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35) 사마리아의 성령세례와 가짜 회심자 시몬을 위한 사도의 처방(행8:14~25)_2022-09-01(목)

https://youtu.be/bLizjW1ZaV8  [혹은 https://tv.naver.com/v/28957528 ]

 

1.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어떤 관계였는가?

  '유대인들'이란 남북분열 왕국시 남유다의 2개지파(유다와 베냐민)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이며, 사마리아 사람들은 북이스라엘의 10개지파의 후손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상극이었다. 왜냐하면 B.C.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할 때 앗수르가 혼혈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만 혼혈민족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북이스라엘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긴다. 그렇지만 신앙과 혈통의 정통성을 잃어버린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는 남유다 사람들이 그들을 좋게 보아줄 리는 없다. 왜냐하면 남유다도 역시 B.C.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지만 그들은 신앙의 지조와 혈통적인 지조를 지켰으며, 포로된 지 70년만에 예루살렘에 다시 귀환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유다인들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개 취급하듯 하였으며, 북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그렇게 자신을 대하는 남유다인들을 좋아하지를 않았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4장에 보면, 남유다인이었던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할 때에 있었던 하나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것은 행로에 곤한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했을 때에, 그 여자가 하는 말이,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요4:9). 그런데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 여자가 왜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상종하지(서로 교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남유다의 유대인들이 북쪽 갈릴리로 왔다 갔다 할 때에는 대부분 직선 거리였던 사마리아를 버리고, 다들 요단강 동편길을 돌아서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마리아 지역에도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 둘 사이를 이제는 형제 관계로 회복시키기 위해 새로운 일을 행하신다. 

 

2. 사마리아 교회가 사도들이 오기전까지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그런데 사마리아 지역에도 이렇듯 복음전파가 있었다. 그것은 스데반의 순교로 인한 거대한 핍박 때문에 흩어진 유대인들 중에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빌립[집사]가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의 말을 듣고 그리고 그가 행하는 표적을 보고서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에서도 믿는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들 역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은 그곳에 파송한다. 그러자 그들이 그곳에 내려간다. 하지만 가서 보니 그들이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사마리아의 성도들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한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아예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성령 자체는 받았으나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는 것인가? 신앙에 있어서 어떤 것이 불분명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성경의 원문을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실제가 어떠한가도 같이 살펴보아야 한다. 그럼,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성령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사도행전 8장의 기록은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16절에 나온다. 이 말씀을 개역성경으로 보면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은 것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와 다르다. 헬라어 원문에는 "왜냐하면 아직 그들 중에 아무 위에도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온 채로 있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직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은 채 있어오고 있었다"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마리아 성도들은 그들 위에 내려오시는 성령(곧 성령의 은사)을 받지 못한 것일 뿐 성령자체를 받지 못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자 사도들이 내려가서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받게 하심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  둘 사이의 소원한 관계를 형제 관계로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3.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과 성령세례는 받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마리아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빌립[집사]를 통하여 복음을 들었고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자신의 구주로 믿었다는 것을 의미한다(12절). 또한 그들은 빌립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왕국)에 관해서도 들었었다(12절). 그러므로 그들이 들었고 믿었던 복음은 완전한 복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언제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시는가? 사람들 중에 어떤 이는 회개하고 믿을 때에 성령이 동시에 들어온다고 말한다(행2:38, 10:44). 하지만 어떤 이는 믿고 난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 성령께서 들어온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보면 둘 다의 경우가 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믿을 때가 아니라 성령께서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갈 때 그 사람이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가리켜 '회심'이라는 용어로 부른다. 그러므로 믿는 것과 회심은 같은 시간대에 일어날 수도 있고 다른 시간대에 일어날 수도 있다. 살펴 보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1년 안에는 다 '회심'을 경험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성도들이 믿을 때에 성령세례를 다 받았을까를 질문한다면, 그들은 믿을 때에 대부분 성령자체는 받기는 했지만 위에 부어지는 성령세례는 아직 받지 못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렇다. 사마리아의 세례받은 성도들 중에는 아직 회심이 안 된 자들도 섞여 있었으나 대부분은 성령자체는 다 받은 것이다(고전12:3).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머리 위에 부어지는 성령세례는 아직 받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4. 시몬은 과연 회심한 자였는가?

