

 

1. 사무엘이 늙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무엇을 요청했는가?

  사무엘이 늙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이방 나라들 같이 자기들에게도 왕을 세워 자기들을 다스리게 해 주기를 요청한다(삼상8:5). 왜냐하면 자기들에게도 왕이 있어야 다른 이방 나라들처럼 왕이 앞서 나가서 싸움을 싸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삼상8:20). 그러자 사무엘은 그들의 요구에 대해 기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받고 왕의 제도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왕을 세우려고 준비한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어떤 왕을 준비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청에 따라 왕이 될만한 자를 선택하신다. 그가 바로 기스의 아들 '사울'이라는 젊은이다(이 때 그의 나이는 적어도 35~39세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사울은 대체 어떤 젊은이였길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받은 것인가? 그것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6가지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첫째, 그는 믿음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자였기 때문이다(삼상9:1). 그는 5대 선조들 대부터 준비된 훌륭한 믿음의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5대 선조들까지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둘째, 그는 외모가 출중하였고 전쟁도 잘 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삼상9:2). 왜냐하면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 가장 준수한 젊은이였고,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어깨 위만큼 키가 더 컸기 때문이다. 셋째, 그는 부모에게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삼상9:5).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아무런 대꾸없이 그대로 순종할 줄 알았다(삼상9:3~5). 왜냐하면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오라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군말 없이 그대로 순종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며칠 동안 나귀를 찾아 다녔지만 찾지 못했을 때에, 혹시 나귀 때문이 아니라 자기 때문에 오히려 아버지에게 걱정을 끼칠까봐 함께 길을 떠난 사환(소년)더러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넷째, 그는 아랫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삼상9:6). 왜냐하면 그가 사환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 사환이 대답하기를 "이 성읍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 존경을 받는 사람인데, 그가 말한 것은 다 응답이 된다고 하니 가서 그분을 찾아가 물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하고 묻는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는 어른을 공경할 줄도 아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삼상9:7). 왜냐하면 그가 사무엘을 찾아가려고 했지만 어찌 빈 손으로 가겠느냐면서 혹시 가진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사환에게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 그냥 가지 않고 예의를 갖추어서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언제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던 자였다. 그는 역시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그는 겸손함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삼상9:21). 왜냐하면 곧이어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을 때에 사무엘이 그와 그의 아버지의 집을 하나님께서 찾고 있었다고 하니, 그는 겸손히 자신은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지파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문은 베냐민 지파의 모든 가문들 중에 가장 미약한 가문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실 당시에 이만한 성품과 인물됨을 갖춘 자는 사울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3.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오기 하루 전날에 사무엘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오기 하루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삼상9:16)". 그랬다. 사울이 어쩌다가 사무엘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 그렇게 되도록 이끌어가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루 전날에 미리 사무엘에게 그 다음 날 일어날 일을 먼저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대접할 음식까지 미리 장만해 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4. 사울이 나귀를 찾다가 사무엘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사무엘에게 보내셨던 것이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렇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며칠 전에 암나귀를 잃어버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연히 암나귀들이 집을 나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은밀하게 불러내어 그를 향한 당신의 계획을 미리 알려 주기 위해 그러한 일을 행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사울의 이야기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마주하게 된다. 첫째, 사울의 부친이 암나귀들을 잃어버린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서 사울이 밖으로 나와 사무엘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나귀들을 찾도록 찾아다녔으나 못 찾은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못 찾고 헤매었으니 사무엘에게 물으러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같이 길을 떠난 사환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물어보자고 제안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사울의 사환이 사무엘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한 자였다면 사울이 사무엘을 만날 리도 없었을 것이다. 고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사건마저도 사실은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른 배정하심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이처럼 사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한 자였다. 그렇다면 다윗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울도 왕으로 선택받은 사람이고, 다윗도 왕으로 선택받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대체 이 둘에는 무슨 차이가 있었길래 사울은 단지 두 번의 실수로 인하여 그만 폐위를 당하고 버림을 받아야 했으며, 다윗은 대체 어떠한 사람이었길래 두 번의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손이 계속해서 왕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 것인가? 이 문제는 사무엘하까지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서 더 자세히 보겠지만, 오늘 살펴보는 한 가지 사실은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갑작스런 요청에 따라, 당시 하나님께서 왕이 될만한 가장 적합한 인물로 선택된 자라고 한다면, 다윗은 아예 하늘에서부터 왕으로 배정을 받아서 이 땅에 그 영이 보내어진 자라는 사실이다. 물론 사울도 5대째 믿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자였기에 이 땅에서 왕으로서 택함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다윗은 하늘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의 택정하심을 입고 이 땅에 보내어졌던 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둘은 차이가 나는 것이다. 둘 다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으로 예정된 것은 맞지만, 다윗은 이미 하늘에서부터 이미 왕으로 쓰임받도록 예정되어서 이 땅에 보내어진 인물이었고, 사울은 이 땅의 사람들의 간구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 요청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서 선택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사울은 왕으로 허락되어진 인물이라면 다윗은 보내어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울은 이 땅 백성들의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서 선택받은 사람이라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택정하여 준비되었다가 이 땅에 보내어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2021년 12월 07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룻기서강해(04) 우연 그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가장 위대한 섭리의 시간(룻1:22~2:7)_2021-11-12(금)

