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2(금) 금요기도회

제목: 사도행전강해(30) 모세는 준비된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도 하나님의 때가 있었다(행7:17~3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RmUZ5v--wvs  [혹은 https://tv.naver.com/v/28578512 ]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이 땅에 보낸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그에게 비로소 일을 시키실 때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일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때'라고 부른다. 모세에게도 그랬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게 하려고 선택한 특별한 그릇이었다. 하지만 그가 언제 어떻게 쓰임받을 것인지는 모세 자신도 사실은 모르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 중에는 모세가 40세가 아니라 80세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비로소 부름받아 쓰임받았다는 것을 출애굽기를 통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왜 모세는 40세에는 안 되었고 80세가 되어서 비로소 쓰임받게 되었던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임하기까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가? 여기,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때에 관한 비밀이 있으니 그것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래서 나도 언제 어떻게 쓰임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때까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성경을 볼 때 종합적으로 통전적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의 기록들은 모두가 다 역사적인 사실들이며 그것은 영구히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 책을 우리는 '행위책'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면 그 기록들을 다시 들여다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 기록된 사건이라 할지라도 다른 또 누군가가 그 장면을 보고 성경에 기록해 놓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의 기록들 중에서 생략된 부분을 다른 성경책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모세의 삶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모세가 직접 기록하지 않았어도 성령의 감동으로 그 장면을 들여다 본 어떤 기록자들이 다른 곳에 모세의 사건을 기록해 놓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로서 구약 성경에서는 '시편'의 말씀이며(시78편) 신약 성경에서는 '사도행전'(행7장)과 '히브리서'(히11장)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기록된 모세의 이야기를 다른 성경에서 찾아봄으로써 그때 일을 보다 더 생생하게 알아볼 수 있고, 거기에 기록되지 않은 일들까지도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느샌가 모세가 3기의 인생을 살았다고 알고 있다. 출생부터 40세까지, 그리고 40세에서 80세까지 그리고 80세에서 120세까지로 말이다. 그럼 누가 이러한 사실을 알려 주었을까? 출애굽기를 아무리 읽어 보아도 80세 이전의 삶에 관하여 40년과 또 40년의 삶이었다고 기록된 곳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를 통하여 모세가 태어나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어 40년을 살았다는 것(행7:20~23)과 다시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서 40년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행7:30~36). 그러므로 성경은 종합적으로 그리고 통전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3. 모세는 태어나서 40세까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구약 성경의 인물들 중에서 3대 인물을 들라고 하면 아마도 우리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을 언급할 것이다. 그중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세'는 율법을 받은 자로서 잘 알려져 있고, '다윗'은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가장 완벽한 왕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 다 모두 예수님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두 번째 사람 '모세'는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출하여 데리고 나왔고 광야에서 율법과 성막제도를 받았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코앞까지 인도한 영도자였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모세가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자체가 없다는 말과도 아마 일치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는 태어나서 40세까지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는 출애굽기 2장에서 그의 출생과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40세가 되었을 때에 자신의 동족을 돌아볼 생각이 나서 저지른 살인 사건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그가 태어난 후 석달 쯤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된 이후 40세가 되기까지 모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의 안수받은 성도 중의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의 설교를 통하여 우리는 모세가 40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비로소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사도행전에 7:22에 나온다. 우선 행7:22의 말씀을 헬라어에서 직역해 보자. 

행7:22 그리고 모세가 애굽사람들의 모든 지혜 안에서 훈련받았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말들과 일들 안에서 능력 있는 이로 있어 왔다. 

  여기서 "있어 왔다"는 말은 미완료 구문으로서 그가 미디안으로 도망치기 전까지 그는 애굽에서 그것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자 왕자로서 애굽의 모든 학문을 다 익혔을 뿐만 아니라 말들이 능했고, 일들을 잘 처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기록을 보더라도, 그가 젊었을 때에 구스에 원정을 나가서 대승을 거두고 오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그는 문화 예술 언어 분야 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 분야에서도 뛰어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냥 배운 수준이 아니라 애굽의 바로가 될 자로서 강하게 훈련을 받았고 또한 그것을 잘 수행해 내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5. 모세는 왜 40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무명의 삶을 살아야 했는가?