  그렇다면 사마리아 교회의 세례받은 성도들 가운데 아직 회심을 경험하지 않는 자는 대체 누구였는가? 우리는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가 바로 마술사 '시몬'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믿었고 그리고 세례를 받았던 목적은 처음부터 잘못 되었었고 아주 나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도 빌립 집사처럼 귀신도 쫓아내고 중풍병자나 못 걷는 사람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고 싶어서 그렇게 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큰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듣고 싶어서 세례까지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이러한 자들에게 성령께서 들어가서 그를 거듭나게 하실 리가 없는 것이다. 그는 사마리아 성도들 중에 거듭나지 않은 성도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는 믿는 이들을 안수할 때에 하나님의 선물 곧 성령의 은사가 그들 위에 부어지는 것을 보고 그는 또다시 깜짝 놀란다. 그러자 그는 사도들에게 은화를 갖다 주면서 자기도 그러한 권세를 행할 수 있도록 그것을 전수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함으로 그의 실체가 드디어 드러나게 된다. 그가 예수님을 믿었던 목적이 여느 사람과 달랐던 것이다. 자신이 빌립이나 사도들로부터 능력과 권세를 더 받아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그렇게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5. 가짜 회심자 시몬에 대한 사도의 처방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가짜 회심자 시몬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처방은 어떠했는가? 빌립은 아직 영안이 열리지 않아서 마술사였던 시몬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정확히 보지를 못했다. 단지 시몬도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였고 또한 세례를 받기를 원했기에 그에게 세례를 준 것이었다. 그러나 사도들의 눈에 그는 악한 자였다. 마음이 올바르지도 않았다(21절). 돈을 주고 하나님의 선물을 사려고 획책했기 때문이다(18~19절). 그의 속에는 악독이 가득하였고 불의의 공동결박으로 꽁꽁 묶여있었다(23절). 이는 여러 귀신들이 그를 결박으로 묶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그는 다른 사람과 원래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 그는 귀신의 힘을 힘입어 자기가 능력있는 하나님의 사자인 것처럼 사마리아 사람들을 속여왔던 것이다. 그런데 사도들의 눈에는 그가 어떤 자였던 것이 보인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를 엄히 책망한다. 베드로는 그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면서 그로 하여금 회개할 것과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촉구한다(22절). 그래서 자신의 악함을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예수 믿기 전에 이방신을 열심히 섬겼거나 그러한 일에 종사한 자는 자기 속에 악한 영들이 많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그런 자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상숭배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악한 영들이 다시 그를 제자리로 되돌아가게 만들 수도 있고, 일평생 그를 괴롭힐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자들 중에 우상숭배를 많이 행한 자는 보다 더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 여기서 '철저한 회개'라는 말은 자신이 우상숭배자였던 사실을 철저히 인정하고 여러 번이고 계속해서 그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악한 영은 섬길 때마다 그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은 자신이 우상숭배를 행던 죄의 숫자만큼 여러 번 반복적으로 회개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있는 후에 시몬이 그렇게 회개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우리들 중에 그러한 자가 있다면 그는 보다 더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 할 것이다. 

 

 

2022년 09월 01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재능 곧 능력과 지혜는 그것이 다인가 아니면 더해질 수 있는가?(마25:14~23)_2020-04-30(화)

https://youtu.be/bZrnsKNDCtY [혹은 https://tv.naver.com/v/13601425 ]

 

1. 사람이 가진 달란트란 어떤 것을 가리키나요?