https://youtu.be/WbeI3iujpYU [ 혹은 https://tv.naver.com/v/23599444 ]

 

1. 인생의 성공의 잣대는 무엇인가?

  인생의 성공 잣대는 잘 사는 것이요 건강하게 사는 것일 수 있으며, 자녀가 잘되는 것일 수 있다. 재력자와 권력자가 되는 것,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 자녀가 출세하는 것 등은 인생 성공의 잣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인생 성공의 잣대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보이는 물질세계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참된 성공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의 영원한 주인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요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곧 인생 성공의 열쇠는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며 결국에 나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시 내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요,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의 사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나오미는 처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으로 이주할 때에는 풍족하게 나왔으나 다시 고향으로 갈 때에는 비어 돌아가게 되었으니 일반적인 눈으로 볼 때 그녀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 중에 가장인 자신의 남편을 잃어버렸고 자기의 두 자식을 잃어버렸으니 확실히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그녀는 2가지를 붙듦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째 그녀는 회개를 붙들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그녀는 효심이 가득하고 신앙이 좋은 며느리인 룻을 데리고 돌아왔으니 그녀는 진짜 복된 인생으로 바뀔 수가 있었던 것이다. 

 

2. 룻이 이삭을 주우러 보아스의 밭에 가게 된 것은 우연인가?

  시어머니와 룻이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왔지만 그들은 가진 것이 없었고 먹을 것도 없었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그들에게 당장 무엇이라도 먹을 것이 필요했기에, 며느리 룻은 곧바로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이삭을 주우러 밭으로 나간다. 왜냐하면 그때가 마침 보리 추수를 시작하는 초실절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그날 찾아간 곳은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서 유력한 자였던 보아스의 밭이었다. 보아스는 당시 재력있는 유지였다. 그래서 그는 큰 밭을 소유하고 있었다. 고로 그해에 추수하는 일들을 직접 보려고 자기의 밭으로 나간 것이다. 그런데 그 밭에 룻이 와서 이삭을 줍고 있었다. 성경은 말한다. 그녀가 보아스의 밭에 간 것은 '우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곳에는 '마침' 보아스가 와 있었다고 말이다(룻2:3~4).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일어나고 있는 귀중한 만남이었던 것이다. 

 

3.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우리는 왜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는가?