  이렇게 뛰어난 모세가 왜 갑자기 40세부터 80세까지 그만 미디안 광야에서 무명의 목동으로 살아야 했을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때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 성급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한 것이다. 그 일은 그의 나이 40세에 일어났다. 그것에 대해 스데반은 이렇게 설교하였다. 

행7:23~25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24 한 사람이 원통한 일을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동의하리라)고 생각(확신)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동의하지) 못하였더라

  그랬다. 그는 나이 40이 다 찼을 때에 자신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동족 한 사람이 애굽 사람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는 가만 있지를 못하고 그를 쳐죽이는 일을 하고 말았다. 이것은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그들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을 동의하는 사건이 될 줄로 알았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모세가 자신의 혈기로서 애굽 사람을 쳐죽인 행동은 결코 장차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로서의 품성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의 행동을 동의해 주시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모든 것을 틀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즉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애굽 땅에서 미디안 땅으로 도망을 친다. 왜냐하면 아직 그에게 하나님의 때가 오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하나님의 때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일해야 할 때를 무려 40년 뒤로 더 밀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6.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를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정하신 때 곧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까? 우리 모든 인생은 지금의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 시간은 우리가 임의로 막을 수가 있다. 이때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가리켜 우리는 '크로노스'라고 부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해진 딱 그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카이로스'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카이로스의 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전3:1~2[직역] 모든 일에는 시간(크로노스)이 있고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다 때(카이로스)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그런데 모세는 '크로노스' 속에서 자신이 '카이로스'를 정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데도 모세는 "이제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갖추었으므로, 바로 지금이 내가 일을 시작해야 할 때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자신을 지금까지 훈련시켰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알게 하기 위해 애굽 사람을 쳐죽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세의 생각이었을 뿐 하나님의 때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수를 모세만 저지르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러한 실수를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곧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었음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출3:4~6).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쓰시고자 준비시켰다는 것과 이제 그 일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경로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부르심'이라고 부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세가 40세에 애굽인을 쳐죽인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행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믿고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대제국 애굽에서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모세가 40년 뒤 80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나오려고 할 때에도 얼마나 바로의 완강한 반대가 있었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10가지 초자연적인 재앙을 그들 위에 내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자신이 준비되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제는 되었다"고 할 때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7.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우리가 준비하고 있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우리가 준비하고 있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까지 우리가 정작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적어도 3가지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쓰실 인재가 되도록 묵묵히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으로서 꼭 갖추어야 할 소양과 자질을 익히고 훈련받고 몸에 배게 하는 것이다. 모세는 태어나서 40년간 그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때를 오게 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둘째로, 기도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기도가 쌓여야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지만 우리 인생들이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 없이는 하나님께서도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말씀은 출애굽기 2장에 기록되어 있다.

출2:23~25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그렇다. 기도의 분량이 차야 하는 것이다. 기도가 쌓여서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을 만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르짖어 기도함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적으로 일러 준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기도를 시켰는가? 모세가 태어날 즈음에 모든 사내아이를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을 허락함으로 시작되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에 대한 애굽의 학대가 가속화 되자 더욱더 부르짖어 기도했던 것이다.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도 차야 했다. 또한 더불어 모세의 기도가 채워져야 했다. 그런데 모세는 40년 동안 거의 기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홀로 40년간 광야로 내보내어진 것이다. 그리고 40년을 아침저녁으로 자연 속에서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도 40년 뒤에 그를 찾아오신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모세가 40세에 미디안으로 도망쳐 미디안에서 40년을 살았을 때에 그 훈련의 시간이 마치는 날 찾아오셔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힘을 빼는 일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이것을 알지 못한 채 일을 마치면 자기 자랑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나를 비우고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그런데 40세까지 모세는 얼마나 자신의 힘과 지혜로 충만했던가? 그러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미디안 광야로 내보내신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모세는 80세부터 쓰임을 받았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의 나이 120세가 되었어도 그의 눈은 결코 흐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8. 나오며