  달란트라는 것은 사람이 태어날 때에 부모로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재능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달란트는 사람마다 독특합니다. 그럼, 어떻게 각 사람에게 달란트가 주어지는 것인가요? 오늘 성경에 보면, 주인이 그의 종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맡김과 같다고 했는데,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그의 종들은 우리 인간을, 그들이 받은 달란트는 인간이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나는 재능을 가리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사람에게 달란트를 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으면 "옛다~! 받아라" 하시면서 다섯 달란트를 주시고, 우리가 태어나는 날에 기분이 좀 언잖으시면, "넌 이것만 받아!" 하시면서 한 달란트만 주시는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태어나는 사람이 달란트를 공평하게 가지고 태어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양쪽에 부모 곧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를 통해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술가 집안에 예술가가 나오고, 운동을 잘하는 집안에 운동선수가 나오며, 노래를 잘 하는 집안에 노래 잘 하는 이가 나오는 것입니다. 특히 양가가 그렇다면 더할나위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3대가 계속해서 그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그 집안은 특별한 달란트를 소유한 집안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운명은 부모가 다 결정해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좋은 유전자형질을 가지지 못한 자는 대단히 억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태어날 때에는 부모로부터 유전자형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살아가면서 자기가 더 많이 배우고 연구하고 학습한 것이 자신의 유자전 형질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결국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달란트는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절반 그리고 내가 살아가면서 배우고 익힌 것으로부터 절반이 형성이 되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2. 성경을 보면 달란트는 원래 어떤 것이었나요?

  사람이 가진 달란트는 원래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을 가리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맨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만큼은 다른 존재와는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모두 동물들은 다 자기의 형상을 따라 창조했는데, 사람만큼은 사람의 원형을 따라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독수리는 처음부터 독수리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고, 사자는 처음부터 사자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지만 사람만큼은 사람의 형상과 모양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지닌 달란트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능력이 있었고 매우 지혜로운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달란트 곧 하나님의 형상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많은 부분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있습니다. 만약 그때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상실되었다고 한다면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을 지배하고 살 수 없을 것입니다.

 

3. 달란트는 대개 어떤 것들로 구분할 수 있나요?

  사람이 가진 달란트는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1:24). 그렇지만 좀전에서 말씀드렸듯이 아담은 범죄이후 이것들 중에서 상당 부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자신의 부모의 유전자와 자신의 노력개발정도에 따라 더 많이 가지기도 하고 더 뛰어난 것을 가지고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 집안에 운동선수가 나오고, 학자집안에서 학자가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해서 연구발전시킨다면 다시 말해, 대를 이어서 달란트를 개발할수록 능력과 지혜와 기술은 더 축적되고 정교해지는 것입니다.

 

4. 달란트를 두고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일반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을 일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와 뭐가 다른 것일까요? 그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달란트와 자신이 일평생에 개발해낸 달란트를 자기가 소유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들은 일반 사람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능력과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우리 속에 모시게 된다는 점입니다(고전3:16, 고후13:5, 요일4:4)). 사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으로 존재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류구원을 위해 친히 사람의 형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원래 전능자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가진 능력과 그분이 가진 지혜, 그분이 가진 기술은 우리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최도의 능력과 최고의 지혜, 고도의 기술이 그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지식과 지혜의 보화의 창고이시기 때문입니다((골2:3). 그러므로 그분이 내 안에 성령으로 들어와 계셔서 날마다 우리의 교사가 되어주심으로 인하여 우리를 깨우쳐주시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지혜와 분별력을 얻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그분께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가 가진 능력의 범위를 뛰어넘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빌4:13,6~7). 고로 그리스도인들은 부모가 주시고 자신이 개발해낸  달란트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더 소유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5.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어떻게 되어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지혜와 능력을 소유하게 된 것일까요?

  다니엘 및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세상 사람들과 거의 엇비슷한 지헤와 능력을 소유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나마 왕족이었기에 그들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포로로 잡혀간 그들이 바벨론에 가서 아주 중요한 결단을 내립니다. 그것은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겠다고 마음에 작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주는 음식 곧 산해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정자문학교 학생이었습니다. 그 코스를 잘 마치게 되면 훌륭한 관직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졌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기회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걸어버립니다. 그러자 청소년들이었던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십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놀라운 긍휼을 베풀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왕정자문학교를 졸업하는 날에는 바벨론 술사들은 전혀 소유할 수 없는 놀라운 은총을 보너스로 더해주셨는데, 그것은 모든 책과 지식을 깨닫는 분별력과 그리고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는 계시와 꿈을 이해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까지도 더해주신 것입니다(단1:17). 그러니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남의 나라에서도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 칭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속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과 지혜를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활용하느냐 안 하느냐는 자신의 책임입니다.

 

2020년 04월 30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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