  룻이 우연히 그 밭에 갔으나 보아스는 일부러 그 밭에 나갔다. 어찌되었든 보아스와 룻의 첫 만남이 이때 이루어진 것이다. 그날 보아스는 다른 과부들도 와서 이삭을 줍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와서 이삭을 줍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룻은 달랐다. 이방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모압 지방에서도 괜찮은 집안 사람이었기에 때문에 그녀의 옷차림과 움직임은 전통적인 베들레헴 사람과는 조금 달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젊었었다. 예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녀는 금방 보아스의 눈에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보아스는 그 소녀가 누구인지를 사환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그는 그녀가 모압 지방 사람이었는데 말론에게 시집와서 남편이 죽은 뒤에 시어머니를 따라온 룻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두고 왜 우리는 이 두 사람의 만남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이 일이 장차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따르려는 이방인들을 취하여 자신의 아내를 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두 사람이 이렇게 한 밭에서 만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가지였다. 이것들이 다 맞아 떨어져서 룻과 보아스가 만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첫째, 그때가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에 보리 추수를 시작하는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기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룻과 보아스는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둘째, 보아스는 나오미가 내놓은 엘리멜렉의 밭을 살 수 있을 만한 재력가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 밭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다면 보아스와 룻은 못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셋째,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율법 말씀대로 살지 않았다고 한다면 룻을 현숙한 여자이자 매우 신앙이 돈독한 여자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넷째, 그의 마음이 약자들을 배려하는 긍휼과 인애(헤쎄드)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부자라고 해서 그의 인심이 후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신앙도 좋았던 보아스는 인품도 훌륭하여 약자들을 배려할 줄 아는 자비로운 자였던 것이다. 다섯째, 아마도 그가 나이는 좀 들었겠지만 그때까지 총각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부인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엘리멜렉의 밭을 살 수는 있어도 룻을 부인으로 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하나님의 간섭이요 섭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4. 룻과 보아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사실 룻과 보아스는 하나님께서 둘이 만나게 하여 결혼시킴으로 다윗의 조상이 되게 하고 메시야의 조상이 되게 하려는 의도에서 만난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당시 룻과 보아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첫째, 먼저 보아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엘리멜렉의 친족이었고, 그 마을의 유력한 재산가였으며, 자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랫사람도 귀히 여길 줄 아는 부드러운 인격의 소유자였다. 더욱이 그는 긍휼(헤쎄드)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연약하며 아프고 불쌍한 자를 잘 돌아보는 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으며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살던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나오미와 룻이 가진 기업(토지)을 물러줄 수 있는 능력가로서, 순번이 2번째인 사람이었다. 그러면, 룻은 어떠한가? 겉으로 보기에 그는 과부였고, 이방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인격이 고결하였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며, 시어머니를 섬기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낮은 곳에 내려가서 일도 할 줄 아는 여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순종적이었으며, 효심이 가득했고, 무엇보다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고향과 친적과 아비집이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신앙이란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었으며, 최고의 덕목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신앙이 좋았던 사람이었기에 서로가 의지가 되었고 기쁨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5. 신앙하는 영적인 감각이나 신앙의 결단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처음부터 신앙이 좋았던 보아스가 나중에 신앙을 갖게 된 사람 룻과 만났다는 것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 아닌가 생각되어 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보아스나 룻이 서로의 처지를 알고 있었지만 둘 다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사실 보아스라는 이름과 룻이라는 이름 자체가 들려주는 교훈도 상당하다. 사실 성경에서 우연하게 등장하는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먼저, 보아스의 이름을 보자. '보아스'라는 말은 그 어원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주변 나라의 말로 풀이하면 '복된 자, 힘센 자'이다. 그런데 이것을 히브리어의 어원으로 풀어보면 그 이름의 뜻은 '재빠름, 민첩함'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누군가가 영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을 때에, 즉시 자기의 것이 되게 하는 자는 그것에 대해 민첩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보아스는 이러한 감각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룻'이라는 이름은 '친구' 혹은 '우정'이라는 뜻을 가졌다. 그러므로 그녀는 처음부터 결코 시어머니를 배신하거나 떠날 수 없는 사람으로 아예 안배가 되어 있었던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영적으로 민감하여 하나님이 보내시는 싸인을 금방 헤아릴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1년 11월 12일(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57) 하나님의 섭리를 믿은 요셉 신앙의 아름다운 승리(창45:1~28)_2021-07-22(목)
https://youtu.be/BvvnKnD5RSE  [혹은  https://tv.naver.com/v/21478544 ]

 