  모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 기다릴 수 없었다. 자기 딴에는 애굽의 모든 학문과 지혜를 익혔고 정치 군사 훈련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었다. 또한 자기의 어머니(하셉슈트 공주)가 살아 있었기에 얼마든지 모친의 도움을 받아 남부 애굽에서 왕으로 등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때를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애굽에서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찌 이끌고 나올 수 있었겠는가? 그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굽의 술사들도 지팡이로 뱀을 만들지 않았는가? 애굽의 나일강을 핏빛으로 물들게 하지 않았는가? 그들에게도 어마어마한 능력들이 있었다. 물론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때가 오기까지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먼저는 소양과 자질을 갖추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기도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 그리고 셋째는 내 힘을 빼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때가 오게 하는 비결이다.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라. 우리의 기도의 분량이 내 시대에 차지 않는다면 2~3대에서까지라도 채우리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가 왔음을 우리에게 알려줄 때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면 겸손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2022년 08월 12일(금)

정병진목사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가 있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분에게 쓰임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너무 성급해서도 아니 되겠지만 그 때가 되었는데도 주저해서도 아니 된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 우리는 하나님의 때가 찼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가? 여기, 요셉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때('카이로스')에 대한 놀라운 말씀이 있다.

2021-07-16(금) 금요기도회
제목: 창세기강해(153) 요셉에게도 하나님의 때가 있었다(창41:25~4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Y20s8Xan6Ro [혹은 https://tv.naver.com/v/21374838 ]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은 대체 언제인가? 사실 하나님께는 전능하신 분이시며 영이시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하신다(요5:17).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일하시는 시간이 따로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헬라어로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한다. 짹깍짹깍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물리적인 시간)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행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의미있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요셉에게도 이러한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그가 애굽왕 바로 앞에서 바로의 꿈을 해석해줄 때에 시작되었다. 그것은 요셉이 17살 때에 꾸었던 꿈이 성취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요셉을 특별히 찾아온 때였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지 곧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우리는 어떻게 인내해야 하며 어떻게 그 날을 기다릴 것인지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때가 찼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2.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는 언제인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특별히 쓰시는 때가 있다. 그때는 언제인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되려면 그 사람이 무르익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쓰시려고 하지만, 그 사람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을 쓰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무르익을 수 있도록 고난과 역경과 환난 속에 그를 던져넣기도 하신다. 그리고 때로는 억울한 상황에도 있게 하시고, 때로는 고통 가운데에도 있게 하신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훈련과정을 잘 통과해 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쓰시는 때가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고로 나 자신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때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르익도록 자신을 만들어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설픈 사람을 쓰시지 않는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때가 차기까지는 계속해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고난을 인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때는 하나님께 쓰임받을 때가 아니라 그가 준비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이 쓰시는 때가 언제인지를 곡식의 추수를 통해 살펴보자. 보리추수의 과정은 이렇다. 농부가 겨울이 되기 직전 늦가을이 끝나는 시점에 보리 씨를 논에 뿌린다. 그러면 겨울이 되기 전에 싹이 나서 보리가 조금 자란다. 그리고 나서 보리는 혹독한 겨울을 견녀내야 한다. 겨울이 차갑지 않으면 보리가 여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리는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따뜻한 봄이 되면 보리는 쑥쑥 자라게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 보리를 추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보리 추수를 빨리 하고 싶다면서 이제 갓 올라온 보리를 베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보리는 추운 겨울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이 보리도 토실토실한 알맹이를 산출할 수가 있다. 요셉도 그렇다. 그의 나이가 17세 때까지는 하나님의 쓰실 사람으로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그는 이제 갓 싹이 나왔을 뿐이다. 앞으로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타국에 종으로 넘어가도록 허락하셨다. 그는 거기서 13년이라는 세월동안 고생을 많이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무르익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나이 30세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가 익었음을 아시고 그를 쓰시기 시작하셨다. 

 

3. 요셉의 삶과 예수님의 삶은 얼마나 닮았는가?

  사실 이기는 자의 예표로서 요셉의 삶은 장차 이기는 자로 이 땅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구약의 예표였다. 요셉의 경우를 보자. 그는 돈에 의해 팔렸으며 그리고 죄인이 된 것처럼 예수님도 은30에 팔렸고 죄인이 되셨다. 그리고 요셉이 비로소 청소년을 지나 30세에 쓰임받은 것처럼 예수께서도 30세에 쓰임을 받았다. 예수께서는 사실 그 이전에도 얼마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신장에 있어서도 무르익기를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무르익게 되었을까? 그것은 요셉이 어떻게 무르익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단서가 된다. 그것은 눅2:52의 말씀에 나와 있다.

눅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께서는 그의 나이가 30세가 되기까지는 계속해서 지혜가 자라갔고 키가 자라가셨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에게도 사랑스럽게 되셨다.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그를 쓰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셉도 30세가 되기까지는 그의 지혜와 신장이 자라가야 했다. 그리고 그가 30살이 되었을 때에, 그의 지혜는 출중해졌다. 왜냐하면 그의 지혜를 바로왕도 인정해 주었고 바로의 신하들도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니 요셉은 자신의 꿈을 넘어서 다른 사람의 꿈도 해석해 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더욱이 남들이 꾼 계시적인 꿈을 해석해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대안도 제시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므로 요셉은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알게 하시는지를 알 수 있었고, 그러므로 미래의 일도 대비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흉악한 기근에 앞서 대비책을 듣게 된 바로왕은 "너 같이 분별력있고 지혜론운 자는 애굽에 더이상 있지 않구나"고 하면서 그를 애굽의 총리고 기용하게 된다. 

  그렇다. 요셉은 먼저는 지혜가 자라간 것이다. 그가 17살 무렵에 꿈을 꾸었을 때만 해서 분별력과 지혜가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 사람과 들려주지 말아야 할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27살이 되어 보디발의 감옥에 있을 때에는 지혜가 많이 자란 상태에 있었다. 그러므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꿉는 관원장에게 그들의 꾼 꿈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어버렸다. 그때 요셉은 그에게 말했다. 자신은 애굽에 팔려온 자이며, 보디발의 감옥에 갇혀있지만 감옥에 갇혀있을 일도 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복직이 되면 자신의 사정을 바로왕에게 알게 해 자신을 감옥에게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요셉은 결코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최선의 삶을 살았다. 그러자 요셉은 하나님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사랑(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다. 그는 항상 정직했고 성실했고 충성되었으며 자신을 죄로부터 지켜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에게만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의 눈에 든 것이다. 그가 종으로 팔려 애굽왕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종이 되었을 때에도 그가 얼마나 성실했든지 보디발의 눈에 그가 들었었다. 또한 그가 감옥에 있을 때에도 그의 성실한 모습이 간수장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간수장의 총애를 입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바로 앞에 서서 꿈을 해석을 해줄 때에는 바로와 바로의 신하들의 눈에도 들었다. 요셉은 하나님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이렇듯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나이가 30살이 되었을 때에는 준비가 다 된 상태가 되었다.

 

4.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어떻게 인내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가 때가 되기까지 우리는 어떻게 인내해야 하는가? 그것은 농부가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려야 한다는 야고보의 권면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야고보 장로는 우리에게 인내의 필요성을 농부와 욥의 경우를 들어 설명해주었다(약5:7~11). 그가 권면하는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마음을 굳건히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8절). 잠시 외부적인 환경에 어려움이 찾아왔다고 해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둘째,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9절). 이스라엘 민족이 1차적인 구원을 받아 광야로 나왔지만 원망불평하다가 광야에서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셋째, 이미 인내했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본받는 것이다(10~11절). 우리에게는 참고 기다렸던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욥이다. 욥이 사탄의 참소로 인하여 매우 힘든 삶을 살았다. 그리고 무려 70년동안 인내하면서 고난을 이겨내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방문을 받았고 자신의 죄된 본성마저 회개함으로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인내를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감당한 만큼의 시험만 허락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는 분이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피할 길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의 때가 찾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내게 하나님의 때가 찼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가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것은 우리가 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분의 때가 될 때에 우리에게 방문하시고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장에서는 준비를 한 상태에서 그분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 쓰일받을 만큼 준비되고 성숙되어질 때 우리를 찾아오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목적에 따라 쓰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가 찼는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는 순간에 비로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때가 속히 올 있도록 그분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에 우리는 잘 훈련받아야 한다. 특히 우리의 분별력과 지혜를 키워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도 드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쓰시겠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시작점이 요셉에게도 있었다. 그시점은 바로가 그를 애굽의 총리로 기용할 때였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때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6. 나오며