1.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섭리"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나 사건들이 그냥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께서 관여하심으로 일어난 것이며, 또한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가신다고 믿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고 모든 만물에 다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는 만물 특히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방식을 일컫는 것으로서, 인간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관심과 지키심과 인도하심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특별히 '섭리'라는 말을 한자로 보면, "다스릴 섭"자와 "이치 리"가 합쳐진 말로서,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는 이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요셉은 무엇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나요?
  요셉은 자신이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린 것을 두고서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먼저 애굽에 들어가게 하심으로, 우선 자기의 아버지와 형제 가족을 굶주림으로부터 구원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의 아버지인 야곱의 후손들이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하게 되어 혼합신앙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기 위하여 따로 구별된 곳(고센 땅)에 살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 크게는 창세기 15장의 횃불언약의 성취를 위하여 요셉을 먼저 애굽에 보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형들과의 재회 가운데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창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고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는 자신에게 불어닥친 불행이나 고난 고통을 보고도 결코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도 꼭 필요하기 때문에 내게 허락하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축복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자기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누구와 나누라고 해도 거기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쓰시려고 했던 것인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어떻게 쓰시려고 계획한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그를 단지 애굽의 총리대신으로서 애굽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존재 내지는 애굽 사람을 다스릴 존재로서 계획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신 것은 요셉이 성공하고 출세하여 잘 먹고 잘 살게 하려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일신상의 행복만을 위해서 그에게 고통과 억울함들을 경험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하고자, 그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누군가는 먼저 애굽으로 건너가서 거기에서 고위관리가 되어서, 야곱의 모든 식구들에게 식량을 제공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구별된 고센 땅에서 야곱(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생각했습니다. 그때 형들이 자신을 팔아서 애굽으로 오게 된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장차 다가올 기근을 대비하게끔 자신을 미리 보낸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4. 에스더는 어떻게 자신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게 되었나요?
  구약의 인물로서 유명한 여성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들 중에 아마도 다말과 룻과 에스더 왕비가 뽑힐 수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 에스더 왕비는 정말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실천한 인물일 것입니다. 에스더는 바벨론에게 포로민으로 잡혀갔다고 밀려밀려 페르시아의 수산궁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은 폐위된 와스디를 대신하여 새로운 왕비를 선택하는데, 그때 모르드개가 자신의 딸처럼 키웠던 조카 에스더가 왕비로 간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 곧 바사의 제2인자였던 하만(아말렉 족속의 후예)이 모르드개를 포함하여 유다인 전체를 몰살시키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자 모르드개가 왕비와 접견한 후에 그녀에게 들려드린 말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에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그렇습니다. 에스더가 타국에서 왕비가 된 것은 그냥 우연히 된 것이 아니며, 우연이 발행한 축복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왕비가 된 것은 하만에 의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해있는 유다인을 도우라고 하나님께서 미리 왕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인 왕비는 모르드개에게 3일간의 금식을 요청한 후 왕에게 나아가서 결국 유다인들을 하만의 음흉한 계획에서 건져내게 됩니다. 

 

5.  모압여인 룻은 무엇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나요?
  모압 여인이었던 룻도 비슷한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한 사람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사람인 말룐과 결혼했지만 얼마 안 있어 시아버지도 죽고 남편도 죽고 말았기 때문에, 그녀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대땅 베들레헴으로 갈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모압에 있을 때에 시어머니로부터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배웠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에게 참된 신앙을 가르쳐 주신 시어머니를 그냥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를 일평생 시어머니로 모시고 살겠다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와 정든 조국 땅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룻이 곡식을 주으러 가던 날부터 보아스의 밭으로 그녀를 안내하셨습니다. 그때는 기근의 때라 누가 특별히 그녀를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줍기를 하러 갈 때에, 밭의 주인 보아스가 그녀를 보고는 그녀를 맘에 들어했습니다. 그는 룻의 시아버지였던 엘리멜렉의 친족으로서 엘리멜렉의 기업 무를 자로서 볼 때에는 제2순위에 해당했지만 제1순위자가 그것을 떠맡기를 거부하자, 곧 제1순위가 되어 그녀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으로 맞아들였습니다. 룻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면서 자신이 오롯이 겪어야 할 고생을 결코 고생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맡기고 시어머니의 말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녀는 이삭을 주우러 가면서도 그것에 대해서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그녀는 보아스의 아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보아스로부터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오벳"이라고 하는 아들로서, 장차 다윗의 할아버지가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비록 모압여인이었고 과부였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오롯이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임으로 결국에는 메시야의 족보에 오른 기념비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21년 07월 22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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