  사람은 너무나 조급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때는 내가 정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다만 그분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들로 준비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실 때에는 한 순간에 우리를 붙잡아 쓰신다. 요셉의 경우처럼 우리의 신분을 수직상승시켜 쓰시는 것이다. 요셉에게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것은 그의 때가 이제 찼다는 표시였다. 요셉이 꿈꾸었던 것과 비전대로 이뤄질 시점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선 자기의 가족들을 기근으로부터 살려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셨다. 그리고 애굽의 그 어떤 사람도 그 꿈을 해석할 수 없게 하셨다. 그리고 오로지 요셉만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자 요셉은 7년 흉년에 대한 완전한 대비책까지 조언할 수가 있었다. 분별력과 지혜가 자랐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너를 쓸 때가 되었다"고 찾아오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충분히 무르익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준비되어 있는가? 그래야 한다. 이러한 준비과정 없이 쓰임받은 사람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믿음의 선배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요셉에게는 그 기간이 13년이나 필요했고, 다윗은 15년이 필요했으며, 욥은 70년, 모세는 80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여기에는 어느정도 시간의 안배도 필요하다. 예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30살쯤 되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눅3:23). 그때는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쓰임받을 때였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때가 되기까지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 주님이 쓰실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철저히 준비하자. 그 중간에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결코 낙망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또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참고 인내하면서 나아가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불러 세우실 때가 온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7월 16일(금)

정병진목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75세 때에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아들을 보기까지는 약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야 했다. 왜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렇게 더디 성취된 것일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오늘은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약속과 그 성취의 비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2021-05-14(금) 금요기도회
제목: 창세기강해(98) 하나님의 약속은 정한 때와 기한이 있다(창21: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0nCZiPFhYVA  [혹은  https://tv.naver.com/v/20227063 ]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 성취될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먼저 약속을 하신 다음에 그리고 그것을 이루신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이라도 금방 금방 성취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러한가?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기까지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처야 할 과정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삭에 대한 약속의 성취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은 과연 언제 성취되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크게 3가지다. 하나는 그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기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땅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지 24년이 지나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약속은 더디 성취되고 있었다. 아직 하나님께서 약속한 씨가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약속의 땅도 차지하지 못했으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은 때도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약속이 최초로 성취가 되는데,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였다.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약속한 약속의 씨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삭"이다. 이삭은 약속의 자손으로서, 혈통적으로 적자일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적자인 자식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의 첫단추가 꿰어지는 싯점이 바로 이 싯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그에게 약속이 주어진 이후 무려 25년이 지난 다음에는 첫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 하나님의 약속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어떤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3.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더디 성취된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갈대아우르에게 아브라함을 불러내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떤 축복을 약속하셨다. 그것은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아브라함이 자식을 낳아 장차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하신 것이다(창12:2). 또한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부푼 꿈을 안고 하나님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가나안 땅까지 이주해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축복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어야 했다. 처음으로 자식을 본 때는 25년이 흐른 시점이었고,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 때에는 그때로부터 약700년이 더 필요했다. 왜 그랬을까?

  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직후 아니면 조금 뒤에 그 약속이 성취되지 아니하고 무려 2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였다. 즉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이 아브라함에게 성취될 수 있는 준비가 아직 덜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 약속을 성취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으로 준비가 되었더라면 그의 나이 99세가 되기 전에 그는 이미 축복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무려 2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 첫 후사로서 이삭의 출생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은 데에는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을 잊어버린다거나 모른 채 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혹 문제가 있다면 우리 인간편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만한 준비가 덜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이루시지 않았던 것이다. 

 

4. 아브라함은 언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만한 준비가 되었는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아브라함은 그것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아니한 일꾼을 쓰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준비되었을 때에 비로소 성취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99세 때에 하나님의 방문을 받았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2가지 사항을 말씀해 주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첫째는 그의 믿음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이 그의 마음에 있지 않았으니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사라는 절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으로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창17:1)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나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면 안 될 일이 없으며, 하나님만이 또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때까지 아브라함에게는 그것이 부족했거나 없었다. 그것을 깨우쳐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때 비로소 아브라함은 전능자를 바라보게 된다.

  둘째는 자신의 잘못을 그냥 계속 간직하고 있는 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99세가 되기까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열심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한 말씀의 성취가 되어야 하는데, 그는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당신이 하신 말씀만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99세 나타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그가 따르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회개의 의미로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뒤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그는 그날밤에 즉시 모든 집안의 남자들을 다 데려다가 할례를 시행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진정 이전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회개의 행위였고, 하나님의 전능하심만을 신뢰하겠다는 표시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실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그때가 언제였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 때부터였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인정하고 회개할 때부터였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해 아직 믿음이 준비되지 않았거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함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는 회개가 터지지 않았다면 그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왜 내게서 성취되지 않는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왜 그 약속이 내게 성취되지 않고 멀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여 그 문제를 헤결해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믿음과 회개였다. 이 이 두 가지 사항이 비로소 준비된 것이 그의 나이 99세 때였다. 그리고 사라의 나이는 그때가 89세였다. 

 

5. 하나님의 약속이 빨리 성취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팁들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뜻이 빨리 성취되게 하려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들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현재에 살고 계신다. 그분은 "전부터도 계속 있어왔고 지금도 여전히 계시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이기 때문이다(계1:8). 그러므로 그분에게 모든 시간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현재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이 더딘 것 뿐이지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속히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기를 한 가득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들이 필요한 것인가? 여기에는 몇 가지 성경적인 힌트들이 있다.

  첫째, 모든 약속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는 것이고 그러한 때가 찼을 때에 비로소 약속은 성취된다는 것이다(갈4:4). 갈4:4에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시되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고 증거한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도 하나님이 생각하고 있는 시간이 차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참고로 "시간"이란 절대적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시간으로서, 우리가 준비되면 그 시간이 차는 그러한 종류의 시간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이룰 수 있는 자 곧 그러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나타나거나 그러한 사람이 출현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깨우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이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얼마나 바라시고 있었으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깨우치셨는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사람이 어떤 일을 성취한 다음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할 때까지 하나님은 그를 다루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99세가 될 때까지 사람의 힘만으로는 그의 아내 사라로부터 아들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사라도 자기를 통해서는 결코 아기가 태어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고, 그리하여 아브라함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회개하게 되자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도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자기를 통해 이뤄지기를 희망하는 자들은 회개를 잘 해야 한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 두가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그만큼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6. 나오며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성취되는 듯 하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빨리 그 약속을 성취하고 싶어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복을 받을 준비가 우리에게 되어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했던 약속을 곧바로 성취하지는 않으신다. 복을 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시기는 그가 부름받은 때로부터 약 25년이 지난 싯점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왜 내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지 않는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따질 필요는 없다. 그건 내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자신의 뒤를 신중하게 뒤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어디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살피고는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시간만 흘러갈 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성취되지 않고 계속해서 연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과연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늘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진짜 회개를 통해 귀신이 역사할 수 없는 깨끗한 환경을 갖추어가야 한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잘못된 것들은 하나씩 하나씩 고쳐가나고, 준비가 안 된 것은 지금부터라도 차곡차곡 준비한다면 우리에게도 이삭이 출생하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5월 14일(금)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